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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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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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2

꽃 같은 시절

 

 

화전놀이

 

다시 또 이승에는 봄이 왔나보다. 내내 보이지 않던 백세할멈이 우리집으로 들어선다.

“누가 소리허먼 같이 가잘깨비 즈그들끼리 가부렀어.”

궁시렁거리며 뚤방에 주저앉는다. 언제나 봄이면 그렇듯이 우리 집은 사방이 꽃천지다. 저를 누가 보아주든 말든 꽃들은 절로 피어나서 저희들끼리 소곤소곤, 속닥속닥, 조단조단 놀다가 누가 보든 말든 옷을 갈아입었다.

“어이, 무수굴떠기.”

유채밭에서 날아오른 나비를 보고 백세할멈, 해징이댁이 나를 부른다. 나비 훨훨 날아 살포시 해징이댁 발밑에서 날개를 접는다.

“어이 무수굴떠기, 이승 떠난게 재미가 존가?”

나비가 깜박깜박 날개를 파닥인다.

“호랭이가 물어가던갑다. 클클클.”

해징이댁 서슬에 놀라 나비가 훌쩍 날아올라 산수유나무 가지 위로 폴딱 올라앉아버린다.

“어이, 무수굴떠기, 암도 몰래 우리 오늘 자네 집에서 화전놀이나 험세. 조낸냄이가 영판 심심허네.”

육신을 빠져나오고 나서 바람에 떠돌고 햇빛에 바래고 달빛에 젖은 내 혼은 이제 반귀신인 해징이댁, 조난남에게도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고 형상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나는 하염없이 가벼워지고 하염없이 말개졌다. 가볍고 말개져서 티끌과 같아질 때, 나는 저승사람이 될 수 있을까. 허나 아직 나는 티끌이 되지 못해 저승과 이승 언저리를 헤매는 중이다.

“어이, 오매기, 왜 아무 말이 없는가. 한번 저승 가불면 그것으로 끝이란 말이여?”

나, 이오목이가 시집을 온답시고 보따리 하나 싸들고 산을 넘어왔을 때, 집은 굴속 같았다. 머슴 김춘복이는 장가를 들기 위해 눈속임으로 마당에 짚벼늘(짚가리)과 사내끼(새끼)다발을 쌓아두었다. 중신을 선 방물장수가 짚벼늘과 사내끼가 마당에 그득하더라고 하니, 어머니는 그 집에 가면 밥은 굶을 리 없겠다고 내 등을 떠밀었다. 조실부모하고 조선 천지에 의지가지 하나 없는 외톨배기라고 울음을 우는 김춘복이가 가여워 나는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춘복이한테 있으나 친정으로 가나 굶기는 매한가지, 나는 산 넘어온 지 사흘 만에 친정집에서부터 가지고 온 베틀에 앉았다. 굴속 같기는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인 앞집 사는 해징이댁이 시엄씨 몰래 감자를 싸들고 왔다. 무수굴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것이 틀림없는 저승새가 휘이익휘이익 새되게 울어대던 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던 밤, 해징이댁이 가져다준 감자에 나는 목이 메었다.

“그것이 그렁게애……”

나는 해징이댁이 그것이 그렁게애, 뒤에는 노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날도 그랬던 것이다. 감자를 먹으며 목이 멘 풋각시 등을 다독거려주며 해징이댁, 조난남이가 뜬금없이 그것이 그렁게애 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미영(목화)씨 기름불 가늘게 타오르던 그 밤에.

“아이고오 불쌍한 울오머니 왜 나럴 낳으셨나요오 못 묵고 못 입힐라면서 왜 나를 낳아설랑 그리 설워하시나요오 불쌍한 울오머니 나럴 난 게 죄가 아닝게로 우지를 마소 산해진미는 아니라도 오색채상에다는 아니라도 유과 석짝은 아니라도 사우가 잡은 꿩괴기를 고아설랑 오지함지에 이고지고 산 넘어 무수굴로 울오머니 찾아가세애, 어이 인자부터는 나럴 성이라고 부르소이?”

그때부터 해징이댁은 성이 되었다. 누가 머슴출신들 아니랄까봐 비만 오면 둘이서 골방에 들어앉아 봉초담배 피워가며 사내끼를 꼬던 무수굴양반 김춘복이와 해징이양반 양도출이 그렇게 꼰 사내끼 몇다발과 새로 깎은 지게를 팔러 장에 간 날, 난남이성하고 나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베를 날았다. 돌배기를 등에 매달고 일을 하다 하다 불이 무서워 마당 한쪽 감나무에 비끌어 매놓은 애기가 뙤약뙤약 울어젖혔다.

“난남이성, 애기가 젖 주라고 우요.”

내 말을 못 들은 척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왔다갔다 하며 삼베에 치잣물만 먹이던 난남이성이 부아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내가 조낸냄이가 아녀어, 조낸냄이는 조낸냄이여어.”

“조낸냄이는 조낸냄이가 아니고 조낸냄이는 조낸냄인 것은 차후에 따지기로 허고 우선에 애기 젖……”

애기는 곧 숨이 넘어간다.

“그것이 그렁개애…… 넘의야 인사는 당꼬쓰봉 하이카라 펜대를 잡는디이 베잠뱅이 또출이는 배나무거리 도라무깡통 각시를 안고 돈다네 천불이 나네 천불이 나네 이녀러 오목가심에 천불이 나네 니 에미가 죽었냐 니 애비가 죽었냐 뭣이 어쩐다고 처울어쌌냐아.”

하고는 애기 앞에 푹 엎어졌다. 젖을 물렸지만 보타진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애기는 젖을 빨다 화가 나서 다시 또 끼역끼역 울었다. 그날, 먹을 것은 없고 장에 간 신랑은 오지를 않고 애기는 울어싸니 조낸냄이는 조낸냄이가 아니고 조낸냄이는 조낸냄이라는 엉뚱한 말로 사는 일의 설움과 혼자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밑도끝도없는 부아를 깡통 우그러뜨리듯 우그러뜨리던 아직 새각시 시절의 난남이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이, 오매기동생, 어디서 술 한통개만 받아오소. 화전놀이를 헐라며는 술이 있어야 혀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송홧가루 노랗게 달리던 그 봄에 우리는 군서기 몰래, 면서기 몰래, 순경 몰래, 담근 술을 이고 지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한강쟁이댁, 시앙골댁, 살푸쟁이댁, 밤실댁, 오릿골댁, 해징이댁, 용수막댁, 무수굴댁이 장구 둘러메고 솥뚜껑 거꾸로 들고 산에 올라갔다. 우리는 이쁜 치마저고리를 입고 산에 올라 술을 먹고 꽃전을 지져먹고 장구를 치고 놀았다. 새끼들이 울건 말건, 서방들이야 굶건 말건, 시부모들이야 눈을 흘기건 말건 우리가 그만 놀고 싶을 때까지 지치도록 놀았다.

“어이, 오매기 자네 어디 갔는가, 이리 와서 나랑 화전놀이 허잔께애. 아이고 내 정신 좀 보소 노망이 왔다 허등마는 내가 헌 말도 잊어부네, 술 받아갖고 얼릉 오소이. 그런디 장구는 누가 갖고 올랑가아? 김채서니가 각고 올랑가아, 양불라니가 각고 올랑가. 양불라니, 김채서니, 오맹수니, 이수님이는 언제나 올랑가아.”

