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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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金正煥

1954년 서울 출생. 198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텅 빈 극장』 『해가 뜨다』 『유년의 시놉시스』 『거푸집 연주』 등이 있음. maydapoe@hanmail.net

 

 

 

젖무덤 전망 햇살 체

 

 

이야기가 죽음이라는 이야기로 내가 죽어간다.

병원에서. 이제는 공습이 공습을 낳지 않는다.

손톱으로 새긴 낙서가 손톱으로 새긴 낙서를

낳지 않는다. 낯설지, 누가 살다 죽었다는 말.

그런 일이 설마 있었을라고. …죽음도 생과

방식이 다를 뿐,

놀고먹지 않는다는 거.

죽음의 언어가 죽음의 언어를 낳고 그 언어가

다시 언어를 낳는 생물의

자연은 도처에 있다. 우린 그것을 반복해서 혹은

반복으로 오해만 할 수 있다. 간접

흡연이라는 거지. 마루 통유리창 오른쪽 구석

어깨가 심하게 굽은 우향(右向) 의자에 앉아

담배 태우면 창밖 시야가 더 좁은 오른쪽

구석으로 국한되고 덩달아 중력이 의자 밑

엉덩이로 국한된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파트 건물이 뭉텅 잘려 직사각형 날씬하고,

곤두선 그것을 그 아래 2차선 교통로가 설설설

달랜다. 자신이 직선인 것도 잊고.

그런 중간 허공에 주변을 온통 안갯속으로 만드는

신호등 있다. 낡은 상가 옥상에 버려진 가전제품,

전설보다 더 낡은 마법의 성 모양 유치원 건물.

주차장에 약간의 쓰레기. 아직 철거되지 않은 슬레이트

지붕 동네 약간. 어설프게 허물고 어설프게

새로 올린 건물, 약간이라 족하다.

그 안에 나도 행인으로 오가고 가로수고 계절이고

그보다 더 큰 변화가 내 육안 능력 바깥에 있다.

그래. 축약이 아니지. 변화에 더하여

아래위도 없다. 마음이 마음을 어떻게 비우나,

비루가 비루를 어떻게 벗겠는가? 정신 혼미할수록

누군가가 누군가의 체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가 무엇인가의 체로 되는 것에

근접하기를 바라는 거다. 혹시

죽음처럼 밝은

햇살의 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