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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내 삶을 돌본 것 ③

할머니의 바다, 엄마의 이불

 

 

고수리 高秀利

작가. 산문집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등어』 『선명한 사랑』, 장편소설 『까멜리아 싸롱』 등이 있음.

daljasee@naver.com

 

 

1.

 

이야기는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때 흥했던 항구에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모래와 자갈이 파도와 만나서 쌓인 모래톱에 ‘건넛불’, 배를 정박하던 나루가 있던 골짜기에 ‘나릿골’이라는 마을이 생겼다. 호기롭게 배를 몰던 선장과 억척스레 물질하던 해녀는 나릿골과 건넛불을 오가다가 만났다. 선장과 해녀는 건넛불 언덕에 슬레이트 지붕을 덮고서 가족을 일구었다.

건넛불집에서 태어난 넷째딸은, 차분하고 끈기있으며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딸 중 넷째딸이라서, 낮에는 공순이로 돈 벌고 밤엔 고학생으로 공부해 실업고까지 마쳤어도 선생님은 되지 못했다. 대신 나릿골에 살던 선생님인 남자와 결혼했다. 남자는 주정뱅이였다. 술만 마시면 세간을 부수고 손찌검을 했다.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 산간벽지를 떠돌아야 했던 결혼생활은 몹시도 불행했다. 하나 넷째딸은 그 불행조차도 차분하고 끈기있게 참고 견디며 남매를 낳아 키웠다.

시간이 흘렀다. 한때 흥했던 항구에는 숱한 사람과 기회와 행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육남매가 북적이던 건넛불집에는 해녀와 넷째딸만 남았다. 그 넷째딸의 딸, 모래톱에 끈질기게 남아 있던 모래 알갱이 같은 여자애가 나였다.

나는 엄마와 이모들이 다녔던 중학교에 갔다. 건넛불집 다섯 딸은 꽁꽁 언 오징어를 빳빳하게 펴느라 부르트고 비린내 밴 손으로 그래도 어떻게든 연필을 쥐고파서 울면서 고갯길을 넘었다고 했다. 학교는 언덕배기에 덩그러니 있어서 창가 자리에 앉아 있자면 하늘밖에 안 보였다. 궂은날 구름이라도 구물구물 몰려올라치면 하늘은 꼭 할머니가 물질하던 바다 같았다. 운동장에 습한 바람이 불고 젖은 모래 냄새가 났다.

그런 날,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있자면, 처얼썩 파도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까끌한 모래 같은 미안함이 밀려와 켜켜이 쌓여갔다. 고단한 물질로 가족을 먹여 살린 할머니의 삶이, 공부를 포기하고 불행하게 나를 키운 엄마의 삶이, 몹시도 짜고 따갑게 느껴져서 목울대가 아렸다. 바닷마을 어딜 가나 느껴지는 미미한 바다의 기운처럼 유구하고 진득한 가족의 맥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무언갈 써내려갔다.

 

 

2.

 

할머니는 해녀였다. 제주에서 망망대해를 건너 피난 온 할머니는 평생을 물질하며 살았다. 날마다 해가 떠오르면 할머니는 찬 바다로 들어갔다. 호오이 호오이. 엄마는 할머니의 숨비소리를 기다리며 자랐다.

