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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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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1

꽃 같은 시절

 

 

제1부

 

저승길을 못 가고

 

내 혼이 내 몸을 빠져나왔을 때는 바람이 소슬한 가을밤이었다. 내 혼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내 집의 추녀를 막 벗어났을 때, 시집와서 육십년을 넘게 바라보며 살던 앞산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다. 공기는 안온하고 구름 없는 맑은 밤에 흔히 그렇듯이 산빛은 티없이 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이었다. 길 떠나기에 그만일 성싶게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마침맞은 밤이었다.

내 아들딸들과 그들의 식솔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먼 이명처럼 들리는 속에, 달빛을 흠뻑 받은 나는 정작 편안한 마음으로 방금 혼이 벗어난 내 몸을 붙잡고 울음을 우는 아들과 딸과 며느리와 사위와 손주들에게 속삭였다.

“울다가 배 고프면 밥 묵고, 지치면 자다가 그러고들 너희들 집으로 돌아가거라이. 나는 갈란다, 잘 있어라이.”

이승에서 팔십년을 살았으니 살 만큼 살았다. 그리고 이제 내겐 저승으로 가는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다. 마침, 은하수 건너 황천길 입구에서 남편이 나를 부른다. 남편은 이승 셈법으로 이십년 전에 저승으로 콩 팔러 가서는 콩을 다 못 팔아서 그랬던지 이승으로는 소식을 주지 않았다. 내 이제 남편이 콩을 얼마나 팔았는지 그것도 확인해볼 참으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보일 쯤 해서는 좀 설레는 기분으로, 알았소, 이십년을 지다린 사람이 하루를 못 지다리요? 했더니 남편이, 이승에서 이십년이 여그서는 하룻길이라네. 내가 이승 이십년 동안 포도시 여그까지밖에 못 온 것을 보면 모르겄는가,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런디, 여가 저그하고 다른 것이 있다네. 이승에 태날 때 그랬드키 여그 올 때도 암것도 모르고 왔드마는 여그는 저그허고 온갖 것이 다 달러. 저그는 왔다가도 돌아갈 수 있고 갔다가도 올 수가 있지마는, 여그는 한번 발 떼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다네.”

남편의 그 말 때문이었을까. 공기의 촉감과 달빛의 밝기가 길 떠나기에 그만인 성싶기는 하지만 내 혼이 막상 저승길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이제 가버리고 나면 우리 집이 너무 고적할 것 같아서, 그것이 마음 아파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말하자면 오작교와 우리 집 지붕이 보이는 그 어디메쯤에서 짐짓 길을 잃은 듯, 문득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 자손들은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은 뒤에 방문과 부엌문과 헛간문과 대문에 각각 빗장을 지르고서 저희들 사는 곳으로 떠났다. 남편이 이승을 뜨고 자손들이 집을 떠나고 난 뒤 나 혼자 남았던 집은 이제 저 혼자 남았다. 내가 아직 이승사람일 때, 나는 집이 심심하다고 한번씩 몸을 떨 때마다 텔레비전을 틀거나, 라디오를 틀거나, 옛이야기 한자리를 풀거나, 노래를 한가락 부르거나, 그도 아니면 일부러 이 빠진 사기접시를 깨거나 스뎅 그릇을 무쇠솥 위로 달팍 엎었다. 그러면 집이 잠잠해졌다. 집이 그런다고 했더니 막내딸이,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교회를 다녀부러.”

저는 다니지도 않으면서 나보고는 교회를 다니라 했다. 일요일이면 교회 봉고차가 와서 동네 혼자 사는 할멈들을 죄다 싣고 갔다. 막내딸의 당부대로 그 속에 끼어 몇번 나가다 그만두었다. 목사님 설교할 때 잠이 쏟아지길래, 내 옆에 앉아 지성스럽게 손을 비비고 앉았는 밤실댁한테 자꾸 기댔더니, 밤실댁이 자기까지 우세스럽다고 나를 꼬집었다.

“왜 찝는가아?”

“교회서는 기도허는 것이 밥값이여어.”

밤실댁은 교회서 주는 점심밥값을 하기 위해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전도사가 밤실댁 기도하는 모양을 보고,

“할머니, 교회서는 손을 안 비벼도 됩니다, 그냥 가만히 모으고 기도하세요.”

그러나 밤실댁은 끝내 기도하는 법을 바꾸지 못하고는 나와 함께 교회나가기를 그만두면서 하는 말이,

“손을 비벼야 기도허는 맛이 나는디, 교회기도는 재미가 영 없드만.”

밤실댁이나 나나 아무래도 교회는 취미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회를 그만두고는 부뚜막의 조앙신한테 마음놓고 손을 비볐다. 조앙신이나 성주신이 천당을 가게 해준다는 말은 못 들었고,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들었으니, 천당을 갈지 지옥을 갈지 마음에 좀 걸려서 은하수 건너 남편한테 물었다.

“어이, 자네가 이승서 넘 못헐 일을 한번이라도 했는가, 안했는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했더니,

“그러면 자네는 정해진 바가 없네.”

이승에서도 늘 나를 약올리며 즐거워하던 남편이 저승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판단이 얼른 서지 않았다. 놀려먹기 좋은 나 오기만 기다리는 남편 있는 쪽으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새버릴까, 해찰을 하는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구름이 흐르고 해가 나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졌다. 적막한 빈집에서 빗장이 질러진 안방 시렁 위에 올라앉아 있던 대바구니가 방바닥으로 코콩, 하고 떨어져내린다. 집이 심심해 죽겠다고 한번 살짝 몸을 떨어서 생긴 일이다. 아이들은 시렁 위에 그 대바구니가 있는지 없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서 서둘러 떠났다. 알았어도 지금 세상에서는 쓸데없는 것이라 내버려뒀거나 아니면 내 옷가지를 그리했듯이 불살라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잘된 일이다. 심심해서 몸을 떨어도 소리나는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면 집은 심심함에 지쳐 금방 쓰러져버릴 것이므로.

가을 지나 겨울 초입에 아이들이 사십구재를 지낸답시고 내 육신이 묻힌 곳에 왔다가 심심해 죽을 지경인 집에 들렀다. 이장이 큰아들을 붙잡고 집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어이, 만택이, 누가 와서 이 집을 팔라고 허는 사람도 있고, 빈집으로 놔두면 암만 해도 집이 상헐 것인데, 팔 것인지 허물 것인지 결정을 허는 것이 좋을 것이네.”

아이들이 두세두세 집 문제를 두고 회의를 했다. 둘째아들 영택이가 자기는 모르겠다고 형이 알아서 하라고 하자 셋째아들 순택이도 고개를 끄덕였고 첫째딸 정순이도, 막내딸 미순이도 혹은 뾰루퉁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큰오빠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러면 집은 팔지 않고 놔뒀다가 나중에 내가 와서 살어야겄다아.”

큰아들 만택이가 실은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또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윗집 한강쟁이댁네도 오류골댁네도, 살푸쟁이댁네도, 다아 나중에 아들들이 와서 살겠다고 하는 빈집이고 이제 우리 집이 그렇게 되었다. 맨 먼저 쓰러진 건 한강쟁이댁이다. 한강쟁이댁 집은 하도 심심해 몸을 떨어봤지만, 그 어떤 소리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없어, 할 수 없이 제 몸을 바수었다. 바스락, 바스락, 불불불불, 치르르치르르, 한강쟁이댁네집은 제 몸 갉아먹는 재미로 이승 햇수로 삼년을 버티다 마지막에는 제 몸에서도 더이상 소리낼 것도, 움직일 것도 남아나지 않게 되어서 눈 많이 오던 어느 하룻밤을 택해 폭삭 땅으로 꺼져버렸다.

겨울 지나 봄이 되자, 앞집 사는 백세할멈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한번씩 내 집으로 왔다. 백세할멈은 팔십에 한번 깜빡 저승길 초입까지 왔다가 돌아가서는 반 귀신으로 산 지 이십년째다. 할멈은 거미줄이 걸리는 마당을 휘적휘적 기어와서 뚤방 위로 올라섰다. 그러곤 발을 탕탕 구르며,

“만태가아.”

서울 용산에서 식당을 하는 만택이가 대답을 할 리가 없다. 할멈은 다소 기가 죽었다.

“기셔어?”

철컥, 방문을 연다. 서늘한 냉기뿐이다. 아랑곳없이 할멈은 내 집 안방으로 쑥 들어왔다. 나는 어떻게든지 할멈을 맞아 뭐라도 입맛 다실 것을 내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육신이 없으므로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할멈이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내 혼도 할멈을 마주보고 앉았다.

“무수굴떠기, 어디 갔다가 인자 온가아?”

나는 흠칫 놀랐다.

“내가 봬요?”

“훤허게 봬제애.”

“나 세상 떠난지는 아요?”

“무수굴떠기가 언제 죽었등가?”

“나 초상친 날 떡도 맛나게 묵어놓고는 그러요?”

“우리 아들이 그러는디 내가 요새 노망이 들었다고 허데.”

말해놓고 할멈이 웃었다. 우리가 웃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어무니, 또 여가 와 기시요오?”

할멈의 아들이다.

“무수굴떠기가 맛난 것 내노면 그것 묵고 갈라고오.”

“무수굴 아짐 돌아가신 지가 언젠디 어느 세월에 맛난 것을 가져온다고 그려어.”

“말도 허고 웃기도 허는디야?”

“맛난 것은 집에 가서 묵기로 허고 빈집이서는 그만 나와요오.”

착한 아들이 마루에 앉아 어미를 기다린다.

“머 해줄라가디이?”

“어무니가 좋아허는 모든 거 다 해주지이.”

“그럼 그리여. 무수굴떠기 담에 또 보드라고오.”

“뭣을 또 본다고 혀어, 자꾸우.”

아들이 어미를 업는다. 어미가 아들 등 위에서 아기처럼 들썩들썩 춤을 춘다. 맛난 것 먹을 욕심에. 내가 백살까지 살았으면 우리 만택이도 저리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할멈의 아들처럼 할 수 없어 우리 만택이가 그리 슬피 울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해동되고서부터 부쩍 총기가 없어진 할멈이 며칠 오지 않아서인가. 내 집이 드디어 바스락바스락 제 몸 갉아먹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승사람이어도 반은 저승사람이라 집이 몸 떨어대는 소리를 할멈이 알아듣고 아들 내외가 다 일 나가고 없는 틈을 타 살금살금 내 집에 왔다.

“무수굴떠기 집이 바시라지네.”

집이 몸을 떨어대도 응답해줄 것이 남아나지 않아 결국 집이 절로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지난겨울 아무도 모르게 집에 들어왔다 나간 고물장수 탓이 컸다. 낮에 동네에 한번 왔다 간 고물장수는 아무도 모르게 밤에 다시 한번 왔다. 그래서는 만택이가 질러놓은 빗장이란 빗장은 모조리 열어젖히고 부뚜막에 걸쳐져 있던 솥단지며 찬장에 포개포개 올려진 스뎅 그릇이며 장독이며 화로에다 부젓가락까지 깡그리 실어내갔다. 그 통에 안방에 뒹굴던 살 빠진 대바구니가 고물장수 발길에 폭삭 찌그러졌다. 이제 우리 집은 바람과 햇빛과 달빛과 별빛만이 들고나는 집이 되었다.

“어이, 올라며는 안즉도 멀었는가?”

“집이 혼자 애달프요.”

“죽어 오지랖은 아무 쓸 데가 없어. 이승사람들이 귀신 씨나락 까묵는다고 숭봐.”

남편의 그 말에 귀신들이 와그작와그작 웃어젖혔다. 귀신들이 웃어젖히는 그 순간에 이승의 우리 집 마당 한귀퉁이에서는 복사꽃이 화들짝 피어났다. 꽃이 피어나도 꽃 피었다고 좋아라 해주는 사람 없어 더 외로웠던지, 집이 유난히 몸을 떨어대던 어느날 저녁 무렵,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트럭에서 내려 우리 집 언덕길을 자박자박 걸어들어왔다.

