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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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윤 金莉昀

1987년 부산 출생.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투명도 혼합 공간』 등이 있음.

indexoflight@gmail.com

 

 

 

손에 잡히지 않는

 

 

너는 독특한 인상을 줄 정도로 엉성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는데, 도무지 습관이 쌓이지 않는 몸을 가진 것 같은, 매번 새로운 결정을 수행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지.

 

너는 결정과 움직임 사이의 틈새에 순순히 발이 걸리는 사람처럼, 솜이불 위에서만 사는 사람처럼, 지면의 부드러움을 믿는 몸짓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지곤 했지. 넘어짐은 문턱을, 문턱은 통로와 문을 만든다. 걸려 넘어지는 것은 문 너머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밖으로 나가기에도. 그래서 너는 매 순간 초기화되는 몸을 가진 사람처럼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움직였지. 일단 몸을 찢은 다음 찢어진 몸의 나머지 조각을 향해, 틈새를 건너 겅중겅중 걸어가듯이. 떨리는 손으로 접착제를 발라 붙이듯 느리고 섬세한 동시에 엉성한 동작으로. 너의 팔과 다리가 가로지른 공기를 찢어 벌려놓듯이. 몸의 모든 부분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간격이 있는 것처럼. 갓 태어난 네발동물처럼. 아직 시간에 속하지 않은 몸처럼 넘어지기. 일어나기. 걷기. 달리기. 하품하기. 계단 오르기. 주저앉기. 머뭇거리기. 눕기. 모퉁이 돌기. 눈 감기.

 

눈 뜨기.

시선은 풍경을 발생시키고 동사를 데려온다. 풍경은 네가 놓인 장소가 아니라 너의 움직임, 그러니까 네가 움직이는 속도와 자세라고. 네가 속한 시간과 너에게 가능한 속도라고 너는 말했지. 너의 움직임, 너의 움직이는 눈, 네 눈의 깜빡임. 그리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 과일을 감싼 설탕 껍질처럼 파사삭 깨지는 풍경이 있어. 너의 눈꺼풀은 ‘감다’는 동사를 배우지 못한 것처럼 언제나 희미하게 떨렸지.

 

보는 것만으로도 성가실 만큼 조그마하고 연약한 것들로 이루어진 미미한 더미가 네 재산의 전부였는데. 그건 네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만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언제든 더듬어볼 수 있는 것만을 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

 

열개의 손가락, 집 모양으로 깎은 지우개, 선별된 눈동자, 만져본 이목구비, 만지면 볼 수 있는 얼굴, 깨진 창문 파편, 빵 부스러기, 귤 한조각, 머리카락이 엉킨 빗, 개의 보드라운 배털, 펼치면 아무 곳에나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손수건 같은 것

 

무질서한 더미가 언제나 너의 손안에 있고

돌아갈 집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이

없었지.

*

 

네 주머니 안에서 얼굴은 단단하고 작은

너무 작아서 낯선 돌 같은 것이 되고

얼굴은 부사보다 연약해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낯선 얼굴은 얼굴이 아니게 된다

 

작고 복잡한 검은 돌

매끈해 보이는 검은 돌

손으로 더듬으면 셀 수 없이 여러개의 면을 가진 표면이 되는 돌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돌의 얼굴이며

중요한 것은 돌의 복잡함, 그 자체라고

너는 손바닥 위에서 굴릴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는 돌을 보며 생각한다

 

*

 

너는 언제나 거울을 보는 대신 얼굴을 더듬어보는 쪽을 택하지. 그것이 깨끗한 발생을 만드는 것으로서의 눈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손은 깨끗한 동작으로 사물의 표면을 따라 움직이네. 손은 순수한 자세로 습관이라는 음악을 따르네. 손의 습관은 너의 사람됨을 잠깐 잊게 만드네. 손은 자연스럽게 세계와 무관해지네. 손은 가볍고, 은박지를 뭉치듯 구겨 주먹을 만들 수 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다니기 좋네. 손은 질문을 떠올리지 않네. 손은 기호를 원하지 않네. 손은 간격을 받아들이네. 손은 틈새를 꼼꼼히 더듬으며 지나가네. 틈새를 궁금해하지 않네. 틈새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네. 손에는 손의 노동이, 노동에 따르는 습관이, 습관의 반복이, 반복의 아름다움이 있네.

