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논단

사법개혁, 법관의 지배를 넘어 시민의 사법으로

 

 

한상희 韓尙熙

헌법학자,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공저서 『감시사회』 『법조윤리』, 역서 『헌법은 왜 중요한가』 등이 있음.

shan@konkuk.ac.kr

 

 

1. 들어가며

 

지난 5월 1일 대법원은 이재명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의 허위사실공표죄 혐의에 대한 선고기일을 열어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더불어민주당이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자를 결정한 직후이며 선거까지 불과 한달 남짓 남은 때였다. 서울고법은 곧장 담당재판부를 결정하고 사건기록을 건네받아 첫 기일을 5월 15일로 정하면서 혹여 그르칠까 소송서류를 집행관을 통해 직접 송달하는 방식을 취하려 했다. 이같은 파기환송 판결은 명백히 사법의 정치화에 값한다. 어느 소설 속 촌철살인처럼1 판결을 미뤄 피고인을 괴롭혀왔던 법원으로서는 실로 전광석화 같은 처리였다. 마치 대법원과 서울고법이 한통속이 되어 이재명 예비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을 사기에도 충분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해당 판결에서 대법관 5인의 법정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이렇게 시작한다. 상고서에 대법관 출신 전관변호사의 도장을 찍지 못한 탓에 무수한 시간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낯선 문구이기도 하거니와, 이것은 잘못 인용된 것에 다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성급한 정의는 결코 정의가 되지 못한다.’ 그 성급함으로 인해 ‘법의 지배’라는 헌법원칙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후보간 정책경쟁이 최고조에 달해야 하고, 내란종식의 과제에 대한 당대의 다짐이 거듭 축적되어야 하는 이 대선 국면에서 모든 이의 관심은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에 집중됐다. 가장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사법 판단이 정치의 맨 꼭대기에 자리해 세상을 뒤흔든 것이다. 마침 세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서울고법이 선거 이후로 기일을 연기하면서 풍파가 잦아들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으로 인해 법원과 검찰, 행정부 등의 고위직 인사들이 대형로펌과 결탁하여 일종의 법조카르텔을 구성하고 이들이 우리의 법치는 물론 정치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세간의 의심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과거 정치권력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던 법률가 집단이 민주화의 과정에 편승해 어느새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2. 사법의 독립: 미진한 법원개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때 그 헌법적 의미는, 다수의 의사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국민의 자유·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법으로써 제한하는 ‘법의 지배’ 원칙이 함께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법의 지배는 사법권의 독립을 기반으로 한다. 법원은 원고와 피고 혹은 제3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서 오로지 법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은 법원에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1986년 캐나다 대법원은 법관연금법사건2에서 사법권의 독립이 ‘민주사회 입헌주의의 생명선’이라 선언했다. 법의 지배뿐 아니라 기본적 정의, 평등, 민주적 절차의 보존 등 헌법의 기본적 가치 또한 수호해야 하는 역할이 법원에 부과된 것이다. 무엇보다 사법권이 다른 제도들과 함께 ‘공동체의 삶을 형성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된다.

우리 시민사회가 ‘사법도 서비스다’라고 외치며 사법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권력으로서의 사법을 국민에 봉사하는 ‘국민의 사법’으로 전환하려는 열망이었고, 그중에서도 법원개혁은 가장 치열한 전선을 이루었다. 법관 인사제도의 개선에서부터 법원구조의 변화,3 심급제 완화(하급심 강화), 법원행정처의 혁파(법원 단위의 사무처 설치), 대법원장·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등이 추진되었고, 어느정도 성과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사법을 통한 헌법적 가치의 실현에는 미치지 못한 채, 대부분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만 확보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사법이 권위주의적 통치수단으로 전락했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미진하다보니, 사법개혁은 형식적인 법의 지배라는 개량적 변화만으로 처리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시민들은 숱한 투쟁을 거쳐 사법에 작용하던 정치권력을 얼마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권력의 빈자리는 시민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력을 추종하며 그 권력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던 사법관들이 종래의 권위주의적 권력을 전유하고 나섰다. 사법권은 독립성을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시민들로부터도 독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법 내부권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사법관들의 카르텔은 아예 사법권을 사적 권력으로 변형시켜나갔다.