“복사꽃 환한 것 좀 봐, 꿈속 같애.”

백세할멈 말고는 사람 훈기를 맡을 수 없어서 몸을 바스스 떨어대던 집도 젊은 남녀가 들어서자마자 꿈꾸듯이 조용해졌다. 아, 혼자 남은 집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 이제사 안심하고 황천길을 가자, 하고 막 돌아서서 몇걸음 떼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승에서 한발짝 몇걸음이 이승에서 달이 몇번을 떴다 지고 해가 몇번을 지고 뜨고 하는 동안임을 이승사람들이 알란가는 모르겠다. 그런 것은 몰라도 울음 우는 사람 속은 누가 알아줄란가, 애달픈 마음에 나는 아직 달 뜨면 달빛으로 해 뜨면 햇빛으로 내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천을 헤매는 중이다.

“인자 까묵을 씨나락도 동나겄네, 동나겄어.”

은하수 건너참에서 남편은 여전히 투덜거린다. 그 소리에 귀신들이 와그르르 웃는 속에, 속없는 귀신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낙의 울음소리에 바짝 귀를 모두었다.

 

 

철수와 영희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속없이 좋아라 한 지 일년도 안돼 철수와 영희는 자신들의 생활터전이던 재개발구역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건물주인이 세입자들도 모르게 벌써 개발업자에게 건물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은 다 쫓겨나게 생겨서야 알았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가게가 철거되고, 개업할 때 물고 들어온 권리금과 시설투자금은 그대로 날리고 숱한 대거리질과 욕설과 싸움과 하소연 끝에 손에 받아쥔 보상금은 말 그대로 이사비용에 불과했다. 철수와 영희는 그렇게‘길바닥’에 나앉았다. 자신이 왜 재개발에 좋아라 박수를 쳤는지 기가 막혀서 철수는 수시로 자살충동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철수는 악을 썼다.

“내가 즈그들한테 뭣을 잘못했냐고오. 내가 뭣을 잘못했는데 나를 즈그들 맘대로 쫓아내냐고오.”

동생이 사고를 일으키거나 어이없게 죽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 철수 누나가 서둘러 매형의 출퇴근용 트럭을 빌려줬다. 그렇게 해서 철수는 졸지에 대구탕집 사장에서 건어물 행상이 되었다. 문제는 살 집이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철수와 영희는 도시근교 시골동네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마침 어디선가 요새 시골집들은 돈 안 주고도 살 수 있는 데가 있다더라는 말을 들은 참이었다. 아예 돈을 안 주고 살 마음은 없었지만, 돈을 안 주고 살 수 있는 집을 기대하는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시골동네를 돌아다녀봤지만, 그러나, 돈을 안 주고 살 수 있는 집은 집이라기보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은 세를 놓지 않거나 세를 놓더라도 자신들 형편으로는 부담이 됐다. 세간을 들여놓고 날 어두워지면 세 식구가 깃들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운 느낌에 부부는 문득문득 진저리를 쳤다. 종일 매운 봄바람을 맞으며 시골동네들을 돌아다니다가 그 집을 발견하던 때도 그렇게 진저리나는 나날 중의 어느 하루였다.

처음에 영희가 이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꽃 때문이었다. 살 집을 찾아 헤매던 그 봄날의 저녁참에, 마을 앞을 지나가다가 언덕 위에 선 이 집에서 번져나오는 복사꽃의 분홍빛이 먼 데서도 자기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당신들도 살 집이 없어 외롭지요? 내가 사는 이 집도 외롭답니다. 나는 이렇게 어여쁜데 봐줄 사람 없어 외롭고, 나를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 없어 외롭지요. 복사꽃의 분홍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희는 그냥 가자는 철수를 기어코 이 집 쪽으로 돌려세웠다.

“꽃이 예쁘잖아. 근데 어쩐지 집이 외로워 보여.”

“하여튼지 외로운 것 디지게 좋아해.”

“무념무상한테 무슨 말을 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 중에 몇가지가 결핍된 것 같은 철수를 두고 영희는 좋을 때는 명경지수라 하고 좋지 않을 때는 무념무상이라 한다. 명경지수든 무념무상이든, 그래도 상황이 다급한지라 철수도 나름으로는 빈집이면 좋겠는데…… 빈집이면…… 하면서 들어오다가, 왈칵 끼치는 빈집 냄새에 반가워서 그만,

“빈집인가 보다.”

외치고 말았다.

“여보, 이 집은 입식을 안했나 봐. 아궁이도 있어.”

영희가 소곤거렸다.

가만가만 집 구석구석을 살피던 철수가 다가와서,

“솥은 사다 걸면 되겠다.”

“솥에다 물 데워 목욕하면 좋겠다. 그지이?”

영희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어둠이 마당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루에 걸터앉아 어둠이 차오르는 마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모양새가 들일 끝내고 와서 오래 산 자기 집 마루에 노곤한 몸을 부리고 앉았는 사람들 영락없다.

“우리 집 같다, 흐흐.”

철수가 불량스럽게 웃었다.

“우리 집이면 좋겠다. 크크.”

영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영희는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시누이집에 맡겨놓은 아이가, 엄마 언제 우리 집 가? 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여기서 살아버릴까?”

영희가 눈을 찡긋했다.

“주인이 있을 텐데?”

철수의 반문 같은 대답이다. 지치기는 철수라고 다르지 않았다. 둘은 생계용으로 쓰다 졸지에 이삿짐차가 돼버린 트럭 짐칸을 바라보았다. 당장에 비닐을 벗기고 짐을 내리고 싶었다. 날은 금방 어두워졌다.

“저 집에 가서 물어보자.”

둘은 반짝 하고 불이 들어오고 있는 앞집으로 갔다. 한데로 나 있는 아궁이 앞에서 거의 참선하는 표정으로 앉아서 스티로폼, 플라스틱 막걸리통, 비닐 같은 쓰레기를 태우던 집주인인 듯한 남자가, 꼭 아는 사람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색을 한다.

“뉘신지……”

“윗집이 좋아서 들어와본 사람입니다.”

“집은, 좋지요. 윗집 지을 때, 내가 열살이었는데, 똑똑히 기억납니다. 이 집 다 짓고 나서 가려는 목수를 내가 우리 집도 지어주고 가라고 붙잡고 통곡을 하는 통에 결국 우리 집도 마저 지어주고 갔지요.”

“아 예, 그러셨군요. 그러면 못해도 삼사십년은 되었겠네요?”

“내가 육십이니, 오십년이지.”

영희는 날은 어두워지고 몸도 힘든데 남자들의 한담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사실은 저희가 윗집에 들어와 살고 싶어서……”

“살고 싶으면 사는 거지요, 뭐.”

기대도 안했는데, 너무나 선선해서 영희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가 주인이세요?”

“주인은 아니지만…… 잠깐 지다려봐요이. 내가 집주인 연결해줄 테니까는. 말이 안 있소이, 말만 잘하믄…… 자다가도 떡을 얻어묵는다는 이…… 이, 만택인가? 자네 집에 누가 왔어. 살겄다고. 보매는, 사람들이 점잖고, 좋아, 아조. 어쩔란가? 전화 바꿔줌세이.”

매콤한 쓰레기 연기가 저녁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부부는 바짝 긴장했다. 철수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저, 사실은 내가 가서 살 집이기는 헌데…… 허어 참, 어떡해야 좋으까이. 꼭 우리 집에서 살고 싶어요?”

전화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선해서 우선 마음이 놓인다.

“예. 꽃은 예쁜데 집이 외로워 보인다고, 집사람이 자꾸……”

말을 해놓고 보니 아차, 실없는 소리를 했구나 하고 마음이 졸여졌다.

“꽃이라고요? 우리 집에 꽃이 있었던가앙? 하여간, 언제까지 살으실지는 몰라도 꽃이 이뿌다면은, 살으야지요 뭐.”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했다. 무슨 세상에 이런 집주인이 있나.

“집세는……”

“세는 무슨. 그쪽에서 세를 받으시야지.”

“저희가요?”

“집 지켜주잖애요.”

철수는 너무나 감격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대로 살게만 해준다면 아무 탈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작은 행복에 만족해하면서 살 사람들을, 자기 이득을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해서 내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얼굴도 한번 안 보고, 자신의 집을 내주는 사람이. 꽃이 이쁘다면 살라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 철수와 영희는 그들의 소망대로 이곳 진평리에 돈 안 주고도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철수의 대구탕집이 철수하자,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머리띠를 두르고 모여앉아 있던 순대국집, 떡볶이집, 수예점, 빵집 들이,

“이름이 철수라 철수하는 거여, 뭐여어. 철수 가니 영희도 가는 거고이.”

하는데, 부부는 뒷덜미가 붉어져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전날 누나가 와서,

“버텨봤자 소용없더라. 한푼이라도 더 준다고 할 때 빠져나오는 것이 그나마 현명하지.”

서울 살 때 두번이나 철거민이 되어본 경험이 있는 누나의 조언이 헛말은 아니다 싶어 다른 사람들보다 이사비용에 위로금 조로 몇백을 더 얹어준다고 할 때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던 게 아무래도 잘한 일 같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철수는 난생처음 본 남의 빈집 마루에 누워 안도감에서 나오는지 속이 상해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지금은 빠져나오는 것만이 죽음과 죽임에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대충 청소하고 이사 들어와서 솥단지 새로 사다 걸고, 꽃이 이쁘다면 살라고 한 주인이 살기 편리하게 고쳐쓰라는 허락을 해줘서, 부엌에 수도 가설해서 반 입식 부엌도 만들고 도배장판 하느라고 핀 꽃 지고 새잎 돋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봄 한철을 보내고 난 초여름 새벽에 부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와그르르, 와그르르르, 다갈다갈다갈, 쿠웅쿵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세살배기 아들 복주가 잠결에도 무쩌워 무쩌워 하며 영희 품을 파고들었다. 영희가 복주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떡해, 여기도 철거하나 봐!”

문을 열었다. 대번에 매캐한 먼지냄새가 훅 끼쳐왔다. 먼지는 농로 건너 야산 아래 있는 레미콘공장에서 나고 있었다. 이사 들어오고 며칠 안돼 진평리 근처에 채석장과 레미콘공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소리가 나거나 먼지가 일지는 않았다. 당장 갈 곳이 없으니 레미콘공장이 아니라 더한 것이 있다 해도 이사는 들어왔을 것이다. 한번 나기 시작한 굉음과 먼지는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마당 귀퉁이에 피어난 하얀 수국 꽃봉오리가 먼지를 뒤집어써서 회색으로 보였다. 검은 빛깔을 띨 정도로 반질반질 윤이 나던 마루에도 먼지가 허옇게 쌓였다. 불안하고 불편한 며칠이 지났다. 복주를 어린이집 차에 실어 보내놓고 집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방송 소리가 났다.

“에에, 지난번 이장단, 농민회, 청년회 및 축산계, 작목반 등으로 꾸려진 유정면 환경오염시설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결정헌 대로 오늘은 돌공장 앞에 가서 항의를 허기로 헌 날입니다. 이 점 유념하셔서 출타허실 분들은 자제허시고 오늘 헐일은 되도록 다음으로 미루시고 모정 앞으로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에에, 진평리, 평주리, 영산리, 봉현리 등 순양석재공장 피해 인접부락이서 데모를 허는 날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볼일들을 일찌거니 끝마치시고 모정 앞으로 모다들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집앞 텃밭에서 베트남 며느리와 고추를 따다 말고 아랫집 아줌마가 인사를 한다. 처음에 영희가 복주에게, 아랫집 할머니한테 인사드려,라고 했더니, 할머니 아니고 아줌마라고 혀, 해서 아줌마가 된 할머니다.

“애기 델다주고 온갑네?”

이사 들어오기 전에 대충 인사를 하긴 했지만, 영희는 동네사람 누가 인사를 해오면 왠지 부끄럽다. 그래도 화답은 해야 하겠기에,

“예에, 고추 많이 열렸어요?”

