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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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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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름 金旅凜

서울예대 극작전공 4학년. 1998년생.

summeryard@naver.com

 

 

 

안나

 

 

안나. 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처음 목격했다.

깊고도 부드러운 월넛 색상, 견고한 모양새로 길게 뻗은 다리, 둥글게 균형 잡힌 팔걸이와 모던함을 더해주는 검정 시트. 안나를 처음 본 순간 직감했다. 나는 이제 어찌할 도리 없이, 안나를 사랑하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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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로(Anna Roe, 1918~1967)는 20세기 북유럽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다. 1918년 스웨덴 예탈란드에서 출생한 안나 로는 금속 공예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스톡홀름 미술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도 금속, 유리 공예에 몰두했던 그녀는 노쇠한 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처음으로 의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후 정형화된 가구 디자인에 의문을 품게 된 안나 로는 기존의 가구들이 가지고 있던 직선형 모델에서 탈피해 곡선형의 다리를 가진 사이드체어를 디자인한다. 관념을 해체하는 새로운 작업방식에 흥미를 느끼게 된 안나 로는 꾸준히 가구 디자인에 매진하며 함께 공방을 운영하던 애인 사이먼 필립(Simon Philip)과 가구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신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안나 로의 가구들은 당시로서 획기적인 디자인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남성 디자이너들이 중심이었던 디자인 업계에서 안나 로의 작업이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안나 로는 필립의 이름을 빌려 작업물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필립은 브루노 맛손(Bruno Mathsson)과 함께 스웨덴의 모더니즘을 이끈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손꼽히게 된다.

그리고 1967년, 안나 로는 다소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안나 로의 사망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잃은 뒤 깊은 상실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사망 이후 필립이 잡지사 인터뷰를 통해 모든 사실을 밝히면서 처음으로 안나 로의 이름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안나 로의 디자인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많은 가구 브랜드에 영감을 주었으며, 아버지를 위해 처음 제작했던 사이드체어는 201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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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매장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밤 열시에 매장에서 마감 소등을 하다가 소식을 들었고, 뭐라 말하려던 차에 매장의 모든 불이 꺼졌다. 이제 퇴장하라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안나.

멍하니 매장을 나서는데 문득 생각난 그 이름이 모든 신경을 관통했다. 나는 사장이 나간 것을 확인한 뒤 닫힌 창가에 붙어 어둠 속에 홀연히 빛나고 있는 안나를 바라봤다. 안나는 여전히 반듯하고 고요한 형태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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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매장에서 일하려면, 여기 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고 공부해야 해요.

내가 면접을 보러 간 날, 사장은 나를 보며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뭐야, 그냥 아르바이트 뽑는 거면서 더럽게 무게 잡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나는 당찬 목소리로 할 수 있다 말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사장은 그런 내 모습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생긴 빈티지가구 편집숍이었다. 사장은 내 생각과 달리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꽤 차갑고 예민해 보이는 이미지였지만, 시급은 최저 이상에 식대도 제공해주는데다 신도시 복합문화센터 안에 있어 화장실도 깨끗했다. 다만 아는 가구 브랜드가 있느냐 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브랜드를 따지기는커녕 ‘오늘의 집’ 앱에서 최저가 가구 몇개나 구매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까페에 들어섰고 주문을 하려던 차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수린씨죠, 내일부터 나오시면 돼요. 사장은 간결한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고 나는 네,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카운터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까페 직원이 밝지만 무기력한 목소리로 한번 더 주문하시겠느냐 물었다. 나는 프라푸치노 중에서도 가장 비싼 시즌 메뉴를 주문했다.