군사정권 시절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재판에서 재판정 뒷문으로 드나들던 비밀경찰의 판결 지령 쪽지들은 이후 대법원장의 순시를 통해, 혹은 법원행정처의 지침이나 선배 판사의 조언이라는 형식으로 법관의 재판을 치고 들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개입해 물의를 일으킨 신영철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경우이며, 2017년 이탄희 판사의 항의로 드러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법원 내에 수직적인 권력구조를 형성하고 그 위계에 따라 재판에 개입하거나 재판을 두고 외부 정치세력과 거래를 하는 양상이 너무도 쉽게 벌어졌던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고위법관 출신의 변호사는 대형로펌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잡고, 그 연줄을 따라 자본은 새로운 수탈의 방식을 확보하게 된다.4 소위 3·5법칙(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은 재벌총수의 불법적 경영행위를 싸고돌며, 노동쟁의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는 재판이 노동수탈의 수단으로 전용됨을 허한다.

사법권이 법관 개인의 권력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관행에 따라 버스요금 2,400원을 입금하지 않은 특정 노조원을 ‘횡령’이라는 이유로 해고한 사건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법관이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되기까지 했다. 관행과 달리, 그렇다고 사전의 논의도 없이 구속기간을 날짜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바꾸어 내란우두머리를 석방한 재판부는 현재 내란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나 국가기밀 등을 명분으로 국가범죄의 불처벌에 항거할 인류 보편의 인권을 침탈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예링(R. Jhering)은 국가가 수호해야 할 최상의 가치는 국민의 법감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설피 진행되었던 사법개혁의 작업은 법감정과 유리된, 사법관이라는 부수적 피해를 야기했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국가운영의 대원칙이지만, 과거의 우리 사법 역사는 그것을 법률에 의한 지배(authoritarian rule by law)로 대체해 권위주의체제를 구성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사법관에 의한 지배(juristo-cracy)를 초래하면서 민주주의(demo-cracy)와 대척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3. 법관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사실 법이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든 동일한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일반성과 추상성을 그 존재형식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이다. 혹은 법관들이 견지해야 하는 법적 양심 자체가 법관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법관의 판결을 행태주의적으로 분석하는 틀에 의하면, 법관들은 법 외에 다양한 요소를 산입하여 판결에 이른다고 한다. 보수/진보 혹은 지지하는 정당 등으로 표상되는 가치관의 차이가 대표적 요소이다. 법관이 사건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법 적극주의와 주어진 법규 안에서만 임하는 것이 사법이라는 입장 사이의 역할 정향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에 포함된 여러가지 사실요소들—이를테면 피고인이 국민인지 이주자인지, 재벌인지 노동자인지, 압수수색의 대상이 사무실인지 주택이나 사람의 신체인지 등—에 따라 각기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법원 내부의 상호관계나 영향력의 분포 또한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법 외적인 요소가 된다. 예컨대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를 통합할 것을 명령한 1954년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장이었던 워런(E. Warren)은 강력한 지도력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재판관들을 돌려세워 만장일치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자신을 사법관으로 지명한 사람이 누구인가도 영향요소가 되는데, 가령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의 지명을 받은 헌법재판관이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다가 소위 3당 합당(1990) 이후 김영삼의 정치적 소속이 바뀌자 보수적 성향의 의견을 제시하는 빈도가 급증한 바 있다.

요컨대 비슷한 사건이라도 법관이 누구인가에 따라 법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법관은 법에 따라 재판한다지만, 그 법은 법관이 읽어내고 선택하는 법, 즉 ‘법관 법’(judge-made law)이 되기 십상이다. 문제는 판결 편차가 국민의 법감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크거나 통상적인 법해석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이례적이어서 그 판단이 ‘귀걸이 코걸이’식의 권력으로 변형되는 경우이다. 소위 3·5법칙이 그러하듯,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취소 결정이 그러하듯, 그리고 유력한 대선후보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전광석화와 같은 파기환송 판결이 그러하듯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엄중했던 법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한갓 휴지조각에 불과한 사태가 빈발한다면, 법의 지배라는 원리는 당연 무용지물의 허사에 지나지 않게 되며, 나아가 사법관의 지배는 바로 그러한 법적용의 자의성에 터를 잡아 구조화된다.

