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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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孫宅洙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붉은빛은 여전합니까』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등이 있음.

ststo700@hanmail.net

 

 

 

바다의 입술

 

 

섬에서는 시가 되질 않는다

바다가 이미 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짓, 그렇긴 하다만

섬을 어떻게 번역해볼까를 놓고

나는 끙끙거리는 중이다

되질 않는다 바다 빛도 수평선에 내리는 노을도

후박나무 잎을 스치는 바람도

그 무엇도 도무지 되질 않는 것들의 목록만

몽돌 사이로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물거품을 일으킨다

아름다움이 고통이라는 걸 알면서도 섬에서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바다 앞에 선다

바다의 입술을 술처럼 마신다

적어도 여기선 케케묵은 내가

중심을 잃고 파도 따라 출렁이기라도 하지

모래성을 쌓고 환하게 무너져 내리기라도 하지

성을 지키는 일로만 늙어가고 있는 나여

섬에 가는 건 잃어버린 불가능 앞에

불가능의 벼랑 앞에 나를 세워두는 일

수평선에 걸린 해가 목젖처럼 떤다 떨며

떠오른다 아아아 모음으로 크게 벌어진

해식동굴을 빠져나가는 바람소리,

나는 새삼 바닷가 바위의 말을 떠듬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