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소설│제28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김소라 金錦姬

1982년 강원 강릉 출생.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bewitchsol@naver.com

 

 

 

낮게 나는 아이

 

 

그애가 또다시 창틀을 밟고 올라섰다. 버릇처럼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 십분. 멀리서도 창틀을 꼭 붙잡은 손과 잔뜩 구부린 무릎이 보였다. 정말 어지간히 겁이 많은 애네, 생각하기 무섭게 아이는 마치 어둠 속 계단을 디디듯 신중히 뛰어내렸다. 날마다 반복하는데도 아이는 단 한번도 위쪽으로 힘차게 도약하지 않았다. 끈끈한 여름의 공기 속에서 모기향 끝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탄산이 다 빠진 탄산수 한모금을 삼켰다.

 

바야흐로 러닝 붐의 시대가 도래했다.

화면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달리는 사람들 위에 굵직한 흰색 폰트로 문구를 적어넣었다. 광고주가 준 문구는 비장하고 촌스러웠지만 확실히 이목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어 보였다. 그렇구나. 세상은 러닝 붐의 시대구나. 그러고 보니 SNS에 자주 보였던 ‘오런완’ 인증사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감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마우스를 잡은 손만 분주히 딸깍였다. 주기적으로 일을 맡겨오는 이 쇼핑몰의 영상은 빨리 넘겨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내용은 늘 비슷했다. 여러 패션 아이템을 판매 순위별로 추천하는 일분 미만의 짤막한 영상이었다. 이번에는 초보를 위한 러닝화 추천이었다. 산뜻한 색과 도톰한 쿠션의 러닝화들은 신기만 해도 저절로 앞으로 나아갈 것처럼 생겼다.

현관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걸 보니 주인집 아들이 분명했다. 그는 쓰레기를 가져갈 때마다 꼬박꼬박 한숨을 내쉬는 걸 잊지 않았다. 나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문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애썼다. 주인아주머니가 먼저 제안한 일이지만 직접 해도 번거로울 일에 남의 손을 빌리자니 관리비를 더 내고도 면목이 없었다. 주인집 아들이 제대한 뒤로 쓰레기를 내려다놓는 일은 주로 그의 몫이 되었다. 남 밑에서 일할 성격이 못되어 취업을 안 하고 있다고 했던가, 무슨 시험을 친다고 했던가. 아가씨처럼 집에서 돈 버는 일이라도 찾으면 좀 좋아? 아주머니는 가끔 올라와 열린 문 사이로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 하소연을 해야 할 쪽은 불편한 다리로 옥탑방 월세살이를 하는 내가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제법 능숙하게 공감을 표할 줄 알았다.

밖에서 더이상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다시 일에 집중했다. 가격을 적어넣을 차례였다. 첫번째 러닝화는 129,000원, 두번째는 159,000원, 세번째는 229,000원…… 러닝화에 이 정도 가격을 투자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나도 이 시대에 거침없이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기꺼이 229,000원을 지불했을까. 제품 가격이 구천원 혹은 구백원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찬미가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것까지 다 아는 애였는데. 찬미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가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질문은 늘 허공을 맴돌다 사라졌다. 무엇이든 해내고 있는 찬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도 있었고, 반대로 어떤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결국 그건 진짜 찬미가 아니라, 궁금해하는 내 마음의 문제 같아서 애써 그 생각을 밀어내곤 했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 마지막으로 신발을 산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봤지만 아득했다. 심지어 신발장을 열어본 지도 오래되었다. 현관에는 아예 장판을 깔아 방처럼 사용했고, 옥상 문 앞에만 앞이 막힌 슬리퍼 하나를 두었다. 그외엔 필요없었다. 내게 신발이 필요치 않은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만은 찬미도 몰랐을 것이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방 안, 싱크대 옆에 따로 있었다. 현관문과는 달리 평균 키보다 작은 내가 드나들기에도 작고 낮았다. 금속 재질의 문은 약간 뒤틀려 있어 열 때마다 어딘가 긁히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내 세계는 일곱평 남짓의 옥탑방과 이 문 너머의 옥상 공간이 전부였다. 그 경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방에 비하면 옥상은 아주 넓었다. 어림잡아도 열다섯평은 되었다. 자립 후 첫 집으로 이곳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찬미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탑방의 비효율성에 대해 긴 설교를 했지만 결국 내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나무 평상은 일할 때를 빼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워낙 얼룩투성이라 복음원 뒷마당에 있던 평상을 흉내 내어 비닐장판으로 전체를 감쌌다. 현관에 깐 장판은 그때 쓰고 남은 것이었다. 나는 한겨울과 장마철만 아니라면 외출을 하듯 계절에 맞는 옷을 챙겨 입고 평상에 앉아 있곤 했다. 책을 읽기도 했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재작년에는 대형 파라솔을 주문했다. 고정용 물통에 물을 채워야 했지만, 그걸 들고 나가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어서 별수 없이 수도 호스까지 주문했다. 그땐 몸이 불편해 헛돈을 쓰는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론 옥상 청소에 잘 쓰게 됐다. 따지자면 사년 동안 공을 많이 들인 집이었다.

