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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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캠프 데이비드 이후의 한미일 군사협력과 동북아 평화

 

 

김종대 金鍾大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저서 『안보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등이 있음.

jdkim2010@naver.com

 

 

무능한 패권자와 불타는 세계

 

2021년 7월 중순 마크 밀리(Mark A. Milley) 당시 미 합참의장은 “카불은 싸이공이 아니다”라며 탈레반이 30만 정규군을 보유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붕괴시키지 못한다고 호언장담했다.1 그로부터 한달 후 카불은 탈레반 손에 장악되었다. 자신이 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같이 끝나는 전쟁처럼 치욕스러운 일도 없다. 미군은 거의 모든 자산을 버리고 카불공항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미국으로서는 베트남전쟁보다 치욕스러운 패배다. 2022년 2월이 되자 더한 일이 벌어졌다. 마크 밀리는 다시 한번 “러시아가 우끄라이나를 침략하면 끼이우는 72시간 이내에 함락될 것”이라며 우끄라이나를 방어할 대책은 없다고 발언했다.2 2월 24일 러시아가 끼이우 북부를 침공했을 때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볼로지미르 젤렌스끼(Volodymyr Zelensky) 우끄라이나 대통령을 독일로 망명시키려고 했다. 당시 끼이우 시내에서는 러시아 특수군의 알파팀이 미니버스를 타고 젤렌스끼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젤렌스끼 대통령이 우끄라이나를 떠나지 않는 데 대해 크게 화를 낸 바이든 대통령은 재차 ‘무조건 국경 밖으로 탈출시키라’고 지시하여 미군 특수부대 헬기가 끼이우 인근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우끄라이나는 완전히 망한 나라였다. 그러나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끄라이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망하는 정부는 안 망한다고 하고, 안 망하는 정부는 망한다고 하던 미국의 군 서열 1위는 이후 어떤 해명도 없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한 2023년 10월 7일로부터 5일 전,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년 이래 중동이 지금보다 평화로운 적은 없었다”며 다가올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협상을 낙관했다.3 이 협상만 이루어지면 미국은 인도-태평양-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평화와 번영의 회랑이 탄생했다며 축포를 터뜨릴 참이었다. 중동에서의 데땅뜨 상황이 안정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 집중할 작정이었다. 설리번 보좌관의 천진난만한 꿈같은 이야기가 나온 직후 중동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만에 가장 끔찍한 전쟁터로 변했다. 분쟁은 가자지구를 넘어 레바논과 서안지구, 예멘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어디가 전쟁터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바이든 정부는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적 비전이나 체계적인 전략 없이 자유주의 질서를 재구성하겠다면서 함부로 지정학을 소환해왔다. 이럴 경우 잠재된 분쟁이 거대한 분화구로 분출될 위험이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분쟁을 예측하거나 예방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분쟁 억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불량국가나 세력에 대한 각종 규제를 남용했고, 자신의 관점대로 국제질서를 변경하려고 했다. 지난 20년여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동유럽으로 부문별하게 확장해온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시절부터 이란에 대해 불필요한 제재를 행사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치한 채 섣부른 중동 평화협상을 추진했다. 이러한 일련의 질서 변경 시도는 곳곳에서 강력한 지정학적 역풍을 불러왔으며 그 결과 세계는 훨씬 위험해졌다. 세계와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오판은 미국이 국가나 집단의 분노, 상실, 충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즉 개발도상국들은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면계약으로 백신을 독차지하고 기후위기에 약속한 자금을 국제기구에 기부하지 않는 북반부 국가의 리더 미국의 규칙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미 백악관과 국방부는 아직 어떠한 전쟁 징후도 발견되지 않는 대만해협에서 2027년에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필립 데이비슨(Philip Davidson) 전 인도태평양사령관, 윌리엄 번스(William Burns) CIA 국장이 번갈아 언급한 2027년 대만위기론4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대결을 축으로 한 동북아 질서 변환의 방아쇠가 되었지만, 이 위기론에는 어떤 근거도 없다. 미국이 대만해협 충돌의 징후로 제시한 각종 사례들은 대부분 시 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말 한마디였다. 2022년 시 진핑이 통일의 위업을 강조하며 “무력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부터5 급속히 증폭된 대만해협에서의 충돌론은 2023년 3월 중국 입법원 개원식에 나온 시 진핑이 서방의 압박에 결연하게 투쟁하자는 의미로 “감어투쟁(敢於鬪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부터 구체화됐다. 여기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미국 언론에서 ‘교전’(fight)으로 번역되자 여론은 “시 진핑이 전쟁준비를 지시했다”며 들끓었다. 그러나 대만해협에서의 위기에 대비하라는 시 진핑의 지침은 10여년 전부터 매해 반복되어온 메시지다. 입법원 폐막연설에서 시 진핑은 “미국과 서방의 포위에 결연하게 맞서자”는 문장을 낭독하기도 했는데, 과거와는 달리 미국을 콕 집어 구체적으로 지칭했다고 본 미국 보수 매파들은 파국이 임박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시 진핑을 두번이나 언급하며 공격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전쟁준비라고 한다면 중국군의 교리나 전투배치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포착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도박을 감행할 만한 극도의 적개심이나 집단적 충동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징후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전 세번의 전쟁에서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 미국은 유독 중국에 대해서는 위기 가능성을 부풀리며 각종 워 게임(war game)이나 전쟁 시나리오를 통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사라졌다는 비관적 전망을 지속적으로 유포해왔다.

