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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하워드 W. 프렌치 『본 인 블랙니스』, 책과함께 2023

아프리카 중심의 세계사

 

 

한건수 韓健洙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yoruba@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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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지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 경우는 거의 없다.”(13면) 이 책의 첫 문장은 강렬하다. 640면에 달하는 책 전체에서 저자가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문장일 듯하다. 이제까지의 세계사 서술, 특히 근대의 시작은 아프리카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것임을 강렬하게 시사한다.

『본 인 블랙니스: 아프리카, 아프리카인, 근대 세계의 형성, 1471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Born in Blackness: Africa, Africans,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1471 to the Second World War, 2021, 최재인 옮김)의 저자인 하워드 프렌치(Howard W. French)의 관점은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을 이끌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문학자들과 범아프리카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났던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 사관을 연상시킨다. 세네갈 인문학자 체이크 안타 디오프(Cheikh Anta Diop)는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역사를 거부하며 아프리카 흑인사회의 문명사적 공헌을 이집트문명에서부터 연구했다. 아프리카인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와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아프리카 중심 사관’ 혹은 ‘아프리카 중심주의’로 발전했다. 디오프의 연구를 잇는 아프리카 중심의 역사서술 전통에서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백인 역사학자인 마틴 버널(Martin Bernal)의 『블랙 아테나』(Black Athena, 1권 1987, 2권 1991, 3권 2006)이다. 그리스문명의 뿌리는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문명에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문명은 흑인문명의 영향에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버널은 방대한 분량의 언어학, 역사학, 고고학 자료를 동원해 자신의 논지를 구축했으나 학계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본인의 주장에 반하는 자료를 무시하거나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등 역사연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의 주장은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다’라는 단순하고 선정적인 주장들과 병치되어 소개되면서 학계로부터 배척되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아프리카인의 공헌과 역할이 삭제되어 있다는 오랜 문제의식을 새로운 각도에서 제기한다. 디오프나 버널을 잇는 아프리카 중심 사관의 학자들이 고대사와 고대문명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 것과 달리 저자는 근대의 출발, 즉 오늘날 현대사회의 기틀이 만들어진 시점에 주목한다. 그는 15세기 뽀르뚜갈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전초기지를 세운 시점과 목적을 자세한 사료를 동원하여 설명한다. 서아프리카의 고대 가나왕국은 황금으로 유명했다. 가나왕국의 만사 무사(Mansa Musa) 왕이 1324년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며 이집트 카이로에 들러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는데, 황금과 노예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황금을 얻기 위한 유럽의 오랜 노력은 사하라 횡단무역을 넘어 바닷길을 열게 했다. 15세기 뽀르뚜갈은 오늘날 가나 연안에 도착하는 항로와 해안지역에 전초기지를 가장 먼저 세웠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소위 대항해시대를 설명하는 기존의 역사서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유럽이 향료와 비단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뽀르뚜갈이 원한 것은 아시아의 향료와 비단이 아니라 바로 서아프리카의 황금이었고, 이후 노예로 대체되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맞물림이 바로 근대세계의 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렌치는 노예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공급한 노동력이 유럽의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천이었으며 근대성과 근대세계의 출현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노예의 노동력으로 발전한 플랜테이션 농업체계와 설탕을 비롯한 농작물, 광물, 금과 은의 유입이 유럽의 산업화를 촉진했고, 자유를 얻기 위한 흑인 노예들의 저항과 아이띠혁명이 인류사에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노예의 후손들이 아프리카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루어낸 문화적 성취를 블루스 음악을 통해 보여준다. 미국의 산업과 역사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아프리카 출신 노예와 그 후손들의 역할이 삭제되어 있음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근대세계를 만들어낸 서구의 역사적 성취 이면에 숨겨진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의 기여를 풍부한 사료와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하워드 프렌치가 자세하게 묘사한 가나의 엘미나(Elmina) 성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인 디아스포라의 집단기억 형성과 향유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엘미나 성 지하의 컴컴한 감옥에서 푸른 바다로 향해 열린 좁은 돌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프리카의 민속종교에 뿌리를 둔 아메리카 대륙의 아프리카인 후손들의 종교 ‘깐돔블레’(Candomble) 그리고 ‘산떼리아’(Santeria) 사제와 신자들이 종이로 만든 꽃을 바치며 하룻밤 묵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문’이라 불리는 문을 지나 노예선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걸어간 이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와 꽃을 바치는 역사적 공간이다. 성채 위 바다를 향해 놓인 낡은 대포 옆에는 축제를 맞은 지역주민들이 먼 옛날 이곳을 떠난 조상에게 북을 치고 노래하며 바친 야자유가 붉은색 자국을 남기며 흐르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서술에서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삭제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구 혹은 백인 남성의 용기와 진취적 기상과 독창성이 세계를 연결하고 발전시켜 인류문명을 만들었다는 신화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책은 전문 학술서는 아니지만 그간 아프리카 역사를 연구해온 수많은 학자의 연구성과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방대한 내용이 유려하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한결 쉽게 이해된다. 아프리카에 관한 연구와 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전문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의 높은 수준이 부럽기만 하다.

아프리카 학계는 백인 학자와 아프리카인 학자가 양분하여 경합하고 있다. 누가 아프리카를 말할 수 있느냐 하는 학계의 오랜 논쟁은 제국주의, 인종주의, 학문의 정치성, 젠더, 그리고 학자의 정체성이 뒤섞여 있는 치열한 싸움이다. 책을 덮으며 필자가 대학원 시절 아프리카 학술대회에서 만난, 백인 남성과 아프리카인 남성 학자들의 논쟁에 뛰어든 젊은 나이지리아인 여성 학자의 당당한 저항을 떠올렸다. 그녀는 서구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아프리카인 남성 원로 학자와 서구의 제국주의적 연구자들 간에 차이가 없다며 자신의 관점을 일갈했기 때문이다. 이 여성 학자의 비판과 도전에 아시아와 한국의 아프리카 연구진이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지 여전히 숙제만 받아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