처음 이사 올 때 드문드문 보였던 다른 옥탑방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동네를 메웠던 낡은 다세대주택들이 헐리고 필로티 구조의 빌라가 들어서는 것을 몇번이나 목격했다. 늘 어딘가는 공사 중이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소음에 귀를 내맡겨야 했다. 그 바람에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하다 평상에서 적막한 밤을 누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여름의 밤하늘은 발을 담그면 빠질 것처럼 깊고 무구했다. 누워서 깊고 고요한 하늘을 응시하다가 그대로 잠이 드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 고요는 무신경한 소리에 쉽게 깨지기도 했다. 취객이 내지르는 고함이라든가 뭐라도 부술 듯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 혹은 날벼락 같은 이웃집의 다툼 같은 것들이 그랬다.

나는 대체로 내 세계 밖의 일들에 관여하지 않았다. 낯선 소음이 들이닥칠 땐 살그머니 다가가 저 아래 골목을 살펴볼 뿐이었다. 상황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적막의 편에 숨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일었다.

그애를 발견한 것도 그런 밤이었다.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골목 빌라 4층에 늘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집이 있었다.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몇 집을 기억하고 있던 참이었다. 멀찍이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그 집에서 여자애 하나가 창틀에 올라서는 게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세웠다. 소리를 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아이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막상 그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적막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었다. 황급히 휴대폰을 찾으려 더듬거렸다. 그런데 문득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바로 들렸어야 할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쿵’이라든가 ‘퍽’이라든가 하는. 사람이 떨어지면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난다던데. 두려움과 의아함이 뒤섞인 채 그쪽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아이가 건물 사이에서 둥실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거의 동시에 아이의 정체를 떠올렸다. 그애구나. 마음이 놓이며 반가움에 손이라도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의 두 다리가 허공에서 도약하듯 가볍게 구부러졌다가 펴지길 반복했다. 나는 뒷산 쪽으로 유령처럼 멀어지는 그애의 모습을 눈으로 끝까지 좇았다.

 

아이가 날 수 있다는 걸 언제 처음 알게 되신 건가요?

17개월 때인가, 18개월 때인가…… 아무튼 얘가 제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뭔가 체공 시간이 좀 길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제가 힘주어 들어올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상해서 그날부터 관찰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 확실히 몸이 잠깐씩 붕 뜨는 게 보였어요. 좀더 자라고 나니까 스스로 요령을 터득했는지 계단을 두칸쯤 남겨놓고는 둥실 뜨면서 허공에서 또 몇번 점프를 해요. 그러면 가라앉는 듯하다가도 다시 공중으로 살짝 튀어오르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죠. 그렇게 알게 되었어요. 날 수 있다는 걸.

유튜브에서 찾아낸 오래된 TV쇼 영상 속 아이의 엄마는 시종일관 기뻐 보였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함박웃음을 띤 얼굴로, 자신의 뒤로 숨는 여섯살 아이를 앞으로 떠밀었다. 아이는 질문을 쏟아붓는 진행자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경계하는 듯한 눈동자였다. 우리 은재 어린이는 이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수줍음이 참 많네요. 아저씨는 은재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보고 싶은데. 진행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어르는 투로 말했다. 요지부동이던 아이는 스튜디오에 준비된 계단 모양의 구조물에 올라갔다. 높이가 족히 어른 키의 두배는 되어 보였다. 한참 망설이던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그러곤 다급하게 두 발을 모아 공중에서 도약하듯, 세차게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잠잠하던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진행자가 상기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십시오, 여러분! 정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날 수 있는 아이를 보고 계신 겁니다! 아이는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둥실 떠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다시 그애 방의 창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유난히 맑은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하늘의 파란 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평상에 앉아 다리를 펴자 무릎 바깥쪽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한참 주무른 후에 다시 펴보려 해도 통증은 마찬가지였다.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받아들였지만 언제까지 이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손으로 무릎을 잡고 미세하게 폈다 구부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도움이 되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움직임에 집중하던 중 멀리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지없이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휴대폰에서 설정해둔 네온사인 앱을 열어 허공에 마구 흔들었다. 핑크색의 커다란 화살표가 어둠 속에서 요란하게 깜빡였다. 시선을 잡아 끌 게 분명했다. 그애는 아래만 보며 주춤거리다 결국 뛰어내렸고 평소처럼 뒷산으로 향했다. 그러다 뭔가 느껴졌는지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신호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아이는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망설이다 마침내 날아오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심지어 어딘가 어설픈 동작이었지만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아이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키가 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생머리와 은테 안경, 후줄근한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내 옥상에 온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공중에서 쭈뼛거렸다.

