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김서치

김서치 金書癡

단국대 문예창작과 3학년. 2001년생.

such0149@naver.com

 

 

 

자유형

 

 

방금 막 청소한 아지트의 문을 열어둔 것 같다

여자는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없어

물 안으로 들어간다

 

준비운동 없이

세상 밖으로 미끄러졌던 때와 같이 그렇게

빨려들어갔다

 

물의 온도는

문풍지를 바르지 않고 견뎠던

한파주의보의 1월

 

횡격막 사이사이에 성에가 낀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지

 

물 안이라고

죽음 아닌 것들이 있진 않았다

 

여자는 물속에 눈을 집어넣고 일렁이는 격자무늬를 보았다

격자무늬의 한 부분이 야트막하게 솟아오를 때

그건 볼록함도 오목함도 아니었고

 

오래 쓰지 않던 말을 까먹듯

헤엄치는 방법도 까먹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린 것들 속에서

매일 조금씩 균형을 잃고 부서지다가

여자의 숨구멍은 희미해졌다

 

여자가 수면 아래로 숨어들었다

물이 붉고 따뜻했다

갈비뼈 아래로 피었던 고드름이 녹기 시작했다

 

발을 차고 팔을 젓고 물을 밀고 고개를 돌리고

죽을 것 같다가도 금방 살 것 같아지는 호흡에

폐에서 씩씩 소리가 났다

 

틈을 벌리자

사춘기에 두고 온 맥박이 불거졌다

병든 마음과 허기가

거품처럼 씻겨 내려갔다

 

수모를 쓴 머리통이 따끈해질 때쯤

여자는 몸을 웅크렸고

목선엔 싱그러운 아가미가 돋아났다

 

여자는

평생을 기다려온 잠에 들며

첫 목소리를 들었다

아가야

 

 

 

소녀를 위로해줘

 

 

네가 엄지로 부싯돌을 치다가 말했다

 

입안에 텁텁한 고춧가루가 잔뜩이야, 그건 우리가 돼지두루치기를 먹어서 그렇지

같은 학교 영숙이네 엄마가 하는 언덕 위의 포차 영숙이네 엄마는 손맛이 끝내주고 말맛도 끝내주고 그래서 남자친구가 둘씩이나 있고, 그 둘 중 하나가 네 아빠였고

 

언덕 아래, 붉게 빛나는 게 있어

이 동네에 교회 하나쯤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증막 마크였다는 사실에 웃지

그렇지만 언덕배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빼곡한 빛들이 보이고 나는 우리가 은하수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너는 내게 더는 감사하며 살지 말라고 하고

 

나는 그래도 기도를 할 거야 이 거꾸로 희미한 세상에

여관방 앞에서 붕어빵 봉투를 품에 구겨넣는 아저씨를 보면서도 못 본 체

웃자, 웃는 것밖에 할 게 없는 사람처럼

 

너는 빨간 양념이 묻은 입을 달싹거리며

날이 추워지면 한탄강에 빙어낚시를 하러 가자고 말한다

나는 그래, 그거 정말 좋겠다고 빙어튀김을 해 먹으면 정말 뜨겁고 맛있겠다고

근데 있지 우리는 사실 서해안에 살고 가진 것은 한겹의 몸뿐

인천 앞바다의 낙조는 숨이 막히도록 지겨워서

차라리 코를 틀어막는다

 

여러 날의 해가 뜨고 지겠지

갯벌 사이로 뻐끔거리는 숨구멍 같은 날들

밀도를 견디며 사지(四肢)는 자라겠지

 

성년이 된다는 건 기름진 여러겹의 옷을 입고 웃는 것

그땐 갯벌의 모든 흙이 마르겠지

 

그런 미래를 기억해본 적도 있어

우리는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하고 더 많이 더 많이 잠깐을 믿고

잠깐은 시체가 되어 바닥에 귀를 대고 얼어 있다가

어느 멸망의 전조를 느끼며 움찔거리다

그렇게 부디 휴거(携擧)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그토록 환한 빛에 퇴적당해도 좋겠다

