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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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송 張大松

1962년 충남 서산 출생.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옛날 녹천으로 갔다』 『섬들이 놀다』가 있음. cnandong@hanmail.net

 

 

 

바다

 

 

달이 두 번 떴다 새알을 두 개 훔쳐 먹었다

탁란이었다 나는 달을 등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물아래서 모래들은 제 살을 깎아 물위의 흉내를 냈다

판판하다 수평선이 절벽처럼 다가왔다 막막하다

판판한 바람이 얼룩처럼 지나가고 있다

바람이 방향을 틀었다 바다가 이토록 슬프게 나를 지나갈 줄을, 소스라친다

여름 내내 배추벌레를 잡던 그 가느다란 손가락이 달팽이처럼 더듬어왔다

그리워하는 것도 일이다 어지럽다

너무 그리워서 허기가 졌다

나중에 알았다 결핵을 앓았다는 것을, 몸은 몰랐다고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답답하게 사는 법을 바다가 가르쳐주었다

바람이 멈추는 시간이 되어서야 마음을 냈다 다행이다

물에 뜬 달을 밀어내지 않고 비켜서 떠내려가는 너는 어디에 무엇으로 다다를까

 

 

 

회양사람과 가을 숲에서 노을을 보다가

 

 

산등에 해 지면 바람처럼 쏘다니다가 여인의 어깨에 달 뜨면 울음을 터트릴

집 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까닭없이 집들이 많다고 다 서울은 아니야 천안이나 온양일 수도 있어 사람들이 다 내리는 데서 따라 내리면 거기가 서울이야,라고 자세히도 일러줄

살이 낀 그리움에 손에 쥔 식칼이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그리워만 하다가 말

죽은 사람의 흔적만 밟고 살아서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소리가 뼛속으로 파고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몸속에 노을을 등짐으로 지고 와서 부려놓는 일, 얼마만큼 반복해야 그칠까

밀물과 썰물이 밥상을 차려주는 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데

절을 백 번 하나 천 번을 하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고, 그 힘든 것 때문에 절을 한다고 하던 그 사람이 이런! 오늘 숲속에서 나무를 베어내어 화전을 일구어 숲을 숲 밖으로 만들고 있다니!

 

아! 풀들이 시들어가는 가을 숲에서 문득 노을을 보다가 어째서 너의 얼굴을 보면 근심 속에 이 풀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서 쓸쓸함이 더해진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