교육 첫날 사장은 나를 끌고 매장 이곳저곳을 돌며 빈티지가구의 브랜드와 디자이너, 가격대를 소개했다. 모두 낮게는 백만원에서 높게는 팔백만원을 호가하는 가구들이었다. 나는 팔백만원짜리 테이블의 다리를 실수로 부러뜨리는 상상을 하다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매장 안쪽의 전시룸으로 사장을 따라 들어갔을 때, 나는 발견한 것이다. 안나를. 그 아름다움을. 스웨덴의 유명 가구 디자이너 안나 로가 1955년 디자인했다는 이 암체어는 별다른 이름 없이 넘버링되어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디자이너의 이름을 따 안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매장에는 늘 사람이 붐볐다. 사장은 스태프들에게 수동적인 태도와 전문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각자 업무를 하다가도 누군가 가구에 대해 물으면 교육 동안 달달 외운 제품정보를 쏟아냈다. 손님들 대부분은 경청하다가도 가격을 확인한 뒤 구매하지 않았다. 어쩌다 가구를 구매하겠다는 손님이 있으면 창고에서 완충재를 가져와 가구 포장작업을 했는데, 무거운 테이블이라도 팔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허리가 뻐근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활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누군가 물으면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생활. 나는 종종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일을 할 때만큼은 쓸모있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게 좋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마땅한 스펙도, 목표도, 그렇다고 취업을 할 마음도 없었던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제 몫을 해내는 삶. 그거면 충분했다.

 

그랬는데,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기 시작했다. 사장이 내놓은 대안은 SNS 홍보였다. 이미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확실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확실한 방식은 인플루언서들에게 돈을 주고 홍보를 맡기는 것이었다. 과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요새는 전부 다 이런 방식으로 홍보를 한다고 했다. 한낱 아르바이트생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냥 괜찮은 방법이네요, 하고 말았다. 사장은 곧 몇몇 인플루언서들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고, 그들은 매장에 와서 한시간 동안 사진을 찍은 뒤 홍보비를 받아갔다. 처음에는 조금 신기해서 다른 직원들과 그 모습을 구경했는데, 한 유튜버의 영상에 우리 얼굴이 모자이크도 없이 업로드된 것을 본 이후로는 창고로 숨어들어 우리끼리 점심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홍보 효과는 미미했다. 매출이 백만원 아래를 밑도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장은 아무래도 비싼 가구만 취급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며, 다른 소품들을 사입해오기 시작했다. 포스터나 액자, 조명, 화병같이 매장의 구색을 갖출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마저 팔리지 않자 식기류, 화병, LP, 빈티지서적 등 조금 더 폭넓은 종류의 물건을 들여왔다. 나는 매장이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하라는 대로 검수를 하고, 포장을 하거나 배송을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월급날에 맞춰 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완이씨는 어제가 마지막 출근이었어요.

VIP에게 보낼 편지를 쓰다가 벙찐 얼굴로 사장을 바라봤다. 인건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나를 포함한 다른 스태프들은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당일 매출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오늘 매출이 이십만원이던데, 저 그릇 하나 살까요. 오늘 매출 오만원만 채우면 백만원인데, LP 하나 살까요. 저 이 가수 팬인데. 무슨 노래 좋아하는데요? 글쎄. 사실 잘 몰라요. 그렇구나. 그럼 이번 기회에 들어보세요. 그러다 간혹 비싼 가구가 팔리는 날에는 오늘 매출 걱정이 없겠다며 와하하 웃고는 가구를 포장했다. 언제든지 관두면 그만인 아르바이트였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곳을 붙잡고 싶어했다. 누군가는 더이상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이만한 시급의 아르바이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공백이 두려웠다.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어떤 공백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사이로 길을 잃은 채 멈춰 서 있다는 정체감. 소속의 부재로부터 오는 불안감. 그런 것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매일 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오늘의 공고가 어제 봤던 그 공고이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며 곧장 뒤로가기를 눌렀던 그 공고였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던 중, 우리는 그런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매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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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매장이 사라지기 전 최대한 모든 재고를 처리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창고에서 꺼내왔다. 일년 남짓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다. 우리는 하루 내내 세일 포스터를 만들고 매장 이곳저곳에 부착했다. 종종 손님들은 계산을 하면서 여기 없어지나요? 문 닫나요? 망하나요? 하며 물었고, 나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만 말끝을 흐렸다. 네, 여기 망했어요. 이런 말은 조금 이상했고, 네, 저희 망했어요. 이런 말은 좀더 이상했다.