장구는 살푸쟁이댁 김채선이가 잘 쳤다. 장구를 치는 김채선이는 참말로 이뻤다. 이쁘다는 말로는 한참이 부족하게 이뻤다. 김채선이가 탱탱하게 약이 오른 장구를 토옹 하고 건드려보고 나서 가는 어깨와 허리에 장구끈을 질끈 동여매고 빙글, 나서면 그 어여쁨에 나는 포옥, 눈물이 나왔다.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곱게 낭자를 한 김채선이가 하얀 버선코 사뿐사뿐 들어올리며 드디어 당글당글당글당글 장구를 치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통개통개통개통개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술에 안 취했어도, 김채선의 장구소리에 취해 내 몸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던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꽃지짐이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기 시작하고 술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조난남이의 노랫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영자야 호박 쌀마라 채선이 젖통 같은 호박을 쌀마라 호박조청을 댈이다가 양은솥에 구먹을 내라 구먹 낸 솥단지는 시엄씨 몰래 엿바까묵고 호박조청은 암도 몰래 너하고 나하고 묵어불자 시엄씨 몰래 묵어불고 시압씨 몰래 묵어불고 서방 몰래 묵어불고 새끼들 몰래 묵어불자 입 싹 딲고 보리밭 매러 가세나 보리밭 매러 가서 산신령을 꼬셔다가 갓두루매기는 떡 사묵어불고 꽤를 홀랑 뱃겨서는 신방을 채리자 시엄씨 몰래 채리고 시압씨 몰래 채리고 서방 몰래 채리고 새끼들 몰래 채리자 입 싹 딲아불고…… 어이 인자 어디를 가까아?

 

우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데굴데굴 굴렀다. 먼데 산에 불이 붙었다. 진달래가 불꽃처럼 팡팡거리며 터져나왔다.

 

오동통통 발동기야 울지만 말고 돌아라 니가 돌아야 쌀을 사서 밤봇짐을 싼단다

 

우리는 웃다가 울었다. 검은골댁 한연순이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필이면 아들, 딸이었다. 젖을 물릴 때면 시엄씨, 시압씨가 지켜보다가 딸한테 먼저 물리면 며느리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시부모야 그렇다 쳐도 검은골양반 박두봉이가 말은 안해도 연순이 눈치 살살보면서 아들아이만 안아줄 때면 딸한테 미안해졌다. 쌍둥이는 돌 무렵에 홍역을 않았다. 아들은 살고 딸은 끝내 숨이 넘어갔다. 두봉이가 금간 오지 속에 딸을 넣어 지게를 지고 산골짝으로 가서 묻었다. 연순이는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까지 아들을 내리 셋을 낳고 밤봇짐을 쌌다. 그놈의 아들들한테 뉘가 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봇짐을 들고 갈 곳이 없어 딸이 묻힌 애기무덤에 갔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굴려도 갈 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더니 두봉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두들겨팼다. 그리고 그것은 습이 되었다. 두봉이는 틈만 나면 연순이를 팼다. 두들겨맞아가면서 연순이는 삼식이 밑에 사채, 오채, 육채까지를 낳았다. 발동기가 울지도 않고 돌아버렸다고 주막거리에서 두봉이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질을 했다. 딸딸딸딸, 하지도 않고 바로 아들을 낳았단 뜻이다. 화전놀이에서 연순이는 운다. 죽은 딸 생각이 나서 운다. 딸아 딸아 내 딸아 꿈속에서나 보는 내 딸아 내 품안에 있을 적에 햇님같이 웃던 딸아 너는 이제 내 맘속에 달님같이 되었구나 너는 이제 내 맘속에 별님같이 되었구나.

검은골댁 한연순이가 서럽게 우는 한 옆에서 큰골댁 양막녀가 울었다. 막녀는 꽃을 좋아했다. 누가 꽃 안 보고 배부르게 먹을래, 꽃 보고 배 곯을래, 하면 다른 사람은 다 꽃 안보고 배부른 쪽으로 가는데 막녀 혼자 배곯고 꽃 보는 쪽으로 갔다. 막녀는 그런다고 큰골양반 장석조한테 시도때도없이 쥐어박혔다. 콩밭을 매는데 매서 없애버려야 할 비름꽃, 달개비꽃이 이쁘다고 넋을 놓고 있는 참인데 뒤에서 푸푸거리고 달려온 석조한테 직신 얻어맞은 막녀는 얼굴에 멍 가라앉힌다고 종종 호박범벅을 붙이고 다녔다. 호박범벅을 붙이고 사는 와중에 막녀는 딸만 다섯을 낳았다. 원래 일곱을 낳았는데 둘은 돌 되기 전에 날려버렸다. 막녀네 콩밭이 우리 고구마밭 바로 옆에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 쏟아지는데 사방은 적막했다. 한낮의 산밭은 적막해도 수선스럽다. 밭을 매다가 막녀가 낄낄거리며, 닝꽁닝꽁닝꽁니잉, 했다.

“뭣이여?”

“무수굴성님, 칡낭구 가지 새로 내려오는 거무가 닝꽁닝꽁닝꽁니잉, 안허요이?”

“자네집 밭에 거무는 닝꽁닝꽁닝꽁니잉 헌가? 우리 집 밭에 거무는 지꾸지꾸지꾸지잉 허그만.”

그 옆에서 깨밭을 매던 살푸쟁이댁 김채선이가,

“아이고 성님들도 차암, 소리 안 내는 것이 소리는 더 많다고 안 그럽디여?”

“자네 말이 옳네. 소리 내는 거시는 띠룽띠룽띠룽, 띠루룽 한가지 소리지마는 소리 안 내는 것들이 뭔 소리를 가졌는지 우리가 얼매나 알겄는가이?”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져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할 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지꾸지꾸지지잉, 띠룽띠룽띠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

“어이, 무수굴떠기, 어디 갔다 인자 온가아?”

나비를 좇다가 지쳐 잠이 든 해징이댁이 부스스 깨어나 나를 찾는다. 나비가 해징이댁 앞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아이고, 술은 받아왔는가아?”

나비가 이제 방금 벙글기 시작한 모과꽃술에 이마를 부빈다.

“나를 놔두고 살째기들 가부렀네애. 화전놀이를 가부렀어. 즈그들끼리 가부렀어. 암도 모르게 우리도 화전놀이를 허세나. 무수굴떠기 이리와서 술 한잔을 처보소. 채선이가 장구 치고 불라니가 적 부치고 우리는 춤이나 추세나그려어.”

하는데, 우리 집 가득 봄꽃들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벌들이 윙윙거리고 나비가 공공거리고 명새도 찌찌거렸다. 적막강산이 한량없이 수선스러운 봄날의 대낮, 해징이댁 혼자 화전놀이를 하는 한낮, 나도 한소리를 보탰다. 닝꽁닝꽁닝꽁니잉, 지꾸지꾸지꾸지잉…… 해징이댁은 신이 나서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치마끈을 훌러덩 풀어버렸다. 이승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이승하고 짠 듯이 저승도 오늘따라 적막하였다. 때는 이때다 하고, 나 또한 내 혼을 감싼 허물 하나를 벗고 한층 가벼워진 혼을 때마침 날아온 나비 날개에 싣고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해징이댁은 여전히 나비보다 어여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물 같고 풀 같은

 

후배 형미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날, 자신을 노려보며 석현이 한 말이 해정의 폐부에 와서 박혔다.

