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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불을 키운 건 누구인가
한국 산불의 구조적 재앙
홍석환 洪錫煥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저서 『환경에 대한 갑질을 멈출 시간』, 공저서 『회복력과 전환』 등이 있음.
hong@pusan.ac.kr
불을 껐는가? 불이 꺼졌는가?
불이 난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바람은 불덩이를 날린다. 산불진화대는 바쁘게 움직이고, 소방차는 연신 물을 뿌리며, 헬기는 산 정상까지 물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불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온 산을 휘감은 불길은 결국 동해바다를 만나서야 멈췄다. 우리는 이 장면 앞에서 자문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 불을 껐는가? 아니면 불이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스스로 꺼졌는가?
산불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하지만 이 재앙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산불에 대한 질문은 ‘왜 불이 확산되었는가’여야만 한다. 그 답은 자연이 아니라 ‘구조’ 속에 있다. 반복되는 대형 산불의 이면에는 관행적 행정, 왜곡된 정책,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체계가 있다. 산불 대응체계라 하면 마치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이 멈출 수밖에 없는 시점을 기다리는 것에 가깝다. 거대한 구조적 실패 앞에서 현장에서 흘린 땀과 노력마저도 무력화된다. 자연을 탓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 얼마나 큰 의도적 실수를 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일이다.
서울 면적의 1.5배가 넘는 약 10만㏊를 태우고 30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올 3월 경북·경남·울산 산불(이하 영남 산불)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대형 산불이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도로와 마을, 계곡을 뛰어넘으며 수십 킬로미터를 질주한다. 그리고 산불 대응체계는 무력하다. 언론과 대중은 연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불이 늘고 있다’는 해석을 반복하고, 산림청과 소방당국은 현장 중심의 대응이 아닌 중앙관료제식 매뉴얼을 따른다.
우리는 산불 대응 최전선에 있는 진화 인력의 헌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묻고 따져야 할 것은 그들을 그러한 위험으로 밀어넣은 시스템과 구조다. 화마 앞에서 인간의 생명과 노력은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불이 커졌으며, 어떻게 해서 이토록 많은 산림과 마을이 순식간에 불탔는가. 우리는 과연 자연을 지켜왔는가, 아니면 자연을 파괴하는 정책을 ‘녹색 간판’ 아래 은폐해왔는가.
기후변화는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전세계는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기후조건 속에 있다.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호주의 대형 산불, 캐나다와 미국 서부의 건조한 날씨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겨울은 짧아졌고 봄·여름은 길어졌다. 강수가 집중되며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늘었다. 이 조건들이 산불 확산의 배경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대형 산불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후조건에서도 어떤 숲은 불에 강하고, 어떤 숲은 불에 취약하다.
한국의 기후조건은 대형 산불의 주요 피해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캐나다와 명백히 다르다. 그 지역은 본래부터 건조했고 연 강수량도 600mm 내외로 적다. 하지만 한국은 연평균 1,300mm 이상의 강수량을 보이는 다습한 나라다. 기후위기에 강우의 집중도가 높아졌지만, 강수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강수량이 많은 환경에서는 불에 강한 숲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토양, 높은 온도와 습도 속에서 식물은 빠르게 성장하고, 수분 함량이 높은 활엽수는 쉽게 불붙지 않으며 강해진 불을 얌전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숲은 이처럼 물을 좋아하는 활엽수림으로 이미 전환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우리 숲은 침엽수림 38.8%, 활엽수림 33.4%, 혼효림 27.8%로 여전히 침엽수림이 우세하다.1 리기다소나무와 잣나무는 물론이고 최근 집중적으로 식재되는 편백나무 또한 침엽수다. 침엽수는 가뭄이나 고온건조한 기후에 유리하지만, 휘발성 정유 성분인 테르펜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불에 취약하다. 또 불이 붙은 솔방울은 바람을 타고 수 킬로미터를 날아가며 새로운 불씨가 되고, 산불이 이 산 저 산으로 옮겨붙는 ‘도깨비불’ 현상을 초래한다.
우리 숲이 활엽수림으로의 생태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침엽수림 중심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산림정책에 있다. 산림청은 지난 수십년간 숲을 자율적 생태계가 아닌 ‘관리대상’으로 여겨왔다. 가꾸어야 하고, 정리해야 하며, 간벌(間伐, 솎아내기)과 조림(造林, 인위적인 식재)을 반복해야만 숲이 건강해진다는 비과학적 믿음에서다. ‘숲가꾸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활엽수를 베고 침엽수 중심으로 숲을 조성했다. 더욱이 간벌되어 잘린 가지와 나무더미는 땅에 쌓여 불씨의 창고 역할을 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숲, 인간의 손이 가장 많이 닿은 숲이 결과적으로 불에 가장 취약한 숲이 되고 말았다.
