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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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金正煥

1954년 서울 출생. 198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 예수전』 『회복기』 『기차에 대하여』 『희망의 나이』 『해가 뜨다』 등이 있음. maydapoe@korea.com

 

 

 

하노이–서울 시편 6

3중주

 

 

고고학 발굴 자료와 민족해방운동이 어울린

프랑스 루이 나뽈레옹 제국풍 민족사박물관 앞에서

미시즈 호아는 관광가이드 아줌마처럼 서 있다

더 분명하지만 그만큼 더 애매하기도 한

근엄한 역사의 공자묘 앞에서도 미시즈 호아는

관광가이드 아줌마처럼 서 있다

 

하노이의 햇빛 쨍쨍한 야외를 즐기기 위해 만든

지금은 차이니즈 레스또랑 간판 입구 앞에서

늙고 검게 찌든 얼굴의 시인 듀앗은

두 손을 모두어 치켜들고, 환호하며

동지들을 맞듯 남한의 작가일행을 맞았다

열렬히,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는

혁명의 열기를 증거했으나

혁명의 열기가 주책으로 되어버린

남한의 시대도 증거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손님 대접이 후하지. 사실 물산도 풍부한 나라고…… 더군다나 외국손님 접대는.’

 

밝지도 어둡지도 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은

붉은색 간이공연장과 커다란 식탁이 놓인

차이니즈 레스또랑 안에서는 풍성한 음식과

미녀 가수와 남한 노래방 유행가를 아는

소규모 연주단을 대기시키고

베트남 작가동맹 위원장 휴 틴이 앉아 있다

체 게바라 같다

그는 대령 출신이다. 아니 하노이에서는 모든

군출신이 체 게바라 같다. 헐벗은 예수의 체가 아니라

육덕(肉德)부처의 체 게바라

그가 베푸는 술은 메트 모이(met moi),

호밀로 만들었고 꽤 독하지만 숭늉맛이다

 

나의 민족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Korea風’ 연회가 끝나자 미시즈 호아는 신세대

오토바이를 타고 헤드마스크를 쓰고 붕붕,

인적이 드믄 곳에서 술꾼들이 흥청대는

구역으로 사라진다. 언뜻, 어깨가 들먹인다.

기혼의 그녀를, 베트남의 살림을 따라가고 싶었다

 

미안하고, 비오고, 아름다운 날

 

 

 

하노이-서울 시편 7

To 하롱 Bay

 

 

바다와 섬들이 이룬 절경

하롱 Bay는 베트남 북서부 Quang Ninh

 

‘그리로 가려면 미끄러지듯 내리닫이 붉은 지붕과

붉은 강과 낡은 철교를 지나야 하지.’

흙먼지 날리는 신작롯길 수천 킬로 떨어진 물소들과

수십년 찌그러진, 키큰 트럭들과

어디나 똑같은 똥개들과

맘씨 좋은 십장, 호치민 아저씨와

비슷한 마을 주민과 주민의 심성을 지나야 한다

마을마다 무명용사기념탑과 오래된 무덤자리

어디에나 있는 땟국물 찌든 아이들을 지나야 한다

 

‘나라에 위기가 닥치니 어머니 용과 자식 용들이

그곳에 도착, 영영 머물며 나라를 지킨다.’ 아름다운

하롱 Bay는 1553평방킬로미터 섬 1969개

 

전쟁의 수도 하노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운명이다

2만년 전 원주민이 살던

구석기 말, 신석기 초부터

Soi Nhu, Cai Beo, Ha Long

3대 문화가 이어질 때부터

하롱 Bay, 아름다움은 몇시간만 걸리는 운명이다

과거의 권위와 미래 전망이

겸손하게 만나는

호치민 기념공원은 운명이다

 

하롱 Bay, 아름다움은 역사고 운명이다

 

 

 

하노이-서울 시편 8

하롱 Bay

 

 

1인당 5불씩을 내고 4시간짜리

하롱 Bay 순회선을 전세냈다

점심은 꽃게찜 삶은 새우가 풍성했다

옥색 바다는 섬을 감싸며 편안하다

섬은 좌우로 혹은 면전에서

불쑥 다가와 괴물처럼 뱃머리를 놀래키지만

가까이 갈수록 섬 뿌리를 깎아내며

고통을 감싸는,

격랑도 이리

편안하지, 바다 위에 섬, 섬들 사이

바닷길은 망망하고 아름답고

망망할수록 아름답고

마침내 고단한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

정상(正常)의 생애를 펼쳐낸다

오, 똘레랑스(tolérance)

바닷속은 보이지 않고

끔찍함도 기미가 없다

출렁대는 표면에 소라 고동

해산물을 파는 거룻배 동력선들이 분주하다

‘배를 움직이는 꿈쩍 않는 아버지와

여린 두 팔을 쳐들며 사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만 있군. 어머니는 집에 있을까?’ ‘아니,

죽었을지도 몰라. 전쟁이니까.’

바다는 아름답고 슬프다가

마침내 슬픔이 이토록 넉넉한

길에 도달한다

Thien Cung Grotto

조개껍질이 쌓인 석회암 동굴 ‘우린 여기서

해적질이나 했으면 딱 알맞겠군.’

‘그게 맘대로 되나. 정말 하려면 반은 해적,

반은 인질이 돼야지. 그래야 돈도 오고……’

순회선 갑판이 출렁댄다, 너무 얕다

하노이 가슴에 하롱 Bay 출렁인다

 

‘프랑스놈들이 여기 아까워서 어찌 내줬으까.’

‘아, 아름답지 물론.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