세일 소식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된 이후 매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사장은 이때다 싶었는지 기존에 팔지 않았던 제품들까지 몽땅 가격표를 부착하라 지시했다. 이를테면 매장 음악을 틀던 스피커(우리는 이 스피커가 팔린 탓에 한동안 아이패드로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우리가 앉아 일하던 의자(우리는 이 의자도 팔린 탓에 한동안 서서 일해야만 했다), 비품용으로 샀던 선풍기(겨울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안나. 안나는 오롯이 전시용으로만 사입한 가구였다. 흰 벽지와 커다란 창 하나로만 이루어진 전시룸 안에는 블랙의 스탠드 조명과 안나가 정적인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느 덴마크 화가가 그린 회화작품을 연상케 했다. 나는 아침마다 먼지떨이를 든 채 그 광경을 보면서 매번 감탄했고, 안나가 ‘의자’라는 사실에 한번 더 감탄했다. 어떤 가구보다도 쓸모있는 의자라니. 나는 매끈하게 조각된 안나의 팔걸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안나를 볼 때면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한순간에 마음의 파동이 멎었다. 이렇게 고요한 사랑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나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피그말리온이 이런 기분으로 조각상을 사랑했을까. 물론 내가 안나의 창조주도 아니고, 다른 의자들을 혐오하던 것도 아니지만……

사장은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제품들의 리스트를 뽑아 우리에게 건넸다. 나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 업무시트에 내 이름을 적은 뒤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켰다. 그리고 로딩이 되는 와중에도 안나가 없는 전시룸의 모습을 상상했다. 안 돼.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창을 띄워놓은 채로 한참을 고심하다 안나의 가격표 끝에 ‘0’ 하나를 더 입력했다.

 

Anna Roe

No. 6 Arm Chair

68,000,000

 

수린씨. 거기 0 하나 더 붙었는데.

눈치 없는, 아니, 눈치 빠른 사장이 내 앞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그래, 오늘 피곤해요? 나는 어머, 하하하,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하하, 커피 감사합니다, 하면서 다시 가격을 수정했다. 안나만은 이곳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았는데. 아니 머물러야만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꾸만 슬퍼져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가격표를 부착해야 누구도 안나를 구매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등받이 뒤쪽에 가격표를 붙였다. 창 너머로 햇빛이 안나의 몸체를 집어삼킬 듯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안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매장은 점점 텅 비어갔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있던 모듈 가구가 팔렸던 날 나를 제외한 스태프들은 이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실감하고 싶지 않아서 괜한 완충재만 벅벅 뜯어댔지만, 사실 나 역시 모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곳이 사라진다는 것을. 내 일이, 이곳에 머물렀던 내 시간이, 그리고 안나마저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미래라는 것은 부정할 새 없이 닥쳐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매장 온라인 숍에 들어가 안나의 ‘구매하기’ 버튼이 유효한지를 살폈다. 내 장바구니에는 늘 안나가 담겨 있었다. 물론 담겨 있기만 했다. 육백팔십만원. 그것이 안나의 값어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통장잔고를 번갈아 보다보면 어쩐지 비싸네, 하고 중얼거리게 되었다. 이번 생에는 안나와 연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연을 살 돈도 없다는 것을 나는 매일 밤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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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체 채팅방이 시끄러웠다. 완이에게서 스태프들끼리 다 같이 한번 모이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완이는 인사도 없이 나가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뭐가 미안하냐며, 하여간 뭐든 ‘그 인간’이 문제라며 채팅방에 없는 사장을 욕했다. 완이는 정말 웃긴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를 남발하며 계속해서 웃기만 했다. 완이는 우리와 함께 일하던 스태프 중 한명으로, 작년까지 모 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을 하다가 데뷔가 무산된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처음 해본다는 완이는 놀라울 정도로 일머리가 없었고, 삼개월 동안 포스기 조작법조차 외우지 못했다. 한번은 안나를 구매하고 싶다는 손님이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직 모든 가구를 파악하지 못한 완이는 ‘그게 뭐죠?’ 하고 반문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완이는 사장에게 몇번이나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나는 그날부로 완이를 다시는 답답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작 완이는 그런 자신을 못마땅해했다. 어쩌다 실수라도 한번 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침울해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미숙함은 약점이 아니라는 말로 완이를 위로했는데, 그 덕인지 완이는 이곳에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애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면접 때 사장의 말이 떠올라 생각을 그만뒀다. 어찌 보면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그 말을 누구보다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완이를 포함한 우리 다섯명은 매장 정기휴무날 근처 까페에서 약속을 잡았다. 밖에서 보면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모두 말이 많은 타입일뿐더러 한명씩 돌아가면서 사장 욕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완이는 올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게 될 것 같다 말했다. 매장은 잘 정리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 고개만 끄덕였다.

