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0월 7일 이후의 세계
애덤 샤츠 Adam Shatz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미국 편집자, 팟캐스트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s) 진행자. 저서 『작가와 선교사』(Writers and Missionaries) 『반역자의 진료소』(The Rebel’s Clinic)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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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 2023년 10월 7일은 하마스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날이다. 가자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역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지 엿새째인 지난 6월 18일, 전 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받지 않은 조언을 했다. 트럼프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폐기하든지 아니면 “당신의 국가와 정권과 국민의 전멸을 마주하라”고 명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하메네이가 이를 거부하면 “그것은 우리의 정당성을 높일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내키지는 않지만 그들을 산산조각이 나도록 폭파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퍼트레이어스의 이 말은 9천만 인구의 나라 이란을 가자지구와 유사한 상태로 몰아넣으라고 권유한 것인데도 거의 아무런 논평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의 공직자들이 외국 지도자들과 그 국민에게 가하는 살인적 위협은 비난은커녕 더는 충격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미국이 어떻게 자신의 제국을 관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대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6월 22일, 미 공군은 이란 포르도와 나탄즈의 우라늄 농축기지에 초대형 벙커버스터 폭탄 GBU-57을 투하하고, 이스파한 근처의 핵 연구단지에도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처음에 트럼프는 퍼트레이어스의 권고를 따르는 듯 보였지만 이내 급하게 승리를 선언하고, 공습으로 이란의 핵능력이 분쇄되었다고(미국의 1차 극비보고에 따르면, 이란의 프로그램은 불과 몇달 정도 지체되었을 뿐이다) 발표했다. 이어서 그는 휴전에 응하도록 이스라엘과 이란을 설득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은 주택 및 재산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고 1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위협에도 하메네이는 암살되지 않았고, 트럼프는 7월 7일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B. Netanyahu)를 백악관으로 영접해 자신의 행동을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원자력 무기를 사용한 데 비유했을지언정(“그로 인해 많은 싸움이 멈췄고, 이로 인해 많은 싸움이 멈췄다”), 이란이 산산조각 나도록 폭격하지는 않았다. 가자지구에서는 기아와 살상이 더욱 악화되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신문 1면에서 사라졌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고유한 특성인 환각적 방식으로 삼자 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번개 같은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지도부를 제거했음을 들어, 이란의 하메네이는 정권이 살아남은데다 이스라엘 깊숙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군사기지 다섯곳을 공습하고 하이파와 텔아비브에 상당한 손괴를 끼쳤으며, 방공호가 없는 아랍인 마을 중 한곳의 팔레스타인 가족을 포함해 민간인 28명을 죽음으로 몰았음을 들어서였다.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 같은 네오콘 성향의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세력(never-Trumpers)을 설득하는 한편 자신의 핵심 지지자들에게는 또다시 값비싼 중동 지상전을 치르지는 않을 것이라 장담하면서 자신을 전사이자 평화중재자로 내세울 수 있었으니 승리했다는 식이었다.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네타냐후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 대통령 마쑤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은 한 인터뷰에서 방금 자신의 나라를 폭격한 남자에 대해 놀랍게도 원망하는 기색 없이(그리고 뻔히 들여다보이는 속셈으로) 말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끝없는 싸움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트럼프는 이 지역을 밝고 평화로운 미래로 인도할 만한 충분한 역량이 있는 것”이라고.
201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지지 속에서 국제적 이란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했고 이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기습공격을 개시했을 때만 해도 이란은 여전히 미국과 회담 중이었고, 3월 의회에서 미 국가정보장 털시 개버드(Tulsi Gabbard)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 않다고 증언했다.