“너 서은재지?”

“어떻게 아세요?”

아이는 어릴 적 영상에서처럼 경계하는 얼굴이 되었다. 안경 너머의 눈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높이, 더 높이. 멀리, 더 멀리……”

나는 다짜고짜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꿈은 어른들의 눈으론 볼 수 없어요. 우리의 꿈은 더 높은 곳에 더 먼 곳에 있어요. 꽤 오래전 어린이보험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인기를 끈 노래였고, 그 광고의 모델이었던 은재는 들판 위를, 바다 위를, 빌딩 사이를 날아다녔다.

“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알지.”

“그래도 이젠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은재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눈빛은 한결 누그러들었다. 나는 평상을 탁탁 두드렸다. 좀 앉아. 마실 거 줄까? 준비해둔 탄산수를 내밀었다. 은재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말을 섞으려니 자꾸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잔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보니까 진짜 신기하다. 현실 같지가 않아. 그렇게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지 않으면 점점 가라앉는 줄은 몰랐어. 팔 동작은 상관이 없는 거야? 나는 방향 전환을 팔로 하는 건가 했거든. 아참, 널 본 지는 좀 됐어. 사실 처음 네가 뛰어내리는 걸 봤을 땐 신고할 뻔했거든. 물론 넌 몰랐겠지만……

“근데 저 왜 부르셨어요?”

내 말이 끊어질 기미가 없어서인지 은재가 말을 잘랐다.

“아, 그게…… 보니까 매번 뒷산에 가는 것 같던데. 새벽에 왜 깜깜한 산에 가는지 궁금해서.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

시시한 이유를 밝히자 은재의 어깨에서 조금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경계가 풀린 듯했다.

“완전 별거 없는데. 꼭대기 근처에 납작한 바위가 있거든요. 산책로 한참 벗어난 곳에. 잠이 안 와서 거기서 멍때리다 와요.”

“고등학생이 잠이 안 온다고? 새벽 두시 넘어서 가면 언제 집에 돌아오는데, 그럼?”

“한 십분 있다 올 때도 있고, 한시간이 될 때도 있고……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살아 있는 불빛들이 먼 곳에 있으면 뭔가 안심이 되고요.”

나도 잘 아는 마음이었다. 속하지 않고 멀리서 관찰하는 안정감. 지난 몇년간 옥상을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도 그와 비슷했다. 뛰어들기에는 부대꼈고, 아예 고립될 자신도 없이 어중간한 경계에 있었다. 지켜보고 싶지만 발견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닮은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너만 괜찮으면 자주 놀러 와도 돼. 잠이 안 올 때. 아무 얘기나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난 어차피 늘 여기 있거든.”

그 말에 은재가 조그맣게 웃으며 탄산수 뚜껑을 땄다. 탄산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경쾌했다. 찬미와 나란히 앉아 탄산수를 마시던 어느 여름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은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찬미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은재의 앞니 두개가 광고 속 어린 시절처럼 살짝 도드라졌다. 그런 게 찬미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은재는 종종 옥상으로 날아왔다. 오지 않는 날에는 꼭 공중에서 내 쪽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뒷산으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거리감이 줄어든 은재는 열일곱 나이답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언니는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요? 대학 나왔어요? 돈 많이 벌어요? 밖으로 안 나간 지 얼마나 됐어요?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었다.

“언니 같은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는 거죠?”

“말로 사람 패기 있어? 옥상도 엄연히 밖인데 은둔은 아니지. 너랑 만나 얘기도 하는데 외톨이라기에도 무리가 있지 않아?”

은재가 오, 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뒤엔 내 고립된 생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머리는요? 집에서 대강 자르지. 아플 때는요? 요샌 약도 집 앞에 배달해주는 거 몰라? 그외에도 배달 음식, 장보기 서비스, 은행 업무나 공과금 납부까지 나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놓으니 은재는 또 오, 하고 수긍했다.

“진짜 마음만 먹으면 집 밖으로 절대 안 나가고도 살 수 있네요?”

멍하니 생각에 잠긴 듯한 은재가 자꾸만 제 팔뚝을 긁었다. 향을 피워 놓았는데도 모기에 물렸는지 발갛게 부어오른 게 보였다.

“방에 가면 책상 옆 빨간 서랍 맨 위칸에 버물리 있어. 모기 들어가니까 문 닫고 찾아.”

