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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 최근 『21세기문학』(1999년 겨울호)에 대담 「시대적 전환을 앞둔 한국문학의 문제들」을 발표.

 

 

 

2000이란 숫자가 묘해서 ‘2000년대’라고 하면 여러 규모의 시간대가 떠오른다. ‘새로운 천년’이라는,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만 희대의 선지자가 아니고는 예측 못할 시기가 있는가 하면, ‘21세기’라는 훨씬 짧은 기간도 있다. 훨씬 짧다고는 해도 역시 남다른 경륜과 선견지명을 가진 이나 그려볼 수 있는 기간이며, 그나마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 세기를 다시 십등분한 10년의 세월, 언젠가는 ‘공공년대’라고 불리게 될지도 모를 2000년대 첫 십년을 염두에 두고 몇가지 토막생각을 개진할까 한다.

10년 단위의 미래만 해도, 변화의 속도가 지난 10년보다 더욱 빠르리라는 것말고는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희망 섞인 판단으로는 이 기간에 한반도 분단체제극복 과정은 어떤 결정적인 고비를 넘기면서 일단의 성사를 볼 듯도 한데, 10년 이상을 미리 내다보는 일이 위태로운 것도 바로 이 결정적인 단계의 성사 여부와 그 구체적인 양상에 따라 추후의 사태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21세기’ 전체를 들먹이는 일이 허황되기 십상인 것은 단순히 백년의 물리적 길이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 들어 여러 십년이 가기 전에 아마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결정적인 변혁을 겪으리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 실상을 지켜보기 전에 다음 일을 예견하기가 지난한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올 10년을 두고, 문학 분야에 한정해서조차 무슨 예언을 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다소나마 도움이 될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정도인데, 지난 10년의 한국문학을 되새기는 작업부터가 나로서는 준비가 태부족인 과제임을 미리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한 평가를 저해하는 것들

 

개인의 역량이나 정직성 문제를 떠나, 한 시대의 문학에 대한 공정ㆍ원만한 평가를 저해하는 요인들은 어떤 것일까. 우리 문학의 경우에는 일단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문학관(또는 시국관)을 기준으로 문인들을 ‘진영’으로 가르면서 작품에 대해서도 편파적 판정에 흐르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십년대가 바뀔 때마다 거대언론매체와 일부 작가ㆍ평론가들이 들고나오는 세대론이다.

나 자신은 ‘등단’의 시기조차 불명확한데다 그 무렵 신세대로 각광받던 ‘4ㆍ19세대’에 정확히 속하는 나이도 아니어서, ‘60년대 문학’ 논의 때부터 그런 식의 세대론에는 큰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 70,80,90년대를 지나면서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영’ 개념에 대해서도, 민족민주운동의 격전기에 뜻을 같이하고 행동을 함께하는 문학인들의 일정한 조직화와 연대의식은 지지했지만, 이러한 조직도 “좋은 작품과 덜 좋은 작품 또 아주 좋지 않은 작품을 가리는 데 있어서 공명정대한 문인들의 모임”이 될 것을 바로 격전이 한창이던 80년대 중반에 주문했었다(「민족문학과 민중문학」,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 351면). 그러나 원칙의 천명과 구체적인 실행은 별개 문제다. 싸움이 격해지고 오래가다 보면 함께 싸우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의식이 작품에 대한 당연한 애정과 관심을 넘어 편파적 옹호로 이어지기 쉬우며, 더욱 중요한 것은—마음의 여유와 절대적 시간의 여유가 모두 부족한 가운데─싸움에 나서지 않는 작가들에 대한 무지나 편견을 낳게 마련인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건대, 『창작과비평』 25주년을 기념하는 토론장에서 발제를 맡은 나는 90년대 문학을 전망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 거명한 작가들 가운데는 정작 90년대 들어 가장 주목받는 활약을 벌인 시인과 소설가들이─고은ㆍ신경림 같은 낯익은 이름을 빼고는─거의가 빠져 있었다(1991년 봄호의 ‘90년대 민족문학의 과제’ 발제 및 토론 참조). 80년대에 이미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에 대해서도 아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한 예가 많았던 것이다.

개인의 역량부족은 근절이 불가능한 항구적 숙제지만 적어도 ‘진영’ 개념의 질곡만은 벗어던질 필요가 절실했다. 이 작업을 내 나름으로 시도한 것이 「지구시대의 민족문학」(『창작과비평』 1993년 가을)인데,1 여기서 나는 김기택의 시 및 신경숙의 소설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를 현기영ㆍ박노해ㆍ공선옥에 관한 논의와 아울러 진행했다. 그때만 해도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안 좋았다. 작품상의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작품론을 자주 쓰지도 않는 사람이─사실 이 점은 90년대 내내 나를 짓누른 부담이었고 아직도 그렇다─굳이 ‘우리쪽’을 젖혀놓고 그들을 거론할 필요가 있느냐는 솔직한 섭섭함의 표시가 있는가 하면, 평가 자체도 과장되었다는 비판 또한 없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두 작가에 대한 평가와 기대가 많이 빗나간 것은 아니었지 싶다. 『태아의 잠』에 이어 『바늘 구멍 속의 폭풍』(1994)과 『사무원』(1999)을 낸 김기택은 80년대에 등단하여 90년대에 착실한 이바지를 해낸 시인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며, 신경숙의 경우 장편 『외딴 방』(1995) 하나만으로도 90년대를 빛냈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평자의 한정된 독서나 논술상의 불가피한 선택에 따른 본의아닌 불공정행위들이다. 몰라서 언급 못한 경우와 의도적인 묵살이 혼동되는 일은 어느 때나 있지만, 독서량이 부족한 평자에게는 특히나 짐이 되는 것이 그것이다. 93년 당시 아직 등단 안한 작가들이나 90년대 후반에 가서야 『인간의 시간』(1996) 『길은 광야의 것이다』(1998) 두 시집으로 역시 90년대를 빛내준 백무산이 빠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정ㆍ원만한 평가라는 비평가의 본분에 멀리 미달했음이 사실이다. 그 점은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 약간의 보완을 시도한 뒤인 지금도 크게 달라졌달 수 없다. 두고두고 갚는 데까지 갚아나갈, 세상에 대한 빚인 것이다.

