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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지역·농업

 

희망하고 싸워 만들 지역과 농업

 

 

정은정 鄭銀貞

농촌사회학자. 저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대한민국 치킨展』 등이 있음.

avis96@empas.com

 

 

남해 하면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의 이성복 시 「남해 금산」이 떠오를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남해멸치쌈밥 같은 것만 떠오른다. 경남 남해군은 군청 소재지인 남해읍을 중심으로 1읍 9면으로 구분된다. 지난봄 남해군 남해읍을 오래도록 걸었다. 군청 소재지나 읍내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이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으로 짧은 시간 안에 고장의 사정을 가늠하기에 알맞다. 1980년 남해군 인구가 10만명이 넘을 때도 있었고, 읍면에 골고루 분포하며 농어업 종사자가 70%가 넘기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남해군의 인구는 4만명 남짓. 2000년만 해도 남해군 인구가 6만명 가까이 되었으나 23년 만에 2만명이 빠져나간 ‘과소화지역’이다.

현재 남해군의 농림어업 인구는 군 전체 인구의 26%가 조금 넘는 1만 1676명으로,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인데다 60대 농민보다 70~80대 농민이 더 많은 보통의 농촌이기도 하다. 여기에 3천명 정도의 어가 인구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이 작은 고장에도 등록 외국인이 1천명이 넘는데 대체로 선원이나 양식장에 고용된 어업 인력이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한편 4만명 인구 중 비농업지역인 남해읍의 거주자가 1만 2천명이 넘는다는 것은 지역 내에 농어업 기능이 그만큼 축소되어서다. 청소년들은 친구라도 사귀려면 읍내 중고등학교까진 나와야 한다. 식당과 미용실 같은 상업시설도 군청 소재로만 몰리는 지역 내 불균형 현상이 오히려 농어촌 현장에서는 지역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농촌을 살리자는 추상적인 말을 넘어 면 단위의 자족기능 유지에 힘쓰자는 주장들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남해군은 관광지이기도 해서 주말에는 사람이 ‘벅적벅적’대지만, 정작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끌어갈 이들이 모자라다. 남해군 읍내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거리 정비가 되어 있고 예쁜 간판의 청년상점도 몇곳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평일 낮에도 개점하지 못했거나 ‘임대 문의’라 붙여놓은 가게들을 보노라니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문제는 묘연해 보였다. 지역 곳곳에 재생 프로젝트가 굴러가지만 ‘우리가 사람이 없지 돈이 없냐!’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잘 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인들은 중앙에서 돈을 끌어오겠다 외치지만 막상 끌어온 돈을 사람 양성에 쓰지 못하고 영수증 증빙이 가능한 일만 찾곤 하니 사람이 남지 않는다.

4월 1일 토요일, 때마침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 개통 50주년 기념 축제일이었다. 1973년 남해대교가 노량해협에 세워지면서 남해군은 육지와 연결되었고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 드나들었으나, 빠져나가는 이들이 더 많았다. 시간 차도 없이 뒤죽박죽 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을 한마디씩 보태면서도 기왕지사 핀 꽃은 보기에 좋았다. 꽃이 핀다는 건 농촌에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해군은 기후가 따뜻해 사철 농사가 돌아가는 지역으로, 월동작물인 남해시금치(남해초)와 마늘을 비롯해 고사리와 땅두릅, 유자, 한우, 해산물 등이 특산물이다. 사철 밭농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는 뜻으로 농한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계절에 남해 금산의 ‘한 여자’, 구점숙 농민을 만났다. 그는 여성농민의 전국 조직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의 사무총장을 거쳐 ‘남해군여성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다.

“차나 한잔하시죠.” 밥 먹고 나서 차를 마시자도 아니고 차‘나’ 마시자는 이 말은 온기 없는 도시의 말이다. 농촌에서는 밥이 중요하다. 농민을 만날 때는 차려 먹든 사 먹든 먼 길 와서 밥 한끼 나누는 일이 중하다. 구점숙 농민이 마침 쑥도 도다리도 제철이니 도다리쑥국을 먹어보자며 읍내의 식당에 예약까지 걸어놓았다. 도다리쑥국은 통영 지역의 향토음식이었으나 매체에 알려지면서 인기가 높아져 인근 남해에서도 먹게 된 음식이라 한다. “남해는 싱싱한 해산물과 사철 채소가 나와 큰 솜씨 부리지 않아도 되는 먹거리문화”라는 설명도 덧대주었다.