“글을 몸으로 써야지 머리로 쓰려니, 그렇잖아도 나쁜 머리에서 글이 나오냐 나오길.” 꽝 방문을 닫는데, 해정은 머릿속이 꽝 터지는 줄 알았다. 시인 김수영이 그와 비슷한 말을 한 것도 같지만, 새삼스레, 그렇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는 아픈 자각이 가슴을 친 게 아니라 머리를 쳤던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은 글쓰기 재주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해정의 하소연에 형미는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조언을 줬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술김에 우기다가, 그러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바쁜 기자를 나오라고 해서 술을 퍼먹이고 하소연을 하느냐고 또 술에 취해서 씨부렁거리는 형미를, 헤어지네 마네 하는 와중인 형미 애인한테 애걸복걸하다시피 아주 굴욕적인 포즈로 인계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해정은 소설을 쓰자고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취재중에 안면을 튼 출판사와 덜컥 계약부터 해버렸다. 출판사 사장이 해정의 기사가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거의 작품이라 극찬하면서 그런 건조한 기사문체로 소설을 쓰면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이 될 거라고 적극적으로 추어올린 탓이 크다. 출판사 사장이 검증 안된 사람에게 덜컥 계약금을 안기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근거는 해정이 신춘문예에 예의 그 기사문체로 쓴 단편소설을 투고해서 최종심까지 올라간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에서 치유받는 사람의 어느 하루에 관한 이야기인데, 출판사 사장은 그것을 장편화시키자고 했다. 그런데 해정은 소설을 쓰는 동안의 생활비와 취재며 뭐며 소설 구상에 들어갈 제반 비용으로 써야 할 계약금을 그만 결혼비용으로 쓰고 말았다. 술 먹으면 말 많다는 이유로 실연을 당하고 돌아서던 그 쓸쓸한 거리에 술 먹으면 더 예뻐보인다고 말하는 석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뒤사 어떻게 될 값에, 실연의 아픔 뒤에 다가온 녹작지근한 아스피린 같은 사랑을 거부할 용기가 해정은 없었다. 어찌됐든 간에 그 아스피린과 이왕지사 결혼까지 했으니, 과거의 남자는 숨겨도 빚진 사실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혼하자마자 종족보존의 욕망에 끓어오르는 열기를 주체 못하는 석현을 겨우겨우 진정시켜놓고 책상에 앉았으나, 도무지 머릿속에는 하얀 등과 까만 등만이 명멸할 뿐이었다. 인생사가 천연색이니 소설도 그러해야 할진데 흑백티브이만이 깜박이니, 형미 말대로 환경을 바꾸든지, 석현이 말대로 어디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삶의 현장’에라도 나가든지,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출판사와 약속한 기한은 일년이었다. 앞으로 일년 안에 해정은 장편소설 하나를 완성해야 한다. 바로 그때, 연락을 해온 경희가 하나의 나침반이 되었다.

“야, 해정아, 아파트에서 뭔 글이 나오겄냐. 자고로 글은 산천경개 수려한 곳에서 청풍명월을 벗 삼아야 나오는 법이란다.”

고향이 전라도 순양인 경희는 대학에서 만났다. 자기 고향 동네에서 여자가 대학에 입학한 게 동네 유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떠벌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여간, 이래도 안 나오고 저래도 안 나오는 글일 바에야, 우선 형미 말대로 환경이라도 바꿔보자, 하고서 지난겨울 산천경개 수려하고 청풍명월 벗 삼을 만한 경희네 비어 있는 친정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이 집에서 혼자 살던 경희네 엄마가 경희 여동생 아이 바라지를 위해 서울에서 일년 정도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도 경희 엄마가 살던 곳이어서 냉장고에는 경희 엄마가 해놓고 다 못 먹은 반찬이 가득했고, 해정은 보일러에 기름만 채우면 되었다. 남향집이라 햇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서 낮에는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그리 춥지 않아 기름도 그다지 많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집 뒤로는 산죽나무가 바스락거려서 귀가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고, 집 앞으로는 산을 휘돌아 냇물이 흘러 눈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배산임수, 금환낙지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 수려한 경치에 홀려서 시간 가는 줄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청풍명월 벗 삼는다는 핑계로 또 몇날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니 ‘환경 바꾼 지’벌써 한계절이 지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이다. 문득 정신이 들어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자아, 이제부터 쓰는 일만 남았다, 하고서 막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려는 순간, 햇빛 자글거리는 어느 봄날에, 낯선 여인이 해정을 찾아왔다.

누군가 찾아오면, 해정은 먼저 손사래부터 쳤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석현이나 경희 말고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인사를 트기 위해 찾아온 이장한테도 저기요, 저는 살러 온 사람이 아니고 그저 글 쓰러 온 사람이니 그리 신경 쓰지 마시라고, 조용히 들었다가 조용히 나가겠노라고, 그러니 너무 서운케 생각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이장이 정색을 하고,

“배운 분 앞에서 제가 주제넘는 소리를 허는지는 몰라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사람이 들어왔으니 인사 정도는 터야 사람 사는 동네라 헐 수 있지 않겠느냐, 허는 것이지요.”

“이장님 말씀은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오나…… 제 생각은…… 그게 그러니까…… 근데요, 아저씨, 저 정말 조용히 있으면서 글만 쓰다가 조용히 나갈라고 들어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제발…… 네? 아저씨.”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물론 글을 쓰실라먼 조용헌 환경이 제일차적으로 최적의 조건이 되겠지요. 허지마는 동네에 누군가 들어왔는데애 이장으로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점을 이해 바랍니다, 그러고 글 쓰시는 데 혹여라도 필요헌 것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니 언제라도 허심탄회허게 말씀해주십시오. 글 쓰시는 데 방해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을 안했는데도 ‘심’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물’적인 지원이 바로 되었다. 마을 노인들이 자박자박 와서는 비닐이나 신문지에 싼 먹을거리들을 마루에 슬쩍 놓고 가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서 튀어나가, 왜 이런 걸 저한테 주고 가시냐고, 괜히 모르는 사람한테 잘못 놓고 가시는 거라고, 설명을 하고 해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누구먼 어쩌가디.”

방안에 들어와 ‘누구먼 어쩌가디’를 뇌다가, 양에 안 차서 볼펜을 꾹꾹 눌러 써보기도 하다가, 그만 쿡쿡 웃고 말았다. 그 뒤로는 굳이 튀어나가지도 않고 가져다주는 대로 감사히 받아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으로 들어서는 여인은 태도가 이 동네사람은 아닌 것 같다. 말하자면 이제야말로 해명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문틈으로 여인의 동태를 살피다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저기요. 저는……”

“알아요. 알고 찾아왔어요. 작가시라면서요.”

“예에? 자, 작가요?”

“네.”

“자, 작가…… 아, 예에. 뭐 그냥……”

작가라는 말이 그리 싫지는 않다.

“그래서 온 거예요.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저는 이영희라고 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유정면 진평리 살고 있구요.”

“그런데 왜 절 찾아오셨는지……”

이영희가 편지 비슷한 흰 종이를 내놓는다.

“이걸 읽어봐주세요.”

 

유정면 할머니들 물 같고 풀 같은 데모를 하십니다.

이름 석자도 잘 못 쓰시지만 시절인연과 사람의 도리는 잘 아십니다. 애기 낳은 다음날에도 논밭에 나가야 했던 서러운 일생이었지만 내 삶터는 내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아픈 다리 이끌고 순양군청 앞에 모이십니다. 바위를 깨서 잘게 부수는 최악의 공해업종인 쇄석기가 유정면 한가운데 버젓이 밀고 들어왔는데 순양군청은 문제가 없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밤낮 시끄럽고 먼지 나서 못 살겄는디 그것을 단속하는 공권력은 없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죄인 취급하는 공권력만 있으니 천불이 났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점령군처럼 군림하는데 수많은 민원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손에 의해 뽑힌 국회의원, 도지사도 외면을 합니다. 소위 전관예우라는 것에 기대를 하고 쌈짓돈 털어 수임한 변호사님도 약자의 고통에 마음을 담아주지 않아 고아처럼 외로웠습니다.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나 단체마저도 지역의 작은 사건이라고 무관심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숨쉬고 살아 움직이며 아프고 고통받는 구체적인 삶에 기반하지 않은 생각이나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주민들이 물 같고 풀 같은 싸움을 시작한 지 네 계절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 봄날,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여린 풀들처럼 영차영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린하고 이를 묵인 방조하는 강자들의 세계에 맞서 만만한 사람끼리의 끈질긴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순양군청은 불법에 면죄부를 주는 마지막 관문인 공장 등록을 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잠들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순양군청, 환경부, 언론사, 인터넷 등에 널리 항의글이나 제보의 글을 올려주세요. 이제 농번기여서 농사지으랴, 교대로 데모하랴, 라면으로 끼니 때우랴, 할머니들이 너무 힘드십니다. 당신의 작은 정성이 우리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일종의 호소문이다. 호소문 아래에는 후원계좌와 연락처가 적혀 있다. 후원계좌를 적어온 걸 보니 후원을 해달라고 온 건지, 아니면 쇄석긴가 뭔가 설치반대 하는데 서명을 해달라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그러나, 뭐가 어찌됐든, 일단, 다시 한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또다시

“저기요……”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다만,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제가 쓴 호소문이에요.”

“네에.”

