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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동녘 2025
악마화된 하마스의 진실을 들여다보다
구기 具紀延
서울대아시아연구소교수
kikiki9@snu.ac.kr
2024년 1월, 이스라엘을 향한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기습적으로 개시된 지 3개월이 흘렀을 무렵, 아랍에미리트의 한 전략연구소를 찾았다. 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행되고 있는 제노사이드를 언급하며 가자전쟁에 대한 아랍에미리트 연구원의 견해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체결한 아브라함협정(외교 정상화 협정, 이스라엘을 공식 국가로 인정함)을 거론하면서 당시의 그 ‘평화협정’들이 오늘날 가자전쟁의 비극을 예고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연구원은 내 질문을 우아하게 비켜갔다. 현재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아랍에미리트는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답변이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나는 냉혹한 현실을 재확인했다. 무슬림 형제애라는 것은 결국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며, 국제정치의 실상은 냉철한 국익추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아랍에미리트라는 신흥 강국이 선택한 길은 종교적 동질감보다는 경제적 실리였고,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최소한의 제스처로 봉합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하마스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앞선 사례에서 보이듯 하마스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아랍 국가 안에서도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하마스에 대한 평가는 ‘어떻든 무장폭력은 나쁘다’거나 ‘잔혹하게 민간인을 학살하는 조직’이라는 식의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헬레나 코번(Helena Cobban)과 라미 G. 쿠리(Rami G. Khouri)가 공저한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Understanding Hamas and Why That Matters, 2024, 이준태 옮김)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주축인 하마스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촉구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다섯번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의 과제는 단선적인 프레임을 넘어 독자가 하마스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하마스에 대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하마스가 타자의 시선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자결과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저항’운동으로서 지금까지 활동해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하마스를 둘러싼 서구의 담론이 얼마나 일면적이고 편향적인지를 치밀하게 분석하는데, 그러한 편향된 프레임으로는 하마스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동기,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회 내에서의 다층적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하마스는 “영원히 싸우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102면).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땅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분열되지 않고 “통합과 온전함을 유지한 유일한” 저항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104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젊은 지도자들이 계속 생겨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조직들과 달리 종교문제보다 저항의 기치를 더 굳건히 세웠기 때문이다(83, 103면). 또한 하마스는 “협상을 통해 타협과 휴전에 이른 오랜 이력”이 있으며,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평온한 시기를 이어오기도 했다(120면).
나는 이 책을 통해 하마스를 악마화하고 독재로 보는 담론 뒤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겪어온 신식민주의적 정권 교체의 논리가 깔려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외부 강대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강요된 정권 교체는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134면)이 이 책의 핵심 통찰 중 하나다. 이는 얼마 전 6월에 있었던 이란-이스라엘전쟁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네타냐후(B.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자유를 위해 내부에서 봉기하라며, 마치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의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처럼 호도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리고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서구가 중동의 현실과 각국의 정치적 상황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 책 전반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마스를 테러리즘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의 위험성이다. 2023년 10월 7일에 보인 하마스의 선제공격을 단선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마스의 오랜 저항정신과 팔레스타인이 수십년간 겪어온 피해와 죽음들을 덮어버리게 된다. 저자들은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이 겪어온 강제이주와 토지수탈, 봉쇄와 압박의 역사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마스의 행동을 맥락에서 분리하여 판단하는 것은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2025년 6월, ‘12일 전쟁’으로 불리게 된 이스라엘-이란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뒤이어 미국도 가담한 이 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단순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아니라 중동 전체의 지정학적 역학과 연결되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란 출신의 시아바시 사파리(Siavash Saffari) 서울대 교수가 국내의 한 강의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이란을 ‘적대화’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반미·반이스라엘 입장에 서 있으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을 지원하고 핵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은 세계질서 속 ‘위험한’ 국가로 취급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고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하는 과정에서 55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과 1,000대 이상의 폭발성 드론이 발사되었다. 이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중동 국가와 세력들이 서구의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악마화’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적대화가 어떻게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이 책은 하마스의 헌장, 팔레스타인자치의회 선거에 대한 보고서, 하마스가 미국의 테러단체 목록에 등재된 과정에 대한 설명 등을 부록으로 수록해 자료로서의 가치도 풍부하다. 특히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의 아픈 경험을 돌아볼 때, 팔레스타인 문제는 “식민주의를 경유해 아직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옮긴이의 글’ 329면)는 역자의 지적은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워낙 복잡한 사안들이 대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중동 이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에게는 이해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찬찬한 독서를 시도해봄직하다.
저자들이 거듭 강조했듯이 이 책은 하마스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려는 책이 아니다.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사안에 접근함으로써 제국주의·식민주의에 맞선 투쟁에 대한 국제적 이중잣대를 비판하고, 특정 단체나 집단을 쉽사리 악의 축으로 낙인찍는 국제적 언론 및 외교 관행에 대한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과학 도서다. 2025년 6월의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된 지금, 우리는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평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중동의 복잡한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넘어서는 균형적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는 단순히 하마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성찰하게 만드는 소중한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