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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 다시 읽고 싶은 책

 

 

허승철 『우크라이나 현대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새로운 그리스’ 우끄라이나의 전사(前史)

 

 

이동기

李東奇 /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leedongki@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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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새로운 그리스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하늘, 이 민족의 타고난 쾌활함과 음악성, 비옥한 땅 등은 장차 깨어날 것이다. 이전에 고대 그리스인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미개한 소수민족들은 문명국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흑해까지 다다를 것이며, 헝가리와 이민족들, 그리고 폴란드와 러시아의 한 지역은 이 새로운 문화에 참여할 것이다. 북서쪽에서 시작된 이 정신은 잠자고 있는 유럽으로 건너와 정신적으로 유럽을 지배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임박했으며 장차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다.”(103면) 독일의 역사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1769년 여행일지』(Journal meiner Reise im Jahre 1769, 김대권 옮김, 인터북스 2009)에서 우끄라이나를 높인 지 250여년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2014년부터 개시된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이 2022년 2월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세계지도의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우끄라이나는 세계사의 전경(前景)으로 진입했고 ‘세계사회’를 해시태그로 오간다. 이 전쟁에서 다시 미국의 세계지배 야욕을 찾거나 러시아의 짜르(황제) 전통을 찾으며 ‘제2차 냉전’ 발발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일이 성황이다. 그런 소용돌이에서 우끄라이나를 ‘새로운 그리스’로 맞기는 쉽지 않다.

하늘은 아름답고 땅은 비옥하지만, 우끄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한국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학자나 유럽문화에 익숙한 지식인들에게도 우끄라이나는 동유럽 역사의 각주이거나 그저 러시아문화의 사족에 불과했다. 우끄라이나를 ‘소(小)러시아’ 또는 ‘러시아 세계’의 일부로 보는 인식이 러시아 중심의 패권주의 시각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것을 떨치기는 어렵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색깔의 문화를 빛낸 국가에 관한 관심이 없지 않아도 우끄라이나를 그저 싸움 중인 고래들 사이의 새우쯤으로 보는 시각을 넘지 못했다. ‘새로운 문화의 참여자’로 나서려는 그 국가에 대해 무심했던 과거, 그리고 빈약한 정보로 쉽게 단정했던 관성을 극복할 디딤돌을 찾았다.

『우크라이나 현대사: 1914-2010』은 2011년에 발간되었기에 러시아와 우끄라이나의 최근 전쟁을 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을 아쉽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이롭게 했다. 저자의 말대로 “20세기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지은 외부적 요인은 러시아와 소련의 변화와 흥망”(8면)이다. 2014년 러시아의 돈바스 침공과 2022년 2월 확전의 경과를 아직 모르는 시점에서 서술되었기에 이 책은 러시아와 우끄라이나의 갈등을 열린 시각에서 다룰 수 있었다. 저자는 러시아와 우끄라이나 갈등의 오랜 역사를 놓치지 않았지만, 그것에만 갇히지 않고 우끄라이나 내부의 서로 다른 흐름과 과정을 성공적으로 잇고 엮는다.

이 책은 우끄라이나의 자연환경과 민족 구성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중세 시기 키이우 루시 공국의 건설과 블라지미르 1세의 기독교(그리스정교) 국교화(988년)부터 2010년 2월 25일 야누꼬비찌의 대통령 당선까지를 시기별로 담았다. 제목이 말하듯 이 책은 현대사에 집중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우끄라이나의 독립 시도와 실패 원인에 관한 내용이다. 1917년 러시아 2월혁명부터 1922년 6월 볼셰비끼 군대가 키이우로 재진입할 때까지의 시기는 우끄라이나 독립과 국가 건설의 출발이자 원천 경험이었다. 같은 시기 구 제국들의 붕괴를 배경으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핀란드 등이 신생 독립국으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우끄라이나의 국가 건설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저자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민족의식과 리더십 및 효율적 행정체계의 결여 등의 내부요인, 그리고 폴란드와 소련의 개입 등 외부요인을 실패의 원인으로 들었다. 나아가 외부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민족국가 건설 의지의 내적 결여 역시 부각한다. 코자키 국가 시대부터 19세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끄라이나 민족의식이 등장·발전했지만, 그것이 20세기 전반기에 더 강력한 민족운동이나 집단정체성으로 성장하지 못한 점을 주목한 것이다. 결국 그 근대 민족의식의 태동이 1991년 소련 붕괴 후 우끄라이나 독립국가를 출발시킨 원천이었다.