아무튼 이제 진영 개념의 비평적 위력은 대세의 흐름에 의해 거의 소멸된 듯하다. ‘민족문학 진영’으로 명백히 분류 가능한 작가들의 작품에만 국한하다 보면, 그러잖아도 위기설에 휘말린 민족문학의 빈곤을 스스로 부각시키는 결과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아니, 사단법인화(1996)로부터 최근의 새 집행부 구성에 이르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발전경로를 보더라도 지금은 이렇다할 진영 자체가 사라진 형국이다.

 

 

세대론과 문학운동론의 상호작용

 

진영 개념의 해소가 민족문학의 위기설까지 해소할 수 있을지는 따로 검토할 일이다. 우선은 공정한 문학적 평가를 저해하는 또하나의 요인으로, 새로운 연대마다 언론매체의 부추김을 받으며 등장하곤 했던 이런저런 신세대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런 세대론은 상업주의적 매체의 위세에 비례해서 그 위력을 더해왔고, 90년대에는 그전 어느 때보다 맹위를 떨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연대의 구체적 양상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코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진영론의 기반을 이루는 문학운동론─지난 한 세대 동안은 주로 민족문학운동론─과의 일정한 상호작용 속에 진행되었음이 드러난다.

앞서 ‘60년대 문학’론을 언급했으나 이는 지금 수준으로 보면 일시적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매스컴의 위력 자체가 비교적 한정된 시기인데다, 60년대 중엽에서야 시작된 그 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70년대가 다가와버렸던 것이다. ‘60년대 문학’론자들은 삽시간에 구세대로 변해버리고, 언론에서는 황석영ㆍ최인호ㆍ조해일 등을 뒤섞어서 ‘70년대 작가’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 경우는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상업적 언론매체의 성장이 따라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식의 ‘70년대 작가’론을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가 되었는가?

해답의 큰 부분이 70년대초에 본격화된 민족문학론과 민족문학운동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담론과 운동을 통해 60년대와 70년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어떤 ‘신세대적 감각’이 아니라 김지하의 「오적」(1970)과 황석영의 「객지」(1971)로 표상되는 새로운 문학정신의 대두이며, 그 뒷배를 이루는 앞시대의 주된 선배로서 68년과 69년에 각기 작고한 김수영과 신동엽의 우뚝한 자리가 매겨졌다. 동시에 이문구처럼 신세대 취급에서 제외됐던 소설가의 작업이 70년대 문학의 주류에 귀속될 수 있었다. 여기에 김정한의 문단복귀, 신경림의 재등장, 고은의 발전적 변모 등이 더하여 1970년대의 문학이 유신통치의 억압 아래서도 제법 화려하게 꽃피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1970년에 창간된 『문학과지성』의 경우, 민족문학론에는 동조한 바 없으나 일부 동인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활동과 잡지 및 출판을 통한 작품발굴로 중대한 기여를 했다. 다만 70년대를 ‘양대 계간지 시대’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편벽된 시각이며, 『한국문학』이나 월간 『대화』 등의 다양한 공헌을 감안하는 큰 그림 속에서 3개 계간지의 각기 다른 몫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80년대의 양상은 또 달랐다. 5ㆍ17내란과 광주학살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감각 위주나 탈이념적인 세대론이 설 자리는 별로 없었다. 물론 그때도 연속 무크 『우리 세대의 문학』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언론의 주목을 계속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대론은 오히려 ‘민족문학 진영’ 내부에서 조직ㆍ이념상의 주도권을 노린 급진적 소장세대의 도전으로 거센 힘을 발휘했다. 이에 대한 거대매체들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는바, 한편으로는 그 또한 잡식성의 상업주의가 취급을 마다할 품목이 아니었지만, 다른 한편 언론사 자체로서는 대대적인 전파를 용인할 수 없는 논의였다. 그 결과 80년대의 세대론은 상업주의에 의한 활용이 없지는 않았으나, 상업주의의 전면화를 견제하면서 민족문학 담론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동시에 편협한 ‘진영’ 담론의 형성에도 일조했으며, 줄곧 ‘소시민적 민족문학론’으로 공격받은 좀더 유연한 민족문학론으로서는 자기쇄신을 위한 값진 자극도 얻었지만 몹시도 고달픈 연대가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민중적 민족문학’ ‘민주주의 민족문학’ ‘노동해방문학’ ‘민족해방문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제기된 80년대의 세대론적 성격을 겸한 급진운동론은 90년대가 몇해 안 가서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직접적인 원인은 1989〜91년 사이에 소련ㆍ동구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지정학적 대변화의 충격이었지만, 87년 6월항쟁 이후 민족문학의 새로운 과제에 부응하지 못한 내부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었달 수 있다. 아무튼 한때 위세 좋던 운동론의 갑작스런 퇴장과 ‘세계화’ 담론의 새로운 위력, 상업주의 언론권력의 팽창 등이 새 십년대의 전개와 겹치면서, 9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세대론이 힘을 떨치는 연대가 되었다.