 

나는 밥도 전략적으로 먹어요. 여농(여성농민회)의 주요 활동가들이나 연락을 나눠야 할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나서 먹거든요.

 

사적 생활이 별로 없다는 구점숙 농민에게 이날의 식사는 공적이며 전략적인 행위에 가깝다. 국토의 끄트머리 남해에서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도 개인 구점숙의 이야기를 넘어 공적 활동의 일환이라 만나겠노라 했다. 『창작과비평』의 200호 특집에 지역·농업 부문 인터뷰로 싣는다고 하니 창비라는 걸출한 매체에서 농촌과 농업을 주제로 선정한 것이 “고마운 일”이며 “창비답다”고 평가했다. 이 사회에 먹거리와 농업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수 있도록 창비가 견인해달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구점숙 농민은 인터뷰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로 갔다가도 ‘우리의 이야기’, 즉 ‘여성농민’의 관점으로 재빨리 돌아와 말의 낭비를 줄여가는 ‘전략적 발화자’에 가까웠다.

본래 경남 진주 출신인 구점숙 농민은 한때는 글을 쓰고 싶은 문청이었으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학생운동을 하다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지금은 남해군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여성농민운동가로 살아간다.

 

제가 도시빈민계급 출신이라 그런지 계급적 감수성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아요. 약자와의 연대라는 문제도 그렇고요. 마을 사람들이 저를 ‘빨갱이’라고 해요. 특히 2007년 남북교류행사 때 농민 대표로 평양에 다녀오고 나서 제가 거기도 사람이 산다, 우리랑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이다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너 원래 빨갱이 같았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그는 북한에 다녀온 귀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누었다. 북한에 개인 자격으로 다녀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안 변해요. 하지만 변할 때까지 말하면 변해요”라는 확신을 가진 구점숙 농민이 농촌사회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에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발언하고 토론을 요구해서 그리 불리기도 했을 것이다.

 

농사는 주류농업과 비주류농업을 같이 해요. 주류농업은 남편과 같이 하는 마늘, 고추 같은 것들요. 경축순환 차원에서 거름 내려고 소도 몇마리 기르고요. 남해라는 지역이 육지만큼의 대농이 없어요. 농가당 평균 경작 면적이 1.5ha(4500여평)인데, 남해는 0.65ha(2000여평)가 평균이거든요. 그 대신에 기온이 따뜻하고 햇볕이 좋아 논밭에 다 이모작을 해요. 겨울에는 시금치, 마늘 하고, 여름에는 고추, 호박 같은 거 하면서 생활하죠.

 

생계의 주요수단이 되는 작물이 주작물, 자가소비나 소득보조 차원으로 기르는 작물이 부작물이다. 구점숙 농민은 독특하게 주류농업과 비주류농업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비주류’로 취급받는 것들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려는 여성운동의 주류화 전략 차원이다. 전여농의 ‘언니네텃밭’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1970년대 농촌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농민은 농촌에 사는 여성 주민이자 가부장(아버지/남편)에 소속된 ‘농촌 부녀’로 불리는 계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사회 전영역에 걸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며 노동자농민에 대한 권리투쟁의 장이 열렸다. 이에 여성농민들도 자신이 농업 생산의 보조자가 아니라 생산을 책임지는 ‘농민’임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했다. 농촌의 가부장제에 기생하는 성차별도 깨부수고 도농 간 격차도 극복해야 하는 농촌‘여성’이기도 했다. 이렇듯 여성이자 농민인 ‘여성농민’의 위치는 싸워서 얻어낸 언명이다. 여기에 전여농은 신자유주의 농정이 한국 농민만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가족농들을 압박하며 전지구적 생태위기까지 가속화시킨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반(反)세계화를 위한 국제 연대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전여농은 국제 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 농민의 길)의 핵심 일원이다.

 

전여농의 언니네텃밭은 여성농민의 가치가 포함된 농업 생산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시장이에요. 처음에 주요 생산모델은 ‘제철 꾸러미’라고, 텃밭에서 나는 제철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거였어요. 현장과 결합된 소비자, ‘얼굴 있는 소비자’가 또 하나의 주체가 되는 사업이었죠. 그리고 이걸 시작했을 때만 해도 노령연금이 도입되기 전이었거든요. 한달에 30만원, 40만원이라도 통장에 꽂힌다는 게 여성농민들의 엄청난 보람이고 희망이었고, 텃밭에서 농사의 자기결정권과 주도권을 갖게 된 게 중요한 성과였죠.

