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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선영 吳善映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모두의 내력』 『호텔 해운대』 등이 있음.

greenz45@naver.com

 

 

 

안평

 

 

“얼마나 더 가야 해?”

허리를 틀어 버스 뒷자리에 앉은 은하를 불렀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이 어디에 있는지, 너는 답을 알지 않냐며 에둘러 물었다.

“바로 앉아. 코너 돌 때 넘어져.”

그렇게 말하는 은하는 조금 전까지 내가 취했던 자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등받이 깊숙이 엉덩이와 허리를 붙여 앉고, 한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았다. 통로를 향해 뻗은 다른 손은 보라색 캐리어에 닿아 있었다. 버스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갈 때마다 바퀴 달린 28인치 캐리어도 덩달아 춤을 췄다. 캐리어가 도망갈까 싶었는지 은하는 가방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앉았다. 은하의 표정과 태도만으로 답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너도 모르는구나. 지금의 상황을 나보다 더 낯설어하는 은하를 보며 묘한 안도를 느꼈다. 그러다 은하가 집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미리 알려주었다 한들 뭐가 바뀌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집의 상태,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내겐 선택권이 없었고, 나는 굶주린 짐승처럼 어떤 것이든 덥석 물어야 했으니까.

경사로를 힘차게 올라간 버스가 종점에서 멈췄다. 출입문이 열리자 승객들이 몸을 일으켰다. 여태껏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기사가 운전석에서 일어나 좌석으로 다가왔다.

“제가 할게요, 어르신.”

하얗게 머리가 센 여자 승객의 시장바구니를 받았다. 익숙한 태도와 몸짓으로 탑승객의 짐을 차례차례 밖으로 옮겼다. 승객들 역시 이런 서비스와 배려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서 뒷문으로 내렸다. 나와 은하가 마지막으로 하차했다.

“이거 138번 시내버스 맞아? 서비스가 거의 리무진급인데?”

은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와 은하를 제외하고 종점에서 내린 승객 전부가 육칠십대로 보였다. 허리를 반쯤 구부린 노인이 낡은 천 가방을 둘러메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바퀴가 두개 달린 장바구니를 보행보조기처럼 밀면서 걸어가는 이와 유행이 지난 등산복을 입고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 ‘젊은’ 노인도 있었다.

“여기서 더 가야 해.”

구글맵을 살펴본 은하가 앞장서 걸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불분명한 도로가 산을 향해 나 있었다. 그 도로를 기준 삼아 고르지 못한 길들이 모세혈관처럼 퍼졌다. 골목마다 지붕이 낮은 집들이 촘촘히 앉아 있었다.

그늘 한점 없는 길을, 나는 은하의 발뒤꿈치를 보며 걸었다. 국토대장정에 참석한 단원처럼 걷는 데 집중했다. 등과 겨드랑이가 땀으로 축축했다. 백팩의 어깨끈이 자꾸 흘러내려서 가슴 앞의 버클을 잡아당겨 채웠다. 가방이 몸에 더 단단하게 밀착되었는데, 마치 나선형의 껍데기를 짊어진 달팽이가 된 느낌이었다. 캠프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단원이 아니라 집을 지고 평생을 옮겨다니며 사는 손톱만 한 연체동물 말이다.

“손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셨습니다. 이상으로 내비게이션을 종료하겠습니다.”

은하가 로드뷰를 확인하고는 두 손으로 한 집을 가리켰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문과 빈 명패, 잿빛의 시멘트 벽돌을 쌓아 올린 담이 보였다. 그 담을 지지대 삼아 어지럽게 뻗은 담쟁이덩굴, 잡초가 무성한 마당, 그리고 빨간색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집. 지붕 너머 가을 산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눈앞의 광경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썰렁하기는 할 건데, 그래도 공기 좋고 층간소음이 없어서…… 네가 쓴다고 아버지 회사 분들이 전기랑 수도 연결도 다시 해놓으셨대. 예전 집만큼 편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지낼 수는 있을 거야.”

은하가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내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지, 자존심을 다친 건 아닌지, 공짜로 집을 제공하면서 전전긍긍했다. 다정한 배려와 세심함은 은하의 강점이자 특기였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했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 은하의 입에서 도영이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도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인물처럼 나와 은하의 대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배려하는 은하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은하가 좀더 철저하게 나를 배려해주길 원했다. 은하의 서툰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내겐 고스란히 읽혔고, 나를 보호하는 은하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역설적으로 내 감정과 태도를 속여야 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지만 내 말투가 어색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은하가 다른 말을 할까 싶어 나는 철문을 먼저 밀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서 쇠냄새가 났다. 은하가 캐리어를 들고 철문 턱을 넘었다. 가방 안에는 내 물건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집 안은 서늘했다. 먼지인지 곰팡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녔다. 생활의 흔적이 삭제된 냄새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한 은하가 비명을 질렀다. 서둘러 제 입을 막고 창문을 열었다.

