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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류진 張琉珍

1986년생.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등이 있음.

jace.ryujin@gmail.com

 

 

 

동계올림픽

 

 

이번 연휴에는 사정이 있어 집에 못 간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는데도 설 당일 엄마와 아빠로부터 번갈아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화면 위에 초록색 통화 버튼과 빨간색 거절 버튼이 나타났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빨간 쪽을 누른 다음 보고 있던 지도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상하다, 분명 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새벽 어스름부터 골목길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한시간째였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한기가 몸속으로 더 강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어디로든 일단은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걷는 편이 나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날이 추워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골목길 끝에서 누군가가 보험사를 부르는 낙담 가득한 목소리만 어렴풋이 들려왔다. 강추위에 승용차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보려 목도리를 코끝까지 동여맸더니 입김이 올라와 속눈썹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미 곱아버린 손을 다시 겉옷 주머니 깊숙이 찔러넣고 꼼지락거렸다.

역대급 한파가 덮쳤다고 했다.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간 건 기상관측 이래 여섯번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하필 오늘이 그중 하루였다. 민족대명절인 음력 설날이자, 캘거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남자 1000미터 결승 경기가 있는 날. 나는 오늘 쇼트트랙 국가대표 백현호 선수의 집에 방문해 가족들이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하는 모습과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아 1분 남짓의 리포트 기사를 만들어야 했다. 지난 석달간의 인턴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제였고, 완성된 리포트의 퀄리티에 따라 정기자로 전환될 수 있는 임원 면접 자격이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좀 의문이었던 건, 내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 자체 뉴스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지역 민영방송국이라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지역 뉴스를 주로 제작해왔고 인턴기자로서의 취재실습 역시 대부분 지역 현안을 다뤄왔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방송국이어서 스포츠 쪽은 사내에 부서도 따로 없던 터라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라면 해야지 별수는 없었다. 인턴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사회부 팀장으로부터 실습 최종과제가 올림픽 관련 취재라는 것을 전달받던 날, 나를 포함한 인턴 셋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그 의중을 읽기라도 한 듯 팀장은 우리는 종합뉴스를 지향하는데다 올림픽에는 지역이 따로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고 응원하는 게 올림픽인데 당연히 취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마음이 지금처럼, 그러니까 언 강을 지나 한기를 잔뜩 머금고 온 칼바람 앞 한개비 성냥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실 인턴 셋 중 한명은 방송국 대주주인 모기업 회장과 집안끼리 모종의 연이 있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져 있어 채용이 되리라는 걸 처음부터 어렴풋이 예감하고는 있었다. 미지수인 건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둘의 명운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점찍어둔 그 한명을 눈치껏 뽑기 위한 말막음용 페이스메이커였을 뿐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게도 가망이 있는 것인지 윗선의 의중을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뽑을 생각이 있고 그래서 이번 마지막 리포트 과제를 통해 저울질해보는 것이라 믿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둘 중 하나가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든 건 다른 인턴들에게는 각각 서울역,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시민 반응 취재가 맡겨졌는데 나만 생뚱맞게 선수 자택 취재를 과제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내가 새벽부터 추위에 떨며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목동의 골목길을 헤매고 있는 이유였다. 팀장이 빙상연맹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며 전해준 주소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도로명주소와 건물번호가 서로 섞였나 싶어 반대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어떤 조합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주소일 뿐이었다. 백현호 선수가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아이스링크, 그리고 졸업했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면 분명 이 동네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길에 누구라도 있으면 붙잡고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한파특보가 내려진 공휴일 새벽에 사람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았다.

엇비슷한 건물들 사이를 뱅뱅 돌며 기웃거리기만 하다보니 조바심이 났다. 며칠 전 예선을 마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미터 종목은 아침 일곱시부터 준준결승 경기가, 뒤이어 준결승과 결승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적어도 여섯시에는 도착해야 스케치도 미리 찍어두고 인터뷰도 여유있게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태껏 취재실습만 해왔고 촬영용 캠코더는 어제 처음 지급받은 것이어서 잘 다룰 수 있을는지도 걱정이었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백현호 선수의 집을 무사히 찾는다고 해도, 과연 취재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잘못된 주소 한줄뿐 취재원의 연락처조차 없었고, 정식으로 취재 허락을 받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꺼내 시계를 봤다. 벌써 다섯시 반. 큰일이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더 빨리하려던 그때, 가로로 늘어진 전깃줄이 시계 방향으로 기우뚱 돌아갔고, 동시에 발이 허공에 뜨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일찰나의 고통에 그야말로 눈앞이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엉덩이에서 시작된 저릿한 통증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군데군데 아직 얼음이 남아 있어 미끄러진 거였다. 젖은 엉덩이를 붙잡고 통증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견디고 있는데 겉옷 주머니에서 난데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넘어지면서 통화 버튼이 눌려 때마침 걸려온 전화가 받아진 모양이었다. 일단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또 아빠였다.

“니 안 내리온다꼬?”

“어. 말했잖아.”

“와? 뭐 한다꼬 안 오는데?”

“인턴 하는 거 때문에 취재해야 돼서 못 간다 했잖아.”

“아, 맞나.”

아빠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니, 느그 엄마 핸드폰 사주기로 했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추궁하듯 묻자 괜히 당황스러웠다.

“어, 그게…… 메인보드 문제라 고치는 돈보다 다시 사는 게……”

“뭐 사주노?”

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아빠가 다시 이어 말했다.

“느그 엄만 좋은 거 필요없데이.”

별생각 없이 그냥 흘려보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바로 이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깊고 뚜렷한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빠의 숨은 의중을 똑바로 읽어내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빠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요.”

“내는 요즘 양주 묵거든.”

양주? 천만 뜻밖의 단어에 당황하고 있는데 한층 더 톤이 높아진 아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발렌타인 삼십년산이 그래 좋다카대.”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발렌타인…… 삼십년? 그거 사달라고요?”

“아니, 사달라는 건 아니고. 마, 근데 사주면 좋지.”

“뭔지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전화가 뚝 끊겼다. 취직하면 첫 월급은 무조건 부모님께 고스란히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얼마 전 인턴 첫 월급을 받은 그대로 전부 다 송금했더니 내가 정말로 큰돈을 벌고 있는 줄로 아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너무 시려 얼른 주머니에 넣었는데 넣자마자 진동이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엄마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전화를 받았다. 엄마 역시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질문부터 했다.

“어, 선진아. 니 취직한 데가 어데라 했지? 와이티엔이라 캤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 대답했다.

“아니라니까요.”

“잘 안 듣기네? 와이티엔 맞제?”

“아직 취직한 것도 아니고, 와이티엔도 아니라고.”

나는 주위를 살핀 다음 수화구 쪽을 반대편 손으로 감싼 다음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이미 여러번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

“와이티엔이 아니라 와이비씨고…… 아직은 인턴이라 했잖아요, 인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아, 맞나. 잠깐만.”

몇초 뒤, 이번엔 갑자기 둘째 작은엄마였다.

“선진이가? 서울서 일하느라 내리오지도 몬하고 억수 고생이 많디.”

“아니에요.”

“니 와이티엔 들어가가 기자 한다고 느그 엄마 억수 자랑하대.”

“아니, 그게요, 와이……”

“느그 짝은아빠도 와이티엔 밤낮 틀어놓고 본다 아이가. 지금은 좀 그래 됐지만서도 니 쬐맨할 때는 억수로 새첩게 생깄었다 안 하나. 낸중에 다시 살 빼가 앵커도 하고 그라믄 을매나 좋겠노, 그쟈? 집안에 경사지 경사.”

“네?”

“마, 잘 지내고. 추석 땐 꼭 온나. 들어가래이.”

“니 우째 살은 쫌 뺐나.”

