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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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申美奈

1978년 충남 청양 출생.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등이 있음.

shinminari@naver.com

 

 

 

바람 주머니가 부풀 때

 

 

언니들은 비밀이 많고

금요일엔 주름이 많은 치마를 입었지

가장 좋은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흔들리는 높은 구두를 신고 뾰족하게 웃었네

 

나도 따라가고 싶어

금요일 밤

미러볼이 돌아가는 여름밤의 공연장

드럼 치며 노래하는 가수를 보고 싶어

 

넌 아직 어려

더 크면 주머니를 갖게 되겠지

남자들이 등 뒤에 감춘 시시한 약속을

이 말을 남긴 채 도시로 떠났네

 

주머니 속에는 시를 쓴 종이가 있는데

언니들을 슬프게 만드는 시가 있는데

여름휴가는 짧고

동생이 시를 써서 언니들은 기쁘다고 말하고

시를 쓰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아

 

언니들을 시로 써도 될까

사탕수수밭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굴뚝 사이로 물결쳐오는 문장들을

 

언니는 풀었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으며

머릿수건을 두르고

식판을 들고 배급받는다 밥과 국을

구두는 금요일에만 꺼내 신었네

반짝이는 건 죄다 옷장 속에 숨어 있지

 

새들이 한꺼번에 수풀에서 솟구칠 때

바람 주머니는 고요히 부풀고

 

뭔가 시작되려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지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