트럼프가 미국의 이란 공습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지역패권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간 미국은 이스라엘의 공세에 미 전력을 가담시키는 것을 회피해왔다. 네타냐후가 미국을 전쟁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의 이력에서 위대한 승리 중 하나겠지만, 그는 단시간의 맹공격에 만족해야 했다. 트럼프가 이스라엘이 폭격을 중지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을 때 네타냐후로서는 순응하는 것 말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선례가 세워졌고 새로운 지역질서가 출현했다. 이 질서는 인종청소와 집단학살의 폭력을 계속해서 자행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가 아무 제약 없이 지배하는 질서이며, 이 나라는 또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인물이 이끄는 나라이다. 이란과의 전쟁은 단순히 핵무기가 물라(이란 종교지도자)의 손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시도를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2023년 10월 7일에 산산조각 난 이스라엘의 천하무적 이미지를 회복하고, 적들에게 받은 대로 되갚아주며, 자신을 지역의 주인으로 만들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의 정점이다.
네타냐후에게 이란은 못 견디게 탐나는 공격목표이다. 핵 위협국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투쟁조직들을 옹호하기에 이스라엘 유대인 대중의 눈에는 악의 상징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란을 공격함으로써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참상과 인질들의 운명에서 주의를 돌리고, 휴전에 대한 압력에 계속 저항하며,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을 피할 수 있게 된다(트럼프는 현재 이러한 혐의에 대한 기소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 정권은 군사력이 약할 뿐 아니라, 억압과 부패로 인해 이란 국민들로부터 널리 혐오를 받고 있다. 공직자들과 공무원들 사이에서 혁명 시아파의 열정은 이미 오래전에 냉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혁명수비대가 증류주를 밀수하는가 하면 질서 유지를 맡은 민병대는 여성들이 히잡을 벗을 때도 못 본 척 묵인한다. 또한 이 정권에는 첩자가 넘쳐난다. 비밀공작원과 밀고자의 정보망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그토록 순조롭게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네타냐후는 오래전부터 이 이슬람 공화국과의 군사적 대결을 떠들썩하게 주장해왔으며, 이스라엘의 맹공이 이루어진 첫 며칠 중에 공개된 비디오 연설에서 이란 국민들에게 노골적으로 호소했다.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동안, 우리는 당신들이 자유를 성취하도록 장애물들도 제거할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후 처음 몇시간 동안 일부 이란인들은 고위 공직자 여러명이 표적 공격으로 살해당한 데 내심 기뻐했지만, 이스라엘식 ‘해방’을 환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공습이 점차 무질서와 무차별로 치닫자 더욱 그랬다. 전쟁이 종료되기 하루 전 이스라엘은 왕정(Shah)과 이슬람 공화국 체제 모두에서 폭정과 억압의 상징이던 에빈교도소에 일련의 공습을 감행했다. 수감자와 방문 가족 등을 합해 70명이 사망했다. 자칭 ‘해방자’가 이란의 정권 아래서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한 바로 그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란인들이 격노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합동공격이 낳은 즉각적 효과 중 하나는 다수의 이란인들이 조소했던 논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그 논리란 이란의 현 정권이 결함은 있을지언정 외국인들이 정권교체를 선동하거나 민족분쟁을 조장해 이란을 리비아나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더 심하게는 가자지구처럼 만들려는 것에 대항할 보루라는 것이다. 이란 반체제 인사인 싸데그 지바칼람(Sadegh Zibakalam)은 “비록 우리가 반대파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우리 조국의 침공에 무관심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면서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이란 정권은 교활하게 이런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해왔는데, 그들은 외국의 음모, 특히 CIA와 영국이 획책한 1953년 반(反) 모사데크 정권 쿠데타와 같은 집단적 기억을 활용한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공식석상으로는 처음으로 시아파의 아슈라축제 기념식에 얼굴을 내민 하메네이는 평소의 종교 찬송가 대신 이란에 관한 노래를 연주하라고 당부했다. 침공 덕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철회한 이란의 결정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현재 상당하다. 트럼프의 의기양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끝장내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에 민간 용도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고 제재를 해제하며 국제질서에 이란을 재통합시키는 외교적 협정보다 이 상황을 선호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란, 이라크, 레바논 및 시리아의 영공—기동작전을 벌일 거의 모든 여지—을 제어하고 있으며, 외교보다는 항상 일방적인 군사주의를 선호해왔다. 이란핵합의에서 오바마측 협상자의 일원이었던 로버트 맬리(Robert Malley)에 따르면 “전쟁의 가장 있음직한 결과”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더욱 일방적인 공습이 벌어지는 상황”일 것이다. 이란이 자세를 낮추고 정권 유지에 초점을 맞추며 더 나은 거래를 희망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가장 경미한 위협의 낌새라도 보일 때마다 이란을 공습할 것이다. “이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실행한 ‘잔디 깎기 전략’(mowing the lawn strategy, 근본적 해결책 없이 반복적인 군사 대응으로 위협의 싹을 자르며 상황을 통제하는 전략)의 지역화(regionalization)”라고 맬리는 말했다.