방에 들어간 은재는 금방 버물리를 찾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팔뚝에 흥건하게 바르며 무심히 물었다.

“언니, 다리 다쳤어요?”

침대 옆에 세워진 목발을 본 모양이었다. 응, 예전에. 교통사고. 은재는 오, 소리를 내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과거의 사고가, 지금도 내 다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늘 평상에 앉아 있었으니, 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완벽히 펴지도 구부리지도 못하는 왼쪽 다리를 눈치채긴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휠체어를 꺼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목발을 쓰면 잠깐 다친 사람처럼 보였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고칠 수 없이 오래된 손상 같아 보였다. 남의 생각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갓 성인이 된 그땐 그 시선이 겁났다. 다행인 건 내겐 목발을 디디든 휠체어를 타든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열다섯평의 옥상만으로도 괜찮다고 느꼈다. 고립되고 나서야, 어쩌면 처음부터 이게 내게 어울리는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많은 것을 생략한 결론 덕분에 나는 지난 몇년을 버틸 수 있었다.

“책상 앞에 붙어 있는 사진 있잖아요. 그건 뭐예요? 위에서 본 바다처럼 보이던데.”

길어진 침묵을 먼저 깬 건 은재였다.

“마리아나해구.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야. 깊이가 10킬로미터가 넘는대.”

“헉, 무섭다.”

“내가 유일하게 가보고 싶은 곳이야.”

“왜요?”

“그냥 거기 어딘가에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마음 같은 것들.”

은재가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게 깊은 곳이라면 무엇이든 있을 것 같아요.”

문득 깨달았다. 은재의 모든 질문 속에서 내가 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만큼은 빠져 있었다는 걸. 이 아이는 무엇을 품고 낮은 하늘을 날아다닐까. 은재의 덤덤한 옆얼굴이 어쩐지 내 것과도 같이 묘연했다.

 

모니터 속 낯선 아기 얼굴 위로 이른 오후에 찾아왔던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조만간 방을 비워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표정에 의도된 애석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됐어. 무리해서라도 상가주택 하나는 올려야 노후 걱정을 덜겠더라고. 이 동네 싹 다 새로 짓잖아. 우리 아저씨는 한다면 해야 되는 성격이거든. 못 말려. 인허가 받고 뭐 하고 하면 시간 여유는 있는데, 아들내미가 인터넷으로 장사를 해보겠다는 거지. 어차피 아가씨도 언제 공사 시작할지 불안해하면서 사는 거보단 우리 애가 임시로 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아저씨가 그러대.

아주머니는 연신 내 어깨 너머로 방의 상태를 살폈다. 며칠간 일에 치이느라 제때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개수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비켜서서 방을 보여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마음이 서면 알려달라고, 자기가 대신 집도 알아봐줄 수 있다고, 엘리베이터 있는 집 살면 아가씨도 좋지 않겠느냐고, 아주머니는 그런 말들을 한참 덧붙이고 뒤뚱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 아저씨’와 ‘우리 애’가 있는 계단 아래의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느닷없는 통보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집을 알아보는 것도, 이곳을 떠나는 것도, 다시 한번 세상에 던져지는 것도 막막했다. 작업 중인 영상 속 아기가 새빨간 얼굴로 목청이 터질 듯 울었다. ‘그렇게 세상을 만난 너’라는 문구를 넣을 차례였다. 나는 울음 대신 밍밍한 커피를 한모금 삼켰다.

이번주엔 유독 결혼식과 돌잔치, 팔순잔치 같은 가족행사용 영상 의뢰가 많았다. 플랫폼에 새로 올린 포트폴리오가 그쪽 수요와 잘 맞은 듯했다. 개인 영상을 맡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저렴하면서도 완벽하지 않은, 다소 어설픈 느낌의 영상을 더 선호했다. 그래야 자신이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네 영상들은 이상하게 신뢰가 가. 찬미가 해준 말이었다. 어딘가 엉성하고 조악한 내 영상에 찬미는 늘 근거 없는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찬미의 응원으로 시작한 일이 결국 내 생업이 된 셈이다.

은재가 출연한 광고 노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도 찬미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내가 독학으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에 몰두하던 때였다. 자나 깨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찬미가 우연히 허밍으로 노래를 찾아주는 외국 앱을 발견했다. 정확한 가사를 몰라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기막히게 곡을 찾아냈다.