불행의 운석이 우릴 향해 달려오는,

그래도 눈을 감지 않는,

 

우리는 깨끗한 심장을 가졌으니까

셀로판지처럼 얇고 투명한 얼음장 밑에서 차가운 손을 맞대고

어느 아침, 파도가 뺨을 두드릴 때 서로의 손을 쥐고 깨어나는 거야

 

 

 

스데롯 시네마

 

 

아버지는 요즘 뉴스를 본다

좁고 뚱뚱한 브라운관 속 형광 점의 교합은 조금 난폭했다 빨강이 파랑으로 보였다가 파랑이 다시 초록으로 보이는 착각의 순환 속에서

 

한갓진 시간을 다른 세계의 믿음으로 녹여내면 아버지는 조금 떳떳해졌다 시장 바닥이 다 그렇지 뭐, 내가 진주처럼 작고 고와 진주상회로 지었다는 이 한칸의 이름도 나는 믿지 않는다

 

반질대는 머리통 위로 파란 별이 스치면 아버지는 깔깔 웃으신다

우리 수조엔 팔리지 않는 아나고가 한가득인데 어째서 죽상이 된 소마항의 어부를 비웃는지 의아해지고

 

가자지구에선 소금 알갱이 같은 백린과 샴페인이 함께 터진다 뚜껑을 뻥, 따는 순간 팝콘처럼 머리가 날아가고 한 사람이 태어나면 누군가는 벗겨졌다

 

가을이 오면 이라크에 파병 나간 작은아버지가 돌아오는 꿈을 꾼다

가을 전어가 별미라며 대가리와 꼬리를 잡고 뜯어 먹던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지는 몸체를 어디까지나 먹을 수 있어요

 

수조 속 형제는 서로의 몸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굵은 촉수를 오므린 침묵 가운데 아나고 킬로에 얼마입니까, 하는 손님의 물음이 박히고 대답보다 먼저 미끄덩한 몸통을 쥔 손이 나간다

아버지가 저울에 영혼을 쌓아 올린다 소쿠리가 태동하듯 파닥거리면 바늘은 좌우로 떨리고

 

피에 독이 있다는 말은 삼간다

 

손님은 손가락 두개를 펼쳐 보이고 아버지와 나는 공양을 준비한다

 

쇠꼬챙이에 아나고의 대가리가 겹겹이 꽂힌다

놀란 척추가 신경을 따라 팔랑거릴 때 아버지는 칼을 쥔 손으로 익숙한 박자를 연주했다 피를 빼고 쓸개를 긁어내고 가죽을 벗기면 한줌 고기가 된다 그것이 퍼포먼스

 

손님은 징그럽다 하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는 걸

반투명한 살덩이가 알고

오늘 그의 밥상에 열하나의 몸통이 올라간다는 걸

우리가 안다

 

검은 비닐봉지를 묶어 손님을 배웅하면 아버지는 호스로 도마를 씻는다

현장을 훼손하듯 급한 손길이었다

아버지는 역시 아나고 손질에는 젬병이지, 그렇지

 

아버지가 말한다

진주야

아나고는 잡식이니까네

묵지 마라

 

알고 있어도 몰라야 하는 맛이 있고

말소리보다 물소리가 요란한 이곳에선 모두가 악의 없이 칼을 휘두른다

 

 

 

목격자

 

 

차 뒤에 숨어야만 나는 무결한 보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발 끈을 묶으며 멀리서 손짓하는 불안을 떠올려요

 

바퀴 밑으로는 영혼이 달라붙고

아스팔트가 깔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유리의 앞면

안과 밖은 너무나 명확해서

차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전조등은 전조를 알리는 눈빛으로

그 시야 속에 나는 몸을 움츠립니다

 

차 안에도 눈송이가 내려앉는 상상을 해요

시트보다 먼저

눈과 코와 귀가 하얗게 될 것입니다

 

추위를 한꺼풀 벗겨내면

조금 덜 외로워질까요

 

얼지 않은 눈동자가 겹칠 때

우듬지는 목을 내밉니다

눈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어느덧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 앉는 일에

