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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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중미 『엄마만 남은 김미자』, 사계절 2025

엄마로만 남지 않은 김중미

 

 

김유담 金裕潭

소설가

neverend1130@hanmail.net

 

 

 

“엄마들은 왜 그렇게 밥에 집착하지?” 전화할 때마다 밥은 먹었느냐고, 아이 밥은 뭘 해줬느냐고 캐묻는 엄마에게 잔뜩 골을 내버렸다. 아이 키우면서 글 쓰고 돈 버느라 바빠 죽을 지경인데 밥까지 잘해 먹는 게 가능한 일이냐며 내가 성을 내자 엄마는 굽히지 않고 말한다. “글이 중요하냐? 밥이 중요하지. 글 아무리 잘 써도 잘 챙겨 먹고 몸 안 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집밥’에 집착하는 엄마의 마음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게 밥밖에 없으니 저렇게까지 집착하는 거라고,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어려서부터 이런 결심을 하는 내가 꽤나 똑똑하고 특별한 아이인 줄 알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게 대다수의 딸들이 세우는 결심이라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김중미 에세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는 일이 먼저였던 외할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자녀만을 위한 삶을 택한 엄마 김미자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에게만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딸 김중미의 삶을 투명하게 비춘다. 가난과 실패로 얼룩진 부모의 삶을 차분하게 바라보면서도 “지금의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나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 김창삼 그리고 외할머니 최어진, 친할머니 정옥생이 걸어온 시간의 결과물”(27면)이라는 사실을 선선히 인정한다.

평생 돌봄과 가사노동을 떠맡았던 엄마 김미자는 인지장애가 와서 요양원에 입원한 뒤에야 ‘밥’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없는 형편에 식이장애에 가까운 수준으로 까다로운 아버지의 입맛에 맞추느라고, 동시에 자녀들에게 필수영양소를 골고루 먹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엄마는 하루종일 반찬 걱정을 해야 했다. 그런 엄마를 답답하게 여겼던 딸 김중미는 도시 빈민지역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고 나서 그곳에 모인 아이들과 청년들의 ‘밥’ 걱정을 하면서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배곯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가 누구든 고봉밥을 먹여야 했던 친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밥하는 일’이 여성만의 몫으로 여겨지면서 사소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김미자는 인지장애를 겪으며 자신이 낳은 사남매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데 이르렀지만 엄마라는 정체성은 끝까지 잊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이 앞에 놓여도 자식들이 먼저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자녀들은 엄마가 자신을 ‘갈아넣으며’ 짊어졌던 돌봄의 무게를 돌아보게 된다. 이상이 높고 예술을 사랑했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딸 김중미는 ‘나르시시스트’였다고 평가한다. 단칸방에 살면서도 레코드와 릴테이프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던 아버지 밑에서 큰딸 김중미는 자신의 욕망을 참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그런 남편을 감당하며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힘들었을 엄마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가난이 아닌 고립감이었다.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살던 동두천에서는 가난할지언정 마음만은 풍요로웠지만 아버지의 실직 이후 인천으로 이주한 다음부터 엄마는 정붙일 이웃을 만나지 못해 시들어갔다.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엄마의 모습을 딸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집을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웃을 가질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이는 훗날 김중미가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고 일구는 데 큰 원천이 됐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걸 엄마를 통해 배운 것이다. “엄마는 행복한 삶은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삶으로 가르쳐주었다.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배웠다. 그래서 가족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399면)

엄마만 남은 김미자 덕에 딸 김중미는 엄마로만 남지 않은 사람이 됐다. 부자 되라고 가르친 적 없는 엄마, 가난 속에서도 염치를 중시하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아버지가 지금의 김중미를 있게 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예술이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사치가 아닌 위로고 힘”(320면)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작가, ‘기찻길옆작은학교’ 공부방 큰이모, 포도 농부, 그리고 두 딸의 엄마로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엄마, 내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글 쓰는 사람이 되었나 봐.”(401면)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온전한 엄마로 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동시대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엄마 김미자를 위한 글인 동시에 한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족의 내력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가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의 과오와 모순을 직시하되 그들에게 받은 사랑의 힘이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됐음을 고백하며, 모순 가득한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그같은 태도를 견지한다.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 2000)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공부방 빚을 갚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했던 작가이자 활동가로서 김중미의 삶이 곳곳에 묻어나고 풍부한 정서를 전하는 문장을 만나는 매력도 크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부터 남동생과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올케 사이의 조카에 이르기까지, 4세대에 걸친 곡진한 사연들을 읽으면서 근현대사를 지나온 여성들의 삶, 그리고 주변부 존재들의 고단함과 서로를 보살피는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김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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