한국 가요는 검색되지 않았지만 찬미는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허밍으로 불렀고, 그러면 앱은 비슷한 외국 노래를 찾아 화면에 띄워주었다. 간혹 그 곡이 정말로 우리나라 노래와 유사할 때가 있었다. 찬미는 두개의 노래를 교차편집해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영상을 만들자고 했다. 일종의 어그로 영상이었다. 일단 주목을 받아야 그다음 순서로 돈이 벌리는 거래. 그렇게 선택된 게 바로 은재가 등장한 보험광고 노래였다. 앱은 잘 알려지지 않은 1970년대 미국 포크송 하나를 찾아냈다. 박자가 훨씬 느렸지만 음 진행이 절묘하게 같았다. 두곡을 이어 붙이자 더욱 비슷하게 들렸다.

별 기대 없이 올린 영상은 각종 커뮤니티로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화제가 되었다. 진짜 표절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날부터 그 광고에선 노래가 빠지고 내레이션으로 대체되었다. 거봐. 우리 대박이지. 찬미는 의기양양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진짜 대박이 되는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도 막연히 벅차올랐다. 세상이 우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네 모든 처음을 엄마 아빠가 함께할게.’ 문구와 함께 영상 속 아기는 착실히 자라 폭신한 잔디 위를 걸었다. 글자들이 화면 위에서 생경하게 흩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 순간들은 모두 찬미와 함께였다. 그중 반은 증발하고, 반은 내게만 남았다. 그런데도 괜찮은 걸까. 고민이 있을 땐 나도 모르게 귓불을 꼬집는다거나 팔꿈치에 한랭 두드러기가 있다는, 내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찬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연락할 수도 없고, 찾을 방법도 없다는 사실이 내가 혼자라는 걸 더 명확히 만드는 것 같았다. 나 혼자 내디딜 그 어떤 첫걸음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은재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첫 만남으로부터 한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날도 우리는 눅눅한 밤공기 속에서 탄산수를 마셨다. 여름이 길어지고 있었다. 찬미와 내가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 둘 다 술에 지독히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지 찬미는 늘 탄산수를 박스로 쟁여놓았다. 맥주 대신 차가운 탄산수를 마시고 캬, 소리를 내는 게 우리가 여름을 나는 방식이었다. 은재는 그런 소리는 내지 않지만 콧잔등을 잔뜩 찌푸려 시원함을 표현했다.

전날 나는 은재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방송 영상을 찾아본 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은재는 단발머리에 지금처럼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린이날 특집이었던 그 생방송에는 은재 외에도 두명의 아이가 더 출연했다. 그 무렵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 몇이 더 발견되었던 것이다. 볼이 통통하고 입술이 동그랗게 부푼 아이가 사투리로 구미에서 왔다고 말했다. 2학년인 그 아이는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종이에 글자를 적어 검은 상자 안에 넣었는데 무리 없이 읽어냈다. 종이엔 ‘진짜’라고 적혀 있었다. ‘진’에 악센트가 붙은 귀여운 억양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다른 아이는 어떤 말이든 ‘음’ 소리로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다. 음, 저는 독심술을 해요. 첫 방송 출연인데도 아이는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었다. 여기 친구들의 마음도 읽을 수 있나요? 아나운서가 묻자 아이는 은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음, 날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요? 아이의 말이 진짜였는지 혹은 그 말에 흔들린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 은재는 제대로 날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뒤로 은재가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없었다. 적극적이고 스타성까지 갖춘 다른 특별한 아이들의 등장에 은재는 쉽게 잊혔다. 하지만 그 방송에서 다리에 피를 흘리며 울던 어린 은재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무엇이 나은 것이었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은재에게 물었다. “너, 나 들고 날 수 있어?”

“들고요? 저 그런 거 안 해봤는데.”

“나 키 작아서 몸무게 45도 안 되거든. 한번만 해보자, 우리.”

내키지 않는 듯 아랫입술을 내밀고 있던 은재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평상 위에서 일어섰다. 나도 다리를 끌어올려 평상 위에 함께 섰다.

“아, 위쪽에서 뛰어내려야 한댔지?”

“바닥에서부터 도약하려면 시동 걸리는 데 한참이에요. 약간이라도 높이가 있어야 수월해요. 혹시 모르니까 제가 뛰는 순간에 바로 다리 드세요. 무게 때문에 갑자기 가라앉거나 하면 다칠 것 같아요.”

은재는 뒤에서 내 겨드랑이에 팔을 단단히 끼웠다. 잠시 발을 꼼지락대며 주저하던 은재가 평상 밖으로 한발 내딛었다. 정말로 훅 하고 가라앉는 느낌이 났다. 끙끙 소리를 내며 은재는 평소보다 훨씬 요란하고 분주하게 두 다리를 모아 굴렀다. 제자리에서 뛰듯 깡총깡총, 허공에서 몸을 밀어올리는 움직임이 왠지 익숙하고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어딘가 깊은 곳에 가라앉은 적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이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두 다리가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오! 나는 탄성을 내질렀고 은재는 여전히 끙끙대며 평상보다 50센티미터 정도 높게 떠서 옥상을 반바퀴 돌았다. 착지할 때쯤엔 팔에 힘이 다 빠졌는지 거의 용을 쓰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를 배려해 최대한 사뿐히 내려놓느라 애쓰는 게 느껴졌다.