하루에도 가구 몇개씩 포장하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요.

저는 요새 허리보다 발이랑 다리가 저리던데요.

내가 말하자 완이는 그게 바로 허리디스크 증상이라며, 자신이 연습생 생활을 한 뒤 얻은 건 허리디스크와 빚뿐이라 잘 안다고 했다. 꼭 병원에 가보라는 완이의 말에 나는 대강 알겠다고 대답한 뒤 케이크를 떠먹었다. 그런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던 선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좀 막막해요.

그 말과 동시에 모두가 선우를 바라봤다.

여기 문 닫으면 저 뭐 하죠?

직장도 아닌데요 뭐. 일이야 다시 구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어요.

……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요새는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잖아요.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완이였다. 완이는 음료 바닥에 가라앉은 딸기를 휘휘 젓더니 말했다.

누나, 너무 무서워하지 마요.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것은 내가 달고 사는 말이었는데 남의 입을 통해 들으니 괜히 생경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우리는 어떻게든 만나 여기 있었다. 어떻게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다보니 여기에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딘가 냉소적인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문장을 입으로 내뱉게 되면 어쩐지 힘이 나서, 자꾸만 중얼거리게 됐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니까. 어떤 방향으로든 살아갈 거니까. 어찌 됐든 간에, 우리는.

 

피자를 먹고 싶다는 완이의 의견을 수용해 저녁에는 화덕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술이 약한 완이는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로 오늘 즐거웠다며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했다. 우리는 수줍어하는 완이의 모습을 한참 놀려댔고, 폐점하기 전 꼭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긴 채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완이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가장 먼저 폐점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던 건, 사실 완이였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어요.

창고에서 키토김밥을 나눠 먹던 완이는 자꾸만 두렵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완이는 오히려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도 저런 얼굴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맨 뒷좌석에 앉아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가방에서 완이가 준 쿠키를 꺼냈다. 달콤하면서도 매운 계피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고개를 돌리자 창밖으로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눈이 오는 도로를 바라보다 쿠키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안나 로가 디자인한 의자를 구매하고 싶은데요.

사장은 김일론의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전시룸 쪽으로 안내했다. 거울을 닦고 있던 선우는 김일론과 사장이 사라진 다음 내 쪽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저걸 누가 사려나 했는데, 김일론이 사네요. 김일론은 우리 매장의 VIP 중 한명으로, 지금까지 약 이천만원가량을 구매한 고객이었다. 유명 자동차제조사에서 근무한다는 그는 비싼 가구를 턱턱 구매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분당의 일론 머스크네요, 하면서 웃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본명은 ‘김지호’였으나 언제부턴가 ‘김일론’으로 불리고 있었다. 김일론은 일주일에 한번씩은 매장에 들르며 사장과 담소를 나누거나 개인 오더를 넣고는 했다. 나는 재빨리 사장을 쫓아 전시룸 쪽으로 향했다. 돈과 관련된 일이면 누구보다도 재빠른 사장은 벌써부터 안나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고 있었다. 사장의 말을 경청하던 김일론이 안나의 등받이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때 나를 발견한 사장이 뭐냐는 얼굴로 눈짓했다. 그럼에도 내가 망부석처럼 그곳에 서 있자 보다 못한 사장이 말했다.

수린씨. 이거 의자 포장 좀 부탁해요.

사장이 한번 더 힘을 주어 말했다. 뭐 해요? 얼른. 나는 잠시 주저하다 안나의 양쪽 팔걸이를 들어 올렸다. 안나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선우는 내가 안나를 데리고 나오자마자 마른 거즈로 안나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익숙한 손길이었다. 선우가 창고에서 완충재를 가지고 오며 말했다.

이건 제가 할게요. 요새 다리 저리다면서요.

나는 선우의 선의에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자리에 서 있었다. 안나의 팔에 완충재가 둘러질 때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토해내듯 말했다.

잠깐만요.

열심히 테이핑을 하던 선우가 뭐냐는 듯 내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만 살살해줘요.