“많이 열면 뭣 헌당가아. 한개를 못 묵겄는디이. 못 묵기만 허간디이. 시내 농산물 공판장서 유정면서 오는 것들은 사주들 안헌다네애. 독가리 씹힌다고오.”

“아, 예에.”

“썩을놈들이 기어코 즈그들 맘대로 공장을 돌려부네이. 그렇게 허지 말라고 애원을 했는디도오.”

“애원을 해요?”

“원래는 레미콘공장이었는디, 허가도 안 받고 독 깨는 기계를 척 허니 들여놓고는 주민들 눈치 살살 봐감서 돌리더라고.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애원을 헌 지가 한달이 넘었어. 오늘 가서 아조 요절을 내놔야 쓰겄구만. 복주엄마도 가야제.”

“저, 저는, 일, 일이 있어서……”

“안 나가면 벌금 물어야써. 벌금 안 물은다고 해도 나가야제애. 인자 복주네도 주민이잖여어. 언제까지 타관사람 모냥으로 살 거여어.”

쑥스러워하는 영희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살갑게 대해주는 것은 좋으나, 타지사람인 영희에게는 좋은 것이 꼭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늘이 복주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 한다네요. 그래서 거기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통닭 몇마리허고 음료수 몇병 밀어넣어주고 와아.”

영희가 돈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데,

“한집에 한집씩은 꼭 와야漏게애.”

먼지 묻은 고추 땜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아랫집 아줌마가 안 오면 안될 것으로, 쐐기를 박는다. 영희는 아랫집 아줌마의 오지랖이 좀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읍내 가는 버스를 탔다. 읍내로 나가 아줌마 말대로 통닭 다섯마리에 음료수 몇병을 넣어주고 엄마 간다고 입을 삐죽이는 복주를 뒤로하고 어린이집을 서둘러 나온 것이, 아무래도 아줌마 말이 켕기기는 켕겼던 모양이다. 장사하는 남편한테 갈까 말까, 오늘 쉬라고 했는데 정말 쉬어버릴까 어쩔까,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한참을 고민한 것도 아줌마 때문이고 그러다가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만 것도 아줌마 때문이었다. 아랫집 아줌마가 음식도 갖다주고 하면서 자기에게 살갑게 굴었던 것이 아무래도 이럴 때 이런 식으로 써먹으려고 그랬던 것만 같아져서 절로 실소가 나왔다.

‘여차직하면 사람 꼼짝 못하게 가둬버리려고 말이여.’

버스에서 내리는데, 마침맞게, 중굿중굿하니, 돌공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농민회, 청년회 들은 경운기에 콤바인까지 몰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시방 안녕을 허들 못혀어.”

안녕하시냐고 인사했던 것이 무색하여 그렇잖아도 후텁텁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가야제애, 가서 악을 써야제.”

“가만 앉았으면 어디 살겄든가?”

“아, 들깻잎삭 한나를 못 묵겄어어, 어뜨케 문지가 쌓여싸서어.”

“나는 엊저녁에 잠을 한숨도 못 잤네, 다갈다갈다갈다갈, 쿵쿵 허는 통에.”

“엊저녁뿐이간디. 한달 내내 그러제. 저것을 그대로 놔두면 우리가 몰라죽겄어어.”

하나같이 똑같은 스타일로 바글바글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 할머니 들이 뜨거운 볕 아래서 돌공장을 성토하는데,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복주엄마도 가야제애.”

“예? 아 예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깜빡 잊어먹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영희는 화들짝 놀랐다. 마음은 뒷걸음질을 치고 싶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복주엄마, 영희는 쭈뼛쭈뼛 돌공장 가동저지 시위대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오뉴월 염천. 해는 어디로는 절대로 갈 생각 없이 정확하게 돌공장을 향해 가는 사람들 머리 위에서만 끓어대는 것 같았다. 꼭이 그런 것만 같다,고 영희는 생각하며, 울고 싶은 마음으로 돌공장 앞으로 나아갔다. 진평리와 그 주변 마을들인 평주리, 영산리, 봉현리 사람들이 돌공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방송에서 들은 대로 돌공장과 인접한 피해지역 주민들이다. 악이라도 쓰겠다고 돌공장 앞까지 오긴 왔으나,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서성대기만 하다가 다리가 아팠는지 여자들은 돌공장 정문 앞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도 못한 일종의 연좌데모의 형식이 되었다. 영희도 여자들 한귀퉁이에 낑겨 앉았다. 대부분이 할머니들이고 그중 젊다는 축이 환갑 이쪽저쪽 나잇대의 아랫집 아줌마 또래고, 젊다는 표현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삼사십대는 영희를 포함해 서너명 정도다. 정면 길 건너편에는 푸른 비닐천막이 쳐져 있다. 남자들은 모두 그 천막 안에 들어가 있었다.

‘여자들은 뙤약볕 밑에 있는데 자기들은 그늘막에?’

시위하러 나온 중임에도 영희 눈에는 남자들의 꼴불견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계속, 내 집 내 가게 뺏길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괜히 그놈의 복사꽃 때문에 낯선 동네 홀려 들어와서 내가 이 꼴이 뭔 꼴인가, 되뇌었다. 조금 있으면 복주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그 시간에 맞춰서 집에 가 있어야 한다. 영희는 틈을 보아 시위대열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줄행랑을 치리라 결심하고 말없이 앉아 있는 시위대 뒤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뺐다. 모두들 누가 일어나서 가자고만 하면 돌아갈 것 같은 표정으로 뙤약볕 밑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참인데, 더위에 양복을 빼입고 짙은 썬글라스를 쓰고서 아까부터 주민들 앞을 왔다갔다 하며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는 남자가,

“할머니들, 멋 한다고 이 뙤약볕 밑에 앉아 계시오이.”

“문지 때매 못 살겄단 말이요. 그래서 나왔제애.”

꽃무늬 몸뻬 할머니가 대답 뒤에 바로‘그놈, 생긴 꼬라지 허고는 기생오라비맹이로 뺀지르르허네’혼잣말을 뇐다.

“그러면 못 살겄다고 악을 써야제, 왜 가만히들 있으시요?”

“올 때는 그리야겄다고 했는디 막상 말이 안 나오요. 그런디, 집이는 누구요?”

“나요? 나 알아서 뭐 할라고? 연애할라고?”

이제쯤 빠져나갈까 틈만 보고 있는 참인데, 왠지, 썬글라스 남자가 기분 나쁘다. 할머니들 앞에 두고 장난질을 하는 것 같은 게. 정문 앞에서 이 사단이 벌어져도 길 건너 그늘막의 남자들은 도통 햇빛 쪽으로 나와보지를 않는다. 꽃무늬 몸뻬를 가슴 위까지 끌어올린 할머니가,

“남자들은 그짝이서 뭣들을 혀어.”

“여가 허가받은 디모구역이라우.”

“허가를 왜 거그다 받어어. 공장 앞에다 받어야지이.”

“공장 앞으로는 공장이서 받아놨다고 안 내준게 여그다 받았지라우.”

“여그서 디모허면 누가 잡아가는 거시여, 머시여.”

“하먼이라우, 잡아가지라우.”

“오살, 뜨거 죽겄네.”

잡혀갈까 겁났는지, 할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나 그늘막 쪽으로 뒤뚱거리며 건너갔다. 몇사람이 할머니를 따라 일어났다. 그통에 우연히 만들어진 연좌데모의 형식이 흐트러졌다. 그 순간을 노렸던 것일까.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덤프트럭 한대가 정문을 향해 질주해오고 있었다. 적재함에는 바윗덩이가 가득 실려 있다. 레미콘공장 건너편 산밑 채석장에서 실어온 것이다. 그 순간, 누구보다 할머니들이 가장 먼저 덤프트럭 앞으로 달려나갔다.

“인자 돌 좀 고만 깨애!”

드디어 할머니들의 악이 터져나왔다.

운전석에서 기사가 고개를 쑥 내밀고,

“칵 갈아버릴까보다 그냥.”

끔찍하게 내뱉는다. 걷는 모양이 유독 어기적거리는 할머니가, 어기적거리며 나서서,

“어디 니가 나를 갈란가, 어쩔란가 한번 보자 이놈아.”

하고서 트럭 바퀴 밑으로 들어갔다. 여태 정문 안에서 주민들을 주시하고 있던 공장 남자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할머니를 난짝 들어올려 길가 수풀로 던지듯이, 패대기쳤다. 영희는 지금 제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싶었다. 대개가 칠십팔십인 할머니들이 벌떼처럼 젊은 남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오십육십 아줌마들은‘언니’들에 밀려 주춤거리고 삼십사십 여자들은 숫자 자체가 희박하고 이십 색시들은 씨가 말랐으므로, 주력부대는 자연스럽게 칠십팔십대가 된 것이다. 썬글라스 남자가 공장 남자들로부터 할머니들을 떼어내며,

“이러면 영업방해로다가 현장체포감들이여어어, 우리 언니들이 토옹 멋을 몰라아.”

희롱하듯 할머니들을 놀리는 것이 징그럽다.

마치 나들이라도 나온 것처럼 하얀 면티 위에 단추를 잠그지 않은 하와이풍 남방을 걸치고 챙 넓은 야외용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할머니들 얼굴에 사진기를 들이댄다. 하와이남방의 지휘 아래 공장 남자들은 손쉽게 할머니들을 제압했고, 썬글라스 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덤프트럭은 유유히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해는 뜨거운데 여자들은 허우적거리고, 그늘막 남자들이 그때서야 어이, 그러지 말어, 말로 허랑게들, 말로. 배운 사람들이 점잖지 않게 왜들 그려어, 그야말로 속터지게 휘적휘적 길을 건너오는데, 이게 무슨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순간, 목구멍 안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려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내지르는 수밖에.

“아저씨, 아저씨는 진짜 누구예욧!”

“야, 저 아줌마도 좀 찍어줘라. 자기는 안 찍어준다고 서운한갑다.”

하와이남방이 영희 얼굴에도 사진기를 들이댔다.

“사진기 치워욧!”

“아줌마 얼굴 이쁘니까, 많이 찍어줘야지이.”

토할것 같다.

“야이, 나쁜놈아아아아아아아아!”

분노가 햇빛만큼이나 부글부글 타올라, 영희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은 여전히 울고 싶기만 할 뿐이었다. 썬글라스나 사진기 같은‘나쁜놈들’에게 화가 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철수는 시장 입구 백년약국 옆에 차를 세웠다. 시장에서 한복집을 하는 누나가 약국과 친해서 얻은 자리다. 누나는 약국 앞에 자리를 잡아주며, 주인 약사에게, 원래 동생이 엔지니어였다고 말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었다. 하청에 재하청 공장을 전전하다, 누군가 노조를 만들자고 해서 동조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해고에 반발해 출근투쟁 하는 와중에 해고자와 비해고자 간에 싸움이 났다. 경찰이 출동했고 싸움은 해고자와 경찰 간의 싸움으로 발전했고 자신을 찍어누르는 경찰의 방패를 빼앗아 경찰을 쳤는데 하필 경찰의 앞니가 나갔다. 폭력으로 기소되어 배상은 배상대로 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고 나서 취직하겠다는 생각은 단념하고 한번 들어서면 빼도박도 못한다는‘영세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섰던 것인데,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살기 위해 싸움을 한다는 것도 부질없게 여겨지고 살의충동만이 생생하게 살아나던 것이. 누나는, 내가 죽든지 업자놈들을 죽여버리든지 하겠다고 술을 퍼대며 악을 쓰는 동생이 무서웠다. 동생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은 정말 그 말대로 죽든지 죽이든지 둘 중에 한 상황이 닥칠 것이 두려워서라는 걸 아니까, 무서웠다. 그래서,

“니가 생선장사 해본 거잖아아. 건어물도 생선이여어. 물건은 매형 친구가 하는 도방에서 띠면 되고오.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너는 장사만 해애. 장사목도 봐뒀어어. 어쩌겄냐아, 세상이 아무리 개똥 같애도 살으야제.”

