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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진영 文眞鍈
2009년 창비장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눈 속의 겨울』 『최소한의 최선』, 중편소설 『딩』,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미래의 자리』 등이 있음.
holossi@naver.com
마지막 여름의 마지막
이것 좀 봐봐.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여름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여름의 손에는 안테나처럼 생긴 물건이 들려 있었고, 그것은 어떤 힘이 끌어당기듯이 이상한 리듬으로 휙, 휙, 좌우로 움직였다. 여름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았지만, 나는 여름이 정말로 그걸 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 말 맞지? 진짜 수맥이 흐른다니까.
15,800원을 주고 샀다는 그 수맥탐지기는 윗부분을 쭉 뽑으면 기역자 모양이 되었다. 꺾이는 부분에 일종의 관절이 있어 ‘수맥’을 ‘탐지’하면 좌우로 흔들리는 구조였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 봐봐. 여름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는 젖은 수건을 의자에 걸쳤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여름은 대뜸 화를 냈다.
지금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아닌데, 나는 얼른 부인했다. 언젠가 여름은 어느 외국인 커플이 금속탐지가 취미라며 탐지기를 메고 해변을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고 큰 흥미를 보였으나 덜컥 그걸 사지는 않았었다. 차라리 금속탐지기를 사서 오래된 동전을 찾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내 말을 안 믿으니까 산 거 아냐.
여름의 불면이 시작된 건 지난여름, 열대야가 한창이던 때였다. 이후 입추, 입동이 지나도록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자 여름은 수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을 믿지 않았다기보다는 수맥을 믿지 않았고, 설사 불면의 원인이 정말로 그것이라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부엌이 딸린 1.5룸에서 수맥이 흐른다 한들 어디로 피하겠는가. 여름은 탐지기가 도착한 뒤 오후 내내 집 안을 면밀하게 살펴보았고, 탐지기가 반응하지 않은 곳은 부엌 싱크대 앞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거기서 자겠다는 거야?
시도는 해봐야지.
여름이 사뭇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 못 자는 고통을 알아? 너는 머리만 대면 잠들잖아. 네가 드렁드렁 코까지 골면서 잘 때 내가 얼마나 서러운지 알아?
여름은 자신의 불면이 내 탓이라도 된다는 양 중얼거리며, 수맥탐지기를 침대에 던져놓고 선반에서 즉석밥을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찌개 마저 먹어.
여름이 말했다. 그저께 여름이 만든 참치김치찌개가 냄비에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칸 하나에 500밀리리터 캔맥주가 가득 차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 거야?
하나슈퍼 문 닫는대.
여름이 타다닥, 타닥,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며 말했다.
물건들 정리하고 계신다길래 그냥 한 박스 샀어.
이걸 너 혼자 들고 왔어?
뭐 금방인데.
여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름은 아직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여름을 사랑하고, 또 딱! 하고 맥주캔 따는 소리를 사랑한다. 요즘 내겐 이 소리보다 더 기쁜 것이 없다.
근데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나봐.
그러게, 그 건물도 다 비겠네. 아줌마는? 어디 딴 데 가서 하신대?
여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장사 안 하신대.
그래? 왜?
나는 금세 끓어오른 김치찌개 냄비에다 즉석밥을 털어넣었다. 여름은 대답 대신 계란프라이 하나 해줘? 하고 물었다. 말과는 달리 손걸레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아냐, 괜찮아.
나는 스마트폰으로 F1 하이라이트 영상을 재생했다. 내가 숟가락을 들고 찌개에 만 밥을 퍼먹는 동안, 여름은 엎드린 채 젖은 손걸레로 부엌 바닥을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닫고 부엌 바닥에 말라붙은 정체 모를 것들을 닦아내는 여름은 번뇌를 잊으려 일부러 고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
집에서 학교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마을버스를 타고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탄 뒤, 한차례 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불가능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지도 않고, 집 근처까지 교통편이 연결되어 있으면서 이 정도 비용으로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서울 안에 지금 사는 동네가 거의 유일했다.
다행히도 학교 앞에는 학부 시절 선배인 삼세형님이 살았다. ‘삼시세끼 보살’을 줄여서 삼세보살 또는 삼세형님으로 불리는 그는 거의 생불이었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다 잠깐이라도 등을 대고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정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형님네 자취방에 가면 되었다. 그 집 비밀번호는 그와 알고 지내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숙취에 휩싸여 잠들어 있든지 베란다에서 고기를 굽고 있든지 했다. 옆방에 사는 중국인 커플과 축구 한일전을 보며 치킨을 먹은 적도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이년간 조교로 주 5일, 때로는 주말까지 일했고, 퇴근 후에는 과제하랴 논문 쓰랴 여유 시간이라곤 없었다. 그래도 삶이 너무 쓰게 느껴질 때 짬을 내 삼세형님에게 연락하면 반드시 다디단 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석사논문이 통과된 날, 함께 기뻐하기 위해 모인 술자리 3차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형님, 나 박사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러자 형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근데 할 거잖아.