둘째 작은엄마의 인사에 대답도 안 했는데 이번엔 다시 엄마였다.

“뺄 거다. 내 알아서 할게요.”

“우짜노, 진짜. 니가 옛날에는 내를 닮아갖고 빼빼했거든. 우짜다가 그리 됐는가 모르겠다. 우리 집안에 통통한 사람은 우야다 있어도 뚱뚱한 사람은 없었거든, 진짜로.”

나는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근데 아빠가 뭔 바람인지 양주를 사달라 하는데……”

“뭐? 니한테도 그 소리 했나?”

“갑자기 발렌타인데이 삼십년인가? 그게 마시고 싶다고……”

“돌았는갑다.”

“그게 뭔데?”

“됐다, 마. 요즘 여 앞바다에 수억짜리 요트 타는 외지에서 온 미친갱이들 천지다. 가게 일도 제끼고 거 가가 좋다고 홀짝홀짝 얻어 처먹고 마 지랄하고 자빠짔다니까. 노망났는갑다. 미쳤는갑다.”

쏘아붙이듯 엄마가 계속 말했다.

“발렌타인 삼십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박통도 십칠년짜리 묵다가 가싰다는데. 마, 느그 아빠 뭐라고 삼십년짜리 묵노? 절대 사지 마래이. 그럴 돈 있으면 계좌로 입금을 해도. 지난 번처럼.”

이번에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참, 그리고 우진이 겨울방학 숙제 말이다.”

“독서기록장? 그거 내가 며칠 전에 메일 보냈는데.”

“아까 들어보니까네. 뭐가 세갠데 하나밖에 안 해줬다 뭐라 뭐라 카대.”

“전부 다 해달라는 거였나? 내가 쓴 거 보고 그런 식으로 응용해가지고 나머지도 비슷하게 쓰면 될 건데.”

“마, 그걸 할 줄 아는 아면 내가 해돌라 하나. 니는 진짜……”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떤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게 우진이 입시랑 직결된 거라 중요하다 안 했나. 니는 왜 만날 니 기준에서만 생각을 하는데? 뭐, 뭐, 다 니처럼 그래 잘나고 똑똑한 줄 아나.”

사실 나는 전혀 잘나지 않았다. 똑똑하지도 않았다. 난 그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나지 않은 게 살면서 늘 걸림돌이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 가족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차라리 너무나 되고 싶을 뿐이었다.

“주말에 써서 개학하기 전까진 꼭 보낼게요.”

“알았다.”

이 말을 끝으로 두번의 짧은 통화가 끝났다.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나오는 걸 눈으로 보고서야 내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허기가 졌고, 그 사실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졌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왜 배도 고프고, 요의도 밀려오고, 심지어는 이 와중에 잠까지 오려 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자기는 했다. 쇼트트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전날 검색하고 공부하느라 밤을 새웠고 늦지 않으려 새벽 첫차 시간에 맞춰 나왔기 때문이었다. 백현호, 그 이름 석자를 검색하자 최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현호 선수는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막내로, 이번이 올림픽 첫 출전이라고 했다. 몇해 전 중학생 신분으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1000미터 금메달과 3000미터 계주 금메달을 동시에 목에 걸면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현재는 대표팀에서 중장거리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서 모두 1000미터 금메달을 차지한데다 사대륙선수권 1500미터에서는 다른 나라 선수의 노골적인 진로 방해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시즌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서는 1000미터, 1500미터 금메달을 휩쓸며 개인종합우승을 차지하기까지 했으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첫 올림픽임에도 불구하고 동계올림픽의 기대주로 부상한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 대한민국 빙상의 미래. 그것이 백현호 선수의 단골 수식어였다.

백현호 선수의 생년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뛰어난 운동선수구나, 쇼트트랙 세계 톱이구나, 하는 생각까지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적혀 있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부러웠다. 일곱살에 우연히 집 근처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접하고, 특별한 적성을 발견하고, 온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이미 타고난 소질을 더 빛나고 귀하게 갈고닦고, 또래들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진로를 고민하는 나이에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상념에 잠겨 하염없이 걷다보니 저 멀리 주차되어 있는 은색 승용차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그 승용차를 무심코 시야에서 흘려보냈다가 눈에 뭔가가 띄어 곧바로 다시 뒤돌아봤다. 차 문짝에 낯익은 로고, KBS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분명 이 근처겠구나. 반가운 마음에 순간 추위도 잊고 한달음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골목을 꺾자 한 건물의 담벼락을 따라 주요 방송사 로고스티커를 부착한 차들이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적갈색 벽돌로 된 4층짜리 낡은 다세대주택 건물 앞이었다. 때마침 열린 1층 출입구로 까만색 롱패딩 점퍼를 입은 사람이 삼각대를 들고 올라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만 따라가면 되겠다. 나는 놓칠세라 잽싸게 그 뒤를 쫓았다. 건물 입구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인데 1층에서부터 벌써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층, 한층, 계단을 올라갈수록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

 

백현호 선수의 집은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인 4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호수는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문으로부터 왜인지 열기와, 어쩐지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반폭 남짓밖에 되지 않는 현관에는 신발이 정신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니, 그건 늘어져 있다기보다는 쌓여 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신발이 너무 많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신발들이 다른 신발 위에 포개어져 있었다. 집 안 상황이 어떨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도 대충 알 것만 같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현관 앞을 바삐 지나가다 다시 뒷걸음질 쳐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밝은 갈색 눈동자, 갸름한 눈매에 살짝 돌출된 광대뼈, 그리고 눈가 주변에 자잘하게, 마치 별자리처럼 흩어져 있는 까맣고 잔 점들이 눈에 띄었다. 그 위로 아주 옅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다림질된 옷깃의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밤색의 양말. 신경 써서 차려입은 듯한 옷 위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꽃게 캐릭터가 어지러이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채로.

“어머, 기자님이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저분이 선수의 어머니인가보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그가 갑자기 늘어져 있던 신발을 살짝 건너 밟고 밤색 양말만 신은 채로 성큼 문밖으로 나와 두 손으로 내 양 팔뚝을 턱, 잡았다.

“아이고, 어떡해. 너무 춥겠다. 어쩜 좋아.”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미처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잡았던 내 팔뚝을 아래위로 연신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추운데 오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이렇게 쉽게? 얼떨떨했다. 취재요청을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던 내 우려와는 달리, 어느 언론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냅다 나를 환대해주었다.

“집이 너무 좁죠. 신발 두실 데도 없네. 가만있어보자.”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가 현관 한편의 신발장을 열어보며 황급히 두리번거렸고, 내가 곧바로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 거는 그냥 여기다 놓으면 될 것 같아요.”

“그러실래요? 현관문은 계속 열어둘 거긴 해요. 아휴, 죄송해요.”

이미 서로 포개지다시피 빽빽하게 늘어선 신발들의 뒤쪽에, 그러니까 문이 닫혀 있었으면 복도였을 곳에 운동화를 가지런히 벗어둔 채로, 쌓여 있는 신발들을 밟지 않기 위해 그 위로 풀쩍 건너뛰어서 마침내 집 안에 발을 디뎠다. 안쪽은 이미 취재진으로 바글바글했다. 새벽 여섯시라고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집은 현관에서부터 부엌과 거실과 베란다가 순서대로 폭 좁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이어진 형태였고 부엌과 거실의 오른쪽에 방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현관에 더 가까운 방에서 촬영기자로 보이는 몇몇이 들어가 미리 스케치를 찍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가 백현호 선수의 방인 것 같았다. 워낙에 많은 취재진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각자가 분주했기 때문에 내가 새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도 별로 없어 보였다. 주요 방송사의 취재기자, 촬영기자, 오디오맨이 셋씩 무리 지어 모여 있었고 그야말로 대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ENG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고정하거나 경기가 시작되면 촬영할 구도를 보는 등 각자 자리를 세팅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은 뜬금없게도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바닥에 내려둔 채 작은 밥공기를 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뭔가를 떠먹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백현호 선수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양손에 수첩과 볼펜을 각각 쥐고 미리 틀어둔 정면의 티브이 화면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내내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고 자세조차 바꾸지 않았다. 이따금씩 쓰고 있는 안경다리를 만지작거리거나 할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수선스러운 집안 분위기에 전혀 섞여들지 않았고, 섞이고 싶지 않아하는 의지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홀로 투명한 벽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만 굴리며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현관 앞에 뻘쭘하게 있으려니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가 앞치마에 양손을 앞뒤로 비벼 닦으며 내게 물었다.