누나가 타이르듯이 말할 때는 꼭 어머니 흉내를 냈다. 그래애, 어쩌어. 그런 누나의 말투 때문에 철수는 매번 그것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꼴랑 넘어가고 말았다.

누나가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건물을 철거하는 포클레인 소리는 바로 옆에서 윙윙거렸다. 지금, 시장 건너 철수가 쫓겨나온 바로 그 동네에 지상 몇층인지 모를 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가는 참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데 누나가 나타났다.

“니 처는?”

“애 유치원에서 생일잔친가 뭔가 한다 그래서. 엎어진 김에 뭐라나, 쉬라 그랬지 뭐.”

누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속으로 우물거리는 말이 필시, 핑계가 좋아 떡 사먹는다는 것이리라. 영희는 요새 누나에게서 한복 일을 배우고 있는 참이다.

“니 매형이 일하다 다쳐서 병원 있단다.”

매형은 막노동을 한다.

“언제?”

“일주일 있다 오늘 퇴원해.”

“그런데 왜 인자사 말해?”

“늦게 말해 겁나게 미안허다, 야.”

누나는 동생 형편 생각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누나의 미안하다는 말이 철수를 더 속상하게 한다.

“아니, 미안해하지는 말고.”

“커피 마셔어.”

쓴 커피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 쉬라고 말은 하고 나왔지만, 막상 점심때가 지나도 오지 않는 영희가 철수는 조금은 서운해졌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장사도 안된다. 일찌감치 장사를 접고 누나 한복집에 갔다. 퇴원한 매형이 누나 가게에 있다. 다리에 부목이 대어져 있다. 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환자라서 입맛이 없을 거라 생각해 복숭아 통조림을 한통 사가지고 갔다. 매형은 철수와 영희의 중신아비다. 어느날 퇴근해서 누나 한복집에 들른 철수를 붙잡고 매형이 걀걀걀 웃으며 장황하게 하는 말이,

“나랑 같이 일 댕기는 사람 여동생이여. 학벌도 처남보다 나아. 여상고 나와가지고 중고자동차 매매상에서 경리로 내내 일허다가 방송통신대학을 나와갖고는 시방은 글쓰기교실이라나 뭣인가를 생업으로 삼고 있고. 그런디, 이 아가씨 취향이 처남허고 좀 일맥상통허는 바가 있는 것 같어. 선을 몇차례 봤는디 자기는 거 머시냐, 속물허고는 절대로 결혼허고 싶지 않다고 허는 통에 혼기를 놓쳐부렀다등만. 처남도 안 그랬는가? 아무리 이뻐도 돈 애낄 줄 모르고 무식헌 여자는 싫다고 말여. 각설허고, 그런디이, 걀걀걀, 아가씨 이름이 영희랴. 철수와 영희. 둘이 얼매나 멋져어. 이름만으로도 환상의 조가 될 것이여, 걀걀걀.”

단순히 이름이 철수고 영희라는 이유만으로‘환상의 조’가 된 두 사람은 그러나, 결혼한 내내 그다지 환상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유의 걀걀거리는 웃음을 웃으며 매형이 불쑥,

“어이, 처남, 자네 눈에는 저기 저 니아까에 복숭아는 눈에 안 비고 가게 구석에 문지 둘러쓰고 앉았던 요것은 비든가?”

누나가 얼른,

“앗따, 환자가 뭔 말이 그리 많소이.”

요새는 한복집도 대형화 고급화 추세여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재래시장 영세 한복집은 경기가 바닥이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한복 일을 배워서 기술만은 일류 못지않건만, 누나가 노상 하는 말대로‘웬수놈의 자본’이 없어 누나는 자구책으로 이불집도 겸하게 되었다. 하릴없이 한복집 선반에 올려져 있는 텔레비전만 건성으로 쳐다보다가 집으로 왔다. 시 경계를 벗어나면 바로 농공단지가 나오고 농공단지를 지나 읍내로 가는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서면 진평리 마을이 곱다시 들어앉아 있다. 마을 앞까지 읍내를 거쳐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녀서 교통사정이 나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철수는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것도 같은 시 비슷한 한구절을 떠올렸다. 그‘어디선가’의 출처가 바로 영희인 듯도 하지만, 출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철수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눈물겨운가,라고 가만히 뇌었다. 그러나 막상 외고 나니, 기분이 좀 나빠졌다. 현실은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훨씬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시 한소절 읊었다가 기분만 잡친 것 같아,

“개자식들.”

맥락 없는 욕설을 뇌까리며 집으로 들어섰는데, 집은 고요하다. 일부러 큰소리로 식구들 이름을 부른다.

“복쭈야아, 복쭈 엄마아.”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다.

“누구요오?”

아랫집 치매 들린 백세할머니인 것을 알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자신들이 이사오고 나서 발걸음을 안하더니,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기어코, 방안으로까지 진입하고 말았다. 마누라는 도대체 어디를 간 건가. 갑자기 화가 치솟아서 부엌문 앞 수돗가의 고무통에서 하루종일 데워진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치매노인이 마루로 나와 오도카니 앉더니 중얼거린다.

“무수굴 양반, 내가 미안허요이.”

“뭐라고요?”

화난 음성으로 대꾸했다.

“내가 노망이 들었는가, 자꾸 넘의 집, 우리 집을 분간을 못허요야.”

할머니와 거리를 두고 마루 끝에 나란히 나앉아서 어둠이 내리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날이 어두워오는데도 채석장에서 캔 돌을 들판 정면 야산 아래 레미콘공장으로 옮기는 덤프트럭들이 들판을 가로지른 농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공장 앞에는 울긋불긋,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희뿌옇게 보이는 듯도 하다. 현실은 전혀 꽃빛이 아니라는 걸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도 아닌데, 알면서도 또 그깟 복숭아 붉은 꽃빛에나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처지가 속상해서 울고만 싶었다. 울고 싶은 것은 자긴데,

“그래서 내가 자꾸 울고만 자프요. 울고 자픈게 노래나 한자리 할랑게 들어보씨요이. 고나헤 가세가세애 동백꼬슬따러가새애 붉은동백은 님기신디다 걸어노코오 허연동백은 부모방전 걸어놓쎄애……”

할머니의 노랫소리를 듣고 앉았자니, 화난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노래를 좀더 듣고 싶은 마음이 동하려는데, 아랫집에서 사람이 달려온다.

“할머니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한 할머니 손자다. 손자의 등에 업혀 할머니도 아랫집으로 내려가고 난 뒤,

“아빠아!”

언제 들어도 반가운 아들 복주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순수한 사람

 

“아니, 세상에 뭔 그런 놈들이 다 있어?”

돌공장 가동저지 시위에 갔다 온 후부터 영희는 잠자리에 들어서건, 밥상머리에 앉아서건 시도때도없이 대답 없는 질문을 해댄다. 새벽부터 들판을 건너오는 굉음에 눈을 뜬 아침이라 왠지 밥맛도 없다. 철수는 아침부터 밥에 물을 말아 대충 후루룩 마시고 있고 영희는 제 밥을 제쳐두고 복주에게만 밥을 먹이고 있다.

“그래도 당신은 너무 나서지 마. 우린 외지 사람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할머니들을 실실 약올리며 협박까지 하는데, 열불이 나더라고오.”

“날씨가 더우니까, 열이 나지.”

철수 말에 영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고. 자신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솟았던 것은 단지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이라고. 그 몹쓸 햇빛 때문이었다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읍내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둘은 시내로 들어갔다. 철수는 시장입구 약국 옆 골목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하고, 영희는 시누이의 한복집에서 한복 일 배우고, 철수와 점심을 먹은 다음 영희가 먼저 버스를 타고 읍내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오든가, 영희가 들르지 않으면 오후 서너시쯤에 어린이집 차가 아이를 집앞 큰길까지 실어다준다. 시누이에게서 한복 일을 다 배우고 나면 집에서 일을 할 수도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둘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다시 시내에다 작은 아파트라도 장만하고 남들 보내는 것만큼은 아니라도 아이 태권도학원 정도는 보내고 부자로는 못 살아도 빚은 안 지고 살면 영희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자면 철수 말대로 우선 한복 일을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고 영희도 생각했다. 대구탕집을 열었을 때 시누이가 그랬었다.

“식당 백날 해봤자 몸만 짠지 되지.”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손에서 비린내가 떠나지 않으니 늘 사는 게 고생스럽다는 느낌이더니 비단을 만지니, 그 촉감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진작 한복 일을 배우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였다.

“형님, 저 왔어요.”

“그래애.”

시누이 눈초리가 샐쭉하다. 아이 생일잔치 한다고 빠지고, 돌공장 데모하러 간다고 빠진 때문이리라.

“생일잔치 하는 데 안 가면 애가 울 것 같아서.”

“복주한테 간 것 갖고 내가 뭐라 그러는 것 아니고오.”

철수와 영희가 결혼한 지 십년 만에 생긴 아이라 시누이도 복주는 귀히 여긴다.

“돌공장 데모를 간 것은 안 나가면, 안 나가면 벌금 물린다고도 하고 또 언제까지 외지인으로 살 거냐고 해싸서…… 성의는 보여야겠기에……”

“꼭 가야 할 곳 같으면 가야지마는, 거시기한다고 빠지고 머시기한다고 빠지면 언제 배울라고 그려어.”

대구탕집 할 때, 구청 문화쎈터에서 하는‘시인교실’에 좀 다녀보려다가 시가 밥 먹여주느냐는 시누이의 잔소리에 포기한 적이 있다. 그때처럼 시누이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죄송해요.”

반나절 동안 시무룩하게 저고리 한벌을 겨우 만들어내고 일어섰다. 영희가 만들어낸 저고리를 짯짯이 보고 난 시누이가 잘못됐다,는 냉정한 한마디로 짝짝 뜯어버렸다. 눈물이 왈칵 샘솟아 그대로 한복집을 나와 철수에게 갔다. 철수는 컵라면 두개에 물을 붓고 있다.

“점심 먹어야지.”

“안 먹어.”

휭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와서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말았다. 영희가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농로를 따라 걸어오는 참인데, 공교롭게 또 데모 나가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아이고, 복주어매 오네.”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으나, 그래도,

“예에,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서……”

몸 안 좋다는 말로 차단해보려고 했으나,

“어젯밤에는 자네 가불고 나서 어트케나 힘이 쏙 빠지든지이.”

“애 땜에 할 수 없이…… 미안했어요.”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어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어린이집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를 돌공장 앞에 내려달라고 부탁했었다. 돌공장에서 내린 아이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할머니들을 따라서 발을 탕탕 굴렀다. 할머니들이 돌공장 나쁜놈들아, 외치니까 저도 따라서 독꽁장 나빠, 독꽁장 나빠, 해서 애까지 이게 뭔 짓인가 싶어 시위대를 억지로 빠져나왔었다.

“그놈이 말여, 읍내 형사라등마안.”

“누구우……”

“꺼먼 라이방 쓴 놈 말여어.”

“예에?”

놀라고 말았다. 놀랍긴 놀랍지만 아차, 싶다. 반응을 보이면 안되는데.

“사진기 든 놈은 독공장 사장 동생이고 말여.”

이젠 놀라지도 말아야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얼른 가세애. 오늘은 그냥 가서 작살을 내부러야제애.”

어떻게 몸을 뺄 틈도 없이 영희는 할머니들에게 꼼짝없이 낚이고 말았다.

 

영희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밥상머리에서,

“지렁이도 잡으면 꿈틀하잖아.”

“잡으면이 아니고 밟으면.”

“잡건 밟건, 내 말은 꿈틀한다고오.”

“꿈틀하건 말건, 법적으로 하자 없으면 이쪽이 불법이여어.”

“무슨 소리여어. 공장이 불법이래애.”

“불법으로 공장가동을 해?”

“응.”

“왜 그래?”

“몰라.”

“불법이건 합법이건, 이제 그만 가아.”

영희는 철수의 채근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당신이 계속 돌공장 일에 휘말리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눈앞에서 할머니들이 당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악이 나오더라고오.”