“와아, 대박! 이런 기분이구나.”

신난 나를 옆에 두고 은재는 평상에 벌렁 드러눕더니 헉헉 거친 숨소리를 냈다.

“저, 운동, 너무 싫어해가지고. 이렇게, 힘들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은재의 가슴팍을 토닥였다.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리를 쓰지 않고 움직인 건 처음이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어딘가를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내가 좀 전의 감각을 곱씹는 사이 은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은재는 누운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하더니 웃던 표정을 가만히 거두었다.

“누군데 새벽 세시가 다 됐는데 메시지를 보내. 남친이야?”

장난스레 묻는데도 은재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힘이 들어간 미간에서 어두운 기색이 느껴졌다.

“그냥 친구요.”

“싸웠어? 왜 읽자마자 표정이 안 좋아?”

대답 대신 은재는 빠른 손놀림으로 답장을 보내고 탁 소리를 내며 휴대폰을 엎어두었다. 곧바로 다시 진동이 울렸다. 상대가 여러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는지 휴대폰이 쉬지 않고 진동했다.

“야, 일단 자고 내일 얘기하자 그래. 무슨 이 새벽에 할 얘기가 그렇게 많다고……”

나는 무심코 은재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마지막에 도착한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야 이 씨발년아 그래서 얼마 모았는데. 다영이라는 이름이 보낸 메시지였다. 은재는 한 팔을 눈언저리에 올려놓고 여전히 누워 있었다. 나는 그 팔을 끌어올렸다.

“그냥 친구라는 애가 왜 이따위로 말해?”

힘들어서인지 속상해서인지 붉어진 얼굴의 은재가 대답했다.

“언니, 전 모자란 년이에요.”

 

꽤 오랫동안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모자란 애인가보다. 그래서 부모 대신 나 같은 애들을 돌보는 사람들 손에 맡겨졌나보다. 닮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더라면 잘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힌트라도 얻었을 텐데 애초에 아는 게 없어 출발할 수 없나보다. 복음원이라 불리는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나처럼 무기력한 건 아니었다. 찬미는 말하자면 나와 정반대에 있는 아이였다. 배경 따위에 무심했고, 처음을 주저하지 않았다. 주님의 은혜라는 뜻으로 지어진 내 이름 주은과 주님을 찬미하라는 뜻의 찬미. 그 단순하고 맹목적인 이름에도 불만을 가진 건 나뿐이었다. 누가 물어보면 생을 찬미한다고 하면 돼. 너는 구슬 주에 은 은 자를 썼다고 해. 나는 그런 아이를 곁에 둔 덕에 가까스로 균형을 맞췄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흉내 낼 수 있었다. 내 평균치를 찬미가 끌어올려준 셈이었다.

은재가 다영이라는 아이와 주고받은 메시지는 도무지 친구 사이의 것이 아니었다. 은재 말로는 중학교 때는 정말로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선 어딘가 비뚤어졌다. 다영은 은재에게 우정을 빌미로 자꾸만 고가의 화장품이나 향수, 무선이어폰, 헤어핀, 모자 등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구실은 매번 달랐다. 처음엔 부족한 돈을 보태달라는 식이었다. 그게 통하자 단순히 누가 가진 걸 보니 부러워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기도 했고, 네가 사서 자기한테 길게 빌려달라는 억지를 쓰기도 했다. 은재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래야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애들은 저를 모자란 년으로 봐요. 은재의 말처럼, 허공을 떠다닌다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다. 슈퍼맨처럼 빠르게 날지도 높이 날지도 못하는 애매한 능력은 놀라움 한번으로 끝났다. 정부 차원에서 연구하겠다는 말도 있었지만, 혹여나 능력이 망가져 돈벌이 수단이 사라질까봐 염려한 은재의 부모가 완강히 막았다고 한다. 비행 능력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나이와 함께 그 능력이 더 커질 줄 알았던 부모는 크게 실망했다. 내가 기억하는 광고 속 높이 날던 은재의 모습은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그러다 생방송 사고까지 난 것이다.

은재를 에워싸던 아이들도 하나둘 자라 이젠 그 능력을 비웃었다. 쟤 찐따 아냐? 둥둥 떠다니면 뭐, 그게 뭐라고. 나는 것 외에 특출난 게 없는 은재는 아이들과 미묘하게 섞이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도 같은 소리를 했다. 너 그 정도로 돈이 될 것 같아? 나아진 걸 보여줘야 돈이 되지. 제대로 못 날 거면 공부를 열심히 하든가. 은재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초조했다. 누가 보는 앞에선 더이상 날지 않게 되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하나 남은 다영마저 잃으면 남는 것이 없었다.