 

 

90년대의 작품과 담론

 

그렇다고 매스컴이 이른바 90년대 작가들을 일방적으로 찬양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는 비판이 섞여들었고, 우려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새로운 감각’을 대변한다는 일군의 작가들을 거듭 부각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거명되는 작가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질적 차이를 이차적 관심사로 돌리고, 다른 한편 이 명단에 들지 못한 선배작가 또는 ‘감각’이 다른 신진들의 성취를 변두리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더구나 저들 ‘90년대 작가’에 대해서조차 곧잘 냉소를 던지는 논조는 문학 자체를 외면한다는 더 큰 규모의 ‘신세대’에 대한 요란스러운 보도까지 겹쳐, 90년대 문학 전반에 대한 평가절하를 조장했다. 이런 풍조에 반발한 일부 평자들의 ‘90년대 문학 비판’도 흔히는 언론의 왜곡된 개념설정을 그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실질적인 대항담론이 되지 못한 것 같다.

90년대 한국문학의 성취를 총괄할 준비가 안되어 있음은 이미 밝힌 대로다. 하지만 대략적인 인상에만 의존하더라도, ‘90년대 문학’을 세칭 ‘90년대 작가’의 문학으로 좁혀 잡지만 않는다면, 훌륭한 작품이 산출된 양으로는 지난 어느 시기보다 못할 바 없지 않을까 싶다. 80년대에 등단하여 90년대에 빛나는 성과를 보탠 예를 앞서 들었거니와, 90년대에 등단한 ‘90년대 작가’ 가운데서도 옥석을 가려 상찬할 작품이 적지 않다. 예컨대 은희경은 주로 기존의 관습과 윤리의식을 조롱하는 ‘신세대 감각’으로 눈길을 모았지만, 그가 조롱하는 대상은 많은 경우 남성위주의 통념이라는 구체성을 지녔으며, 단편 「빈처」(1996)가 예증하듯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외면한 경박성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에 김영하 같은 작가는 뛰어난 문장력과 이야기 솜씨를 지녔으나 이에 걸맞은 탐구정신이 모자란다는 인상이며, 그보다는 배수아의 소설집 『바람 인형』(1996)에서 신세대적 감각이 삶의 방향상실을 뽐내기보다 진지하게 고뇌하는 자세와 결합되고 있음을 본다.

아무튼 세칭 90년대 작가 내지 신세대 작가를 두고도 섬세한 분별이 진행될수록 그중 착실한 성취들이 빛을 발하려니와, 시야를 넓혀 90년대에 생산된 온갖 문학에 주목한다면 그 실적은 더욱 풍성해진다. 쉽게 말해 고은ㆍ신경림ㆍ박경리ㆍ박완서ㆍ현기영 등의 활동이 지속되고 황석영이 집필을 재개했으며 최명희의 『혼불』(1996) 같은 역작이 간행된 연대의 문학이 전보다 빈곤해졌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60년대 이래 꾸준히 이어져온 조태일의 작업이 그의 갑작스런 타계로 끝을 맺은 것은 더없이 애석한 일이나 90년대에 그의 시세계는 또 한번 새 경지를 열었으며(이 시인에 대한 절절한 추도문이자 뛰어난 평론으로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에 실린 염무웅 「자유정신으로 이슬로 벼려진 칼빛 언어─조태일론」 참조), 연작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1997)를 써낸 박범신의 새출발도 내게는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이 나오더라도 주변의 소음 속에 파묻히기가 더 쉬워진 것이 90년대의 사정이기도 했다. 이 또한 엄연한 문학적 현실이며 ‘작품외적 요인’으로 무시할 일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거대언론의 상업주의적 담론이라는 것도 문학계의 담론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데, 90년대에는 상업주의를 견제할 만한 비평담론을 찾아보기가 한층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문학에 관한 유익한 토론에 앞장설 임무를 띤 평론가들이 특히나 뼈아프게 반성할 대목이다.

가능한 대항담론으로 여전히 민족문학론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민족문학론의 급진적 분파들은 물론, 그들의 공격을 견뎌낸 논자들도 90년대 문학담론을 주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나온 것도 아니다. 물론 민족문학론과 무관하게 본격문학 및 ‘문학성’을 옹호하는 논자들이 있지만(예컨대 김병익 비평집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에 실린 「신세대의 새로운 삶의 양식, 그리고 문학」 등 제1부의 글들 참조), 문학의 궁극적 패배에 거의 체념하면서 ‘신세대’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엄정한 비평에 적극성을 보여주지 못한 문학론이 위력을 지닐 리 없다. 오히려 민족문학론을 약화시키는 ‘신세대’ 담론을 결과적으로 부추긴 감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민족문학론 자체가 여전히 타당성을 지니느냐는 것일 터이다.

 

 

민족문학론은 지금도 유효한가—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

 

민족문학 개념을 부정하는 90년대의 발언 가운데는 70년대초 민족문학 논의가 시작될 무렵의 상투적인 비판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많다. 당시 미국 학계 주도의 근대화 담론에 편승했듯이 요즘의 세계화 담론에 들떠서 ‘국가’나 ‘민족’이라면 무조건 낡은 이야기로 냉소하거나, ‘문학’에다 무슨 앞가지를 붙이기만 해도 문학을 부정한 것으로 단정하는 논의가 적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한편 70년대나 80년대까지의 효용성은 일단 인정해주면서 이제는 소명을 다한 민족문학론이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일종의 ‘명퇴 권고’도 들린다. 이럴 때 곧잘 인용되는 것이 필자의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1974)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이렇게 이해되는 민족문학의 개념은 철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즉 어디까지나 그 개념에 내실(內實)을 부여하는 역사적 상황이 존재하는 한에서 의의있는 개념이고, 상황이 변하는 경우 그것은 부정되거나 한층 차원높은 개념 속에 흡수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125면)

 

실제로 상황은 많이 변했고, 그 변화가 민족문학운동과 민족문학론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요는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이뤄졌으며 무엇이 남았는가를 면밀히 따져서 민족문학론의 퇴출 여부를 결정할 일인 것이다.