나는 조심스레 집 안을 둘러봤다. 직사각형의 방 두개와 욕조가 없는 화장실, 문이 한짝 떨어진 싱크대와 작은 거실이 전부였다. 색이 바래 누렇게 뜬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엔 벽지와 비슷한 색의 종이장판이 깔려 있었고 천장에는 조도가 낮은 백색 형광등이 매달려 있었다. 안방으로 사용한 듯한 곳에는 방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자개농과 같은 디자인의 좌식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인테리어를 거론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 집이 전에 살던 5층 빌라보다 크고 넓었다. 마냥 웃을 수도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는 상황에 입맛이 썼다.

나는 수건을 꺼내 바닥과 화장대를 닦았다. 은하가 물티슈를 들고 쫓아왔다.

“이 집은 왜 사신 거야? 살지도 않으시면서.”

백팩에서 화장대로 트래블 파우치를 옮기며 무심히 물었다.

“이 마을이 재개발, 재건축된다는 말이 있어서 예전에 투자 삼아 사놨대. 오는 길에 본 것처럼 여기 집들이 오래됐잖아. 전부 허물고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는데 재개발이 무산됐고. 아파트를 새로 지어도 사람들이 고지대라서 오기 싫어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다시 부동산에 내놨는데 들어온다는 사람도 없고, 팔리지도 않고.”

나와 나란히 앉은 은하가 캐리어에서 물건을 꺼내며 대답했다. 1+1 행사상품을 샀더니 하나가 쓸모없게 되었다는 듯이.

“그렇구나.”

나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지 못해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은하가 이 도시에서 가장 값비싼 아파트의 고층에 산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그들의 세계에선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듯 부동산을 쇼핑하는 행위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은하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캐리어 속 물건을 꺼내는 데 집중했다.

쌓이는 물건에 맞춰 나의 의문도 벽돌처럼 쌓였다. 거주하지 않을 집을 투자용으로 사놓는 사람에게 전세금 사기를 당한 사람은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악덕 부동산중개인이나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집주인이 아니라 믿었던 친구에게라면. 전세금의 삼분의 이를 내고도 동거인과 계약서 한장 쓰지 않은 나의 우정과 순정을 비웃을까, 배신과 도주가 잘못이라며 동거인을 비난할까? 높게 쌓인 벽돌이 길을 만들었다. 나는 이 길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일이 발생한 후로 하루에도 몇번씩 정차하는 벽돌로 된 성이니까. 들어가면 공회전만 하는 종착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달팽이집 같은 백팩을 메고 이곳에 왔으니까.

“짜잔, 이사 온 날은 역시 짜장면이지!”

은하가 캐리어 속에서 짜장 컵라면 두개를 꺼냈다. 배달 앱을 쓸 수 없는 곳일까봐 미리 준비를 했다며 셀프 칭찬을 했다. 나는 양손의 엄지를 척, 들었다.

 

캐리어에서 싱글침대 매트커버를 꺼내 요처럼 깔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누워본다. 그치?”

산속 펜션에 놀러 온 것처럼 은하가 들떴다. 우리가 처음 만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를 시작으로 지난겨울에 갔던 강릉까지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 이번 일을 잘 해결하고 나면 베트남의 몰디브라 불린다는 푸꾸옥에 다녀오자고 말했다. 은하와 도영, 나 셋이 간 곳이었다.

기숙사 공동 샤워장에서 알게 된 도영을 내가 은하에게 소개해줬다. 같은 과는 아니어도 동종 계열이라서 통하는 게 많았다.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도영을 은하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도영과 내가 생활습관이 다른 룸메이트에 대해 성토하면 집에서 통학하는 은하가 입을 삐죽였고 셋이 걸을 때면 내 팔짱을 은하가 먼저 꼈지만, 우리 셋은 늘 붙어다녔다. 취업하고 돈을 좀 모은 도영과 내가 전세금을 합쳐서 빌라로 이사 갔을 때도 가장 먼저 축하해준 사람이 은하였다.

그런 은하가 이제는 도영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차라리 나쁜 년이라고 욕을 하면 나을 텐데. 그럼 나도 나쁜 년! 하면서 악다구니를 쏟아부을 텐데. 실컷 욕을 하고 나면 도영이 덜 미워질 듯했다. 이해하거나 용서할 순 없어도 원망의 크기는 조금 줄어들 것 같았다.

은하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세례를 베풀듯이 흰 손을 내 가슴 위에 올렸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나보다 더 나를 위로했다.

“그래야지.”

이번에도 나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지 못해 기계적으로 답했다.

방 안이 적막했다. 창문을 닫아둔 탓인지 미세한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니다. 창문을 열어둬도 고요할 거였다. 골목을 지나는 행인이나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심야할증이 붙은 택시가 이곳엔 없으니까. 문득 5층 빌라의 층간소음과 주정뱅이의 고성과 도로를 다급하게 달리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리웠다. 불면으로 가득 찬 도시의 밤이 애틋했다. 이 밤, 뜬눈으로 지새우는 사람은 나뿐일까. 마을의 모든 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든 걸까. 상상과 망상들이 벽돌길 종착지를 향해 질주했다.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은하야, 자?”

