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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혜빈 劉惠彬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슬픔은 손톱만큼의 조각』 등이 있음.
decs45@hanmail.net
고래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선박과 충돌해 심각한 척추 부상을 입은 혹등고래가 포착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느낌일까요?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요?
나는 아무에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이 고래는 척추뼈가 부러진 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미국 하와이까지 약 오천 킬로미
터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눈을 뜨면 주어지는
내 것 아닌 날들
내가 버려지는 것도
버려진 것도
아직 버려지지 않은 것도
모두 변명이 되어버리고 마는 말들도
사진 속 혹등고래는 등이 위아래로 휘어진 채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캐나다 고래연구기관 BC웨일스는 이 고래가 등이 부러진 채로 꼬리를 사용하지 않고 가슴지느러미만 이용해 헤엄쳐 이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다툼도
그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눈뜨기 전부터 쏟아지는 말들과
툭, 건들면 터질 것 같은
여유라고는 없는 마음을 가지고
길을 가다가 실수로 손을 찧은 그 순간에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처럼
드디어 미쳐 돌아버릴 것처럼
불같이 화가 나버리는, 화가 쏟아져내리는
그것이 굳이 잘못이라면
나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영혼에 밤낮으로 새긴 까닭에
지친 몸으로도 조급하게 걸어야 하는 것을요
부끄러워서
뒤 내용은 틀린 것도 있다고 말을 흘렸었는데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혹등고래는 차가운 알래스카 바다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이 되면 짝짓기를 하거나 새끼를 낳
기 위해 따뜻한 하와이나 멕시코 연안으로 이동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러모로
나는 내가 마음을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미안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내게 미안할 필요 없지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요
BC웨일스 연구진들은 이 고래는 알래스카로 돌
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들
그녀가 (충무로역으로 보이는 그곳에)
소리 없이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
그녀가 (홈리스로 보이는)
너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누굴 믿냐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홈리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소리를 내어 그녀는 울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홈리스 그녀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엉엉 울어제끼는 그녀와
소리를 더 크게 질러제끼는 홈리스 그녀와
너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누굴 믿냐
너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누구를 믿냐
너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엄마를 어떻게 믿냐
너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남자를 어떻게 믿냐
사방의 벽에 부딪혀
모든 벽에서 돌아오는 소리
「너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구간이 돌아올 때마다
더 엉엉 울어제끼는 그녀가
그녀가 엉엉 울어제낄 때마다
흔들리는 그녀 가방의
예수 십자가 키링
사람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지
믿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누구를 믿냐
홈리스의 선창에 맞춰
더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는 그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