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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서중석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 역사비평사 2021

역사전쟁에서 벗어난 역사 ‘논쟁’을 제안하다

 

 

김도민 金道珉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knehiet@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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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는 역사‘전쟁’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작년 ‘미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부터 박근혜정권 시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그리고 ‘건국절 논쟁’ 등이 그 예다.

서중석은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에서 이러한 “역사전쟁은 역사 논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료와 사실에 기반한 학술적 논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자료에 의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사실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극우반공체제의 이데올로기나 냉전논리”에 입각한 “해설이 변경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극우반공세력”뿐 아니라 “진보세력 상당수”도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초에 ‘학습’한 수준에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은 채 “흑백논리로 ‘적’과 ‘우리 편’을 가르는 편싸움 논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는다(7~8면).

저자는 “적어도 해방 70년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해방 전후사, 이승만 집권기, 4월혁명 시기, 박정희 집권기는 이제 역사가에게 맡겨”야 하며, 뉴라이트에게도 “더 이상 수구정치세력이나 언론을 부추기지 말고 학문적으로 대응”(37면)하기를 요청한다. 이처럼 저자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현대사를 이용하는 역사‘전쟁’이 아니라 자료와 사실에 입각한 학문적 역사 ‘논쟁’을 제안한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는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큰 변화나 사건이 일어”(8면)난다고 보며 이 책에서도 그 전환기에 발생한 민주화운동이나 사건을 주로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첫 전환기는 1945~50년(해방-정부수립-전쟁)이고, 둘째는 1960년 4월혁명, 셋째는 1972~80년(유신-부마항쟁-12·12-광주항쟁), 넷째는 1987년 6월항쟁이다.

저자는 1990년 한국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1세대’ 연구자이다. 해방기를 다루며 한국현대사 연구자의 필독서가 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역사비평사 1997)와 대중교양서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05, 개정증보판 2020) 등을 집필했다. 많은 학술서 및 대중서를 꾸준히 출간해온 저자는 최근 10년 사이 발표한 글들을 묶은 이번 책이 자신의 마지막 단행본이 될 듯하다며, 기존 연구성과에 기반해 전환기 관련 역사적 사실과 여러 논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간 저자의 저서와 논문들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배워온 평자에게 특히 흥미롭게 읽힌 부분은 1970~80년대를 다룬 내용이었다. 서중석은 대학시절인 1969년 3선개헌 반대시위에 참여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1980년 5·18 시기 고문을 받은 민주화운동가이기도 하다. 또 1979년부터 10년간 동아일보사 『신동아』 기자로서 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당대의 구체적인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되며, 나아가 여러 주체들의 행동을 본인의 관점에서 평가함으로써 역사 ‘논쟁’의 장으로 독자를 더욱 잘 이끌어준다.

“유신체제 문제가 계기가 되었”(9면)었다는 출간의도에 걸맞게 저자는 이 시기에 대해서는 내용을 거의 새로 쓸 정도로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가령 1970년대부터 유신에 저항하던 박형규 목사가 히틀러의 독재를 비판하던 독일의 목회자 본회퍼(D. Bonhoeffer)의 영향을 받았음을 소개할 뿐 아니라, 1978년 12·12선거의 이변에 대해서는 “유신 붕괴의 문을 연”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짚기도 한다(342~46면). 그리고 유신 말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서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을 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한 김재규”를 “나라를 구한 의인”(434면)으로 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저자가 당시 박형규 목사의 비판을 소개하며 박정희와 히틀러 집권을 비교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롭다. 다만 지역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다른 두 ‘독재’를 비교하기보다 냉전기 제3세계에서 자주 발생하던 독재체제를 비교 분석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현대사 연구는 지구적, 지역적 그리고 한반도 차원을 아우르려는 냉전사 연구로 확장되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해서 저자는 ‘현실성’과 ‘대중성’에 입각하여 당시의 급진적 사상 및 운동세력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개헌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고 대중의 변혁 열망이 높았던 1986년 인천의 5·3투쟁에 대해서는 “반미 자주화 투쟁은 운동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파급력이 컸”지만 “수위는 조절될 필요가 있었”(531면)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하는 시기였음에도 “일부 운동권과 지식인들은” “사회민주주의도 기회주의 노선으로 비난하는 관념적 급진주의에 머무른 채”(587면)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영향을 주지 못하고 고립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저자의 1970~80년대 급진적 사상 및 운동세력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며 대중을 만난 경험과 한국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시선이 교차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성과 대중성을 강조해온 저자의 입장은, 1990년 「해방후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건설운동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이후로 줄곧 견지해온 것이었다. 특히 이 책 1, 2부에서 여운형, 김규식의 좌우합작 및 중도노선 그리고 1948년 남북협상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 분단과 정전이라는 현실에 미중 간 격화되는 ‘신냉전’의 이분법적 적대가 겹쳐지는 상황 속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갖는 양면성을 성찰하면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확고한 중도 노선을 견지했”(13면)던 ‘중도파’들의 역사적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