“숨비소리만큼이나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건, 엄마가 저녁 뭍으로 올라올 때야. 엄마가 온종일 바다를 들락거리면서 망사리를 가득 채워다가 육지로 올라온단 말이야. 홍시 같은 해가 바다에 저무는데 멀리서 엄마가 파도에 부딪치면서 걸어나와. 숨이 꼴딱 넘어갈 사람처럼 허정거리면서 걸어오는 거야. 근데 해가 지니까 바닷물이 얼마나 차겠니. 그나마 온기라도 남은 바위에 털썩 쓰러져선 담뱃불부터 붙이는 거야. 사람이 너무 힘들고 추우니까 웅크린 채로 담배부터 태워. 오들오들 떠는 몸이 너무 조그마해서 어린애 같은데, 담배 태우는 걸 보면은 세상 다 산 노파처럼 늙어 보이고. 난 그게 너무 슬펐어. 저무는 바다는 이래 예쁜데, 거기 웅크려 떨면서 담밸 태우는 울 엄마가 너무 슬펐어. 담밸 다 태운 엄마가 카악 퉤, 짠물을 뱉어내고선 ‘명아, 가자’ 망사리를 질질 끌면서 가. 집에 가는 길은 또 어찌나 굽이굽이 언덕길인지. 바다도 짠내도 싫고 바람도 언덕도 싫고. 그때는 이 삶이 너무 싫었어. 울 엄마 힘들게 하는 것들일랑 전부 다 싫었어. 네 할머니가 그걸 예순다섯살까지 매일 했어. 할아버지가 오래 아팠잖니. 혼자서 물질로 남편 간병에 육남매를 먹여 살렸지. 그게 가당키나 하니. 엄마는 제 몸 파도에 내던지며 우릴 살려낸 거야. 모르는 사람들이야 바다가 예쁘다고만 하지. 엄마의 바다는 사납고 춥고 깊고 무섭고 외로워. 그런데도 엄마는 평생을 강인했어.”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가 참은 숨을 내뱉으며 망사리로 끌어올린 것들은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이자 쌀이자 돈이자 옷, 연탄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품었을 땐 태몽이 되었다. 호오이 호오이. 꿈에서도 숨비소리가 들린 날, 할머니가 던져준 탐스러운 전복을 엄마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요망진 아이’라고 했다. 제주말로 영리하고 야무진데 어쩔 땐 너무 조숙해서 애답잖은 애. 날 때부터 눈이 뭘 다 아는 애 같았다고. 어지간히 요망졌던 나는 지 에미 등짝에 따개비처럼 붙어선 잠시라도 떨어질라치면 애앵애앵 울었단다. 어쩌다 엄마가 떼놓고 가면 쪼까난 게 먹지도 자지도 않고 종일 울어댔다고. 할머니는 그런 내가 징하기에 장하다고 했다. 지 에미 품에선 세상 순하기 그지없는데 떼놓기만 하면 옹골차게 우는 것이, 꼭 지 에미를 지키려는 거 같아서. 요망진 얼라가 잘도 아꼬와라(예뻐라). 할머니는 애앵애앵 우는 나를 부라질하며 얼렀다.

한데 얘길 들어보면 우리 엄마도 유난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금이야 옥이야 지 새끼만 어찌나 물고 빨던지. 나를 포대기로 묶어두고 이불로 둘둘 말고 아무도 못 건드리게 꽁꽁 숨겨두었단다. 엄마야. 언니야. 나 이불 좀 주라. 아빠의 주정과 난동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도 엄마는 어디서든 이불부터 찾았다. 장롱에서 이불들 죄 꺼내와 몇겹이나 깔고 쌓고 둥그렇게 말아서 가장 옴폭하고 푹신한 자리에 나를 눕혀두었다. 요새처럼 둥지처럼 이불집을 지어다가 날 눕혀두고는, 보고 또 보기만 했다고.

깜장콩 같은 내 눈만 쳐다봤을 엄마. 조개마냥 불뚝 입을 다물어버릴 땐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는 아이. 엉가이 고집스러워라. 그런 게 얼굴이랑 눈동자처럼 똑 닮았던 요망진 엄마와 나. 우리는 맹목적으로 서로를 지켰다. 뭍으로 올라온 할머니가 태우던 담배처럼, 엄마와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서로를 부여잡고 울음을 삼켰다.

하나 그 속을 할머니가 모를 리가. 모녀가 쌍으로 유난이라며 쯔쯔 혀를 차면서도, 내 새끼들 가여운 거 불쌍한 거 등을 턱턱 때리면서도, 할머니는 때마다 밥상을 차려주었다. 명아, 내 딸아. 글두 살다보면 살아진다. 불행한 와중에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둘러앉아 우리는 웃고 떠들고 힘을 냈다. 할머니가 차디찬 물속에서 건져올린 짭조름한 것들, 짠맛과 비린내와 살냄새가 배어 있는 밥을 먹으며 나는 피가 돌고 살이 찌고 키가 컸다. 할머니는 나를 먹여 살렸다. 엄마는 나를 안아 살렸다. 나의 엄마들은 묵묵하고 억척스럽게 나를 살려냈다.

 

 

3.

 

수리야. 이불이 좋아야 한단다.

사람이 고되게 살아도 잘 자리는 편안해야 해. 다리 뻗고 누울 자리 한칸, 솜이불 한채만 있어도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단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어릴 적 엄마랑 읍내에 나갈 때면 들르던 이불집이 있었다. 터미널 옆에 붙어 있던 조그만 이불집.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서 “언니!” 부를 때 엄마는 화색이 돌았다. “왔나! 들와라.” 반색하며 맞아주던 이불집 ‘언니’도. 이불들이 구름처럼 쌓여 있는 환한 이불집에서 엄마는 새댁처럼 어려 보였다.

