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2025 창비신인소설상 공모에는 1,883편의 중·단편소설이 투고되었다. 창비가 단편소설 공모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양이다. ‘문청’의 열정이란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지만, 이처럼 문학적 글쓰기에 대중적 관심이 쏟아지는 현상이란 매우 고무적이다. 근래 부쩍 높아진 한국문학의 위상이 이러한 현상의 일차적인 동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검찰공화국’에 이어진 내란 시국을 건너며 온갖 이기적이고 추악한 욕망의 현현을 목도하는 동안, 새삼 인간다운 삶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 본다.
올해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정치사회적 이슈를 부각시키기보다 평범한 일상을 서술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여행길에 경험한 사건과 낯선 사람들, 직장이나 가정에서 겪었던 불편한 관계나 폭력적 상황, 아르바이트의 고충 등 친숙한 제재들이 늘어났다. 이는 그만큼 문학의 창작층과 향유층이 확대되었다는 의미겠지만, 그간 다소 생경하게 발화되던 주장들이 비로소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명의 사회적 약자로서, 집단 내 소수자로서, 구조적으로 착취당하는 플랫폼 노동자로서 일상 속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 더이상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상을 어떻게 소설로 형상화할 것인가, 즉 허구적 창작물로서의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까지 충실히 담긴 글은 전체 응모작의 양에 비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느낌이다. 요컨대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까운 글이 많았는데, 두 장르가 지향하는 독자와의 의사소통 방식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해두고 싶다.
본심에서는 4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며, 내부 심사 윤리규정에 따라 심사위원의 제척 사유가 발견된 작품에서는 해당 심사위원을 제척한 후에 심사를 진행하였다. 「픽커」는 두 여성이 낯선 땅에서 만나 함께 일하다 헤어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린다. 경제적 차이가 사회계급적인 차이로 연결되는 상황을 이야기하되, 갈등을 과장하거나 사건을 인위적으로 끌어내지 않으면서도 서사를 담담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담담함은 자칫 구성상의 단조로움이나 단순함으로 읽힐 수도 있는 것이기에, 문장의 힘에 더해서 구성의 묘미도 함께 살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 보였다. 「가시고기」는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넘나드는 안정적인 묘사력과 매끄러운 문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자신이 살았던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혼령의 이야기는 이미 익숙해진 설정이지만, 외로운 인물들이 따뜻한 관심을 통해 위안을 얻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다만 이러한 관심과 관계맺기가 의미있는 메시지나 여운을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결말로 이어지는 듯하여 아쉬웠다. 「아키야」는 내면이 불안정한 주인공이 느끼는 침입자를 향한 불안과 경계심을 사실과 환각을 뒤섞은 인상적인 필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혼란스러운 의식세계와 감정 자체를 한폭의 그림처럼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도전정신과 실험성이 돋보였다. 마니악한 개성에 더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담고 이를 보편적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낮게 나는 아이」는 옥탑방에 스스로 자신을 가둔 여성과 부모의 무관심 속에 학원폭력에 노출된 청소년이 맺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초능력이 있는 아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은 기시감을 준다. 그러나 이 소설은 판타지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멸시에 함몰되기 직전에 서로를 의지하며 생을 향해 낮게나마 도약하는 용기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생동감 있는 주변인물의 설정 등 미덕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서로를 구원하는 정서적 교감이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결핍과 절실함을 채우려는 이기적 동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이는 현실에 대한 작가적 고민의 깊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그저 ‘착한’ 소설에서 한걸음 나아가게 해주는 지점이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담은 건강한 작품을 많이 써내시길 기대한다. 아울러 귀한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응원과 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숨 박서련 백지연 서유미 양윤의 정주아 최민우
수상소감
김소라
1982년 강원 강릉 출생.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러닝 붐에 동참할 만큼 트렌디한 사람도 아니고, 무라까미 하루끼를 흉내 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달리기는 한번도 잘해본 적 없는 일이고, 그래서 언젠가는 제대로 해봐야지 하며 오래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벌써 몇개월째 달리고 있지만 놀랄 만한 변화는 없습니다. 여전히 아침에 옷을 갈아입기만 해도 뛰기 싫어 배가 아파오고, 호수를 한바퀴 돌아 집이 가까워지면 거의 울고 싶은 지경이 됩니다. 그때마다 하는 생각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아무도 안 시켰는데.
한동안 웅크려 지낸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대로 몸과 마음이 굳어버릴까봐 두려웠습니다. 모든 날씨에 강아지와 산책하고, 매일 저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책을 읽고, 색색의 블록을 맞는 칸으로 빼내는 퍼즐게임을 했습니다. 달리기도 그렇게 시작했고,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범한 것들로 쌓아올린 하루가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정말로 달리기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는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저 앞 나무까지 뛰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주 느리게나마 3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모두가 나를 스쳐 앞질러가고, 평균 심박수가 160회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형편없는 달리기일지라도, 봄보다는 나은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제 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것들을 모아 하루를 만들듯 조급해하지도 동요하지도 않기를 바랍니다. 무언가를 고스란히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머뭇거리는 마음을 품은 채 멈추지 않고 쓰고 싶습니다. 불완전한 걸음으로도 분명 어딘가에 닿을 테니까요.
이 걸음을 응원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의 처음을 도와주신 김이설 작가님, 그리고 서로의 글을 보듬어준 글쓰기모임의 문우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올해는 꼭 모임의 이름이 정해지면 좋겠어요. 또 제 글을 전혀 읽지 않으면서도 늘 잘하고 있다 믿어준 남편과, 글을 못 읽어도 행복한 우리 집 맹수 밤비. 그 모든 존재들 덕분에 앞으로도 저는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발소리를 기억하고, 오래도록 귀 기울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