 

 

부풀려진 위기론과 극동에서의 미 군사체제 변혁

 

2023년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3종 문서, 즉 「캠프 데이비드 정신」 「캠프 데이비드 원칙」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은 한미일 삼국의 집단방위체제가 탄생하는 분기점이다.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에서는 삼국에 “권리나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며 나토와 같은 다자동맹이 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정상회의 이후 한국과 일본은 이 문서가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의 삼각동맹)와 같은 협정이 아니기 때문에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이라고 스스로 격을 낮추었다. 그러나 이후 한미일 안보 당국자들은 정상부터 장관급, 실무급, 일선의 전투부대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으로 제도화·상시화되는 각종 안보협력 계획을 소나기처럼 발표했다. 수중에서 잠수함을 탐지하는 대잠수함 훈련과 미사일 경보 훈련, 사이버안보와 우주 협력, 경제안보협의체 출범 등 경제와 안보의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핵심은 동북아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삼국은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행동을 통일하는 준동맹(quasi-alliance)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비록 다자동맹은 아니라지만 최고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높은 수준의 훈련을 공동으로 수행한다는 점은 향후 삼국 협력의 중핵으로서 새로운 안보기구 출현까지 예고한다.

한미일 또는 한일 군사협력은 유럽의 나토 동맹에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모델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동맹국이 전술적, 작전적,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함께 행동하는 능력’으로 정의되며, 이는 정책적 차원, 기술적 차원, 문화와 인적교류 차원으로 분류된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한미일 삼국에 공통된 위협이 무엇인지 합의하고자 한다. 일본은 센까꾸(댜오위다오)에서 충돌이 벌어진 2012년 이후 방위백서에서 중국을 주된 위협으로 설정하고 중국과 지역패권을 경쟁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지하지도, 전세계 인프라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미일 삼국 안보협력이 이루어지면 한국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일의 전략구상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데, 중국을 위협으로 설정하는 윤석열정부가 바로 일본과의 지역 안보전략이 수렴되는 지점으로 작용한다. 중국과의 대치 전선에서 한국이라는 우군을 확보한 미국과 일본이 환호성을 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3년 9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전략포럼에서 빈센트 브룩스(Vincent Brooks)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8월의 캠프 데이비드 삼국 정상회의가 한미일 안보협력의 역할을 한반도 안보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확장하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협력 또한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유엔군사령부가 주한미군을,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주일미군을 각각 따로 지휘하는 폐쇄형(silo) 지휘구조를 비판하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합 지휘하는 극동군사령부 창설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 사령부를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산하에 남겨둘지 따로 독립시킬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만약 독립시킨다면 인도·태평양사령부는 한일 외 다른 지역에서 중국에 대응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 극동군사령부 창설이 어렵다면 유엔사를 활용하여 한일 군사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도 있다는 게 브룩스 사령관의 복안이다.6 2021년 상원의 인준을 받던 폴 러캐머라(Paul LaCamera) 주한미군사령관은 “나는 주한미군을 미국의 이익과 목적을 지원하는 작전계획에 포함시킬 것을 지지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사실상 주한미군이 주일미군과 연동되는 통합 구상이 출현함을 의미한다. 러캐머라는 대만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미연합사령부(CFC)에 대만위기 지원을 위한 후방사령부의 임무를 부여하는 구상을 꾸준히 제시해왔다.7

