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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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金秀烈

1959년 제주 출생.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빙의』 『물에서 온 편지』 『호모 마스크스』, 4·3시선집 『꽃 진 자리』 『날혼』 등이 있음.

kimsy910@naver.com

 

 

 

파묘

 

 

화들짝 놀라실까봐

동트기 전 인시(寅時)에 맞춰

버드나무 가지 올려 토신제 마치고

산역꾼들은 삽머리로 봉분을 내리친다

파묘여

파묘여

 

사십여년 만의 세상구경이라 그런가

정강이뼈부터 엉금엉금 나온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인지 잔뿌리에 감긴

얼굴이 나온다 입 크게 벌린 채 환히 웃고 있다

칠성관에 가지런히 모시고 파묘제 올리며 오랜만에 인사 나눈다

안녕, 할머니

 

개장 화장은 일반 화장과 달리

양지공원 7번과 8번에서만 치러진다

두줌 조금 안 됨직한 분골된 유골을 판지유골함에 담아

용강 별숲공원으로 간다

 

유골을 흙과 섞어 땅에 묻고 다시 흙 덮고

그 위에 손바닥 크기의 잔디를 심고 꾹꾹 밟는다

어허 달구 어기야 달구

두건 쓰고 위안제 올리며 마지막 안식의 인사를 나눈다

할머니, 안녕

 

 

 

마불림1

 

 

마를 불리자

습한 독버섯을 바람에 불리자

사방팔방 문 열어 북상하는 바람을 만들고

그 바람으로 독버섯을 날려 없애자

칠월 열사흘이거나 휘영청 보름날

일만팔천 신들의 옷에 달라붙은 습한 독버섯을 불리자

삼백육십 본향의 문을 열어 바람을 맞게 하자

 

아하, 잠시 잠깐 마음을 놓았구나

눈에 쇠꼬챙이가 꿰어 제대로 앞을 보지 못했구나

칼 찬 놈들의 망나니 칼춤에 눈뜬장님이 되었구나

 

잠시 틈만 주면 되살아나는 게 이놈들이니

이참에 아예 씨멸족을 시키자

놈들의 칼을 빼앗아 보습을 만들고 빗창을 만들고

다시는 습한 망나니들이 자라지 못하게 바람을 만들자

 

그 바람으로 이놈들을 날려 없애자

오방신장 문 열어 시퍼렇게 날 선 바람을 만들고

독버섯 같은 습한 무리들을 바람에 불리자

마를 불리자

 

 

  1. 백중(百中) 때 제주도에서 장마가 끝난 뒤 습기로 인한 곰팡이 등을 씻기 위해 행하는 마을 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