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김형수 『대주교 윤공희』, 대중의책방 2025

신앙은 어떻게 인간 존엄을 구하는가

 

 

김재형 金宰亨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hyungjk77@gmail.com

 

 

208_437

『대주교 윤공희』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넘어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신앙과 시대정신의 이야기다. 북에서 태어나 남에 뿌리내린 윤공희(尹恭熙, 1924~ ) 대주교의 삶은 곧 한국 천주교의 발전사이며, 동시에 억압에 대한 저항, 분단극복과 민주주의를 향한 치열한 발걸음의 기록이다. 나아가 이 책은 가톨릭이 겪은 반성과 변혁의 역사가 먼 동방의 나라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조명한다. 한 개인의 생애를 통해 세계사의 격랑과 한국사의 흐름, 그리고 인간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의 길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도 뜻깊다. 나는 1970년대 후반 광주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3학년 무렵 북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내게 광주는 단순한 고향이 아니다. 5월의 참혹한 기억이 어린 시절 깊이 각인되어 있고, 그 경험은 천주교라는 신앙의 필터를 통해 내 삶의 기준이 되어주었다. 두개의 보편성—인간 존엄에 대한 신념과 신앙의 가르침—은 이후 나의 세계관을 결정지었다. 1980년 5월 도청 옆 적십자병원에 계셨던 아버지는 광장에서 불의에 맞서 일어선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기억을 품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광장에 나설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이 책에 담겨 있다. 5월의 광주는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분단, 독재의 억압 속에서 이어져온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 윤공희 대주교 역시 그러한 한국현대사의 모순과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낸 인물이다. 북에서 태어난 그는 식민지와 전쟁의 상처 속에서 신앙을 키워냈고, 그의 신앙에는 이 땅의 고통과 희망이 함께 깃들어 있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3세계에서 가톨릭은 제국주의와 군부독재 속에서 민중의 아픔과 함께하며 성장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약 3년간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이 1·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고 심지어 적극적인 협조나 방관으로 일관한 점,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것에 대한 반성 속에서 시작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회를 통해 제3세계의 가톨릭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게끔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2018년 시성된 엘쌀바도르의 오스까 로메로 주교는 빈곤층을 돕고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1980년 미사 중에 암살당했다. 이러한 가톨릭의 새로운 보편성은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한 한국 성직자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 살아 숨 쉬게 되었다.

『대주교 윤공희』는 가톨릭의 세계사적 흐름이 한국의 민중운동과 어떻게 만나고 상호작용했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가톨릭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 5월, 전대미문의 학살 앞에서 신부들과 신도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에도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었다. 광주 대교구의 신부들과 신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목격했고, 거짓을 거부했다. 윤공희 대주교의 보호와 지도 속에서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하고 5·18에 관한 특별미사를 봉헌하거나 시국기도회를 열다가 신부들과 신자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은 천주교가 단순한 종교를 넘어 한국사회 정의의 한축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 김형수는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이전에도 평전을 집필한 바 있는 작가로서, 이 책을 통해 한 종교인을 단순히 개인의 신앙의 측면이 아닌 세계사적·한국사적 맥락 속에서 복합적으로 묘사한다. 그 역사적 의의가 독자에게 생생한 문체로 전달되는 것 역시 미덕이다. 그를 통해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종교란 무엇인가? 성직자와 신앙인은 사회적 모순과 불의 앞에서 어떤 책무가 있는가?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등 이제 윤공희 대주교의 세대는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신념을 계승한 이들도 하나둘 은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세월호참사에 분노하고, 예멘 난민을 환대하며, 2024년 12월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고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한 이들 속에 그 정신은 살아 있다. 『대주교 윤공희』는 위대한 한 인물을 기리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만들어낸 인간 윤공희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대의 얼굴을 이야기한다. 그는 홀로 특별했기에 빛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민중과 신앙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그 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 최근 천주교는 세계 곳곳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얼마 전 선종한 프란치스꼬 교황은 원주민 학살, 성폭력, 인종차별에 대해 교회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애초에는 종교의 선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설들이 인권침해를 발생시킨 점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과를 실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이렇듯 가톨릭은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보편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제국주의, 자본주의, 군부독재의 모순을 지적하며 민중과 함께했던 가톨릭 내부에서는 이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다양한 구조를 허물기 위한 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운영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 탈시설을 외쳤다. 이 외침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국 천주교와 한국사회는 가톨릭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보편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대주교 윤공희』를 덮으며, 나는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