특히 유의할 점은 대만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유사시 일본 자위대보다 한국군을 활용하기 더 적합한 군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위기가 발생하면 미군은 일본 자위대의 지원을 받아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응하는 최초의 주체가 된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미일 공동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적 위치에 군수품을 공동비축하는 등 최근 전개된 양국의 조치는 이런 분쟁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호주 로위연구소 아시아 전력지수에 따르면 한국군은 일본 자위대보다 효용가치가 높다. 2023년 평가에서 한국의 군사력 평가지수는 5위로, 6위를 차지한 일본보다 한단계 높다. 미국은 한국이 대만해협 비상계획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되고, 미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대로 준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한미일은 정책적 차원에서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하며, 이 정책을 구현하는 주체로서 극동군사령부와 같은 새로운 안보기구를 필요로 한다. 삼국 정부가 대만해협 비상계획과 관련된 문서를 작성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지만, 애초 미국이 한미일 삼국 안보협력을 구상할 때부터 대만사태에 대한 한미일 공동 대응계획은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특히 브룩스 전 사령관은 2027년 대만위기론이 정점에 달한 작년 말 태평양재단 세미나에서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미일 삼국의 대만해협 공동 비상계획은 비공개로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윤석열정부는 모종의 응답을 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의미있는 흐름이 실제로 유엔사 개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유엔군 후방사령부와 같은 다국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미 한국에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 자신의 역할과 발언권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사 강화를 통해 다자간 협력체계를 정비하면서 한국정부에 영국, 호주, 튀르키예 등 유엔사 전력제공국과 행정협정을 체결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미국은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주일미군, 주한미군, 일본 자위대, 한국군 등 개별 동맹국의 사령부도 포함하는 다국적 연합군사령부 및 다국적 유엔사령부로서 연합작전의 모든 측면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협력된 지휘체계와 통신 채널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기술동맹의 목표는 ‘하나 된 군대’

 

한미일 삼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미일 안보체제를 변혁하되, 군사기술 차원에서의 상호운용성을 시급히 달성하려 한다. 기술적 차원의 협력은 한미일 삼국의 공동 군사훈련 및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 도모로 미사일방어와 대잠수함 작전, 해상통제 등에서 삼국의 협력을 증진하는 영역이다. 삼국의 주요 지휘관들이 공동의 작전수행 절차와 언어를 개발하고 공통작전상황도를 공유하여 같은 시간에 같은 데이터를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소통 차원의 협력부터 공통의 교전수칙, 공통작전을 위한 통합지휘체계 구성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상 동북아의 나토화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단계에서는 군대의 국적이 사라지고 연합군으로 협력하는 이상적 군사모델이 가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천명한 한일간의 군사정보 공유는 향후 높은 단계로의 군사적 공조를 지향하는 중요한 출발이다.

2007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버웰 벨(Burwell Bell)은 미 『합참지』(Joint Force Quarterly)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을 향하지 않고 한반도 밖으로 날아갈 경우 지휘통제 이슈는 당연히 더 복잡하다”며 “핵심사항은 미사일의 목적을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탄도미사일이 한국 작전지구를 지나 일본 혹은 태평양으로 날아갈 경우, 빈틈없이 작동하는 일치된 체계가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누가 방아쇠를 당길지를 정해야 한다”며 한미일의 미사일방어 통합지휘체계를 강조한 바 있다.8 이 논의는 지난 10여년간 금기시되어오다 윤석열정부 들어서 다시 속도가 붙었다. 문재인정부의 ‘사드 3불’(추가 사드 반입 금지, 한미일 동맹 거부, 한미일 미사일방어 미참여)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한미일 미사일방어 공동작전을 위한 공동 교전수칙과 지휘체계에 대한 논의가 착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북한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극초음속미사일 실전 배치가 임박함에 따라 단순히 지상발사요격미사일을 사용하는 작전을 넘어 우주에서의 상황인식, 다층적미사일 방어를 위한 삼국의 기술적 협력에 대한 요구가 크게 증대하였다. 군사전략 개념도 변하고 있다. 과거의 탐지-식별-요격-확인으로 이어지는 직렬적 킬체인(kill-chain)은 구시대적 개념으로 여겨지며, 한미일 미사일 요격 부대가 동시에 적을 식별하고 다양한 요격 자산으로 한꺼번에 공격하는 킬웹(kill-web)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술 개념 역시 우주와 지상, 해상, 공중에서 동시에, 다층적으로 방어하는 다영역작전(all-domain operation)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새로운 작전 개념을 실행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통합은 필수적인 기반이다. 새로운 군사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한미일은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을 증진하되 5G 환경에서 대용량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군 통신과 정보교류를 혁신할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실체인가 허상인가

 

안보와 경제에서 미국의 주관주의는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로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8월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중국 시진핑체제와 러시아의 뿌찐(V. Putin)체제를 견제하고 고립시키는 토대를 마련한 최대의 외교적 성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관계를 정상화한 2020년 아브라함협정이나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협상이 중동의 평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과도한 평가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취약성은 크게 세가지 면에서 두드러진다.

