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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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황정은 『작은 일기』, 창비 2025

우리의 겨울과 봄에 대한 작지 않은 이야기

 

 

임경빈 林京彬

정치평론가,유튜브채널‘사장남천동’진행자

me4scope@gmail.com

 

 

 

“처단?”

12월 3일 밤 11시 30분경, 나는 강변북로 위에 있었다. 나를 포함한 ‘사장남천동’ 유튜브 채널 운영진 세명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위임을 받은 계엄사령관 박안수가 ‘영장 없이 체포’와 ‘처단’을 언급한 대상 가운데 ‘언론’계 종사자가 바로 우리였다. 계엄사령부의 제1호 포고령을 듣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실감이 났다. 그렇구나, 비상계엄.

여의도 KBS 별관 뒤쪽에 차를 세워놓고 국회로 향하는데, 두두두두두 하는 굉음을 뿜으며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국회 정문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비상계엄 철폐하라”라는, 2024년에 듣게 될 거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현실이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밤은, 정말로 길었다.

『작은 일기』의 저자 황정은도 그날 여의도로 갔다. 그날 이후의 일들을 일기로 썼고, 다시 책으로 엮어냈다. 일기는 본래 가장 내밀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가장 현재적인 기록이다. 그래서 일기장은 법정에서 종종 강력한 증거로 작동한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현재’가 생생하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과거가 현재를 증언하는 힘이 일기에는 있다.

시사방송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인 나는 늘 타인의 현재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그걸 다시 되새김질해 파는 일을 해왔다. 어찌 보면 남의 일기를 20년 동안 써주며 살았던 셈이다. 그러다가 만난 황정은의 일기 속에는 내란사태 이후 그 겨울과 봄의 내가 있었다. ‘남’의 일기로 ‘나’를 만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의 총합이다. 기억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공동체를 규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일기는 개인사이지만, 다른 시민들과 공유하면 사회사가 된다. 『작은 일기』는 ‘우리’가 6개월간 공유한 깊은 모욕감에 대한 이야기다.

“감히.” 황정은은 그 시기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입속에 이 말이 맴돌았다고 고백한다.(40면) 저자처럼 쿠데타 세력을 향해 ‘감히’ 하고 나직한 분노에 휩싸였던 사람들은 그 감정의 정체를 안다. 멀리 여의도에 있던, YTN 같은 뉴스 채널에서 재미없게 나열되던 정치가 갑자기 화면 밖으로 걸어나와 내 일상을 짓밟을 수 있다는 공포. 내란성 우울증과 불면증은 한국인의 유행병이 됐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 있다. 생업이 따로 있는 ‘우리들’은 그 반란의 계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다들 어떻게 저녁마다,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오는 걸까. ‘이 사람들은 일이 없나?’라고, 일이 없는 사람처럼 광장에 나가며 서로들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다들 그냥 힘들게 광장에 나오는 거였다, 나처럼.

저자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기』를 읽는 동안 윤석열의 파면 여부만큼이나 저자가 소설 원고를 끝낼 수 있을지가 생활인인 독자의 관심사가 된다. 저 단편 원고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몇시간 뒤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른 채 그날 “단편을 이어 썼”(9면)던 저자가 계엄사태 이후로 “날이 밝으면 또 나가야”(17면) 하니 원고 파일을 열었다가 세줄을 쓰는 데 그치거나 “오늘은 정말 단편 원고에 집중해야”(88면) 한다고 되뇔 때마다, 업무를 남겨놓고 광장으로 향했던 ‘야근러’들이 겹쳐진다. 동병상련이다. 윤석열이 체포되고 저자가 단편 원고를 끝냈을 때 나도 잠시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단편 원고를 끝내고 나서는 다시 (아마도 이 책의 초안이었을) 일기 원고, 그리고 장편 원고가 저자를 기다린다. 그렇지, 파면은 파면이고 생업은 생업이고. 우리는 퇴근 후에 집회하러 가는 한국인, ‘집회를 왜 저녁에 하냐’며 이딸리아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한다는 한국인이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을 ‘일하며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파주에 사는 황정은은 경의선을 타고 여의도 집회에 갔고, 심란한 마음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오리를 구경했다. 파주 운정에 사는 나랑 코스가 같았다. 그도 소리천변을 거닐며 ‘전봉준투쟁단’을 응원했구나. 나도 광장에서 그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에 안도했었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이,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싸움이 이어져 있었음을 느낀다.

그래서 너무나 ‘공적인’ 일기의 페이지를 넘기며 종종 울었다. 울면서 위로를 받았다. 나의 불안이 그의 불안이었고, 나의 분노와 체념이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기사를 보며 허탈해했고, 종종 안심했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 다 아는 척, 불안하지 않은 척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던 정치평론가가 아니라 또다른 일기의 주인공으로서의 안심이었다.

일기를 쓰지 않은 지 30년쯤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덮고 나서 현대인의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을 열었다. 방송작가 시절 습관 때문에 지금도 모든 통화는 자동녹음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여의도 국회로 가겠다고 결의하며 사장남천동 생방송을 끊고 난 직후 첫 통화다. 아이고야, 아내보다 방송사 PD랑 먼저 통화를 했다. 내일 방송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랬다. 그러다 오후 10시 56분.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있다. 음성녹음을 텍스트로 바꿔봤다. 요즘은 AI가 다 해준다.

“어…… 자기야, 바로 갈 거야?”

“어어, 국회 갔다 가야지.”

“바로? 알았어……”

“어어어, 걱정하지 말고.”

“어, 몸조심해.”

“알았어, 전화할게.”

“응.”

통화 시간 13초. 이렇게 짧았나? 아내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반면 내 목소리엔 방금 생방송 중에 계엄을 때려맞은 정치평론가로서의 기묘한 흥분이 묻어 있다. 한창 스태프들과 누구 차로 이동할지 정리하던 중이어서였는지 이 무신경한 남자는 아내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어쩌면 그 13초가 마지막일 수도 있었는데,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꽉 막히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2025년 4월 4일.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사건이므로 선고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을 들은 건 약속 때문에 여의도로 향하던 ‘그’ 강변북로 위였다. 운전대를 잡고 혼자서 펑펑 울었다. 그 순간 황정은도 자신의 파주 집 거실에서 헌재 앞 함성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하고 동시대를 산 덕분에 이걸 보았어, 영광입니다.”(166면)

강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도 보탰다.

“저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임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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