답이 없었다. 나는 은하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확성기를 사용한 것처럼 크게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은하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혹시라도, 그러니까 혹시라도 악의 없이 진실을 말하는 네가 미워지는 순간이 오면 이 밤을 떠올려야지 싶었다. 세상이 싫어지고 분노가 나를 온통 지배할 때 내 옆에서 무방비로 자던 너를 먼저 기억해야지, 다짐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숨을 푸우- 내쉬다가 흐흡- 하고 마시는 것 같았다. 서서히 볼륨을 높이는 것처럼 소리가 커졌다. 자개농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커튼이 없는 창문을 쳐다봤다. 도심에서 일어나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발생한 사건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 같은 말을 되뇌면서 얇은 창문과 낡은 창틀을 봤다. 달빛 아래에서 나뭇잎들이 몸을 비볐다. 다시 들리는 소리.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벽.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았다. 꿈인가 싶어 두 눈을 세게 비볐다.

 

*

 

버스 종점에서 은하를 배웅했다.

“어젯밤에 소리 들었어?”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아니야.”

서둘러 대화를 끊는 나를 은하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밤의 소리가 방음이 안 된다는 불만으로 들릴까 싶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담에는 형근이 차 타고 올게. 사실은 버스가 너무 흔들려서 멀미 났거든.”

아버지가 차를 사준다고 해도 운전이 무섭다는 은하였다. 평소 근거리는 가족이나 남자친구인 형근이 차로 이동한다고 했다. 나는 은하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했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싶었지만 그 말을 듣기 전까지 고려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지금의 내 형편은 물론이거니와 이전에도 대중교통이 익숙했다. 나는 버스 타이어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연락할게.”

은하가 버스에 오르며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었다. 창문을 열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두 눈에 미안함과 아련함이 가득했다. 비탈길을 내려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있다가 나는 자리를 떴다.

가을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날이었다. 나는 천천히 마을을 걸었다. 엇비슷한 집들이 하나의 담을 공유하면서 늘어서 있었다. 단층집을 2층, 3층으로 불법 개조한 집들이 보였다. 폭이 고르지 않은 계단과 크기가 다른 바닥 타일들, 대문 앞에는 채소를 심어놓은 스티로폼 상자들이 택배처럼 놓여 있었다. 마을 초입에는 잔치국수와 정식을 파는 백반집, 자잘한 생필품을 파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몸통이 굵은 보호수 아래에서 남자 노인들이 장기를 뒀다. 옆 평상에선 똑같은 파마머리를 한 여자 노인들이 휴식을 취했다. 목줄을 안 한 개들이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걸으면 걸을수록 기이했다. 여태껏 이 도시에 이렇게 고요한 마을이 있는 줄 몰랐다. 숨은 명소라고 하기에는 평범하고 외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곳이었다. 마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여유와 쉼, 낭만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가 결핍되고 무언가가 과잉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도영인 연락 없어?”

전 집주인이었다. 친근함을 가장해 반말부터 하는 버릇이 여전했다. 안부 인사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직요.”

“그러니까 그때 도영이가 선주랑 이야기 다 된 거라고 해서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 둘이 사이가 좀 좋았어야 말이지.”

전 집주인은 도영의 속임수와 처세에 순진한 자신이 속은 것이라며 변명을 앞세웠다.

“도영이한테 전화 오면 알려주세요.”

도영이 연락을 한다면 집주인이 아니라 은하일 것이고, 은하보다는 내가 먼저일 거라 믿지만. 그래도 도영이 가장 최근에 연락한 순서를 생각하면 예상이 틀릴 수도 있었다. 나는 이제 도영의 속마음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래, 바로 전화할게. 그 돈 들고 가서 얼마나 잘살려고 그러는지…… 근데 선주야. 지금 어디에 있어? 본가로 들어갔어?”

집주인은 마지막에 가서야 안부 아닌 안부를 물었다. 나는 연락주세요라고 답하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다. 전세보증금 전부를 날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기꾼의 말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그들이었다. 잃은 돈보다 돈을 잃은 나를 더 걱정하고 애달파할 거였다. 그들의 맹목적인 기대와 지지, 사랑을 불편해하면서도, 그 부분을 약점 삼아 나는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어왔다. 지방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진학을 했고, 대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지로 이사를 했다. 가끔씩 내 연봉으론 불가능한 여행을 갔고 은하, 도영과 같이 고급 와인을 마셨다. 내가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일만큼은 최대한 오래 숨겨야 했다.

