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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점

 

우리의 ‘안녕’을 묻는 시간

 

 

류수연 柳受延

문학평론가.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조교수. 평론집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 등이 있음.

suyoun_cat@hanmail.net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 2025)

 

한국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집은 비단 삶의 터전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의 공간이자 전재산이기도 하며, 때로는 삶의 가치로까지 승격된다. 3포를 넘어 5포와 7포 세대로까지 일컬어지는 오늘의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번째로 꼽히는 것 또한 주거문제임을 떠올린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집은 모든 욕망의 집결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애란은 바로 이러한 ‘집’의 문제를 가장 잘 다룬 작가 중 하나다. 등단작 「노크하지 않는 집」(『달려라, 아비』, 창비 2005)은 청년들의 주거 현실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섬뜩하게 그려낸 문제작으로 평가되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이 협소한 ‘방’에 갇힌 청년들의 삶에서 그 문제의식을 도출했다면, 근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주거를 둘러싼 한국인의 근원적 욕망과 계층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더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집을 여는 「홈 파티」는 한국사회에서 고층아파트가 환기하는 전형적인 의미망 위에서 서사를 진행한다. 사회적 성공과 여유가 그것이다. 드라마 오디션을 앞둔 이연은 낯선 이의 집에 간다는 껄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대학동기인 성민을 따라 오대표 집에서 열리는 홈파티에 참석하기로 한다. “어떤 인물을 그냥 아는 것과 상상하는 것, 실제로 겪는 일은”(15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산이 정확”(10면)하다는 오대표와 홈파티의 모든 것은 그녀의 오디션과 맞닿아 있었다. 적당히 거리 두고 적당히 호응하면서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계산하는 자리. 그것이 반년짜리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홈파티가 가진 진정한 의미였으니 말이다. ‘적당히’ 어울리려 노력하던 이연은, 자립준비지원금으로 명품가방을 사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대한 비판에 저도 모르게 반박하게 된다. 가난에 무너지지 않으려는 삶이 지닌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40면)은 고아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연의 실수로 오대표가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는 고급 빈티지 잔 세트가 깨졌을 때,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홈파티는 오대표가 숨겨왔던 ‘무엇’이 의도치 않게, 그러나 다분히 ‘의도’에 의해 부서져야 할 무대였던 것이다. 이런 결말이 오대표에게 “괜찮은 계산서”(41면)였다면 이연의 손익계산서는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타자의 허위의식을 마주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자신의 허위의식을 깨닫는 것이다. 「좋은 이웃」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걸 막 깨달은 사십대”(108면), 그것이 ‘나’의 현실이다. 집도 아이도, 안정된 직업조차 없는 중년부부. 남들이 다 하는 ‘영끌’조차 놓치고 치솟은 전셋값에 이사를 준비하는 현실은 ‘나’를 움츠리게 만든다. 윗집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은 허탈감을 키우며 ‘나’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더욱이 위층에 이사 올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젊은 신혼부부라는 점은, 동시대의 속도와 가치 모두에서 뒤처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하지만 ‘나’의 허위의식을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가 오랜 시간 방문지도를 했던 시우는 장애를 가졌지만 매우 영특한 아이였다. 꼭 ‘나’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는 요청 때문에 공부방을 차린 이후에도 시우만큼은 수업료 인상도 없이 방문지도를 지속했다. 그러나 막상 시우네가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알 수 없는 절망감을 느끼며 놓치고 있던 진실을 발견한다.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130면) 결국 ‘나’를 괴롭힌 건 공사 소음도, 그러한 소음을 유발하면서도 진정성 없는 문구를 내건 위층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142면)이었다.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집’은 모든 욕망의 집결체인 동시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리는 수많은 갈등의 맥락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애란은 집이라는 욕망을 좇는 사이에 우리가 진짜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우리’, 재산과 계층의 상징물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집, 결국 그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불완전하기에 더 조심스레 깊어질 수 있는 공감과 이해의 가능성을 그려내며 오늘날의 관계를 되묻는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인공 은미는 칠년 동안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잃었다. 처음에는 직장을 잃었고, 동거하던 연인 헌수를 잃었으며, 결국엔 엄마를 잃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은미는 모든 것을 그저 잃어야 했다. 화상영어 플랫폼인 에코스의 시간당 만육천원짜리 대화가 은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이었다. 은미는 거기에서 로버트를 만난다.