“기자님, 식사 못하셨죠? 떡국 좀 드세요.”

그제야 복도에서부터 맡았던 익숙하면서도 구수한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사골국물 냄새였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는 어느새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를 국자로 휘휘 저어댔다. 나는 깜짝 놀라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뇨, 어머니. 전 괜찮습니다.”

“어차피 많이는 못 드려요. 조금만, 조금만 들어요. 그래도 설날인데.”

“아녜요.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앞접시에 아주 조금만 담아 드릴게요. 새벽부터 나오시느라 아침도 못 드셨을 거 아니에요, 기자님.”

배가 무척 고프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떡국을 떠먹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나는 아직 기자도 아니었고. 취재를 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염치 불고 떡국까지 얻어먹을 자격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왠지 먹고 왔다고 해야 그만 권할 것 같아 둘러댔다.

“정말 괜찮아요. 저 밥 많이 먹고 왔어요.”

“그래요? 그래도 맛만 보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내면서 내가 말했다.

“저, 백현호 선수 방 좀 찍어가도 될까요?”

냄비 속을 젓던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허리만 돌려 현관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럼요. 저쪽이 우리 현호 방이에요. 들어가서 찍으셔도 되는데, 지금 다른 기자님들이 찍고 계셔서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썹을 팔자로 만든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어쩐지 자책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휴, 근데 방이 너무 좁아서요. 어쩌죠. 기다렸다 들어가셔야 될 거예요.”

그때 촬영을 마친 듯 보이는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그리고 오디오맨이 연달아 나오더니 나를 쓱 내려다보면서 지나갔다. 나는 고개 숙여 묵례하고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나무색의 책장과 그로부터 이어진 책상이 나란히 정면의 벽에 붙어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가 세로로 놓여 있었다. 가구 구성만 보면 평범한 학생의 방처럼 보였지만, 그 위에 놓여 있는 것들과 함께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공간은 오히려 작은 전시장에 더 가까웠다. 몸을 왼쪽으로 틀어 책장 먼저 훑어봤다. 책장에 책보다는 상장과 상패, 트로피가 더 많았다. 트로피는 너무 많아 각기 화려한 모양새가 무색하게 여러개가 앞뒤로 겹쳐 세워져 있었고, 상장들은 잘 보이게 펼친 채 세워져 있는 것도 몇개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케이스에 끼워진 채로 책처럼 꽂혀 있었다. 뒤이어 시선이 자연스레 책상 위로 향했다. 이번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종합우승 트로피가 이 방의 주인공처럼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들 수도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크리스털. 긴 트로피의 상단을 장식하고 있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구체의 존재감이 엄청났다. 책상 모서리에는 우단 재질의 케이스들이 탑처럼 잔뜩 쌓여 있었고, 책상 위쪽 벽으로는 아코디언 형태의 옷걸이가 붙어 있었는데 저러다 옷걸이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메달이 많이 걸려 있었다. 서로 겹겹이 겹쳐 있어도 가장 많은 색은 역시 금색이었다. 선물 포장의 마지막에 감싸 두르는 아름다운 리본 같은 목걸이. 그리고 그 끝에 매달린 완벽하게 동그랗고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메달들. 알록달록 색색의 목걸이와 빛나는 메달들이 어쩐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제 급히 사용법을 익힌 캠코더를 켜고 이어폰을 낀 채 뷰파인더 너머로 그것들을 하나씩 담았다.

책장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틸트업.

가장 반짝이는 크리스털 트로피를 위에서부터 틸트다운. 챔피언이라는 글자가 가운데 오도록 줌인.

다시, 옷걸이에 걸려 있는 다종다양한 메달들을 한 뭉텅이씩 클로즈업.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책장부터 책상 위 그리고 침대까지 시계방향으로 쭉 패닝.

카메라 렌즈가 멈춘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폭이 반뼘 정도 되는 침대 헤드 위쪽으로 작은 액자 서너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나는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실제의 그것을, 그 안의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작은 꼬마아이가 아이스링크 위에서 역시나 아주 작은 스케이트화를 신고 서 있었다. 그렇게나 작은 스케이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작은 스케이트에도 똑같이 레이스와 날이 달려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저렇게 작은 아이가 얼음 위에 아주 얇은 날만 대고 꼿꼿하게 중심을 잡고 서 있다는 사실 그 모두가 다 신기하고 귀여웠다. 그 옆 액자 속에는 조금 더 큰 어린이가, 또 그 옆에는 내가 아는 얼굴의 백현호 선수가 웃고 있었고 그다음엔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백현호 선수가 있었다. 나는 그 사진들도 먼 거리에서 패닝 후 최근 사진부터 하나씩 클로즈업해서 찍어두었다. 처음 발견했던 꼬마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이어폰 속으로 밝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선수 어머니였다.

“저 때가 스케이트 처음 신었을 때예요.”

나는 이어폰을 빼고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너무 귀여워요.”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면서 온 얼굴로 웃었다. 갑자기 방이 다 환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크게 활짝 웃는 미소였다.

“아이고, 진짜 귀여웠죠. 저 때가 일곱살 때예요. 근데 꼭 다섯살 같죠. 저 때만 해도 키가 동네에서 제일로 작았어요. 여기 목동아이스링크 한번 데려갔다가. 세상에 그 쬐끄만 게, 처음 타는 건데도 겁도 없이 막 미끄러지면서 타는 거예요. 그걸 보고 코치가 자꾸 소질이 있다는 거라. 처음엔 안 믿었는데.”

온 얼굴로 활짝 웃었던 얼굴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점차 천천히 수축되면서 어느새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실 운동시킬 형편은 아녔어요. 애가 하도 하고 싶다고 하고, 밤낮없이 울고 그래서.”

그리고 다시 액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딨겠어요.”

나는 그 옆에 백현호 선수의 다른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럿이 아이스링크 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김경인 선수인가요?”

“네, 왼쪽이 경인이, 그리고 거기 오른쪽은 기준이에요. 아시죠? 이번 스피드 국대잖아요. 원래 기준이도 쇼트였거든요. 아마 저거 찍고 얼마 안 돼서 바꿨던 걸로 기억해요. 다들 잘 크고, 잘돼서, 너무 잘됐지 뭐예요.”

나는 액자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감탄했다.

“이 한장이 전설의 시작이네요.”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잔 점이 많은 눈가와 콧등에 주름을 잔뜩 만들며 웃었다.

“다들 어릴 때부터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현호랑 경인이랑은 옛날부터 엄청 라이벌이었어요. 주니어 때부터 맨날 붙어서 불려 다니면서 엎치락뒤치락했거든요. 경인이가 1등 하면 무조건 우리 현호가 2등이고, 현호가 1등 하면 볼 것도 없이 경인이가 2등이고요. 둘이 다 해먹었어요, 정말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서로 더 잘하려고 하니까 둘 다 결국은 잘된 것 같아요. 뉴스 보니까 이제는 현호랑 경인이가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원래 주전이던 형들이 얘네랑 나이 차가 좀 있으니까.”