산불의 본질은 인재
산불이 발생하면 우리는 책임소재를 묻는다. 불씨를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담뱃불이었는지 혹은 방화는 아니었는지. 발화지점과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대형 산불의 경우 최초의 불씨가 무엇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불씨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고, 인간이 사는 곳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산불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불이 ‘수관화(樹冠火)’로 맹렬하게 번져나가다가 어느 순간 ‘지표화(地表火)’로 전환되어 조용히 가라앉는 지점이 있다. 수관화는 나무 꼭대기의 가지와 잎, 그리고 솔방울까지 불길이 치솟는 형태로 하늘을 날듯 번져간다. 반면 지표화는 땅에 떨어진 낙엽과 가지 등만 아주 천천히 태우는 형태다. 문제는 이 경계가 우연하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경계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숲가꾸기 사업의 시행 유무에 따라 불길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강원도 고성에서 발화해 강릉·동해·삼척·울진으로 확산),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 이번 영남 산불 등 최근의 대형 산불지역에서 동일하게 확인된다. 피해지역을 둘러보면, 수관화로 인해 참혹하게 타버린 구역은 거의 숲가꾸기 사업의 시행구역이고, 불이 얌전하게 가라앉은 지역은 손대지 않은 자연림이다. 전환지점의 나무들은 수분을 많이 머금은 활엽수였고 뿌리부터 줄기, 잎에 이르기까지 불에 대한 저항성이 높았다. 결국 우리는 산불의 방화선이 될 수 있었던 나무들을 앞서서 제거하며 불에 취약한 구조를 ‘정책’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숲가꾸기라는 이름의 파괴
숲가꾸기 사업은 그 명칭과 달리 숲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숲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행정이다. 산림청은 1988년부터 조림에서 ‘관리’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기존에 심은 조림목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숲가꾸기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 사업은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시기, 대량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 형태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인공조림지의 간벌로 시작했지만, 곧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천연림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른바 ‘천연림 보육’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장 올해 조림과 숲가꾸기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3470억원에 이른다. ‘숲의 건강성’을 위한 명목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예산은 소모되고, 숲은 약해지며, 인간은 위험해진다. 올해 영남 산불재난에 투입될 긴급예산이 쓰일 곳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 큰 재난을 우리 돈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조림의 함정
소나무는 원래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활엽수가 경쟁 우위에 있다. 자연이 스스로 작동해서 침엽수림을 활엽수림으로 대체하는 것이 생태계의 순리다. 하지만 숲가꾸기 사업은 적극적으로 소나무를 유지하고 활엽수의 성장을 억제하면서, 건강한 활엽수도 베어내면서 생태적 전환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끊어버렸다.
산림청은 우리나라가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고 녹화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평가받기를 원해왔다. 실제로 전체 산림면적의 76%에 해당하는 480만㏊가 조림지이며,2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치다. 한국의 산림녹화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이 성과는 일견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심은 나무의 종류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장 많이 심은 나무는 미국 원산의 리기다소나무로 전체 조림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이어서 일본 원산의 낙엽송(17%), 주로 아고산대에 자라는 잣나무(14%), 역시 외산의 아까시나무(12%)가 뒤를 잇는데3 이 4개 수종이 전체 식재 수목의 63%를 차지한다는 점은, 한국의 숲이 얼마나 단순한 생태로 조림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심은 나무들이 정작 숲에서는 다시 사라진다.4 오히려 인간이 거의 식재하지 않은 숲이 더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가 심고 가꿨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예산을 투입해 식재한 나무들은 한국의 숲에 적응하지 못하는데다 숲이 스스로 생태를 회복하고 활엽수림으로 전환해내려 하기 때문에 금세 도태된다. 그러면 또다시 침엽수를 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즉 조림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숲가꾸기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생태계는 스스로의 힘으로 건강하게 순환하며, 강한 나무는 살아남고 약한 나무는 도태된다. 그러나 숲가꾸기 사업은 이 질서를 뒤엎는다. 정책적 기준에 따라 자를 나무와 남길 나무를 정하고, 기계화된 작업으로 생명을 잘라낸다. 숲가꾸기 사업은 자연적으로 성장한 활엽수들을 집중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남겨진 소나무들은 넓어진 공간에서 더 많은 빛을 받아 빠르게 자라다가 결과적으로 불의 연료가 되었다.
이처럼 소나무 중심의 단순한 조림을 해놓고 해마다 봄철이면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숲 곳곳에 화학살충제를 뿌리는 점도 지적받아야 할 사항이다. 화학살충제는 소나무재선충과 관계없는 숲속 곤충들을 죽이고, 곤충을 먹이로 하는 개구리 등 양서류를 없앤다. 인공조림 정책의 악순환이다.