아, 뜯기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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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 더 느슨하게 완충재를 감았다. 나는 이 과정이 장례식의 절차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구석구석 몸을 깨끗이 닦고, 수의를 입히고,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그리고 으레 장례식에는, 준비된 마음이란 없었다.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이별 역시 우연이니까. 그러니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말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지저분한 수레 위에 놓여 있는 안나를 보며 나는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곧 김일론이 일시불로 육백팔십만원을 결제한 뒤 수레와 함께 매장을 빠져나갔다. 안나는 불안정한 수레에 몸을 맡긴 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어쩌면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나는 그렇게 안나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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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은 안나를 보낸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나는 병원에 앉아 초조하게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어디가 아프냐 묻는 사장의 메시지에 뭐라 답할까 고민하던 중 병원 모니터 위로 ‘김수린’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진료실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간호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안내판을 가리켰고, 나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집어넣은 뒤 간호사를 쫓아 복도로 들어섰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건조한 목소리로 의사가 나를 맞았다.

네, 김수린님, 오늘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나는 뒤에 서 있는 간호사를 힐끔 본 뒤 말했다. 저기, 저희 둘만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의사는 피곤하다는 듯 옅은 한숨을 뱉었다. 괜찮아요.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다시금 간호사를 바라봤고, 간호사 역시 나를 달래려는 듯 천천히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발이 나무로 변했는데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의사가 몸을 기울였다.

한번 볼까요.

나는 운동화를 벗은 뒤 발목을 덮고 있는 바지를 걷었다. 의사는 잠깐 내 발목을 빤히 보더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겼다.

선생님, 왜 이렇게 차분하세요?

섣불리 약을 처방하기보다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기, 선생님. 다시 좀 보세요. 여기 돋아 있는 나무껍질, 안 보이세요?

간절한 눈초리로 간호사를 바라봤지만 간호사 역시 평온한 얼굴이었다. 원래 이런 증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나요? 따로 병명이 있는 건가요? 네? 쏟아지는 질문에 의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하지 않다니요?

지금으로서는 김수린님의 발이 나무가 되었다는 것. 그뿐입니다.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 다시 간호사를 쫓아 복도로 들어섰고, 진료비를 결제한 뒤 병원을 빠져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로 내려가니 방금 들른 병원의 홍보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일부러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온 건데,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괜히 원통한 마음이 들어 광고판을 발로 한번 걷어차려다, 다리가 똑 꺾이는 상상을 하고는 그만두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직 적응되지 않은 나무 발로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고, 역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철에 올라타니 자리는 만석이었다. 나는 열차가 움직일 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해 자꾸만 휘청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한 노인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듯 일어섰다. 됐다고 계속해서 손을 내저었지만, 노인은 유유히 사라진 뒤였다. 나는 끝 좌석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들의 발을 바라봤다. 레인부츠, 어그, 운동화, 털 슬리퍼. 발목이 드러난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신발을 바라보며 그들의 발 모양을 상상했다. 이 중에도 발이 나무로 변한 사람이 있을까? 내가 그런 상상을 하든 말든 열차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다 문득 사장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낸 다음 메신저 방에 들어가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제 발이 나무로 변했 ┃

나무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

혹시 사장님도 나무가 되어보신 적 ┃

사장님혹시카프카의변신이라고아세요제가벌레는아닌데 ┃

 

몸살인가봐요. 죄송합니다. 1

 

사장은 곧바로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장을 보내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어째서인지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악화,라기보다는 나무화,되어갔다.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을 들어 병원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곧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때 그 간호사인 것 같았다.

저 그때 발이 나무가 됐던 사람인데요. 다리도 나무가 됐거든요. 어떡하죠.

일단 선생님이 진료를 보셔야 하니까, 병원으로 오시겠어요?

걸을 수가 없는데요.

그래도 오셔야 해요.

걸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죠.

그럼 오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셔야 해요.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다 전화가 끊겼다. 욕을 하려고 했는데 간호사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무로 변한 내 다리를 보며 문득 안나를 떠올렸다. 의자처럼 길고 얇게 뻗은 다리가 얼추 안나의 다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썩 괜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수린씨, 혹시 튄 건가요?

사장이었다. 매일매일 사장에게 안부 메시지를 받다보니 마치 내가 그의 애인이라도 된 것만 같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많이 아파요? 밥은 좀 챙겨 먹었어요? 이제 몸은 좀 괜찮아요? 그래서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 병원은 갔어요? 일은 언제 나올 건가요? …… 답장 좀 하지?