나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은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다음 날 해장 메뉴로 오리백숙까지 사줬다.
삼세형님은 나와 같은 동양철학과였지만, 연극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내친김에 학교를 중퇴하고는 극단에 들어가버렸다. 군대에 다녀와서 배우를 좀 하는가 싶더니 슬며시 극단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고,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때 망한 소극장을 헐값에 샀다. 형님은 단 한번도 자신의 꿈이나 미래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흘러흘러 막다른 벽에 도달해본 적이 없는 사람. 혹은 그 벽을 넘거나 부수는 게 보통의 인간들보다 쉬운 사람. 그런 걸 사는 내내 경험해온 사람만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그의 물과 같은 자유로움은, 월세가 올라도 한 동네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재정적 여유 덕분인 것이다. 소극장이 아무리 헐값이라도 시장에서 마감 세일 중인 사과 한 바구니를 사듯 덜컥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모두가 삼세형님을 좋아했다. 그는 결코 잘사는 티를 안 내면서도 나처럼 주머니 가벼운 친구들을 먹이고 재우곤 했다. 누가 대단하다 치켜세우면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그게 사는 낙이라고 했다.
오년 전 여름, 방학기간에는 주에 사나흘 대형 온라인 쇼핑몰 물류센터에서 오전 근무조로 일했고, 일을 마친 후에는 무조건 연구실로 출근했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나가던 어느 밤에 연구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삼세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몇이 집에 모여 중국요리를 먹고 있는데 시간 되면 오라고 했다.
내가 그날 푹 잔 김에 논문 작업을 더 했으면 어땠을까. 한번쯤은 공짜 술을 마다하는 사람이 되어보았다면. 그 여름이, 여름을 모르는 여름으로 남았다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형님까지 네명이 둘러앉아 꿔바로우와 건두부무침, 마라탕 등을 한상 가득 부려놓고 먹고 있었다. 빈 술병들이 이미 여러개 나뒹굴었다. 모인 이들은 곧 소극장에서 공연하게 될 코미디 극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중엔 술이 약한지 얼굴이 새빨개진 젊은 여자도 한명 있었다. 뺨에 주근깨가 다닥다닥했다.
삼세형님이 나를 가리키며 여기는 학교 후배이자 조만간 교수 될 사람, 하고 소개하다 말고 난 중퇴인데 선배가 맞나? 했다. 삼세형님은 ‘선배’라는 단어가 낯선 모양이었지만 난 그보다 ‘조만간’이라는 단어가 괘씸했다. 그건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를 욕심내는 단어였으니까.
딱히 교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강의와 연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오래오래 공부하고, 그걸 다시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였다. 석사과정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일년 후의 나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속으로 숫자를 세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때 갑자기 얼굴 빨간 여자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서울말씨로 말했다.
저는 희극인이에요.
순간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빈속에 술을 마셔서 너무 빨리 취했는지 그녀가 마치 거대한 딸기, 말하는 딸기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여자를 놀리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웃긴가보다. 진정한 희극인이네! 여자가 뾰로통한 얼굴을 했고,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나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해서 나를 ‘논문인’이라고 부르거나 노자 연구를 한다고 해서 ‘노자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고 둘러댔다. 내 말에 사람들이 전부 한마디씩 했다. 나는 마라 덕후니까 마라인이네. 나는 치질 있으니까 치질인이네. 나중에 생각하니 별로 웃기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모두 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여자만 장난스럽게 골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순간 모든 세포가 그녀를 향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름은 여름, 성은 한. 한여름이라고 했다.
형님이 술을 더 사 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두 사람도 담배나 피울까, 하고 따라나섰다. 여름과 단둘이 남아버린 나는 잠시 어쩔 줄 몰라 바지 무릎께 점점이 튄 마라탕 국물 자국을 내려다보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여름이 물었다.
아, 옥상에, 바람 좀 쐴까 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름이 같이 가요, 하며 따라 일어났다.
형님 집에 올 때마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성곽길을 따라 설치된 낮은 조명과 멀리 빛나는 남산타워도 보였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불 켜진 창문들과 가까운 구옥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게 특히 좋았다.
와, 뷰가 기가 막히네, 여름은 그렇게 말하더니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대 꺼내 내게 건넸다.
아, 저는 안 피웁니다.
여름은 아, 그래요? 하며 옆으로 두어걸음 물러났다가 내가 괜찮습니다, 그냥 피우세요, 하자 다시 한발짝 다가왔다. 여름은 담배를 입에 물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불을 붙였다. 연기를 천천히 내뿜은 후에, 여름이 물었다.
