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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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은주의 영화』,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붉은 포대기』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음.

soobook7@daum.net

 

 

 

사라사 보제이

 

 

여기서 왜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반환받으러 올라갈 거라는 걸 며칠 전부터 눈치로 알고 있었지만, 김장을 끝낸 다음 날 아침에 딸이 오늘은 올라가서 기어코 담판을 지어야겠다 말했을 때, 나도 실은 그 문제로 마음 쓰였던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농담을 했다.

누구를? 대통령을?

그럴까? 나라에서 먼저 나한테 돈을 주고 나라는 집주인한테 나중에 받으라고 대통령한테 가서 말할까?

딸과 나는 그렇게 싱거운 농담으로 초조한 기분을 눅였다.

살던 집에서 나오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시골집으로 내려온 뒤 딸이 내색은 안 했지만 내내 불안해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딸의 불안을 내가 알듯이 딸도 내 불안을 안다. 우리 모녀는 서로의 불안을 눈치채는 데는 도사들이다. 그러니 내가 말 안 했어도 딸이 그 말을 했겠지.

새 세입자만 들어오면 바로 준댔어. 걱정 마.

딸이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걱정 말라고 해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또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집을 나서며 딸이 엄마, 미안혀어, 하는데, 뭔가 기분이 좀 쎄해졌다. 사실은 집주인을 만나서 담판을 짓겠노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나는 재작년에 있었던 시장 건어물가게 딸 실종사건이 떠올라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그 집 딸도 이혼하고 친정집에 와 있었는데 어느날 서울 간다고 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건어물가게를 지날 때 우는 그 엄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딸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건어물가게 엄마의 심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가 미안해애.

아무렇지 않은 척 일부러 수선스럽게 대꾸했다.

모든 게 다아. 애까지 맡기고 가서 더 그렇지.

아녀, 아녀, 아녀. 하나도 안 미안해. 미안하다면 내가 미안치.

엄마가 뭐가 미안해애.

딸도 내가 한 말을 똑같이 한다.

그냥 다아 미안치.

엄마, 우리 꼭 드라마 찍는 것 같네이.

딸이 그렇게 말해서 눈물 대신 웃음을 보인 게 다행이었다.

딸이 대학에 떨어진 스무살 어느날, 어쩌면 유학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을 안고 대학등록금으로 마련해둔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불안감을 감추고서, 씩씩하게 잘 다녀와 이, 했던 것은 내 불안이 딸의 발목을 잡을까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예감대로 여행은 유학이 되었고 유학의 끝에 딸은 아이 아빠도 없이, 눈이 파란 아이를 안고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내린 길로 딸은 인천 시내로 들어가 집을 얻었다. 시골집으로 오라는 말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딸이 시골 가서 뭐 해,라고 할 것이 겁나서라기보다, 하시라도 아이 아빠한테 가고 싶어서 그런가 해서.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소망을 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딸이 인천에 사는 자기 친구의 미술학원에서 일하려고 그랬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딸이 처음 아이를 맡겼을 때는 할머니를 독일말로 ‘오마’라고 한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그저 안드레, 안드레, 자꾸 아이 이름만 불렀다.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이 체기처럼 올라와서 안드레, 안드레 하니, 아이가 나를 보고 오마아,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이는 어른을 믿고 살고 어른은 아이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을. 내가 딸에게 기대어 살았듯이 우리 딸은 안드레한테 기대어 살 거라는 것을.

안드레, 엄마한테 빠빠이.

우리가 저에게 기대어 산다는 걸 저도 알았을까. 안드레는 울지도 않고 늠름하게, 마마 츄스, 하고 손을 흔들었다.

딸이 보증금 반환 담판을 하러 올라간 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서성이다가 안드레가 낮잠 자는 틈을 타 김장김치 몇포기를 가지고 개울 건너 옆동네 조경자에게 갔다. 조경자는 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커피잔만 들여다 본 채 말했다.

성숙아, 나는 당분간, 아무도 안 만날 거야. 난 이제부터 슬픔이라는 진주를 품고 고독이라는 성채로 들어가고 싶어.

시를 쓰는 사람이라, 참 말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코 경자처럼 말할 재주가 없다. 내가 저처럼 너의 결정을 존중할게,라고 격조 있게 말했다면 경자도 고맙다는 다정한 답을 내게 주었을까. 그러나 경자의 고급스러운 선언은 내게 청천벽력 같은 것이어서 말할 재주가 있었다 해도 엄두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 한켠이 내려앉는 느낌에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집으로 오는 동안, 지진이 난 듯 시야가 흔들렸다. 집에 오니, 안드레가 깨어 울고 있었다. 깨어보니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울 애기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마아, 오마아, 파들파들 떨며 안드레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작은 새가 어미 품을 파고들듯이.