회사에는 며칠 연가를 냈다. 사정을 들은 부장이 푹 쉬고 오라며 돈은 다시 벌면 된다고 위로했다. 인스턴트커피 같은 위로를 믿고 싶어서 나는 탕비실 구석에서 주문처럼 그 말을 따라했다. 도끼눈으로 회사 서류를 재검토해야겠다고 한 건 과장이었다. 내가 작성한 결재서류와 회계 내역에 오류와 누락이 있는지 검산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게 일어난 일이 나의 과실로 벌어진 일이 아님에도 행여 나의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일처럼 회사 일도 구멍이 생긴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며 대놓고 따졌다.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텃밭인지 공터인지 구분이 애매한 장소에서 고양이 서너마리가 햇볕을 쬐었다. 간식을 주고 싶은데 빈 호주머니가 아쉬웠다. 먼발치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워이워이!”

진분홍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 노인이었다. 까맣게 염색한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 블라우스와 동일한 색상의 립스틱을 칠한 모습이 마을 초입에서 보았던 수수한 노인들과 사뭇 달랐다. 한껏 치장을 했으나 촌스러웠다. 그녀가 막대기로 풀숲을 내리치며 외쳤다.

“저기 가, 저리! 고양이 새끼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기운이 젊은이 못지않았다. 나는 담뱃재처럼 굳어서 눈만 껌벅였다.

 

그후에도 종종 그녀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봤다. 막걸리 병을 품에 안고 슈퍼에서 나오는 모습이나 하늘색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텃밭 일을 하는 것을, 해 질 무렵 골목 어귀에 목욕탕 의자를 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말이다. 때론 남자 노인들과 내기 화투를 치고 평상에 앉아서 주민들과 비빔국수를 먹었다.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녀는 발이 빠른 청년회장이나 경조사를 잘 챙기는 부녀회장 같았다. 모두 이 마을에 없는 직책이지만.

그녀와 말을 하게 된 장소는 처음 본 그곳이었다. 공터라고 여겼던 곳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텃밭이었다. 주민의 체력 증진과 사회성 도모, 공동체 회복을 위해 행정복지센터와 구청에서 노지를 정비해 마련했다. 함께 텃밭을 가꾸고 수확물을 나눠 먹자는 취지가 좋았으나, 퇴행성관절염과 척추질환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에겐 또다른 숙제일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시간이 많은 몇몇 노인의 사유지가 되었다.

“먹이 주지 마소.”

등 뒤에서 들리는 낮은 음성에 놀랐다. 막대기와 양동이를 든 그녀가 서 있었다.

“한번 주면 계속 줘야 하는데 그럼 정 들어서 안 돼. 정 들면 계속 온다고.”

“제가 계속 밥 주면 되잖아요.”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서 밥을 줄 순 없었다.

“보아하니 학생 같은데 언제까지 여기 살 건데? 좀 있다가 떠날 거잖아.”

분홍 립스틱을 바른 그녀가 강단있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다.

“정 붙여서 밥 주다가 갑자기 끊으면 쟤들 힘들어서 안 돼. 어차피 야생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애들인데 자기들끼리 먹이 구하게 내버려두는 게 나아.”

그녀는 접시 앞에 몸을 웅크려 앉았다. 유리 접시에 내가 준비한 사료와 물이 있었다.

“밥 주면 좋지. 이렇게 귀여운 애들인데. 근데 계속 책임질 수 없잖아.”

몸집이 제일 작은 고양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본 후에 막대기로 마른땅을 내리쳤다. 워이워이, 저리 가라. 저리! 모래먼지가 뿌옇게 흩날렸다. 흙가루가 분홍 입술에 들러붙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일주일에 세번 이상 같은 장소에 물과 사료를 들고 갔다. 일주일에 두번 이상 그녀를 만났고, 그때마다 그녀는 고장 난 오디오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

 

영상통화 중이었다. 은하가 스마트폰을 들고 방 안을 옮겨다녔다. 유명인의 브이로그를 보듯 나는 화면 너머로 방을 구경했다. 가구와 가전, 장식품이 다 들어가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넓었다.

“예쁘지?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예뻐.”

은하가 몸을 돌려 카메라로 밖을 비췄다. 창문 너머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검은 캔버스 위에 별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였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인 것 같았다. 매일 밤, 은하는 저 풍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낭만적 감상에 젖을까 아니면 지하철 역사 안의 광고판처럼 무감하게 넘길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과 환경들. 미래에도 답을 쓸 수 없는 질문이었다.

몇달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은하 부녀가 제공한 집에 머물렀다. 커튼을 달아도 창틀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샤워부스조차 없는 화장실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조금씩 적응했다. 고층 건물이 없어서 늦은 오후까지 집 안에 해가 들었다. 청소를 끝내고 햇볕이 남은 거실 바닥에 앉아 있으면 마음에도 온기가 돌았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뒷산에서 새가 울었다. 매일 종점에서 138번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출근 시에는 처음부터 앉을 수 있어 편했고, 퇴근 시에는 일정 구간을 지나면 자리가 생겨 좋았다. 도영은 연락이 없었고, 부모님에게는 피해 상황을 숨겼다. 은하와 일주일에 서너번씩 통화를 했다. 다시 오겠다는 은하는 첫날 이후로 이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나는 은하가 오지 않아서 좋았다.