 

주머니 속의 돌에 손을 맞대면

그것의 감은 눈이

떨리는 눈꺼풀이 느껴져.

 

*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

내 옆에 있고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통로가, 시선이, 움직임이

없고

 

풍경이 될 수 없는

너무 가까워서 녹은

얼굴이 어느새 손안에 있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으며

손바닥을 더듬을 때 순간적으로

세계를 부드럽고 선명하게 드러내는 표면이 된다

 

나는 이제 빈 주머니에

얼룩덜룩한 손을 집어넣는다

 

우리는 주머니 바깥의 집으로 돌아와

습관대로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다

 

습관은 평생에 걸쳐 반복된다

 

 

 

전망들

꿈에서 가져온 눈으로 장면 만들기

 

 

S# 5. 분실물 또는 분실종 보관소의 조언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고장 나거나 분실된 순간입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듯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일단 마지막으로 함께 속했던 장면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너는 장면을 더듬어본다. 장면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촘촘하게, 들러붙은 시간과 시간을 떼어내며. 눈을 돌아본다. 눈을 감고 눈의 안쪽을 더듬는다. 장면에는 프레임과 깊이가 동시에 있어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는 대신 깊이를 헤치며 앞뒤로 걸어갈 수 있다.

 

S# 1. 분실 이전의 꿈

 

눈을 떴을 때 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어둠으로 꽉 채워진 방에 희부옇게 떠 있는 너의 손목이었다. 처음 보는 운동. 네가 겪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가볍게 반동을 받으며 당겨지는, 낯설고 기분 좋은 탄성 속에 놓인 손목.

 

나에게 뭔가 있다 너는 문득 생각했다. 네게는 개가 있었다. 사적인 부분 중에서 현관문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가장 쉬운 것인 개. 꿈에서 너는 이렇다 할 목적지 없이 매일 걷는 사람이었다. 걷는 동안 그것이 매일 반복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산책하기 좋도록 조성된 평범한 길이었다. 너의 눈이 원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흙과 신선한 풀과 적당한 크기의 나무들이 적당히 우거진 길. 나무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기분 좋게 드는 길. 낯익은 나무 같은 건 하나도 없고 표지판도 없고 이정표가 될 만한 조각이나 건물도 없는 길. 똑같이 생겼지만 미세하게 다른 정도로 낡은 몇개의 벤치만이 그곳의 유일한 인공물이었는데, 그건 너의 눈이 어떤 인공물도 없는 공간이야말로 인공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든 사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길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길 위로 포개진 시간. 같은 자리의 풀을 여러번 밟아가며 걷듯이 길을 내는 시간. 다시 보면 길 곳곳에 흩뿌려진 식빵 부스러기, 김밥, 귤 몇조각 같은 것들이 장면의 세부를 더하며 시간을 증명한다.

 

S# 1-1. 이해하기

 

흰머리유리박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간다. 저렇게 부지런히 옮겨다니는데도 기껏해야 한 사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정도의 범위에 머문다는 것이, 저 나무의 안쪽만이 세계인 것처럼 나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개는 이런 일을 참지 못한다. 개는 네 손에 쥔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단숨에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프레임을 넓히며 걷는다.

 

S# 1-2. 꿈 이전의 분실

 

너와 개는 낯선 길을 아주 오랫동안 매일매일 걷고 있었다. 낯익은 풍경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너는 그곳이 매일 걷는 길이라는 걸 알았을까. 냄새로? 냄새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냄새를 보다니, 어쩌면 개는 너였는지도 모르지만. 너에게 개가 있었거나, 네가 개인 채로 있었거나, 둘 중 무엇이 거짓인지보다 꿈의 눈이 냄새를 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였지. 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방향으로 걷는 둘이 있다는 것. 줄 양끝의 두 얼굴, 오직 돌아보는 순간에만 잠깐 포개지는 현재로 멈추는 두 얼굴이 있다는 것. 마주 보지 않는 눈동자들이 있다는 것. 교환되지 않는 시선이 있다는 것. 정확한 거짓은 참을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1

 

S# 0. 꿈에서 쓴 눈에 대한 몇가지 기록

 

네가 꿈에서 사용하는 눈에는 앞뒤가 없고 안팎이 없다.

꿈의 눈은 맞붙어 포개진 장면 정도로 안팎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꿈에는 유리가 없다.