이스라엘이 지역에서 자행하는 잔디 깎기 전략은 엄청난 외교적 댓가를 불러올 수도 있다. 10월 7일 전까지 이스라엘은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참상은 젊은 아랍인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한때는 이스라엘을 이란의 야욕에 맞서는 유용한 견제수단으로 여겼던 아랍 정부들조차 이제는 이스라엘의 공격성과 무모함에 한계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2일 전쟁’은 버려졌다는 통한의 심정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이전 한동안은 가자전쟁에 대한 유럽의 입장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3월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휴전협정을 어겼을 때, 그간에는 침묵을 지키던 유럽의 관료들이—심지어 그 유대국에 대해서라면 어떤 비판에도 과민반응을 보이는 독일까지도—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재한 팔레스타인 국가 관련 유엔회의를 포함해 다양하고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계획되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것이다.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전문가 무함마드 셰하다(Muhammad Shehada)가 내게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든 게 취소되었다. 내 메일함은 취소된 행사들을 알리는 이메일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가자지구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거의 황홀해하는 듯했다.”
가자지구의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 중 이스라엘 방위군은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라는 오해하기 좋은 이름의 단체, 미국에 본부를 두고 이스라엘의 지원을(어쩌면 재정 지원까지) 받으며 보안업체와 계약된 직원들이 근무하는 단체로부터 식량을 얻으려고 줄을 서 있던 가자지구 주민 수백명을 살해했다. 가자인도주의재단의 배급 장소는 군사구역 근처에 위치해 도착하려면 길고 힘든 여정이 필요한데다 배고픔으로 인해 그 길은 훨씬 험난하다. 셰하다에 따르면 “이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식량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게 사망선고와 같다는 생각이 각인되었다.” 10년 전이라면 큰 파문을 일으켰을 학살이 이제는 거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잖아도 절박하고 굶주린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 당국이 부추기는 조직범죄의 증가로 인해 천문학적 고통을 치러야 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밀수 조직망에 관여하고 IS와도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자지구 라파에 사는 야쎄르 아부 샤바브(Yasser Abu Shabab) 일족에게 러시아 총기를 제공해왔다. “우리는 하마스에 반대하는 가자지구의 일족들을 동원한다. 그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네타냐후는 말했다(실상은 아부 샤바브의 잔인무도한 범죄행위로 인해 최근까지 가자지구 주민 사이에서 인기를 잃었던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다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이주, 살해, 기아와 굴욕만큼이나 범죄행위의 조장—박해받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경찰에 속해 자기 종족에게 잔혹행위를 저지르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하는, 쁘리모 레비(Primo Levi)가 환기한 무법적 ‘회색지대’의 상황—이 가자지구 안에서 이스라엘 지배를 규정하는 특성이 되어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아이작 도이처(Isaac Deutscher)는 ‘우리는 이겨서 망할 수도 있다’(Man kann sich totsiegen)는 독일어 경구를 떠올렸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전쟁에도 이 말이 적용되고, 이유도 대체로 같다. 베이루트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전문가 예지드 싸이그(Yezid Sayigh)는 내게 말했다. “수십만, 수백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강제추방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완전한 식민지화의 주요 걸림돌,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여전히 거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극복할 수 없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미 최종 해결책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최종 해결책은 실행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히틀러가 해낸 방식으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 때보다 우리는 그 지경에 근접해 있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새롭고 더 가혹한 사회질서의 지휘자(gauleiter)로 떠오르고 있다.” 