철수가 이마를 찡그리며,

“하여간 나쁜놈들의 세상이야아. 공장이 불법이면, 공장 가서 데모를 헐 것이 아니고 관청을 가야겠구만.”

“그 말 해주까아?”

“알아서들 하겠지 뭐어.”

“하긴.”

남편의 무기력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막 밥상을 물리려는 참인데,

“계십니까?”

육십은 넘고 칠십은 안된 초로의 마을이장이 찾아왔다. 외지인이란 게 사실, 늘 마을사람 대하는 게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이장을 맞이했다.

“일어나지 마시고, 자시던 밥 마저 자시지요.”

철수가 이장 말투 따라서,

“다 먹었습니다.”

밥상을 물리고 커피를 내왔다. 커피를 달게 마시며 이장이,

“우리 같은 나이먹은 무지렁이들은 오늘내일 허다가 가불면 그만 아닙니까. 그런디 농촌을 이어가려는 갸륵한 뜻을 품고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디다. 다들 배운 사람들이드만요. 우리 새끼들은 배우덜 못해서 귀농 생각도 안해요. 다들 굶어죽어도 도시 언저리 살라고만 허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는 하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같은 이장의 장황한 서두가 철수는 좀 지루해졌다. 더구나 자신들은 귀농자도 아니잖은가.

“제가 바빠서……”

“시골 좋다고 와서는 어디 전원생활이나 즐길라고 허는 돈 많은 사람들을 많이 봤는디, 그런 사람들을 우리 마을은 환영을 안해요. 일례를 들어서 이 집도 도시사람이 와서 사겠다고 허는 것을 돈냄새만 펄펄 풍기는 사람 같아 쥔한테 소개를 안해부렀습니다. 그런디 이렇게 착실헌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장으로서도 아조 마음이 좋습니다.”

우리가 가난해서 환영한다는 것인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을 결국 참을 수 없어 철수는,

“특별한 용건이 없으시면 저 먼저 일어날랍니다.”

발작적으로 트럭 시동을 걸고는 순식간에 언덕 밑으로 내닫고 말았다. 결국 이장을 상대하는 건 영희 몫이 되었다.

“내가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는갑네요. 아침부터 와서 뭘 부탁한다는 게 미안해서 뜻하지 아니허게 장광설을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

“다름이 아니고오, 아주머니, 이것을 좀 봐주실랍니까?”

이장이 주섬주섬 내놓은 종이를 가만 들여다보는데, 공문서는 공문서 같은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한번 자세히 읽어봐주십시오.”

이장이 손으로 짚어주는 곳을 따라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군민이 주인되는 살맛나는 순양 건설’

순양군

 

      수신자: 전남 순양군 유정면 진평리 산 15번지 순양석재산업(주) 대표 김수철

      제목: 업종변경(업종추가) 승인신청서 반려

 

        1. ………

        2. ………

        3. 순양석재산업(주)은 공장부지의 사용권한이 없기 때문에 업종변경 승인이 불가하여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 의거 신청서류 일체를 반려하오니 관련법에 의한 요건을 갖    추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4. 또한 상기 신청장소에 순양석재산업(주) 명의로 비금속광물 분쇄물 생산업을 신청할 경우에는 공장신설 승인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 신청하시면 적극적으로 검토코자 함을 알려드립니다.

      가. 동 업종의 생산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부지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

      나.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용도지역상 비금속광물 분쇄물 생산업종의 입지가 가능한 지역이어야 하며

      다. 건축물(공작물)의 설치가 가능한 지역이어야 합니다.

 

 

다음 장도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비슷한 내용인 것 같다.

 

 

‘군민이 주인되는 살맛나는 순양 건설’

순양군

 

      수신자: 전남 순양군 유정면 진평리 산 15번지 순양석재산업(주) 대표 김수철

      제목: 업종변경(업종추가) 승인신청서 반려

 

      1. ………

      2. ………

      3. ………

      4. 대안

      현재 관리지역 세분화를 위한 용도지역 변경절차를 진행중에 있으므로 용도지역 변경완료 후 관련행위가 가능하다는 관련부서(도시과) 의견이 있으므로 향후 용도지역 변경완료 등 공작물 설치요건이 충족된 후에 재신청하시기 바랍니다.

      5. 본 행정처분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처분 통보일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청구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끝.

 

 

다 읽고 나서 영희는 이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감을 못 잡겠는데요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 이런 문건을 왜 저한테 가져오셨는지,라고 묻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민이 주인되는 살맛나는 순양? 참 웃기는 이야깁니다. 원래는 거그가 레미콘공장이었거든요. 그런데애, 야들이 거그를 인수해서는 주민들 몰래 크락샤를 들였다고.”

“크락샤요?”

“돌 깨는 기계를 이르는 건데, 허가를 받지 않고 설치부터 해놓고 승인을 해도라고 신청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군에서 거가 농림지역이라고 승인을 안 내줬어. 그러고는 끝에다가 승인을 받을라면 이러저러 해라, 갈쳐줬어. 이의가 있으면 행정심판을 청구허라는 것까지 갈쳐줘논 게 이놈들이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여.”

또다른 문서를 내보인다.

 

 

전라남도행정심판위원회

 

      1. ………

      2. ………

      3. 소결론

      따라서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불허가 사유는 국토의 계획이용에 관한 법률 및 순양군 도시계획조례의 용도지역 안에서 행위제한에 저촉된다는 사유였으나, 이 사건 공장부지가 1988. 12.13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 의거 (주)한신산업이 중소기업창업계획승인을 받았고 1994.1.20 창업계획 변경승인을 받아 공장부지를 확장하여 레미콘시설 제조시설 및 부대시설을 갖추어 공장을 운영한 사실이 있으며 공장부지 전면적이 공장용지로 등록전환되었는데도 농림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는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구 국토이용관리법의 폐지에 따라 용도지역이 변경될 경우 현실에 맞도록 용도변경을 하여야 할 것임에도 피청구인이 용도지역 행위제한에 저촉된다는 사유로 반려처분한 이 사건 반려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한 처분이라 할 것이다.

      4. 결론

      그렇다면 청구인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인정되므로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이.”

손으로 짚어준다.

 

1. 귀 기관을 피청구인으로 하여 제기된 행정심판 청구사건에 대하여 2008년도 제2차 전라남도행정심판위원회 의결내용에 따라 따로 붙임과 같이 재결하고 행정심판법 제1항의 규정에 의거 제38조 제1항의 규정에 의거 재결서 정본을 송달합니다.

 

서류를 탁 접고 나서 이장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일이 이렇게 되어부렀습니다. 일천구백팔십몇년부터 레미콘공장 부지인디 왜, 어째서 농림지역으로 묶어놔서는 돌공장 허가를 안 내주냐, 해서 행정심판을 청구허니,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승인신청서를 받아줘라, 해가지고는 저것들이 공장을 돌려불었다, 이 말입니다. 한마디로 돌공장이 행정심판에서 군을 이겨분 거여.”

“잠깐만요.”

“예, 기탄없이 말씀허십시오.”

“제가 잘은 모르겠거든요. 근데 방금 이장님께서 승인신청서를 받아주라고 해가지고 돌공장이 가동을 해버렸다고 하셨잖아요오.”

“옳체.”

“정말 잘은 모르겠지만, 이장님 말씀대로라면 도행정심판위원횐가 어디서 승인신청서를 받아주라고 했을 뿐이라는 말로 저는 들리거든요. 말하자면 승인을 해줘라가 아니라 승인신청서를 받아줘라,라는 거지요. 안 그런가요?”

“다시 한번만 말씀해보실랍니까?”

이장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영희도 덩달아 가슴이 떨려왔다. 내가 왜 이렇게 똑똑하게 구는가 싶어서. 그런데 이상하다. 자기가 알고 느끼는 부분을 이장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이해한 대로,

“말 그대로잖아요. 승인신청서를 받아줘라. 승인을 해주고 안해주고는 그다음 일이고요. 그런데 첫날 시위할 때 사람들한테서 공장이 불법이라고 제가 들은 것 같거든요. 불법가동이란, 말하자면 승인도 안 받고 가동한다는 뜻이니까, 군에서는 아직 승인을 안 내준 것이 분명하고,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승인신청서를 받아주라는 심판을 내린 것뿐인데, 공장은 행정심판에서 이겼으니 승인을 받든 안 받든, 우선 공장부터 돌리고 봤다는 거 아니에요?”

“하이고오, 그렇체애.”

“하여간, 이장님 말씀 듣다보니까…… 제가 주제넘게……”

“아닙니다. 역시 아주머니가 순수허신 분이라 다르시구만요, 아조.”

이장이‘순수한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이 오그라든다. 그때 마침, 여태 장난감을 온 방바닥에 쏟아부어놓고 말없이 놀고 있던 복주가, 엄마아, 부른다.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엄마가 챙겨주질 않으니, 뭔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저어, 애 어린이집 차가 곧 올 시간이 돼서……”

“아, 우리 어린이가 있었제애, 하아 참, 하납씨(할아버지)가 줄 것이 없네.”

하고서 주머니 속에서 꾸깃꾸깃한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 굳이 아이한테 주는 걸 영희가 억지로 말렸다.

“서류들은 읽어보라고 나눠주시는 건가요?”

“다는 아니고 뜻이 있고 열성이 있는 몇사람한테 돌렸습니다. 첫날 보니, 아주머니가 참 순수허신 분 같어서 이렇게 염체 불구허고 와서 보니, 제 직관이 과히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 참 기쁩니다. 가장 핵심 뽀인트가 아주머니가 말씀허신 거기 있는 것임이 이제 확실해지는구만요. 허허.”

하고 돌아가는 이장의 천진난한 미소가 때마침 떠오른 아침햇살에‘순수하게’빛났다.

 

 

영희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한복을‘무자비하게’뜯어버린 것을 사과한다고 시누이가 점심을 설렁탕으로 사줬다. 반주로 소주를 한잔하며 시누이가,

“오늘 자네 올케 기일이지? 이거 제수용품 사는 데 보태써.”

시누이가 말 안해줬으면 자기도 깜빡할 뻔했다. 올케 제삿날을 기억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거기다 돈까지 주니 감격의 눈물이 솟구치려다가 문득, 멈춘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허사가 되어버렸지만, 대구탕집을 열 때 시누이에게 돈을 빌리려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할 수 없이 친정 큰오빠가 보증을 서줘서 은행에서 융자를 할 수 있었는데, 은행 융자금도 다 못 갚는 상황이 올 줄 미리 알고 시누이는 그때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던 건지도 몰랐다. 보증인인 큰오빠가 불안해할까봐 전화를 걸었더니 오빠는,

“글안해도 불안해서, 내가 갚아부렀따야.”

살아보려고 도모했던 일이 오히려 삶의 짐이 되어버린 지금, 제 동생 철수가 미안해서 처갓집 행차를 못한다는 것을 시누이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는 돈일지도 모른다는‘의심’이 막 나오던 눈물도 멈추게 하니, 새삼스럽게 돈이 무섭긴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내가 시장바닥에서만 살다보니, 모질어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 그러나아 다아 자네 야물어지라고 그런 것잉게, 너무 괘념치 말어어, 이?”

사돈네 제삿날을 기해 한껏 너그러워진 시누이를 먼저 보내고, 소주 몇잔에 기분이 풀어져서 여고동창, 설렁탕집 주인 종숙이를 붙잡고 수다를 좀 떨었다. 돈 없어서 시골 들어갔단 소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아서, 전원생활을 해보겠다고 시골로 들어갔는데, 돌공장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더니 종숙이,

“요새는 환경이 젤이야. 집은 좋은데 환경 안 좋으면, 집값 떨어지겠다. 전원주택이라고 비싸게 샀을 거 아냐.”

있지도 않은 전원주택 집값이야 올라가든 떨어지든 알 바 아니지만,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종숙의 표정이 왠지 얄밉다.

“우리 집 아니거든.”

“그럼 잘됐네, 빨랑 나와. 돌먼지가 얼마나 사람한테 안 좋은데. 복주는 아토피 없냐?”

중학생인 종숙이 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토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없어.”

