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경위

 

2025년 6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김형수 안현미 이주혜 황정아를 제43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5년 5월 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각 부문에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시와 소설은 단행본, 평론은 발표 원고 기준). 추천위원(창비의 시·소설 기획위와 『창작과비평』 상임위)들과 심사위원이 선정한 총 7편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남현지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이상 시), 강보라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박선우 장편소설 『어둠 뚫기』,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이상 소설), 전기화 「미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최선교 「무신경이라는 전략」(이상 평론).

심사위원들은 7월 17일 모임에서 깊이 토론을 펼친 끝에 세대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지하며 세계와 맞서는 진솔한 태도가 돋보이는 한여진 시집(문학동네 2023),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 탁월한 착상과 개성적인 에너지를 보여준 성해나 소설집(창비 2025), 찬찬하고 섬세한 읽기 속에 대상 작가를 심층 탐구하는 미덕이 빼어난 전기화 평론(『문학동네』 2023년 겨울호)을 제43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김형수 시인·소설가

선별의 의무가 따르는 독서는 노동일 때가 많다. 나는 한동안 그런 긴장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의 난독증을 겪었다. 이번 여름에 만난 시와 소설들은 한때의 권태가 어쩌면 한국문단이 아니라 내가 겪는 낡음의 증상이었을지 모른다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지상이 천상으로 둔갑하지 않는 한 전선이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장애를 넘는 고독 속에서 숨 쉬는 까닭에 ‘그에 값할 외침’이 아니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탁월한 착상과 치열한 대결의식으로 독자가 작가의 영혼을 답사한 보람을 준다. 이는 아마도 세대와 언어를 초월해 상당한 공감대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가 경험치보다 학습 역량에 치우친다는 아쉬움도 얼마간 남았다. 문학은 모름지기 세계가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신성하다는 명제를 떠날 수 없다.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 오래 눈길이 머문 이유인데, 다만 강보라의 소설에서는 미학적 승화가 오히려 전선을 추상적이고 희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남현지 시집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흥분하지 않고도 자신의 일상에 가득 찬 21세기의 음악을 찾아서 보여준다는 점이 뛰어나 보였다. 예전에는 ‘제도적 질서’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부정성’의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소시민적이라고 폄훼했었다. 최근 시인들은 더 근원적인 문명의 한계와 씨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분발이 시대적 호흡과 태도를 창조한다고 느껴지는 한여진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를 열심히 읽었는데, 「화염」 「영동고속도로 끝에는 미래가」의 일부 구절들은 책을 덮고 나서도 떠오를 만큼 내게 독서의 기쁨을 주었다.

평론들에서는 아직도 독서의 긴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문학적 충동에 지배되지 않는 글이 엄격한 학술세계가 아닌 창작의 현장에 끼어들면 나는 일탈 같은 괴리감을 먼저 느낀다. 전기화의 「미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와 최선교의 「무신경이라는 전략」은 그런 각도에서 동지적 연대감을 선사하고 있어 일단 편애할 수밖에 없었다. 둘 중에서 전기화의 글을 먼저 산 이유는, 제한된 텍스트나마 한 작가를 심층 탐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는 데 있다. 끝으로, 경솔한 도발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떤 작품이 당대에 주목받아야 하는지, 또 새로 정진하는 작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안기는 시대적 안목이 무엇인지를 제공하지 않는 평론은 침체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날이 대지와 일체감을 잃어가는 증상을 비판하고, 동시대의 만상과 소통할 직관의 힘을 깨우는 비평이 드문 것 같아서 아쉽고 쓸쓸했다. 우리 평론의 분발, 대지와 일체감을 찾아가는 발길을 기대한다.

