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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민이 만드는 국방정책
첫 시민국방백서를 발간하며
박석진 朴錫珍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군 입대 후 전경으로 차출돼 복무 중 1991년 대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에 의해 숨지는 사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시위 진압현장에서 이탈해 ‘전경 해체’ ‘독재정권 퇴진’ 등을 요구하는 공개 양심선언을 했다. 이후 우리사회 군문제에 주목한 평화활동을 하고 있다.
watch@militarywatch.or.kr
작년 10월, 평화활동가와 시민들과 함께 강화도로 평화기행을 갔다. 북녘 땅이 보이는 곳을 들렀을 때 “끼이익 끽끽” 하는 쇠 마찰음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남쪽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북 양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맑고 화창한 가을하늘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이유를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2024년 6월 9일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남 전단살포에 대응한다는 명분하에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시작됐고, 북한도 이에 맞대응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소음의 문제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끽끽거리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다보면 혼이 빠집니다. 북한군이 언제든 사격할 수 있는 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에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북한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한 주민과의 인터뷰는 남과 북의 군사적 갈등이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정부 들어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은 지속적으로 심화되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불안한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기획하고 출간한 첫 시민국방백서, 『2024 시민국방백서』(2025)는 이같은 상황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이 백서는 형식과 구성의 측면에서 볼 때, 국방부가 2년마다 한번씩 발행하는 ‘국방백서’의 카운터백서로 볼 수 있다. 국방백서는 국방부와 해당 시기의 정부가 추진하는 안보·국방 정책의 비전과 내용을 정리해 국민을 대상으로 보고하고 홍보하는 책자이다. 군사안보상 기밀로 분류되는 정보들까지 포함하고 있진 않지만, 400여면에 달하는 내용 속에는 주요한 안보·국방 정책이 담겨 있다. 우리는 현재의 한반도 전쟁위기와 시민들의 불안한 삶의 원인과 대책을 ‘국방백서’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보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백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국방백서
첫 시민국방백서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국방부 백서들을 검토하고 있던 2023년 2월, 윤석열정부의 『2022 국방백서』가 발행되었다. 단체의 여러 일들을 병행하며 해당 자료를 면밀히 살펴보고 분석한 끝에 우리는 같은 해 말 『2022 국방백서 ‘시민의 관점에서 다시보기’: 해설 및 분석』(이하 『2022 국방백서 다시보기』)이라는 책자를 먼저 발간했다. 『2022 국방백서 다시보기』 작업을 통해 국방부 백서의 주요한 문제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국방부의 『2022 국방백서』는 안보·국방 정책의 입안과정에서 객관적 정세인식과 타당한 위협인식을 근거로 삼고 있지 않았다. 한국의 군사안보 정세는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판단되어야 하며, 정부는 위기와 위협의 원인을 찾아 그에 맞는 정책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22 국방백서』에는 이러한 인식이 부재했다. 무엇보다 북한을 ‘주적’으로 전제하고 남북, 북미, 남북미의 상호작용성을 간과한 채 북한의 공격성만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공세적·군사적 대응을 중심으로 국방정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이같은 기조는 국방정책이 위기와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사적 갈등과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도 객관적이지 않았다. 국방백서는 ‘부록’을 통해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를 제시해왔는데, 남북 병력수와 군사력을 양적으로 비교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의 군사비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군사비를 뛰어넘어 이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지난 30여년간 누적되어온 군사비 총액을 군사력으로 환원하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에 근거하기에 국방백서에서 나열하는 안보·국방 정책 역시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또다른 문제점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세밀한 평가와 성찰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2021년 공군 내 성폭력으로 인한 이예람 중사의 사망사건은 군대 내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문화와 폐쇄적 조직구조가 주요한 원인이다. 아울러 2021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희수 하사는 군대 내 성소수자 문제를 드러내며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국방백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단 한 글자의 구체적인 기록도 담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 원인을 분석하거나 해결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지도 않았다. 군대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선택적 배제와 객관적 평가의 부재로 인해 ‘백서’로서의 기능조차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백서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점도 아쉽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안보·국방 정책에 대해 여러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의견을 표명해왔다. 그러나 국방백서에는 시민사회의 의견에 대한 군대의 회답이나 판단을 찾아볼 수 없다. 국방정책은 오직 군대의 일이라는 태도, 국민은 그저 군의 정책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일방성을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첫 시민국방백서의 기획과 발간과정
『2022 국방백서 다시보기』를 발간하기 위해 국방부의 백서들을 검토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점도 적지 않다. 가령 국방백서에 담기는 내용은 정권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구성과 형식에 있어서는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군사안보 정세를 다룰 때는 세계, 동북아지역,1 (북한 동향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라는 세가지 초점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그다음으로 정부의 안보·국방 전략의 원칙과 지향을 총론으로 다루며, 이어서 한국군의 국방 전략 및 정책, 한미동맹, 국방운영, (군대 내 인권상황을 포함한) 병영문화 등을 각론으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국방백서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활동의 실효성을 체감한 것도 『2022 국방백서 다시보기』 발간의 의미있는 성과였다. 발간 이후 진행된 온·오프라인 강의에 적지 않은 시민이 관심을 보였으며 『2022 국방백서 다시보기』의 내용이 필요한 곳에서 적절하게 인용되고 활용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같은 의미와 필요성을 확인한 우리는 첫 시민국방백서 구상에 들어갔다.