아가 아가 우지 마소 우지를 마소.

환갑 넘으면서부터 내 입에서 가끔 예전에 울 엄마가 하던 소리가 나왔다.

울 엄마처럼 나도 우는 안드레를 업고 아가 아가 우지 마소 우지를 마소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우지를 마소, 하다가 절반이 독일애니 미역국보다는 소시지가 낫겠다 싶어 소시지를 주께 우지를 마소, 해봤다. 소시지란 말을 알아먹어서인가, 그칠 때가 되어서 그친 건가, 애가 울음을 딱 그쳤다. 애 울음은 해결했는데 내 마음의 진동은 여전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라는 어느 도보여행가의 말이 떠올라 아이를 업고 바람 부는 들판길을 나도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날이 저물자 들판을 날던 새들도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새가 없는 들판은 적막하였다. 아이를 업고 걷는 내 발소리만 나를 따라왔다. 저도 고적했던가. 고적해서 다정함이 필요했던가. 안드레가 제 뺨을 슬며시 내 등에 대는 게 느껴졌다. 안드레는 그렇게 내 등에 제 뺨을 뉘고서 저물어오는 하늘을 가만히 보는 것 같았다. 안드레 나이 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버지 등에 뺨을 대고 아버지의 걸음 속도로 멀어지는 풍경들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낮달도 달아나고, 새들도 달아나고, 구름도 달아났다. 그 뒤를 나뭇잎이 오고 비행기가 오고 잠자리가 오고…… 그러다가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내 등에 안드레가 뺨을 뉘이면서 내내 파들거리던 내 가슴이 편안해진 것처럼 그때 아버지 등은 고요하였다. 새끼를 품에 안은 어미 새의 깃이 고요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편안하면 새도 사람도 다 고요해진다.

저녁엔 많이 피로해져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느라고 밤에 온 전화를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요의에 깨서야 딸에게서 몇통의 전화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잘 올라간 거여?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잠을 안 자고 있었던가 딸에게서 당장에 전화가 오는 게 아닌가.

엄마엄마엄마.

응? 무슨 일 있어?

내가 대통령을 만났어야 했나봐.

응?

내가 대통령을 안 만나서 계엄을 때렸나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뉴스 봐봐, 엄마.

넌 지금 어디야?

승희네.

딸이 시골집으로 온 것은 승희가 미술학원을 접어서라고 했다.

날도 춘데. 몸조심해, 이?

응. 걱정 마, 엄마. 아이참, 내가 만나서 말렸어야 했는데.

딸이 싱거운 농담을 하는 건 내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대통령의 계엄 발표는 내가 자고 있을 때 있었고 지금은 해제된 뒤였다. 휴대폰 소리 때문인지 잠을 깬 안드레가

오마아, 오마아, 여기서 왜애.

‘여기서 왜 잠을 안 자느냐’고 묻는다. 아이가 ‘여기서 왜’라고 물을 때마다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도 든다. 지난가을에 딸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집으로 들어왔다. 살림이라곤, 트렁크 두개가 전부였다. 나는 안드레 아빠라는 ‘놈’에 대해서 묻고 싶었으나 차마 묻지 못해 괴로웠다. 한국놈이라면 쫒아가서 멱살을 잡는 상상도 했다. 내가 딸 아빠하고 헤어졌을 때 울 엄마도 그러지 않았으니, 설사 ‘그놈이 한국놈’이라 한대도 멱살 같은 거 잡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딸이 후미진 뒤안에서 혼자 눈물바람 하는 것을 못 본 척해야 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견디다 견디다 불쑥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여기서 왜!였다. 그때 그 순간의 그 말이 안드레 속에 콕 박혔던 것일까. 아이 입에서 툭하면 여기서 왜, 소리가 나온다. 설거지를 하다가 멈추고 우두커니 서 있으면 여기서 왜! 화장실에서 좀 늦게 나와도 여기서 왜! 네살짜리가 여기서 왜! 할 때마다 뭔가 서늘해졌다. 여기서 왜 울고 있어, 여기서 왜 혼자 웅크리고 있어, 여기서 왜 잠을 못 자고 있어,로 들려서.

오마아, 왜애애.

휴대폰을 껐다.