무뎌졌습니다

 

그래서

흐느끼는 소리에도 무뎌집니다

 

그 소리는 너무 차가워서

나를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데려갑니다

 

떠오른 몸이

해 질 녘 길모퉁이에서 고양이를 만졌던 날로

돌아갑니다

 

클랙슨 소리가 들리면

열이 내리고

 

눈 코 입이 가까워지면

나는 다시 사람의 얼굴이 됩니다

 

기지개를 켜는데도

내 삶은 여전히 구부정하고

 

문을 닫으면

안식일의 의미를 까먹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도

종전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리는 이가 없는 날은

참으로

텅 빈 하루입니다

 

매듭을 짓는 마음으로

우리가 우리일 수 있을 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정화되지 않는 디퍼웰1

 

 

학교 끝나고 어딜 가니

아이스크림 푸러 가요 47분에 출근해야 사장님이 좋아해요, 50분은 진짜 기본이고 55분에 가면 되바라졌단 소리 들어요 라커룸의 세븐 세그먼트가 몸을 바꿀 때 나는 조금 얇아져요

분홍색 유니폼은 언제나 소매가 없고 겨드랑이엔 맨드라미가 필 것 같고 찬 기운에 검은 브래지어가 비칠까 나시를 껴입고 노란 챙모자를 눌러쓰고 캄캄한 캐비닛 안에 5.5시간을 박아두고 일이 끝나면 가져갈 수 있는 거죠

 

손톱부터 팔꿈치까지 손을 씻어요 핸드타월로 물기를 훔치고 세니타이저를 발라야 코가 따갑고 비로소 인간이 된 기분, 그런 게 예의잖아요 스쿱 잡는 손이 깨끗해야지 근데 물집은 소독이 안 돼요 사장님은 그런 걸 좋아해요 손이 빠른 것보다 따끔거리는 지문을

336g 643g 989g 정확히 맞추는 거, 사장님은 그런 걸 좋아해요 1g이라도 오버되면 그건 나가리야, 넌 나가리야 하지만 1g이 부족하면 저울은 스티커를 뱉어내질 못하는걸요

 

납작한 스페이드를 깡깡 언 아이스크림 통의 가장자리에 박아넣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들어올려요 배 속은 찌릿해지고 내 젊음보다 단가가 높은 원통에선 다디단 체리 향이 어린아이 울음처럼 불쑥 솟아오르고 문 위에 달린 부엉이가 돌 때 불친절한 손님이 옵니다

 

내가 여기서 평끌과 망치로 드라이아이스를 깨부술 동안 당신은 누군가와 슈팅스타에 취해 있던 거죠

타닥타닥 캔디는 녹을수록 반짝거리고 손님의 부드러운 혀는 깎인다 아보카도 씨앗의 딱딱함, 피 맛이 날 때 고백한다 가끔 에어컨을 틀어놓고 문을 여는 상상을 했어요 그래도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싶어요 내가 누군가의 젖꼭지를 피했던 것처럼

 

토마토 올리브 아보카도 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루 세끼 먹고 싶어서 아르바이트 시작했어요

40은 너무 적다고 호소할 때 50까지는 줄 엄두가 안 났던 아버지의 최선책

45만원을 4주로 쪼개면 11만 2,500원씩

삼각김밥은 1,200원 아보카도 들어간 고급 샌드위치는 4,900원

샌드위치 세끼 다 먹으면 일주일에 10만 2,900원이라

사실 커피도 마시고 싶고 가끔가다 술도 먹고 싶고, 된다면 네일아트도 하면 좋겠지만

 

사장님은 나에게 오마카세를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요 유자 껍질이 참 향긋했어, 너 내 맛을 이해하지? 그때 축축한 목덜미가 흐물거리고 아, 뭔가가 헷갈리고 아버지가 젊은 아가씨는 웃으라고 했으니 말을 잘 듣는 나는 배움을 실천하지요

 

손님은 배신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턱 끝이 녹을 때까지 우유 베이스의 어린 맛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사장님은 그런 걸 좋아해요 초코 냄새 나는 행주와 구부러진 무릎 약간의 젖비린내