 

안현미 시인

시 부문에서 한여진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와 남현지의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두 시인 모두 첫번째 시집임에도 개성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시적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거래처’ ‘자기계발’ ‘소비자’ ‘가이드’ ‘멀티버스’ 등 그동안 우리 시에서 보지 못한 시어들이 출현하는 남현지의 시세계는 그런 특이점에서 주목을 끌었고, “우주를 떠돌고 고래가 되는 꿈도 있을 텐데” 꿈에서조차 “근태를 확인하고” “목표 달성률을 그래프로 만들어서 보고”(「꿈의 번영」)하는 그의 시세계가 너무 리얼해서 ‘남현지의 리얼리즘’으로 별칭을 붙여도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지치지 말고 “벌떡 일어나”(「행복의 문턱」)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미선 언니’와 함께 삶을 여행하는 한여진의 시는 기지와 미지로 가득 찬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곳은 “영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끝에는 미래가」)처럼 우리가 이미 아는 곳일 때도 있고 “오르시에르 앙트르몽”(「미선 언니」)처럼 낯선 곳일 때도 있는데, 그것들이 한여진의 시를 통해 중첩되고 전복되고 반복되면서 ‘환대’와 ‘환희’가 가득한 시적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상이 지구를 한바퀴 돌듯 사계절을 여행하고 온 미선 언니의 미소 같기를 바란다.

소설 부문에서는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박선우의 『어둠 뚫기』, 성해나의 『혼모노』가 논의되었다. 박선우의 장편소설은 안정된 문체와 이해가 쉬운 플롯으로 가독성 높게 읽혔다. 강보라의 소설들은 공력이 느껴지는 필력과 디테일이 치밀한 서사로 실력있는 건축가가 쌓아올린 건축물처럼 탄탄했다. 수록된 일곱 단편들이 비슷한 구조와 인물을 취향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꽁지깃’을 세우고 많은 독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소설을 쓸 거라는 믿음을 덧붙인다. 성해나의 소설들은 모시는 신이 떠난 ‘진짜 가짜’인 박수무당, 희망이란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며 고문실 설계도에 폭이 좁은 수직창을 그려넣는 건축학도, 우연히 태극기 극우집회 무리들에게 환대받는 한국계 미국인 3세 등 다양한 인물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읽는 사람의 혼을 쏙 뺄 정도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진짜 가짜’와 ‘가짜 진짜’가 뒤섞여 있는 세상 속 크크크 웃으며 축하를 전한다.

평론 부문에서 집중 논의된 작품은 전기화의 「미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와 최선교의 「무신경이라는 전략」이다. 신이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을 통해 비인간을 언급하는 비중이 높아진 문학장을 톺아보는 최선교의 비평 전략도 흥미로웠으나, 차분하고 섬세한 읽기로 김지연 소설의 문면과 이면을 심도있게 짚어내고 있는 전기화의 비평에 손을 들었다. 수상을 축하한다.

 

이주혜 소설가

‘지금 여기’가 신동엽 정신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심사를 시작했다. 문학장 안에서 창조주로서 권위를 거머쥔 작가(author)는 이미 죽었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조감의 시선 또한 고루해진 지 오래다. 이런 맥락에서 동시대 문학의 가장 큰 가치는 거창한 세계의 창조도 자기 안으로의 함몰도 아닌 ‘나’와 세계와의 대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선우의 『어둠 뚫기』는 자기를 둘러싼 어둠을 뚫고 들어가 기어이 빛을 향해 나가려는 용기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온갖 자기혐오와 취약함마저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려는 작가의 진심이 미더웠다. 그러나 결말로 갈수록 성겨지는 서사와 전반적인 분량 등이 정말로 끝까지 갔는가 혹은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읽고 있으면 세련되고 화사한 배경 안에서 시종일관 질투하고 냉소하고 쪼그라드는 화자에 이입하다가 어느새 비판과 반성 사이 묘한 지점에 도달하는데, 여러겹의 시선을 통과하며 어지럼을 느끼는 것이 강보라 읽기의 매력이었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과연 대치의 대상이 어디까지 변주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패기있는 실험장으로 보인다. 다양한 소재를 펼쳐놓으면서도 끝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은 문장・구성・서사의 탄탄한 직조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게 툭 던지는 아슬아슬한 질문이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그 질문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흐리는 미끼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함께 진지하게 매달릴 화두가 되기를 바라며 『혼모노』의 수상작 결정에 동의했다.