“그 할머니는 계속 고양이들 밥 주지 말라고 해?”

카메라가 전환되더니 마스크팩을 한 은하가 나타났다.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진짜로 나쁜 분은 아냐.”

안부를 묻는 은하에게 길고양이와 그녀에 대해 스치듯 이야기했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그녀가 공동텃밭에서 기른 깻잎과 풋고추를 줬다. 생채소를 받은 내 표정이 개울에 빠진 아이 같았다며, 다음에는 깻잎김치를 만들어줬다. 별일 아닌데,라는 머리말을 달며 마을에 대한 크고 작은 정보와 소문을 알려줬다. 언젠가 야근을 하고 온 밤에는 골목이 어둡다고 집까지 동행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 마을에서 내가 유일하게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엔 할머니가 텃세를 부리는 것 같아. 원래 그런 데 사는 사람일수록 텃세가 심하다고 하잖아.”

마스크팩을 떼면서 은하가 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표정으로 순진하게. 은하의 매끈한 얼굴이 흰 도자기 같았다. 헛웃음이 났다. 네가 말한 ‘그런 데’는 어떤 곳이니? 가슴 저 아래에서 물컹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뜨거운 듯하면서 차갑기도 한, 부정확하고 모호한 감정 꾸러미였다. 엉켜버린 마음과 다르게 분명하게 드는 생각은 나도 이 마을 사람이 돼버린 걸까 하는 섬뜩함이었다. 은하 말에 필요 이상의 반발심과 저항감이 든 것 같았다.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카메라 렌즈를 밖으로 전환했다. 남루한 세간들이 화면을 채웠다.

“참 선주야. 아버지 말씀이 마을에서 무슨 공청회인가, 설명회를 한대. 집주인이나 세입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데, 네가 대신 가주면 안 될까?”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투였다. 텃세와 공청회를 말하는 은하의 태도에는 차이가 없었다.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투였다. 은하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주민 공청회는 행정복지센터 2층 회의장에서 열렸다. 의자마다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출입문 주변에 무리 지어 서 있었다.

“여기야, 여기.”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그녀가 맡아둔 자리에 앉았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안평마을 에코 재생사업 공청회에 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빔 프로젝터를 가동시켰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오늘의 안건들이 나타났다. 남자가 슬라이드를 넘기며 능숙하게 설명했다. 착석한 이들이 시험기간의 학생처럼 집중했다. 그래, 아니야, 그거 말고 등의 추임새를 간간이 넣었다.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시설과에서 가로등을 설치하러 몇번이나 답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골목이 너무 좁고 집을 붙여서 짓다보니까 가로등을 설치할 공간이 안 나옵니다. 건물 쪽에 붙이면 주택 내부까지 불빛이 다 비쳐서 생활하기에 불편하고요. 민원대로 가로등이 적으니 밤길이 어두워서 위험한 일 생기는 것도 문제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설과랑 행정과가 다시 계획을 세워보겠습니다.”

앞줄에 앉은 남자 노인이 손을 들었다.

“파란 대문 집 쪽에 붙여서 설치하면 안 됩니까? 비어 있은 지 오래됐고 이사 올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아니면 정자 옆에 폐가를 부수거나.”

“파란 집을 김씨가 아들한테 상속했다고 하던데.”

남자 노인 뒤에 앉아 있던 또다른 남자 노인이었다.

“김씨가 정신이 나가서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상속을 해?”

“가기 직전에 자식들이 도장 들고 와서 했다고 들었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솟아올랐다. 저마다 품고 있던 내밀한 사정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가정과 추측이 섞인 말들이 진실인 양 흩뿌려졌다. 처음 말을 꺼낸 남자 노인이 삿대질을 하며 개새끼!라고 말했다. 의자를 넘어뜨린 다음 출입문을 박차고 나갔다. 문 앞의 무리는 다른 회의장에 온 것처럼 관심이 없었다.

“공가 허무는 건 지자체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실거주 안 하셔도 소유권자가 있거나, 무허가주택도 무허가건축물 대장에 등록되어 있으면 법의 보호를 받으니까요. 자, 이제—”

“저기요!”

갑자기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소독약 뿌릴 때 텃밭이랑 평상 쪽은 피해주세요. 그쪽에 고양이가……”

“또 나선다. 아직도 그 버릇 못 버렸네.”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한 여자 노인이 말을 자르며 들어왔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혀를 찼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자 노인을 매섭게 노려봤다. 여자 노인도 질세라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흘겨봤다.

“둘이 또 저런다. 좀 말려라.”

옆에 앉은 남자 노인이 여자 노인의 허리를 잡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숨 고르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렸다.

