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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아네마리 몰 『돌봄의 논리』, 갈무리 2025
결국, 우린 모두 취약한 몸이다
김관욱 金官旭
덕성여대문화인류학과교수,의료인류학자,가정의학전문의
anthrodockim@duksung.ac.kr
아네마리 몰. 그녀는 독특하다. 학부 때 의학과 철학을 전공한 철학박사이며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몸 인류학’(anthropology of the body) 교수로 있다. 그는 스스로를 ‘경험철학자’라 일컫는데, 현장에서 길어온 증거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조함을 뜻한다. 『돌봄의 논리: 능동적인 환자와 선택권의 한계』(The Logic of Care, 2005, 김로라 옮김)도 네덜란드 중소도시의 한 대학병원 당뇨병 외래 클리닉에서 진행한 현장연구를 기반으로 한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인정하듯 고집스럽게 ‘독특한 철학자’의 길을 선택한다. ‘돌봄의 논리’라는 제목부터 그러하다. 평생 인슐린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1형 당뇨병 환자의 치료현장에서 그의 호기심은 발동한다. 목격되는 실천들의 일관된 경향을 찾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답을 알고자 했다. 행위자들의 생각 혹은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실천(언어·장르·스타일)을 관찰하고, 그 실천에 녹아 있는 논리를 파악했다. ‘어떻게’ ‘누가’에 관심을 두기보다(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왜’에 초점을 맞추어 현장에서 작동하는 일관된 원리를 포착하고 이끌어낸 것이니, 그는 짜여진 질문지로 묻는 질적연구자가 아니라 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참여관찰을 하는 인류학자이자 경험철학자인 것이다.
몰은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호기심이 출발했다고 고백한다. 1999년 36세에 몰이 임신을 했을 때, 다운증후군 등 태아 산전검사가 필요해 양수 검사를 받았다. 그는 합병증(유산 등)에 대한 불안감을 간호사에게 말했고(“잘됐으면 좋겠어요”) 간호사는 “글쎄요, 이건 당신 자신의 선택입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답변했다(18면, 강조는 인용자). 그가 원했던 답변 “정말 잘되기를 바라요”를 듣지 못한 그때 이 책의 집필은 시작됐다. 몰이 들었던 그 표현, ‘선택’이 바로 그가 반복적으로 목격한 의료현장에서의 주된 논리다. 그는 이것을 ‘선택의 논리’(logic of choice)라 부른다. 하지만 현장의 실천에서 그가 실제로 목격한 또다른 원리 혹은 진정 필요한 원리는 ‘돌봄의 논리’였다. 가령 간호사는 당뇨 환자에게 인슐린 주사법을 손을 맞잡고 꼼꼼히 교육하며, 의사는 혈당 측정을 실천하지 못한 환자에게 선택의 책임을 물며 방치하기보다 “생각보다 치료가 어려워서 실망하셨지요?”(148면)라며 돌보는 것이다. 선택의 논리가 ‘홀로 선택하는’ 고객의 논리라면, 돌봄의 논리는 ‘함께 통치하는’ 시민의 논리다.
몰은 의료를 둘러싼 현실이 ‘선택의 논리’를 강요하는 ‘돌봄의 현장’임을 통찰한다. 그 선택의 논리는 근대 서구의 계몽주의적 합리성으로부터 출발한 ‘자율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 몰은 정치적·경제적 자율성 논리가 의료현실까지 확산 및 이동한 것으로 보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핵심은 현실에 선택의 논리 외에도 복수의 논리가 존재하고 이동한다는 것이며, 자신이 의료현장에서 목격한 돌봄의 논리야말로 역으로 시장경제 및 정치 등 다른분야로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의료현장에서의 돌봄‘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 다분히 정치철학적 시도로 읽힌다.
그렇지만 저자의 고집스럽고 독특한 설명이 책의 말미에서 허탈한 결말로 끝나기도 한다. 그가 철학자로서 ‘왜’를 추구한 점은 ‘어떻게’ ‘누가’에 대한 결핍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몰은 돌봄의 논리에서는 도덕적 결론을 내린 후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가 도덕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돌봄은 집단적 실천이고 무엇보다 끈기와 적응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실천의 ‘사기(士氣)’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 책의 주장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그 끈기와 적응력, 그리고 이를 위한 사기 진작은 ‘어떻게’ ‘누가’ 한단 말인가. 그는 이를 ‘공동작업’이라는 표현으로 포괄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그 공동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돌봄의 핵심이지 않을까.
덧붙여 이 책의 한국어판은 몇가지 아쉬움을 남기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시공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원서가 출간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다 네덜란드의 현실에는 한국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특히 당시 네덜란드는 양질의 건강보험 덕에 ‘돈’의 문제가 돌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자 역시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2025년 한국이 처한 너무나 다른 ‘가능성의 조건’ 속에서 한국의 논리를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또다른 아쉬움은 책의 번역이 원서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인으로서 영어로 집필된 원서는 단어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레고블록과도 같아서 단어의 선택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다. 몰은 특히 ‘몸 인류학’ 교수로서 ‘몸’을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몰에게 ‘돌보기’(caring)란 ‘유한한 신체’(mortal body)를 짊어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실천이다. 즉 “돌보기란 이미 그렇게 보이는 유한한 신체에 맞추고, 존중하며, 기르고, 심지어 즐기는 문제이다.” 이렇듯 그의 논리는 바로 ‘(죽을 운명의) 유한한 신체’에 대한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이 책에서는 해당 문장이 “돌봄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를 조율하고, 존중하고, 영양을 공급하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문제인 것 같다”(50면)고 번역되면서(강조는 인용자)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유한한 신체를 가장 명료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현장이며, 이는 특히 완치 불가능한 1형 당뇨병 환자의 신체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는 “질병과 함께 사는 것을 기준으로”(97면) 삼는 이들의 삶의 태도를 ‘환자주의’(patientism)라 명명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환자일 운명을 벗어날 수 없고 모두가 환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읽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 논리다.
실제 정상이라는 ‘고정된’ 상태는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삶은, 생명현상은 ‘알로스타시스’(allostasis, 생체 적응)에 가깝다.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예측하며 최적의 상태(‘좋은 삶’)를 유지하는 것이다. 생명의 핵심은 반투과성 막과 같아서, 끝없이 나의 경계 밖 세상과 얽히고 상호작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삼투압만 해도 세포막의 지속적 조율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이 곧 몰이 말하는 돌봄의 논리의 실천이다. 세포막에서 각종 이온이 그 역할을 하듯, 인간은 언어를 포함한 각종 실천이 이를 수행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큰 생명의 도전은 환경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급변하는 정치와 경제 때문이다. 몰이 ‘왜’를 설명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떻게’ ‘누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한계가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강조했듯 우리에게 돌봄은 논리를 아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결국 실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는 친절하게도 우리의 몫을 남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