한여진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와 남현지의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와 선명하게 대치하고 있는 시집이다. 남현지는 오직 소비자이자 소모품으로 ‘건강한 삶’에 가담하는 이에게만 시민의 지위를 허락하는 자본주의를 겨냥하고 있는데, 그 대치가 파업보다 태업에 가깝게 ‘맥없는’ 태도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여진의 시는 순백의 두부 같은 첫인상을 배반하는 뾰족함이 가득해 좋았다. “가문의 자랑”인 솥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태어나고 “이모는 솥뚜껑에 맞아 죽”고 “언니는 솥 아래서 불타 연기가 되”(「솥」)는 풍경을 역사의 자리에 올려놓는 배짱이 좋았다. 처음에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다소 유아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언어가 주어지지 않은 여성이 자신을 서서히 망치는 아름다움을 깨고 나가려면 비명과 분절음에 가까운 미완의 목소리만이 겨우 허락되지 않겠나, 그것이 지금껏 시인이 애써 도달한 위치의 언어가 아닐까, 고쳐 생각하고 기꺼이 수상작으로 지지했다.

최선교의 「무신경이라는 전략」은 비인간을 둘러싼 담론적 사유와 무의식적 전제 사이의 괴리감을 파고들기 위해 사적 경험을 끌고 와 비평을 전개하는 개성 넘치는 글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맘껏 사유의 길을 내는 평론을 많이 읽고 싶다. 전기화의 「미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는 언뜻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작가론으로 보이나 구획적인 이론의 틀을 끌어오지 않고 한 작가의 소설에 담긴 “삶의 질김”과 “마음의 끈덕짐”을 건져낸, 역시 끈덕지고 성실한 평론이 아닐까 싶다. 평론과 그 대상인 작품이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공명하는 지점에서 울리는 쨍한 소리를 듣고 전기화의 평론을 지지하게 되었다.

 

황정아 문학평론가

시 부문 최종심에 오른 두 시집 가운데 감각적으로 이끌린 쪽은 남현지의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었다. 표면을 너무 헤집지 않으면서 심층을 암시하는 조형방식, 넘쳐 흘러내리지 않을 분량만큼 만들어지는 아이러니, 무엇보다 그런 특징들이 ‘나’를 상대로도 엄격히 유지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부산하게 사건이 발생해도 실은 그대로여서 문제이고 무슨 사건인가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아서도 문제이다. 그렇다면 시가 무슨 일이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의 스타일이 어느 쪽으로든 조금 치우쳐 세계를 더 도발하기를 바라게 된다. 한여진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에서 세계는 관계와 대결과 정념을 연루하는 사건으로 동요한다. 세대의식 또는 역사의식이 사건들을 더 두툼하게 만들고 그 무게감이 우리를 시로 끌어들이는 중력으로 작용한다. 시적 주체가 보여주는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이 정답의 확인 같지 않아서, 오히려 여러 정답들이 제출된 끝에 다시 마주한 질문처럼 다가와서 흥미로웠다. ‘자의식에 대한 자의식에 대한……’이라는 회로를 택하지 않고 진솔하게 세계와 맞서는 태도도 귀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 더 마음이 움직이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게 되었다.

소설 부문에서는 세 작품을 논의했다. 박선우의 장편 『어둠 뚫기』는 자칫 이런 유형의 자전적 서사를 얽맬 수 있는 감상성이나 냉소에 굴복하지 않는다. 노동자 어머니의 이야기와 병치함으로써 퀴어문제를 사회적 고통이라는 공통영역의 맥락에 놓은 점이 주효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미아’의 비유 같은 데서 감지되듯 정형화의 한계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는 인상이다. 강보라의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끈질기게 이어지지만 대개 미세하게 진행되는 사회적 코나투스들의 긴장과 쟁투를 한편 한편의 드라마로 솜씨있게 펼쳐놓는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 ‘사회생활’이고 따라서 이 차원은 간단히 ‘범속’으로 폄하될 수 없다는 데 이 소설들의 호소력이 있다. 문제는 이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결국 인정욕구나 자존심의 충돌로 귀결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당선작인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에서 먼저 독자들에게 육박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인물과 소재를 통해 뿜어나오는 대담하고 개성적인 에너지이다. 여기서도 세계는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렇다고 포스트모던하게 파편화되거나 ‘스무드’하게 마감된 상태로 우리를 완전히 소외시키지는 못한다. 가소성(可塑性)으로 출렁이면서 우리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여전히 중요한 변수일 수 있는 사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진짜’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주제가 더 중량감 있는 사회성을 구현하는데, 이만큼 생동하는 세계실감과 만나는 경험은 드물고 반가운 일이다.