새삼스레 이영희라는 여자를 훑어보게 되던 것인데,

“사실은, 제가 호소문이란 걸 처음 써보는 거예요.”

“너무 잘 쓰셨어요.”

혹시 호소문을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봐달라는 부탁인가 싶어 해정은 서둘러 칭찬부터 하고 봤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작가님, 부탁이에요. 제 호소문에도 나와 있다시피 우리 할머니들이 지금 너무 힘듭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이영희의 눈가가 붉어진다.

“그쪽에 무슨 공해업소가 들어왔나부죠?”

“네에. 불법업소죠. 도대체 법대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관청은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불법업소의 불법영업을 묵인하고 있죠. 우리 주민들은 당장에 생활하는 것도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관청이 불법업소를 묵인해주고 심지어는 비호까지 하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주민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도 억울해서, 억울해서…… 하여간,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군청 앞마당에서 데모를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작가님께 부탁드릴 것은 말하자면 이 억울한 사연을 작가님께서 글로 써서 세상에 알려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초면에 이런 부탁을 드려서 정말 죄송하긴 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이리도 없네요. 우리 할머니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영산리 이장님이 여기 대곡리에 작가님이 내려와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제가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작가님을 찾아왔네요.”

말하면서 몇번을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면, 이영희에게는 정말 절실한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저기요……”

“알아요, 작가님 글쓰시느라 바쁘신 거. 하지만, 우리 할머니들이, 우리 할머니들이……”

‘우리 할머니들’만 말하면 바로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되도록 빠른 어조로,

“제가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리고 마음은 아프지만, 제 사정이 지금, 다른 글을 쓸 처지가 아니라서…… 제가 오죽했으면, 글쓴다고 이런 시골까지 내려왔겠어요, 저도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사정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정말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소 매몰차게 방문을 닫고 들어와버렸다. 그래도 사람이 가는 걸 보고 문을 닫아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다시 문을 열고 인사를 하려 했지만 이영희는 이미 가버렸다. 마루에 호소문 한장이 낙엽처럼 놓여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절박하다더니, 한번 더 부탁을 해보지도 않구선……뭐, 그리 절박한 것도 아닌가 보네…… 호소문 종이쪽을 들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왠지 무안하고 왠지 민망하고 왠지 속상해서 혼잣말을 해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남의 일, 내 코가 석자다 하고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그러나, 이영희의 눈물이 자꾸 제 눈앞을 가로막았다.

 

군청 앞, ‘군민의 쉼터’란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에 노인들이 오물오물 쪼그려 앉아 있다. 정자라고 하지만 마루가 있는 건 아니고 누각 아래, 나무색깔을 입힌 시멘트 벤치가 놓여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노인들이 그 벤치를 밥상 삼아 밥을 먹는 중이다. 이영희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노인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서자 이번에는 여자노인들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어서 오씨요. 그런데 우리가 시방 안녕을 허덜 못허요.”

“밥 맛있겠네요.”

“괴기반찬은 없어도 아직 밥 안 묵었으면 좀 드씨요.”

어디서 온 사람인지, 누구를 찾아왔는지도 묻지 않고 노인들이 주섬주섬 플라스틱 밥그릇에 밥을 고봉으로 퍼서 숟가락을 꽂아준다. 엉겁결에 노인들 틈에 앉아 밥을 퍼넣었다. 반찬은 말린 고구마대를 넣은 잡어찌개, 마늘종 장아찌, 유채 겉절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은 꿀맛이다.

“밥이 정말 맛있네요.”

의례적으로 한 말이 아니다. 단순히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래전 집을 떠났다가 이제 방금 돌아온 집에서 눈물과 함께 먹는 회한의 밥 같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느낌을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맛있다고만 한다.

“밥 많이 있응게 더 자시씨요.”

아닌 게 아니라 더 먹고 싶기는 하지만,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은 자기 혼자라 뻘쭘해져서 그만 숟가락을 놓았다.

“할머니들, 여기서 데모하시는 분들이죠?”

“쿠쿠쿠쿠, 그런다요. 우리가 시방, 디모를 허는 망구들이다요. 우리 아덜이 디모헐 적이는 디모허지 말라고 벤또 싸각고 다님서 몰리고 댕기든 내가, 호랭이 물으갈, 오널날에 이러고 디모를 다 헐지를 어찌 알았겄소이? 그런디, 집이는 어디서 온 냥반이요?”

밥 실컷 먹여놓고 한참 말 섞고 나서야 온 곳을 묻는다. 모든 할머니들이 해정만 주시하고 있다.

“서, 서울서 왔어요.”

다 들었을 텐데도 어디서 왔냐고 물은 할머니가, 서울서 왔디야 하고 다시 전한다. 해정의 말에는 고개 끄덕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울서 왔어어? 먼 디서도 왔네애, 독가리나 날리는 이리 물짠 디(형편없는 데)를 뭣 허러 왔으까이, 볼일이 있응게 왔겄지라우, 한마디씩 중구난방으로 거드는 와중에 이영희가 나타났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데 이영희가 반색을 한다.

“써주실라구요?”

이영희가 왔다간 이후 해정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글을 써서 언론사에 보낼 마음은 없었다. 유명작가가 아니어서 실어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자신의 글을, 이미 돈까지 받아먹은 장편소설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형미한테 부탁하면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전화를 했다. 명색이 그래도 시사잡지 기자가 아닌가. 사연을 애기했더니. 형미 왈,

“언니, 그게 그러니까 말야, 쇄석기 반대투쟁이 유정면에만 있는 게 아냐. 전국이 다 그래, 다. 내 말은 그러니까, 유정면 주민들의 투쟁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러면, 특별하지 않으면 기사로 쓸 가치도 세상에 알릴 이유도 없다는 거야, 뭐야?”

“요는, 그러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동네이야기까지 기삿거리로 다루기엔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한 나라가 아니란 말이지. 물불 안 가리잖아? 불만 해도 봐봐. 남대문에서, 이천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물은 또 어디야? 당장에 4대강이 있네. 언니, 근데, 4대강 중에 섬진강도 들어가나?”

“섬진강은…… 아닌 것 같애.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인가?”

“있는 곳이 남쪽이라면 영산강 쪽이야? 섬진강 쪽이야?”

“아무 쪽도 아냐.”

“으음, 그럼 뭐 시끄러울 일도 없겠네.”

“4대강만 시끄러워야 하냐? 돌공장이 시끄러우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말해놓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그러면 돌공장은 시끄러워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 돌공장이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할머니들이 데모를 한다지 않나. 그런 판국이니, 정말 돌공장이 시끄러우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 말은 시끄러운 것도 다아, 순서가 있단 말-”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어떤 기운 때문에, 형미 말을 가로챘다.

“순서? 순서 좋아하지 마라. 여기 지금 애기 낳고 다음날 바로 논밭에 일하러 나가야 했던 할머니들이…… 할머니들이……”

이것이 무슨 조홧속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영희한테서 전염이 된 게 분명했다. 이영희가 할머니들이라는 말만 발음하면 눈에 눈이 고이더니, 그 증세가 자기한테 옮겨올 줄이야. 더구나 자기는 할머니들을 본 적도 없지 않은가. 출판사와의 약속이고 뭐고, 할머니들을 직접 보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장편이건 뭐건 아무것도 써질 것 같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무엇이 그토록 이영희를 울리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길이었다.

“지난번엔 미안했어요.”

“바쁜 분을 찾아간 저도 미안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밥 좀 드시지요.”

“밥은 할머니들이 주셔서 먹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고달픈 나날 속에 준비했을 밥을 단순히 ‘맛있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덜 미안해해도 될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들이 날마다 이렇게 길에서 밥을 드시네요.”

“날마다 소풍을 나오는 것이제이.”

군청 화장실에서 받아온 물로 설거지를 하던 꽃무늬 몸빼 할머니가 소풍이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웃는다.

“뭔놈의 소풍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야 되야.”

“오늘 소풍에는 막걸리 한잔도 없네.”

“이왕에 소풍 왔응게 장구도 들고 나와야제.”