자장자장자장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앞집에 멍멍개야 짖지 마라 뒷집에 꼬꼬닭아 우지 마라, 자장자장자장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아이의 코 고는 소리가 옅게 들렸다. 나는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내 불면의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슬픔의 진주를 품고 고독의 성채에 스스로를 가두어서 혹시 계엄 소식은 알까 싶어 전화를 했으나, 경자는 정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해오지도 않았다. 처음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 같았는데, 계엄 이후 낮이고 밤이고 휴대폰이 손에서 놔지지 않았다. 그러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경자도 그런지 궁금했다. 경자도 나처럼 뉴스 중독으로 불면의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어느 오월 저녁에, 나는 남편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오월이어서 그랬는지 광주 5・18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남편이 역시 무심하게 채널을 돌렸다. 딸에게 젖을 먹이며 온몸의 세포가 곤두설 만큼 몰입해서 보고 있던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는 나를 남편이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화도 안 내고, 놀라지도 않고 그저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나는 처음으로, 어떤 무심함은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싸우지도 않았다. 여느 때처럼 조용한 날들이, 말하자면 적막한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날 반찬거리를 사려고 딸을 업고 시장에 나왔다가 나는 돌연 터미널로 갔다. 낮에는 좀 덥기까지 한 오월이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찬 기운으로 몸을 떨면서 나는 경자가 있는 남원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고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농부였던 내 짝, 경자는 남원 남자와 결혼한 뒤 제 남편의 고향으로 귀농해서 살고 있었다. 그날, 경자 남편 송삼석이 맨발로 뛰쳐나와 내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정한 사람, 송삼석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슬픔이라는 진주를 품고 고독이라는 성채로 들어가려 한다는 것이 제 남편 세상 떠난 뒤 조경자가 얻은 최종 결론일까.

그때 내가 여기를 안 왔으면 오월에 얼어죽었을 거야.

경자에게 이 말을 어디서 했던가? 광한루를 산책하면서였나, 요천 강변을 걸으면서였나.

내 뜨거운 분개가 너를 녹여준 모양이지?

집주인에게 전세금도 아니고 월세 보증금을 반환받으러 올라간 딸도 그때의 나처럼 왠지 꽁꽁 얼어 있을 것만 같다. 더군다나 지금은 겨울이지 않나. 심지어는 내란의 겨울이라는데, 딸은 보증금에 발목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을까. 덜덜 떨며 추운 거리를 서성이다가, 친구 집을 찾아 들어간 것일까.

‘다정한 사람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라는 글귀는 어디서 봤을까.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이제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안다. 다정한 사람 하나가 없어 사람은 시장가방을 들고 터미널로 간다는 것을. 더워도 덜덜 떤다는 것을, 더구나 겨울엔 날까지 추우니 당연히 더 떨 것이다. 딸에게는 승희가 다정한 사람일까. 승희가 있어 우리 딸은 살 수 있을까. 내게 경자가 있었던 것처럼 승희가 있어 딸이…… 건어물가게 딸은 다정한 사람 하나가 없어 돌아오지 않나. 아직도 다정한 사람 하나를 만나지 못해 천지사방을 헤매 다니나. 우리 딸하고 동갑인 그 집 딸은……

딸의 젊음이 시리고 딸의 가난이 애리다고 말하면 경자는 뭐라고 할까. 우리도 다 그랬어라고 할까. 아니면 너나 걱정해라고 할까. 하지만 왠지 경자는 뭔가 다른 말을,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줄 것만 같다. 시를 쓰게 된 뒤 항상 그랬듯이 수첩에다 “생은 겨울밤처럼 시리고 애리다”라고 적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또 그때 내가 시리고 애려서 남원행 버스를 탔다고 말하고서 고개를 숙일지도 모른다. 그 말이 왠지 부끄러워서. 그 말을 한 순간이 시리고 애려서.

개울 건너 조경자야,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개울을 건너오거라, 와서 내게 이 이상한, 시리고 애린 이 겨울을 어찌 보내고 있는지 말해다오.

딸아, 봄부터는 나도 국민연금이 나온단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내려오너라, 쌀과 난방 연료는 살 수 있을 만큼은 나오니 우리 세 사람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진 않을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 그런 말들을 썼다 지우는 중인데, 안드레가 자다 깨서 오마아, 여기서 왜애, 하는 통에 그만 휴대폰을 닫고 말았다.

아가, 왜애.

되도록이면 자다 깨서 휴대폰을 안 봐야지 하면서도 눈이 떠지면 자동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안드레, 자라, 코오 더 자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똥하게 나를 쳐다본다. 내가 지 엄마가 아니고 할머니인 게 이상한가?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거리며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 기분으로 딸에게 문자를 보낸다. 딸아, 내 연금이 나오니 쌀과 연료를 어쩌고저쩌고는 지우고 단도직입적으로다가.