90년대가 진행되는 동안 민족문학론자들의 자기점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70년대 이래의 관점을 굳건히 지키고자 한 예도 있고 적극적인 궤도수정의 노력도 있었다. 나 자신은 『창작과비평』 100호 기념 토론회 발제문 「세계사적 전환기에 민족문학론은 유효한가」에 대해 논평하면서, “민족문학론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간판’으로서 가졌던 쓸모는 줄었다는 임규찬씨의 발제에 동의한다”(1998년 여름호 152면)는 간략한 정리에 그쳤다. 부연설명으로서, 임규찬씨도 지적한 ‘국민문학’ 개념과의 공존가능성, 그리고 세계문학 자체의 위기에 대한 인식 등을 들기도 했으나(152〜53면), 본격적인 정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민족문학론의 문제의식 중 어떤 것이 얼마만큼 유효한지에 대한 구체적 검토가 있어야 했고, 문학용어를 ‘간판’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문학인으로서 빗나간 행위가 아니었는지도 따져봤어야 했다.

‘간판’ 구실이 단기적 정치투쟁의 도구 역할을 뜻한다면, 이는 분명히 문학의 본분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문학 자체에 적용되는 논쟁적 개념으로 구실한다는 뜻이라면 민족문학 개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주장에 하나의 토를 달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민족문학’이 어떤 고정된 실체를 가리키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문학을 논하는 데 가장 생산적인 개념으로 채택되었다는 뜻이 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문학은 해당시대 문학 가운데서, 예컨대 분단문제를 소재로 삼았다거나 민족문제에 대해 어떤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는 작품들을 따로 지칭하는 용어도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어떤 특정 갈래의 문학을 전체에 강요하는 비문학적 처사가 아닌 것이다. 흔히, 좋은 건 다 민족문학이냐라는 비아냥 섞인 반문을 접하지만, 적어도 민족문학 개념이 유효한 시기에 좋은 문학을 다(또는 거의 다) 포용할 수 없는 민족문학이라면 “부정되거나 한층 차원높은 개념 속에 흡수”되어 마땅할 터이다.

우리 시대의 민족문학론이─가령 8ㆍ15 직후의 민족문학론과 구별되는 주요 특징의 하나로─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핵심적인 민족문제로 설정한 것이 타당하다면, 민족문학론은 적어도 분단체제가 엄존하는 만큼의 유효성을 아직껏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문학론ㆍ농민문학론ㆍ시민문학론ㆍ민중문학론ㆍ리얼리즘문학론 등 60년대 이래의 다양한 논의들이 70년대 들어 점차 민족문학론으로 수렴되어 80년대까지 후자의 구심력에 대체로 순응한 것은 단순히 분단문제의 중심성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마저 박탈하면서 민간의 통일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군부독재정권의 존재가 ‘민족민주운동’의 단결을 요구했고 그만큼 ‘논쟁적 개념’으로서 ‘민족문학’의 쓸모를 높여주었던 것이다.

일상화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선결조건에 해당하는 강권통치 제거작업이 1987년의 6월항쟁 이후 시동됨으로써 민족문학 ‘간판’의 그러한 쓸모에도 중대한 변화의 계기가 왔다. 나 자신은 80년대말에 민족문학의 ‘새 단계’를 주장하면서(『민족문학의 새 단계』에 실린 「오늘의 민족문학과 민족운동」 및 「통일운동과 문학」 참조),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을 통해 종전의 계급해방론과 민족해방론뿐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혁론도 아우르는 ‘새로운 종합’을 이 단계 민족운동의 과제이자 민족문학의 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통일운동과 문학」 126〜29면). 그러나 분단체제론이 좀더 구체성을 갖춘 것은 90년대에 와서였다.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자본주의 세계체제 작동의 한 국지적 사례로 파악하는 분단체제론은 민중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한반도통일이라는 민족문제 해결의 세계사적 의의를 새삼 확인하지만,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민족’ 개념이기보다 전지구적 현실인식이요 이에 따른 국지적 행동의 필요성이다. 다만 ‘전지구적 사고’와 ‘국지적 행동’을 결합하는 무수한 항목들 가운데 한민족과 한반도 주민들의 경우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중간항의 비중이 결정적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에서만큼 그러한 중간항의 의의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족’과 ‘국가’의 문제가 세계화의 시대일수록 엄연하다는 일반론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민족과 한반도 주민’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자가─과거에도 완전히 일치했던 적은 없지만─더이상 혼동될 수 없는 국면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혈연적ㆍ문화적 공동체로서의 한(민)족집단은 이미 전세계에 퍼진 다국적 집단으로 자리잡았고, 해외에 정착한 동포 중 대다수에게는 한반도의 바람직한 통일이 자신의 보람찬 삶에 필요조건일지언정 그들 자신이 통일된 한반도의 주민으로 회귀하기는 어렵게 된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동족간의 일정한 유대를 간직하며 살고자 하는 그들 나름의 민족적 염원은 염원대로 절실하며, 이는 우리 시대 ‘민족문제’의 또다른 차원인 것이다.