에코스에서 에이미가 된 은미는, 화면 너머 로버트에게 특별한 유대를 느낀다. 우연히 로버트 아버지의 부고에 애도를 보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좀더 친숙해졌다. 은미는 자신에게 한국어 ‘안녕’의 의미를 묻는 로버트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은미가 그 누구에게도 쉽게 건네지 못했던 마지막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헌수에게도 엄마에게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이별이자 위로의 말이었다. 은미는 로버트와의 마지막 수업에서 자신이 진정 건네고 싶었던 안녕을 건넨다.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의미”(222면) 사이에서 마침내 ‘잘 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기까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제대로 이별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특별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따뜻한 공감과 이해를 전할 수 있음을, 모든 순간 비용을 체크하는 시스템 안에서도 그것이 때로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전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에서 세 친구의 소통이 거짓말게임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듣는 일, 그 모든 과정이 김애란만의 특별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을까?

 

 

손보미 경장편소설 『세이프 시티』(창비 2025)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손보미의 신작 경장편 『세이프 시티』는 여전히 손보미다운, 하지만 손보미라는 수사에 갇히지 않는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먼저 『세이프 시티』는 미스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주인공 ‘그녀’의 내면 심리를 담아내면서도 그녀의 이름은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다. 주인공의 내면 심리가 주가 되는 소설에서 그 이름이 호명조차 되지 않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여기서 비롯된 불편함 역시 이 소설의 미스터리적 요소를 증강하는 데 일조한다.

그럼 소설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녀는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단 한번의 실수”(53면)로 인해 모든 커리어를 부정당하며 반강제적인 휴직 상태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밤마다 구도심의 거리를 산책한다. 모두가 죽어간다고, 혹은 이미 죽어버렸다고 말하는 낙후된 도시의 뒷골목은 역설적으로 죽어가던 그녀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활력의 장소가 된다.

소설 속에서 ‘세이프 시티’는 앱의 이름이다. “노후화나 안전도에 따라 도시를 5등급”(21면)으로 분류하는 앱이다. 완전히 안전한 신시가지인 0등급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반발이 일어난다. 1, 2등급 구역 사람들은 재개발과 도시 정화라는 이름으로 자신들 가까운 곳에 위치한 4, 5등급 구역을 없애고 싶어한다. “혐오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게 언제든 없앨 수 있고,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대상이라는 믿음이 퍼져나갔”(24면)고, 그곳이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18면)이라는 사실은 쉽게 무시되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구도심 지역에서 여자 화장실 훼손 범죄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또다른 혐오가 겹친다. 그녀가 처한 문제도 바로 여기서 불거진다. 그녀는 경찰의 본능으로 사건에 개입했다가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휴직 중인 그녀가 왜, 한밤에,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우범지역, 더구나 범죄의 장소에 있었는가에 집중되었고, 피해자인 그녀에게 윤리적 비난이 쏟아진다.

『세이프 시티』 속 ‘기억조절 기술’이라는 SF적인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유산과 휴직을 연달아 겪으며 침잠해 있던 그녀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남편은 친구 부부와의 만남을 추진한다. 남편의 대학동기인 임윤성은 잘나가는 사업가로 기억교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부부 모임에서 임윤성과 의사인 그의 아내 최진유는 기억조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치유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마치 그녀의 휴직을 불러온 실수,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이 소설에 기존의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턱’ 갖다 붙이기엔 어쩐지 불편하다. 미스터리의 외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개인의 내면적 심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심리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내면이 지나치게 객관화되어 있고, 사회 미스터리라 하기에는 개인의 내면에 치우쳐 있다. 반면 SF라고 보기에도 『세이프 시티』가 그려내는 세계는 명백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맞닿아 있으며, 도시 설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앱 ‘세이프 시티’ 역시 팬데믹 시대에 보았던 여러 앱과 유사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작품만의 특성은 역시 ‘made by 손보미’가 아니면 설명되기 어려울 것 같다. 『세이프 시티』를 감싸고 있는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분위기, 복선이라 예상되었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뒤엎어 기존에 축적된 이야기의 설계를 부숨으로써 오히려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극히 ‘손보미’답다.