돈은 받은 거야?

답이 왔다.

낼 준대. 걱정 마, 엄마.

언제 와?

돈 받아서 갈 거여.

그래. 돈 받으면 바로 와, 이?

걱정 말고 자, 엄마.

내란인데 잠이 오냐.

ㅋㅋ

‘ㅋㅋ’은 큭큭, 하는 웃음소리라는 걸 나도 이제 안다. 딸의 ㅋㅋ에 내가 안도감을 느낀다는 걸 딸은 알까. 큭큭도 아니고 크크도 킥킥도 키키도 아닌 ㅋㅋ이. 내가, 내란인데 잠이 오냐, 뒤에 나라만 내란이 난 게 아니고 나도 시방 내란이다,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딸의 ㅋㅋ 덕분이다. 조경자에게 나도 ㅋㅋ을 보내볼까. 제 남편 가고 나서 내내 경자가 내란 중이었음을 나는 왜 이제사 자각하나.

이혼밖에 못해본 사람이라 사별의 고통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 그러니, 내 딸이 보낸 ㅋㅋ에 내가 안심하듯이 경자야, 너도 부디 내가 보낸 ㅋㅋ을 받아다오, 나의 ㅋㅋ이 너의 내란을 종식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그래도 받아만 다오.

나는 휴대폰의 ‘ㅋㅋ’을 누르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보내지 못하고 또다시 휴대폰 영상만 들여다본다. 국회 앞 응원봉의 반짝임이 꼭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같다. 딸도 보증금을 받았으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분명히 저곳에 갔으리라. 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그때도 제 친구들이랑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촛불을 들었으니까. 나라에 촛불 들 일이 생기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도 들었던 애니까. 화면 가득 반짝이는 응원봉이 마치 겨울에 피어난 꽃 같다. 젊은 시절에 달래도 달래도 우는 딸을 업고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교회에서 반짝이는 트리를 가리키며 딸이 외쳤다. 엄마아, 꽃이야. 나는 정신없이 그쪽으로, 반짝이는 곳으로 갔다. 우리 딸 울음을 그치게 한겨울 밤에 핀 꽃 쪽으로.

그뒤부터 반짝이는 것은 내게 다 꽃이 되었다. 우리 딸도 저기에 가면, 울음으로 꽉 차 있던 애기 때처럼 외칠까. 와아, 꽃이다!

딸아, 이 겨울에 세상에 꽃이 피었다. 거리마다 피었다. 그러니 혹여 낼 보증금을 못 받아도 울지 말거라, 딸아, 내 아가.

오마아아, 여기서 왜애애애.

안드레가 조그만 손등을 내 눈자위에 대고 자꾸만 왜애, 한다. 여기서 왜 우느냐고.

응, 울 애기 코오 자자, 자장자장자장자장, 딸각딸각 서울 가서 밤 한됫박을 사 와다가 찬장에 넣어놨더니 시앙쥐가 다 까묵고 밤 한톨이 남았는디 껍데기는 애비 주고 비니리는 에미 주고 알맹이는 울 애기하고 나하고 알콩달콩 나눠묵세 자장자장자장자장……

안드레를 겨우 재우고 있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다시 왔다.

엄마가 거기 있어서 내가 마음 놓고 돌아댕기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도 없는 밤에 개는 왜 짖을까, 해서 창문 밖 하늘을 보니 손톱만 한 초사흘 눈썹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보름달이 될 즈음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까. 나라도, 우리 딸도, 경자도, 나도, 우리 안드레도…… 저 달이 보름달이 될 즈음이면, 그때쯤이면, 그때면…… 까무룩 든 잠 속에서도 휴대폰 화면 속 겨울꽃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환한 데로

 

남편이 사고 난 곳을 나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아들은 갔다 온 모양이었다. 갔다 와서 아들은 분개했다.

아, 어떻게 그래? 사람이 죽은 곳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끔할 수가 있어?

남편의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 전복되었다. 생과 사가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그대로 남편의 경우였다. 아들은 분개하는데 나는 사고현장이 말끔하다면 한번 가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같이 가줄래?

그러지 뭐.

대답을 선심 쓰듯 하는 게 불편했다.

놔둬라.

알았어.