이 책은 주로 정치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제사를 보충하는 것에 그쳤기에 아쉬움이 없지 않다. 특히 민중의 민족의식이나 독립 지향의 발전 과정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회사나 일상사 또는 기억문화 같은 내용이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연결이 어색한 대목도 눈에 띈다. 저자는 1991년 우끄라이나 독립이 소련 해체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주어졌기에 우끄라이나 지역 주민들의 민족적 자의식이나 지배 엘리트들의 사명감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이 우끄라이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한다. 또 1989년 초 ‘루흐’(우끄라이나의 체제비판 연대조직)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의 활동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1990년 하반기 주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독립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193면)고 주장한다. 우끄라이나 국가 건설과 주민들의 국민정체성 형성의 관계에 대해 좀더 명료한 서술이 필요해 보인다. 같은 시기 동유럽이나 발트3국의 강렬한 국민국가 재창출과 비교하면 우끄라이나의 미지근한 상황을 더 잘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동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던 체제전환과 국민국가 (재)형성의 초국사(transnational history)적 맥락 등 비교사적 지평을 살폈더라면 유익했을 것이다.

시기 구분도 인습적이라 아쉽다. 우끄라이나의 특별한 곡절과 독특한 질곡을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이 책의 2부는 양차 대전과 전간기를 나누어 10년 단위의 연대기적 구분에 기초해 서술되는데, 부제인 ‘소련 시대의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그 시기를 철저히 소련사의 맥락에서 서술한다. 3부는 대통령과 총리 재임기간에 따른 정치권력 교체 시기로 나누어 서술되는데, 그 결과 특별한 의미와 영향을 지닌 사건이나 과정이 평면적 시기 구분에 묻혀 잘 드러나지 못한다. 대기근과 대숙청, 나치 점령과 동조, 체르노빌 사건과 독립, 올리가르히(러시아의 신흥 재벌세력)의 역할과 오렌지혁명 등도 역시 압축적으로 다루어진다. 그 사건들의 무게와 영향을 생각하면 그것을 시기 구분에 반영하거나 특별히 주목해 상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끄라이나의 현재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상당히 유익하다. 저자 허승철은 자신이 역사학자가 아님을 밝히며 겸양을 보이지만, 여느 역사가들의 저술 못지않게 사건과 과정의 맥락을 잘 포괄한다. 구조는 짜임새가 있고 서술은 정연하다. 통계는 적절하고 정보는 풍부하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뚜렷하지만, 그것이 평가를 흔들지는 않는다.

저자는 독립 후 최근까지 우끄라이나가 겪는 내정 혼란과 외교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우끄라이나가 신생 독립국으로서 통과해야 하는 국민적 집단학습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끄라이나의 핵심 과제를 “변동하는 유라시아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을 갖추는 것”(341면)이라고 말한다. 우끄라이나는 그 능력을 갖추기 전에 ‘러시아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우끄라이나에 필요한 외교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들어야 한다. 우끄라이나의 지난한 역사를 알면 지금의 전쟁을 무심히 ‘대리전’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우끄라이나가 그저 고래들 사이의 새우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우끄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추진도, 우끄라이나를 겨냥한 러시아의 지역 패권 실천도 모두 그곳 정치가들의 결정 및 주민들의 선택과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졌다. 우끄라이나 사회 내부의 친서방과 친러시아 세력의 대결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면 그 갈등의 극복도 우끄라이나 정치가들과 주민들의 지혜와 능력에 달려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우끄라이나에 대한 지정학적 결정론을 극복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21세기 그 ‘새로운 그리스’가 ‘동방의 전제정’에 맞서 분투를 벌일 이유가 없게 되기를 기대해보자. 번성했던 고대 그리스가 결국 델로스와 펠레폰네소스 두 동맹의 혈투 때문에 파국으로 치달았음을 기억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언젠가 이 책이 ‘아름다운 하늘과 비옥한 땅’이 스스로 빛나고 그것을 통해 주변도 빛내는 새로운 ‘현재의 전사(前史)’가 되기를 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