근데 몇살이에요?
스물일곱이라고 대답하자 여름은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했다.
……제가 원래 동안 소리 들었는데요, 논문 쓰다가 폭삭 늙었습니다.
내 말에 여름이 깔깔 웃었다. 물결에 부서지는 초여름 햇빛 같은 웃음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요, 하며 여름은 손을 내저었다.
대학원생이라고 하니까 그냥 막…… 되게 어른같이 느껴져서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 올라와서, 그때부턴 시간 가는 걸 가늠 못하고 살아서 그런지…… 그냥 계속 스무살에 멈춰 있는 기분이랄까?
여름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더니 벌써 사년째네요, 하고 말했다.
그래도 꿈이 확실했네요. 전 군대 갔다 올 때까지도 잘 몰랐어요. 실은 지금도 뭐……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죠, 뭐.
여름이 삼세형님을 흉내 내며 말했다.
여름님은 희극인이시잖아요.
내가 ‘희극인’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자 여름이 또다시 깔깔 웃었다.
글쎄요, 난 그냥 그 단어가 좋아요. 희극인. 비극인이라는 말은 없잖아요, 그쵸? 난 누군가를 웃게 하고 싶지, 울리고 싶지는 않아요. 뭐, 기뻐서 울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난 그런 것도 별로야. 난 그냥 물기 없이 가볍고, 단순하고, 공기 중에 순식간에 확 스며들어버리는, 그런 웃음이 좋아요. 뭔지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 여름은 짧게 웃었는데, 그건 여름의 얘기와는 반대로 아주 눅눅하고 헝클어진 웃음이었다. 여름은 담배연기를 아주 천천히 길게 내뿜었다. 습하고 정체된 공기 속에, 연기는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한 채 무대효과처럼 그녀를 감쌌다.
순간 여름은 스물세살이 아니라 마흔세살쯤 되어 보였고, 동시에 존재한 적 없는 나의 여동생 같기도 했다.
*
나는 그날부터 종종 여름이 지금 이 순간 이 동네 어딘가에 살아 있겠구나, 길거리나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튀어나왔던 그 생각들이 석사논문이 통과되기까지의 정신없고 치열한 날들을 버티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여름을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삼세형님을 통해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그조차 못했다. 주변 아저씨들이 더 신나서 쓸데없이 엮으려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5월의 어느날, 여름이 전해주라고 했다며 삼세형님이 공연 초대권을 건넸다. 나는 그대로 뛰쳐나가 마로니에공원을 전력질주로 가로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이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 단지 그게 기뻤다.
티켓에 적힌 공연 제목은 「오지 마요 장례식」. 게다가 여름이 극본을 썼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여름씨가요?
내게서 뿜어져나오는 황홀을 눈치챘는지, 삼세형님은 마지막 공연 후에 뒤풀이를 할 거니까 이왕이면 그때 오라고 했다. 뒤풀이에 끼면 지난번처럼 여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초대권은 마지막 공연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나는 표 한장을 더 구매해 바로 연극을 보러 갔다.
일찌감치 가서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십명쯤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극장이었는데, 시작이 임박해서도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밖에 관객이 차지 않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불이 켜지고, 배우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모두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공간은 장례식이라기보다는 디너파티처럼 꾸며져 있고, 호스트는 없다. 죽었으니까. 무대 한가운데 영정사진이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름의 얼굴. 초대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손님 중 하나가 말한다. ‘제 장례식에 오지 마세요. 드레스코드: 초록’.
손님들은 장례식의 주인인 여자와 한때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이지만, 최근 몇년간, 혹은 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채로 지냈다는 것이 밝혀진다. 관객들은 처음에 죽은 여자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거기 모여 회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합해 그녀가 얼마나 고유하고 특별했는지를 알아가게 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색깔이 초록색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마침내는 그녀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그들 중 누구도 곁에 없었다는 걸, 하나같이 그녀가 내미는 손을 뿌리쳤다는 걸 깨닫게 되고…… 손님들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다툼이 격해지고, 슬랩스틱 몸싸움이 잠시 이어지고, 그러나 결론은 이미 늦었다는 것.
모두가 자리를 떠난 뒤, 벽인 줄 알았던 문이 활짝 열리고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아무 대사 없이 너저분한 파티의 흔적을 치우기 시작한다. 꽃, 음식, 풍선, 심지어 테이블(골판지였다)까지 방 안에 있던 모든 걸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담은 후 무대 한가운데 선 여자. 여름이었다. 여자는 봉투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암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도 할 수 있는 한 힘껏 박수를 쳤다. 아니, 이런 멋진 블랙코미디를 여름이 썼다니. 가슴이 벅찼다. 물론 이 연극은 여름이 말했던 물기 없고 단순한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간혹 웃음이 나는 장면에서도 여기저기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을 뿐, 후반부에 가서는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마저 들려왔다.