아들은 두번도 안 물어보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징징거리는 전자기타 소리. 실용음악대학을 다니던 아들은 남편이 세상 떠난 뒤 학교도 안 가고 제 방에 틀어박혔다. 제 방에 틀어박힌 아들이 하루 종일 그냥 기타도 아닌 전자기타를 쳐대면 머리가 아프고 억장이 무너졌다. 지가 아무리 기타를 쳐댄들, 한번 간 아빠가 돌아오겠는가. 한편으론, 그래도 아들 방에서 아무 소리 안 나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그 소리가 거슬렸던 것은, 한번 더 물어봐주지도 않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간 바로 후에 징징징징 지지지징 소리가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아들 방문을 열어젖히고 너의 무심함에 내 마음이 기스가 났다는 말을 할 뻔했다.

휴대폰에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라고만 검색해도 수많은 절절한 조언의 영상이 떴다. 모든 말이 다 나한테 해당하는 것 같아 다시 눈물이 나는 영상들이었다.

……누군가한테 말을 하고는 싶으나, 또 누가 묻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건 당연하죠. 그러니까 그는 누군가가 당신 어때요?라든가, 괜찮아?라는 말을 물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말 한마디를 누가 물어봐주지 않아서 내내 울음보가 터질 듯한 상태가 지속되고 그 상태를 방치하게 되면 정신근육은 급속도로 약화되는 것입니다……

영상은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아 휴대폰을 닫았다. 아들이, 어떠냐고 물어봐주지 않아서 내가 울음보가 터질 듯한 상태였던가? 그래서 너의 무심함에 내 마음이 기스가 났다는 말을 하려 했던가. 상처라는 말을 요즘식으로 하면 뭘까를 생각하다가 겨우 떠오른 말이 기스였는데, 다른 말을 더 찾고 있다가 말할 기회를 놓쳤다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상처…… 기스, 스크래치, 긁힘, 까임, 빡침…… 나는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라는 말은 확실히 구식이다. 기스가 났다고 하면 아들은 하품 난다 할 게 분명하다. 너의 무심함에 내 마음이 긁혔어는 시각적으로 명료하긴 하지만 감정의 요동침을 전달하는 데는 좀 약한 것 같고, 까였다는 말은 좀 야비한 느낌이고 빡친다는 가장 최신이지만 나로서는 쓸 엄두가 나지 않으니 내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한성숙은 제 남편의 무심함에 상처가 났을까, 긁혔던 것일까. 빡쳐서 이혼했다고 하면 그건 한성숙의 결정에 대한 모욕같이 느껴진다. ‘빡치다’라는 말은 말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닫힌 아들 방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빡침”이라고 수첩에 적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폐일언하고, ‘빡쳐서’ 아들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소리가 뚝 그쳤다. 아무 소리가 안 났다. 그때사 공포가 밀려왔다. 노크가 불러온 정적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잠시 뒤, 안에서 다시 징징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아아아아아아악.

천지가 진동하는 비명소리. 장성한 청년의 짐승 소리가 나를 결박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들의 비명에 몸이 얼어붙은 와중에도 “그는 죽어서 내 속에 살아오고 나는 살아서 그의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수첩에 적고 싶었으나 꼼짝할 수가 없어 식탁의자에 주질러앉아 있는데 아들이, 나 집 좀 나갔다 올게, 말을 흘리면서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나갔다 온다는 말인 줄 알고 대답도 못하고 있는 사이, 검은 롱파카 모자를 푹 눌러쓴 스물세살 장정 하나가 저벅저벅 집을 나간다. 엄마의 직감인지 저 장정이 지금 잠깐 나가는 게 아니고 떠난다는 느낌이 왔다. 급하게,

어디 가?

아들은 뒤도 안 보고 손만 들었다 놓았다. 몰려드는 팬을 향해 서비스하는 연예인처럼 성의 없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니 겨우 받았다.

어디야?

나중에 알려줄게요.

모처에 있어?

모처라는 말을 못 알아먹었는지 아무 말이 없다가,

제가 애도 아니잖아요.

애여.

후우.

한숨을 다 쉬고, 이?

먼저 끊을게요.

아들이 존댓말을 하는 것은 누가 옆에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도 없을 때는 애처럼 굴다가 누가 있으면 어른인 척하는 연기에 아들이 능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아들이 발작적으로 집을 나간 뒤 나는 적막이라는 이름의 성채에 갇힌 것 같았다. 김장김치를 나누려고 온 한성숙에게 슬픔이라는 진주를 품고 고독이라는 성채로 들어가려 한다는 요상한 말을 한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한성숙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커피잔만 내려다보았다. 한성숙도 무안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손주를 재워두고 왔다고 커피도 남겨둔 채 서둘러 돌아갔다. 한성숙이 가고 나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것은 아마도 아들과의 불화가 불러온 비애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었다고 해명을 하고 싶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메시지 하나가 떴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언제 한번 방문해도 될까요?