다영이 생일선물로 요구한 건 명품 지갑이었다. 돈을 버는 나로서도 입이 벌어질 가격이었다. 다영은 욕을 섞어가며 은재를 몰아붙였지만, 때로는 중학교 때처럼 다정하게 굴기도 했다. 그 시절이 그립다든가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은재는 꽤 먼 동네의 고깃집에서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자정이 조금 넘었다. 부모님에게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관심이 있었더라면 옷에 밴 숯불 냄새에 의심이라도 했을 텐데. 은재는 무관심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모자람을 메우기 위해, 허공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내게 들킨 뒤 은재는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엔 몇마디씩 흘리듯 말했고, 나중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했다. 그런 말들이 쌓이니 어느새 윤곽이 그려졌다. 은재 덕분에 처음으로 공중에 떠보았던 내가 자꾸만 떠올랐다. 불안정했지만 일단은 날고 있던 순간. 은재는 내 무게를 들고 그보다 더 무거운 자기 무게까지 감당하며 버텨냈다. 은재는 늘 낮게 날고 있었고, 그건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런 은재를 볼 때마다 거울처럼 익숙하게 내가 비쳐 보였다.

자립 준비 청년이라는 새로운 꼬리표를 달고 가장 먼저 그만둔 일은 의무적인 기도였다. 나와 찬미에겐 이제 신이 필요치 않았다. 그 대신 서로를 믿었다. 우린 절대 망하지 말자. 어리숙하게 굴다가 도태되지도 말자.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 보여주자. 수없이 다짐했다. 정확히는 찬미의 다짐에 내가 올라탄 것이었다.

우리는 서울로 와 지금의 옥탑방을 얻었다. 정착금으로 받은 500만원 중 일부를 월세 보증금으로 썼다. 나는 영상 편집일을 시작했고, 찬미는 쇼핑몰에서 일했다. 자기가 고정적인 수입을 벌면 짬짬이 유튜브를 해보는 게 부담이 덜 될 거라고 했다. 첫 월급을 쓸 곳도 찬미는 이미 정해두고 있었다. 이 돈으로는 무조건 면허를 따는 거야. 차도 없이 면허가 왜 필요하냐는 내 말에 찬미는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우리의 꿈은 더 높은 곳에 더 먼 곳에 있어요, 몰라? 멀리 가야 꿈을 찾는 거야. 아리송했지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번 돈을 털어 면허시험을 봤다. 운동신경 제로에 겁까지 많은 나는 의외로 한번에 면허를 땄지만, 찬미는 도로주행 시험에서 세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차를 빌려 속초에 가기로 한 건 찬미가 면허를 딴 그다음 주의 일이었다. 잔뜩 고무된 찬미 덕에 나까지 가슴이 부풀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가는 여행이라는 설렘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운전하던 아반떼는 내촌1터널에 진입하기 직전 거대한 화물차에 들이받혔다. 뒤에서 불안하게 달려오던 화물차를 피하려 옆 차선 차량이 예고도 없이 내 앞에 끼어들었고, 졸음운전 중이던 화물차는 사선으로 달려와 우리 차 뒷면을 세게 들이받았다. 그 믿기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 찬미는 가방에 있는 젤리를 꺼낸다며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 굉음을 들었는데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안에 고인 숨소리만 울렸다. 나는 멍한 상태로 여기저기 차 안에서 튕겨졌고, 소란이 멈추었을 때 가까스로 주위를 살피니 내 몸은 뒤집힌 차 속에서 반쯤 조수석으로 넘어와 있었다. 왼쪽 다리가 불에 타는 듯 뜨거웠다. 비어 있는 조수석이 느껴져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산산조각이 나 뻥 뚫려버린 조수석 창 너머 멀찍이 찬미가 보였다. 터널 앞 도로에 엎드려 있는 찬미는 머리를 움찔했지만 나와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 붉은 손을 자꾸만 뻗어내고 있었다. 그 손이 영영 잡지 못할 만큼 멀었다. 크게 입을 벌린 터널 앞에서 버둥거리는 찬미의 모습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깊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 같았다.

나는 며칠 동안 빛 속에 있었고, 또 어둠 속에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 그사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 찬미는 사라졌다. 내 기억대로라면 깊은 곳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낮게 나는 은재의 그림자조차 닿지 않는, 마치 마리아나해구처럼. 내가 닿아야 할 곳은 거기였다.

