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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이강
1982년 전남 여수 출생. 2006년 『시와세계』로 등단.
시집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타이피스트』 『트램을 타고』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등이 있음.
isall@naver.com
다르네 집, 여름, 아이들
여름을 지킬 수 있을지. 땀을 뻘뻘 흘리는 옥탑에 다르가 앉아 있다. 야경이 시작되는데 시원한 바람은 불지 않는다. 여름에 가면 좋을 것이다. 다르는 팽창하고 있는 공기에 푹 기댄다.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해. 다르는 웃자란 여름을 쓰다듬는다. 귀에 박힌 검은 점에서 털실처럼 나부끼는 게 있다. 귀에 점이 없으면 귀신이라던데. 달리 보면 점은 또 점이라기보다 얼룩이고 풀잎이고 광합성을 하는 죽음[* 차재민의 작업 「광합성하는 죽음」(일민미술관 전시 ‘IMA Picks 2024’)을 함께 떠올려 차용한다. ]이고 푸른
물결무늬가 칠해진 터널을 빠져나오면 다르의 집이 보인다. 다르를 만나러 가는 아이들은 모두 동굴 같은 터널 앞에 멈추어 선다. 다르가 지금쯤 자기 방 바깥으로 나왔나 확인한 후 다시 걷는다. 1층에서 4층까지 표면을 따라 비좁게 휘어진 계단을 오르면 다르가 있다. 의자가 있고 나머지가 있다. 여름이네 집으로 가기 전에
다르네 집이 있다. 다르는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앞으로 나와 다르를 향하면 다르네는 반대편을 향해 빛을 맞는다. 여름의 감시를 피해 숨기라도 한 것처럼 다르의 의자는 자길 가리고 다르를 가린다. 두 집 다 남향이어서 그래. 다르는 말하곤 했지만 언제나 빛이 쏟아지는 다르네 집에 방향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은 다르를 확인하지 못하고 다르네 집 표면을 따라 올라 여름에게 전활 건다. 여기 다르네 집.
올 거야? 응. 지금 갈게. 여름이 올까. 다르가 달아놓은 작은 알전구들이 반짝인다. 동굴 같은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다르네에 오는 애는 여름뿐이다. 아이들이 앉은 구역에서 공평하게 돋아나는 것도 여름뿐이고 폭신한 공기에 얼굴을 기댈 수 있는 것도 여름뿐. 여름에 가면 춥지 않고 따뜻하고 북적이고 맴맴 매미가 울고 개구리도 개굴개굴. 산들산들 여름의 스커트.
여름이 오는 동안 비좁은 길과 계단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는 걸 아이들이 바라본다. 잘못 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잘못 칠해진 터널을 잘못 통과하고 잘못 올라와서 잘못 말하고 잘못 보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잘못 생각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건 여름의 터널이고
올려보아도 보이지 않지만
표면을 따라 움직이면 함께 있게 되는
모두 와서 가지 않는 밤.
계단이 열리면 올라와서 논다.
나쁜 피
시내로 나가니 사람이 아주 많다
왜 그걸 들고 나왔어.
반짝이지도 않잖아.
재희 손에 들린 건 도자기로 만든 화병이었다
입구 부분은 깨져서 투명 테이프를 감아놓고
길쭉한 옆면엔 춤을 추고 있는 드니 라방의 몸이 여러겹 스케치되어 있다
「모던 러브」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서 우리가 좋아했던
뭐라도 들고 나와야 하잖아.
높이 들어 보여주려고.
뾰족한 끝을 잡고 걸어야 한다
사람이 아주 많은데
개도 아주 많고
함께 냄새를 맡는다
검고 빛나는 코가 되어서
나는 너에게 다시 말한다
왜 여기로 오라고 했어.
여긴 너무 많아.
죽음의 이파리들이 은유 없이 날아다니다
코를 덮치고 귀를 덮쳤다
그걸 떼어내려다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지
웃을 일이 아니지만
웃음은 터지고
다른 애들이 높이 든 걸 구경하면서
바람의 냄새를 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