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총 913명이 응모한 2019년 창비신인시인상의 투고작들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 중에 특별히 남겨둘 말들이 있다. 우선 ‘잘 쓴 시’가 무척 많았지만 빛나는 문장에 감탄하면서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작 탄탄한 바탕이나 알맹이가 없어 선뜻 추천하기가 힘들었다는 의견이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처음 읽었을 때와 여러번 곱씹어 읽었을 때 차이가 분명했다. 또한 좋아하는 시에서 영향을 받은 화법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일에 대한 지적은 많은 습작생들이 경청할 만하다. 시적인 것으로 승인된 언어를 돌파해 시의 언어를 확장시키는 일은 때론 기성보다 신인들에게 더 요구하는 인상도 없지 않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길게 쓰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을 장식적인 언어의 과잉으로 장황하게 산문화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도 지적되었다. 말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다른 말을 불러와 작품이 길어지는 것과, 길어지는 모양새로 과잉적 흐름을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를 일일 게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4인의 심사위원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 애썼는데, 본심에 올린 이들은 다음과 같다. 이기리(「비밀과 유리병」 외 4편), 김세희(「같은 것을 보았다」 외 6편), 한재범(「저수지의 목록」 외 4편), 하영수(「너무 헛기침이 많은 노배우의 일생」 외 9편), 안수연(「비포어 안티」 외 5편).

이기리의 언어는 과장이 없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중에서도 「비밀과 유리병」에 많은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응모작의 편차가 있는데다 감상성이 돌출되는 순간 시가 너무 가벼워진다는 평이 많았다. 하영수의 경우 시적 에너지가 가장 충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문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시적 기운을 증폭시키는 방식은 장점인 동시에 시단의 유행을 흉내 내는 차원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나쁜 도시’에서 태어난 ‘나무 인간’이라는 상징어들은 시적 그물망을 촘촘하고 선명하게 만들지 못한 채 표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주 발견된 비문도 아쉬웠다. 안수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작품이 담아낸 정념의 현실성을 높이 사주는 쪽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담긴 언어의 표현이 과장됨을 문제 삼는 의견도 있었다. 자기 작품의 정서적 흐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혹은 너무 쉽게 반전되지 않는지를 점검해보면 좋겠다.

수상을 두고 마지막까지 경쟁한 응모자는 한재범과 김세희였다. 김세희의 작품은 묘했다. 힘주지 않고 쓴 문장들이 힘을 지녔고, 세계를 도려내듯 예각화하는 시선도 신선했다. 하지만 응모작들이 소품처럼 보인다는 의견들이 우세했다. 작품의 물리적 길이가 짧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언어에 담긴 세계의 용량이 너무 소소해 보여 선뜻 당선작으로 밀기 어려웠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한재범을 수상자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의 작품은 시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이미지들을 품고 있으면서 또한 완결되어 있었다. 작품이 완결되었다는 말은 빛나는 몇몇 구절에 시가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재범은 시의 전체를 내다보고, 세부적인 것을 장악하여 전개해나갈 줄 알았다. 물론 그의 시에도 기성 시인의 화법과 상상력이 엿보이는 부분이 있으며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고유한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신뢰할 만한 시적 에너지 때문이다. 우연히 촉발된 감정이나 세계의 뒤틀린 모습에 몰입하여 그것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차분히, 때론 폭발적으로 밀어붙이는 힘. 그 힘은 우리가 ‘다음에 오는 시’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한재범 시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그의 손끝에서 좋은 시들이 많이 태어나길 기원한다.

김현 박소란 송종원 이설야

 

 

 

수상소감

 

 

185_500한재범

2000년생. 안양예술고 졸업.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면서부터 시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내가 오해한 내가 어느 구석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겁고 힘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는 내 이야기도, 나만의 이야기도 아니란 걸 그들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실은 이 글을 쓰면서 많이 고민해봤다.

국을 끓이는 사람처럼

많은 것을 건져내고 나니

그들만이 남았다.

 

그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있어서였으니까. 언제나 나를 이해해준 가족들. 엄마, 아빠, 형, 가장 고맙고 사랑한다. 동휘, 우혁, 승현, 세민, 광주에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였어. 종수야, 아프지 말고 잘 다녀와. 희수야, 언제나 너를 응원해. 너를 생각할 때마다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이곳에서 뒤를 돌아볼 때마다 너희가 보였어. 말 못했지만 늘 고마웠다.

 

동준, 종환, 너희들이 있어서 나는 쓸 수 있었다.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쓰자. 성현, 정호, 우주, 우린 모두 잘되었으면 좋겠다. 예지야, 언제나 내 시를 제일 먼저 읽어줘서 고마워.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야. 언제나 다정한 마음을 보여주는 성훈님, 항상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김학중 선생님, 제가 쓰고 싶은 시에 천천히 다가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미옥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전 계속 쓰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윤후 시인님, 캡틴의 수업을 들었던 열여덟 때의 기억이 계속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하고 싶습니다.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제가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준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당신들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누구에게도 아프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나는 언제나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