삼주간, 금토일 사흘간 하루 두번씩 공연은 이어졌고 나는 시간이 닿는 대로 저녁을 굶을지언정 몇번이고 다시 공연을 보러 갔다. 입소문이 났는지 마지막 공연 때는 객석이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삼세형님이 잔을 들고 말했다.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좋은 작품이었고,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극작가로 데뷔를 마친 여름도 크게 박수를 받았다. 모두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내가 낄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름은 저 멀리 삼세형님과 연출가 사이에 앉아 있었고, 제일 끄트머리에 앉은 나는 적당한 때를 봐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여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름은 곧바로 내게 다가와, 담배 피우러 나갈 건데 같이 갈래요? 하고 물었다.
정작 밖에 나오자 여름은 담배를 피우는 대신 잠깐 걸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렇게 말하고 앞서 걷는 여름을 한발짝 뒤에서 따라 걸었다. 여름이 갑자기 뒤돌아보며 물었다.
몇번 왔었죠?
들켜버린 내가 어…… 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여름이 말했다.
왜냐고 물어보지 않을게요. 둘 중 하나 아닐까? 공연이 너무 좋았거나, 내가 보고 싶었거나.
두, 둘 다입니다, 내가 말하자 여름은 웃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에 걸맞게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공기가 습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선선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저녁 공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원을 지나, 대로변을 지나, 내가 다니는 학교 정문 근처까지 왔다.
여기 계시는 거죠?
여름이 말했다. 내가 대답하려던 찰나 여름의 휴대폰에서 「아모르 파티」가 울려퍼졌다. 나는 맥없이 웃어버렸고, 여름은 양해를 구하는 손짓을 하고는 몇걸음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나는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는 척했지만 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를 엿들었다. 응, 겨울아. 응. 다 끝났지…… 나쁘지 않았어…… 엄마는…… 그런 말들이 나직이 들려왔다. 말투가 아주 다정했다. 여름이 전화를 끊고 다가오며 동생이에요, 했다.
동생 이름은 겨울이에요?
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매가 사이가 좋네요.
뭐, 연년생이니까요. 친구 같죠.
부럽네요.
뭐가요?
……난 외동이라서, 형제 있는 게 늘 부럽더라고요.
여름은 잠깐 묘한 웃음을 짓더니, 쓸쓸했어요? 외동이라서? 하고 물었다.
글쎄, 난 쓸쓸했나. 늘 혼자였던 사람은 그게 쓸쓸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른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만약 자식이 셋이었다면, 셋 중 하나는 박사 한답시고 고추밭을 팔게 하더라도 다른 하나는 엄마가 더는 농사를 안 지어도 되게 만들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복학할 때쯤 엄마는 고추밭 일부를 팔았다. 어차피 혼자서 다 짓기 버겁다고 했다. 그 돈은 내 전셋값이 되었고 지금 내게는 5천만원의 학자금대출이 있다.
여름씨는 동생이 있어서 안 쓸쓸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그렇게 되물었다. 네, 하고 곧장 대답했던 여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을 정정했다.
……네, 어느 때까지는요.
동생분도 공연 보러 왔었어요?
아뇨, 못 왔어요, 대답하며 여름이 어색하게 웃었다. 괜한 걸 물었다 싶었다. 그때 갑자기 빗방울이 눈꺼풀 위로 떨어졌다. 여름은 앗, 비 온다, 하고 말했지만 피할 생각은 안 했다. 우리는 캠퍼스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비 맞는 걸 좋아해요?
내가 묻자 여름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해요. 기분 좋지 않아요?
기분은 좋은데, 제가 요새 탈모가 있어서……
여름이 시원하게 웃었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기온이 떨어졌고, 여름이 조금씩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 돌아갈까요,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
여름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 나는 초라한 살림살이가 부끄러웠지만 여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책이 정말 많다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깔끔하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집에서 잠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거라고 말했다.
그날 꼭 잡은 서로의 손을 앞뒤로 흔들며, 여름이 쓸 칫솔과 렌즈 세정액을 사기 위해 15분 거리의 편의점에 다녀왔을 때, 나는 내가 지불한 8,300원이 정확히 무엇의 댓가였는지 몰랐다. 자신의 칫솔이 생기자 여름은 이 집에서 잠들 권리를 영원히 부여받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여름은 싸들고 온 짐을 캐리어 안에 그대로 둔 채 지냈다. 물건을 편하게 꺼내놓으라고 말했지만, 여름은 이쪽이 더 편하다고 했다. 여름은 원래 극단 동료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월세를 일부 보태기는 했지만 얹혀사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얹혀사는 게 맞긴 했지만, 그래도.