“어르신, 방역 민원도 잘 전달하겠습니다. 다른 의견 없으시면 안평마을 재생 프로젝트의 마지막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문 앞의 무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전에 무산된 재개발·재건축 사업 건입니다.”

남자가 마이크에서 입을 살짝 떼고 뜸을 들였다. 눈짓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슬라이드가 교체되는 사이에 마이크는 빨간 뿔테 안경을 쓴 여자에게 넘어갔다.

“출석 부르겠습니다. 토지소유권과 주택소유권 모두 보유하고 계신 분들부터 부를게요. 김순덕님.”

“네!”

최영복님. 네. 오미희님. 네. 김정자님. 네. 이철만님. 네……

사람들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목을 빼서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내 편인지 네 편인지, 반장선거를 앞둔 후보자처럼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파악했다. 한차례 이름들이 지나간 뒤에 다시 이름들이 나왔다.

“이번에는 건축물만 소유하신 분들입니다. 박순자님.”

“여기요.”

그녀가 대답했다. 이름이 박순자구나. 일상과 반찬을 나누는 사이였지만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못했다. 처음에는 저기요라며 호칭을 생략했고 깻잎김치를 받은 뒤에는 자연스레 할머니 하고 불렀다. 그녀도 내 또래의 손녀가 있다며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걸로 충분하다 여겼는데. 뒤늦게 짝꿍의 이름을 알게 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출석 안 불렀는데 계신 분은 누구세요? 여기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여자를 따라 사람들의 눈이 움직였다. 파도타기를 하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까만 눈동자가 출렁였다. 어느 순간 숨은 암초를 발견한 것처럼 시선을 고정했다.

“거기 학생, 이름 안 부른 것 같은데요?”

“얘는 그런 애 아니에요!”

그녀가 내 팔목을 잡으며 다급히 외쳤다.

“그럼 어떻게 오셨어요?”

검은 눈들이 직선으로 날아와 박혔다.

“저기…… 지금 친구 집에 살고 있는데요.”

웅얼웅얼 말들이 엉켰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럼 세입자세요? 성함이……”

여자가 노트북 옆에 있던 새 파일 더미를 잡았다.

“계약서 쓰고 사는 건 아니고요.”

그뒤로 내가 뭐라고 했던가. 은하 집에 오게 된 경위를 시간순대로 설명했던가, 내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을 염탐하러 온 정보원이 아니라고 부인했던가, 나의 본가와 직장명을 노출하며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던가. 모든 일을 한 것 같고, 하지 않은 것도 같다. 다만 확실한 건 집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은하 이름과 성(姓)을 댔고, 문 앞의 무리 중 누군가가 내가 처음 듣는 은하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은하가 장회장님 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 장회장님. 그 단어 하나에 공청회장에 거칠게 일던 파도가 미지근한 맥주 거품처럼 잦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회의장에 있어도 무방한 사람으로 승인받았다.

빨간 안경테 여자가 회의를 다시 진행했다. 말들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깨졌다. 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암초처럼 미동 없이 자리를 지켰다. 사방에서 짠물이 몰려와 코와 입,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숨쉬기가 버거워 몇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만약 이곳에 은하가 있다면 이번에도 내 표정과 기분을 살피며 걱정해줄까. 너는 왜 이런 부탁을 한 걸까. 태풍이 휩쓸고 간 백사장에는 해초 더미와 쓰레기만 굴러다녔다. 오직 박순자 그녀만이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아줬다.

 

나무 평상에 앉았다. 공청회장을 나온 사람들이 나와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캄캄한 골목으로 주민들이 스며들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전조등을 밝히며 도심으로 떠났다. 마을은 고요해졌다. 나는 캔 식혜를 사서 그녀에게 하나를 줬다. 갈증이 나서 서둘러 마셨다. 차고 단 액체가 입속으로 흘러들었다.

“언제부터 안평마을에 사신 거예요?”

“오래됐지. 돈 벌려고 와서 결혼하고 애 낳고…… 목돈 모으면 바로 이사 가려고 했는데 이때까지 살 줄 몰랐네.”

그녀가 뭉툭한 손톱으로 캔을 땄다. 분홍색 매니큐어가 반 이상 벗겨져 있었다.

“그때 내가 상경한다고 마을에 소문이 다 났어.”

“할머니, 상경(上京)은 아니죠. 여기가 서울이 아닌데.”

“무슨 소리야. 시골에서 도시로 가면 다 상경이지. 아무튼 중학교 졸업식장에 신발공장 버스가 와서 우등 졸업생들을 태우고 도시로 왔어. 공장에서 지은 기숙사도 제공해주고. 졸업장 없는 애들은 공장에 들어가려고 십장한테 웃돈 주고 그랬다니까. 기숙사는 당연히 못 들어가지만.”