『2024 시민국방백서』는 국방부의 국방백서와 같은 구성으로 구상되었다. 카운터백서인 만큼 두 백서를 비교할 때 관점과 내용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시민국방백서에는 국방부 백서에서 다루지 않는 하나의 주제를 마지막 목차로 추가했다. 제7장 ‘한국군 역사와 군 민주화’이다. 한국전쟁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군과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여기에 2023년 7월 수해 복구작업 중 숨진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을 추가로 구성했다. 한국군에서 위계와 명령, 복종의 관계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으며 현재 군의 정치적 중립 및 민주화가 어떠한지 가늠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각 주제를 다룰 집필진을 조사하고 섭외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필자의 전문성은 물론 관점도 중요한 문제였다. 기고문, 논문 등을 검토하고 한분 한분 직접 찾아가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쳤다. 단순히 원고를 청탁하고 받아서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군사안보와 관련된 한국 시민사회의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필자들과 직접 만나서 시민국방백서의 발간의도와 의의를 설명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백서의 주제와 내용이 적극적으로 수정·보완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7명의 필자가 백서에 참여하게 되었다.2 필진에는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 김광식 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등 국책기관에서 근무한 이들도 있었다. 전문성과 정보접근성을 고려한 섭외였는데, 이는 백서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뿐더러 시민사회의 정책적 네트워크 확장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는 작업도 병행했다. 5월경부터 각 주제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운영했다. 1차 원고를 취합한 11월에는 ‘첫 시민국방백서 제작을 위한 시민토론회’를 개최했는데,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토론회를 통해 모인 의견들은 시민국방백서에 ‘시민이 제안한 국방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는데, 제도적 차원부터 담론적 차원까지 활발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모였다. 가령 무기거래에 관한 정보 및 수출된 무기가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공개하고 무기박람회에서 비인도적 무기가 전시되지는 않는지 모니터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 소위 역(役)이라 불리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가 ‘병역’으로만 불려서는 안 되며 국방의 의미도 군사적인 것만 아니라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 교정시설 복무로만 획일화되어 있는 대체복무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갓 입대한 여군을 주로 신병관리 보직으로 배정하는 것은 돌봄을 여성에게만 부과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등 다채롭고 중요한 의견들이었다.
2024년 11월 16일 진행된 시민토론회 모습.
2024년 12월, 원고에 대해 교정교열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 요청을 하는 등 막바지 편집작업으로 한창 정신이 없는 와중에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사무국은 즉각적으로 ‘군은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하고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눠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비상계엄 해제와 윤석열 퇴진을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한편으로 이 사태는 시민국방백서에 또 하나의 지면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로 다가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및 내란이 군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년 시민들이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결과로 얻은 헌법, 특히 그 헌법에 명시된 군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진 중대한 사태였다. 급히 추가 원고를 청탁하게 되었는데, 촉박한 마감일정에도 헌법학자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필자로 참여해주었다. 이처럼 시민국방백서의 의의에 동감하고 노력해준 집필진들이 없었다면 발간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시민국방백서 제작을 구상한 지 2년여가 되는 2025년 1월 10일, 마침내 『2024 시민국방백서』가 발간되었다. ‘안보환경’ ‘국가안보전략 및 국방전략’ ‘윤석열정부의 안보 및 국방정책’ ‘군사동맹’ ‘국방운영’ ‘군 인권’ ‘한국군 역사와 군 민주화’라는 총 7장으로 구성되고, 긴급현안주제로 ‘12·3 비상계엄’을 추가한 첫 시민국방백서로서 발간사를 포함해 총 32편의 글이 담겼다. 발간 기념 기자·시민간담회, 심포지엄 등을 개최했으며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와 국회 국방위원회, 천여곳의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에게 책을 배포했다. 물론 마지막까지 우여곡절은 있었다. 첫 기자·시민간담회를 잡은 1월 15일은 윤석열이 현직 대통령(탄핵선고 전)으로서는 처음으로 구속된 날이었다. 취재하러 오기로 했던 기자들이 올 수 없게 된 상황에 한편으로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상반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국방정책
『2024 시민국방백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해 만든 첫 국방보고서이다
군문제는 여전히 군대만의 일로, 시민은 알지 못하거나 그저 정부의 정책에 따라야 할 일로 사고되고는 한다. 시민국방백서는 그러한 일방성에 맞서 시민사회가 직접 주도하여 만드는 국방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획이었다. 『2024 시민국방백서』의 슬로건은 ‘안보 및 국방 정책의 적극적 제안자로 나아가는 시민’과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안보 및 국방 정책의 수립’이다. 전자의 슬로건은 시민국방백서가 제작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 것이고 후자의 슬로건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성취하고자 한 최종 목표이다. 국방의 수행자는 군대라 하더라도 국방의 당사자는 모든 시민이다. 그렇기에 국방은 소수 정책결정권자만의 일이라 할 수 없다. 한 나라의 안보·국방 정책이 국민의 일상과 삶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감안하면 시민이 그에 대해 제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12·3 계엄사태를 통해 하나의 목표가 더 추가되었다. 윤석열 파면으로 12·3 계엄 및 내란 사태는 종료의 수순을 밟고 있으나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군이 시민사회의 보다 강력한 감시와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정부와 국방부가 입안하고 추진하는 안보·국방 정책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언도 수반되어야 한다. 이때 시민국방백서가 하나의 유효한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되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2014년 문을 연 이래 한국군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한 군대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시민국방백서 발간을 이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 어렵사리 첫번째 시민국방백서가 발간되었으나 아쉬움도 남는다. 제작의 마무리 즈음에 군사안보 및 평화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정리해서 추가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시간의 촉박함과 단체들 목록을 갈무리하는 일의 어려움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첫 시민국방백서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과 여러 시민의 후원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지속적인 발간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기반이 필요한데 뾰족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어려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안보·국방 정책을 주제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2025 시민국방백서, 2026 시민국방백서…… 이후에도 지속될 활동에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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