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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인혜 『씻는다는 것의 역사』, 현암사 2025

목욕탕을 통해 만나는 삶의 모습들

 

 

이도정 李道正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 claimh-sola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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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연구를 했던 2014년의 나에게 신비로운 장소는 공중목욕탕이었다. 진도 읍내에서 숙소와 공중목욕탕을 함께 운영하는 형식도 낯설었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장소는 ‘왕고개목욕탕’이었다. 진도 읍내에서 운림산방으로 유명한 사천리를 향하는 외진 길목에 왕무덤재라는 곳이 있다. 고려후기의 왕족이자 삼별초의 지도자였던 왕온(王溫)이 죽어서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지금은 왕무덤재 가장 높은 곳에 왕온의 가묘(假墓)가 있고, 그 바로 인근에 주유소와 함께 왕고개목욕탕이 있다.

하루는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목욕탕에 가자며 그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처음 보고는 인가 하나 없는 외진 곳에서 어떻게 목욕탕을 운영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단견이었다. 매주 일정 요일이면 내가 살던 마을에 ‘목욕 버스’가 온다고 했다. 마을에 공중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은 소정의 금액만 내면 버스를 타고 가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목욕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는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식사를 하고, 그뒤에는 노래방 기계를 틀어 노래하고 춤추며 놀다가 저녁이 되기 전에 다시 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노인이 많은 마을의 특성상 목욕비나 식사비를 합쳐 받는 금액도 매우 저렴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던 나에게 진도의 공중목욕탕은 신비해 보였다. 나 또한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목욕을 간 적은 있다(1980년대만 해도 대여섯살의 남자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여탕에 들어갔다). 그때 느꼈던 감각과는 전혀 다른 지역 목욕탕의 풍경은, 같은 공중목욕탕이라고 해도 한국 곳곳에 다양한 목욕탕이 있으며 비슷해 보여도 세부적으로는 사뭇 다른 목욕탕 문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우리는 몸을 씻으며 살아간다. 위생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깨끗함이라는 감각과 직결된 것이다. 동시에 몸을 씻는 동물은 많지만, 인간이 그들과 다른 이유는 씻는다는 것을 넘어선 연결이 문화라는 형식으로 그 안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 책 『씻는다는 것의 역사』는 몸을 씻는 서로 다른 연결의 형상을 그려낸다. 1부에서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 각국의 목욕문화를 그려낸다. 운동을 먼저 한 뒤에 목욕하고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와 닮은 듯 다르다. 고인 물을 불결하게 여겨 증기욕을 하는 이슬람의 하맘, 좁고 뜨거운 방에서 달궈진 돌에 국자로 물을 뿌려 뿜어지는 증기를 즐기는 핀란드의 사우나, 수행자가 강물에 몸을 담가 신체와 영혼 모두를 정화하는 인도의 쿰브 멜라 등도 전세계의 다양한 씻는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의 목욕은 한국과 유사해 보여도 달라서 흥미롭다. 주로 하루의 시작을 목욕이나 샤워와 함께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신체를 따듯하게 덥히고 때도 밀지 않는 방식이다.

차이는 우리 안으로도 깊게 자리한다. 2부에서는 한국사람이 어떻게 씻어왔는가를 시대적인 차이를 중심으로도 조망한다. 개울에서 남녀가 섞여서 목욕하던 고려와, 예를 강조하며 다양한 종류의 대야를 방에 걸어놓고 물을 받아와서 집 안에서 씻었던 조선의 형상도 흥미롭다. 조선 왕실은 온천을 찾고 이용하는 일에 진심이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온천을 이용하기 어려운 곳에 한증시설을 세워 치료소로 사용했다는 기록은 목욕을 통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긴 당시의 관점을 보여준다. 이후 일제시대 공중목욕탕은 설치부터 몸 씻는 순서까지 문화적 마찰의 현장으로 등장했다. 이때의 목욕은 몸을 씻는 것을 넘어 식민통치의 수단이 되었고, 목욕탕은 일상적인 차별의 현장이었다. 온천이 철도와 연결되며 관광지가 된 변모 역시 이때 등장했다.

하지만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1, 2부의 지식을 토대로,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가 어떻게 씻었는가를 보여주는 3부 작업에 있다. 공중목욕탕은 도시뿐 아니라 1970년대 ‘새마을 목욕탕’의 보급을 통해 지역사회 곳곳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한국 특유의 공중목욕탕 문화는 독특한 특징을 낳았다. 이태리타월 같은 때수건과 목욕관리사, 속칭 ‘때밀이’라는 직업은 직업은 물론, 목욕탕 물품의 도난을 막으려 했던 주인과 도둑 사이의 숨바꼭질 끝에 수건에 ‘이것은 훔친 수건입니다’가 새겨지기까지의 양상도 흥미롭다. 지역간에 발생한 차이도 흥미롭게 포착되는데, 각기 다른 굴뚝의 모양과 ‘등밀이 기계’ 같은 낯선 도구의 사연도 흥미롭다.

나아가 지역의 공중목욕탕이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음을 포착한 저자의 통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전주에서 일년 이상 생활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도 공중목욕탕을 이용했고, 처음 전주에서 지내면서도 공중목욕탕을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가던 목욕탕의 사람들이 서로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었다. 텃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 생활하던 친구는 느슨한 공동체를 이룬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만 외롭게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닌 씻는다는 것에 대한 감각은 같은 나이대 안에서도 다양할 뿐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살아왔는가에 따라 또 달라진다. 누군가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전동 세신기가 자리한 곳도 있고, 대도시의 목욕탕과 달리 느슨한 공동체가 살아 있는 지역 목욕탕도 있으며, 같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버스를 타고 가서 이용하는 목욕탕도 있다. 세면대와 변기 그리고 욕조나 샤워부스가 한 세트로 자리한 아파트에서 살며 이제는 거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물론 많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씻어왔고 씻게 될까? 천천히 이 책을 읽어본다면, 각기 다른 목욕탕 문화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에 눈을 찌푸리기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때로는 타자의 행위에 담긴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때로는 타인의 목욕에 눈살을 찌푸리는 우리의 시선에 담긴 차별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나아가 지금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는 목욕이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고민하는 시간도 의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