“시골 좋다고 들어가서 되레 아토피 걸린 애들 많어야. 요새 시골이 옛날 시골이 아녀어. 분리수거도 안하고 아무 쓰레기나 막 버리고 태우잖어어. 아주 그냥 다이옥신 천국이야아, 우리나라 시골이라는 게에.”

“쓰레기는 태우더라.”

“그니깐 나오라고오.”

갈 데 없어 못 나온단 말 또한 할 수 없어,

“근데, 너 그거 아냐?”

“뭐?”

“우리 마을 이장니임은 무슨 말 하기 미안해서 막 어먼 말을 헌다아.”

“어먼 말?”

“응. 왜 횟집 같은 데 가며언 본요리 나오기 전에 나오는 쓰끼다시 있잖아아. 나는 그 쓰끼다시가 본요리보다 훨씬 맛있더라고오.”

“그래서는 비싼 회는 냉겨불제이.”

“우리 마을 이장님이 딱 그짝이야아. 서두가 참 인간적으로 아름답더라고.”

“그래서 이장의 쓰끼다시가 아름다워서 다이옥신 천국서 계속 살라고?”

“응.”

“염병을 헌다아. 꼭 누구 같그만. 지 무덤을 지가 파요, 아주우.”

“누구?”

“그 잘난 환경컨썰턴트. 나이 차이도 엄청 나는 여자애한테 폭 빠져갖고는 종노릇을 하고 살게 생겼어, 시바앙. 아, 너희 동네 이장님한테 우리 오빠 소개시켜주면 쓰겄다. 환경문제 아녀어, 결론으은.”

고등학교 다닐 때 김종숙이 오빠, 김종수한테 잠깐 시를 배운 적이 있다. 그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영희가‘시앓이’를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종수는 알까. 그 시선생이 지금 발음하기도 낯선‘환경컨썰턴트’라고 한다.

“환경컨썰턴트가 뭔 일을 하는데.”

“말을 하자면, 환경에 관한 한 전문가란 말이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환경이 돈이 되는 세상이랑게. 환경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이 겁나게 많다더라.”

종숙이 주는 환경컨썰턴트 종수의 전화번호가 적인 종이를 건성으로 받아 주머니에 넣고 철수에게 갔다.

“설렁탕 먹으니 기분 좋냐?”

영희가 아침에 싸준 도시락 속에 든 편지 때문에 정작 기분 좋은 건 철수다. 영희는 편지쓰기를 좋아한다. 이따금‘여성시대’같은 라디오 프로에 글을 보낸 것이 당첨되어 맛듬기능이 있는 김치냉장고, 음이온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음이온 정수기, 머릿결을 보호해주는 열이 나오는 헤어드라이기 같은 살림살이도 탔었다. 돌공장 시위 때문에, 시누이 때문에 며칠간의 우울한 관계가 아닌게 아니라 오늘 시누이의 설렁탕 한그릇과‘사랑의 편지’로 말끔히 해소된 것만 같다. 바로 그런 틈을 이용해야 한다는 걸 영희는 알고 있다.

“오늘 당신 처남댁 제삿날인 거 알지?”

“음.”

“나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복주 데리고 와.”

조기는 너무 비싸서 못 사고 부세 몇마리와 과일 같은 제수용품을 사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툭 친다. 아랫집 아줌마가 베트남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서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우리가 공장 앞이서 촛불시위를 했거든.”

“촛불시위요?”

“학생들이 허는 거 있잖어. 종이컵 씌워서 불 붙이는 거.”

“근데 왜 발을 절룩이세요?”

“아, 그런디 그놈들이 우리를 와장창 미틀어불더라고오.”

“그래서 다치신 거예요?”

“응, 그래서 시방 병원서 치료받고 오는 길이여어. 부상자가 한둘이 아녀어. 즈그들은 즈그 어매가 넘한테 못헐 일을 해서라도 돈 벌어야 쓴다고 갈쳤으까아?”

또 돌공장 얘기다.

“설마 그랬을라구요.”

건성으로 대답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아줌마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뜨케 그럴 수가 있느냔 말이여어. 복주어매 저녁에 촛불 들고 꼭 나오소이.”

“오늘은 못 가요. 친정집에 제사가 있어서.”

제사 있다는 걸 너무 당당하게 말했나. 뺨이 좀 달아오른다. 베트남 며느리가 바나나를 사 가지고 와서 한개를 건네주며 수줍게 웃는다. 이름이 흐엉란이라고 아줌마는 며느리를 그냥 란이라 한다.

“란이야, 복주어매한테 바나나 주지 마라. 촛불시위도 안 나올 건디 뭣이 이쁘다고 주냐.”

아줌마가 농담으로 며느리를 야단친다.

“실은……”

“실은 뭐어?”

실은, 우리 오빠가‘베트남 참전용사’라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시민운동가와 결혼한 오빠 잘난 딸 미란이가,

“이라크에 군대 보내는 건 옛날에 베트남에 보낸 거와 똑같애. 전쟁은 나쁜 건데, 그런 나쁜 전쟁에 왜 우리나라 군대가 가야 해?”

라고 말해서 저희 아빠를 슬프게 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빠는 딸의 그 말에 술을 왕창 먹고 영희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청춘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식에게 부정당한 느낌이 들어 하염없이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다만 국익을 위해서 갔을 뿐인데 말여.”

“오빠, 울지 말어요. 누가 뭐래도 나는 오빠 인정하니까.”

“오냐, 고맙다. 맛난 것 사주께 오니라.”

별말도 아닌, 인정한다는 말 한마디에 감격하는 마음 착한 오빠한테 가는 길은 늘 행복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빠네 현관문을 들어서니, 오빠가 앞치마를 두르고 한손엔 뒤집개를 들고서 맞아준다.

“오빠, 면목이 없어요.”

“미안해할 것 없어. 느이 올케 살아 있으면 내가 그렇게 허고 싶어도 못해.”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아버지 같은 오빠였다. 아버지 없는 집안의 가장으로 사느라고 오빠는 한번도 허튼 데 돈을 써본 적이 없다. 옷이건 신발이건 다 떨어질 때까지 새것을 사지 않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녔고 밥은 한공기 이상을 먹지 않았고 잡기나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만든 돈을 오빠는 동생 빚 갚는 데 썼을 것이다. 오빠가 마누라 제사상에 놓겠다고 부친 생선전을 뒤적여보다가 그예 눈물이 쏟아져서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느그 성이 차암 선량허게 살다 간 사람이다.”

“맞어.”

“아쉬운 것은 단 한가지여. 넘 못헐 일 한번을 안허고 산 사람이 너무 빨리 간 것, 그것 한가지가 나는 차암 억울혀.”

“맞어.”

“우리 어무니, 아부지도 느이 성도 느이들도 불량헌 사람들이 아닌디……”

“맞어.”

“에라이, 남 못헐 일 안하고 살았으면 그걸로 되얏제, 뭐얼.”

오빠가 코끝이 빨간 채로 씨익 웃었다. 미란이 시민운동가 남편하고 제 엄마 제사를 지내러 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철수는 오지 않는다. 음복을 하면서 조카사위가 문득 묻는다.

“고모님, 시골생활은 어떠세요?”

“뭐, 그냥 그렇지.”

“싸움다운 싸움 한번 못해보고 대구탕집 문을 닫은 게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시골생활 할 수 있어서 전화위복인 것 같기도 하고.”

조카사위가 그냥 처고모 위로 삼아 하는 말로 넘어가버려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을, 그만,

“속없는 소리 하지 말어. 요새 시골도 시끄러워 죽겄어, 아주우.”

그렇게 해서 결국, 그놈의 돌공장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으면 시골사람들 자체 힘만으로는 힘들어요 고모님. 단체사람들하고 연계해서 주민들의 생존권, 주거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문제로 이슈화되도록 각종 매체에 최대한 알려나가면서, 주민들 힘을 결집시키고 인허가권자인 관청과의 싸움도 준비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지도부가 존재하나요?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그만한 주민들 힘을 결집시킬 역량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조카사위 강인섭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이고, 내가 괜한 말을 해가지고, 또 생각지도 않게 친정오빠 집에 와서까지 그놈의 돌공장 문제에 얽혀들고 있구나, 아닌게 아니라 종숙이 말대로 그 동네를 떠나든지 해야지 원’하다가 그만,‘그럼 어디로 가지?’깜깜한 절벽에 부닥치고 말았다.‘사랑의 편지’까지 쓰는 성의도 보였고, 서로 기분도 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일까. 철수는 끝내 오지 않았다. 집에 그대로 돌아가면 싸움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영희는 그만, 과음을 하고 말았다.

“나는 정말 싸움 같은 거는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미란이도 알 거야. 이 고모가 그래도 왕년엔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거. 누가 시만 쓰고 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시도 좀 쓰면서 살겠다는데, 시 쓰고 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막 조롱하고 비웃고 욕을 해.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놈의 시를 쓰냐고. 시도 못 쓰고 집 찾아 떠돌다가 발견한 집이 그 집이야. 먼 데서 봐도 꽃빛이 너무 어여뻐, 그냥 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무작정 들어갔어. 아, 이런 집이라면 먹고살기 힘들어도 가끔 시도 생각하면서 살 수는 있겠구나. 근데 착각이었나봐. 시가 안 나와.”

“왜요?”

“그놈의 돌공장 땜에.”

자네 처고숙, 김철수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만만한 게 돌공장이다.

“싸우셔야겠네요. 고모님이 시를 쓰기 위해서라도. 암요.”

난, 싸우고 싶지 않은데, 정말 아닌데…… 하다가 영희는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거미와 참새와 벌

 

불도 켜지 않고 윗목에 쭈그리고 앉아 철수가 비장하게 물었다.

“우선 쓸 돈은 얼마나 남았어?”

“다행히 집값이 안 나가니까, 아직 여유는 있지 뭐.”

“그래, 집값이 들어가면 쓸 돈이 없겠지. 그러나아.”

그러나에 오금을 준다. 집값이 들더라도, 다른 살 곳을 알아보겠다는 결의를 확실히하기 위함일 거라는 짐작이 간다.

“패배의 경험이 당신 영혼을 좀먹어……”

조그맣게 한 소린데, 금방 알아들은 철수가 발끈한다.

“뭐, 뭐? 패배의 경험? 영혼을 좀먹어? 철없는 마누라야,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작작하고 내 말 진지하게 들어봐봐 좀. 처남한테 빚을 지고 사는 한, 나는 처남집에 못 가.”

“괜찮-”

“내가 괜찮지 않아.”

“그때, 싸웠으면……”

“지난일 그만 말해. 언제 한번이라도 세상이 없는놈 편이 되어준 적 있냐? 정부? 노조? 대책위? 세상천지에 믿을 데가 어디 있어. 결과적으로 순진한 놈들만 피 보는 거야.”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시위현장에서 엉겁결에 메가폰을 잡고 몇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자신에게 대책위원장이 되어달라는 주민들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책위원장이 과연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래도 어찌됐든 대책위원장이 되었으니, 한복집에 출근하는 것도 자주 빼먹고 있는 중이다.

밤인데도 희부옇게 떠다니는 먼지를 보니, 사실 두렵기도 했다. 요새 복주 몸에 이상한 반점이 돋아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주민들이 데모를 하면 공장측이 가동을 멈추고 그러면 더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이곳에서 살면서 형편 풀릴 시간을 벌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어찌될지는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 가서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네애.”

“돈 있으면 어디선들 못 살겄냐.”

“돈 있어도 공해 심한 곳에서는 못 살지이.”

철수가 결코 싫지만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슬쩍 영희를 돌아본다.

세상이 돈 때문에 미쳐가고 결국 자신들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어 시골 빈집으로 찾아들긴 했지만, 사실 영희는 이 집과 이 동네가 오래 살았던 고향처럼 편안했다. 왠지 이곳에서는 돈이 많이 없어도 살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돈 달라는 소리를 안한 것이 마음이 들었다. 그는 틀림없이 돈보다 사람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일 것 같아서.

