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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경은 『국민을 버리는 나라』, 글항아리 2025
국제입양, 과거가 아닌 지금-여기의 문제
소현숙 蘇賢淑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sosimzee@naver.com
이토록 흥미진진하면서도 마음 아프고 착잡한 책이 있을까. 1990년대 친모를 찾는 해외입양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입양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국민을 버리는 나라』는 그것이 단지 지난 과거가 아니라 여전한 오늘날의 현실이라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경은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관료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근무하던 2012년 당시 우연히 아동 불법송출 사건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국제입양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현재는 ‘국경너머인권’의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국제입양인의 인권 및 관련 제도의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대한민국의 아동복지를 책임지는 관료로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국제입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불법적인 아동 송출사건의 전모와 이를 해결하고 아동을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의 문제를 하나하나 파헤치며 아동인권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직무유기를 고발한다.
르뽀 형식으로 쓰인 1부 ‘아이의 귀환’에서는 자신이 담당했던 ‘SK’의 사례를 담담하게 소개한다. 생후 15일밖에 되지 않은 미혼모의 아기 SK가 국제입양을 원하는 미국인 여성에 의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지던 중 미국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기와 아기를 미국으로 들여오려는 여성 사이에 아무런 법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신매매의 가능성을 의심한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에 사실관계의 확인과 한국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를 대변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게 된 저자는 미혼모시설과 입양 브로커 등이 연루된 국제입양의 잘못된 관행을 확인하고 아기의 송환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그 자신이 한국에서 입양된 여성이면서 자신이 “입양 보내졌던 그 기관을 통해서”(126면) 한국에서 큰딸을 입양한 바 있는 미국인 여성은 입양과정의 불법성을 문제삼는 미국 및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과 언론플레이도 불사하며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아기를 포기한 한국의 생모와 아기를 소중히 여긴다 말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지키고자 하는 미국인 여성을 대면하면서, 저자는 과연 미국인 여성의 가족과 이미 상당한 애착을 형성한 아기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맞는 일인지,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동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이 무엇인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저자는 마치 물건처럼 아기가 해외로 송출되는 관행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입양과 동시에 미국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 그로 인해 입양 부모에게 버림받는 즉시 어느 국가에도 속할 수 없는 난민이 되어버리는 입양인의 불안정한 법적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부 ‘아기 슈퍼마켓’에서는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저자가 그동안 연구를 통해 확인하게 된 국제입양의 현실, 중국·한국·인도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의 입양 송출국과 미국과 서유럽 등 수령국 사이에 그물처럼 얽혀 있는 입양 관련 제도의 문제점, 특히 한국사회의 법적 허점들을 다룬다. 법적 보호자나 후견인이 없는데도 한국에서 아무 문제 없이 출국할 수 있었던 SK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한국에서 아기의 해외송출은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부모와 국적이 바뀌는 엄청난 절차임에도 고아 호적, 여권, 출국허가서만 있으면 쉽게 해외로 보내질 수 있는 한국의 법적 상황에 기반하여, 국제입양은 오랜 시간 대규모로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아 아닌 고아들이 양산되며 아동의 안전이나 복리는 도외시되었다. 더욱이 국가기관 주도의 출생등록이 아닌 부모 중심의 출생신고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은 “아이를 낳았으나 신고하지 않는 것, 태어나지 않았는데 허위로 신고하는 것, 낳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로 출생신고하는 것”(235면) 등이 모두 가능하며 이러한 법적 허점은 국제입양 관행에서 쉽게 악용되었다. 저자는 그 결과 한국은 아기를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이 되었고 아동복지나 자선사업이라 포장된 국제입양은 사실상의 글로벌 비즈니스였을 따름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동의 인권이나 복지에 대한 무감각함은 단지 국제입양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4년 한국정부는 위기상황에 처한 임산부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보호출산제를 도입했다. 아동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병원 밖 출산이나 영아유기를 예방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이 법은 출산된 아기가 생모의 이름과 출생에 대한 정보를 알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국제인권협약상 인간의 기본권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알 권리를 무시한다. 국제입양의 뼈아픈 과거와 입양인들의 절규로부터 한국사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산모와 아이를 둘 다 보호할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잘못된 과거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다.
현장에서 온갖 부조리한 현실을 직접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독자의 성찰을 이끈다.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 있는 문체로 쓰여, 그 내용의 묵직한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쉽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계엄령 선포로 불안에 떨며 밤잠을 설친 날들을 뒤로하고 이제 민주주의의 또다른 지평이 열렸다. 앞으로 펼쳐나갈 새로운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동의 삶에도 마땅히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일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는 시간을 한번쯤 가져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