어른들이 수다 떠는 사이에 나는 이불들을 구경했다. 이불과 이불 사이 포개어진 틈에 손바닥을 넣으면 부드럽고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면과 솜과 면, 겹겹의 단순한 결합에 불과할 텐데 이불에는 힘이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손을 두고 있자면 이내 따뜻해지겠지. 안심이 되었다. 여기는 안전한 곳이구나 싶어서.

구름장처럼 첩첩이 쌓인 이불 뒤편에 방 하나가 숨어 있었다. 비밀스럽게 닫혀 있던 쪽방 문은 우리에게만 열렸다. “들와서 밥 먹고 가.” 이불집 언니가 방문을 열면, 텔레비전 잔빛과 음식 냄새, 그리고 옹알거리는 낯선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방에는 세상에 나만 아는 언니가 살고 있었다. 언니야, 안녕.

우리 넷은 작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밥을 먹었다. 토란조림, 메추리알장조림, 콩자반 같은 집 반찬을 오물오물. “언니는 참 동그란 건 뭐든 맛나게 잘하데.” 엄마가 웃었다. 이불집 언니가 오래 뭉근히 졸여서 만든 동그란 것들을 먹고서 우리는 막차를 탔다. 배는 부르고 속은 따셔서 엄마랑 꾸벅꾸벅 졸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 훗날에야 엄마에게 들었다.

“언니랑은 인연이 귀하지. 처음엔 그냥 이불이나 보려고 들어갔어. 좀 보기만 할게요. 그러니까 주인이 그러는 거야. 이불집에 이불 보러 오지 뭘요. 그저 편하게 봐요,라고. 언니뻘 같은데 사람이 되게 단정하고 곰살맞아. 거기 이불이 얼마나 많아. 근데도 가게가 먼지 한톨 없이 늘상 말끔하잖아. 주인 성정이 참 부지런하고 선한 거거든. 시장에 갈 때마다 이불집에 들렀다가 어느샌가 언니 동생 하게 됐어. 근데 이 언니도 사연이 있더라고. 애가 아프대. 가게 쪽방에다가 종일 애를 눕혀두고 이불 장사를 하는 거야. 혼자서 아픈 애 키우며 장사하느라, 그 언닌 이불집 밖으로는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대. 그러니까 내가 찾아가야지. 나는 언니가 외로워 보였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있겠냐마는 그땐 엄마도 너무 외로웠거든. 네 아빠가 밤마다 난동을 피우니까 동네에서도 창피해서 마음 둘 사람 하나 없는 거야. 구태여 언니네 이불집 찾아가는 게 좋았어. 사는 얘기 하다가 솔짝솔짝 울다가 맛있는 거 나눠 먹고, 그냥 그런 게. 언니가 한번도 날 그냥 보낸 적이 없어. 뭐라도 손수 지어다가 밥을 먹여서 보냈지. 쪽방에 누워 있던 애 기억나지? 언니네 딸이 너보단 두어살 많았는데 덩치가 컸잖아. 사람들이랑 대화가 안 되고 방에서 종일 텔레비전이랑만 지냈어. 그 방에서 언니가 차려준 밥상을 다 같이 먹었잖아. 엄마가 너한테 고마운 게, 그때 네가 일곱살이었나, 그래도 어렸거든. 근데도 언니 언니 하면서 그애한테 말을 걸고, 밥도 싹싹 비우고는 같이 편하게 텔레비전도 보고 그러더라. 그 언니는 아직도 딸 보면서 이불집 한단다. 이불집에 갈 때마다 나는 거기다 마음을 두고 왔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민이랑 애정 같은 게 없다면, 세상은 너무도 외로울 거야.”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던 엄마를 기억한다. 어린 나는 그런 때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엄마가 딴 세상에 가 있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 엄마가 날 두고 가버릴까봐 왈칵 무서워질 때. 그런 모진 시기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이불집을 찾아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민이랑 애정 같은 게 없다면, 세상은 너무도 외로울 거야. 그래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끼리 기댔다. 서로를 가여워하면서, 서로를 애틋해하면서. 이불집 쪽방에서 따뜻한 밥을 나눠 먹던 기억을 떠올리면 두툼한 솜이불을 폭닥 끌어 덮은 기분이 든다. 세상에 아무도 모르는 방으로 숨어든 우리는, 이불을 나눠 덮고서 한숨 자고 일어난 것 같은 마음으로 힘을 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힘들게 견디지 않아도 한결 덤덤하게 나아졌다. 거기 두고 온 마음이 우리를 껴안아주었으니까.