 

언니네텃밭은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환경에 과부하를 최대한 덜 주는 방식으로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초국적기업들에서 종자를 사야 하는 체제에 저항해 ‘종자 주권’을 지키려 토종농사를 적극적으로 늘린다.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들과 직거래한다. 이전에 반찬거리나 구하고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비주류농업인 텃밭농사를 소득과 연결시켜 주류농업으로 매김하고, 여성농민들의 경제적 자립은 물론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의 기틀을 잡아온 이 사업은 비아캄페시나에서 가장 주목한 일이기도 하다.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대안도 함께 만들어내자는 것이 여성농민운동의 주요 전략. 구점숙 농민은 마을에서 영농공동체인 ‘새지매공동체’를 함께 꾸려—‘새지매’는 남해 말로 작은엄마, 숙모를 가리키며 여성공동체의 끈끈한 관계를 상징한다—언니네텃밭에 바지락과 피꼬막, 마늘과 마늘종 장아찌 등을 공급하고 있다.

남해군은 섬지역으로 농지가 좁아 이모작을 하거나 갯벌에서 굴이나 바지락을 캐서 소득을 보전하기도 한다. “틈이 없는 생활력”을 가졌다는 남해의 여성농민들은 그만큼 “빡시게” 산다. 농사지으며 여성농민회 활동까지 하면서 언제 쉬느냐 물었더니 “짬짬이”라 답했다. 농촌에서는 정해진 날짜대로 쉬고 일하는 일이 요원하여 가을비는 ‘떡 비’라서 떡 해 먹으며 쉬고, 여름비는 ‘잠 비’라서 잠을 벌충한다는 말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바닷가 쪽에는 여성농민회가 거의 없어요. 동해안도 남해안 지역에도 마찬가지고, 전남 해남·진도·완도 등은 농민운동 역량이 큰 지역임에도 여성농민회가 없습니다. 바닷가 지역에서 반농반어 생활을 꾸려야 하는 여성농민들에게 일의 하중이 많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정말 너무 바쁘게들 살거든요.

 

한국 농업의 주작물은 쌀인데 남해 역시 벼농사를 짓는다. 남해의 계단식 경작지인 ‘다랑이논’은 관광지이자 사진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기계 부리고 물 대는 일이 어려워 타지역 논농사보다 품이 더 든다. 때마침 쌀 가치는 떨어지고 다랑이논 농사를 지을 이들도 늙고 힘들어, 소위 ‘인스타그램 사진발’이 돈 되는 세상이니 다랑이논에 유채꽃을 심었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해풍이 부는 ‘천혜의 자연환경’은 소비자에겐 매혹적이어도 생산자에겐 가혹하다. 땅뙈기는 좁고 비탈진데다 거친 바닷바람 맞아가며 쪼그려 앉아 짓는 논농사, 밭농사는 여성농민들의 근골격계를 ‘틀어’버린다. 구점숙 농민은 수천년 전에도 호미, 21세기에도 호미 하나로 땅에 바짝 붙어 있는 여성농민의 삶을 ‘철기시대’에 빗대 비판해왔다. 이는 단지 호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농협이나 작목반 같은 생산자조직에서 당연하다는 듯 여성농민들을 배제하며 생산주체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마을 행사에서 마이크가 아니라 여전히 주걱을 쥐고 있는 그런 철기시대 말이다. “여성농민들의 신체와 노동방식에 적합한 농기계는 거의 없고, 하다못해 호미에 모터 하나 달 생각도 않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농촌에서 농기계 사용은 주로 남성 생산자의 전담이고 이는 곧 ‘큰일’로 격상되며 임금도 더 높다. 반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영농활동은 ‘허드렛일’로 격하되며 주로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하지만 여성들이 농기계를 쓴다고 해서 이 문제가 풀릴까. 기계 없이 농사짓기는 어렵고, 기계를 들일 때마다 빚은 늘어 농가 부채의 원천이 되는 또다른 현실이 있다. 새 농기계를 들여도 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여기에 구점숙 농민의 주작물인 마늘은 생산비가 많이 드는 작목이다. 종구(씨마늘)값도 비싸고 인력이 많이 든다. 일은 일대로 힘들고 돈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 마늘 생산량의 7%를 감당하는 남해군에서도 마늘 농사가 점점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늘값이 조금만 올랐다 하면 정부는 물가안정을 핑계로 수입산 깐마늘을 대량으로 들여오고, 몇몇 유통업자들은 그걸 ‘국내산’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마늘 농가를 보호할 생각이 정부는 아예 없다.