이영희가 빙긋이 웃으며, 손바닥을 딱딱 친다.

“이제 밥도 먹고 설거지도 끝났으니까, 우리 언니들 공부합시다.”

누각 아래 이영희가 가갸거겨고교가 적힌 차트를 건다. 해정은 군청 건너 들판을 바라보았다. 거기, 가갸거겨고교가 물처럼 흘러 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지렁이 울음소리

 

영희는 자신이 없어 종숙을 앞세웠다.

“여기야? 야아, 변호사님이 무슨 글도 쓰시는 분인갑다아.”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이주연 변호사의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이 스크랩되어 걸려 있다. 영희는 잠깐 서서 그걸 읽었다. 작년 가을에 지방신문에 쓴 칼럼이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왔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데, 우리 인간은 이제 꼭 가을이 아니라도 사계절 내내 살찌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몸이 살찌는 것과 비례하여 마음은 더욱 여위어가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가을에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저절로 마음의 양식인 책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야, 뭐해?”

종숙이 채근한다.

“종숙아, 이 사람 책도 많이 읽는 사람인가봐.”

“책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맘도 착할 거다.”

“니가 걸 어떻게 아는데?”

“책에서 작대기 하나만 빼면 착이잖냐.”

우습지도 않는 농담을 하는 것은, 영희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종숙 나름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변호사 사무실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오기 전에 미리 전화를 했을 때, 심드렁한 목소리의 사무장은 일단 사무실로 나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도 영희도 불편한 자리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불편해도 할 수 없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시골 노인들의 피 같은 돈이잖은가. 이 사태는 자신이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던 탓이라고 영희는 생각했다. 사무장은 영희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걸 분명히 봤을 텐데도, 못 본 척 제 책상에 엎드려 서류에 코를 박고 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영희가 다가가 인사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어디 앉아 있을 만한 의자도 없는데도 어디에 앉으라는 말도 안한다. 종숙이 일부러 그러는지는 몰라도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아예 사무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버린다. 영희는 차마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아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사무실 안을 구경하는 참인데, 따로 문이 달린 변호사 방에서 전화벨 소리가 났다.

“사무장님, 혹시 변호사님 안에 계세요?”

사무장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일단 자기 자리 앞으로 오라고 한다.

“제가 바빠서 긴 대화는 못 나누겠고요.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일은 사실 저희도 처음이거등요. 그러니깐, 아주머니도 어디가서 수임료 돌려받았다는 이야기는 허지를 마십시오이? 원래 수임료라는 것이, 이기고 지고와 상관없이 계약한 대로 주고받으면 그걸로 끝이란 걸 아셔야 합니다이. 그런데, 이번에 아주머니한테 돌려드리는 것은, 우리 변호사님이 특별히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니, 그 점은 꼭 알아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이? 돈은 이따 오후에 바로 입금될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정도를 돌려드려야 합니까?”

“네?”

다 돌려주는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도저히 다 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간, 이따 오후에 통장 확인해 보십시오이. 근데, 좀전에 농성체제로 앉아 있던 아줌마는 어디 갔다요?”

종숙이 보이지 않는다. 변호사 방 안에서 종숙이 목소리가 들린다.

“변호사님,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변호사님도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시골 노인들이 콩 팔고 깨 팔아 한닢두닢 모은 돈이랍니다. 기름 아낀다고 한겨울에도 벌벌 떰시로……”

변호사 방 문이 벌컥 열렸다.

“아주머니, 사무장하고 얘기하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겠어요.”

문을 나가는 변호사를 종종거리며 쫓아가는 종숙을 영희가 붙잡았다.

점심을 먹을 겸 실빗집에 종숙이와 막걸리 한병을 놓고 마주앉았다.

“뭣 모르고 따라오긴 했다만, 도대체 뭣 땜에 변호사를 샀는데? 그래서 또 나까지 끌고 와 착하지도 않은 변호사 붙들고 돈을 돌려달라 애걸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목이 말라 우선 막걸리 한잔을 따라먹고,

“돌공장이 크락샤라는 돌 깨는 기계를 채석장에 설치하려고 했어. 채석장 인근 동네 사람들이 가만있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머리를 쓴 거야. 우리 동네, 진평리 앞 레미콘 공장을 인수했어. 레미콘을 없애버리고 거기다가 크락샤를 설치했어. 군청에 업종추가 신청을 했는데, 군청이 안 받아줬어. 그걸 전문용어로, 행정처분이라고 해. 나도 이 싸움하면서 알았어. 그러니까 업체가 군청을 상대로 공작물, 크락샤 철거처분 취소소송을 낸 거야. 공작물 축조신청서 반려처분 취소소송도 함께 냈지.”

종숙이 미간을 찡그리며, 주모에게 노트와 연필을 달라고 한다.

“다시 한번 읊어봐.”

“하여간. 그래서 우리가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신청을 해가지고 노인들 피 같은 돈을 거둬서 오백으로 변호사를 샀어.”

“피고 보조참가인이란 게 뭐여?”

“피고가 군청이잖아. 우리도 피고와 같은 당사자 입장이 되는 거지.”

“그러려면 변호사가 필요해?”

“레미콘회사가 레미콘사업은 안하고 크략샤사업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승인을 내주면 안되니까, 우리 변호사를 사서……”

“그런데, 왜 돈을 돌려달라고 해?”

“이 자들이 소송을 취하한 거야.”

“싸워보도 않고?”

“응.”

“왜 그랬으까?”

“……하여간, 한번도 싸워보지도 못한 소송이라 변호사가 한 일이 없잖아. 노인들한테 면목이 없고, 어젯밤 내내 고민하다가 안되겠어서 전화를 했지. 그랬더니 이렇게 오라고 하잖아.”

“근데, 이 변호사는 누가 소개해줬어?”

“니네 오빠 김종수. 학교선배라나 뭐라나.”

“지랄.”

자신이 지금 밥을 먹는지 모래를 먹는지, 영희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냥 퍼넣었다. 어린이집에서 곧 복주가 돌아올 시간이니, 서둘러 집에 가야 해서 막걸리는 더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가 없었다.

 

“애 꼴이 저게 뭐냐?”

아이 얼굴에 땟국이 잘잘 흐른다. 요즘 가끔 영희가 저를 마중나가지 않으면 어린이집 차에서 내린 복주는 저 혼자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왔다.

“쪼끔밖에 안 늦었어. 그리고 인제 지가 집도 잘 찾아올 줄 알어. 여기는 시골이고, 뭐가 걱정인데?”

철수는 요새 영희한테 불만이 가득하다. 철수도 요새 자기 매형 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트럭노점을 그만두고 최근 중장비기사인 매형을 따라 새만금둑 쌓는 곳에 가서 노동품을 팔고 왔다. 새만금일이 끝나면 죽이러 가는지 살리러 가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4대강 공사현장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4대강이 환경에는 좋지 않다고 하던데요.”

철수가 내키지 않아하자,

“물론, 물이라는 것은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썩는 것이 당연지사지. 허지만 그런 것은 높은 사람들이 책임질 일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환경도 좋지마는 우선 먹고살아얄 것 아닌가벼어. 물이 고여서 썩으면 또 언젠가는 뜯어낸다고 허겄지만서두우.”

술 한잔에 그만 매형 말에 설복당했다. 아니, 설복당한 척했다. 안 그러면 따라갈 명분이 서지 않아서 그랬다. 처남이 그래도 직수굿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것이 기분 좋았던 매형은 복주 갖다주라고 과자를 사오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이고 말았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다 여길 정도로 멀쩡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춘곤은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요즘은 숫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춘곤은 보험 들어놓은 게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교통사고 보험금을 신청했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조사를 하더니, 춘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는 증거가 없어서 상해보험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누나 순자는 철수만 붙잡고 징징거렸다. 며칠 전 철수는 애초에 춘곤을 진찰했던 의사와 드잡이를 하다가 경찰서까지 다녀왔다. 그런 상황인데 영희조차 돌공장일로 밖으로 나도니, 철수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매형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데, 너는 애조차 팽개쳐두고…… 우이씨.”