특히 최근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는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모든 분쟁의 사법화’라는 법률전쟁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사법관의 개인화된 판단 행태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법관이 시민의 참여도 없이 진행해 결정하는 재판과정이기에 그 규범력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사법의 독립성이라는 명제가 민주주의의 기본틀을 변형한다든지 혹은 자본권력이 시민사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양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법의 독립성이라는 명제가 사법의 고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독립성 명제처럼, 법관 혹은 재판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거나 국민의 법감정 바깥에 있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혹은 법관들이 스스로를 선민적 특수집단으로 간주하고 일반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사법농단 사태가 그러했듯 이러한 경우에 법관들은 법을 지배의 기반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나 부의 수단으로 여기며 남용하게 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권력은 그 자체로 부패한 권력이 된다. 사법권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국민의 사법으로 전향하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엄밀히 보자면 진정한 사법의 독립이란 정치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사법의 내·외부로부터 부적절한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법관의 ‘법과 양심’은 법관 개인의 도덕이나 집단윤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대화 속에서 그 내용이 충전되어야 한다. 국민의 법감정은 법치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이기에 법관은 이를 발견해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중개자일 뿐이다. 가장 허약한 국가기관으로서의 법원이 막중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국민들과 함께 재판을 구성해나갈 때 가능한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를 이끌었던 태프트(W. H. Taft) 대법원장조차 “만일 법이 상식의 본질이라면, 가장 세련되고 심오한 학식을 바탕으로 내려진 사법판단이라 해도 평균적인 사람들 다수의 항의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그 판단에 결함이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법원과 시민의 역동적인 대화로써 법원의 판단이 구성되고 또 유지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법관은 왜 이러는가

 

사법은 법의 지배가 구현되는 핵심적인 국가영역이다. 법의 지배라 할 때 그 요구는 사법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최후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지만, 사법이라는 권력은 수시로 국민을 배신한다. 법관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법을 자신의 것으로 포획하고 그를 통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전유한다. 특히 우리 법체계는 일본을 거쳐 변형된 독일식의 관료주의적 법률가 모델을 취하다보니 법의 지배가 자칫 관료적 법관의 지배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우리 사법체제에서 법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되는 경로는 여러가지다. 첫째, 법관양성 시스템이다. 현재도 대부분의 법관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친 자들이다. 국가가 만든 선발·양성 체제 속에서 격심한 경쟁을 거치며 법관이 되었다. 혹은 반쪽짜리 법조일원화 정책5에 따라 변호사 자격을 따면서 재판연구관이 되었다가, 로펌 등의 보호를 받으며 필요한 법조경력만 간신히 채운 후 법관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에 도제식 훈련이 가미된다. 신참 법관들은 합의제 재판부의 배석판사가 되어 부장판사인 고참 법관의 사수를 받은 다음에야 단독판사로 나아간다. 의당 이 훈련과정에서 수많은 법원의 관행이나 폐습이 그대로 학습된다. ‘내가 데리고 있던 배석’은 ‘제가 모시던 부장판사님’의 사수를 받으며 선배 법관이 걸어간 길을 그 뒤꿈치만 바라보며 따라간다. 여기서 법관 순혈주의에 가부장적 관료제의 형식주의가 전승된다. 일종의 폐쇄회로에 차폐되어 그들만의 인식과 사고에 함몰된 법판단에 임하게 되고, 종국에는 소송 당사자인 국민을 법과정으로부터 타자화시켜버리는 것이다.