 

왼쪽부터 구점숙 정은정

왼쪽부터 구점숙 정은정. 여성농민운동가 구점숙은 진보적 농업언론 『한국농정』의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코너에서 연재한 글을 묶어서 『우리는 아직 철기시대에 산다』를 출간했다.

 

마늘 생산비가 300평에 330만원에 육박하니 3천평의 마늘 농사를 지으려면 일단 3000만원이 넘는 자본금이 필요한데다가 노동강도는 세고 농업소득이 높은 작물도 아니니 젊은 농민들이 선호할 리 있나요? 단양도 마늘이 유명하잖아요. 그럼 그 언저리인 진천도 할 수 있다는 거고, 경기도 일대에서도 재배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늘 농가는 남해와 전라도 고흥, 경상도 영천·창녕·의성, 제주 이런 지역에만 남아 있어요. 할 것이 없어서 짓고 있는 거지 지금 농민들이 더 나이가 들면 금세 이탈할 겁니다.

 

기후변화로 작물의 북방한계선이 계속 올라가 내륙에서 귤이 나오고 강원도에서 사과가 나오지만 마늘은 북상하지 않는다. 마늘만 보자면 25년 뒤에 한국 농업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노인들의 손과 허리를 꺾어 먹는 현재의 한국 농업이 과연 힘을 낼 수 있을까. 여기에 기후위기는 현실로 다가와 농민을 괴롭히고 있다. 구점숙 농민은 특히 시설재배가 많지 않은 남해군의 노지농사 전망은 더욱 어둡다며 남해의 특산물인 재래종 남해시금치의 상황을 말했다. 남해시금치는 이 지역 농민들의 ‘겨울 생활비’다.

 

10월 초에 시금치씨를 뿌리는데, 조금 자라다 11월 말부터 성장을 멈춰요. 땅에 바짝 붙어 겨울을 나야 생존하려고 당을 축적해 남해시금치 특유의 단맛이 돈단 말입니다. 그 시금치를 겨우내 캐내면서 생활비를 버는데, 이상기온으로 10월에 25도 넘는 날이 많다보니 밭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어요. 얼지 않아서 단맛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상기후로 병충해가 늘거나 풀이 많이 자라니 거기 대처하느라고 농민들, 특히 쪼그려 앉거나 허리 굽히고 하는 작업이 많은 여성농민의 노동이 더 가중되고 근골격계 건강이 더 나빠져요. 여성농민들 허리가 다 접혀 있잖아요.

 

농업과 농민의 이런 고통에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으로 더 잘 알려져버린 ‘양곡관리법’ 사태만 보더라도 정부가 농민에게 갖는 기본 정서를 알 수 있다. 선거 때 표도 몇장 안 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하면 신기술인 5만명 육성에 쓸 돈이 없어진다며 쌀 농가를 모리배로 만들었다. ‘푸드테크’ ‘애그테크’ 하는 정부의 기술만능주의에 대해 구점숙 농민은 “농민의 눈을 얼게 하는 성장논리일 뿐, 스마트팜 정책은 대출받아서 시설 올리는 일이 되어 농가부채만 더 늘릴 것”이라 단언했다. 구점숙 농민 본인도 처음 농사를 지으며 얻은 대출금이 갚아지지 않는다 말한다. 이는 농민의 영농 실력이나 생산성 때문이 아니다. 주기적인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재배한 작물을 갈아엎는 일이 넘쳐나도 의무수입량 지킨다며 농산물을 수입하는 국제 무역구조가 근본 원인이건만 왜 농민만 몰아세우는지 핏대를 올렸다. ‘모터 달린 호미’ 하나 안 만들면서 고비용·고투입 구조의 스마트팜 따위로 지금 농업의 난맥을 뚫을 수 없다는 대답이 서슬차다. 그렇다면 구점숙 농민이 제안하는 농업·농촌에 대한 전망과 대안은 과연 무엇일지 묻자, 망설임 없이 “지역의 먹거리 순환체계를 구상하고 여기에 예산을 투입해 지역생산과 지역소비를 이끄는 정책을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해군이 주민 수는 적어도 관광지이다보니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벅적벅적댄단 말이에요. 소비지와는 멀지만 소비자는 오는 거잖아요. 가령 독일마을의 경우 맥주는 수입맥주 쓰더라도 샐러드용 양상추 같은 것들은 지역에서 농사지은 걸 쓰게 하고, 지역 생산물을 공공급식에도 내고, 식당에서도 소비할 수 있도록 지역먹거리체제를 구축해야 다양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겁니다.