싸이그가 보기에 “우파 및 극우파가 도처에서 부상하고 있는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 인종차별, 그리고 폭력에 대한 의존이라는 자신들의 방식을 추종하는 이들이 서방과 라틴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점점 늘고 있음을 발견했으며, 따라서 비판을 모면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자유주의 ‘중도파’로부터 심각한 반대에 부딪히는 것도 아닌데, 이들 자유주의 세력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만 아니라 경찰의 군대화,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 권력의 우위성 점유와 관련해서도 반체제 인사 및 시민의 항의를 엄격히 제한하는 법적 틀” 강화를 진작부터 주도해왔다고 그는 첨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농부들을 백인에 대한 ‘인종학살’을 피해서 온 ‘난민’으로 환영하겠다고 할 때(심지어 실제 집단학살 전쟁에 자금지원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혹은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가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LA 시위에 등장한 ‘온갖 외국 국기’를 주목하며 이 도시를 ‘점령당한 지역’이라고 부를 때, 그들의 부조리한 인종주의와 뒤틀린 언어를 풍자하기는 쉽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나 극우파만이 ‘반유대주의’라는 단어를 남용해온 것은 아니다. 마크 매조워(Mark Mazower)가 곧 출간될 학술서 『반유대주의에 관하여』(On Antisemitism)에서 쓰고 있듯이, 10월 7일 이후 “아무도 반유대주의자로 불리고 싶어하지 않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반유대주의자들이 도처에 있고 맨해튼은 수정의 밤(Kristallnacht, 1938년 11월 독일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광범위한 폭력) 전야의 베를린 같다.” 지난 몇년간 학문과 지식의 자유를 공격하는 데 있어, 또 억압·체포·추방의 행위에 있어 이토록 큰 기여를 한 단어는 없었다. 로쓰 발칸(Ross Barkan)은 저서 『파시즘인가, 집단학살인가』(Fascism or Genocide, Verso 2025)에서 10월 7일 이후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작금의 상황에서 놀라운 것은 2020년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항의시위 이래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 하는 것이다.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학계·예술계·다국적 금융계의 유력 기관들이 열혈 청년활동가들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던 것에서 그들을 침묵시키고 짓밟으려 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이런 차이를 불러일으킨 것은 명백히 이들 활동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다.”
20세기 초는 물론 20세기 중반을 넘어서까지도,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싸움은 좌파 자유주의 진영의 대의로서 민권운동을 포함해 종족민족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서는 여타의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투쟁은, 특히 미국에서 그렇지만 서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종족민족주의를 지지하고 민주주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우파 세력에 병합되는 길로 깊숙이 들어섰다. 이스라엘의 가장 열렬한 찬미자가 트럼프와 헝가리 시민동맹(Fidesz), 프랑스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이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한때 반유대주의(그리고 반공주의)가 달성하려 했던 목적에 지금은 ‘반(反)-반유대주의’(Anti-antisemitism)가 이바지하고 있다. 트럼프와 그의 협력자들이 실제 반유대주의자들과 긴밀히 결합하고자 하는 한편으로,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의 조너선 그린블랫(Jonathan Greenblatt) 같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히틀러식 경례를 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고 마무드 칼릴(Mahmoud Khalil)과 모쎈 마다위(Mohsen Mahdawi)를 비롯한 학생활동가들을 추방하려는 시도를 응원한다. 전통적으로 친이스라엘 성향인 유대인 단체들은 반유대주의라는 거짓 혐의에 근거해 출생지가 외국인 반체제 인사들의 국적을 박탈한 뒤 추방하려는 운동의 매우 중요한 보조자가 되어왔다.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럽의 민주주의체제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의 유대인 문제만큼이나 미국 정치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다. 유대인 문제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른 여러 문제들과 뒤얽혀 있다. 반인종주의, 지적 자유, 시민권, 결사의 자유, 세계시민주의, 사회정의, 우익 전체주의 및 신자유주의 반대가 그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팔레스타인의 영향력 증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실례는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거둔 승리이다. 33세의 무슬림 진보주의자인 맘다니는 뉴욕이 얼마나 노동자들로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는지를 강조하면서 뛰어난 선거운동을 펼쳤다. 유대인 진보주의자인 브래드 랜더(Brad Lander)와의 상호지지를 통해, 그는 최종 결과에서 56퍼센트를 득표하며 성추행 혐의에 따른 불명예에도 뉴욕 기득권세력 다수의 지지를 받던 전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를 압도했다.