“그래도 청정구역에서 돈 없이 사는 것보다 공해지역 사는 대신 돈 많이 주겠다고 하면 나는 돈 받고 공해지역 살란다, 뭐.”

청정구역이니 공해지역이니 하는 철수 특유의 투박한 어투는 언제 들어도 싫지 않지만, 그리고 그가 한 말이 농담일 것이라 여겨지지만,

“내가아 애초에 당신을 좋아했던 건, 당신이 돈 많아서가 아니고 당신의 그 맑은 눈 때문이었다는 건 당신도 알 거야. 그런데, 오늘날에 있어서, 이렇게 당신과 돈 때문에 힘든 것도 모자라 신경 거슬려가며 언쟁하는 게 정말 싫다.”

“싫다고?”

“응. 싫어. 돈 때문에 형제간에 자유롭게 내왕 못하는 것도 싫고 돈 때문에 당신 영혼이 망가져가는 것도 싫고…… 다 싫어. 결국 우리를 내쫓은 것도 돈 많은 자들인데 당신도 또 돈 돈 하니까,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아.”

“영혼이라…… 영혼 조오치.”

오늘은 왠지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마음이 산란해진다. 그럴 때는 그저 마음속으로 시나 외우는 수밖에.

‘패배의 경험이 당신 영혼을 좀먹어……’

“손에 그것은 뭐냐?”

깜짝 놀라, 그만,

“으응, 시이.”

실토하고 말았다. 패배의 경험이 당신 영혼을 좀먹어 당신은 날로 쓸쓸해지고…… 내 눈물은 당신의 쓸쓸한 계곡으로 스며들지 못하네…… 헛되이, 헛되이……

라디오를 듣다가 흘러나오는 작자미상 시가 왠지 공감되는 바 있어, 따라 적다가 소음 때문에 실패하고는 어떡하든 자신이 한번 완성해보리라, 저녁내 끙끙댔었다.

“시이? 너 시 좋아하지 마라 이. 이 더러운 세상에 시는 무슨……”

차마 얼어죽을,까지는 못하고, 목소리를 착 내리깐다. 목소리를 까는 건, 현실적인 얘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당분간 장사 접을 거야. 니미, 안돼, 장사가. 낼부터 매형 따라 노가다 뛸 거야. 완도 쪽에 큰 공사가 있다더라. 돈 좀 모아서 새로 집을 얻든지, 안되면 깊은 산골로 들어가 꿀벌 치고 살자. 씨발.”

이튿날, 새벽같이 철수는 집을 나섰다. 남편이 매형 따라 완도로 간 건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갑게 굴지 못한 자신 탓도 크다는 자책감에 영희는 괴로웠다. 남편은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자기는 외지인 주제에 대책위원장씩이나 하는 감투까지 뒤집어쓰고 데모판에 휩쓸리지 않나, 사는 데 하등 쓰잘데기없는 시나 끄적이지 않나, 남들은 돈 들여서도 배우는 한복을 자기는 공짜로 배우는데도 의욕을 내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 남편이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 영 심란하다.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실어보내놓고 시누이 한복집에 갈 생각도 없이 마루에 넋놓고 앉아 있는데, 롤케이크 한상자를 들고 이장이 터벅터벅 언덕길을 올라와서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서 있다.

“위원장님.”

“그냥 복주엄마라고 하세요.”

“내가 부르고 자픈 대로 부를랍니다, 위원장님. 이것이 말입니다. 우리 아가 지난 설에 읍내 파리바게또에서 사가지고 와서 맛을 봤더니, 영양빵 비슷허니 먹을 만하더구만요. 이 집 애기 멕이면 좋을 듯해서…… 손이 부끄럽기는 하지마는 받아주십시오이. 아, 그러고……”

이장이 종이를 내민다. 이장이 내미는 종이를 보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이게 또 뭐래요?”

“나 원 참, 이것이 그러닝까 머시냐 하면, 소위 출석요구서랍니다.”

 

출석요구서

 

이영희(진평리 180번지)

 

귀하에 대한 업무방해 피의사건에 관하여 문의할 일이 있으니 2008년 6월 18일 오전 10:00에 당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석하실 때 반드시 이 출석요구서와 주민등록증(또는 운전면허증) 및 도장, 그리고 아래 증거자료와 기타 귀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가지고 나오시기 바라며 이 사건과 관련하여 귀하가 전에 충분히 진술하지 못하였거나 새로이 주장하고 싶은 사항 및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이 있으면 이를 정리한 진술서를 작성하여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일시에 출석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거나 이 출석요구서와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지능범죄수사팀(T: 353-5112)에 연락하여 출석일시를 조정하시거나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면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체포될 수 있습니다.

*수사에 중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임된 변호사의 참여하에 조사를 받을 수 있으며 참여변호사는 법률적 조언을 할 수 있고 작성된 조서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2009년 6월 15일

전남 순양경찰서

사법경찰관 경위 양순호

사건담당자 경위 양순호

 

지난 며칠새, 돌공장 가동저지 대책위에서 협상을 주장하던 청년회와 멜론, 딸기 작목반이 빠져나갔다. 작목반은 상대적으로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할머니와 할아버지 축만 남게 되었다. 자연, 시위대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젊은 사람들이 있을 때는 카랑카랑 쇳소리도 내곤 하던 할머니들도 이젠 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공장을 염려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러다가 참말로 우리 따문에 공장 망허면 어떡혀어.”

망하기는커녕 돌공장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공장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어디로 안착할 곳을 찾지 못해 들판을 헤매다가 인근 마을 사람들과 짐승들의 몸을 후려치고 마음을 찢어놓고 있었다. 새끼를 낳던 암소가 돌 깨는 굉음에 놀라 새끼를 사산하고, 덤프트럭이 질주하는 농로에서 노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논바닥으로 처박혔다. 먼지는 비닐하우스에 켜켜이 쌓여서 하우스 안은 구름이 낀 것처럼 햇빛이 들지 않았다. 깻잎에 돌가루가 박혀 입에서 싸그락싸그락 돌이 씹혔다. 논바닥에도 돌먼지가 쌓여 햇빛을 차단한 탓에 벼뿌리가 썩어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위대는 오합지졸의 꼴을 면치 못했다. 남자노인들은 소위‘시위허가구역’안에서 구시렁거리며 담배만 피워물고, 여자노인들은 덤프트럭이 오면 간헐적으로 막는 시늉을 하다가 공장 남자에게 사진이라도 박힐라치면 슬그머니 물러나 그저 삿대질만 할 뿐이었다. 아랫집 아줌마처럼 부상당한 사람들도 하나둘 빠져나가 결국 시위대는 누가 봐도 그저 할 일이 없어 남의 공장 앞에서 시간을 때우는 노인들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서울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시위를 하는 아이들처럼 할머니들이 밤에 촛불시위를 하다가 공장 남자들에게 패대기질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공장 앞을 무심히 지나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도 영희는 공장 앞 시위현장으로 갔던 것인데, 그날따라 할머니들은 덤프트럭이 올라와도 힘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지친 것이다. 어떤 할머니는 눈에 눈물을 꾸적꾸적 매달며,

“우리가 뭣을 원허간디이, 우리는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조용히 살게만 해달라고 허는 것뿐이여어, 늙었다고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닌디, 저것들은 우리가 전부 사람으로는 안 비는 모냥이여어.”

할머니의 말이 영희 가슴을 쳤다. 무엇보다, 누구 하나 이 시위대를 앞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그저 힘없이 공장 앞에 주저앉아 있다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원망만 토해낼 뿐. 그것이 너무나 답답했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영희가 공장 시위가 시작된 지 여러날이 되도록 여태 한번도 써먹지 못하고 그늘막 귀퉁이에 방치되어 있던 메가폰을 손에 들었던 것이.

“할머니들, 힘을 내세요. 돌공장은 승인받지도 않고 불법가동을 하고 있으니까, 할머니들은 공장을 막아도 죄가 없어요. 할머니들이 싸우는 것은 정당해요. 그러니 힘을 내세요, 유정면민 여러분 파이팅.”

그러고 나자 진작 힘내시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서 미안했던 마음의 빚이 누그러지면서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할머니들을 향해 빙긋 웃음을 보이는 여유도 생겼다. 아이 때문에 현장을 떠나려고 하니, 할머니들이 아쉬워했다. 늘 점잖기만 하던 이장이 다가왔다.

“오늘부로 아주머니가 우리 새 대책위원장을 해주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르케 당장에 죽겄는디, 거그다 대고 돈 圉닢 받아묵고 말자고 헌 것들을 우리는 따를 수가 없어어.”

송아지가 사산을 한 집 할머니가 외쳤다.

“첨에 제가 이분들을 보매는, 눈빛이 아조 착실해서 첫눈에도 우리 마을 사람이다 싶었습니다. 어보니 마음도 그리 비단결입디다. 인자 오늘부로 저어…… 성함이……”

“저기요, 제 이름은 이영희라고 합니다마는, 제가 어떻게 대책위원장씩이나…… 저는 타관사람인데……요.”

“시방 현재 유정면 진평리 주민이잖애요. 그리 사람 많앴어도 야문 사람 한나가 없어서 멍챙이들 모냥으로 멀거니 서 있다가 당허기만 헌 몇날 며칠이었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영희 위원장님. 우리, 이 힘없는 노인들을 도와주세요.”

다시 한번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제가 사실은 생계문제도 있고 아이문제도 있고 인생이 복잡헌 사람이라……”

박수소리는 영희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났다. 심지어는 채증을 한답시고 사진기를 들이대던 공장 남자들까지 박수를 쳤다. 야유인지 조롱인지 휘파람까지 불었다. 그 야비한 휘파람소리가 영희 마음을 돌려세웠다. 영희는 내려놓았던 메가폰을 집어들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영희를 바라보았다.

“제가 사실은 도시철거민 출신입니다. 저희는 비록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성실하게 일해서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사는 것 오직 그 하나만 바라고 작으나마 식당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행복조차도 시샘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 사람들은 아홉개의 행복을 쥐고 나머지 한개의 행복을 채우기 위해 겨우 한개의 행복만 가지고 있던 저희를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이곳 유정면 진평리까지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말씀은 안 드렸지만, 아무런 사심 없이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 마을 이장님 그리고 주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천행으로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저희는 주거비가 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 삶이 그런대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쫓겨난 저희가 지금, 바로 이 돌공장 때문에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날 수 없겠지만, 저는 갈 곳이 없어 못 떠납니다. 그러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여러분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엉겁결에 내뱉은‘한개의 행복’‘아홉개의 행복’운운이 부끄럽기도 하고 난생처음 여러 사람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도 믿기지 않아 덜덜 떨리는 가슴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영희는 그만 폭삭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명색이 대책위원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름뿐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퇴근길에 들러 격려나 해주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사이에 공장측에서 주민들을 고소한 모양이다.

“다 읽어보셨습닝까?”

“예에.”

“그놈들이 며칠새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기웃허고 다님서, 즈그들이 찍어놓은 사진허고 이름을 대조허고 다녔던 모냥입니다. 업무방해죄라나 뭐라나.”

눈앞이 핑글 돈다.

“이장님, 제가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다들 위원장님을 기다리기는 할 것이지마는, 제가 오늘은 시위에 나오시라는 말씀은 안 드릴랍니다. 쉬십시오, 위원장님.”

돌아가는 이장의 하얀 남방 위에 땀이 후줄근히 배어 있고 걸음은 힘없이 휘청거린다.