산사음악회에서 우연히 만나 가끔 보던 갤러리까페 오영화였다. 물음표로 끝나는 메시지엔 답을 해야 할 것이나, 뭐라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동안에 아들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엄마, 계엄이래ㅋㅋ.

계엄이란 말은 알겠으나 믿을 수가 없고 무시무시한 계엄 뒤에 가비얍기 한량없는 ‘ㅋㅋ’이라니, 웬 ㅋㅋ인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장난처럼 말한 계엄은 ‘실화’였다. 휴대폰 영상 속 대통령의 계엄 발표 모습은 사뭇 근엄하고도 아들이 ㅋㅋ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우스꽝스러운 바도 없지 않았다.

남편이 세상 떠난 뒤 시작된 수면장애 증상은 계엄의 밤 이후 더욱 자심해졌다. 밤을 꼬박 새우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날도 밤을 거의 새다 살풋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따가닥, 딱딱 소리가 우리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알고 있었다.

시인 선생, 내가아 시방 울고자부요.

지팡이 소리로 먼저 온 노인은 내가 보이든 안 보이든, 자신이 온 용건부터 외치는 습관이 있다. 울고 싶은 일이 있어 밤을 지새우다가 날 새자마자 우리 집으로 온 건가? 지팡이 소리가 날 때 집에 없는 척 숨는 날도 있지만 그럴 힘조차 없어서 문을 열었다.

왜 울고 싶으세요?

나의 물음이 결국 하루하루가 고적한, 더군다나 ‘오늘은 왠지 울고 싶은’ 노인의 발화본능에 촉발제가 되고 말았다. 노인을 울고 싶게 한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씨앗을 받아서 남천나무의 묘목을 기름

•남천나무 화분을 정미 아빠가 몇개 가지고 감

•노인은 이웃인 정미네와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임

•아무리 가족 같아도 말을 안 하고 화분을 가져간 것이 서운함

•서운하다고 말을 하니 바로 사과를 함

•그러나 왠지 모르게 지금 울고 싶은 기분임

‘시인 선생’에게서도 울고 싶은 기분에 대한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노인은 돌아갔다.

‘울고 싶다, 서럽다, 착잡하다, 거시기하다…… 외롭다, 꿀꿀하다, 빡친다 따위의 말들은 아직 노인에게 오지 않았다. 어떤 말들은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오는 게 아니다, 말이 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우리에게 당도하지 않은 말들이 지금 어딘가에 대기 중일지도 모른다……’

휴대폰 뉴스를 틀어둔 채 수첩에 그런 말들을 적고 있었다.

이삼십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들이 기물을 부수고 경찰을 향해 소화기를 난사하며 일부 취재진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기동대 이천명을 투입해 무관용 대응을 경고……

이어서 현장음이 들린다.

퍽, 팍, 다 부숴. 판사 어딨어. 1・19혁명이다. 점거해, 점거해……

불법계엄 혐의로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법원의 판사를 잡겠다고 난입한 청년들로 법원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법원 건물 외벽이 청년들에 의해 와스스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아니, 그런데, 쟤는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실루엣이 벽돌을 던지는 무리 속에서 얼핏 보이다가 사라졌다. 혹시 얘가…… 휴대폰을 잡은 손이 떨려서 다른 손으로 잡고 아들 번호를 겨우 눌렀다.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아들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검은 롱파카의 ‘걔’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물증이 아들 방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랐다. 서랍을 뒤졌지만 ‘물증 확보’에는 실패하였다.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었다. 컴퓨터를 두들겨보고 아무 버튼이나 눌러봐도 소용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에게 수없이 전화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심지어는 좀 전에는 들리지 않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멘트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뚜렷한 ‘의심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쳐서 벽에 기대 있자니, 맞은편 벽에 걸린 아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날이었을까, 아니면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축제였을까. 아마추어 화가가 그려준 아직 애기 티가 역력한 아들 얼굴. 어려서 대나무밭 그루터기에 볼을 찔려서 생긴 보조개가 선명했다. 결혼한 지 십년 만에,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 생긴 아들이 또 넘어질까봐 남편은 한동안 어디를 가든 아들을 목마 태우거나 업고 다녔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 잠든 아들을 내려놓는 아빠의 등에서 나던 땀 냄새를 아들도 기억할까. 보조개가 된 상처의 흔적은 청년이 된 지금도 그대로다. 저 보조개 청년은 지금 어디에 있나. 새파랗게 얼어서 돌팔매질을 하고 있나? 도대체 어쩌자고 이애는, 엄마, 계엄이래, 뒤에 ‘ㅋㅋ’을 붙였을까.