선우 역시 내게 괜찮냐며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받지 못했다. 거짓말을 하기도 싫었을뿐더러, 사실대로 말한다 한들 믿어주지도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으니 허리가 찌뿌둥했다. 너무 오래 누워 있던 탓이었다.

한쪽씩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자 탁, 탁,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벽 쪽으로 몸을 이동해 벽을 짚은 채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완이였다. 나는 어쩐지 완이가 줬던 계피향 쿠키가 먹고 싶어졌고, 그래서 완이의 전화만은 받고 싶어졌다. 나는 한쪽 팔을 벽에 의지한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완아.

어? 누나. 왜 제 전화는 받아요?

뭐?

다들 누나 연락 안 된다고 난리던데.

응. 그렇구나. 너 혹시 지금 어디야?

저요? 저 지금 집이요. 내일 출국이라 쉬고 있어요.

그러면 나 좀 잠깐 도와줄 수 있어?

완이는 전화를 끊은 뒤 한시간도 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완이가 도착했을 무렵, 내 몸은 완전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 아니, 나무라기보다는……

누나, 의자가 됐네요.

응. 나 좀 병원으로 데려다줄래?

완이는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자전거를 타고 왔거든요. 같이 타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그냥 택시 불러줘. 돈 줄게. 완이는 곧 택시 앱으로 택시를 예약했고, 나무가 된 내 팔을 조심스레 자신의 목에 둘렀다. 완이는 나와 키가 비슷했지만 나보다 왜소했다. 덕분에 완이가 나를 이고 현관까지 가는 동안 발이 끌려 끼익, 끼익, 긁히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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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이거 너무 듣기 싫은데 어떻게 안 돼요?

어떻게 할 수 있었으면 이러고 있겠니.

안 되겠다.

완이는 나를 벽에 기대게 한 다음, 어디선가 내 양말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다리 밑에 양말을 돌돌 감았다. 그러자 조금 더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완이가 친절하게 운동화까지 신겨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빌라 앞에서 한참이나 택시를 기다렸지만 골목은 조용했다.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탓에 점점 발, 아니 다리가 시려오고 있었다. 완이 역시 지친 기색이었다. 뒤늦게 호출이 취소된 것을 알아챈 완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누나, 우리 그냥 이거 타고 가요. 완이는 자전거를 가리켰다. 얘는 이 추운 날 자전거를 타고 다니네, 싶었지만 내 부름 하나에 열심히 페달을 밟았을 완이를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찡했다. 나를 좌석에 앉힌 완이가 목도리로 내 갈비뼈를 칭칭 감아 묶었다.

출발할게요.

완이는 좌석 앞에 선 채로 페달을 밟으며 나아갔다. 그러다 목도리가 풀리면 나는 맥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런 일이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완아, 제대로 좀 묶어봐. 완아, 나 아프다고. 완아, 너 지금 내가 의자라고 무시하냐. 완아, 너 진짜 뒤진다. 그렇게 육두문자가 오고 갈 때쯤이 되어서야 우리는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리고 나는 굳게 닫힌 병원 문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진료시간 08시~18시. 점심시간 12시~13시. 나는 병원 창 너머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18시 10분이었다. 완이는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완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애였다니. 역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애라 발성부터 남다른 건가.

내가 미안하다.

누나, 미안해요.

응?

완이는 나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야. 완아, 잠깐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완이는 그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완이가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애였다니. 나는 완이의 뒷모습을 보며 케이팝 안무와 달리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서서히 복도 천장에 달린 전등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완전한 의자로 변해갔다. 차라리 바퀴 달린 의자가 됐더라면. 그렇지만 내가 의자가 됐든 바퀴벌레가 됐든 세상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무심히 아침이 밝았고, 하나둘 출근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나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소리쳤다.

간호사님!

