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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기후위기

 

청년에게 기후행동은 ‘캠페인’이 아니다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기후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탄소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 목표연도로 삼은 2050년을 염두에 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실감에서 나온 표현이다. 지구 곳곳이 불타거나 침수되고, 다양한 생물이 소멸하며, 이상기후 현상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움직임이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기후문제의 심각성 차원에서, 동시에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누구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 표현은 ‘모두’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누구의 어떤 위기인가’에 대해 더 말해져야 할 여지를 남긴다. 이를테면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청소년과 청년세대에게는 이 표현이 더 잔인하게 다가가리라 짐작된다. 실제로 여러 기후위기 토론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에도 지구는 파괴되고 있다, 후속세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같은 말을 자주 들어왔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이런 말은 어떻게 들릴까. 과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받아들여질까, 절망과 위협으로만 가닿는 건 아닐까. 나아가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고 할 때의 ‘우리’란 이른바 후속세대인 어린이·청소년과 청년 주체들을 동료 시민이자 동지로 여기면서 형성된 주어일까.

기후위기 대응운동의 현재와 구체적인 전망에 대해 청년 활동가에게 묻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사회 기후위기 대응운동이 안고 있는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 그리고 25년 뒤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듣고자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김현지 활동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와 만나는 날(2023.4.2), 서울 인왕산에 불이 났다. 이후 4월 4일까지 사흘간 전국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53건 발생했는데, 이는 산불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래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경우다. 인터뷰 중에도 스마트폰은 여러번 인왕산 산불에 대한 ‘안전안내문자’ 알림을 띄웠다. 재난경보가 실시간으로 잇따르는 가운데, 자연스레 이 인터뷰가 산천이 불탄 뒤 남겨지는 잿더미 앞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김현지 활동가는 “다른 분야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누어질지, 그 이야기가 기후위기 운동과는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지 듣고 싶은 바람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참여하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끈질기게 고민하는 것을 잘 정리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사회에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9월 전국에서 펼쳐진 대중행동이었어요. 그전까지는 환경보호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던 것 같고 핵발전이랄지 좀더 개별적인 이슈로 집회가 열렸다면, 이때부터는 기후위기를 시대적 과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이 비상행동에 참여한 청년들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모여서 청년기후긴급행동을 결성하게 됐고요.

 

2019년 9월 전세계적으로 760만명 이상이 참여한 최대의 기후파업(climate strike)과 연계해, 한국에서도 전국 13개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펼쳐졌다. 이는 시민사회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시작이었고, 이듬해인 2020년 청년 중심의 ‘청년기후긴급행동’이 결성되었다. 김현지 활동가는 2020년 당시 스물한살의 나이로 기후위기 대응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한 개인의 실천을 축적하는 데서 나아가 이 운동을 공동의 것으로 견인하는 작업을 꾸리고 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결성 직후인 2020년 1월 31일, 환경부장관이 참여한 행사장에 공룡으로 분장한 활동가들이 ‘우리처럼 멸종할래?’ 등의 피켓을 들고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때 생긴 단체의 별칭이 ‘김공룡과 친구들’. 단체의 마스코트가 된 ‘김공룡’은 2022년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기후 0번 김공룡 후보’로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기후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자가 드문 상황을 비판하며 ‘6600만년 전에 멸종된 공룡이 후보로 나서는 게 차라리 낫다’고 출마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은 선거기간 동안 ‘더 나은 지구를 정치적으로 상상하자!’ ‘멸공 말고 멸종!’ 등의 구호로 선전활동을 펼쳤다.

 

2020년 환경부의 ‘녹색전환과 환경정의 시민과의 대화’ 행사는 어떻게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첫 액션을 하러 간 것이었어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오히려 저희는 그날을 계기로 단발적인 행동으로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운동’을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직접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더 움직이자는 의견이 모여 단체 체계를 정비하고 비전도 확실히 세우게 되었죠.

 

왼쪽부터 양경언 김현지

왼쪽부터 양경언 김현지. 김현지는 기후위기 대응 강화를 촉구하는 비폭력 직접행동 단체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생태적 전환을 상상하고 실천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시대의 최우선 의제로 만들고자 한다.