쉴 새 없이 쏟아내듯 말하던 어머니가 돌연, 쑥스러워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마치 앞서 자기가 뱉었던 말들을 주워 담듯 수습하며 말했다.

“아이고, 뭐, 전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하지만요. 하여튼지 간에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신 거 자체가 영예고, 영광이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그때 방문 밖에서 빈 그릇을 개수대에 포개서 놓는 듯한 달그락, 소리가 났다. 한 기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 벌써 다 드셨어요? 좀더 드릴까?”

부엌으로 나가는 백현호 선수 어머니를 따라 캠코더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지상파 방송사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은 기자가 엄지를 치켜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님,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신데요? 정신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준비하셨어요.”

“아유, 아녜요. 어차피 현호 큰 경기 있으면 제가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자요. 저도 초초해서 뭐라도 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골국 끓이는 것만큼은 진짜 자신있어요. 현호 뼈에 좋으라고, 엄청 끓여서 매일같이 먹였거든요. 아마 현호는 이제 사골국이라면 아주 그냥 질려버렸을 거예요.”

기자가 수염이 나 있는 입가를 손등으로 한번 슥 닦은 뒤에 물었다.

“근데 왜, 캐나다 가서 보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궁금했던 바였다. 어머니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면서 넌더리를 냈다.

“아휴, 절대 안 돼요. 우리 현호는 우리가 가서 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기량 발휘를 못한대요. 신경 쓰여서.”

“하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주니어 때부터 그랬어요. 일 때문에 못 보다가 어쩌다 한번 보러 가면 꼭 넘어지고. 가면 못하고요, 안 가면 항상 잘해요.”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개수대에 쌓여 있는 밥공기와 숟가락을 맨손으로 빠르게 헹궈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아예 안 가요.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도 늘 집에서만 봐요. 오늘도 그렇고, 집에서 보는 건 좋긴 한데……”

말끝을 흐리더니 난데없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휴, 집이 너무 좁아서! 우리 기자님들 이렇게 많이 와주셨는데. 너무 미안스럽고 속상해 죽겠네, 진짜.”

기자가 양 손바닥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많이 와서 그런 거죠. 그래도 백현호 선수가 보통 기대주여야 말이죠. 누가 취재를 하지 않고 싶겠어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를 길러내신 분들을요.”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는 자길 향한 찬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하던 말만 이어서 계속했다.

“우리가 예전에는 저쪽에 5단지 아시죠? 거기 살았어요. 그때 그 집을 살 뻔했었어요. 그때 그 집을 샀으면 지금은 아휴, 뭐 말도 못하죠. 그랬으면 우리 기자님들도 오늘 같은 날 그래도 덜 불편하게 보시는 건데. 이렇게 크고 무거운 카메라 들고 여기까지 계단으로 올라오지 않으셔도 되고요.”

“아뇨, 무슨 말씀을…… 이거 들고 다니는 게 저희 일인데……”

당황해하던 기자가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다 그제야 나와 눈을 마주치자 물었다.

“근데, 넌 뭐냐?”

“네?”

“어디 신입이지? 영상취재야? 펜 기자야?”

취재기자로 인턴 중이니 펜 기자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내가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캠코더를 살짝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지금은 둘 다 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게 어딨어? 너가 엠 신입이던가?”

“아뇨, 저 와이……”

“와이? 와이티엔?”

“아뇨…… 저 와이비씨 인턴입니다.”

기자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조금씩 언성을 높였다.

“와이비씨? 와이비씨가 왜 왔지? 빙상연맹 출입 매체에만 주소 공유된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저희 회사 통해서 따로 주소 받아서요……”

“와이비씨는 얘기된 게 없는데? 백현호 선수가 용인시청 소속인가?”

“아…… 아니지 않아요?”

“그러니까. 명분도 없이 와이비씨가 왜 여길 오냐고?”

내가 아무 말 못하고 시선을 내리깐 채 캠코더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기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어 말했다.

“선수 개인정보라 자택 취재는 주소 공유에 민감해. 게다가 너도 보면 알겠지만 지금 현장이 굉장히 좁아. 우리도 최소한으로만 모여서 여기서 서로 풀 하고 있는 거야. 회사별로 주요 각도 맡아서 다 배정해놨고 현장 풀단 내에서 공유할 예정인데.”

그가 턱짓으로 내가 들고 있는 6mm 캠코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그 6미리는 우리랑 포맷 다르니까 공유도 못하고.”

그래서, 나가라는 건가? 말도 안 돼. 설마 팀장은 이런 상황까지 다 예상하고서 나를 여기로 보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나 싶어 갑자기 무섭고, 혼란스럽고,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라는 생각이 든 건 아까 백현호 선수 방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기자로서 분명 이곳에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최대한 공손해 보이게 물었다.

“저, 죄송하지만…… 그러니까 더 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뭔 소리야?”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6미리라 이엔지로 찍으시는 영상은 공유 못 받으니까…… 저는 제가 따로 찍어야 하는 거잖아요. 절대 방해는 안 되게 할 테니까 제가 알아서 찍게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이거 꼭 찍어가야 하는데……”

“얘 말하는 것 좀 봐라? 포맷이 같아도 너한테는 공유 안 해주지. 사전에 얘기된 것도 아닌데. 그리고, 혼자 6미리 한대로 뭐 어떻게 찍을 건데? 화면이랑 부모님들 얼굴 같이 찍을 수 있는 각도가 어차피 여기서는 안 나와. 뭐, 브이로그 찍게?”

그는 내가 명분 없이 왔다고 했지만, 그에게도 나를 쫓아낼 명분이 딱히 없기도 했다. 나는 그냥 막무가내로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다른 기자 하나를 향해 물었다.

“선배, 얘 어떡하죠? 이래도 돼요?”

그때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다가와 끼어들었다.

“저기요, 기자님. 제가 잘 몰라서 그렇긴 하지만요. 그게, 어떻게, 뭐가, 중요한 건가요?”

“아니, 그게…… 어머님 주소는 개인정보잖아요. 저희끼리만 공유한 건데 허락 없이 이렇게 오는 건……”

“제가 괜찮은걸요? 정말이에요. 저는 다 괜찮아요. 그게 누구시든지 말이에요.”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두 손을 기도하듯 모은 다음 자기 얼굴 앞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저는 이 누추한 저희 집에 와주신 거, 그 자체로 감사해요. 진심으로요. 현호 응원해주시러 이렇게 추운데 휴일에 쉬지도 못하시고 여기까지 와주신 것만으로도 환영이죠. 우리 집이 좁은 게 그게 미안할 뿐이지. 아휴……”

기자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으면서 혼잣말인 듯 아주 작게 말을 흐렸다.

“누구 때문에 더 좁아졌네……”

나는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딴청을 피웠다. 방금 저 말은 무대 위 주연배우의 방백 같은 거다. 모든 사람에게 저 말이 들렸더라도, 모든 사람이 저 말을 들었더라도, 내게는 저 말이 들리지 않은 거다. 그렇게 약속되어 있다. 나는 그냥 귀 닫고, 입 닫고, 알아서 내 것만 빨리 찍고 나가면 돼.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거실의 티브이에서 캐스터와 해설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캘거리 맥마흔 올림픽아레나입니다. 잠시 후 일곱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미터 준준결승전이 시작됩니다.”

거실에 꽉 들어차 있던 취재진이 모두 부엌 쪽을 쳐다보면서 입을 모아 외쳤다.

“어머니, 이제 와서 앉으시죠.”