민족문제에 대한 이런 복합적 인식을 수용하는 ‘민족문학’은 간판으로 쓰이기에 너무나 복잡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무릇 간판이나 구호는 간명해야 하니까. 따라서 70년대 중반 민족문학 담론의 구심력이 성립하기 전에 이런저런 담론들이 병립했듯이, 이제 문학담론의 새로운 다원화 현상이 벌어지는 시기가 된 셈이다. 이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그만큼 중압감이 덜해진 시기랄 수도 있다. 다만 생태계보존이라든가 성차별철폐, 전지구 차원의 빈곤해소, 자본주의의 본질적 반문학성에 대한 저항 등의 새로운 담론들의 중압감이 과연 얼마나 덜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며, 현싯점의 한반도에서 이들 담론이 뜻한 바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도 분단체제극복운동을 중심으로 상호연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졸저 『흔들리는 분단체제』 제1장 참조),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의 대명사로서의 ‘민족문학’은 여전히 그 중심성을 내세움직하다. 아니, 남한의 국민문학이자 전체 한민족의 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 세계문학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에 문학의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민족어 문학이자 지역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세계사적 의의가 충일한 개념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90년대의 리얼리즘 논의

 

민족문학 개념의 구심작용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민족문학론이 주도력을 독점한 일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민족주의 문학과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서도 민족문학은 민중문학과 서로 보완하면서 견제하는 관계임을 처음부터 강조했고,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중적 민족문학’ ‘민주주의 민족문학’ 등의 대안제시가 세대논쟁 또는 정파투쟁의 한시적 도구 이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 민족문학론은 최량의 세계문학 생산을 겨냥하는 담론으로서, 어느 한 민족의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 담론인 리얼리즘론과의 상호연관 또한 중시해왔다. 그리하여 민족문학 논쟁이 상업주의 언론의 지면마저 장식하던 80년대는 ‘사회주의 현실주의’를 들고나온 논자들의 목소리가 드높아진 연대이기도 했다.

그 위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90년대초에 나는 이 논의의 득실을 정리하면서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의 상호보완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졸고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1990)은,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념에 대한 이제까지의 비판을 거쳐 도달한 새로운 리얼리즘론일지라도 이데올로기의 성격에서 아주 벗어나는 것은 아니”(『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220면)라고 결론지음으로써 ‘리얼리즘’ 역시 하나의 방편이요 ‘논쟁적 개념’임을 명시했지만, 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도 능히 이겨낼 만한 리얼리즘론의 자기쇄신이 없이는 민족문학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사이비 국제주의에 휩쓸려버리고 말리라는”(175면) 것이었다.

90년대의 리얼리즘 논의는 민족문학론에 비한다면 그래도 활기가 더 있었던 셈이다. 나 자신은 한 영국 작가에 대한 평론을 통해 ‘전형성’ ‘재현’ 등 핵심 개념을 새로이 천착하거나(『창작과비평』 1992년 여름호 「로렌스 소설의 전형성 재론」 및 『안과밖』 1996년 창간호 「로렌스와 재현 및 (가상)현실 문제」), 고은의 선시(禪詩) 또는 신경숙의 장편을 논하면서─『외딴 방』론의 경우 ‘리얼리즘’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았지만─리얼리즘론의 적용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등, 우회적인 기여를 하는 데 머물렀다. 한편, 90년대 후반 진정석씨의 문제제기(96년 11월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주최 학술대회 발표 「민족문학과 모더니즘」 및 『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 「모더니즘의 재인식」)로 촉발된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은 제법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이 과정에서 윤지관ㆍ김명환씨 등의 결연한 리얼리즘 옹호가 있었다. 그러나 리얼리즘론의 획기적 자기쇄신이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힘들며,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한국의 모더니즘 운동에 대한 관심의 환기라든가 마샬 버먼(Marshall Berman)의 모더니즘론의 도입을 크게 넘어서는 공헌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민족문학이 문자 그대로 사이비 국제주의에 휩쓸려버리는 사태까지는 안 갔어도, 민족문학론의 문제의식이 흐려진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최원식씨는 “서구에서 상륙한 이래 이 땅에서 벌어진 긴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에 얽히고설킨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제아무리 갈고 닦아도 구원의 가망이 없는 용어들인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가까운 심경을 토로하면서(유종호 외 31인 『현대 한국문학 100년』, 민음사 1999, 633면), “작품으로의 귀환” 및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會通)”(각기 글의 부제와 주제목)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나 역시 일종의 회통론자요 리얼리즘을 둘러싼 어지러운 논란에 적잖이 피로를 느껴온 터라, 그의 이번 글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읽었다. 여기서 얻은 여러 값진 자극을 계기로, 2000년대 비평담론의 전진을 위해 검토를 요하는 한두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예의 ‘회통’과 ‘작품으로의 귀환’은 차원이 좀 다른 이야기로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작품에 충실한다는 것은 모든 비평담론의 기본인만큼 그간의 리얼리즘론이든 모더니즘론이든 이 기본조건을 결했다면 한시바삐 ‘작품으로 귀환’해야 한다. 양자의 회통을 위해서는 물론, 번듯한 독자적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조건인 것이다. 다만 이것이 비평담론을 대신하지는 못하며, 엄밀히 따지면 담론과 무관한 문학행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담론의 정립이라기보다는 담론의 형이상학화를 경계하는 비평정신의 회복을 통해서 담론으로부터 대상을 창안하기보다는 담론으로부터 대상으로 귀환하는 것”(634면)이라는 구절에서도, “담론으로부터 대상을 창안”하는 일은 배격해 마땅하지만 ‘담론’과 별개의 ‘대상’이라는 담론 자체에 형이상학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리얼리즘/모더니즘의 회통과 대립