 

이후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캠페인 차원만이 아니라,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이를 위한 체제전환을 요구하면서 실질적으로 기후정책에 개입하기 위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하띤 지역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저지하려 한 활동이 대표적이다. 2021년 2월, 이들은 두산중공업 사옥 앞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하고 현수막을 펼치는 시위를 벌임으로써 ‘저탄소 경제’를 내세워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그린워싱’ 기업을 비판하고, 기업이 환경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베트남 주민들과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했다.

 

정부나 기업에 기후 대응방침을 요구할 때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차원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문제의식의 공유가 저항이나 부딪침 없이 마냥 안전하게만 이루어지면 오히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효과를 내기 어려운 거죠. 지금은 기후문제가 자본주의체제로부터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저희 역시 그런 맥락에서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사업에 제동을 걸고자 했어요. 특히 두산중공업이 발전소를 수출하기로 결정한 2020년은 한국이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한 해이기도 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요. 기업은 저마다 자기들도 에너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환경기업이다 하는데 그게 이미지 포장을 위한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점을 비판하려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거예요. 더구나 발전소 수출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고 생태계에도 오랜 기간 누적되는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생태학살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 시위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두명에게 재물손괴와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약식명령을 내렸다. 단체는 그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2022년 1월 결국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게다가 두산중공업 역시 184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이 친환경적인 정책에 동참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법을 이용해 활동가들을 가로막고 있는데, 재판을 통해 그런 상황이 더 많이 알려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재판부 역시 기업의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방향에 치중해 있고, 기후위기를 막아내는 일에는 소극적으로 응한다는 인상이에요. 하지만 판결문에서 단 한줄이라도 우리 행동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표현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의미있는 싸움일 거라고 봐요. 이를 통해 지구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법체계가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알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고요. 한국 법정에선 어차피 잘 안 될 거라는 식의 포기는 쉽게 하지 않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달가량이 지난 2023년 5월 3일, 두산중공업이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말마따나 단체의 끈질긴 저항이 의미있는 판결을 이끈 셈이다. 이같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하다고 믿고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 더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하는 것은 어떤 바탕 위에서 가능했을까. 김현지 활동가는 기후문제를 자신의 생활 한가운데에서 풀어나가고자 애쓰는 숱한 시민들을 언급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이면서 느끼는 점인데, 저는 시민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재판에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많은 응원과 지원을 받았어요. 작년에 있었던 ‘9·24기후정의행진’에 3만 5천명이나 모인 것도 고무적인 일이고, 채식이나 절약 같은 방식으로 여러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있다는 사실 역시 실감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권한을 가진 이들도 기후문제를 우선적인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운동이 더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청소년들의 ‘기후결석시위’도 학교에 가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일으키는 운동이잖아요. 우리의 행동이 힘있는 세력에 의해 함부로 치워질 수 없는 저항이 되도록 해야 해요.

 