개수대에서 그릇을 헹구거나 행주로 조리대 닦기를 반복하던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그 말에 시선을 깊게 떨구고, 그러니까 거의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요, 이제 앉아야지…… 이젠, 진짜…… 앉아서 봐야 하지…… 가서 앉자. 가서 앉아서 보자……”

그건 취재진의 요청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에 가까워 보였다. 어머니는 빨간 꽃게들이 어지러이 그려진 앞치마를 주섬주섬 벗고, 마른세수를 한번 한 뒤, 어두운 갈색 유리로 되어 있는 부엌 찬장에 자신의 얼굴을 한번 비추어 보았다. 뒤이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거실 소파의 오른쪽에 앉았다. 선수 어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자 촬영기자들이 소리 없이 분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번 취재의 초점은 선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인 것 같았다. 앞서도 백현호 선수 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를 기준으로 대강 세팅을 해두긴 했지만 어머니가 앉자 그제야 진짜 주인공이 왔다는 듯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촬영기자들이 너도나도 삼각대의 방향과 높이를 조정하고 초점을 다시 잡았다.

오디오맨 한명이 각 방송사의 무선마이크를 하나하나 수거해 커다란 원통 형태로 모은 다음 청테이프로 옆면을 칭칭 감았다. 그저 손바닥만 한 무선마이크였을 뿐인데 여러개를 모아 붙이니 아주 크고 무거워졌고, 어쩐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청테이프를 두른 거대한 마이크 더미가 소파와 텔레비전 사이의 낮은 탁자 위에 올려졌다. 무선마이크의 수신 안테나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게 어쩐지 도화선처럼 보였고, 뒤이어 그 새까만 표면의 마이크 더미가 어쩐지 다이너마이트 다발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고 까랑까랑해졌다.

“다시, 이곳은 캘거리 맥마흔 올림픽아레나입니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이번이 두번째죠.”

해설위원이 말을 이어받았다.

“네, 맞습니다. 88년 동계올림픽 당시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 시범 종목으로 처음 채택이 되었죠. 그후 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놓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쇼트트랙 강국이죠. 다시 돌아온 캘거리 올림픽에서 아직은, 예, 금메달 소식이 들려오지는 않고 있는데요. 하지만 오늘부터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직 남은 경기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 선수들을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흘려온 땀방울의 결실을 믿고 있습니다.”

“네, 물론 부담을 주는 건 안 되겠지만요. 저 역시 우리 선수들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바로 오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남자 1000미터 종목은 쇼트트랙에서도 우리나라가 특히 강한 종목이거든요.”

“맞습니다. 1000미터는 통상 중장거리라고 하는데요. 500미터 단거리 그리고 1500미터 장거리랑은 또 약간씩 다릅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스피드와 지구력을 모두 겸비해야 하는 종목이고요. 여기에 더해 경기 운영능력 또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만의 기술과 스피드 그리고 특유의 투지까지 더해진 조화로운 스케이팅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죠. 예선을 가볍게 통과한 우리나라 백현호 선수와 김경인 선수가 출전할 예정입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져올수록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 안에 꽉 찬 사람들이 침묵하면 할수록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주고받는 중계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귀에 파고들었다.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는 맨손으로 연달아 마른세수를 했고 아버지는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수첩과 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에 나를 포함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모두 각자가 맡고 있던 각도로 피사체를 한번 더 조여 잡았다.

 

*

 

“백현호! 1위로 깔끔하게 도착합니다.”

“역시 이번 시즌 월드컵 종합 1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답습니다.”

“우리나라 김경인 선수, 백현호 선수가 준준결승과 준결승을 연이어 통과한 가운데 이제 대망의 파이널에이, 결승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둘러싸고 있던 기자들 사이를 뚫고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유리병에 든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르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 나도 카메라를 끄고 내려두었는데, 내 뒤에서 집 전경을 맡아 찍고 있던 한 종편채널의 촬영기자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6미리! 너 경기 중에 그렇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여기 다 걸려. 결승 때도 이럴 거야?”

“저 안 걸리게 숙여서 하고 있었는데요?”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요.”

어느새 거실로 돌아온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우리 사이로 달려들며 끼어들었다.

“아유, 그러지 마세요. 우리가 좀 멀리 앉을까? 여기 소파 끝에? 이러면 다들 잘 찍혀요?”

“아, 아닙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저희끼리 원래 협의가 됐어야 하는 부분인데.”

어머니가 또다시 안절부절못했다.

“아유, 어떡해. 다들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공간이 여의치 않아 죄송해요.”

“아닙니다, 어머님. 죄송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아휴, 우리 집이 너무 좁……”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날벼락 같은 외마디 소리가 날아들었다.

“야!”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모두의 시선이 백현호 선수의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몇시간 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단 한마디도 내지 않던, 거의 동상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아버지였다.

“니는 집 좁다는 얘길 맻번을 하나!”

집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순간적으로 내지른 그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나도 모르게 한 손이 귓가로 올라가 있었다. 백현호 선수 아버지를 향했던 모두의 시선이 이내 그 호통이 향한 곳으로 이동했다. 선수의 어머니가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아버지는 눈을 부라리고.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어색하고 너무나 민망해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이 집에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은 숨죽인 채 눈동자만 빠르게 굴렸다. 거북하고, 머쓱하고, 당황스러운 시선이 찰나에도 몇번씩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켰다. 냉랭해진 집 안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고개를 들고 다시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마치 우리 모두를 향해 호소하듯 말했다.

“아니, 우리 현호 응원해주시러 이렇게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제대로 앉으시지도 못하……”

“시끄럽다!”

선수의 아버지가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 한번만 더 해라, 어?”

다시 이어지는 차가운 침묵. 그야말로 살얼음판인 집 안 상황을 알 리 없는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목소리만 그 위로 미끄러지듯 활기차게 울려 퍼졌다.

“캘거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파이널에이. 잠시 후 만나보겠습니다.”

일순간 고요해진 집 안. 뒤이어 올림픽 후원사인 스포츠의류 브랜드 광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티브이 화면 위로 떠다니는 새하얀 롱패딩. 새로운 기술력의 응집이라는 카피와 쓸데없이 발랄한 광고 음악만이 어색하게 집 안을 부유하고 있었다.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부엌으로 가서 사과를 꺼내 자르기 시작했다. 탁, 탁. 도마 위에 칼 내려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시작하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결승전 파이널에이. 캘거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향해 우리 선수들이 도전하는 모습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깎은 사과를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테두리에 금사 장식이 된 동그란 사기 접시에 정갈하게 깎은 사과 조각들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고 중간중간 디저트용 작은 포크가 꽂혀 있었다. 사기 접시가 유리 테이블과 부딪치는 소리가 선득하게 느껴졌다. 캐스터의 말이 이어졌다.

“네, 지금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춰주고 있는데요. 교민들이 정말 많이들 와주셨습니다.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힘차게 흔들고 있는 우리 교민들의 모습, 지금 보고 계십니다. 이 뜨거운 응원의 열기가 차가운 링크 위의 선수들에게도 가닿길 바라겠습니다.”

“네, 이제 저도 긴장이 되기 시작하네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 백현호 선수 그리고 김경인 선수가 진출한 결승전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백현호 선수는 이번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1000미터 금메달을 휩쓸다시피 했고요, 시즌 종합우승까지 차지하면서 기대주다운 저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는데요, 오늘이야말로 반짝이는 금! 기대해볼 만합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네덜란드의 에릭 하르테 선수…… 이어서 대한민국의 백현호 선수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환한 미소로 관중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네, 인상도 너무 좋죠.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당당한 대한의 건아,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이어서 대한민국의 김경인 선수……”

전에는 몰랐는데 경기와 경기 사이에, 경기 전 중계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너무 많고, 불필요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 있는 모두가 어서 경기가 시작되고, 선수들이 얼음 위를 질주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마침내 선수들이 모두 출발 레인에 섰다.