첫째, 한미일 안보협력은 안보 분야에서 높은 협력을 추구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인센티브는 없다. 냉전시대에는 미국이 동맹국에 시장을 개방하여 동맹국의 경제성장을 도모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었던 데 반해 지금의 동맹정책은 오히려 동맹국의 일자리와 자본을 체계적으로 약탈한다. 반도체와 전기차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여 미국 중산층을 육성하고, 높은 금리 인상으로 동맹국의 자본시장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자국으로 달러를 유입한다. 게다가 선언에서 명기한 신흥기술정책은 동맹국으로 하여금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차세대 통신인 5G의 경우 한미일은 개방형무선랜 방식을 표준으로 채택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통신기업 화웨이(華爲)를 견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기지국을 중심으로 통신사별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한국에는 불필요한 비용이다. 배터리 분야에서 압도적 기술우위를 보유한 중국과의 협력을 배제하고 한미일이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발상 자체도 비현실적이다. 대중 경제전략 개념인 위험관리(de-risking)는 ‘좁은 장소에 높은 울타리를 세우는 전략’으로 설명되지만 이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공급망에 대한 세부적인 모니터링과 외과수술과 같은 정밀함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냉전시대 대공산권수출통제제도(COCOM)를 업그레이드한 수준이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에서 이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에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동맹 주변화 정책이다.

둘째, 한미일 안보협력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단일대오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한미일이 나토와 같이 군사기술과 안보정책에서 상호운용성을 달성하려면 정책적 차원에서 공동의 위협과 적을 설정해야 하며, 기술적 차원에서 한미일의 군사 시스템이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병렬적인 육해공 자위대를 지휘하는 합동사령부가 존재하지 않아 미국의 합동교전규칙을 적용하는 전투수행에 난점이 있다. 일본은 국가 차원의 정보수집과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정보수집 자체도 제한된다. 이 때문에 서구의 정보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기밀정보동맹체) 가입이 불가능한 일본은 한국이 실시간으로 북한 미사일 정보를 제공해도 이를 접수할 시스템이 없어 미국을 경유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은 중국을 주된 위협으로 명기하는 한미일 공동선언에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앞서 언급했듯 만약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은 한국군을 우선 활용하려고 들 것이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 등 화려한 전략 개념을 제시하여 주변 정세를 주도하려고 하지만 궂은일은 한국이 떠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본이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독도, 센까꾸(댜오위다오), 꾸릴열도에서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며 자신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국수주의적 태도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집단방위체제를 구현하고 호혜적 협력을 이끌어낼 공감의 토대가 결여되어 있다.

셋째, 한미일 안보협력체,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자 안보대화), 오커스와 같은 최근의 소다자주의 안보협력체는 그 효용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유럽의 나토와 달리 미국의 인도-태평양에서의 동맹정책은 소모임 같은 안보협력체를 여럿 만들어서 이를 연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소다자주의는 양자동맹도 아니고 집단안보체제도 아닌 중간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합체로 보인다. 아마도 아시아적 특성을 감안한 새로운 동맹 개념으로 보이는 소다자주의는 규범의 강제력이 느슨한 일종의 정략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담합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은 오커스와 달리 구속력있는 협정이 아닌 신사협정에 가까우며, 이는 삼국의 정권교체 상황에 따라 매우 취약해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신워싱턴 컨센서스’가 미국 국민의 초당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가운데 나온 미국의 궁색한 생존전략인 것처럼, 한미일 안보협력체 역시 앞으로 수많은 결함을 드러내며 심각한 국내외적 저항에 부딪힐 우려가 있다.

 

 

헌법 위에 정전협정, 대통령 위에 유엔사령관

 

