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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곽재구 郭在九
1954년 광주 출생.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평역에서』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와온 바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꽃으로 엮은 방패』 등이 있음.
timeroad99@hanmail.net
장어 여덟마리
해 지는데
아랫장 생선 파는 할머니
장어 여덟마리 만원에 가져가라 하네
지갑에 만원 한장
망설이다 그냥 가네
기차역 앞
꽃 파는 아가씨
꽃 한묶음 살까
망설이다 돌아오는데
장어 할머니 나를 보고
오천원에 가져가라 하네
어쩌라는 말인가
만원을 내니
오천원 거슬러주네
할머니 손에 오천원 돌려주네
복 받으소
목소리 귀에 걸리는데
그날 밤 꿈에
시 여덟편을 써서
생선 다라이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팔고 있었네
미친놈
지랄하네
상말 실컷 얻어듣고
울며 돌아오는 길
별 초롱초롱 빛나고
은하수는 따뜻한데
그 시 팔았나요?
안 팔았으면 나를 줘요
역 앞에서
꽃을 팔던 아가씨
하루 종일 꽃 판 돈
만원 주고 가네
이미지
이미지를 만든다
인형에 옷을 입히듯
술독에 누룩을 넣듯
신기료장수가 구두를 꿰듯
슬픈 날엔 슬픈 이미지를
고독한 날엔 고독한 이미지를
소금장수가 찾아온 날엔
소금 이미지를 만든다
고로쇠나무가 수액을 뽑듯
딱따구리가 호두나무의 생살을 파듯
나는 나를 깨부술 수 있지만
내가 만든 이미지를 깨뜨릴 수 없다
이미지는 내 관이다
관 안에 누워 새소리를 듣는다
관 안으로 흰 구름이 흘러간다
관 안으로 사랑하는 이가
손풍금을 울리며 온다
나는 나를 위해
단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