몸을 낮췄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은 서두를 필요 없죠.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해주면 됩니다.”

한바퀴가 지나자 백현호 선수의 아버지가 수첩 위에 작대기 하나를 그었다. 바로 그때 캐스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네덜란드의 에릭 하르테 선수. 벌써 저렇게 치고 나가는 건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막 첫바퀴 지났는데요.”

“이 페이스는 마치 마지막 바퀴 같아요. 거의 화가 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해설위원이 이어받았다.

“음, 에릭 선수가 지난 500미터 경기 때 손가락에 경미하지만 부상이 있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래서 아예 후반 경합을 피해 가겠다, 이런 작전으로 보이는데요. 전략이 미리 상의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무모해 보이긴 합니다.”

캐스터가 다시 질문했다.

“쇼트트랙 규정상 선두와 두바퀴 이상 차이가 나면 뒤 선수는 모두 실격이죠?”

“네, 맞습니다. 뒤 선수들도 물론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겠지만 당연히 이 점은 염두에 두고 경기를 운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쇼트트랙 1000미터 경기는 아홉바퀴나 돌아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상식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선수가 유독 눈에 띄게 먼저 치고 나가면서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는 모습이, 우리나라 선수들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괜히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저 선수가 계속 이 페이스로 달린다면? 저렇게 선두를 유지한 채로 끝까지 간다면? 이 격차가 끝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면? 우리 선수들이 너무 뒤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괜히 안달이 났고, 실격에 관한 룰까지 듣고 나니 더 불안해졌다. 이 예외적인 초반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를, 맨 앞 선수의 힘이 점점 달리고 태극기가 그려진 헬멧을 쓴 우리나라 선수, 특히 백현호 선수가 아껴둔 체력을 후반에 써서 앞으로 치고 나가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카메라를 쥔 손바닥에서 자꾸 땀이 났다. 내 생에 올림픽 경기를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열심히 본 것은, 이렇게까지 진심을 다해 우리나라를 응원해본 건 정말이지 처음인 것 같았다.

“크흠.”

백현호 선수의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노트에 세로로 한획을 더 그었다. 바퀴 수를 거듭할수록 바를 정 자가 완성될 것이다. 아이스링크의 오벌 트랙 한바퀴는 111.12미터. 바를 정 자 두개가 완성되기 직전에 승부가 결정 날 것이다. 노트의 바를 정 자 하나가 완성되었을 무렵 캐스터가 말했다.

“자, 이제 스퍼트를 내야 할 때가 되었죠! 네바퀴 남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백현호 선수, 아웃코스로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아! 현호야!”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가 소파에서 주르르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서로 깍지 껴 모아 가슴께에 가져다 대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현호야, 현호야!”

또 한바퀴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노트에 세로로 한획이 더 그어졌다.

“주특기인 아웃코스로 시원하고 깔끔하게 따라잡아 압도적인 선두로 달리고 있는 백현호 선수! 쇼트트랙 월드컵 때 보여주었던 기술을 이번에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내 신기록이었던 지난 월드컵 때보다 랩타임이 더 빠르게 나오고 있어요. 정말 경이롭습니다. 이러다 월드레코드까지 넘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네, 피지컬이면 피지컬, 스피드면 스피드, 게다가 지구력에 경기 운영능력까지 모두 갖춘 선수죠. 이 시대가 추구하는 올라운더형 스케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스케이팅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지금 눈물을 보이고 계시는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선수라서요. 이 선수가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김경인 선수까지 에릭 하르테 선수를 제쳤습니다. 지금 1, 2위가 다 태극전사들이에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가 너무나도 밝습니다! 이제 단 두바퀴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는 이제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선수들의 몸이 점점 더 앞으로 기울어지고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아무리 얼음 위라지만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순식간에 달리고, 꺾고, 달리고, 꺾고…… 티브이 화면 우측 상단의 초시계가 얼음 위의 선수들처럼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며 흘러갔다. 백현호 선수 어머니의 기도 소리도 점점 더 커져갔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현호를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눈동자, 눈동자같이 지키소서, 지켜주소서.”

백현호 선수 아버지가 중계진보다 먼저 바를 정 자의 한획을 더 채웠다.

“이제 한바퀴 남았는데요, 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두 선수가 엉켰어요!”

그때였다.

“어머니!”

백현호 선수 어머니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취재기자의 무릎 위로 맥없이 쓰러졌다. 수많은 렌즈들이 반사적으로 따라붙었다. 커다란 ENG 카메라가 모두 백현호 선수 어머니를 잡고 있었다. 여러대의 총구가 백현호 선수 어머니를 향해 겨눠진 것만 같았다.

“일어나야 합니다!”

“백현호 선수, 김경인 선수! 누구라도 빨리 일어나주면 좋겠어요! 아……”

얼음 위에서의 한바퀴가 얼마나 순식간인지, 얼마나 찰나일 수 있는지. 그저 눈 깜짝할 시간이 지나갔을 뿐인 것 같은데,

어느새 경기가 모두 끝나 있었다.

클로즈업되어 거실 티브이 화면에 가득 찬 백현호 선수의 맨얼굴.

나는 카메라를 떨어트릴 뻔했다. 한 손이 나도 모르게 얼굴로 올라갔다. 고글을 벗은 백현호 선수의 한쪽 눈동자에서 붉은 피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 전체를 사선으로 가르는 칼에 베인 듯 길고 긴 상처. 그 날카로운 직선을 따라, 그 위로 얹은 새하얀 장갑의 손가락 사이로, 선명하게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끔찍할 정도로 잔뜩 찌푸려진 얼굴이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 갸름한 눈매에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잔 점이 많은, 내 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꼭 빼다 박은 바로 그 얼굴이.

 

*

 