노인이 내게 “울고자부요”라고 했듯이, 나도 그러고 싶었다. 아무나 붙잡고 나도 울고 싶다고, 내가 답을 안 보내서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갤러리까페 오영화가 오면 노인처럼 나도 본론부터 불쑥 ‘내가아 시방 울고자부요’ 해볼까? 가만히 있어도 울고 싶은데 달래주진 못할지언정 나라까지 왜 이러나.

한숨을 못 자고 아침도 거르고 북북 기다시피 자리에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이다! 손이 떨렸다!

왜애애!

왜 수없이 전화했냐는 아들의 목소리에 신경질이 잔뜩 묻어 있다.

너 어디냐.

음산한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란다.

기획삽니다.

뭣을 사?

쿡쿡쿡.

문자로는 ‘ㅋㅋ’이라고 표현될 만한 웃음소리가 났다.

힘이 쭉 빠지면서 또 새로운 힘이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든 것은 그 웃음소리가 들려서였을 것이다. 아들의 웃음소리에서, 어쨌든, 적어도, ‘거기’에 가진 않았다는 것을, 검은 파카가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후우, 기획사라고요.

아들이 뭣을 기획하는 회사에 있구나. 그 뭣이 무엇인지 짐작은 하면서도 일부러 딴청을 부려본다.

인생을 기획하는 데여?

벽을 부수는 청년이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어 어느새 농담을 할 여유가 생겼다.

트롯을 한번 해보려고요.

어?

트로옷!

틀옷? 그 옷이 뭔 옷이여!

트 로 트!

청년이지만 청소년처럼 말할 때는 늙은 엄마와의 대화가 답답해서 그런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러니까 아들의 말인즉슨 엄마가 반대할 것이 뻔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아빠가 없으니 이제부터 자신이 가장인 셈인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생각해보니, 지가 현재 하는 음악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아 ‘트로트계’ 쪽의 ‘문’을 한번 두드려봤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유튜브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기획사 사장님이 지금 방송 쪽 사람들하고 접촉을 ‘시도’ 중이고 엄마도 유튜브 좋아하니까 한번 보라는 것이었다.

제목이 뭐여?

사랑의 두레박.

그동안엔 왜 연락 안 했느냐, 거긴 진짜 안 간 거냐, 누가 너를 가장으로 임명했다더냐, 내친 김에, 너는 어떤 놈이냐, 예전에 밥 먹다가 니가 나한테 엄마도 ‘뻬미’냐고 불쑥 물었던 건 내가 잠을 안 자는 올빼미라서 물은 게 아니고 페미니스트냐는 뜻이었냐? 그렇게 물으면서 살짝 띠었던 그 미소의 순수성을 이제 와서 내가 따지는 건 아니지만, 만약 니가 말한 ‘뻬미’가 그 ‘페미’라면, 물은 의도가 뭐냐 등등을 묻고, 따지고, ‘매조지’할 것이 있으면 하고 싶었으나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휴대폰에 사랑의 두레박을 쳤다. 거짓말처럼 화면에 나타난 저 청년이, 로커의 생명은 긴 머리라며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싹둑 자른 아저씨 머리를 하고서 노래하는 저 청년이, 과연 내 아들이 맞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입을 움직일 때마다 씰룩이는 보조개가 틀림없는 내 아들이었다.

목마를 때면 언제든 사랑의 두레박을 내려주세요. 사랑의 샘물이 찰랑찰랑, 당신을 적셔줄게요. 사랑의 두레박을 내려주세요. 샘물 같은 사랑이 찰랑찰랑 당신을 채워줄게요.

노래를 다 듣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것은, 아들이 기대한 바의 ‘승산’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성공을 기대하기는 아무래도 아심찮은 게, 트로트치고는 가사가 너무 건전했다. 가사는 건전해도 트로트 특유의 가락 때문인지 오글거리는 느낌을 꾹 참고 보다가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것은 ‘웃픈’ 코미디인가”라고 수첩에 적어놓고 보니 ‘웃픈’이라는 신종 단어가, 슬픔이라는 진주를 품고 고독이라는 성채에 들어간다는 표현만큼이나 민망하였다. 민망해도 ‘웃픈’보다 더 적당한 말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웃기고도 슬픈 느낌을 지닌 채로 나는 불면의 밤에 사랑의 두레박을 들었다. 고적한 낮에도 들었다. 이것은 비애인가, 환희인가, 안도인가, 불안인가, 감정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요동치고 나는 사랑의 두레박을 듣고 또 들었다.