잘못된 진화체계, 뒤바뀐 복구 순서
산불이 발생하면 산림청과 소방청이 동시에 출동하는데, 현장의 지휘권은 산림청이 갖는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산불 대응체계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학교에 불이 난다고 해서 진화 주체가 교육부가 되는 것은 아니듯, 산불은 단순히 ‘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재난이며,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사회적 위기다. 따라서 산불 역시 재난안전관리체계 안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인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관이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숲 중심 행정’ 안에 사람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산불 진화의 현실은 복잡하다. 불이 나는 순간 헬기와 진화차, 진화대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지휘 시스템은 매우 경직되어 있다. 산림청 산불진화대는 산속 깊이 임도를 따라 진입하며, 소방청 인력은 민가 주변에 배치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불의 확산경로 예측, 진화 인력 배치, 헬기 투입시점 등—은 산림청 중심으로 내려진다. 불이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행정은 여전히 숲만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게다가 진화율이라는 지표도 문제다. 산림청은 산불 발생 시 빠르게 진화율을 높이고, 통제 가능 상태를 선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민가 보호나 대피 지원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이는 지휘권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예정된 결과나 다름없다. 재난 대응은 인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산불 대응구조는 행정편의적 구조를 유지하며, 진정한 재난 대응체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휘권의 구조적 개편이 없다면, 진화는 늘 늦고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임도, 산불의 고속도로
산림청은 매년 산불예방과 진화를 위해 임도의 확충을 강조한다. 진화인력이 빨리 접근해야 하므로 임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이미 수많은 임도가 산속 깊이까지 뚫려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임도가 오히려 위험요소가 된다. 산불 현장의 온도는 1,000도 이상으로 치솟고, 열기로 인해 암석이 깨지면서 진화 인력이 고립될 위험까지 발생한다. 임도는 진화의 길이 아니라 때로는 불의 길이 되기도 하고, 생명을 빼앗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시선을 돌려보자. 거의 모든 불이 도로와 인접하여 발생하기에 임도가 초기진화에 효과가 있다면 불은 확산되지 않았어야 한다.
산불의 확산 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위적으로 관리된 소나무 단순림의 산불은 바람을 타고 시속 2~3km를 쉽게 이동하고, 이번에는 한시간에 8km를 넘어 날았다. 인간의 발로 진입하거나, 차량이 대응할 수 있는 속도를 까마득하게 넘는다. 헬기의 물 투하도 마찬가지다. 고온의 열기 속에서는 헬기 접근 자체가 어렵고, 바람이 강하면 물이 흩어져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결국 이 모든 대응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식적 대응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임도는 애초에 산불 진화보다는 ‘산림 경영’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조림, 간벌, 벌채 등 산림사업을 위해 기계가 진입해야 하므로 산림청은 임도를 확장해왔다. 그런데 이 길이 산불 대응의 핵심시설로 둔갑하면서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2025년 임도시설 예산만도 2840억원이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임도가 오히려 불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통로가 된다. 바람이 직선으로 통과하고 주변을 더욱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불은 임도를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임도는 때때로 산불의 ‘고속도로’가 된다.
숲의 자생적 회복을 믿지 못하는 정책
재난의 수습은 원인 파악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산불만은 그렇지 않다. 산불이 진화되고 나면 곧바로 ‘복구’라는 이름의 행정절차가 시작된다. 정치인들은 재난현장을 방문해 빠른 복구와 지원을 약속하고, 정부는 ‘긴급복구’라는 명목 아래 예산을 편성한다. 하지만 이 복구의 방향은 언제나 사람보다 산, 삶보다 벌목이다. 피해주민의 생계나 주거는 후순위로 밀리고, 예산의 대부분은 산림의 재조성에 투입된다. 이러한 복구 방식은 오히려 2차 피해를 야기하며, 반복되는 구조적 오류를 고착화한다.
산불이 지나간 뒤 산속은 분주하다. 산림청은 ‘2차 피해 방지’를 명분으로 불에 탄 나무를 긴급 벌채하고, 새로운 묘목을 심는다. 이 과정에 많게는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번 산불에는 조 단위의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될 것이다.5 문제는 이러한 복구가 과연 주민의 삶보다 긴급한가, 아니 정말 필요한가이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불에 탄 지역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땅속의 씨앗이 다시 싹을 틔우고, 생태계는 매우 빠르게 복원된다. 고로쇠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우리나라 토종 활엽수들은 불에 탄 환경에서도 빠르게 회복한다. 불에 그을린 나무는 서서히 부패하며 토양의 영양분이 되고, 이는 새로운 활력 넘치는 생태계의 기반이 된다.
