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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거스 쿤 『사토시 테라피』, 디애셋 2024

비트코인, 이미 이루어진 미래

 

 

김용구 金龍龜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 이사장, 해시드오픈리서치 CSO yongkoo@hash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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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승 ‘K’와 젊은 제자 ‘Z’가 금융의 역사, 화폐와 비트코인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록 형식으로 쓰였다. 대화를 통해 제자 Z가 명목화폐인 피아트(fiat money)체제, 즉 자본주의와 화폐규칙 체제가 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빚어내는 수많은 병리현상을 깨닫고, “참여자들의 합의로 운영되는”(194면) 투명하고 민주적인 비트코인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을 재구성해 가치관, 시간감각, 일상의 삶에서 일대전환을 가져온다는 플롯이다. 이는 피아트화폐와 플랫폼 알고리즘에 기반한 금융·소비 시스템 속에서 항상 시간 부족과 충동적 욕망에 시달리며 소비중독에 빠져 헤매는 원인을 깨닫는 ‘디지털경제판 영적 각성’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인플레이션과 빚에 저당 잡혀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게 만드는 화폐·소비 질서를 전복하고, 장기적이고 협력적인 삶으로 이동하는 ‘내적 혁명’의 성장궤도와도 비슷하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자수단이 아니라 ‘시간’ ‘에너지’ ‘정보’ ‘언어’의 네축이 ‘돈’과 완벽히 동기화된 혁신으로 보며, 참여자들의 합의에 기반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돈”(276쪽)이자 민주적인 통화체제로 본다.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명목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발행의 주체나 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컴퓨터에서 해시 함수를 찾아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으며, 비트코인의 거래기록은 블록체인이라는 분산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기에 (발행·관리 주체나 중개인이 없으면 위조가 생길 거라는 흔한 예상과 달리) 변조를 방지한다. 비트코인의 거래정보—특히 거래가 이루어진 정확한 시간 스탬프—가 분산화된 구조의 블록에 저장되고, 모든 블록은 이전 블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거래의 유효성 검증과 변조 방지가 가능한 것이다. 한편으로 비트코인 채굴 정도에 따라 채굴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4년마다 반감기가 발생해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인위적 팽창은 차단된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에서의 작업증명(PoW, Proof-of-Work)은 현실세계 에너지를 해시 연산으로 변환해서 ‘디지털 시간’을 찍는 인장이며, 분산 합의 알고리즘을 통해 국가·기업·해커 누구도 임의로 그것에 간섭하기 어렵다. 이 설계는 ‘건강한 돈은 누구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돈’이라는 오스트리아학파 명제를 기술과 코딩으로 온전히 구현한다. 개인의 돈과 시간과 인생을 훔치는 ‘은밀한 세금’이자 기술혁신과 같은 디플레이션 요소들을 삼키는 ‘블랙홀’인,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는 구심력”(144면)으로서의 인플레이션은 차단된다.

『사토시 테라피』의 백미는 ‘돈이 우리를 다루는 법’에 대한 심리적·사회적 통찰이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전제로 하는 현대의 통화정책은 사람들의 시간선호(time preference)를 높여 ‘지금 쓰고, 지금 빚지고, 지금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그 결과로 부채-소비-플랫폼 중독이 일상화하고 악순환된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삶이 조급해지고 “근시안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갖게 되며, “멀리 보는 계획 같은 건 무의미”(107면)하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인간의 성격을 만든다는 주장은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에리히 프롬(Erich Fromm), 맑스의 이론에서 이미 널리 주장된 바 있다. 그러나 국가가 지배하는 중앙화된 화폐발행 시스템이 빚어내는 피아트체제하에서 ‘나쁜’ 돈이 사람들의 일상과 심리구조를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은 섬뜩하며 치명적으로 중요한 경고다.

저자 거스 쿤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건강한’ 돈에 대한 각성서사는 전통적인 성장서사와는 다르다. 이러한 다름은 비트코인이 갖고 있는 기술과 커뮤니티가 만드는 기술진화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우선 개인의 변화는 온체인(on-chain, 모든 거래기록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것) 지표를 통해 실시간 숫자로 피드백된다. 둘째, DAO, 깃허브, 스택커 뉴스 등 온라인 공유 인센티브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정이 집단화된다. 셋째, 개인적인 각성은 사이드체인이나 스마트 컨트랙트(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계약 시스템) 설계로 이어져 현실의 시스템 변형과 바로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경제 분야의 『데미안』’이라 할 이 책의 성장 스토리는 문학·코드·정책이 교차하고 실증하는 새로운 장르로 읽힌다. 나아가 ‘존재 교육’ 프로그램과 ‘공유·보상’ 인프라와 결합하는 개인의 각성과 성장이 새로운 ‘사회경제적 리얼리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이는 기술결정론이나 기술유토피아적 믿음의 한계를 지적하는 독자들에게는 도전적이다. 비트코인은 그 한계를 교정하는 방향과 수단을 이미 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저자는 “물질세계가 변하면 정신세계도 변해야”(412면) 한다는 화두까지 제시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大宗師, 1891~1943)의 원불교 개교표어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살핀바, 비트코인의 확산과정에서 시스템의 작용원리가 코드·데이터로 가시화되고 의식적인 수행과 공동체를 결합한 피드백 고리가 설계되는 것을 통해 경제·기술·윤리·제도가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통합적인 엔진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종합적 성장이 가시화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도 『사토시 테라피』가 준 선물이다.

저자는 다소 예언자적인 권유로 이 책을 마감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든 안 읽든 솔직히 나는 알 바 아니다. (…) 절박함을 뼈저리게 느낄 때, 당신은 비트코인 공부를 시작할 것이다. (…) 누구나 다 각자에게 적합한 때에, 각자에게 적절한 가격에, 각자의 BTC(비트코인—인용자)를 사서 축적하게 된다.”(477~78면) 미래는 이미 당도해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당신의 선택이자 “책임이고 운명”(같은 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기술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와 정치가 기술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역시 강조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기술이 결국 사회적·정치적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수록 더욱이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인간의 심리, 권력, 자본주의, 기술 관계에서 더 나은 한걸음을 막아서는 퇴행과 탐욕은 언제나 압도적 힘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통해 나의 경제적 문제, 마음의 평화, 사회와 국가의 문제, 다음 세대의 건강한 미래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체험적 주장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