 

답사 차원에서 둘러본 남해의 농협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는 부실했다. 작목 다양성이 현저히 떨어져 지역민들이 먹을 지역산 채소나 과일도 많이 없다. 소비지에서 먼 남해군은 단일품종 대량생산의 체제로 농산물을 대도시로 실어 보내는 구조기 때문이다. 구점숙 농민은 지역에 4천여명의 학생들과 식사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의 주민들, 몰려오는 관광객들까지 계산하면 지역의 수요 또한 적지 않다고 보았다.

 

지역 식재료를 쓴다며 스티커 한장 붙이는 수준 말고, 지역 식재료를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예산을 배치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남해군 일대에 몇몇 청년들이 들어왔는데, 이런 젊은 귀농인들이 짓는 소규모 농사의 판로가 지역 내에서 만들어져야만 버틸 수 있어요. 농사로 자립을 꾀할 수 있도록 지역먹거리체제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해요.

 

현재 한국의 농가경영주 평균 나이 70세. 이들이 농업 현장을 떠난 25년 뒤를 전망할 수 있을지 지레 실망해 묻자 냉정한 희망이 돌아온다.

 

이번 정권이 갖고 있는 농업 정책의 세세한 내용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거든요. 아니, 정책이랄 게 없어요. 이 정권 오래 못 가잖아요. 꼭 탄핵당하냐 아니냐를 떠나, 정책을 구현할 수 없는 정부라고요. 그건 조만간 더 증명될 거란 말이죠. 더구나 지금은 기후위기 시대잖아요. 시민들이 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참여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구점숙 농민은 단순히 현 체제를 민주냐 비민주냐의 차원으로 볼 수 없고, 기후위기 시대에 결국 지역이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재지역화의 길을 말했다. “농업과 먹거리 유통 과정에서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모두 파멸일 뿐이에요. 기름을 태워 외국에서 먹거리를 들여오는 것, 남해 농산물을 트럭에 실어 전국으로 보내는 것, 이런 체제가 얼마나 가겠어요?” 하고 그는 되물었다. 결국 농촌으로 돌아와 생태적 삶을 갈구하게 될 것이라는 단호한 전망은 기후우울에 빠진 내게 묘한 안도감을 안겼다. 구점숙 농민은 지역의 정치인들과 인사들을 만나면 공공급식의 강화와 지역먹거리체제를 선순환구조로 만들자는 ‘공적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만나서도 설득한다. 당신들이 싼 먹거리만 찾으면 사회의 위기는 반복되며 농민이 직접 생산한 먹거리를 의식적으로 사 먹는 것으로 세계를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며 냉소를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마늘 캐고 굴 캐는 남해 금산의 ‘한 여자’ 구점숙은 돌 속에 묻혀 있지 말고 돌을 깨서 세상으로 나와 ‘희망하자’ 다그쳤다.

 

구점숙 농민은 마당에 모란, 작약, 달리아 등 100여종의 꽃을 기른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꽃을 기르는 심연을 묻자 “주소득작물은 부담이어서”란다. 생계와 직결되는 주작물은 생산자에게 걱정거리다. 농사가 잘되지 않으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까 걱정이고 매번 소득을 기대하는 일도 부담이지만 꽃은 기대도 댓가도 바라지 않으니 말이다. 가드닝을 통해 농사를 지으며 갖는 긴장감을 내려놓는다. 농사도 가드닝도 ‘생명’을 다루는 본원적 힘을 지니고 있어 “우울할 틈은 없다”. 그는 외려 농사는 못 짓고 조직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전여농 상근활동가들을 걱정했다. 작물과의 호흡과 관계맺음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그러한 농사의 힘을 구점숙 농민은 굳게 믿는다.

며칠 뒤 남해에서 단맛이 차올랐다는 봄바지락이 올라왔다. 식당에서 ‘질서 없이’ 생선을 발라 먹는 충북 내륙 출신의 나를 어이없게 보던 구점숙 농민의 웃음이 떠올라 이번엔 ‘질서 있게’ 먹었노라 자랑을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존하는 방법은 농민 열명과 친해져 얻어먹고 사는 것뿐”이라는 감사의 말에 “하모하모!” 짧고 화끈한 답이 돌아왔다. 바지락에서 단맛이 올라오는 이유는 조개를 캐는 새지매들의 갈라진 손톱 끝에서 젖과 꿀이 흐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