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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아서 클라인먼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사이 2022

질병과 질환의 경계선 위에 핀 이야기들

 

 

김관욱 金官旭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의료인류학자, 가정의학전문의 anthrodockim@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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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가족의 경계선을 넘어 퍼져나가는 소란스러움이 이처럼 반가울 수 없다.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병원의 문턱을 넘어 대중들 사이에 퍼지는 일도 무척 환영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 하바드 의과대학 교수(정신과)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Arthure Kleinman)의 1987년 책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The Illness Narratives, 개정판 2020, 이애리 옮김)가 마침내 한국에 소개되었다. 클라인먼은 특정 질병이 한 사회에서 ‘문화적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탐구하며, 그것이 환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함을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클라인먼은 일상에서 큰 구분 없이 사용하는 ‘질환’(disease)과 ‘질병’(illness)이 환자에게—특히 만성통증·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에게—얼마나 큰 차이인지를 본격적으로 강조한 거의 최초의 의사-의료인류학자다. 이 책의 5장 제목 ‘환자의 질병, 의사의 질환’에서 알 수 있듯 ‘질병’은 환자와 가족이, 나아가 사회가 환자의 증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주목한 것이고, ‘질환’은 의사가 의학 이론을 토대로 질병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의식적 구분은 환자의 경험이 자신의 질병을 “사회 집단 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고 분류하는 과정까지 포함”(383면)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의 유명한 개념인 ‘설명 모델’(explanatory models)이 탄생한다. 즉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사는 특정한 질병 사례에 대해 그들만의 설명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병의 원인을 이해하고 설명할 길 없는 환자로서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이 생겼을까?’ ‘이것은 앞으로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등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주변인들을 이해시킬 만한 설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필요성은 사회적 차원에서도—공감이든 비판이든—마찬가지다. 클라인먼의 표현처럼 “설명 모델은 절박한 삶의 환경에 대한 반응”(145면)이라 할 수 있다. ‘설명 모델’이 더욱 의미있는 까닭은 환자의 설명이 앞뒤가 완벽히 들어맞지 않을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거나 모순적일 수 있고 급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데 있다. 환자에겐 이론적 명료함보다 절박한 삶 속에서의 생존이 우선일 테니 말이다. 이러한 통찰은 그가 오랜 기간 중국과 미국의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질환명을 가진 환자들을 경험하며 얻은 지혜라 할 것이다.

이 책이 반가운 또다른 이유는 클라인먼이 ‘통증’에 대해 집요하리만치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통증은 모든 질병 경험의 공통분모이며, 환자에게는 병의 존재가 곧 통증이다. 즉 병은 아픔의 강도로만 실재한다. 그러나 통증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타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명쾌한 해석과 완전한 치료를 꿈꾸는 의사들에게 가장 고약한 질환이라 할 ‘만성통증’은 오랫동안 설명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가령 1장의 제목인 ‘통증에서 비롯된 나약함, 나약함에서 비롯된 통증’에서 드러나듯 미국에서 만성통증은 그것이 “진짜인지 의문을 품”는 시선과 마주해야만 했다(36면). 클라이먼은 15년간 2천명이 넘는 만성통증증후군 환자들의 사례를 추적하며 통증이 사람을 위축시키고 고립시켜온 맥락을 들여다본다.

다양한 질병의 당사자들을 그리는 데 있어 그의 글쓰기 방식은 독특한 차별점을 지닌다. 그는 환자 자신의 절박한 설명 모델뿐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와 자녀의 설명 모델, 그리고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설명 모델까지 섬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사-의료인류학자인 자신의 설명 모델을, 심지어 겸손하게 제시한다. 통증 자체는 직접 측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미친 영향력은 측정 가능하다”(63면)는 클라인먼의 지적은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거미줄처럼 얽힌 여러 설명 모델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한국어판의 출간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며, 그 당시의 가치가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사이 사회는 많이 변했으며, 클라인먼이 제시한 설명 모델 또한 30여년의 세월 동안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환자의 서사권을 그토록 강조한 클라인먼 역시 기본적으로는 질병에 대한 의학적 기준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의사의 설명 모델이 환자의 그것과 ‘다르다’는 데 그칠 뿐 근본적으로 ‘잘못된 기준’일 수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장애운동 영역에서는 질병에 대한 서사권을 넘어 ‘잘 아플 권리’, 소위 ‘질병권’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다리아 외 『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 기획·조한진희 엮음, 푸른숲 2021 참조).

그런 의미에서 근래 발간된 클라인먼의 또다른 저서 『케어』(The Soul of Care, 2019, 노지양 옮김, 시공사 2020)를 이 책과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클라인먼이 의사가 아닌 간병인의 입장에서 10년간 아내를 돌봐온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아내가 병들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그동안 환자들이 겪어야만 했던 차가운 의학의 벽에 대해 증언하는 또다른 클라인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