간호사가 비밀번호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환청이 들리네. 그 이후로도 사람을 볼 때마다 소리를 질러봤지만, 이것이 의자의 목소리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나는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곳에 가만히 놓여 있어야만 했다. 간혹 엄마와 함께 병원에 온 어린이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좌판이 된 내 배를 짓밟았다. 그럴 때마다 욱, 욱, 하고 신음을 냈는데, 아이들은 그게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몇번 더 내 배 위에서 콩콩 뛰다 사라졌다. 가끔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은 채 내 배 위에 앉기도 했다. 나는 왜인지 그들이 어린아이들보다 가볍게 느껴졌고, 그럴 때면 기분이 썩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 위에 앉은 노인이 일어났을 때쯤이었다. 탁 트인 시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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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이는 매장에서 훔쳐온 건지 우리가 가구를 옮길 때 쓰던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수레 위에 나를 싣고 건물을 빠져나와 한참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근린공원이 나왔다. 완이는 잠시 쉬어야겠다 싶었는지 수레를 세워둔 뒤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팔을 위로 활짝 여는 완이를 보며 너 뭐 하니, 물으니 요새 유튜브로 요가를 배우고 있다며, 이건 비라바드라사나라는 자세라고 했다.

살다보니까, 이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린 너무 굳어 있잖아요.

완이가 이번에는 가로로 팔을 벌리며 앞선 다리의 무릎을 굽혔다. 나는 하필 왜 나를 옆에 두고 비라바라인지 뭔지 이런 짓을 하나 싶었지만, 의자로서 삶의 일부가 완이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도 해보세요.

너 나 놀리니.

죄송합니다.

정 힘들면 내 위로 앉아.

에이, 어떻게 그래요.

괜찮아. 이런 식으로라도 은혜 갚아야지.

그래도.

정말 앉아도 돼.

완이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내 배를 뭉개고 앉았다. 곧장 다리가 수레 위로 짓눌렸다.

야, 근데 너 생각보다 무겁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때의 기분 역시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깔깔 웃었다. 서로 마주 보지도 않은 채 웃던 중 문득 내가 의자로 변하기 전 완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런데 너, 스페인 안 갔어?

완이는 대수롭지 않게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그거 뻥이에요, 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해?

있어 보이잖아요. 스페인은 무슨.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연습생 때 진 빚 갚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그럼 너 지금 뭐 하는데?

그냥 백수죠. 이후로 알바 몇번 구해봤는데 다 잘렸어요. 일 못한다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완이에게 배를 내어준 채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완이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솔직하지 않은 게 서로에게 좋잖아요. 깜빡 속았죠? 저 연기 수업도 짧게 받았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고난이 있어야 나중에 가사 쓸 때 도움도 되고. 난 밑바닥부터 올라왔지, 뭐 이런 거. 알죠, 누나? 완이는 조금 민망한지 계속해서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가만히 완이의 말을 듣다 말했다.

그런 게 뭐 어때서. 이렇게 의자로 변한 사람도 있는데.

저도 차라리 의자나 되고 싶어요.

너 나 그만 놀려.

진심인데. 누나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나는 완이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완이는 추운 듯 부들부들 떨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다시금 수레의 손잡이를 쥐고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덜커덩, 끼익, 덜커덩, 끼익, 하며 소음이 울려 퍼졌다. 완이는 그게 비트처럼 느껴지는지 계속해서 스텝을 밟았다. 래퍼 포지션이었다더니, 춤은 영 아니었다.

나는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안나와의 수많은 날들을 떠올렸다. 그런가. 사실 나는 의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의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의자로서의 삶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의자란 건 어떻게든 쓰임새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완아.

네?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함께 지하철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나와 완이를 번갈아 보다가 다시금 제 할 일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발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말 있을지도 모르지. 의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나처럼 의자가 될 사람들이. 역에 도착하자 완이는 나를 품에 안은 채 2번 출구로 향했다. 우리는 개찰구를 드나들 때마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출구 방향 에스컬레이터는 점검 중이었다. 완이는 나를 품에 안은 채로 휘청휘청 계단을 올랐다. 한참 걸은 탓에 다리 힘이 풀린 듯 보였다.

겨우 출구를 빠져나오자 익숙한 대로변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오랜만에 오네요. 완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 복합문화센터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북적였다. 큼직한 프랜차이즈 까페들을 지나자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임 대 문 의’. 나는 큼직한 글씨로 프린트된 에이포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벌써 문 닫았네요.

……그러게.

정말, 사라졌구나. 완이는 주위를 둘러보다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잠시 후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열렸고, 우리는 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하여간, 비밀번호도 안 바꾸고.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찬 완이가 중얼거렸다. 매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처럼.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물건이 빠진 매장을 빙 둘러봤다. 함께 밥을 시켜 먹던 창고 테이블,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눴던 카운터, 늘 꼬여 있던 노트북 전선들. 그런 건 이제 여기에 없었다. 완이가 나를 든 채로 복도를 지나 전시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안나도, 스탠드 조명도 없었다. 커다란 창과 벽, 그것만이 남겨진 전부였다. 완이는 안나가 놓여 있던 자리에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고마워.

