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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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李仲基

1957년 경북 영천 출생. 1992년 시집 『식민지 농민』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 『다시 격문을 쓴다』 『오래된 책』 『시월』 『영천아리랑』 『어처구니는 나무로 만든다』 『정녀들이 밤에 경찰 수의를 지었다』 등이 있음.

ljg6511@hanmail.net

 

 

 

2022년 3월 어느날

 

 

자정 부근 추적거리는 진눈깨비 속으로 솟아오르는 울음소리 들었다

 

날 밝아 눈길 걸어 외머리 복상밭으로 나가보았다

 

거기, 농막 옆에서 오래 서성거렸을 어지러운 발자국 위에 벗어놓은 관(冠) 하나

 

노루는 왜 인간의 마을에 와서 외짝 뿔 내려놓고 갔을까

 

내놓을 자리 하나 없는 농사꾼이 오래 그 생각 했다

 

 

 

그날

 

 

그 시간 맞춰 상 차리고 소주 한병 얹었다

 

먼저 한잔 벌컥 비워낸 뒤

그러나…… 그리고……

 

아슬아슬한 판결문 접속부사에 흠칫, 흠칫하다가

거대한 신화 무너뜨리는 우렛소리 들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 문장, 벽에 걸어놓고 눈 껌뻑껌뻑하다가

소주잔 팍 뒤집는데 전화가 왔다

 

농사꾼 주제에 오늘은 마 조퇴할란다

세상 참 웃긴다 한잔, 할래?

 

나야 일찌감치 조퇴해서 독상 차지하고 앉았던,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