동료의 집엔 방이 하나뿐이어서 여름은 거실 소파에서 잤다. 짐을 부려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지냈는데, 익숙해지자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고.
꼭 소라게 같지 않아요?
여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내게는 그 말이 이 집에서도 가방 뚜껑만 잠그면 그대로 훌훌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듬해 초, 감염병 확산 소식이 뉴스를 통해 자주 들려올 무렵, 보일러 난방 온도를 올리는 문제를 놓고 한바탕 크게 싸웠다. 그러고선 또 언제 싸웠냐는 듯이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근데 넌 이제 여기 사는 거야?
그러자 갑자기 여름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니, 살지 말란 얘기가 아니라…… 내가 버벅거리자 여름은 말했다. 그 질문을 할까봐 내내 무서웠다고.
그때까지 내가 알던 여름은 자신의 마음이 곪아버릴 때까지 방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울 땐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울고, 웃을 때는 작은 폭죽을 터뜨리듯 웃었으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걸핏하면 우는 여름이었지만 나 때문에 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우는 여름을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있어. 계속 여기 있어.
그게 다였다. 그때부터 여름은 계속 여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에 번졌다. 조교 채용 인원이 확 줄어서, 석사 1학년조차 조교업무를 배당받지 못했다. 당시 나는 학기 중에도 주 사나흘 물류센터로 출근했다. 계약직이 되면 4대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었지만, 주 6일을 일하는 게 조건이었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학업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름은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새 극본을 썼다. 극본 작업에 진전이 있었는가 여부에 따라서 여름의 기분은 날씨처럼 확확 바뀌곤 했다. 어떤 날엔 아주 신이 나서 새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내게 쏟아냈다. 어떤 날엔 젖은 이불처럼 방 안에 늘어져 있었다.
밤 10시쯤엔 항상 겨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름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겨울은 전화를 그치지 않았고, 여름은 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전화를 받으려고 애썼다. 겨울은 여름이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샅샅이 알고 싶어하는 듯했다. 여름은 짜증 한번 없이 순순히 다 대답해주곤 했다.
동생이 너무 집착하는 거 아냐?
어느날 농담 삼아 한 말에 여름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거 아냐.
알겠어, 미안해.
여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겨울이한텐 나밖에 없어.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일까 싶기는 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 이대로를 원했다.
함께 밥을 해 먹고, 손잡고 산책하고, 주말이면 함께 드라마를 정주행하다 그대로 곯아떨어지는 날들. 나는 그제야 쓸쓸함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날들을 잃어버린 상태.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정류장 앞 담벼락에 공고문 붙은 거 봤어?
함께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름이 말했다.
그거 벌써 삼년도 넘었어.
그래? 그럼 우리도 나갈 때 보상금 받아?
여름은 ‘우리’라고 했고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응, 얼마 주긴 할걸, 확실한 건 아니고, 하고 대꾸했다. 다음 날 내가 일하러 가 있는 동안 여름은 구청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상세하게 알아본 모양이었다.
일인 가구의 경우 9백만원 정도 이사 지원비를 준다고 했다. 다인 가구일수록 보상금이 높다는 말에, 여름이 자신의 주거지를 이전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공고가 있기 전에 등록되어 있었어야 한다고 했다. 언제쯤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냐 또 물었을 때, 공무원은 가진 인내심을 다 썼다는 듯이 ‘저희도 모릅니다’ 말했다고 한다. 아주 사무적이고 정중했는데 그래서 아주 기분이 나빴다고, 여름은 말했다.
정중했는데 왜 기분이 나빠.
몰라. 갑자기 내가 9백만원 받으려고 안달난 사람같이 느껴졌단 말이야.
여름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게, 겨우 9백만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그걸 보태서 어디로 옮겨갈 수 있을까. 아마도 서울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보다 크게 나은 집을 구하기는 어려울 거다. 침실 외에도 여름이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방 하나가 딸린 그런 집으로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내 인생에는 여름도 없었고, 여름과의 미래도 없었다. 여름과 함께라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시 잊었던 사실은, 물은 하류로만 흐른다는 것. 코로나는 쉽게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름의 새 극본은 표류했으며, 새로 준비하던 공연도 전부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피곤했다. 여름을 만나고 삼년이 흐르는 동안 내내, 나는 어디에라도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상태였다.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잔 적도 있다. 몇년 사이 체중이 10킬로그램이 넘게 빠졌다. 수업을 하나 맡을 뻔한 적도 있었는데, 막상 학기가 시작되자 수강신청을 받기도 전에 폐강되었다.