철수 손이 올라간다. 영희는 그만 사색이 되어버렸다.

“왜, 그 손으로 날 칠려고?”

“치고 싶다아!”

“치고 싶다고? 치고 싶으면 쳐, 왜 못 쳐?”

순간, 뭔가가 영희 얼굴 위로 퍽 날아왔다. 분명히 철수 손이다. 철수가 영희를 쳤다. 어스름이 내리는 마당으로 쓰러진 영희가 고개를 들었을 때, 철수는 길지도 않은 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집을 나가버린다. 그 난리에 복주가 울다가 그만 옷에 오줌을 지렸다. 아이가 새된 악을 쓴다.

“오주움, 오주움……”

콱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며, 오줌싼 아이 뒤처리를 하다가 마루에 구겨져 있는 ‘특별송달’이라 씌어진 우편물을 발견했다.

 

소장

 

손해배상 청구의 소

원고: 순양석재산업(주) 대표 김수철

피고: 진평리 180번지 이영희

 

청구취지

1. 피고는 원고 순양석재산업(주)에 금 10,000,000원, 원고 김수철에게 금 1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철수가 화가 나게도 생겼다. 그런다고 사람을 쳐? 하여간에 순양석재가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돈이 얼마인지 다시 한번 세어본다. 가슴이 떨려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복주를 쳐다본다.

“복주야,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뭣이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까아?”

아이가 나름대로 엄마를 위로하려는 몸짓으로 아양스런 목소리를 내며 엄마를 그윽이 들여다본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아이를 꼬옥 안고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앞집 베트남 며느리 흐엉란이 음식이 든 양푼을 들고 들어선다.

“우지 마라요. 콘죽 먹고 힘내요.”

틀림없이 좀 전의 소란을 봤을 것이다. 그래서 위로의 차원에서 음식을 가져온 것이리라. 양푼에는 고소한 콩죽이 담겨 있다. 뜨겁고 고소한 콩죽 덕분에 파도치던 가슴이 적이 가라앉았다. 겁에 질린 마음이 차분해진 것이 꼭 콩죽 때문이라기보다, 콩죽을 가져다준 사람의 정 때문이라는 걸 영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정이란 것이 좀 성가시고 의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을 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 정은 정으로 받아야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영희는 그제야 알았다. 한참 콩죽을 먹고 있는데, 앞집 아줌마가 또 뭔가를 들고 온다.

“란이야, 콩죽만 들고 가면 어쩌냐.”

아줌마가 들고온 것은 방금 무쳐낸 파김치다. 앞집 아줌마 아들, 흐엉란의 남편 양정호는 청년회원이자 딸기 작목반이다. 영희야 얼떨결에 대책위에 들어온 뒤에사 알게 되었지만, 이장단과 주민들이 협상을 시도하던 청년회와 작목반들을 불신임하고 외지인인 영희를 새로운 대책위원장으로 뽑은 사실을 아줌마네도 알테니, 사실 앞집과는 좀 불편한 관계일 수도 있겠으나 아줌마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아들과는 상관없이 앞집 아줌마는 영희를 좋아했다. 콩죽에 파김치로 저녁을 배부르게 해결하고 나니, 김철수고 뭐고, 소장이고 뭐고 다 용서가 되는 기분이다.

“어쩌, 배부릉게, 속이 좀 풀린가?”

“아니요.”

“알았어어. 란이야, 우리집 냉장고에 가서 션허게 시아시된 막걸리 한통만 갖고 와라.”

어, 하면 아, 하고 알아듣는다. 그런 사이가 되는 동안에 앞집 아줌마는 어느새, 남숙이성이 되었다. 그녀가 어느날, 그랬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택호가 따로 있어도 성이라고도 불러. 이집 무수굴아짐도 우리 씨오머니한티 난남이성이라고 불렀어. 우리 씨오머니가 조난남이여. 복주엄마도 인자부터 날보고 아줌마 하지 말고 남숙이성이라고 불러. 내 이름이 공남숙이여.”

할머니에서 아줌마로 아줌마에서 남숙이성으로 바뀌는 동안 나이차이와는 상관없이 남숙은 영희와 친구가 되었다. 마을에서 60대 초반은 젊은 축에 속했다. 아직 젊기도 하고 성격도 활달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잘했다. 내놓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얘기까지. 가령 이런 것이다.

“호박을 이고 오는디 누가 뒤에서 빵빵거려. 길을 알켜달라고 해서 내가 가는 길이다 했더니, 타래. 타고 보니, 손목아지도 두툼허고 어깨가 실해. 눈빛도 교양있이 생겼고이. 말허자면 이런 디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식헌 얼굴이 아녀. 생각 같애서는 그 차 타고 한 허고 가불고 싶드만. 내릴랑게 아숩드라고.”

“한 하고 가면, 어디까지 가고 싶었는데요?”

“어디 강변 같은 데이, 음악이 잔잔허니 나오고 허는디서 그라스를 부딪침시로이, 나중에 어찌될 값에, 시방은 당신을 사랑헌다고, 속색이면 그놈이 도망가불겄제이?”

속으로야 웃음이 재채기처럼 간질가질 비어져나오려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적당한 데서 추임새를 넣어줘야 말하는 사람이 더 재미나서 듣는 사람 또한 더 진한 애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영희는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절대로 웃어버리면 안된다. 그러면 말하는 사람이 자존심 상해 할 수도 있다. 눈빛을 반짝이며,

“내가 말여, 지난번에 거그매떠기한테 오줌소태 이야그를 했거등. 그런디 그 인사가 사방에다 그 이야그를 퍼뜨린 통에…… 아이고 참나.”

듣고 있다가 별 의미없이 웃었더니,

“자네도 내 말이 우스매소리(우스개소리)로배끼는 안 듣끼는갑네이.”

하면서 입을 꼭 다물어버렸던 것이다. 웃어서는 안되지만, 속으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려나 술 한잔을 먹고 기다리는데, 남숙이 노래를 부른다.

“싸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찌이 니미 아니면 못 싼다 할 것을…… 우리 씨오머니가 노래를 잘해. 저 집이 노래 잘허는 메느리만 들이는 것이 내림인가벼어.”

자기 집을 가리키며 남의 집 일인것처럼 말한다. 노래 잘하는 며느리만 들이는 집이라니, 흐엉란도 노래를 잘하는지가 궁금해 한자리 시켰더니, 노래는 하지 않고 뜻밖에 시를 외운다. 따우 왜 따바오 메이 따우 라랑 공아이……띠루띠루띠루루루 또르또르또르르르 어디선가 지렁이 울음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그게 지렁이 울음소리인지 몰랐는데, 저 맑은 벌레소리가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남숙이, 지렁이 울음소리라고 가르쳐줘서야, 지렁이가 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낭랑한 지렁이 울음소리에 실린 흐엉란의 낭송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물소야 내가 너한테 할 말 있다 나하고 논에 가서 경작하자 모를 심고 경작하는 것은 원래 농민의 일이다 여기 나 저기 물소 누구도 힘든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벼 한포기 있으면 그때는 물소 너가 먹을 풀이 있다는 것이다.”

“란이씨가 직접 지은 신가요?”

“아니요, 우리 베트남사람 다 아는 시예요.”

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흐엉란도, 공남숙도, 이영희도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띠루띠루띠루띠루루루 또르또르또르또르르르 소리만 듣고 있었던 것은. 어둠속에서 사르르르사르르사르르르 지고 있는 조팝나무꽃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이를 재우고 철수를 찾으러 살금살금 나가보았다. 잠작되는 바가 있었다. 얼마 전 영희가 이장네에게서 얻은 밭에 나가 있을 거였다. 밭가에는 늙은 팽나무가 있다. 그 팽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진평리에 이사와서 철수가 유일하게 정을 붙인 장소다. 영희가 다가가자 철수가 한뼘쯤 떨어져 앉는다. 두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영희가 불쑥,

“시 하나 들어봐.”

“시 같은 소리 하지를 마라.”