둘째, 치열한 내부경쟁 역시 법률관료의 권력화를 강화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사법시험(혹은 변호사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곧 전국 법관의 서열이 되고 지법원장의 근무평정과 함께 승진이나 근무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무지의 경우 특히 향판(지역 근무)과 경판(수도권 근무)의 선호에 더해, 법원행정처 근무와 같은 일종의 로열로드 진입을 향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부장판사로의 승진은 경력기준에 따라 어느정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발탁인사의 전형이었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나, 최근 대법원이 보수화되면서 이 또한 과거로의 퇴행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셋째, 이런 시스템은 강력한 중앙권력이 존재할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우리 사법체계는 그 극단에 있으며, 소위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비난은 단적인 예를 되비춘다. 최악의 권위주의 권력을 가능케 했던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법관을 임명하도록 했다. 현행 헌법은 이 구조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기가 임명한 대법원장을 장악하고, 그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하며 다른 모든 법관을 임명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이 사법권을 포획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대법원장은 법관의 인사와 법원의 재정 및 행정, 사법 정책과 기획 등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를 장악한다. 그 보좌를 통하여 대법원장은 마음만 먹으면 3,248명(2025.1.1 기준)의 법관들을 한손에 관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17년 법관들의 학회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인사조치를 행하거나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제의 도입을 목표로6 정치권과 재판 거래에 나선 사건 등은 법원행정처가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법원행정처는 모든 법관을 감시·감독하며 사법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재판을 하나의 기준에 의해 평균화·획일화하는 사법의 리바이어선(Leviathan)이 되어 있다.

법관들이 개인적인 인식과 주관적인 판단에 사로잡히거나 강력한 중앙에서 구성된 법판단의 규준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틀에 박힌 판결이나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판단으로만 일관하게 되는 것은 이런 경로들을 통해서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사법구조는 법관들이 시민사회와 소통하면서 시민의 법감정을 재판과정에 유의미하게 편입시킬 수 있는 과정이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선민적 엘리트주의에 함몰된 법률관료로서의 법관들은 시민들에 대한 일방적·획일적 평가자로서의 정체성만 가진다. 혹은 자신의 결정이 정당함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기보다 법원 내부에서 혹은 동료 법관들의 동의나 묵인으로부터 획득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그들의 판단은 그들만으로 구성된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사법권은 이렇게 해서 법관(들)의 사적 권력으로 전이되어왔다.

 

 

5. 사법의 민주성으로

 

그래서 사법의 독립성은 필연적으로 민주성의 요청을 껴안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를 제대로 구성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동안 국가권력은 식민지체제부터 권위주의체제까지 줄곧 과대성장한 채로 시민사회를 지배해왔다. 보다 민주화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 권력을 법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그 법이 사법의 권력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시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이지 사법관의 지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현재 한국에 있어서의 사법개혁의 궁극목표다. ‘민주적 법의 지배!’

사법의 민주성이라 해서 국민들이 직접 재판을 하거나 재판의 과정과 내용에 영향력을 행사해 그 판단의 결과를 결정해내는 체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국민의 일반적 법감정이나 정의관에 부합하는 판단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을 국민들이 적절하게 감시하고, 또 대표기관을 통해 사전적·사후적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민주화된 사법체제를 구성한다.

요컨대 사법의 민주성은 언제나 사법의 독립—특히 사법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또다른 헌법적 요청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실제 사법에 관한 한 그 독립성과 민주성은 대체로 충돌한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법관이 자신을 둘러싼 시민들의 의사—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의 지배를 받거나 그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사법에 관한 민주성의 요청은 한정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한정적이라 하면 배심제도 및 참심제도 혹은 법관 선거제 등이 예가 되며, 간접적이라 하면 재판부의 구성 내지는 법관 충원과 양성을 다양화·다원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와 함께 민주성의 개념을 좁혀서 책무성(accountability)이라는 틀을 통해 사법관의 지배현상을 에둘러 차단하는 방책을 취할 수 있다. 책무성 개념은 대체로, 법관을 포함한 모든 정책결정자는 그 결정을 다른 사람—상급자, 소비자, 또는 시민 등—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그들의 판단에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시민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효과적인 정보교환을 바탕으로 정책결정에 임하되, 결정을 내리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결정에 이르게 된 이유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 혹은 그러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부담하는 것 등이 복합된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를 사법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이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며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내·외부적인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지는 체제가 필요하다. 그 경로로는 ‘사회적 책무성’으로서 법원 내부의 동료 법관들, 다른 법률관료나 법률가, 혹은 법공동체를 통하는 경우가 있고 ‘정치적 책무성’으로서 의회, 행정부, 언론 등에 의한 경우도 있으며, ‘법적·민주적 책무성’으로서 사법 소비자인 당사자나 증인 등 관계인과 일반적인 시민의 입장에서 개방성과 응답성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6. 민주적 사법을 위한 제도적 방책

 

사법의 민주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은 이미 시민사회에서 충분히 제시해왔다. 여기서는 그중에 중요한 것만 몇가지 추려보고자 한다.