반사하지 않고도 등 뒤로 얼굴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네가 꿈에서 사용하는 눈에는 심도가 없다.

모든 것이 정확히, 평균적으로, 동일하게 평평하고 선명하다.

불씨는 불씨인 채로, 자라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

날씨 역시 볼 수 있는 형태로 번역된다.

번역은 일종의 발생이다.

그런 발생에는 신비로운 오차가 있다.

네가 꿈에서 쓰는 눈은 프레임 안쪽 어딘가에 반드시 어둠을 심어둔다.

예외적인 것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장면 사이의 틈새로 의미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시선이 장면들 사이로 흘러가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분실되지 않도록.

틈을 타고 내려가 뒷면을 보지 못하도록.

장면을 뒤집고 싶어하는 손이 사라질 수 있도록.

 

S# 2. 분실되기

 

네가 부드럽게 줄을 쥘 때

줄 끝의 개는 언제나 장면 속으로 너를 끌고 간다.

장면 안에 속해 있는 느낌이 얼마나 아늑한 것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프레임 바깥으로 무엇을 끌어내기 위해 동원되는 어둠이 있어

장면에는 반드시 빈 곳이 있고

빈 공간에는 반드시 어둠이 흘러 고이고

움직임은 빈 곳을 향해 이끌리는 단어다.

 

이제 네가 걷던 장면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다.

 

S# 3. 환송대

 

너와 개는 맨손과 맨 코로 어둠을 헤집는다

너와 개는 무섭다

그곳에 죽은 친구도 없고 먹다 남긴 음식도 없고 담배꽁초도 없고 잃어버린 카메라도, 놓쳐버린 개도, 날아가버린 새도, 날아간 사진도 없다면

어둠에 아무것도 묻혀 있지 않다면

몇겹의 어둠을 샅샅이 들추어도 아무것도 없다면

어둠이 겹조차 아닌, 단 하나의 텅 빈 거대함이라면 어쩌나

 

너는 낯선 나무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어둠 쪽을 향하지 않아도, 장면을 절단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흰 연기를,

손에 쥔 끈이 자동 길이조절장치 끝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것을,

가벼운 반동으로 흔들리는 손을 보고 있다.

 

너는 개라고 불린 것에 이리 오라는 말로 운동을 주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정말 개가 될까봐 무섭다.

손에 쥔 줄 같은 것 없이도 존재하는

어두운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고

잃어버린 개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개가 될까봐 무섭다.

 

그래서 너는 부르는 대신 달린다.

줄의 반대편 끝에서 달리는 것을 따라 허겁지겁 달린다.

피우던 담배가 풀숲으로 떨어진 것도 모르고,

아니면 모르는 것처럼

 

S# 4. 눈과 빛

 

(어둠 그리고 꺼지지 않은 담뱃불 하나)

 

장면 속에서

그것은 영구적으로 씨앗 상태에 머무는 불씨가 된다

 

같은 크기를 유지하면서, 조그마하고 위태롭고 연약하게, 반딧불처럼, 멀고 붉은 별처럼, 하나뿐인 마을의 하나뿐인 집에 뚫린 하나뿐인 창문처럼

 

검고 맑은 눈동자 가운데서 깜빡이는 불씨

아무것도 태우지 않고 무엇에도 자라지 않는 불

무용한 불

장면의 아름다운 세부로만 존재하는 불

 

이런 불을 원하는 것은 네 눈의 오랜 습관이다

 

너는 꿈에서 쓴 눈으로 눈을 뜬다

 

(느린 속도로 다가오는 자동차광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동원됨

헤드라이트 불빛이 네 얼굴 쪽을 향한다)

 

너의 눈동자 안에서 여전히 같은 크기로 깜빡이며 타오르는 불

순간적으로 헤드라이트 불빛과 뭉치며 자라고

 

당신 눈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자동차 창문을 연 사람이 말하고

창문 밖으로는 개가 고개를 내밀고

너의 망막은 잠시 창문 같은 것이 되어 그 모든 게 속한 장면을 비춘다

 

(네가 눈을 깜빡이면 창문에 비친 것들, 옅어지며 주변과 섞인다)

 

사람들은 이 모든 걸 다 눈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그러나 정확히 거짓이 생겨날 때 참이 더 이상 결정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거짓은 실수나 혼동이 아니고, 참을 결정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질 들뢰즈 『대담 1972-1990』, 신지영 옮김, 갈무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