서러움 때문에 방문을 닫고 바람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자니, 속이 상할 때면 늘 그렇듯이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나니 더 속이 상해와서 그만 뚝, 하는 식으로 헛기침을 하고 있는데, 천장에서 거미가 줄을 타고 주르르 내려오다가 영희 눈앞에서 똑, 하고 멈추었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거미를 잡으려다가 어쩌는가 보려고 내버려두었더니 대롱대롱 춤을 춘다. 거미 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지붕 밑에서 바스락바스락, 찌그락찌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 뽀시락 장난을 하는 참새들이다. 기왓장 골밑에 용케 저희들의 비밀아지트를 만들어놨나 보다. 어린시절에는 겨울에 쥐가 천장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 때 주먹으로 한번 툭 치면 조용해지곤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희희낙락하는 게 보통 즐거운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참새들도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러고 있자니, 또 뒤안 쪽으로 열어놓은 뙤창으로 웨애앵, 하고서 벌 한마리가 방 안에 날아드는 게 아닌가. 벌은 마치 원무를 추듯 방안을 한번 비잉빙 돌다가 방바닥에 내려앉아,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거미를 바라보고 참새 소리를 듣고 벌 춤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시나브로 말랐다. 영희는 말개진 눈을 들어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어둑시근한 방안에 말할 수 없는 평화의 기운이 가득 서린 것 같았다. 영희는 문득,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미가, 참새가, 벌이 그 위로의 말을 소리로, 몸짓으로 대신해주는 것만 같았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등을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 대롱대롱대롱, 뽀시락뽀시락뽀시락, 곤지곤지곤지…… 하면서.

 

 

무서운 꽃나비

 

“박석택씨, 김용택씨, 김애순씨, 노분례씨, 이영희씨, 김공님씨, 이름이 없으시네요이,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봉현리 사는 박석춘씨 이모되시는 분, 하면 총 몇분이시죠?”

“야닯 아니여어?”

“박석택씨 포함 여덟분은 이쪽으로 앉아주시기 바랍니다이. 먼저 차례차례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에 들어가겠으니 묻는 말에 성실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이. 먼저,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되시는 분 앉아주세요.”

‘김기택씨 큰어머니’는 시장에서 맘먹고 샀을, 초록색 지지미 바지에 같은 천 계열의 꽃무늬 남방을 입고 비닐 쌘들에 하얀 양말을 신었다. 양다리가 활처럼 휘어서 걸을 때마다 아고아고 소리를 내면서 형사 앞에 겨우겨우 앉았다.

“이름을 확인해야 되니까, 거 머시냐,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되시는 분께서는 본인의 성함을 말씀해보실랍니까?”

“나? 좋자잖은 내 이름 알아서 뭣 할라고오?”

“여그 진술서에 이름을 쓰셔야 합니다.”

“내가 뭔 잘못을 했가니 집이한테 이름을 갈쳐줘야 혀어?”

“잘못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판단허는 것은 제 몫이 아니고, 검찰에서 판단할 것이고요, 우선 제가 묻는 말에 성실히 답변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요이.”

“내 이름은, 거 머시냐, 오가여, 오맹순이.”

옆에 있던 백발이 성성한 영산리 김용택 이장이, 오맹순이 아니고 오명순이라고 정정했다.

“참고로 제가 어르신께 오명순씨, 해도 양해 바랍니다이.”

“좋자잖은 이름이래도 누가 내 이름 불러주닝까 좋그만그랴.”

오명순씨가 입을 삐죽이며 결코 좋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한다.

“오명순씨, 본적이 어딥니까?”

“본적? 시앙골.”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시앙꼬올. 울 아부지 울 어매가 나를 시앙골서 났당게. 시앙골서 났응게 거가 내 본적지제애.”

형사 얼굴이 벌게진다.

“주소는요?”

“내동 아까 영살리 김기택이 큰어매라고 해놓고는 그러요. 영살리제 어디여어?”

“영산리 몇번집닝까?”

“번지수는 내가 모르겄소.”

“주민번호요.”

“고무차대기라 암것도 몰러 나는.”

“주민등록증 내놔보세요.”

“안 갖고 왔는디.”

“직업이 무엇입닝까?”

“직업이 머시여?”

“현재 오명순씨가 하시는 일입니다.”

“땅 파묵고 살제애. 나 같은 고무차대기가 뭔 재주가 있겄소이? 이날 평상토록 땅 파서 씨 뿌리고 거둬서 나도 묵고 새끼들 멕이고 입히고 갈쳐서 이우고, 그러고 살았제애. 아 그런디 청천벽력맹이로 독공장이 들어와갖고는 이르케도 사람을 못살게 허냔 말이요오. 천불이 나서 못 살겄기레, 공장 앞이서 악을 좀 썼다고 우리를 경찰서에 고소를 허는 것들이 사램이여, 짐승이여어. 아무리 사램이 돈에 허천병이 났다고 혀도 그러면 못써어. 돈을 벌어묵고 살래도 착허게 벌어묵어야제, 넘한테도 싫은 소리 안 듣고 내 뱃속도 핀헐 거신디이……”

“가족관계를 말씀해주시죠.”

“딸이 한나에 아덜 한나 있는 것, 작년에 가부렀어. 가부렀당게. 그르케 차거게만 살던 놈이 허는 일마다 실패를 보고는 비관을 혀서…… 아이고오, 우리 아덜이가아 에미보다 몬차 가부렀어어어어, 알고오, 포옥.”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요?”

“그 냥반? 남양군도 모집가서 여태 소식 한자를 안 줘부러.”

“딸은 출가하셨구요?”

“출가외인이여. 그려도 겁나게 차개. 환갑 넘은 저도 핀허지 못헐 것이고 즈그 메느리 눈치도 빌 것인디, 철철이 옷도 사주고, 어무니, 어무니, 해감서 맛난 것도 사다주고, 그려.”

“예, 그러면 현재는 오명순씨 단독세대구만요이. 이것으로 오명순씨 인정신문은 끝났고요, 다음은 오명순씨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물을 테니 성실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이. 오명순씨가 이번 순양석재 정문 시위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닝까?”

“동기가 머시여?”

“누가 오명순씨같이 연세드신 분을 순양석재 가동저지를 위한 시위현장에 가자고 권유했습니까?”

“내가 내 발로 나온 것인디?”

“자발적 참여구만요. 그러면 오명순씨는 순양석재 가동저지를 위한 시위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동 아까 말했는디 까묵었는개비. 조용히 살다 죽고 잡다, 안했소 내가.”

그때 낯이 익은 썬글라스 형사가 음료수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가 썬글라스를 살짝 올려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찡긋 윙크를 보낸다. 그러고는 조서를 쓰고 있는 형사 어깨를 툭툭 친다.

“야아, 김경사, 우리 노인네들, 겁나서 떨고 있잖냐. 날도 더운데 조사고 뭐고 다들 댁에 보내드려. 주동자는 따로 있는데 뭣 땜에 노인들 고생시켜어. 너는 부모도 없냐, 자식아.”

자신이 사들고 온 드링크병을 친절하게도 주민들에게 돌린다. 병을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그 썬글라스에 던지고 싶은 것을 꾹 참느라, 영희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이고오, 우리 위원장님도 떨고 계시네에.”

“당신, 형사 맞죠?”

“예, 위원장님. 이제 저를 알아보시네요?”

“그런데에, 왜 형사가 공장을 편들죠? 당신이 순양석재 직원이에요, 뭐예요?”

“위원장님 이것은 알으셔야 합니다. 저희들에게는 인근 마을 주민들도 순양석재도 똑같은 민원인이라는 겁니다. 저희는 다만 중간자적 입장에서 어느 한곳이라도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되겠기에, 경찰공무원의 당연한 직무의 일환으로 근무를 나갔던 것뿐이고요이.”

“그런데 왜 매번 주민들만 막고 공장 사람들은 안 막나요?”

“앗따아, 얼굴만 이쁜 줄 알았더니, 똑똑하기까지 해부네요이.”

유들유들하게 웃는데, 소름이 끼친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보다 못해, 점잖은 진평리 박석택 이장이 나섰다.

“이거 보십시요이, 형사님. 박카스도 음석이라 고맙게 먹겠습니다마느은, 우리 위원장님이 마음이 겁나게 여리신 분인데, 아무리 좋게 봐줄라고 해도 형사님의 태도는 상식 이하로서 문제가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고요, 위원장님이 결코 없는 사실을 가지고 항의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나 우리 주민들도 다들 생각하는 바입니다요.”

힘이 세지도 못하고 돈이 많지도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힘은‘답답함’인지도 모른다. 결국 썬글라스 형사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슬금슬금 물러나고 조사가 재개되었다.

“오명순씨의 시위참여 동기는 조용히 살고 싶어서.”

“조용히 살다 죽을라고까지 혀.”

“죽을라고까지 어떻게 쓴답니까. 그냥 살고 싶어서.”

“조용히 살다 죽을라고.”

“조용히 살다 죽고 싶어서. 오명순씨는 일어서서 나가주시고, 다음, 박석춘씨 이모 되시는 분.”

‘박석춘씨 이모’가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으면서 휘파람 같은 한숨을 내뿜는다. 주름고랑이 온 얼굴을 뒤덮고 손가락은 갈퀴처럼 구부러져 있다.

“박석춘씨 이모 되시는 분 성함이요?”

“이매기.”

“성이 이씨고 이름이 매기입닝까?”

“오살, 이매기랑게.”

김경사가 종이에 싸인펜으로 이매기라고 써서 들어보인다.

“그것이 머시여?”

“이 이름 아니에요?”

“내가 글자를 알가디.”

“그러면 다시 물을랍니다. 성이 이씨가 아니고 임씨입닝까?”

“그려어.”

“이름이 매기가 아니고 혹시 애기입닝까?”

“똑똑허네, 넘의 이름도 착착 알아맞추고이. 그런디, 나는 오맹순이 허드키는 허지 마쑈이. 시방 빙원에 갈 시간이 다 되焰당게. 오늘 못 가면, 또 사날을 지다려야 되야. 밤 되먼 물팍이 셔서 잠을 못 자. 시한 내내 새물팍(쇠무릎) 뿌랭구를 과 묵었어도, 이것이 하도 오래된 고질이라 낫지를 안해. 차부 옆에 한의원서 침 맞고는 내가 포도시 기어댕기요, 시방.”

“임애기 본적이 어디입닝까?”

“소리쟁이.”

김경사가 웃고 만다.

“웃지 마러, 정든게.”

그래서 모두 웃고 말았다. 오명순, 임애기, 박석택, 김용택, 김애순, 노분례, 김공님까지 조사가 끝났다. 그제야 김경사는 피로한 한숨을 토해냈다. 남자인 진평리 이장 박석택, 영산리 이장 김용택과 육십대라 상대적으로 젊은 김애순만 빼고 네사람이 글자를 알지 못했다. 이제 영희 차례가 되었다.

“성함을 확인하겠습니다.”

“이영희입니다.”

“본적지는요?”

“배고픈다리요.”

오명순의 시앙골, 임애기의 소리쟁이가 오래 잊고 있었던 배고픈다리를 떠올리게 하다니.

“위원장님까지 왜 그러십닝까아.”

김경사가 웃는다. 영희도 웃는다. 웃기는 웃는데, 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만 가슴 한복판에서 졸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가슴골을 따라 흐르던 그것은 급기야 영희 눈 밖으로 분출되기 직전이다. 그 사태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한껏 들어올리고 김경사의 등 너머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 화단에 하얀 수국꽃이 뭉킁뭉클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국 이파리가 우수수 흩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나비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대답은 회피하고 자꾸 창밖만 쳐다보시깁닝까, 위원장님?”

“김경사님, 꽃 좀 봐요.”

“위원장님이 수사협조하는 데 모범을 보이시야지, 해찰이나 하고 말입니다. 자아, 여기 순양석재 측에서 업무방해 증거로 내놓은 사진을 보면, 트럭 앞을 가로막는 노분례씨 뒤에서 뛰쳐나오고 있는 분이 위원장님 본인 맞으시죠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 한줄기가 불어왔다. 그 틈을 타고 꽃들이 책상 위로 날아들었다. 할머니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야 이놈들아아, 꽃나비다아! 꽃나비여.”

야 이놈들아,라고 한 게 재밌었는지, 노인들은 어린 소녀들처럼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까르르 웃어젖혔다. 김경사가 파르르 떨며, 창문을 꽝 닫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쁜 꽃나비가 무섭기도 허는 모냥이여어.”

왕언니, 오명순의 한마디에 겨우 멎었던 웃음소리가 또다시 꽃처럼 피어났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