요즘 자주 하는 종류의 생각이 있는데 또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말하자면 이런 것들. 어떤 착한 사람이 나를 납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부드러운 실크스카프로 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내 두 팔을 등 뒤에서 묶고 극세사로 만든 보송보송한 안대로 내 눈을 가리고 하얀 봉고차에 태운 다음 내가 모르는 곳, 나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줬으면. 그래서 딱 한달만 날 가뒀다가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것들. 혹은 큰길을 건널 때 작고 귀여운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 나를 경쾌하게 탁, 치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살짝만 다쳤으면. 이를테면 팔만 똑, 다리만 똑. 예쁘게 실금만 갔으면. 그래서 다시 예쁘게 붙을 때까지 딱 두달만 깁스하고 누워 있으면서 누군가 날 먹여주고 재워주고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면 누군가 침대 위에서 베개로 내 얼굴을 시원하게 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솜이 빵빵하게 들어차 있는 베개의 끝 모서리를 양손으로 잡고 어깨 뒤로 넘긴 상태에서 풀스윙으로 머리를 내리쳐주었으면. 폭신한 침대 위로 쓰러지면 머리 위로 베개를 꾹 대고 눌러서 꼴까닥, 기절만 시켜줬으면. 그래서 딱 석달만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으면.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겨울잠을 자고 싶다는 그런 생각. 의식이 아득하게 흐려지면서 그런 생각들에 또다시 사로잡힌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모든 게 흐릿한 걸까? 왜 이렇게 몽롱한 걸까? 띄엄띄엄 몇개의 장면들만이 스치듯 지나간다. 펜스에 처박힌 채로 피범벅이 된 백현호 선수의 얼굴. 눈물처럼 흐르던 핏줄기. 뒤집어 깠는데 흰자위만 보이던 백현호 선수 어머니의 눈동자. 점점 다가오듯 커지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들것에 실려 나갈 때, 왜인지 한쪽이 벗겨질 듯 발끝에 걸려 있던 밤색 양말. 팀장과의 통화도 떠오른다. “야, 지금 난리다. 알파인 최나현 금메달 딴 거 알지? 거기 지금 가족이 다 송파 래미안에 있어. 백현호네는 철수하고 빨리 최나현이네로 가.” 혹시 동호수를 아냐고 묻자 돌아온 힐난. “이 멍청아, 거기 애들 다 그쪽으로 갈 거 아냐. 눈치껏 따라가. 최나현이가 용인시청 소속인데 야이씨, 금메달 딸 줄 아무도 몰랐어가지고 이거 큰일 났다. 지금 우리 대응이 하나도 안 돼 있어. 오늘 설이라 다들 지방 가 있고 연락도 안 되고 현장 대응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네가 책임지고 꼭 찍어 와야 돼. 알겠어?” 쏟아지던 인터넷뉴스의 헤드라인들. ‘동계올림픽 최대 이변. 스키 여제 최나현 해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금’ ‘대한민국 설상 종목 사상 첫 메달, 사상 첫 금’ ‘스키 여제 최나현 부모님 인터뷰 “나현이가 해낼 줄, 저는 알았어요”’. 송파 래미안이라고 검색하자 나오던, 서로 이름과 위치가 조금씩 다른 다섯개의 아파트 목록.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목록의 첫번째 아파트부터 무작정 가서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의 중간중간 배경음처럼 끼어드는, 턱이 덜덜 떨리면서 어금니가 서로 부딪히던, 타닥타닥 소리. 아무도 없는 아파트단지를 걷고 또 걷고 돌고 또 돌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다섯번째 아파트 정문에 커다랗게 걸려 있던 플래카드 위 황금색 글자들. ‘경축, 캘거리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회전 금메달! 대한민국 설상의 미래 최나현! 축하합니다. 송파래미안 더클래식파크 입주민협의회’. 다행이다, 여기가 맞나봐. 아마 난, 그 순간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어떤 날의 어떤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처음엔 그냥 상상의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내가 실제로 겪었지만 잊고 살던 일이다. 발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그 밤색 양말 때문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열살 때 학예회 연극 무대에서 요리사 역할을 맡았던 기억. 나는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이자 원톱 주연이었다. 연극의 제목이 ‘외다리 왕과 요리사’인 만큼, 요리사가 나오지 않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었다. 소품도 손수 준비했다. 새하얀 도화지를 원통형으로 말아 길쭉한 요리사 모자를 만들었고, 극의 클라이맥스에 뜯어서 내던져야 하는 칠면조 다리는 밤색의 양말에 신문지를 가득 구겨 넣은 뒤 끝을 휴지로 감싸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학예회 당일, 양이 상당한 대사를 잊지 않으려, 동선을 잘 맞추려, 연기에 몰입하려, 한 학기 내내 연습한 것들을 잘해내려 무대 위에서 분투했다. 연극은 성공리에 끝났다. 하지만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으면서도 커튼콜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받아야 하는 마지막 박수, 단 한명의 박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모든 박수들은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관객석에 있던 엄마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엄마는 연극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선진아, 니는 와 공주를 안 했드나?”

대답할 수가 없었다. 공주는 대사 한줄 없는, 역할이라기보다는 배경이었다.

“공주를 했으면 좋았을 낀데. 저런 드레스 입었으면 을매나 이뻤겠노.”

그러더니 갑자기 날 흘겨봤다.

“맞다, 니 던진 그 닭다리 말이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혹시 느그 아빠 양말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입에서 쓰읍, 소리가 났다.

“니는 말을 하고 가가야 될 거 아이가. 그거 한짝 없다꼬 느그 아빠가 잡도리를 을매나 했는 줄 아나?”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를 모아 붙여 내 어깨와 가슴 사이 어딘가를 쿡 찍어 밀었다.

몸이 맥없이 휘청거리던 느낌이 기억난다.

 

난 자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래 바라왔던 대로 혼수상태가 된 걸까. 자꾸만 의식이 흐려진다. 등과 가슴 앞쪽, 겨드랑이에 살짝 땀이 뱄다. 분명 한파라고 했었는데, 이상하게 날이 푹하게 느껴졌다. 깊은 꿈을 꿨다. 눈앞에 굳게 닫힌 문이 있다. 손잡이에 매끈한 도어락이 달린 문이다. 나는 이 문을 알고 있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 또한 알고 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의 오른쪽 벽면에 달린 초인종을 누른다. 전자음의 경쾌한 벨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안쪽에서 급한 발소리가 점차로 가까워져 온다. 점점 빨라지고, 점점 커진다. 철컥,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서서히 열린다. 벌어진 문틈으로 환한 빛이 새어나온다.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풍채가 아주 넉넉해 보인다. 살굿빛이 도는 베이지색 원피스에 연노랑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웃고 있는데도 눈과 입이 모두 아주 컸고 새까맣게 구불거리는 머리숱이 몹시 풍성했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서 와, 수고했어.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꿈속에서 나는 그 집 딸이었다.

“엄마아!”

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한달음에 안긴다. 그녀의 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고 따뜻하다. 얼굴을 폭 파묻은 그녀의 목덜미에서 옅은 화장품 향이 감돌았다. 기분 좋은 냄새. 밀키한 냄새. 달콤하면서도 싱그러운, 어쩐지 고급스러운 냄새. 바닐라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복숭아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장미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양팔에 힘을 줘 그녀를 더 꽉 끌어안고 두 발을 허공에 띄운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다. 그래도 그녀는 끄떡없다. 오히려 내 등을 천천히 다독인다.

“우리 애기. 오늘 하루는 어땠어?”

그 말, 그 말은 정말로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꽁꽁 봉인해두었던 말캉한 주머니를 날카롭게 푹 찌른다. 그 말, 바로 그 말에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그 말, 꿈속의 나는 그 말을 듣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해야 한다. 그래서 울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꿈 밖의 내가 너무 놀란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 분명 우는데 꿈속에서는 눈물이 한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히 그녀는 내가 운 줄 모르고 있다. 마치 방백처럼. 방백 같은 눈물. 그녀는 내가 우는 걸 알아차릴 수 없다. 도리어 웃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땅하게 여겨진다. 나는 울며, 그러나 웃으며 대답한다.

“나 오늘 엄청 힘들었지.”

“누가 우리 딸 이렇게 힘들게 했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대강 대답할 수 있다. 그냥 이렇게.

“몰라, 다 어려웠어. 다 피곤해.”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우리 딸. 우리 애기. 우리 강아지.”

자꾸 강아지란 말을 들으니 내가 진짜로 강아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맞다. 강아지! 그러니까 나 말고 진짜 강아지가 이 집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발밑에 정말로 작은 강아지가 한마리 나타난다. 하얗고 고슬고슬한 털로 뒤덮인 앞발을 내 허벅지 위에 얹고 짤막한 뒷발로만 서서 나를 올려다본다. 새까만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분홍빛 혀를 날름 내민 채로. 강아지가 기분 좋게 헥헥 숨을 내쉰다. 나는 허리를 굽혀 강아지를 안아 위로 높이 치켜든 다음 냅다 떨어트리듯 품에 안는다. 너무나 좋은 냄새가 난다.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 나는 강아지의 코에, 배에, 발바닥에 차례로 뽀뽀한다. 촉촉하고 까만 발바닥에서 유달리 특별한, 꼬소름한 냄새가 난다. 강아지의 꼬리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모두가 그 정신없이 흔들리는 꼬리를 보면서 웃는다. 웃는 사람 중엔 드문드문 난 흰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남자도 있다. 잔잔한 체크무늬 셔츠 위에 크루넥의 니트를 덧입고 있고, 그 위에 귀여운 당근과 토마토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우리 공주 좋아하는 떡국 끓여놨어.”

나는 아무런 스스럼도 없이 말한다.

“아빠, 나는 김 많이.”