평론 부문에서 최선교의 「무신경이라는 전략」은 최근 몇년 사이 부상한 ‘비인간’이라는 주제와 맞붙는다. 동시대 담론들이 짐짓 확정된 전제처럼 다루는 것들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감각과 경험에 밀착하려는 솔직함이 돋보인다. 이 솔직함이 나이브하기보다 예리한 이유는 상당수의 평론들이 외면해오던 관행을 정확히 겨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독자적 논지로 정립되려면 더 힘있는 전개와 탄탄한 토대가 필요해 보이는데 그 잠재력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기화의 「미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당선작으로 정한 것은 무엇보다 ‘잘 빚은 항아리’라는 오래된 비유가 떠오를 만큼 이 글의 모든 요소가 맞춤하게 조응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대상과 내용과 문장이 필요한 만큼만의 ‘미진한’ 빛을 서로에게 비추며 우리의 호흡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몰입하게 만든다. 언뜻 사건이 적고 심심한 듯한 김지연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보다 잘, 또 이보다 적절한 스타일로 읽어낼 수 있을까 싶게 찬찬하고 세심하게 포착한 이 글을 통해 비평의 기본과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수상소감

 

열차는 계속 달릴 뿐 영원한 도착지라는 것은 없고

 

한여진 韓汝眞

1990년 서울 출생.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가 있음.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외근을 갔다. 마침 지하철이 한적했던지라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열차의 기계음이 아주 큰 소리로 울리며 우리의 대화를 삼켰다. 잠시 말을 멈춘 상태로, 하지만 언제든 다시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계속 서로의 얼굴에 시선을 붙들어두었다. 그 순간,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복잡한 기계부품들이 서로 마찰하며 내는 엄청난 소음 속에 우리의 침묵이 있었다.

잠시 후 모든 것이 잦아들었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열차가 곡선구간을 지날 때 이렇게 큰 소리가 난다고 하네요.” “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그러니까요. 소리가 크네.” “아니 그거 말고 우리가 방금 곡선으로 달렸다는 거요.” “이 안에선 그걸 느낄 수 없으니까요.” “뭐 계속 달린다는 게 중요하지요.”

열차는 곧 우리의 도착지에 멈춰 열린 문 사이로 몇명을 뱉어낸 다음 다시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열차와 앞서 걸어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순간 내 안에 있던 못생긴 마음이 잠시 사라지는 것도 같았으나…… 이런 순간들은 아주 찰나이며 지지부진한 일상은 우리 곁에 너무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타인의 다름은 (가령 그의 정치적 견해라든지 농담이라든지) 잔뜩 날이 선 채로 거침없이 마음을 찔러 삐뚤어지게 한다.

그래도 이런 순간들을 붙잡으려고 한다. 소음과 침묵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순간. 아무런 기대 없이 댓가 없이 서로 마주 보던 순간. 방금 지나쳐온 길이 곡선이었는지 직선이었는지 함께 곱씹는 순간. 우리 모두가 한때는 아름다웠던 적 있으며 앞으로도 종종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사람이 된다. 그런 희부연 힘이 필요할 때면 시를 읽었다. 시와 함께 강한 사람이 되었다. 시 안에서 내 마음을 흔들고 뒤집고 털어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은 알 수 없는 일들로 남았지만 해야 할 일들 앞에서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그것이 우리 사회가 어린 소녀를 길들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나 또한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다 못해 아직도 모종의 반사작용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내 꿈을 기꺼이 깨부수고 있었다.

살다보면 잊힌다는 말 앞에서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생각한다. 너 하나로 뭐가 바뀔 것 같니,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고발자가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 입을 막지 말라며 되받아친다. 윤석열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나는 알았다. 그는 우리의 글 속에서, 노래 속에서 먼저 죽게 될 것이다. 집회하던 우리를 가로막는 경찰에게 항의할 때 나는 무섭지 않았다. 어떤 이들과는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겠지만 만약 그에게 억울한 일이 생긴다면 옆자리에 설 것이다.

그리하여 시 안에만 있지 않겠다고, 시 바깥에서도 흔들고 뒤집고 터는 사람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요란하게 살겠다고, 귀가 필요한 곳에 가서는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가서는 할 말을 하겠노라고, 작은 고백과 다짐을 해본다.