 

물론 저자가 실제로 겨냥한 것은 담론 일반이기보다 ‘형이상학화된 담론’일 터이므로, 그가 기존의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의들을 어떻게 인식하며 어떠한 ‘회통’을 시도하는지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먼저 주목할 점은 제목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각기 홑따옴표를 붙여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통상적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의미한다”고 못박은 사실이다. 통상적인 의미의 리얼리즘이라면 흔히 실증의 정신에 따른 현실모사를 중시하는 ‘사실주의’가 떠오르고, 모더니즘은 이에 반발한 비사실주의적 실험예술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면 양자의 회통이란 게 그다지 어려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고, 회통의 사례도 한국문학 안팎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환상과 사실성을 적절히 배합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 해도 훌륭한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작 최원식씨의 개념규정에는 특이한 데가 있다. “전자〔통상적 리얼리즘〕가 모사론적 방법으로 근대극복의 전망을 탐구하는 문학 경향이라면, 후자〔통상적 모더니즘〕는 비모사론적 방법으로 근대비판을 실험하는 문학 경향을 가리킨다”(618면 각주1)라고 하여, 모사론/비모사론의 방법적 대립에다 근대극복/근대비판이라는 역사관의 대립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촛점이 구미 학계에서도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통상적인”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대립구도보다, 1920,30년대의 한국에서 화제가 된 카프식 리얼리즘론 대 김기림 등의 모더니즘이라는 대립구도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케 된다. 이러한 문학사적─또는 한층 좁은 의미로 문예사조사적─관점은 한국 모더니즘의 성향과 성취에 대해 많은 통찰을 낳지만,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의에는 오히려 혼란을 더해주는 바 없지 않다. ‘통상적’에 대조되는 것으로 저자는 ‘최량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지목하는데, 그렇다면 근대비판의 의지는 있었을지언정 근대극복의 전망 탐구와는 무관한 서구 중산계급의 이런저런 모사론적 사실주의는 ‘통상적’도 아니고 ‘최량’도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70년대 민족문학운동은 김수영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계승함으로써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분절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 그러나 전반적으로 조감할 때 70년대 이후 민족문학운동은 <모더니즘>으로부터 <리얼리즘>으로 선회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628〜29면)는 판단이 정확하다면, 서구문학사에 대한 적합성을 희생하더라도 7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 대한 질정을 우선시해야 할 터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앞서 조세희를 거론했지만, ‘최량의 리얼리즘’으로 더 쉽게 분류될 신경림이나 황석영일지라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거치지 않고─그런 의미로 통상적 모더니즘과 일정한 회통을 이룸이 없이─그 업적이 가능했을 것인가?

그런데 실은 여기에도 개념상의 혼란이 있어 이런 질문들이 과연 적절한 성질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민족문학운동이 선회해서 택한 ‘<리얼리즘>’이 ‘통상적 리얼리즘’인지 ‘최량의 리얼리즘’인지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전자라면 신경림ㆍ황석영말고도 수많은 예외가 있어, 어느 운동에나 따라오는 태작들 위주의 ‘전반적 조감’에 기울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반면에 ‘최량의 리얼리즘’을 향해 선회한 것이라면 그로 인한 통상적 리얼리즘/모더니즘의 회통 실적을 작품과 비평담론 중 최량의 사례를 놓고 좀더 자상하게 검토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최원식씨가 김수영을 거의 전무후무한 회통의 사례로 꼽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진의는 최량의 리얼리즘과 최량의 모더니즘조차 모두 넘어선 어떤 절대적인 경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이고 70년대 이후로 과연 되풀이된 바 없는 경지인지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최량의’ 리얼리즘/모더니즘이 각기 어떤 내용인지에 대한 규정이 앞서야 한다. 그도 인정하듯이 이때에 양자가 반드시 대칭적일 필요는 없다. 최량의 리얼리즘조차 최량의 모더니즘에 포섭된다는 ‘광의의 모더니즘’론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최량의 모더니즘일지라도 최량의 리얼리즘에 의한 극복대상이라는─70년대 이래 우리 평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가꾸어온─리얼리즘론도 가능하다. 요는 논자 나름의 분명한 구도를 밝히면서 그 안에서 김수영이면 김수영이─그리고 70년대 이래의 시인으로 국한하더라도 고은이나 김지하, 백무산, 황지우 등등이 각각─정확히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이후 사물을 대신한 이름이 이름의 연쇄를 구성할 때, 이름은 사물로부터 미끄러져 사물의 소외가 깊어지기도 한다. 리얼리즘/모더니즘을 대칭적으로건 비대칭적으로건 차이 속에 정의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어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집단정체성은 상상된 또는 창안된 표지이기 쉽다”(633면)라는 일반론으로 대신할 일은 아닌 것이다.

최원식씨의 이번 글에서 전반적으로 감지되는 것은, 단지 리얼리즘론뿐 아니라 민족문학론을 포함한 여러 비평담론의 근년의 지지부진한 행보가 가져다준 좌절감과 피로감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80년대에 그토록 열띠게 소모적이던 논쟁에 시달린 후유증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 점에서야 나도 동병상련의 심경이지만 이것이 괴롭고 성가시다고 벗어던질 짐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원식씨의 회통론에 열정은 없고 피로만 있다는 말은 아니다. 회통을 바탕으로 “낡은 사회주의의 붕괴와 브레이크 없는 자본의 질주를 가로질러 창조적인 우리식 어법을 탐색하는 것”(636면)이 그의 적극적 기획이며, 이는 나 또한 깊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지공무사至公無私’라든가 ‘각성한 노동자의 눈’ 들도 ‘우리식 어법’을 지향한 내 나름의 떠듬대는 모색의 결과이며, ‘남한의 국민문학을 겸한 전체 한민족의 민족문학’도 서구어로 직역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요는 우리식 어법이 제대로 개발되기도 전에 리얼리즘의 담론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릇 어떤 낱말을 쓰기로 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온갖 때가 함께 묻어오듯이, 때묻은 낱말을 버릴 때 내게 긴요한 알맹이마저 잃게 되는 것이 또 얼마나 흔한 일인가.

