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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우영 鄭宇泳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등단.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 『활에 기대다』 『순한 먼지들의 책방』 등이 있음.
jwychoi@hanmail.net
쑥국
오는 봄을, 계엄내란이 단단히 막아서고 있는 아침.
속 쓰리고 혓바늘 돋은 제가 안쓰러웠는지 아내가 쑥국을 끓였어요. 한입 뜨는데 할무니가 오시고 또 한입 뜨는데 아부지 어무니도 슬그머니 내립니다.
놀라워라, 이 오붓한 재회라니.
할무니와 아부지, 어무니는 한갑자를 지나서야 겸상입니다. 후룩후룩 쌉싸래한 눈물 맛이 왜 이리 따숩지요. 쑥의 신화가 불굴의 다정으로 바뀌는가요.
아야, 세종 니 딸내미도 잠 멕이자이.
선대가 아내를 통해 건네주는 푸른 피톨의 쑥국. 오욕의 내란을 진압하고 환한 파동 쩌르르 목젖을 울립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홀연 시신이 되었습니다. 행사 소식 더듬는데 정우영 시신이 발견되었대요.
어이쿠, 이게 뭐다냐. 정우영이 시의 신이 되었거나 시체가 되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뭐지, 혼미해졌으나. 일단, 결정해야 했습니다. 시의 신이 되어 하늘로 오르거나 시체가 되어 땅속으로 꺼지거나.
거참, 어렵더라고요. 무엇이 되든 여길 떠야 하잖아요. 죽고 싶어, 이 말을 달고 사는 처지라 아쉬울 건 없는데. 막상 선택하자니 아직 오지 않은 미지가 너무 그리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물었지요. 미지야, 어떻게 생각해?
속이 빤히 보였을까요. 흥, 콧방귀 날린 미지는 시신 끌어다 화분 속에 처박았습니다. 그 통에 화분의 아보카도가 다쳐서 아슬아슬 위태로워졌지요. 한올 남은 심지로 기를 써 허공 움켜잡고는 있었지만요. 이래서는 곤란하잖아요. 걔도 귀한 목숨인데요.
여보세요, 거기. 시신은 치우고 시인으로 바꿔주세요. 애써 싹 틔운 아보카도가 죽어나가겠어요. 시의 맘으로 살다가 시의 품에서 사라질 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