하얀 혀를 주워보세요, 더 굽혀서

거기선 따뜻한 요구르트 맛이 날 거예요

 

 

심사평

 

스물두번째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심사에서는 늘어난 응모작의 수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세련된 작품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긴 한문장이 하나의 연을 이루면서 긴 호흡으로 자기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이 어떤 경향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를 강하게 응축하는 구심점 없이 분행과 분연이 자유로운 이런 작품들은 무엇보다 ‘나’와 ‘너’ 사이의 발화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보이는 표현의 분방함과 자재로운 리듬, 자기성찰의 밀도는 좋지만 그것들이 얼마간 ‘나’와 ‘너’의 언저리를 넘지 않는 과몰입의 감정에 묶여 있었다는 점도 지적할 부분이다. 장형화를 보이는 시들과 동떨어진 짧은 호흡의 시들도 다수 있었는데, 최근의 시적 경향에 빚지지 않은 자생적인 시들이 오히려 올드한 감성과 틀에 박힌 상상의 언어를 넘어서지 못한 것은 우리의 시가 놓여 있는 지금을 잘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이 응모작들을 읽어나가는 것도 충분히 유의미할 것이다. 안팎의 우려대로 시를 읽는 사람은 점점 더 적어지고 사는 일은 더욱더 곤핍해져가는 이중고 속에서, 시는 자기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의 끈으로 연결된 세계를 투시하는 안목을 가질 때 비로소 세계를 횡단하는 상상력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투철한 인식과 활달한 언어를 가진 응모작은 많은 원고들 사이에서 뚜렷하고 스스로 돌올하였다.

1차로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총 아홉 묶음의 원고였고 그중에 최종적으로 당선을 다투었던 응모작은 「자유형」 외 4편, 「신의 건망증」 외 4편, 「전차와 소음」 외 4편, 그리고 「얼굴이 내릴 때」 외 4편이었다. 네 묶음의 응모작은 모두 각자의 미덕과 장점을 충분히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중 어느 한편만을 당선작으로 내세운다면 손색이 없어 보였다. 다만 작품 한편의 뛰어남이나 표현의 방법이 얼마나 개성적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응모작들의 고른 수준이 세계를 보는 안목의 깊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심사위원들은 생각을 모았다.

「얼굴이 내릴 때」 외 4편은 앞의 두 시편이 독창적이었다. 「얼굴이 내릴 때」는 비가 내리면서 만들어지는 순차적인 지각과 정서적 반향을 간결하지만 리드미컬한 언어로 중첩시키는 섬세함과 유연함이 돋보였다. 「다락」은 마침내 도달해도 영원이 유예되고 지연되는 기묘한 ‘다락’이라는 공간의 설정이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앞의 두편에 비해 뒤의 비교적 단형의 시들은 그 성취가 밋밋했다.

「전차와 소음」 외 4편은 응모자가 오랜 시간 서사를 연마한 흔적이 문장에 드러난다. 고양이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간결하게 처리하는 「전차와 소음」의 앞부분은 시적 서사의 응축미가 압도적이다. 죽음을 수용하는 노파의 내적 발화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고양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무심한 공포가/세계를 지나고 있다”와 같이 고양이를 시간성이나 역사성 자체로 알레고리화하는 구절이 인상 깊다. 다른 작품에서도 예측을 거부하는 서사 위에 구축된 시적 사건들이 눈에 띈다. 다만 시가 길어질수록 구심점이 흩어지면서 주제가 방기되는 약점을 보완하면 좋겠다.