저 먼저 가볼게요. 공원에 버리고 온 수레도 가지러 가야 해서.

그래. 근데 그 수레는 어디서 난 거야?

아. 사장님이 빌려줬어요.

그 인간이 웬일로.

이제 필요 없대요.

완이는 말없이 놓여 있는 나를 지켜보다 정말 괜찮겠느냐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냥 응, 하고 말았다. 완이는 내 대답을 듣고도 한참이나 서 있다가 그대로 전시룸을 빠져나갔고, 발소리는 점차 멀어졌다. 곧 문이 잠기는 기계음이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공기 위로 부유하는 먼지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곧 그것들은 내 몸 위로 하나둘 내려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창밖으로 환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심사평

 

올해 응모작 총 355편 중에서 10편의 단편소설이 본심에 올랐고, 그중 당선작 후보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세편이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SF소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제도와 개인을 고민한 전통적 형식의 소설, 인간이 비인간으로 변모하는 알레고리 소설, 이 세편의 소설이 보여준 각기 다른 색깔은 젊은 예비 작가들의 관심사와 최근 한국문학의 경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고기의 겨울잠」은 매력적인 SF소설이다. 파괴된 해안도시에 남은 노동자와 버려진 휴머노이드 소년이 함께 생활하며 외로움을 나누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마지막 여정에서 방전되어 전원이 꺼지는 휴머노이드와 한계 상황에 맞닥뜨린 휴먼의 삶의 대비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비극과 두 존재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메커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제목에 등장하는 겨울잠과 결말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상징이 적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 마이 슌!」은 고등학교 친구 슌의 결혼 소식을 엄마에게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엄마와 함께 친구의 결혼식 플라워샤워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범주화되기에 충분한 서사를 가진 두 인물을 화자의 입장에서 대상화하기보다는 서로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서로의 시선을 놓아두는 거리감이 인상적인 소설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뜨개질의 코를 연결하듯 막힘없이 매끈하게 엮어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것이 이 소설을 안전한 영역에 머물게 했다는 점에서 패기와 참신성이 아쉽게 느껴졌다.

「안나」는 빈티지가구 편집숍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안나’라는 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안나를 마주하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화자의 목소리는 독창적이면서 설득력이 있어서, 심사위원들 또한 안나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나)이 비인간(안나)이 되는 과정을 무리 없이 그려낸 작가의 역량에 신뢰가 갔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쓸모있는 의자’가 되고 싶은 청년세대의 절박한 마음 또한 처연하게 다가왔다. 다만, 소설 중간에 삽입된 여러장의 사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과 이 또한 작가의 의도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사진의 유무와 관계없이 「안나」의 작품성이 당선작으로 내놓기에 손색이 없다는 데 동의하며 새로운 작가의 출발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기로 했다.

권지예 김유담 최은미

 

 

 

당선소감

 

나는 모른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을 쓰면서부터 모른다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러니까 어째서, 소설이었을까. 모르겠다. 왜 자꾸만 이런 말을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모른다. 나는 나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의 마음 같은 것은, 어쩌면 영영 알 수 없겠지. 미래.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도무지 모르겠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당선소감인데, 이렇게 모른다는 말만 반복해도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이런 문장을 쓰고자 한다는 건.

 

모르는 것은 알고 싶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알고 싶고, 마음은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고 싶다.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궁금하고, 어제 읽다 덮은 책의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다. 사랑은 정의 내릴 수 없어 맨몸으로 뛰어든다. 미래라는 단어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미래에 기대어 쓴다.

 

쓴다는 것. 문장은 언제나 나를 앞지른다. 앞지르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문장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글쓰기는 내게 알고자 하는 과정이다. 앞으로도 그 과정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싶다. 마주 보고 싶다.

 

먼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가르침을 주셨던 교수님들과 소설 앞에 머뭇거릴 때 용기를 주신 한분의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진 친구들에게. 곁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애정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도록 무릎을 내어주었던 나의 할머니. 잘 살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겠다. 알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히 쓰겠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문장은 우연이 아니다.

김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