 

(1) 법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

법원은 사회 각 부분의 대표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회부문과의 소통능력이고, 재판부 내에서 원활한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법관의 충원·양성과 재판부 구성방법의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충분한 사회적 경력을 갖춘 사람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소위 법조일원화로 불리는 이 방법은 법관이 되기 전에 변호사나 검찰을 비롯한 법률사무 종사경력을 일정기간 쌓을 것을 요구한다. 실제 이 제도는 우리 법원의 고질적 병리인 법관의 계층주의, 선민적 엘리트주의를 교정하고 전관예우나 사법연수원 기수문화 등으로 구성되는 법조카르텔을 완화하기 위해 추진됐다. 그래서 2013년 법관임용에 3년의 법조경력을 요구한 데 이어, 순차적으로 그 경력을 5년, 7년 등으로 확장해왔다. 종국적으로는 2026년부터 10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순혈주의에 집착한 법원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자 국회는 두차례나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7년 경력의 시행을 미루었다가, 급기야 2024년 9월 요구 경력을 5년으로 축소해버리는 퇴행조치를 해버렸다.

대법원을 비롯한 합의제 법원의 구성을 실질적인 합의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현재는 고참 판사 1인을 부장으로, 신참 판사 2인을 배석으로 합의부를 구성해 도제식의 법관 훈련장치가 작동하게 되어 있다. 합의부에서 ‘합의’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등재판부를 통해 3인 전원을 대등한 경력의 법관으로 두어 실질적인 심리와 평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1년부터 이러한 대등재판부가 설치되기 시작해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2017~23) 대폭 확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 대법원장(조희대)은 대등재판부 확대에 소극적인 입장인데다가 대등재판부의 업무처리 및 재판 진행에 관한 매뉴얼도 아직은 미흡한 상태이다. 더구나 사건 부담이 폭주하는 바람에 대등재판부가 단독심 3개의 집합조직에 머무르고 마는 현실도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의 구성은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소위 ‘서오남’(서울법대 출신의 오십대 남성)에다 현직의 ‘엘리트’ 법관 출신만으로 이루어지는 대법원이라면 그 합의체가 4명의 소부이든 14명의 전원합의체든 현실사회와 유리된 법정이 될 수밖에 없다. 헌법을 바꾸어서라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폐지하고, 최소한 법률가 공동체의 합의와 검증을 통한 인선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현재로선 별 존재감도 없는 대법관추천위원회를 국회와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인선기관이 될 수 있도록 잘 운영할 필요가 있다.

 

(2) 법원행정의 민주화: 사법행정위원회 제도의 도입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중심에 법원행정처가 자리한다.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다른 민주사회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와 권력을 가지고, 법관 인사부터 사법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법 병폐가 파생하는 위험지역이다. 특히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기구임에도 주요보직을 법관이 담당하게 함으로써 승진의 로열로드를 마련해주는 한편 이들을 순치시켜 법관 통제의 중심세력으로 조직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사법의 민주성 확보는 이 법원행정처를 혁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권한과 조직의 상당부분을 축소·폐지하거나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단위로 이양해야 한다. 또 법원행정처의 탈법관화도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법원행정의 민주적 거버넌스 체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시행 중인 사법행정위원회(councils for judiciary)는 좋은 모델이 된다. 법원과 정치기구(의회 또는 의회가 구성하는 내각)의 중간에 위치해 양자의 이해관계를 여과하면서 사법의 독립성과 책무성의 요청을 중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행정위원회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법관이나 법관의 대표—프랑스·이딸리아 등에서는 판사노조의 대표도 참여한다—와 민간, 정치인 등이 폭넓게 참여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이 기관에서는 사법행정에 대한 민주적 관리 및 통제의 장치를 마련한다. 국가별로 편차는 있지만, 주로 법관의 인사 및 교육·훈련·사법윤리(규율)를 담당하며 법원행정, 사법재정, 민원처리 등을 한다. 사법체계 개선 및 사법 관련 입법정책을 포함한 사법정책, 법원에 대한 이미지 관리 등의 직무도 이 위원회의 몫이다.