뉴욕의 민주당 조직, 그리고 설득력도 없이 그럴듯한 보도로 위장한 채 맘다니에 관한 공격성 기사를 실어온 『뉴욕타임즈』는 그의 민주사회주의적 신념 때문에 그를 싫어하지만, 그들의 공격에서 초점은 맘다니의 이스라엘 점령 반대와 가자전쟁 비판이었다. 선거운동 마지막 몇주간 맘다니는 반유대주의자, 지하드주의자, 9·11테러 지지자로 비난받았는데, 이는 그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로서 존재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는 이스라엘이 ‘유대인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가’로서 존재할 권리는 지지한다고 말했다—이는 보수적 시온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유대인들을 바다로 던져 넣을 것을 요구하는 것과 맞먹는 것이다). 테네시주 공화당 하원의원 앤디 오글스(Andy Ogles)는 엑스(X)에 “‘조란 리틀 무함마드 맘다니’는 위대한 도시 뉴욕을 파괴할 반유대주의자·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이며 “추방되어야 한다”고 썼다. 소셜미디어에 맘다니에 대한 경멸을 쏟아내고 있는 트럼프는 그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추방 대상 학생들의 명단을 제공해왔던 카하네주의(Kahanism, 신시온주의의 한 분파·극우파) 집단 베타르(Betar)는 유대인들에게 당장 그 도시에서 대피할 것을 촉구했다. 맘다니가 공격받고 있을 때, 소속정당의 ‘자유주의’ 중도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일부 인사는 공화당 의원들과 같은 독설을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인과 무슬림 좌파 양쪽을 아우르는 팀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택 2순위였고, 이는 유대인 뉴욕시민 상당수에게 맘다니의 반시온주의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고무적인 표시였다.
사실, 피터 바이나트(Peter Beinart)가 최근에 썼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당 수뇌부의 소심함과 진정성 결여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그건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오직 3분의 1만이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당 지도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거의 절반에 이르는 민주당 유권자들은 군사적 지원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역학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데, 활발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이 노동당 정부에 갱신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반체제와 항의시위에 대한 억압이 점점 더 거세져왔다. 팔레스타인행동(Palestine Action)은 테러단체로 분류되었고, 듀오 밥 빌런(Bob Vylan)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선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한편 정부는 가자지구 폭격에 사용하는 F35기의 예비 부속품을 이스라엘에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10월 7일의 학살은 이스라엘이 어떤 대응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계속해서 예속시킬 수 있으리라는—끝없는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에 놓인—환상이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평화 프로세스의 실패를 다룬 심층 연구서 『내일은 어제』(Tomorrow Is Yesterday, Farrar, Straus and Giroux 2025)에서 맬리와 후쎄인 아가(Hussein Agha)—각각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전직 고문—는 가자전쟁을 ‘과거의 무시무시한 보복’으로 묘사한다. “과거의 귀환은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품었던 희망에 대한 모진 힐책”이었다고. 그러나 “쟁점은 사태가 왜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는지가 아니다. 오히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태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했느냐이다.” 1967년 국경문제라는 겉보기에 더 ‘다루기 쉬운’ 문제를 선호하여, 1948년 1차 이스라엘-아랍 전쟁의 상처는 건드리지 않은 채, “외교관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주문(呪文)을 외도록 공을 들이고 그 주문을 외느냐 외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을 환영하거나 내쫓았다.” 평화 프로세스의 미덕과 1967년 국경에 입각한 두 국가 해법의 필연성은 1989년 이후의 ‘자유민주주의’의 미덕 및 필연성과 거의 마찬가지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와 같은 ‘역사의 종말’ 교리에 대안이란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 주문 외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도만 아니라 우익 정착민과 종교적 유대인도—다른 미래, 즉 더 ‘어제’처럼 보이는 미래를 준비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하마스의 공격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영국 위임통치령 시절의 공동체간 폭력으로의 퇴행—이었다. 