언제부턴가 여름은 끝없이 뭔가를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름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밤이 될 때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잘 몰랐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추궁하거나 판단하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도 되었고, 어쩌다 대화가 시작되면 자꾸 날 선 반응이 되돌아와 입을 닫는 편을 택했다. 싸울 에너지가 없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겉으로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세계의 표면 아래 수맥처럼 퍼져 있는 그 무엇을. 대학로는 다시 활기를 띠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연들이 재개되었지만, 여름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극본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겨울에게 전화가 오면 여름은 거짓말을 했다. 새 극본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번에는 주연을 맡게 되었다고. 곧 남자친구랑 같이 이사를 가게 될 거고,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도 했다.
그것들이 모두 거짓말은 아니었다. 쫓겨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해도 ‘조만간’ 이사를 가게 될 건 분명했고, 나는 이번 학기에 간신히 2학점짜리 교양과목을 맡게 되었으니까. ‘동양고전과 인간 이해’라는 따분한 제목에 금요일 오후 수업이라서 염려했지만, 간신히 폐강은 되지 않았다. 물론 내 삶에 고단함이 하나 추가되었을 뿐, 바뀐 것은 없었다.
어제는 한 학생이 나를 강사님, 하고 불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니 너무 정확한 말이어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대개는 나를 교수님, 또는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니라는 걸 알아도 보통은 그랬다. 부르기가 정 껄끄러우면 그냥 저기, 하고 말을 시작하기도 했다.
아무 의문도 의도도 없이 그 학생이 나를 ‘강사님’이라고 불렀을 때, 나는 ‘저는 희극인이에요’ 하고 말하던 여름의 새빨간 얼굴, 부끄러움이라고는 없이 그저 알코올 기운 때문에 마냥 붉었던 그 생생한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고 멍하니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 오랜만에 삼세형님의 연락을 받았다. J가 갑자기 찾아와 술 한잔 하는 중인데, 어쩌다보니 동양철학과 출신들이 대여섯명 모였다고 했다. 형님이 대는 이름은 다들 꽤 가깝게 지냈던 동기들이었다. 졸업 후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경우도 있어 궁금하기도 했고, 마침 내일은 휴무니까 가볍게 한두잔 마셔도 괜찮을 듯했다.
*
택시에 탈 때만 해도 그대로 필름이 끊길 것 같았는데 집에 가까워갈수록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택시가 지하철역 앞에서 멈춰 섰다. ○○고등학교까지 가야 하는데요, 내가 말했더니 기사님이 3만원 아까 넘었어요, 했다. 삼세형님이 택시요금을 3만원 건넨 모양이었다. 나는 군말 없이 택시에서 내렸다.
느릿느릿 걸었다. 그래야 했다.
물속을 걷는 듯한 느낌. 미지근하고 묵직한 공기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를 뒤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참 이상하지. 여름을 만난 후로 벌써 몇번의 여름이 지나갔는데, 그 모든 여름이 전부 한덩어리인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결코 끝나지 않을 긴긴 열대야 같았고, 그 생각을 하자 현기증이 났다.
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부엌 바닥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여름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수박 먹자, 하고 말했다.
웬 수박?
같이 먹으려고 사 왔어.
……내일 먹을까? 나 너무 피곤한데.
내 말에 여름은 대꾸가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여름은 동그랗게 몸을 구부린 채 누워 있었다. 잠든 걸까. 나는 최대한 조용히 침대로 가서 누웠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 대신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여름에게 가고 싶었다. 여름 곁에 모로 누워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토요일이지만 연구실에 출근했다. 여름은 내가 집을 나설 때까지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중해서 책을 들여다본 게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여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에 소곱창 먹자.
왜 갑자기?
그냥.
여름은 알겠다고 했다. 재개발을 앞두고 빈 건물이 많은 우리 동네에, 일년 전 조그만 곱창집이 신장개업했다. 그게 좀 황당해서 여름이랑 한번 갔었다. 돼지막창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고, 그뒤로도 몇번 갔다. 막창 아니면 냉동삼겹살에다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
나 소곱창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마지막으로 그 집에 갔을 때, 내가 삼겹살을 뒤집고 있는데 여름이 말했다. 메뉴에 소곱창도 있었지만 일인분에 2만원이나 해서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 시킬까?
여름은 고개를 저었다.
넌 먹어봤어?
난…… 몇번 먹어봤지.
그렇게 말하고 생각해보니 전부 삼세형님에게 얻어먹은 것이었다.
근데 내 돈 내고 먹은 적은 없네.