 

“이렇게 연습하면 언젠가는 마리아나해구에 날 데려다줄 수 있겠는데?”

은재에게 업혀 옥상을 한바퀴 날며 말했다. 드는 것보다 업는 게 쉬울 것 같다는 은재의 제안에 나는 군말 없이 따랐다. 확실히 더 높이 뜨는 게 보였다. 이 정도만 높아져도 하늘이 훨씬 가까웠다.

“뜨는 건 편해졌는데, 상체를 숙인 상태라 그런지 방향 바꾸기가 조금 어려워요. 어찌어찌 연습하면 일단 뒷산 정도까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예 포대기를 하는 건?”

내 말에 은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 업을 때 쓰는 천이요? 하며 격하게 웃는 바람에 우리는 비틀비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연습이랍시고 한참 나를 등에 업고 떠 있었던 은재의 허리를 두드려주었다. 저 멀쩡한데요, 하면서도 은재는 엎드린 자세로 가만히 안마를 받았다.

“근데 언니, 거기 배 타고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빠르고 가벼운 내 주먹질 탓에 은재의 목소리가 기계음처럼 달달 떨렸다.

“그건 별로. 사진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봐야지. 그래야 깊은 부분이 훨씬 짙을 거 아냐.”

“아…… 근데 진짜 얼마나 깊은지는 빠져봐야 알지 않아요?”

계획을 들킨 예비범죄자처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가진 전부나 다름없던 친구가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찬미가 없는 세상을 날마다 살아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고 싶진 않았다. 입 밖으로 비어져나오는 생각들을 간신히 삼켰다. 이어지는 침묵에 은재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저 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나는 웃으며 원래 안마를 끝낼 참이었던 것처럼 박수를 쳤다. 은재는 개운한 기지개를 켜더니 평소처럼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뒷산으로 날아갔다. 내 눈이 달라진 것인지 은재가 나는 모습이 어설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낮고 느리게 이어지는 궤적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며칠 후, 은재는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내 뜻에 따르기로 했다. 폭언을 듣고 돈까지 뜯겨가며 다영이라는 애를 친구로 남겨두려는 은재의 마음을 나는 모를 수 없었다. 완성되지 않은 시기를 지나는 동안 붙들 수 있는 것이라면 칼날이라 해도 붙들었을 것이다. 손에 피 칠갑을 하고서도 놓는 것보단 안전하다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둘 순 없었다. 그애가 날 붙들 수 있도록, 그것만으로도 이 시기를 무사히 살아낼 수 있었으면 했다. 내게 있어서도 은재는 나를 마리아나해구에 빠뜨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 몰랐다.

나는 은재와 다영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모두 캡처해 내 노트북에 옮겼다. 일년 정도 분량의 대화 속에서 은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교묘한 방식으로 가스라이팅하거나 욕설을 하는 부분은 따로 발췌해두었다. 영상 편집일을 하는 틈틈이 빼곡한 대화창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대화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온라인에 띄워 다영을 매장할 수도 있었다. 또는 은재의 부모를 찾아가 무책임을 질책할 수도, 증거들을 가지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도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여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떠올리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내가 할 일들은 지금보다는 높이, 그리고 멀리 있었다. 모니터 옆 거대한 마리아나해구의 사진을 응시했다. 멀리 가야 한다던 찬미의 야무진 얼굴이 어른거렸다. 나는 당장은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걸음으로도 틀림없이 찬미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손을 가슴에 얹고 가쁜 진동을 느꼈다. 두 사람분의 세기로 뛰고 있는 듯 선명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중에. 나중에 꼭.

책상 위의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 은재에게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언니, 내일이에요. 우리 내일 뒷산까지 가봐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쇼핑몰 사이트를 모니터에 띄워두고 은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재는 학교인지 소곤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은재야, 너 발 사이즈가 어떻게 돼?”

“250이요. 왜요?”

나는 빠르게 전화를 끊고 같은 러닝화 두켤레를 주문했다. 내 사이즈로 하나, 은재의 사이즈로 하나. 내가 만든 영상에서 두번째로 추천한 159,000원짜리 러닝화였다.

조만간 이사 갈 거니까 그땐 걸어서 놀러 와. 내일 뒷산까지 가려면 난 운동 좀 미리 해둬야겠네. 아, 그것보다 살을 빼야 하나?

은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잔망루피가 양 손에 하트를 들고 있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도드라지는 앞니가 은재와 꼭 닮아 있었다. 현관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을 모아 제자리에서 도약하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 옆에 세워진 목발을 짚고 그쪽으로 다가섰다. 한숨이 들려오기 전에 문을 열 생각이었다. 현관 앞 비닐장판에 목발이 닿는 순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내 가벼운 발소리를.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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