그러나 벤야민(W. Benjamin)이 썼듯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현재의 놀라움에서 (…) 앎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그 놀라움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관점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면.” 역사를 보는 자신들의 관점을 문제 삼기보다 대부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더 낡고 숙명론적인 견해에 기대며 하마스의 공격을 포그롬(pogroms), 즉 그들의 조상 다수가 유럽에서 겪었던 박해의 되풀이로 해석했다. 그다음 단계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하는 일은 쉽사리 이루어졌는데,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 주입된 반아랍 인종주의의 부산물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가자지구 주민을 먹이면 그들은 결국 당신을 먹는다.” 이스라엘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길 코파츠(Gil Kopatz)가 올린 글이다. “집단학살이 아니다, 해충 박멸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80퍼센트 이상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현재 가자지구 주민의 추방을 지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연민은 과격파인 급진주의 활동가들을 제외하고는 금기사항이다.
놀라운, 적어도 두드러진 현상은 가자전쟁이 서구 정책결정자들에게 별다른 반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두 국가 해법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도록 이스라엘 지도자를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맬리와 아가는 “가자전쟁은 명료함과 정직성과 내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만사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때였기 때문이다”라고 적는다. 그런데 오히려 “10월 7일 이후의 세계는 거짓말 위에 세워졌고” 특히 미국의 거짓말은 “가장 불필요했기 때문에 가장 놀라웠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거짓말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에 보내고 있는 바로 그 무기들로부터 가자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중동 곳곳에서 바이든—혹은 그들이 보기에, 바이든·오바마—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생각만 해도 절망감보다 선뜻 안도감이 일었다. (…) 아랍의 지도자들이 (…) 분개하는 것은 미국의 도덕적 자만과 무분별한 공감의 표현과 용기가 결여된 신념이다. 당신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요량이면, 염려하는 체나 하지 않는 점잖음을 갖추라. 최소한 트럼프와는, 그들이 무엇을 얻을지 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내일은 어제』)
아랍 지도자들에게는 트럼프가 한 일 중 일부 마음에 드는 것도 있다. 트럼프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풀었고, 하마스와 직접 협상했으며, 심지어 이란에 대한 일부 제재를 철회할 방안까지 잠깐 고려했다. 그가 이스라엘과 이란을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 싸운 나머지 무슨 빌어먹을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두 나라로 묘사했을 때, 그는 투박하게 진실을 말한 것이고 이 지역의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트럼프가 종래의 외교정책을 담당한 기득권층에 빚진 바 없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그의 본능이 역대 민주당 및 공화당 행정부의 사고에 영향을 미쳤던 거미줄로 흐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맬리는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낡아빠진 신념을 혁신적인 사고가 아닌 개인적이고 변덕스러운 본능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고, 또 그와 함께 세력 균형도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점령,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청소, 그리고 지금은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정권이 이스라엘의 도덕적 기반을 부식시켰고, 저항세력은 수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신세대 진보주의 활동가와 정치가들에게 현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거나 이스라엘의 지배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무 때고 곧 출현하리라고 상상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전체주의와 종족민족주의가 부상하고 법치주의는 거의 가루가 되어 스러진 세계에서, 네타냐후가 경영하는 무자비하고 냉혹한 국가는 예외적 사례라기보다는 선도적 사례로 보일 것이다.
번역: 이종임(李鍾姙) /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