우리 문학에서 그간 ‘리얼리즘/모더니즘의 대립’을 통해 추구해온 문제의식의 핵심은, 90년대 와서 친숙해진 언어로 바꾸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추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문학이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최원식씨 자신이 ‘광의의 모더니즘’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보는 이유로 “자칫 근대에의 투항으로 떨어질 소지가 다분하다”(632면)고 했는데 바로 그거다. 버먼의 저서(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The Experience of Modernity, 1982)를 보더라도, 근대의 문제점들에 대한 절실한 인식이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한 문제점들을 안은 채 거의 무한정으로 지속되면서 모든 변혁적 사상과 운동조차 ‘녹여버리는’ 것이 근대로 설정되어 있다(예컨대 2장의 맑스론 참조). 물론 이 점에서 리얼리즘론의 실적도 흠집투성이다. 실증주의적 사실주의가 근대극복보다 근대적응에 몰두하는 이념이라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스스로 근대주의를 완전히 청산 못한 채 서둘러 근대극복의 성취를 선포했다가 파산한 예이다. 하지만 어쨌든 근대극복이 우리의 숙제이고 이는 낭만주의적 근대거부를 껴안으면서 넘어서는 ‘변증법적 성취’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처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을 둘이 아닌 하나의 과업으로 수행하는 데 미달하는 비판과 고뇌, 절망 또는 체념은 제아무리 진정성과 멋스러움으로 빛날지라도 ‘모더니즘’이란 범주 속에 총괄하여 또다시 넘어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루카치식 리얼리즘론만 해도 바로 그러한 기본적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컨대 ‘자연주의와 모더니즘의 연속성’이라는 루카치의 명제가, 우리가 말하는 이중과제의 맥락에서 통상적 리얼리즘과 통상적 모더니즘이 굳이 ‘회통’을 꾀할 필요도 없는 ‘한통속’임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민중문학론과 ‘각성한 노동자의 눈’

 

민족문학론을 보완하며 견제하기도 해온 또하나의 상대는 앞서 말한 대로 민중문학론이었다. 그런데 90년대에 거의 실종하다시피 한 것이 바로 민중문학론이다.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도, 80년대 논자들의 독단적 폄하에 대한 보상의 성격도 있으나, 이런 실종사태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윤지관씨도 지적하듯이 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의 실패를 논하는 자리에서조차 곧잘 빠지는 사항이 “지식인의 고립과 민중운동의 힘과의 단절”(「1930년대 모더니즘을 보는 눈」, 『현대 한국문학 100년』 642면)이며, 김수영에 대한 최근 흔해진 일방적 찬사에도 민중담론의 약화가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각성한 노동자의 눈’을 말한 지가 한참 되었다. 물론 이 문구(「민중ㆍ민족문학의 새 단계」에서는 ‘각성된 노동자의 눈’으로 표현—『민족문학의 새 단계』 37면)는 당시 ‘남한 노동자계급’의 각성을 과장하는 평론가 및 운동론자 들의 ‘새 단계’론에 반대하는 취지로 쓰였고, 한국의 경우 진정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의 운동력은 “어디까지나 광범위한 국민대중에 의한 민주화운동ㆍ통일운동의 연대성을 강화시키는 성질”(38면)이라는 주장의 일부였다. ‘각성한 노동자의 눈’이 어째서 한반도 및 남한에서 열린 실천의 장에서는 ‘노동자계급’보다 ‘민중’을 담론의 중심에 두고 심지어 ‘국민대중’과도 일치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데는 분단체제론과 세계체제론의 좀더 정교한 전개가 따라야 했다. 그러나 제대로 각성한 노동자라면, 80년대식 ‘선진노동자’가─또는 그의 이름을 걸고 급진적 지식인이─요구하던 ‘노동해방문학’이나 ‘민중적 민족문학’보다는 “본격적 장편문학”(같은 곳)을 위시한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예술적 성취를 택하리라는 주장은 지금 돌이켜보건대 평범한 상식에 가깝다.