철수의 냉소를 무시하고, 베트남시를 읊는다. 물소야 내가 너한테 할 말 있다 나하고 논에 가서 경작하자 모를 심고 경작하는 것은 원래 농민의 일이다……

얼마 전에 감자를 심었는데 벌써 싹이 돋아 어둠속에서도 감자싹이 푸릇푸릇하다.

“감자가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감자 焱” 하면서 영희가 철수에게 주먹감자를 먹였다. 피하지 않고 주먹을 받으며 철수가 낮고 음산하게,

“우리 여기 떠나자. 이사가자고.”

“이사 못 가, 아니 이사 안 가.”

영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철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솔직히 여긴 우리 집도 아니고, 우리 고향도 아니고…… 당신이 나설 상황이 아니잖아.”

“어디 가면 우리 집이 있고 어디 가면 우리 고향이 있는데?”

“하여간 우리 집, 우리 고향은 없더라도, 여기는 싫다. 진짜 싫다. 지금이라도 당장 짐 싸면 되는 거잖아.”

“싫어. 식당 철거당했을 때처럼 맥없이 물러나진 않을거야.”

“이유가 뭔데?”

“여기가 좋아졌어. 여기 사람들하고 정이 들었다고.”

“그놈의 정 두번만 들었다간, 노인들한테 아예 함께 살자고 하겠네?”

“노인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어. 우리는 동지야. 네가 여기서 못 버티고 떠나버리면 나는 어디 가서도 못 살아. 여기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편히 못 살아.”

“여기 살면 내가 안 편해. 애도 안 불쌍하냐?”

“복주가 왜 불쌍해?”

“아 씨발, 날마다 안 좋은 공기 들이마시잖아. 잠도 편히 못 자고.”

“좋은 공기 마시고 살려고, 잠 편히 자고 싶어서 지금 싸우고 있잖아.”

“싸우면 이긴다는 보장이 있냐?”

“몰라. 그래도 싸워야지 어떡해.”

“너하고는 답이 안 나온다, 답이. 이 양반은 진짜 이름만 보고 짝을 맺어줘놓고는 무책임하게……”

애먼 자기 매형 원망이나 하다가, 똥 마려운 강아지 꼴로 안절부절 서성이더니 끝내 폭력 쓴 것을 사과하지 않고 철수는 산을 내려가버렸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지렁이 울음소리가 띠루띠루띠루루루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돌공장에서도 다갈다갈다갈 쿵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지렁이는 돌공장 소리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듯, 간절하게, 줄기차게 울 태세였다. 철수가 그런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을 내려간 것이 안타까웠으나 할 수 없었다. 가만히 귀 기울여야 들리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수의 귀에는 오직 돌공장 소리만 들릴 거였다.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외롭고 괴로워서 우는 새

 

용수막댁 김공님은 뒤꿈치에서 뭔가 터지는 느낌에 그만 움찔, 몸이 굳고 말았다. 틀림없이 그것은 좀 전에 자신이 빗자루로 잘 걷어낸다고 걷어냈던 거미일 것이었다. 분명히 걷어냈던 거미가 언제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왔는지는 하늘에 맹세코 정말 모를 일이었다. 죽이려고 맘먹고 죽인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러나, 누구에게 증명해보일 것인가. 가슴이 후들후들 떨려와서 공님은 우선 첫새벽에 길어온 우물물은 아니지만 안방 옆 입식부엌으로 부리나케 가서 수돗물을 한대접 받아서는 뒤안 장꽝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가장 큰 장독 위에 물을 올려놓고 일단 철륭신이든 조앙신이든 성주신이든 아무나 붙잡고 용서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손부터 비볐다. 아침해가 떠오르려면 한참 먼 어스름 새벽이었다. 손에 땀이 나도록 비비고 나니, 그제사 좀 마음이 가벼워져 방으로 들어와 좀 이르다 싶기는 해도 전화기를 들었다. 얼른 전화를 해둬야 내려오겠다는 막내딸을 말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딸이 전화를 받자마자,

“아야, 오늘 내래오지 마라.”

“왜애? 지난 설에 싸운 일로 엄마 아직도 꽁해? 오빠하고 우리는 진작에 풀었구마는.”

“그것이 아니라아.”

“황서방이 새 차 사서 제일 먼저 엄마부터 태우고 싶다고 기어코 오늘 내려가자잖아.”

“나 새 차 안 타도 된다. 새 차고 헌 차고 차 타먼 머리 아파. 그렁게애 지발직신 내래오지 마라 잉.”

“그래, 그럼 내려가지 않을 테니, 왜 오늘 내려오지 말라는지 이유나 말해줘, 엄마.”

“그것이 그렁게애…… 거무를 주, 주개부렀단마다. 그렁게 오늘은 내래오지 말고 니얼이나 모레나 내래오그라이?”

예부터 아침에 거미를 죽이면, 집에 오는 손님한테 해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걸 믿든 안 믿든 공님은 어쨌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딸이 더는 추궁하지 않고 직수굿이 오늘은 내려오지 않겠다고 해서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꼭 거미 때문이 아니라도, 딸이 이번에 내려오려는 속셈이 따로 있는 것 같아, 좀 걸리기는 했었다. 돌공장 싸움이 길어지자 큰딸,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딸들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댔다.

“엄마, 하더라도 살살하셔요이. 남들 한발짝 나가면 엄마는 반발짝만 따라감서이.”

큰딸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어머니, 당장에 안 그만두시면 제가 어머니 서울로 모셔와버릴랍니다이.”

큰아들은 공무원이라 지 입장이 있어서 그런다 치자.

“앗따, 엄마 투사 났소, 투사 났어. 나라에서 주는 효부상까지 받은 사람이 데모를 허먼 안되지라.”

중학교 졸업하고 집을 뛰쳐나가 지 맘대로 살다가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무슨 업소인지는 자세히 안 가르쳐줘서 공님으로서는 알 수 없으되, 하여간 무슨 업소인가를 하면서 형제 중에 돈을 제일 잘 버는 작은아들이 하는 소리는, 마음은 비단결인데 배움이 짧아 말이 좀 거칠어서 그러려니 이해를 해버렸다.

“엄마, 어차피 우리 집값이 얼마나 하겠어. 나 같으면 공장 들어와, 도로 놔져, 발전하면 땅값 올라가, 그러면 집 팔아서 그 돈으로 도시에서 편안히 살겄네. 그러니까, 데모하지 말라고오.”

막내딸이야 막내로 자라 철이 없어 그러려니 이해해보려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고등학교는 나왔으니 초등학교하고 중학교밖에 안 나온 지 언니나 작은오빠보다 배움이 더 적지도 않은 애가, 처자식밖에 모르는 신랑 만나 먹고사는 것도 부족함 없는 애가 하는 말 치고는 듣기에 좀 민망해서, 전화기를 먼저 내려놓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멍하니 앉았자니, 탁, 기가 막혀왔다. 이것이 다아, 그놈의 돈이 없어서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대학을 가르치지 못한 탓인가, 싶어, 새삼스럽게 오목가슴이 쿡쿡 아파왔다.

아무리 고향 떠난 지 오래라 하더라도 정말 그 아이들은 자기들이 나고 자란 이곳을 잊어버린 것일까. 저희들이 물장구치고 놀던 냇물이 돌가루로 썩어버려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택배로 보내주면 역시 엄마가 만들어준 간장 된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한 그 간장 된장 만드는 콩밭이 돌가루로 망가져도 괜찮다는 것일까. 그래서는 막내딸 말대로 냇물이 썩고 콩밭이 망가져도 땅값이 올라가기만 하면 좋다는 것일까. 공님은 암만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식들이 다 내려온 설에 그동안 맺혔던 설움을 맘먹고 토해냈던 것이다.

“나는 평상을 삼서 느그 하납씨, 할마씨한테는 말헐 것도 없고 느그 압씨, 마진생이한테도 허고 싶은 말을 다 못 허고 살었다. 느그 잘난 압씨 마진생이 저세상 가불고 인자 자유가 왔는갑다, 허는 판인디, 인자 마진생이가 나한테 허든 짓을 대를 물려서 진생이 새끼들이 허는구나. 나도 한번 내가 허고 싶은 말 좀 허고 살다 죽자꾸나, 이 씨러주길 것들아.”