옛날 일이 생각이 난 듯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주름 사이로 폭, 들어간 보조개가 보였다. 보조개가 있었구나. 이름을 알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놀랐다. 노인과 보조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그녀가 식혜를 소주처럼 홀짝 마시고는 하늘을 봤다. 나도 고개를 들었다. 어둠이 깊은 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몇개의 별을 연결하니 누구나 알 법한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쏟아질 듯한 은하수나 신비한 오로라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이 머물렀다. 우주 어딘가에서 타오르고 있는 차가운 불덩이를 떠올렸다. 내가 미처 가닿지 못할 어떤 시간을,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을 상상했다.

값싼 노동력으로 굴러가는 신발공장 주변에 또다른 신발공장, 고무공장, 운동화 끈이나 밑창 제조공장이 생겼다. 타지에서 온 이들이 산비탈을 따라 무허가 집을 지었다. 비바람을 간신히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열악하고 조잡한 집이었다. 주민들은 이곳에 살면서 산비탈 아래 저곳을 꿈꿨다. 저곳으로 이동하지 못한 이들과 이곳을 저곳이라 여기며 이주한 이들로 마을은 커졌다. 임계점이 없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남편 죽고 공장 다니면서 애들 학교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돈 모아서 식당 차리고 이사했는데 나는 계속 다녔어. 국제신발 다니다가 삼화로 옮기고, 또 태화로 가고. 이것도 기술이라고 계속하니까 돈을 더 주더라고. 지금도 그걸로 먹고살잖아.”

그녀는 부업으로 운동화 밑창 붙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초노령연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사는 노인들과 다르다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신발산업이 쇠퇴하면서 관련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안평마을도 서서히 쪼그라들었다. 작고 작고 작아져서 소실점이 되어갔다. 그나마도 희미해서 확대경으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주민들이 떠나고 빈집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언론에선 지방 소멸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안평마을을 소개했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연초 한개를 입에 물고 내게도 주었다. 매캐한 담배 향이 우리를 감쌌다.

“마을 살리려고 아파트 지을 거라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여기 사람들 거기 아무도 못 들어가. 그래서 예전부터 반대한 건데, 망할 명덕이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말만 하면 흥분해서 째려보니. 나한텐 이제 여기가 고향이잖아. 내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 그래도 선주야, 얼른 돈 벌어서 이사 가. 친구 너무 미워하지 말고.”

“……”

“너무 미울 때 나쁜 년이라고 열번씩 해. 그럼 괜찮아지더라.”

“나쁜…… 년.”

“참지 말고 말해. 그래야 살 수 있다.”

“……”

“고양이들 밥은 내가 줄 테니까 걱정 말고.”

그녀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가슴 한편이 뻐근해졌다. 긴 시간 동안 이 말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몇번이나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그런데 할머니, 밤마다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화제를 돌렸다.

“소리?”

“푸- 하고 바람 빠지다가 흐흡- 하고 마시는 소리요.”

푸, 흡, 푸, 흡.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다시 폈다. 푸흡, 푸흡, 푸흡. 그녀가 흉내를 낼 때마다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와 허연 입김이 섞여 나왔다.

“그 소리 알지.”

“진짜요? 그게 뭐예요?”

나는 엉덩이를 붙이며 바짝 다가앉았다.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오늘따라 많이 웃었다. 그녀가 팔을 뻗어 내 어깨를 감쌌다.

“집이 숨 쉬는 소리. 선주가 와서 집이 살아났네.”

푸, 흡, 푸, 흡. 푸흡, 푸흡, 푸후후흡.

잠들어 있던 집들이 일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빨간색 슬레이트 단층집이, 파란 대문 집이, 골목 입구의 무허가 집이, 정자 옆의 폐가들이 단체로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푸흡, 푸흡. 벽들이 부풀어 오르고 마당의 잡풀들이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로 변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사방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고요하던 마을에 피가 돌고 물이 차오르는, 안평(安平)이었다.

 

*

 

나는 안평마을에서 6개월을 더 살고 나왔다. 보증금과 월세를 받지 않은 은하 아버지 덕에 월급의 일부를 모을 수 있었다. 원룸 보증금이 모이자 이사를 했다. 창문의 반 이상을 앞 건물이 막고 있어서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퇴근길에는 퉁퉁 부은 다리로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근처에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고, 한밤중에 야식을 시킬 수 있었다. 밤이 되어도 문밖은 불야성이었다.

“집 빌려줘서 고마웠어.”

은하가 쑥스러워하더니 다음에도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이사 선물로는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은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너는 참 한결같구나. 너를 한결같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가, 이내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섣불리 너의 의중을 파악하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보다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낫다는 걸 알았다.

“돈 더 모으면 수도세랑 전기요금도 갚을게.”

“그럴 필요 없는데…… 네가 편한 대로 해.”