오히려 현싯점에서는 어째서 굳이 ‘노동자’냐는 의문이 앞서기 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문자 그대로 전지구적인 시각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오늘의 세계는 어느 특정 지역(예컨대 구미 선진국이나 동아시아의 일부)에 시야를 국한했을 때와는 달리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확대되어가는 세계이며, 그것도 (역시 국지적인 예외가 있지만) 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가난해지고 놀고 먹거나 있는 돈을 놀리고 사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세상인 것이다. ‘노동자의 눈’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세상이 부당하며 극복되어야 함을 꿰뚫어본다. 나아가, ‘지식사회’가 되고 ‘정보화사회’가 된다고 해서 노동이 근절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됨을 인식한다. 물론 이런 인식이 누구에게나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이 근절될 수 없다는 인식은, 한편으로 정보화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궂은일이 세계의 다른 지역이나 국내의 외국인노동자 등 눈에 덜 뜨이는 영역으로 옮겨지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요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보화의 진전이 자본 위주로 진행될 때 정보와 인간노동의 분리 또한 위험수준을 초과하여 인류의 다수가 부적격품(triage)으로 폐기처분되는 문명궤멸의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각도 필요하다. 노동이 근절되어서도 안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런 위기감각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식과 여가만 있고 노동이 근절된 상태를 이상화하는 유한계급적 발상을 거부하고,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노동이야말로 삶의 보람이며 적당한 여가의 즐거움은 이와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노동자 특유의─하지만 어디까지나 유한계급 이념의 미망에서 벗어난 각성한 노동자의─노동관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성한 노동자의 눈’은 근대 세계체제와 현행 세계화과정에 대한 발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입장을 뜻한다. 그러나 섣부른 계급운동으로 치닫는 것은 참다운 각성과 거리가 멀다. 온전한 의미의 ‘노동자계급’은 세계경제를 단위로 해서만 논할 수 있고 그 차원에서는 아직도 형성중인 계급인만큼, 촛점을 좀더 광범위한 ‘민중’에 두는 운동노선이야말로 각성한 노동자의 당연한 선택이다. 더구나 한반도의 경우는 분단체제의 존재로 인해 일국 단위 계급운동의 효용성이 더욱 불투명한만큼, ‘국민대중’에 폭넓게 호소하는 중도적 내부개혁 및 분단체제극복 운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일시적인 연합전선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자와 지식기술자를 겸한 인구가 늘어나게 마련이며,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진정한 노동계급은 항산(恒産)이 없어 항심(恒心)도 결한 적빈자 집단이 아니라 가진 것이 아주 없지 않으면서 항심을 잃을 정도로 많지도 않은─동시에 궁핍화의 위협을 무엇보다 항심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저항하는─층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계급운동론자들에 의해 흔히 전략상의 연합체로만 인식되는 ‘민중’이 실은 목하 형성중인 전지구적 노동계급의 실체인 것이며, 이들의 전면적 산업노동자화나 절대빈곤화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기인식을 수반하는 지식화와 실력양성이 해방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와 문학

 

따라서 ‘각성한 노동자의 눈’은─‘눈’이라는 특정 기관에 치우쳤다는 문제점은 있으나─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 그리고 이들이 내건 ‘이중과제’의 기준에 비추어도 유효한 개념이다. 나아가, 세계문학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에 문학의 옹호에 특히나 유력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 논지를 제대로 펼치기에는 허용된 지면이나 개인적 준비가 다 모자라지만, 한두 가지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글을 마칠까 한다.

문학을 포함한 일체의 진지한 예술을 위협하는 현상으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상업주의ㆍ소비주의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정보화라는 더욱 기본적인 대세가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으며, 특히 문학의 경우는 새로운 매체들의 발달로 남다른 곤경에 처해 있음이 지적된다.

‘정보화’에 관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인간의 창조적 노동과 결합하느냐 분리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임을 위에서 지적했다. 알음알이가 깨달음의 일부가 되고 삶의 방편이 되어야지 노동을 소외시키는 자본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인 것이다. 이는 알음알이를 무조건 배격하는 태도와 다르며, 정보화의 대세를 외면하는 어리석음과도 무관하다. 예술론으로 말한다면, 작품의 인식적ㆍ반영적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창조성 그 자체와는 구별하는, 우리 문단에도 이제는 결코 낯설지 않은 종류의 리얼리즘론과 합치하는 자세이다.

새로운 매체들의 비약적인 발달에 관해서도 그 대세를 몰라라할 길은 없다. 다만 이로써 문학의 위축과 궁극적인 몰락이 불가피해진다는 주장은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오늘날 매체발달의 양상이 매체 자체의 내적 논리뿐 아니라 매체의 소유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것이 당분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문학과 시각매체ㆍ영상매체를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문자도 시각매체려니와, 그런 ‘법률가적’ 논리를 떠나서도 문학예술과 문자문화가 거의 동일시된 것은 서양에서도 인쇄술이 발달하고 시민계급이 득세한 최근 수백년의 일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사회에서는 나랏말과 상이한 문자의 비중이 유달리 높았던 조선의 경우가 예외였을 것이다.) 서양문학이 자랑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만 해도 연극이라는 그 시대 ‘멀티미디어 예술’의 대본이 아니었던가. 이제 새로운 매체들의 발달로 문자문학의 절대적 우세가 끝나게 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언어예술로서의 문학과 문자문화로 국한되는 특정 문학장르들은 별개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상매체를 포함한 오늘의 뉴미디어에서 언어의 비중이 커지고 그 예술적 수준이 높아지는 가운데, 연극이나 영화는 물론 예컨대 뮤직비디오나 컴퓨터게임의 틀을 활용한 문학(=언어예술)의 새로운 꽃핌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는가. 다만 이를 위해서도 주로 문자로 남은 문학유산을 활기차게 간직하고 새로운 축적을 계속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새 매체들과 언어예술의 결합이 ‘각성한 노동자의 눈’에 부합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대의 한국문학이 이 과정에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한창인 시대에 새 매체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전통적인 문학유산에 대해서도 우리의 빈곤을 실상대로 인식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러나 민족문학운동이 진행되어온 지난 몇십년간 한국문학의 활기는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남다른 데가 있다.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세계사적 의의로 가득찬 과업을 수행중인 우리는 새로운 십년대에 이제까지의 실적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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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고는 연구논문이 아닌 단상의 성격이고 자기 점검과 반성 및 해명의 뜻을 담은 글이니만큼 남의 노작에 대한 섭렵은 적고 자신의 졸고에 언급이 잦은 점을 양해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