내 말에 여름이 킥킥 웃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보상금 받으면 여기서 소곱창 먹을까? 삼인분 먹을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여름을 나는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곱창이 뭐라고, 2만원이 뭐라고 그때 그걸 안 시켰을까.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막상 자리를 잡고 앉자 여름은 일단 소곱창은 일인분만 시키자며, 입에 안 맞을 수도 있잖아, 했다. 결국 소곱창 일인분에 삼겹살 이인분을 시켰다. 냉동삼겹 대신 생삼겹으로. 소곱창이 먼저 나왔다. 불판에 곱창을 얹고 익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여름이 말했다.
아까 삼세오빠가 전화했더라?
그래?
어제 봤는데 네가 너무 말랐다면서 밥 좀 잘 챙겨주라는 거야. 어이없지 않아?
여름은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밥하는 사람이에요? 그랬더니 오빠가 야, 넌 뭐 말을 그렇게 하냐, 밥은 서로서로 챙기는 거지, 그러는 거야. 그럼 내 밥은 누가 챙겨요? 나도 디게 말랐는데요,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자기가 밥 사준대. 진짜 웃기지.
나는 여름이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건지, 삼세형님을 비난하는 건지, 나를 비난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그냥 그래요, 언제 밥이나 먹어요, 했지 뭐. 나보고 이제 연극 안 할 거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뭐라 그랬어?
내가 알아서 한다 그랬어.
여름이 대답했다. 그래.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지. 나는 내 몫을, 너는 네 몫을 하면서…… 그냥 살면 된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맛, 깜짝이야, 하고 여름이 소리를 질렀다. 덩치가 꽤 크고 꼬질꼬질한 백구 한마리가 소리 없이 곁에 와 있었다.
개는 꼬리를 양옆으로 흔들며 여름과 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개의 눈을 빤히 보자 개도 나를 봤다. 곱창을 한점 주시면 감사하겠으나 무리하게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는 듯 정중한 눈빛이었다.
얘 좀 봐, 엄청 점잖아.
내가 말했다.
이 집 개인가?
여름이 별로 관심없다는 듯 대꾸했다. 여름은 곱창 한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며 내게 다 익었다, 먹어, 하고 말했다. 나는 개에게 곱창을 한점 건네주고 싶었지만, 여름의 말을 듣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 개는 곱창집 개이므로 곱창은 항상 충분하고 이건 갈망의 눈빛도 요구의 눈빛도 아닐 수 있다. 나는 개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지 않으려고 했다.
개는 5분 정도 꼿꼿이 앉아 있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점잖은 개의 입에서 침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아스팔트 바닥이 작고 동그랗게 젖었다. 개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원망도 미련도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옆 테이블로 건너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옆 테이블 손님 중 하나가 개에게 고기 대신 상추를 건넸다. 개는 그것을 입에 물었다가, 바닥에 도로 퉤 뱉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왁, 하고 웃었다.
순간 불을 삼킨 것처럼 속이 뜨거웠다. 급히 차가운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넣자, 밑 빠진 독처럼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떨궜다.
……울어?
나는 수그린 머리를 가로저었다.
오빠,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여름이 오빠, 하고 불렀다. 여름은 심각한 얘기를 할 때만 나를 오빠라고 했다. 여름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관두고는 일단 먹자, 응? 했다. 그러고는 잘 익은 곱창을 내 앞접시에 두어개 올려놓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 곱창을 씹었다. 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곱창집에서 나오자마자 여름이 말했다.
우리 캔맥주 사서 좀더 마시고 들어갈까?
편의점에 들어가 캔맥주를 두개 샀다. 비닐봉지를 들고 천변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멀리 불꽃을 터뜨리며 노는 소년들이 보였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덥고 습하기만 한데. 대체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어제 양꼬치집에서 만난 내 동기들도 즐거워했다. 다들 이미 취해 있었고, 지난 몇년 잘 버텼다며 서로 고생했다 격려하는 모양새였다. 학부 전공을 살린 사람은 한명도 없었지만, 그래도 전부 꽤 괜찮은 직장에 자리잡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도, 여전히 학생인 사람도 나뿐이었다.
강의한다며? 이제 좀 살 만하냐?
J가 말했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건데 뭐. 다음 학기엔 못할 수도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근데 그…… 전공이 뭐라 그랬지? 세부전공?
옆에 있던 M이 혀 꼬인 소리로 물었다. 어, 하고 내가 대답하려는데 삼세형님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쟤 얻어먹기 전공이잖아.
그러자 모두가 와아악 웃었고, 나도 따라서 웃었다.
나는 웃어넘기려고 했다. 점잖고 꼿꼿하게 앉아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삼세형님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야, 그래도 가방끈은 네가 제일 길다, 하며 J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동시에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평소보다 더 빨리 마셨고, 삼세형님이 택시를 잡아 나를 뒷자리에 짐짝처럼 구겨넣을 때까지, 계속 마셨다.