그렇다면 ‘made by 손보미’의 특성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혐오, 계층, 젠더, 욕망…… 주로 진중하고 핍진하게 다뤄지는 소재들이 손보미의 작품에서는 일종의 오브제로 사용된다. 그리고 주제와는 무관한 부수적인 사물이나 사유처럼 서술되었던 이것들이 작품의 결말에서 특별한 의미망을 갖게 된다. 『세이프 시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윤리성으로 포장하는 그녀의 심리를 담백하게 서술한다. 그녀는 누구 앞에서든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다른 인물들 역시 그런 그녀를 도덕적으로 폄하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오히려 그녀는 타락한 자본과 권력에 의한 희생자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 가면 이 모든 것은 전복된다. 그저 사소한 장식처럼 언급되었던 그녀의 허위의식이 더 명확하고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겪은 모든 불행과 불안의 기원이 그녀 자신의 오만과 편견, 더 나아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누구보다 폭력적이고 이기적으로 타락할 준비를 갖춘다. 그리고 독자는 깨닫게 된다. 단 한번의 실수는 결코 ‘단 한번’일 수 없음을.

 

 

공현진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문학과지성사 2025)

 

한 세계의 종말은 무겁고 침울한 묵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공현진은 세상의 멸망이라는 주제를 시니컬하게 추구하면서도 위트를 놓치지 않는다. 첫 소설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능수능란하다. ‘멸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가뿐히 털어내면서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우리, 세계의 엔딩을 함께 볼까?’

단연 주목되는 작품은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이다. 교사였던 희주와 제조업 공장 노동자였던 주호는 각자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성인 기초 수영반을 수강하고 있다. “곽주호는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48면)했으나, 공장에서 목격한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고 이후 자신의 책임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희주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때, 어느날 반에 어떤 급우의 부고가 붙었다. 희주는 자신이 그 급우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일종의 윤리적 강박을 갖게 된다. 희주와 주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고, 각자의 삶에서 돌출된 일탈은 뜻밖의 연대를 만들어냈다.

희주와 주호는 수영반 ‘꼴찌’라는 특별한 공통분모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주호는 잘 떠 있고 싶”(51면)어서, 희주는 언젠가 지구가 물에 잠겨 “다 같이 죽는”(57면) 그 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하고자 수영장에 왔다. 내일의 멸망으로부터 위안을 얻어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 모순적인 윤리는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유이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수영반의 꼴찌를 탈출하지 못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들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있는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자칫 냉소적으로 보이는 제목 뒤에는 사실 이토록 단단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에 보내는 신뢰가 담겨 있다. 이런 작가의 시선은 「우리는 숲」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 부모의 죽음 이후 덩그러니 둘만 남겨진 가영과 미영. 사실 그들은 남겨진 것이기보다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생존자였다. 그리고 생존의 기억은 두 아이가 겪어내야 할 가장 힘겨운 고통이다. 어느날부터 사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혼자서 떠든다는 걸 알아채”(215면)면서 두 아이는 위협을 느낀다. 부모에게 받은 가해의 기억을 왜곡해 떠들어대는 사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은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내다버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내 아무리 버려도 사물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들이 버린 물건을 주워가던 할머니의 집이 공개되면서 전환점이 생긴다. 사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로 집을 채움으로써 왜곡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본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온갖 물건을 주워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사물들의 말은 “서로 섞이고 엉겨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231면) 없다. 가영과 미영은 그 사물의 숲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위안을 받는다.

이 씁쓸한 생존기를 그저 저장강박증이라는 말에 우겨넣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쓰레기 속에 자신을 가두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도피의 방식이기도 하다. 소설 속 아이들은 그 숲에서 위안을 받으며, 마침내 숲을 나와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집의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공현진 소설 속 인물들을 괴롭히는 것은 “사소하고 작은 적의들”(「이름을 짓기 직전」 121면)이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그것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진심만으로 충분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들은 상처받고 무너지고 때로 숨어버린다. 그렇게 꽁꽁 숨어 사라지는 그들에게 소설은 외치는 것 같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는 냉소가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반드시 멸망할 테니, 나 하나쯤은 마음껏 살아도 결국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따뜻한 위안. 그것이야말로 자기들만의 숲에 숨어버린 사람들에게 공현진이 진짜 건네고 싶었던 위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