은하가 평소와 동일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후에도 우리는 만났다. 베트남 푸꾸옥을 가지는 않았으나 소소하게 쇼핑을 하고 웨이팅이 긴 맛집을 찾아다녔다. 여전히 도영의 자리는 구멍으로 남았다. 그건 은하와 나의 노력으로 메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흉터를 지닌 채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셨다. 우리의 관계가 예전과는 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도영이 생각나는 날에는 나쁜 년을 열번씩 반복했다. 열번이 아홉번이 되고, 여섯번이 되었다. 어느날에는 한번도 말하지 않고 잠들었다. 그렇다가 문득, 밤하늘이 대낮처럼 달아오르던 그 밤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다. 편의점에서 캔 식혜를 사 먹어도 목이 말랐다. 그럼에도 안평마을에 가기를 주저했다. 이곳을 산비탈 아래 저곳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살았다. 나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믿었다.

 

어느 주말,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안평마을, 재개발 사업 박차를 가하다—원주민 대부분 이주’라는 제목을 봤다. 기사를 클릭했다. 내가 알고 있는 장소와 마을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사를 읽고, 다른 기사를 찾아 읽었다. 비슷비슷한 논조의 글들을 읽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작정 안평마을로 갔다.

마을은 달라져 있었다. 보호수 아래 나무 평상이 사라졌고, 백반집과 작은 슈퍼는 폐업했다. 대문 앞에 내놓았던 꽃 화분과, 상추, 고추 모종을 심은 상자도 없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골목길, 벽에는 붉은 페인트로 ‘공가’ ‘폐가’라고 휘갈겨놨다. 무너지고 파괴된 집들, 뒤틀린 대문과 뿌리째 뽑힌 나무들. 공동텃밭은 텃밭이라 말하기에 참혹할 정도로 황폐했다. 안평마을이 만들어지고 지속되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붕괴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은하 부녀의 집은 사라졌다. 재개발 사업이 확정된 후에 가장 먼저 부숴버린 건지, 벽돌 한장 남지 않은 말끔한 공터가 되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았다. 이 집에서 보낸 날들이 전생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떠도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은하 아버지도 지금 모습을 봤을까. 은하는 재건축 소식을 들었을까. 여긴 내 집이 아닌데, 나는 계약서 한장 쓰지 않고 무상 거주했을 뿐인데. 왜 여기에 온 것일까. 미루고 미뤄두었던 마음,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감정들. 닫아두었던 상자를 열어야 할 때였다.

그러니까 그녀, 박순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직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곡선으로 돌아가며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달리는 마음과 반대로 발걸음은 무거운 닻을 단 것처럼 느렸다. 마지막 모퉁이를 앞두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거기에 집이 있었다. 아직 허물지 않은 박순자의 집이.

나는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 여는 소리에 마당에 있던 고양이 서너마리가 빠르게 도망쳤다. 푸르죽죽하게 곰팡이가 슨 벽과 풀이 무성한 마당, 지붕에서 떨어진 슬레이트 조각. 그녀가 살고 있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굳이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아도 그녀의 부재를 알 수 있었다. 무참할 정도로 햇볕이 좋았다.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두 눈이 시큰해서 나는 몇번이나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마당 한쪽에 능소화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노랗고 하얀 꽃송이가 징그럽도록 생생했다.

집 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틀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고, 싱크대는 바싹 말라 있었다. 운동화 밑창 본과 쪽가위, 뜯어낸 실밥이 거실에 굴러다녔다. 자개 화장대 위에 그녀가 처방받은 약봉지가 있었다. 약품명을 읽었다. 소염진통제, 근육이완제, 퇴행성관절염제, 신경안정제. 그녀는 이곳에 없었다. 자식들이 와서 집으로 모셔간 걸까, 아니면 요양병원으로 가신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약봉지 옆에 그녀가 자주 바르던 분홍색 립스틱이 있었다. 뚜껑을 열었다. 반 이상이 남았다. 립스틱도 못 챙기고 어디로 간 건지. 어지러웠다. 그녀가 사라진 것이 내 탓이 아닌데도 나의 잘못 같았다. 상상과 망상들이 벽돌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갔다. 공회전만 반복하는 종착지로부터 나는 빠져나왔는데, 탈출하기 위해서 안평마을에서 다시 도망쳤는데. 나의 불안한 상상력은 그곳으로 질주했다.

“나쁜 년.”

수신인이 없는 욕을 혼자서 했다. 열번씩 세번을 반복했다. 박순자가 없는 집에서, 마지막을 앞둔 마을에서.

푸- 후- 흡-

그때였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푸우- 내쉬다가 흐흡- 하고 마셨다. 내가 아는 소리였다. 귀를 기울였다. 감각을 전부 깨워서 집중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벽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방바닥에 앉았다. 차가운 바닥이 체온으로 따뜻해지기를 원했다. 피가 돌고, 물이 차오르며, 살이 찌기를 바랐다. 푸흡, 푸흡, 푸후후흡, 두 볼이 터질 정도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배가 납작해지게 내뱉었다. 열번씩 세번을 반복했다.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집이 숨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