지난 사법농단 사태를 계기로 우리 시민사회에서도 사법행정위원회의 도입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이에 2018년 대법원의 사법발전위원회에서도 유사한 정책권고를 했고 제21대 국회에서는 이탄희 의원의 발의로 관련 법안까지 제출됐다. 하지만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런 요구를 사법행정자문회의로 우회했으며, 현재의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나마도 폐지했다. 법원행정처의 강력한 보좌에 기대어 대법원장이 절대권력으로 자리하는 폐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우리 사법체제에서 법원행정처의 권력과 그 위력은 어느 법제에 견줄 바 아니다. 이 기구를 그대로 둔 채 사법의 민주성 강화 내지는 사법개혁을 말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조속히 사법행정을 대법원장이라는 권력자로부터 떼어내고 그 폐쇄공간에 햇빛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국민적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시민의 대표가 참여하고 그 업무과정을 속속들이 공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체할 일이 아니다.

 

(3) 판결문 공개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할 때, 그 발화자는 법관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독립성이 보장되는 법관에 대해서는 그의 판결만이 시민들이 인식하고 분석·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그래서 이 말은 ‘법관은 판결로 평가된다’는 말로 대체가능하다. 판결은 법전에 적힌 법이 현실의 세계에 적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캐나다의 최고법원은 법원 절차의 공개야말로 자국 사법시스템의 우열을 가리는 시금석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즉 법원 절차가 공개되어야 일반 시민들은 자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의가 집행되며 법원이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존재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법절차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를 높임과 동시에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판결문을 볼 수 없으면 현실의 법을 알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은 법의 세계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법치국가의 체계는 대중의 지배가 아니라 사법관의 지배, 그것도 아주 타락한 형태의 사법관료의 지배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우리 법원은 그런 폐습의 전형이 되어 있다. 그동안 법원은 보여주고 싶은 판결문만 아주 적은 수준에서 공개했다. 그것도 법원도서관을 찾아가서 사건번호를 입력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내야만 겨우 열람할 수 있었다. 2023년부터는 2023년 1월 1일 이후 선고되는 민사사건(행정·특허 포함)의 미확정 판결문도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형사사건의 미확정 판결문과 소액사건 판결문 등은 열람대상에서 빠져 있고 기계어 검색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절반의 판결공개제도는 어떻게 보아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사법의 민주성에도, 판결의 공개주의라는 헌법명령에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판결문에 기재된 개인정보나 영업비밀은 보호조치가 긴요하지만, 그것이 판결문의 일반공개를 가로막는 이유는 결코 되지 못한다. ‘비실명’ 처리 방식이든 재판과정에서 당사자의 성명을 가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4) 법원의 확대

우리나라의 법관 수는 다른 민주사회에 비할 때 턱없이 적다. 유럽의 경우만 해도 인구 대비 법관의 수가 우리 두배 정도는 된다. 경제규모 대비 법원의 재정 또한 그같은 수준으로 비교된다. 법관 1인당 담당사건 수는 2019년 현재 연간 460여건으로 독일의 5배, 일본의 3배 수준에 이른다. 고작 14명뿐인—그나마 2명은 법원행정처장, 중앙선관위원장 등으로 빠진다—대법관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민·형사 사건만 해도 2023년 기준 3만 3천건을 초과한다.

사건이 폭주함에도 법관의 수가 적고,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판결이 매우 신속하게 처리된다는 것은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법관의 자의가 작동할 공간이 열림을 의미한다. 어떤 사건은 늘 그러듯 급하게 처리하고, 어떤 사건은 사건서류를 좀더 자세히 본다 할 때 그 차이만으로도 결과는 급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7

대법원의 경우는 더욱 문제적이다. 대법원의 소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만큼 3개만 존재한다. 하나의 소부가 민·형사 사건만 연간 1만건 이상 처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주심대법관만 사건을 검토하게 되고 그조차도 사건기록이 아니라 재판연구관들의 보고서에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300명이 넘는 대법관이 각각의 전문분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독일 연방대법원 같은 모습은 언감생심인 현실이다.

