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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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을 모색하자

 

 

올해 초 한국과 미국이 공식협상의 개시를 선언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중진영은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미FTA 반대전선으로 결집하고 있고, 한미FTA 추진세력들은 개방과 쇄국의 이분법을 내세우며 이를 몰아붙이고 있다. 한미FTA는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적 판단을 요구하는 기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적어도 일차적 협상시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년 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개방은 항상 논쟁과 갈등을 불러왔다.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10위권에 이르고, 이 성과가 세계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개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 정책 논쟁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로 이어지는 퇴행적인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미FTA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심각한 구조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대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한미FTA의 체결은 미국식 표준의 수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써비스산업의 발전에 한국경제의 활로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미국과의 FT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외교적으로 한미FTA는 한미동맹이 경제동맹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측에서는 한미동맹을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지구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적 혁신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혁신의 방향이 미국식 모델의 무분별한 수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럽식, 일본식 그리고 또다른 성장 및 개방 모델이 가능하며, 미국식 모델은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관계의 안정적 발전은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만을 강조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는 다른 동북아국가들과의 관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며, 현실이 웅변하듯이 부시행정부와의 ‘지구적 파트너십’이란 결국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쟁에서의 동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사회통합적인 경제발전,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 균형있는 대외관계를 원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등장했다. 이러한 참여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결여한 사명감과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들로 한미FTA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공식협상이 곧 진행되겠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협상의 타결을 서둘러서는 안된다.

또한 한미FTA 반대투쟁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수 국민은 개방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미FTA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들은 특히 농업 및 영화시장 등에 한미FTA가 미칠 단기적 충격과 경제씨스템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우려하지만, 개방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투쟁이 개방반대 담론의 틀에 갇히게 되면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발전모델을 둘러싼 싸움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개혁세력은 최소한 한미FTA 협상이 내년 초라는 시한 내에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동시에, 개방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출발점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내적으로 개방은 복지정책 정비 및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방 후유증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 경제통합의 진전을 고려하고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방이어야 한다. 남북 경제통합은 내부시장의 활성화와 동북아 차원의 지역적 협력을 기초로 개방과 국내개혁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제적으로 개방과 경제통합은 다양한 지역협력체에 의해 관리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전략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개방의 선택도 적절한 복지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훨씬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개방에 대한 저항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걸음이 다소 더디더라도, 장기적으로 복지, 민주주의, 지역협력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적인’ 방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미래를 선택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방문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호의 특집은 문학 분야로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를 주제로 잡았다. 제목 그대로 이 특집은 오늘의 한국문학이 우리 시대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러한 주제는 창비의 일관된 관심사이지만, 다소 낡은 접근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편집진으로서는 창비의 기본적인 문학관에 충실하면서도, 이러한 기획 역시 새로운 언어와 문법에 민감한 작품읽기를 요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특집을 꾸렸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을 기대한다.

한기욱의 글은 2000년대 한국문학을 경계 넘기 혹은 6·15시대의 관점으로 파악하며, 2000년대에 등단해서 새로운 작품경향을 선보이고 있는 젊은 소설가들의 상상력과 90년대 작가세대의 자기쇄신적 모습을 짚어낸다. 문학적 환경이 날로 나빠짐에도 우리 문학의 대응력과 활기는 여전함을 논증하는 가운데, 새롭게 제기되는 시대적 과제와 문학적 성취의 문제를 균형있게 진단한다. 황광수는 6·15 이후 남북관계와 분단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수의 소설들을 공들여 살피면서, 거미의 ‘집짓기’와 ‘소화법’이라는 은유를 통해 그 어려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점검하고 있다. 김형중은 최근 우리 문학에서 성(性)과 사랑과 가족이라는 주제가 어떤 문법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핀다. 소설과 시를 아우르는 이 글은 가부장적이며 남성중심주의적인 세계를 넘어서는 ‘윤리적인 시선’을 강조하고 있다. 차미령의 글은 박민규와 조하형의 소설에 나타난 환상의 문제를 검토하는데, 이들의 작품에서 환상은 장르문학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완강한 현실의 ‘바깥’을 꿈꾸는 문학적 본능의 일환으로 승격된다. 신형철은 ‘스키조’(분열자)와 ‘아나키’(무정부)라는 표현으로 젊은 시인들의 세계를 설명한다. 전자는 ‘나’의 정체성을 격렬하게 질문하며 스스로 변종(變種)과 변성(變聲)을 향해 나아가고, 후자는 세계의 통일성을 교란하며 새로운 언어의 정치성을 획득해가는 존재이다.