부족한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고 징징거림을 들어준 친구들,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잡아주던 선배들, 지혜로운 손길로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 어여쁜 마음으로 읽어주신 분들. 백지 앞에서, 광장 안팎에서, 거대한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자기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 돌이켜보면 모두 함께였다. 그러니 부족한 저와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그리고 매일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퇴근길에는 다시 열차에 오른다. 달리는 이 길이 곡선일지 직선일지 지도를 들여다보거나 눈을 감고 온몸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놀이를 하다가 집 근처 역에 도착해서 깨닫는다. 내일 이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상소감

 

물색없이 이상하기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경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이 있음.

 

 

일상에서 나는 어떤 표현들을 지양하거나 경계한다.

그중에는 ‘이상하다’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특정 행위를 이상하다고 구분 짓다보면 이해의 영역이 점점 협소해지는 듯하여.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늘 끌려하는 건 이상한 사람들이다.

규범에서 빗겨나 있고,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서성이거나, 휘어지고 일그러진 사람들 말이다.

『혼모노』 속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본질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상(像)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뒤쫓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만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정형의 별종이라 명명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이상(異常)과 이상(理想)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들이고, 어설프게나마 자신이 택한 방향으로 물색없이 나아간다고 조심스레 전하고 싶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자주 속박에서 놓여나 자유로워지는데, 그 때문에 쓰는 나보다 더 용감하고 듬직한 건 내가 착안한, 이상한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주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그래, 나라도 네 편이 되어야지, 하며.

 

글을 쓰고 엮고 읽는 우리가 참 이상한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정상과 다르다의 뜻의 이상이 아니라 더 멀리, 더 밝은 곳을 꿈꾼다는 뜻의 이상 말이다.

내가 지닌 건 많지 않지만,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기이한 믿음만큼은 마음 한편에 늘 소중히 품고 있다. 근면과 끈기, 결단, 용기…… 글을 쓰며 필요한 것들이 깎여나가고 퇴색되어도, 그 확신만큼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세상. 어쩌면 무용하고 거친 확신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이상을 발견해주신 분들 덕택이라 항상 생각한다.

그래서 이 상엔 나의 이상도 담겨 있지만, 읽어주고 함께 고뇌한 분들의 이상도 분명 덧입혀져 있다고 여긴다. 그 때문에 더 뜻깊고 애틋하다.

 

우리가 앞으로도 이상하게, 그리고 이상하며 오래오래 쓰고 엮고 읽을 수 있기를,

 

 

 

수상소감

 

연결되는 마음

 

전기화田己和

1990년 서울 출생. 2018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주요 평론으로 「(비)인간의 자리로부터」 「미래를 짓는 애도의 서사」 등이 있음.

 

 

한국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라는 것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며 보낸 계절들이 아니었나 싶다. 수많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가는 가운데, 가장 많이 되뇐 말은 ‘덕분에’였던 것 같다. 덕분에 오늘이 가능했다는 감각, 매순간 빚지고 살아간다는 느낌, 기대어 함께 서 있다는 진실.

오래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들에게 영향받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소박한 소망이 삶의 행로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소박하기는커녕 참으로 큰 욕심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영향받고 싶었던 것, 내가 닮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나와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것에도 굳이 마음을 내어주는 것, 대충 이해했다고 치고 넘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요약으로는 결코 전달될 수 없는 세부사항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문장 하나의 뒤편을 애써 상상하는 것, 그렇게 비효율적이라는 말로 일축되어버리고 말 것에 한없이 고여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일종의 삶의 자세인 동시에 갈고닦아야만 하는 관계맺기의 능력이고, 패턴화된 삶에서 언제든 닳아 없어지기 쉬운 자질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정말이지 꺼뜨려지기 쉬운, 어떤 면에서는 꺼뜨려버리면 차라리 모든 것이 쉬워지는, 그런 연약한 것이라고도. 낙관보다 비관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관성 곁에서, 나는 그 마음들을 보듬고 아끼는 일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생각을 좀더 해보고 싶다.

텍스트의 고유한 결을 쓰다듬고 그 무늬를 매만지는 일이란 세상을 돌보는 일로 희미하게나마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한국문학장의 멀고 가까운 동료들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동료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 읽고 쓰며 배우고 싶다, 영향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