이러한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체는 지금의 동북아 정세에 매우 민감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의 서명국이 아니고 전시작전통제권이 여전히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을 개입시키는 데 상당한 장애가 있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로서 헌법과 군사 시스템에 결함이 있음에도 중국의 해양진출을 전략화하는 제1도련선(말라카해협에서 꾸릴열도에 이르는 긴 해양방어선)에서 중국의 전력을 차단하고 저지하고 있으며, 유사시 중국의 주요 지점에 대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일본 방위성 직속 우주작전대를 창설하여 미국과의 우주협력을 강화하고, 고고도요격미사일 개발, 5G 및 6G 환경에서 미국과의 기술협력, 군 지휘통제 및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을 도모하는 기술동맹을 진화시키는 상황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방어적이었던 일본의 군사정책을 공세적으로 전환한 사고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개정된 일본 안보전략서에서 표방한 대로 중국 해안도시를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미사일을 도입하여 오끼나와 일대의 도서지역에 배치하게 되면 중국은 이를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일본에 대한 해양에서의 거부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는 대만해협은 물론 서해의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진다. 한미일이 안보협력을 한다고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행태를 방관하거나 묵인하고 있어 과연 진정한 협력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일본의 공세적 전략 개념은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율적인 외교를 위협하는 상당한 압력이다. 일본은 한국, 중국,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자제하지 못한 채 자국 내 우익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에 포섭되었다. 삼국간 협력이 결실을 거두려면 일본이 먼저 자국 중심의 역사관을 경계하고 보편적 가치를 준수하는 품격과 미덕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도모한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꾸릴열도와 독도에서 자행하는 행태는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중국과 지역패권 경쟁을 하는 데 한국을 동원하려는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이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더라도 한국이 견고한 주권의 토대 위에서 이를 관리할 능력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정전협정에 명시된 한반도 위기관리의 법적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유엔사령부다. 미국은 독일이나 이딸리아와 같이 유엔사 회원국도 아닌 국가의 장교를 유엔사에 초청하여 다국적 안보기구로 변모시키고 있지만 이에 대해 우리 정부에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 윤석열정부의 묵인하에 유엔사를 확대 개편하면서 인도-태평양의 중추기구로 만들고 대만사태에 대한 대응을 구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해석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지금과 같은 한미일 협력의 지향대로 주한미군의 성격이 주변 위협 대처로 광역화되고 일본의 개입이 허용될 경우 동북아는 과연 안정될 것인지, 아니면 더 불안해질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주체적 판단이 절박해졌다. 윤석열정부가 역대 정권의 균형외교 전략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외교안보정책을 동맹에 경도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면 우리의 외교안보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한국이 오직 동맹국의 확장억제력에 의존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단선적인 국가전략을 선택할 경우 초래되는 높은 비용과 불안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미일과 북중러 구도는 승자와 패자가 단시간 내에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다. 이런 진영대결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선사하는 이익을 포기하고 오직 안보를 추구하는 안보지상주의 국가로 전환될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안보국가는 국내적으로는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게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 더 나아가 국제관계에 있어 보건과 기후위기 대처, 일자리 공존을 지향하는 지구적 문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신냉전은 지난 30여년간 황금시대를 선사한 동아시아 평화질서의 몰락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평화공존의 질서가 ‘힘에 의한 평화’의 논리로 대체되면 상시적인 불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낮은 수준의 갈등을 겪던 춘추시대(春秋時代)가 높은 수준의 분쟁이 상시화되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전환되는 데 비견할 수 있다. 한미일 삼국 군사동맹은 평화의 질서가 아닌 전쟁의 질서이며, 생명의 질서가 아닌 죽음의 질서다. 지금껏 미국이 자유주의 국가의 연대를 외치며 동유럽과 아시아, 중동에서 질서 변동을 시도한 결과는 세차례의 전쟁이었다.

우리는 동맹국의 확장억제력보다 협력과 공존을 지향하는 평화에 기반을 둔 억제력에서 생존의 새로운 길, 대안적 세계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묵은 갈등의 요소를 비폭력적 수단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중견국가, 경제적 상호의존을 중시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교량국가, 국제공급망이 생산적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회복력의 국가를 지향할 때 나온다. 이념과 가치로 분리되고 단절을 자초하는 동맹 만능의 국가는 지정학의 어둠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게 될 것이다.

 

 

  1. “Afghanistan likened to fall of Saigon as officials confirm Taliban take Kandahar,” The Guardian, 2021.8.13.
  2. 「우크라서 고전하는 푸틴… “러, 더 이상 슈퍼파워 아니다”」, 한국경제 2022.8.25.
  3. 「“중동 평화롭다” 닷새 뒤 전쟁… “천재”라는 美외교 넘버2의 실수」, 중앙일보 2023.11.7.
  4. 「美 태평양사령관 “中, 6년내로 대만 침공할 수도”」, 아시아경제 2021.3.10; 「CIA “시진핑,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 지시”」, 동아일보 2022.10.6.
  5. 「시진핑 “대만에 무력사용 포기 약속안해…통일 필히 실현될것”」, 연합뉴스 2022.10.16.
  6. 「전 주한미군사령관 “주한·주일미군 통합 ‘극동사령부’ 검토해야”」, 한겨레 2023.9.26.
  7.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개입 시사한 미군사령관」, 경향신문 2022.9.21.
  8. 「“북 미사일 요격, 누가 방아쇠 당길 권한 갖고 있나”」, 폴리뉴스 2007.10.30.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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