……사랑의 두레박을 내려주세요 사랑의 샘물이 찰랑찰랑 당신을 적셔줄게요 사랑의 두레박을 내려주세요 샘물 같은 사랑이 찰랑찰랑 당신을 채워줄게요 사랑의 돌팔매질 사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래는, 아주 그냥, 사랑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

 

막상 펜을 드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오랜만에 볕이 좋다 싶어 마당으로 나가려고 신발을 꿴 순간까지는 기억이 나.

“내가 말이여어, 우리 시인 선생한테 지난 시한에 울고자분 일은 해결이 잘되얐다고 보고를 해야 써서 아침에 살살 왔더니, 우리 시인 선생이 뚤방에 달팍 엎어져 있더란 말이시. 내가 지팽이로 뚜드림서, 사람 살리라고 악을 썼는가 안. 그럴 때게 마침맞게 이 냥반이 와서 우리 시인 선생을 병원에 실코 왔제.”

나는 노인의 따그닥딱딱, 지팡이 소리가 들리면 숨기도 자주 했단다. 너도 알다시피 내 이웃인 노인은 구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할 말은 너무나 많으나 아직 오지 않은 말이 너무 많아서 이제 겨우 당도한 말 몇개로 현대를 살려니 사는 게 옹색해. 돈이 부족해도 그렇지만 말이 부족한 사람도 사는 데 지장이 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울고 싶을 때가 자주 있어. 돈이 없을 때도 울고 싶지만 말이 부족해도 그런 것 같아. 제 속에 말이 충분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얼마나 든든하겠니. 아무리 돈이 없어도.

노인이 말한 ‘이 냥반’은 갤러리까페 여인이었어. 우리 집에 온다 해놓고 안 오더니 마침 그날 온 거야. 그녀도 나처럼 볕이 좋아서 온 모양이야. 갤러리까페 그녀는 노인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더군. 말이 없는 그녀는 내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더라. 말은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손을 통해서도 하잖아. 그녀의 ‘손의 말’이 입의 말 못지않더군. 말하자면 그녀는 입의 말보다는 손의 말, 눈의 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 사람 이름은 오영화야. 오영화가 나를 살린 셈이지.

전화를 못하는 대신 한성숙에게 편지를 보내볼까 해서 간호사에게 종이를 구해서 쓰다가 문장도 엉성하고 무엇보다 편지 자체가 왠지 어색해서 아무래도 전화가 나을 것 같았다. 슬픔이라는 진주를 품고 고독이라는 성채에서 사는 것도 봉쇄수도원의 수도사가 아닌 담에야 쉬운 일은 아니고, 죽다 살아난 마당에 편지보다야 민망하겠는가. 전화를 받는 소리에 잠깐 움찔하긴 했다. 어색하면 나는 일부러 내 원래 말을 더 쓴다.

나여어.

어디야?

고독이라는 성채냐는 물음일까?

병원이여.

나는 되도록 명랑하게 대답한다.

거긴 왜?

나중에 말해줄게.

한성숙이 조용한 틈을 타 나는 얼른 한마디를 더 보탠다.

사라사 우리가 보제이.

한성숙이 못 알아들었을까 싶어 다시 얼른,

살아 있어야 우리가 보제애. 송삼석이처럼…… 송삼석이처럼…… 한번 가버리면, 가불고 말면……

한성숙은 한참 있다가,

그래애, 살아 있어야…… 살아 있어야…… 꽃도 보고……

말을 맺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나도 한성숙처럼 뭔가 울컥한 기가 올라와서 야, 밖에 눈 온다, 눈 봐라, 하고서 전화를 얼른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사랑의 두레박 가수 얘기를 빠뜨린 걸 깨달았다. 성숙아, 사랑의 두레박을 검색해서 들어보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다 왠지 얼굴이 화끈거려 그만두었다.

병실 창문으로 눈이 기를 쓰고 ‘달라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눈이 아니라…… 놀랍게도 꽃이었다. 아니, 내가 잠깐 쓰러진 사이 화면 바뀌듯 계절이 바뀌었나? 봄이지만 봄이 아닌 줄 알았는데, 병실 창밖 벚꽃 잎이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한성숙은 곧 문병을 올 것이고 이제 나는 한성숙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한다. 살아 있으니 볼 수 있게 된 우리는.

병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자연스레 휴대폰을 켰다. 소리 안 나게 영상만 봤다. 아들이 보조개를 씰룩거리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

사랑의 두레박을 내려주세요 샘물 같은 사랑이 찰랑찰랑 당신을 적셔줄게요……

날이 어두워지자 가로등이 환한 데로 꽃이 몰려들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한사코 그러듯이 환한 꽃도 더 환한 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