이상 다섯 편의 글들은 우리 문학의 시대적 좌표를 이해하는 데 유효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다음호에는 이번 문학특집에 대한 리뷰 평론을 기획하고 있다. 이질적인 관점들의 각축이 생산적인 비평문화 형성에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문학특집 외에도, 이번호에는 주목할 만한 평문들이 많이 실렸다. 이념적 지표로서의 ‘민족문학론’이 당면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신승엽의 평론, 최근의 서정시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와 가능성을 함께 타진하는 엄경희의 계간시평, 그리고 김인숙, 김훈, 윤성희, 조선희의 작품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정홍수의 계간소설평도 일독을 부탁드린다.

특집이 우리 문학의 현황과 위치를 조명한다면, 이번호의 시와 소설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 문학의 풍요로운 지형도를 보여준다. 시란에서는 원로 민영 시인에서 김근, 강성은 등 젊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개성적인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예년에 비해 풍성해진 소설란은 ‘신예소설가 7인선’으로 기획했는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일구어가고 있는 70년대 생 작가들의 단편을 묶었다. 김윤영, 이기호, 김중혁, 편혜영, 백가흠, 손홍규, 김미월 등인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젊은 작가들답게 탄탄하면서도 다채로운 시선과 어법으로 현실의 이면을 인화하고 있다. 그밖에도 많은 신진작가들을 초대하려 했으나 지면의 제약으로 다음을 기약할 따름이다.

문학특집으로 정론 부문의 지면이 다소 줄었지만, ‘도전인터뷰’ 및 ‘논단과 현장’, 그리고 촌평란의 글들이 아쉬움을 상쇄한다. 이번호 ‘도전인터뷰’에서는 시민운동가 하승창이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밀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양극화와 조세개혁, 한미FTA에 대한 입장 등 주요 현안에서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에 이르기까지, 이 대담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시사성 강한 인문사회 비평을 시도하는 ‘논단과 현장’란에서 최원식의 글은 최근 논란이 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논문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꼼꼼히 따져가며 읽는다. 그는 보수사관의 ‘반격’이라 할 만한 이 책을 기획한 편자들과 논문의 필자들 사이의 균열을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진보진영의 생산적 토론이 긴요하다는 고언도 잊지 않는다. 지난호에 실린 나리따 류우이찌의 『미래를 여는 역사』 비판에 대한 반론 격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신주백의 글이나 일본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을 중심으로 일본의 핵위협을 환기하는 홍성태의 글은 그 실천적인 차원에서 주목을 요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반인권론」은 서구열강이 제3세계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개입의 논거로 활용하는 자유주의 인권론의 논리를 반박하고, 동시에 인권을 허구적 이데올로기로 단정하는 일부 이론가들의 문제점도 들추어낸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오히려 강력한 정치성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또한 한류 관련 국제심포지엄에서 토론된 일본 지식인들의 글 두 편도 일독을 권한다. 이따가끼 류우따와 오구라 키조오의 글은 동아시아 전역에 퍼진 한류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문화사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촌평란에서는 황우석 논란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응까지 다양한 쟁점들이 다루어졌다.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창비는 지난 5월 초부터 온라인매체 ‘창비주간논평’(weekly.changbi.com)을 발간하여 계간지가 갖는 시간상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시사적인 논평과 깊이있는 문학·문화 논평이 어우러져 창비의 운동성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창비』 인터넷 일본어판(www.changbi.com/jp)을 개설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비판적 담론이 생산적으로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창간 40주년 기념 특별사업으로 추진되는 동아시아 국제심포지엄도 예정대로 6월 9〜10일 서울에서 열린다. 한·중·일의 진보적·비판적 잡지 편집진이 한자리에 모여 동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하는 이 행사가 뜻깊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지난봄 40주년 기념호를 내고 나서 창비는 안팎에서 다양한 격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들었다. 창비의 편집진은 애정어린 격려뿐만 아니라 비판적 제언 역시 소중하게 받아들여 우리 시대의 담론 현장을 더욱 알차게 꾸려갈 것을 약속드린다.

李南周·李章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