“당연하지, 얼른 와.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어.”

그가 내 외투를 손수 거두어준다. 나는 그저 팔을 뒤로 쭉 뻗는 것만으로도 두껍고 무거운 겨울외투를 벗을 수 있다. 스르륵, 외투가 내 어깨에서 그의 손으로 흐르듯 넘어간다.

노란빛을 내는 펜던트 조명이 긴 타원형 식탁의 정중앙을 비추고 있다. 그 아래로 떡국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다. 밝고 노란 조명 때문인지 갓 끓여 나온 국의 표면에서 김이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아지랑이라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봄날의 아지랑이는 분명 이렇게 생겼을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노란 조명 아래 노랗게 빛나는 숟가락을 들어 떡국을 허겁지겁 떠먹다가 이내 들고 마시듯이 먹는다. 김을 아주 많이 넣어 국물이 걸쭉하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공주야, 맛있어?”

“응. 맛있어. 너무너무 맛있어.”

그가 내 옆에 앉아 능숙한 젓가락질로 김치를 한입 거리로 손수 찢는다. 그리고 내 숟가락과 그녀의 숟가락에 번갈아 올려준다. 밥을 다 먹은 나는 아무렇게나 배를 두드리며 방으로 향한다. 그녀가 선물을 개봉하듯 짜잔, 하면서 방문을 연다.

“이불커버 새로 사놨어. 우리 딸이 좋아하는 연한 노란색, 버터색. 너무 예쁘지? 어제 이불가게 다 뒤져서 제일 이쁜 걸로 골라놨는데, 아빠가 그새 빨아서 말리고 이불솜까지 다 끼워놨더라. 전기장판도 2단계로 미리 켜놨어. 지금쯤 엄청 뜨끈뜨끈해져 있을 거야.”

나는 연노랑과 화이트를 반반 섞은 것같이 부드러운 버터색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다.

“아무 생각 말고 자, 우리 딸.”

갓 건조한 듯한 이불에서 깨끗한 비누 향기가 난다. 나는 누군가를 안듯이 덮고 있는 이불을 한번 껴안아본다. 겉 커버는 기분 좋게 사각거리는데 동시에 푹신한 속통도 말랑하게 느껴진다. 복슬복슬 하얀 강아지가 연노랑 버터색의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강아지를 껴안고 이불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든다. 뒤이어 강아지가 별안간 컹, 짖는다. 컹, 컹, 경계하듯 짖는 그 소리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엄마.”

“어머, 괜찮아요?”

“엄마…… 엄마……”

“아이고, 어떡해. 너무 추웠나보다.”

“엄……”

나오는 말을 내뱉으려다 멈췄다. 매끈하게 윤기 나는 털로 뒤덮인 하얀 강아지가 날 노려보면서 다시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쉿.”

강아지는 그 말을 듣고 짖는 건 멈췄지만 화를 삭이듯 으르르, 몸통을 울려대면서 까만 눈망울을 사납게 굴렸다. 나는 허리를 세워 베고 있던 쿠션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잘 안 나요.”

“저희 집 문 앞에 쓰러져 있었어요.”

처음 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하얗고 작은 복슬강아지가 내 눈앞에 조화로운 삼각형을 이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낙차에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핑 돌아 이마를 짚은 채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이고, 조금 더 누워 있어요.”

아저씨가 말했고, 아주머니가 설명했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하는데요. 우리가 구급차 불러줄까, 병원 데려가줄까, 몇번이고 물어봤었어요.”

조금씩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근데 그냥 몸만 조금 녹이고 싶다고 그러길래…… 오래는 안 됐어요.”

맞아. 그랬었다. 이제야 기억나기 시작했고 이제야 내가 처한 상황이 자각되었다. 갑자기 너무 창피해져서 눈을 계속 감은 채로 어딘가로 숨고 싶었지만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가려면 눈을 떠야지 별수 없었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주섬주섬 이불을 걷고 처음 보는 집 거실의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를 내려다보고 서 있던 부부와 강아지 뒤로 창이 크게 나 있었고, 창밖 저 멀리 올림픽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신세를 졌어요.”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았고, 괜찮아야 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면서 현관문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를 발견했다. 가족사진이었다. 네 식구 모두가 맨발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상의는 새하얀 셔츠로 맞춰 입고 있었다. 측면으로 나란히 선 채 기차놀이 하듯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얼굴만 정면으로 돌려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건 정지된 미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달리듯 움직이며 큰 소리로 떠나가라 웃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었다. 연속되고 지속되는 생생한 화목의 한 단면을 솜씨 좋은 사진사가 날렵하게 포착한 것이었다. 나는 경이로울 정도로 근사한 사진 속 웃음들을 홀린 듯 응시하다 마침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현관의 발매트 옆에 개어져 있던 내 겉옷을 다시 주워 입었고, 그 옆에 있던 캠코더 가방도 들었다. 아주머니가 내 한쪽 팔뚝을 살짝 쓰다듬으며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렇게나 추운데 청카바 한장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요, 세상에.”

옷깃을 여며 쥐면서 변명하듯 내가 말했다.

“이거, 안에 털 있는 거예요.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걱정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고, 그 뽀글이 털이요? 그게 카라랑 단추랑 소매 끝에만, 순 보이는 데만 달려 있던데요…… 안에는 하나도 없고요.”

방으로 들어갔던 아저씨가 무언가를 팔에 걸쳐 들고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게 방금 전까지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인 줄 알았다.

“이거 입고 가요. 우리 둘째딸 건데 아마 잘 맞을 거예요.”

“네?”

어리둥절해하던 내가 다시 물었다.

“저를…… 주시겠다고요?”

“네, 학생만 괜찮다면.”

그건 아침에 티브이 광고에서 봤던 브랜드의 새하얀 롱패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팔을 격하게 내저었다.

“아닙니다. 진짜, 진짜로 괜찮아요.”

“그렇게 나가시면 안 돼요. 지금 밖이 너무 추워요. 역대급 한파라고, 뉴스에서도 계속 난리예요.”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도 딱 학생만 한 딸이 있어요. 딸만 둘인데 둘 다 외국에 살아요. 두고 간 거는 어차피 다 안 입는 옷들이니 하나 가져가셔도 돼요. 정말이고, 진심이에요.”

아주머니가 롱패딩을 건네받아 지퍼를 아래로 끝까지 내린 다음 펼쳐서 안감이 보이게 들고 내게 내밀었다. 안쪽의 브랜드 로고 아래에 작게 XL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몇번의 소소한 실랑이 끝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롱패딩의 소매에 팔을 끼우고 있었다. 양팔을 감싸던 패딩의 폭닥한 느낌. 어깨에 가볍게 닿는 느낌. 뒤이어 발목까지 온전히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너무 편안해서 나는 개운한 충격을 받았다. 갓 내린 눈처럼 눈부시게 하얀 롱패딩으로 온몸을 감싼 채 어쩐지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정면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는 동안,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현관문을 연 채로 붙잡고 서 있었다. 들어가셔요,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두 사람은 거기 그렇게 계속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거울에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나의 모습이 잠시 비쳤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새하얀 캐나다 북극곰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조금 났다. 나는 얼른 엘리베이터에 타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 일층 버튼을 누르면서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그제야 뒤돌아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과 닫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버튼을 막 누르려던 바로 그때,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아 참!”

닫혀가던 문이 다시 활짝 열렸고, 돌아 나온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뒤따라 아주머니의 어깨너머 아저씨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잊고 있었다. 오늘이 설날이라는 사실을. 맞아, 그렇지. 아직은 새해 첫날이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일부러 닫힘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누군가의 부모가, 엷게 웃으며 끄덕이는 다정한 중년 부부의 모습이, 양옆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철문에 가려지고 가려지다, 이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