「신의 건망증」은 오늘날 전지구적 재앙과 그로 인한 인간적 비참을 신의 불찰, 혹은 신의 건망증으로 희화한 시이다. 신이 자기 전에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을 잊는 것만으로 세계에는 홍수가 나고, 보일러를 켜둔 채 외출하여 지구온난화가 발생한다. 재앙과 함께 넘쳐나는 혐오와 폭력은 급기야 자신(신)의 이름을 빌미로 자행된다. 이 작품에 의하면 신의 건망증은 피로와 염증 때문이다. 인간적인 신의 모습을 그리는 태도에서 유머와 비관이 기묘하게 섞이는 매력이 있다. 다만 이 양가성이 블랙유머의 비판적인 부분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함께 응모한 「침묵의 세계」도 침묵을 식물의 대화법으로 은유하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역시 앞의 작품들과 달리 밋밋하거나 장황한 작품이 있어 그 편차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자유형」 외 4편이 보이는 독보적인 장점은 넉넉한 미적 거리이다. 사물과 세계가 결코 한가지 진실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는 듯이 이 시편들은 시종일관 아이러니컬한 거리를 두고 있다. 또한 포착된 이미지를 변주하면서 밀고 가 새로운 인식에 가닿으려고 하는 사고의 ‘개진’이 힘있다. 이 개진의 힘은 자기와 타자를 향한 인식의 깊이와 개방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자유형」에서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없어/물 안으로 들어간” 여자는 운동 속에서 “죽을 것 같다가도 금방 살 것 같아지는 호흡”을 되찾고, 자신의 기원을 향해 자맥질해 간다. 「소녀를 위로해줘」의 소녀는 숨 막히는 ‘거꾸로 희미한 세상’이지만 기도를 할 수 있고 「스데롯 시네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극장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스데롯 언덕을 가져와 아나고를 손질하는 ‘진주상회’의 생선 도마 위로 변주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섭식과 생업 안에 깃든 부성애로 조심스럽게 감쌀 줄 안다. 이미지의 변주는 능란하고 상상은 삶에 투철하며 재현된 경험은 핍진하다. 신인으로서의 가능성과 충실성이 두루 충분했다. 스물두번째 당선작으로 「자유형」 외 4편의 응모작을 선정한다. 당선자의 활달한 응전력을 기대하면서 심사위원들 모두 축하와 함께 우정 어린 격려를 보낸다.

문태준 이기성 이현승

 

 

당선소감

 

가끔은 너무 사랑해서 눈길을 주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들이 있다.

내 넘치는 마음이 그것을 상하게 할까, 남들이 알까,

깊은 밤 꿈속에서도 곁눈으로만 그것을 어루만지던 날이 있었다.

시는 내게 오랜 짝사랑이었고 나는 시가 싫었다.

시를 사랑해서 시가 싫었다.

나 안 쓸 거야, 어깃장을 놓고도 하고 싶은 말이 생긴 밤이면, 시를 썼다.

그렇게 미워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시가 어린 조카처럼 좋고, 예쁘고, 애틋했다.

다시 미워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 귀한 자리가 내게 왔나보다.

미워하기보단 그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라고.

 

시는 무엇입니까?

어디 가서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한다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시 쓰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야겠다.

시 쓰는 일은 내 세계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그 시간을 다 받아 적진 못해도 흉내 내는 일이라고.

그것이 순정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고.

 

아직 부족한 제게 문을 열어주시고 들어와도 된다고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제 짝사랑을 유일하게 알고 계셨던 천수호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문학의 본질은 제 안에 있는 진정성이라고, 제게 해주신 말씀을 아직 기억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런 귀한 자리에 불려 왔습니다.

지현의 다정함 덕분에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날이 오네요. 늘 내게 무수한 마음을 알려주는 형초, 민, 은지, 제삼자의 눈으로 본 우리의 낭만을 지켜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효림, 늘 고마워요. 나현에겐 지난가을에 빌렸던 마음을 돌려주겠습니다. 아직 따뜻해요.

누구보다 기뻐해준 선우, 미연, (김)은지, 주윤, 수연.

가장 반짝이는 시절을 함께해주어 고맙습니다.

저를 늘 꿈꾸는 사람으로 키워주신 엄마 아빠, 감사하고 사랑해요.

두분의 사랑 덕분에 전 여전히 꿈속에 살고 있는지도요.

이젠 숨김없이 사랑하고 쓰겠습니다.

김서치

 

 

  1.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스쿱을 세척할 때 사용하는 통.

김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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