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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온윤 曺溫潤
1993년 광주 출생.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햇볕 쬐기』 『자꾸만 꿈만 꾸자』등이 있음.
onewnx@naver.com
유령 소설
유령 소설이라는 서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네요
그런 책은 출간된 적 없다는군요
그럴 리가, 우리 그 책을 독서회에서도 읽은걸요
어느 세상이 잠든 사이
어느 밤중의 텅 빈 꿈을 지켜보는
일인칭 유령의 이야기를
읽은 적 없다면, 기억해봐요 언제나 외진 자리서
점심시간 어두운 등나무 아래서
불빛 한점 빼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께름직한 표지에 싸인 책을 탐독하고 있던
유령본의 독자들을
우리는 분명, 사랑을 앓는 몸은 지긋지긋해!
같은 대사에 밑줄을 긋고
사람을 잃는 몸은 지긋지긋해? 같은 문장으로 난독하고
조용히 끄덕이던 일인칭의 화자가
끝끝내 소멸하는 결말에 눈시울 붉혔는데
나 그 책의 저자를 알아요
유령 작가라서 이름이 없죠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유령의 시간을 회고했기에
그 책은 일종의 자전이 맞습니다
드물게 그를 기억하는 작중인물이
관에서 일어서듯 벌떡 찾아가 항의한 적도 있죠
당신, 이야기에 왜 이렇게 음침한 구석이 많으냐고
자신이 유령인 줄 아는 사람이 정말로 몸을 잃고
점점 지워지는 이런 얘기를
써야만 했느냐고
덮인 시간을 들추는 일은 잔인한가요? 하지만
이 소설에는 속편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어느 겨울 점점 희미해지는 오른손을 견디며
하권을 써야 했습니다
계속 쓰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고 말
유령들을 위해서요
그림자 관광
그림자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있대
음지 바른 묘지를
야광 핏빛 물든 암실을
눈알처럼 숨어 있는 탄흔들을
보러 먼 지방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대
고속버스를 타고
생수와 도시락을 가방에 담고
철 지난 유행곡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끼고서
그림자를 보러 미래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대
일분간의 묵념을
촉망받는 관광산업을
그곳에서 나고 자라 늙어가는 해설사와 함께
따라가다보면
저 앞에 작디작은 점이 보일 거래
잠든 이들을 뒤에 싣고 터널 끝을 향해 가는
버스기사의 묵묵한 뒤통수 같은
우리 지금 어디야?
그림자를 보러 가고 있대
장지였던 이십구번 국도를 지나
누군가의 어깨뼈를 밟은 듯이 덜컥이는
과속방지턱을 넘어
선잠에서 깨면 우리
오래전 섬광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물푸레숲길 아래를
통과하고 있을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