여름과 나는 천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마침내 조금 한적한 구간이 나왔다. 천변을 따라 비스듬히 쌓인 돌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봉지에서 캔맥주를 꺼내 하나씩 나눠 땄다. 딱, 하는 소리가 별로 기쁘지 않았다.
여름이 캔을 내밀기에 가볍게 맞부딪쳤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말없이 물 위에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여름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3 때 있지. 친구들이랑 급식 먹으러 갔는데, 겨울이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거야. 좀…… 상황이 안 좋다는 느낌이 있긴 했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 겨울이가 뭐 어떻다 얘기하지도 않았고, 그냥 예전보다 좀 덜 웃고 기운이 없는 느낌? 근데 그때 급식실에서 겨울아, 하고 선뜻 못 부르겠더라고.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싶어서…… 그러다 겨울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시선을 확 피했어. 걔도 나한테 알은체 안 하고 금방 일어나서 가더라. ……얼마 안 가 방학이었는데, 겨울이가 방학 내내 방 안에서 이불 덮어쓰고 잠만 자는 거야. 그땐 부모님도 나도 그냥 저러다 말겠지 했어. 사춘기라고.
여름은 맥주를 한모금 더 마시고 말했다.
……근데 겨울이는 아직도 거기 있는 거야. 십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름은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치듯 서울로 왔다고 했다. 하루라도 더 있으면 겨울과 함께 그 방 안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자신이 눈을 피했던 그 장면이, 유체이탈해서 내려다본 것처럼 자꾸 다시 떠오른다고 했다.
내가 진짜 웃기는 걸 만들어서, 겨울이가 그걸 보러 오는 상상을 했어. 겨울이가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나는 여름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지금 충분히 아름다웠다. 우리가 쌓아온 시간들이 우리의 얼굴이 되는 거라면……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거 알아?
여름이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보았다. 그러고는 고요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기다려. 항상.
알고 있었다.
여름이 견디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나의 침묵이라는 걸. 내가 여름을 숨죽여 우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걸. 나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그런 게 사랑인가? 자신의 몫이 아닌 고통까지 나눠 갖는 게. 우린 이미 각자의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언젠가 나도 여름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느날 집에 돌아왔을 때 더는 네가 이곳에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봐 무서웠다고. 나는 그게 제일로 무서웠다고.
가끔 늦은 밤 집에 돌아와, 고요하게 잠든 널 가만히 지켜보는 게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네가 깨어 있을 때 내가 얼마나 깨어 있고 싶었는지. 내가 그 말들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여름이 내 곁에 남아 있을까.
그때 빗방울이 뺨 위로 떨어졌다.
완전 클리셰 아냐?
여름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가서 수박 먹을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 내 손을 잡았다. 미지근한 여름의 손. 우리는 속도를 높이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지나간 어느 여름처럼,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면서. 한참 걷다 말고, 갑자기 여름은 데뷔작의 결말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있지, 손님들이 이미 늦었어, 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 말이야. 그때 공중에서 여자가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리고 천천히 내려오는 거야. 낚싯줄에 매달려서. 다들 기겁하겠지?
여름은 자기가 생각해도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근데 여자가 갑자기 머리를 곱게 하나로 묶더니 말해. 여러분.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이걸로 충분하니까, 앞으로는 죄책감 갖지 말고 사세요.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나와. 세인트 패트릭 데이 알지? 어느 나라에선 그날 다 초록색 옷 입고 신나게 논다잖아. 그리고…… 마지막에 암전은 없어. 그 대신 다같이 쓰레기를 치우는 거야. 배우 몇명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객석 사이를 다니면서 이제 가세요, 쓰레기 버리고 가세요, 하는 거야. 극장주가 좋아하지 않을까?
여름은 깔깔 웃었다.
응, 그거 좋다. 좋아.
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후드득 하고 세찬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래도 안 뛰어?
내 말에 여름이 소리치듯 말했다.
응, 안 뛰어.
쫄딱 젖은 여름이 웃고 있었다. 여름이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걸 정말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지금 진짜 못생겼다.
여름이 나를 보고 깔깔거렸다.
너도. 미역 같아.
여름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다 말고, 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배를 붙잡고 큰 소리로 웃었다. 여름은 몸을 뒤로 젖힌 채 웃었다.
언젠가 웃음에는 폭(爆)자가 앞에 붙는데 왜 울음에는 안 붙을까, 그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몸을 터뜨릴 듯 팽팽해지다 결국 폭발하고 마는 울음들을 나는 분명 본 적이 있는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폭우 속에 한참을 웃다보니 내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구분이 잘 안 됐다.
나는 문득 이 장면이 우리의 마지막이더라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이 어쩌면, 우리를 다음 여름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더 크게, 크게 웃었다. 빗소리를 이기고 싶었다.
* 화자의 일화는 다음 책에서 빌려왔다.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은행나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