일반법관 수는 지금의 2배 수준으로, 그리고 대법관 수는 최소한 지금의 3배 이상 늘려야 한다. 물론 그 증원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에는 재판부별 재판연구관을 두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법원은 일반법관을 대법원판사로 보임해 지금 3개에 불과한 소부를 최소 6~12개 수준으로 늘리는 방법도 단기적인 방책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외에도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배심 및 참심 제도의 과감한 도입이나 노동법원이나 환경법원 같은 전문법원의 설치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법원의 재판과 법원행정에 대한 끊임없는 시민적 감시와 견제의 장치이다.

 

 

7. 나가며

 

2025년 우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12·3 비상계엄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수행”(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탄핵결정문)으로 막아냈지만, 내란의 종식을 위한 시민들의 열망과 노력은 내내 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것도 사법권이라는 비선출권력에 의해서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지연과 법원의 윤석열 석방은 극우세력이 준동할 기회를 주었고, 한 대통령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실질적인 대통령선거 방해로 조속한 헌정회복마저 가로막기에 이른다.

그동안 민주화의 성과를 말할 때조차 이런 비선출권력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견제의 장치는 주변부의 의제로 흘러내렸다. 누차에 걸친 사법개혁을 거치면서 이제는 그 구태를 벗어났을 것이라고 모두가 방심하는 순간, 사법부는 제왕적 대법원장을 옹립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며 인사권을 통해 전체 법관과 사법체계를 소수의 지배하에 옭아매고 있었다. 느닷없는 판단으로 세간의 정의감정을 배신하기도 했다. 사법의 독립이라는 슬로건 아래서 법률관료들이 법복귀족이 되어가는 것을 통제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민주화를 외치며 수많은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현실이 곧장 사법권력의 사유화와 그에 이은 내부적 지배와 종속의 체계로 전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사법농단 사태는 그래서 하나의 전기를 이룬다. 시민사회의 법적 수요를 어떻게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법과정으로 수용할 것인가,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법감정과 정의의식을 판결로써 제대로 반영하는 사법구조 및 법체계를 어떻게 생산해낼 수 있는가 하는 논의들이 제대로 제기된 것이다.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놓쳐버린 사법개혁의 단초는 이제 검찰국가를 경유하면서 뼈아픈 고통과 함께 다시금 펼쳐지고 있다. 곧 출범할 정부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효하게 이끌어야 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 사법을 구성해낼 수 있는 주체적 동력을 시민들에게 부여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사법부로부터 사법주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87년체제가 내세웠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형식주의를 극복하고 ‘국민의 사법’ ‘시민의 사법’을 만들어나가는, 그래서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적 사법을 구성하는 야심찬 도전은 이럴 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1. 정을병 「육조지」(『창작과비평』 1974년 겨울호; 『철조망과 의지(외)』, 범우사 2018)에는 “판사는 늘여 조지고”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판사는 미뤄 조지고’라는 표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2. 이 사건은 국가재정에서 지출되던 판사연금제도를 재직 중인 판사가 연금 기여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신임 판사뿐 아니라 현직 판사들도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소급적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직 법관들은 급여가 실질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의회가 판사에게 이런 금전적 손실을 야기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사법부의 독립을 해석하는 유의미한 판례로 기록된다.
  3. 인사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법관 계층제 완화, 지역법관 향판제도 활성화, 법조일원화 도입 등이 있으며, 법원구조 변화 방안으로는 대등재판부 도입 등이 있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더 살펴보기로 한다.
  4. 제도주의를 내세운 신자유주의는 법치를 재산권 및 경영권의 보장수단으로 전용하고, 소송을 통해 자신의 이윤추구 행위를 정당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소위 ‘법률전쟁’(lawfare)이 그것이다.
  5. 법조일원화 정책은 판사·검사·변호사로 분리되어 있던 법조인의 경력을 일원화하여 법관으로 선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시민사회의 지속적 요구에 따라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법관을 늘린다는 취지지만, 법관 순혈주의에 따른 저항도 거세다. 이에 대해서는 6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6. 대법원은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중대한’ 사건만 다루고 나머지 일반적인 사건은 경력법관으로 구성되는 상고법원에서 심리하게끔 만들겠다는 기획이었다.
  7. 전관예우의 폐단은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발생한다. ‘내가 모시던 부장님’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이라서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는 순간, 사건에 대한 법관의 인식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