국제사회는 이런 자생적 회복과정을 ‘자연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으로 인정하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생태적 복구를 권장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등은 산불 이후 복구에 있어 벌채보다 자연재생이 더 효과적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권고를 따르지 않는다. 산림청은 법령을 근거로 모두 베어내고 조림을 완료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숲을 자산이나 수익 모델로 보는 뿌리 깊은 시각의 반영이다. 물론 수익은 발생하지 않고, 천문학적 세금을 허비하지만 ‘수익성’이라는 말은 대중을 현혹하기에 너무나 편리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이후 이루어진 실증연구6는 이러한 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당시 불에 탄 숲 중 일부는 벌채하지 않고 방치했고, 나머지는 긴급복구 명목으로 모두베기한 후 조림했다. 이후 태풍 루사(2002)가 해당 지역을 강타했을 때, 벌채지에서의 토사 유출량이 방치지역보다 2천배 이상 많았다. 이는 벌채가 오히려 지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비가 내릴 경우 산사태와 토석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복구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사업이 새로운 재난의 씨앗이 된 것이다.
왜 피해주민은 항상 뒷전인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그 자체로 충격이다. 검게 그을린 대지, 불에 타버린 나무들, 그 사이에 주저앉은 주택의 잔해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고통을 상징한다. 마을은 사라졌고, 삶은 무너졌다. 더욱이 산불 피해주민은 대체로 농촌지역의 고령자들이다. 그들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라 삶의 전부다. 논과 밭, 가축과 창고, 생계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정책은 산을 복원하는 데 집중되고, 사람의 삶은 예산의 뒷자리로 밀려난다.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생활 재건과 심리적 회복이지만, 이에 대한 예산은 언제나 부족하다. 피해주민이 받는 정부지원은 터무니없이 적다. 전소된 주택에 대한 보상은 주택가격의 20~3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임시대피소 생활은 장기화된다. 재난 직후 며칠간은 지역사회와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버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은 줄어들고 상실감은 커져간다. 피해주민들은 점점 정책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산불은 단지 생태적 재난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산불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자리에 다시 묘목을 심는다고 해서, 그것이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자리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이 복구되지 않고 자연의 순환이 방해받는다면, 이는 또다른 파괴다. 피해주민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 대피 중 겪은 심리적 충격을 위로하고 돌봐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지원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복구체계는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남는 것은 산림청의 사업 실적이다. 피해주민은 스스로를 ‘방치된 존재’로 느끼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지역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진다. 고령층의 경우 복구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도심으로 이주하거나, 자녀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다. 마을은 비어가고, 복구된다는 계획 속에서 실제로는 ‘사라지는 복구’가 진행된다. 공동체가 복구되지 않는 복구, 사람을 잃는 복구는 진짜 복구일 수 없다.
산불 피해복구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삶의 터전이 무너진 사람을 먼저 회복시키고, 그들이 다시 그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림청 중심의 복구체계를 전면 재설계하고, 피해주민을 복구정책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피해주민을 대변하는 양 실은 소외시킨 채로 산림사업의 확대만을 주장하는 산림사업기관의 말이 아니라, 피해주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행정은 ‘숲을 복원하는 것’에서 ‘삶을 복원하는 것’으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숲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산불을 끄는 것이 진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산불이 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혹은 불이 나도 번지지 않도록 숲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궁극의 목표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헬기, 장비, 인력 등 불을 ‘진화하는 기술’에만 매달려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불이 커지지 않게 만드는 숲의 구조, 마을과 공동체에 대한 관점, 사람과 행정의 거리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 사람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만든 구조다.
우리는 이제 숲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복구는 빠르게 집행되는 예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느리지만 지속적인 회복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숫자를 채우는 통계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더이상 외면하지 말자. 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재난이다. 우리는 그 재난에 맞서기 위해 단지 불을 끌 구조가 아니라, 불이 나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
- 「2020 산림기본통계(개정판)」, 산림청.↩
- 산림청 「임업통계연보」의 제1호(1968)부터 최근 제54호(2024)까지의 누적수치를 필자가 계산하여 얻은 결과이다. 국가기록원에서는 1960~2008년 누적 조림면적을 425㏊로 밝히고 있다.↩
- 각주 2와 같은 방식으로 산림청 「임업통계연보」를 토대로 계산하였다.↩
- 산림청에서 작성하는 산림공간정보 GIS 도면 ‘정밀임상도’의 속성값을 필자가 정리하고 분석한 결과, 대표적인 인공조림 식재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현저히 낮았다. 전체 산림면적에서 리기다소나무는 3.7%, 낙엽송은 4.2%, 잣나무는 2.4%, 아까시나무는 고작 0.6%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 산림청은 피해복구 기간을 2030년까지 추정했으며 복구비용 추산액은 2조원이 넘는다. 「“비용 최소 2조원”…순식간에 영남 휩쓴 ‘괴물 산불’, 복구 5년 걸린다」, 머니투데이 2025.4.10.↩
- 황태환 「산불 피해 유역에서 질소와 인의 흡수 및 소실」, 강원대 생물학과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