 

 

4.

 

엄마, 모란 알아?

알지. 큼지막하고 좀 촌스럽게 생긴 꽃.

난 모란이 촌스러워서 좋더라. 할머니 꽃이불처럼 생겼잖아.

맞아. 할머니 융단이불에 그려진 꽃처럼 생겼지. 건넛불 올라가던 언덕에도 모란이 많았는데. 꽃분홍색에 꽃술이 샛노래가지고 되게 촌스럽잖아. 향도 분 냄새처럼 진하고. 근데 그런 게 우리 살던 바다랑은 잘 어울려.

여기서는 엄마, 애들 학교 담벼락에 이맘때만 잠깐 모란이 피더라. 근데 그거 나만 알아봐. 이제는 나 꽃이 예뻐 보이데. 모란꽃 볼 때마다 이상하게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모란꽃 내음이 분분했다. 생각난다. 커다란 꽃이 그려진 융단이불을 깔고서 화투점을 쳐보던 할머니. 아고게, 바당에 물이 개락이다(바다에 파도가 거칠다). 에헤이. 궂은 점괘에도 흥 콧방귀를 뀌고선 고쟁이를 툴툴 털고 일어나던 할머니. “우리 딸, 언제 이리 나이 들어버렸나.”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중얼거렸다.

엄마! 그사이 교문에서 달려온 아이들이 품에 안겼다. 아이들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어찌나 열심히 뛰어다닌 건지 머리통이 뜨끈뜨끈했다. 어린 나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엄마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얼라들, 저기 꽃 봐라.” 촌스러운 모란꽃을 애들이랑 올려다보았다.

이제 두 손자의 할머니가 된 엄마는 고향에 혼자 산다. 방 한구석에 이불들을 애지중지 쌓아두고서. 거기에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할머니의 이불도 있다. “노랑 거 분홍 거 할머니 이불들 촌스럽지만서도 버릴 수가 없잖니. 엄마 거를 차마 못 버리겠는 그런 마음이 있는 거야.” 엄마는 할머니가 쓰던 이불이 너무 아까워서 기우고 덧대고 꿰매고 또 꿰매서 고이 개어두었다. 구름장처럼 첩첩이 쌓인 엄마의 이불들. 가끔 이불과 이불 사이 포개어진 틈에 손바닥을 넣어본다. 이대로 가만히 손을 두고 있으면 이내 따뜻해질 거란 걸 안다.

이불을 덮을 때마다 나를 키운 엄마들을 생각한다. 건넛불 언덕배기의 빨간 지붕집. 복작거리던 추억과 자식들이 빠져나간 헛헛한 방에서, 할머니 엄마 나 셋이서 요를 깔고 나란히 누워 자던 밤이 있었다. 솜이불을 폭닥 끌어 덮으면 근심도 걱정도 깜빡 까먹어버리고, 우리는 아기처럼 잠이 들었지.

시간은 잘도 흐른다. 할머니는 영영 바다로 떠나버리고, 건넛불 빨간 지붕집에는 불이 꺼졌다. 항구와 마을은 소라 껍데기처럼 텅 비었고 엄마만 거기에 남아 있다. 엄마는 추억이 눈에 선해 잘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 다정이 너무 넘쳐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추억을 돌아보며 울고 또 운다. ‘엄마 거’를 차마 못 버리겠는 마음이 뭔지, 나도 이제는 알아서 자꾸만 엄마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눈을 감으면 아스팔트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들려온다. 다 커서도 뒤척이는 밤에는 켜켜이 쌓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듬는다. 나도 엄마가 되어서야 헤아리게 된 마음들, 어찌 그리들 살아냈을까 싶다. 처얼썩 파도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은 마음은 좀처럼 잔잔해지지 않는다. 엄마. 사는 게 가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마음일 때가 있어.

그런 깜깜한 밤에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자장자장 자장자장 엄마의 자장가가 나를 재운다. 애기야. 딸아. 날마다 파도가 밀려와도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잖니. 날마다 너를 사랑하고야 말았잖니. 그러니 괜찮다. 다 괜찮다. 살다보면 살아지더라. 파도도 어둠도 우리는 나란히 같이 덮자. 솜이불처럼 폭닥 덮어버리고선 자장자장 자장자장.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도 자라. 애기야. 내 딸아. 바다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노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