2018년 열다섯살이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학교에 가는 대신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것을 계기로 기후결석시위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이 결석시위를 이끌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온라인 결석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현지 활동가 역시 대안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생태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을 했다. 마을의 산에 배수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주민들과 나무를 껴안으며 산을 지켜냈고, 친구들과 밀양을 찾아 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에 함께했다. 특히 농성을 이어가느라 밀양 주민들이 제때 살피지 못한 감나무농사를 돕고 문화제를 기획하기도 했던 경험은 그에게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삶에 대한 고려 없이 밀어붙여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한 공동체를 어떻게 와해시키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수도권에 사는 사람으로서 신규 원전의 위험을 감내하라고 강요받는 지역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도 오래 고민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국가의 역할, 정부의 책임에 대해 천천히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에서 전력체계 문제를 다루는 활동을 할 때도 ‘이 사안이 밀양에서는 어떻게 해석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어요. 밀양에서의 경험은 제게 국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이 어떻게 주민들의 삶과 땅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는지, 그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해 알려준 동시에, 전국적인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문화제에 모여 해방감 넘치는 현장을 만들어내는 걸 직접 보고 겪으면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거든요. 청년기후긴급행동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밀양에서의 투쟁 경험이 단체의 활동반경에 대해서도 더 확장된 시각을 갖게 해준 것 같아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투쟁은 승패의 결과와 무관하게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곁에 있었음을 기억으로 남긴다는 것, 각자의 경험을 존중하면서 동등하게 마주하는 연대의 경험은 서로를 귀하게 대할 줄 아는 세상을 그려나가도록 독려한다는 것. 김현지 활동가가 들려준 밀양의 기억은 결국 우리의 삶이 ‘힘을 내서 살아갈 만한 것’임을 일러주는 듯했다. 청년들이 모여서 처음 단체를 만들던 무렵에는 ‘누가 우리의 선배지?’ ‘누구한테 무엇을 물어야 하지?’ 하는 질문으로 막막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이들은 2019년의 집회나 2022년 9·24기후정의행진에 수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이 “다른 분야에서 운동해온 이들의 결합 덕분”임을 느끼고 있다며, “공동의 경험을 전수받는 경험” 그리고 대화와 토론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와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묻자 김현지 활동가는 작년에 진행됐던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한국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먼저 이야기했다. 기후변화협약에 소속된 국가들이 매년 기후위기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체에서조차 한국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COP27에서 제기된 중요한 쟁점이 기후취약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예요. 기후활동가들은 ‘기후채무국’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선진국들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착취하거나 지배했던 나라들에 채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모두가 경제성장을 그만하고 외치는 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저개발국가들의 개발과 성장 문제를 바라보고 기후채무국들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이에요. COP27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한국은 ‘중간자적 위치’에서 어떤 책임도 없다는 듯 모호하게 굴었다고 평가되고 있어요. 지금 한국정부는 케이팝 등 문화적인 힘을 주목받는 데 만족하고 있지 그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끼친 전지구적인 영향이나 국제적인 지위에 걸맞은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COP27이 개최될 때 저개발국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요청해왔는데, 가령 각 나라와 지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민의회, 풀뿌리 포럼 같은 걸 만들어보자고 얘기됐어요. 기후문제에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법제도 차원의 변화를 요청하는 일도 이어가야 하지만, 거기에만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죠. 저 역시 시민들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대안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삶의 터전과 생활환경이 곧 세상을 바꾸는 현장일 수 있다는 점은 기후운동의 확장 가능성이기도 해요. 실제로 기후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을 보면 노동, 여성, 성소수자, 장애 등 기존의 자기 의제와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결합해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경우에는 ‘청년’이라는 범주가 광범위하고 유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고정적이지 않은 상태를 ‘긴급’하게 ‘행동’할 수 있는 토대로 삼아 움직이고 있고요. 자기 문제를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대안공간이 한국사회에 더 많아져야 하고, 저는 한국 시민들에게 그런 역량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약 25년의 삶을 살아온 김현지 활동가에게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이 더 흐른 뒤의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인터뷰 막바지, 그에게 지금과는 다른 경로를 만들기 위해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후활동가들에게 ‘25년’이라는 시간은 잘 말해지지 않는 시간대예요. 가령 25년 뒤 미래가 있으려면 당장 5년 뒤, 7년 뒤 지구가 멀쩡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25년 뒤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가’라는 질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아요. 지금 저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이자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시공간이 지역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으며 그 단절이 어떻게 강화되어가고 있는지 살피고, 또 빠르고 효율적이고 깨끗한 도시를 위해 도시 바깥은 망가지고 착취되는 폭력의 구조를 직시하면서 활동과 삶의 기반으로서 도시를 성찰하고 재구성할 필요를 느껴요. 제가 살고 있는 공간을 생태적·정치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활동을 통해 도시 속에서 고립된 개개인의 시간을 공동체의 시간으로 탈환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단체 내 발생한 폭력을 마주하면서, 구성원 한명 한명이 발딛고 선 그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폭력과 억압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환이라는 답이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밟아가고자 해요. 그래서 폭력 이후의 회복도, 단체 구성원만이 아니라 동료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해요.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억압받는 이들도 빠르게 늘어나는 한국사회에서,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들여다보고 보살피는 일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곳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내가 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생생하게 감각하기 시작할 때 지금과는 다른 경로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 출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간성을 공공의 성격을 띤 것으로 재해석하는 김현지 활동가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는 25년이라는 시간은 그냥저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25년 뒤’는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이전의 시간성이 기대고 있던 질서를 성찰하면서, 지금 이후의 시간성이 다른 질서를 따를 수 있도록 추동하는 가운데서일 것이다. 질문을 바꾸어 그렇다면 ‘25년 뒤 독자들을 향해 궁금한 걸 물어본다면 무엇일까’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어떻게 살고 계세요? 덜 아프고 더 존엄하게 살고 계신지, 흙냄새를 자주 맡으시는지, 전쟁은 없고 재난에는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아파하기보다 힘을 모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서로 잘 만나고 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부터 ‘지금 이곳’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