막내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미에 붙인 욕 때문인 줄 알았더니,

“엄마, 엄마가 아부지한테 큰 소리 한번 못 치고 산 것은 우리도 알어. 그치만 엄마가 우리한테 큰 소리 치면 어떡해.”

그때 갑자기 큰아들이 달려들어 막내딸 뺨을 후려쳤다. 막내딸이 제 남편을 부르며 쓰러졌다. 역시나 제 처자식밖에 모르는 사위가 달려와 제 각시를 부축했다.

“황서방, 좀 비켜주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오빠로서 내가 얘한테 할 말이 있네.”

“저한테 하십쇼.”

“오빠로서……”

그대로 있으면 아들과 사위 간에도 쌈이 날 것 같았다. 막내딸이 일껏 끓여놓은 떡국도 안 먹고 저희들이 타고 와서 마당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제 아이들과 남편을 불러 차에 태우고서, 차문을 열고는 제 오빠한테,

“내가 왜 대학을 못 갔는데애, 다아 오빠 때문이잖아아.”

절규를 하더니, 그대로 쌩 하고, 떠나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욕을 먹어도 직수굿이 가만히 있는데 막내딸은 유독 욕만 하면 눈을 치뜨고 대들어서 욕을 더 먹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다 아프지만 공님은 그중에 유독 새끼손가락이 더 아파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욕 제일 많이 먹는 막내딸이 맘속으로는 기중 예뻤었다. 기중 예뻐했던 막내딸이 제 맘을 제일 아프게 하는 게 속이 상해서 공님은 그만, 차디찬 뚤방에 주질러 앉아 오래오래 마른 울음을 울었다. 눈물이라도 시원하게 나와주면 좋으련만 늙어서 눈물도 맘대로 안 나와주니, 그 또한 서러웠다. 지난 설날, 자식들 앞에서 마른 눈물 쏟은 집이 공님이네뿐이 아니었다. 평주리 사는 이학수는 소 팔고 논 팔아 다섯 자식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 자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를 했다. 첫째가 데모 쪽으로 길을 트더니 둘째 셋째까지 그랬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학수는 자식들 데모 말리러 다니느라 골치깨나 썩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자식들이 이학수의 싸움을 한갓 웃음거리 삼았다. 놀리는 것은 말리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것이다.

“지나다보니까 공장도 쬐끄맣드만요.”

“그 사람들도 싼 부지에 작은 공장 하나 차려서 어떡하든 벌어먹고 살려고 애쓰는 서민들인지도 모르잖아요. 웬만하면 좀 봐주시지.”

“우리 아부지, 우리들 데모하는 데 많이 쫓아다니셔서 데모 노하우는 있으실걸.”

그날 학수는 자식들한테 딱 정나미가 떨어져서 세배도 안 받고 집을 나와버렸다. 며느리들 보는 앞에서 늙은이가 악을 쓰는 것도 꼴사나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늙은 아비가 권위 세운답시고 악을 써서 명절의 평화를 깨뜨릴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악을 써서 권위를 세우기에는 자식들도 머리에 서리 내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어쨌든 속이 편하지만은 않아, 일단 집을 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되도록 먼 길을 돌아 마을회관에 갔더니, 학수 또래들이 베톨침하게 앉아서는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앉았는 것이 또 보기가 싫었다. 설날 하루종일 학수는 어디 맘 편히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일없이 바람 부는 들녘이나 걸어다니다가 저녁 어스름녘에사 집에 돌아와 꽁꽁 언 몸을 행랑채 사랑방에 부리듯이 뉘고 말았다.

설날이 서글펐던 집이 어찌 김공님이네와 이학수네뿐일까. 다만 서로가 내색을 안할 뿐이다. 위원장인 이영희가 너무 짠해서 내색을 할 수가 없다. 협상파를 내쳐버리고 이영희를 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웠을 때는, 사실 마음속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공님은 생각했다. 공님도 왠지 인상이 선해 보이는 영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싸움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지난겨울, 군청 앞에다 비닐천막을 치고 옹기종기 둘러앉았었다. 비닐집 안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아무리 데모라고는 해도 달리 할 것이 없어 노래도 부르고 재미나게 놀았다. 며칠을 그렇게 군청으로 출근을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 가보니, 비닐집이 없어져버렸다. 이영희가 추위도 추위지만 부아가 나서 그러는지 덜덜 떨면서 물었다.

“어르신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옆에서 영산리 사는 오명순이 외쳤다.

“빌어묵을 것, 한디서라도 허야제 어쩌.”

아흔 노인이 그리 말해놓으니, 그보다 젊은 이른, 여든짜리들은 왕언니, 오명순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이제 다시 봄이 온 것이다. 오늘은 진평리 사람들과 공님이 사는 봉현리 사람들이 군청 앞으로 나갈 순번이다. 봄이 오자 또 이영희가 물었다.

“어르신들, 일철도 돌아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군청을 순번을 정해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은 군청에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동 터오기 전에 종종거리며 산밭으로 갔다. 고추모종에 지지대를 꽂고 마늘종도 뽑아줘야 한다. 내일나 모레쯤 딸네가 오면, 가져가서 해먹을지 안 해먹을지는 모르지만, 마늘종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산밭 여기저기 이른 새벽부터 나와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웃한 밭에서 호미로 동부콩밭을 호미로 깔짝깔짝거리던 소리쟁이댁이 호르르 웃는다.

“앗따매, 눈을 뜨지 말 것인디 차건 것이 젖통에 쑥 들어오자마자 그냥 눈이 떠져부렀네.”

“꿈에 존 것 봤는갑소이?”

“저기 누워 있는 오정샙이가 말이여, 호르르.”

동부밭가에 있는 남편 오정섭의 무덤을 가리키며 소리쟁이댁 임애기가 자꾸만 호르르 호르르 웃는다. 김공님이 마음조차 임애기 웃음소리에 맞추어 호르르 호르르 자꾸만 들까불어진다. 잠에서 깨어난 새들도 호르르 호르르 날아오른다.

“정샙이 저 인사가 밤새도록이 안와.”

“이승허고는 영영 하직을 해분 사람이 올랍디여. 나 같애도 징글징글헌 이놈의 세상 느그들이나 잘 묵고 잘 살아라 허고 뒤도 안 돌아보제.”

“그것이 아니고오, 그날밤에 말여.”

또 ‘그날 밤’얘기다. 봉현리 오정섭이, 마진생이하고 진평리 김춘복이, 양도출이가 주막집 뒷방에서 도리짓고땡으로 밤을 새우던 그 밤에 눈이 내렸다. 푸지게 눈이 오던 그 밤에, 공님은 첫애를 낳았다. 임애기가 공님의 애기를 받았다. 애기가 애기를 받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해놓고도 애기는 웃지 않았다. 애기를 받고나서 애기는 진평리로 갔다. 춘복이 마누라 이오목이하고 양도출이 마누라 조난남이한테 주막을 덮치러 가자고 했다. 새댁인 이오목은 망을 보고 목청이 좋은 조난남이가 악을 쓰기로 했다. 세 사람이 여차하면 무기로 쓰려고 각자 손에 호미 하나씩을 들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자들은 이미 뒷방 뒷문으로 내뺀 후였다. 그날 애먼 주막집 주모, 옥화만 작살이 났다.

“그러고 나서 자네 신랑은 언제 들어왔든가?”

“언제 들어왔는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애기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내처 잡디다. 딸이라고 두번도 안 딜이다 보고.”

공님은 정말 그날 마진생이 자는 엉덩이를 냅다 걷어차주고 싶었다.

“하매 첫닭 울 때였든가아, 눈을 홈빡 뒤집어쓰고 슬그머니 들어와서 내 옆에 착 눕더니만 차디찬 손을 내 젖통에다 쑥 넣드란 마시. 그럼서 허는 말이 걸작이여. 아따, 썩을놈들이 하도 붙잡는 통에 꼼짝을 못했네. 그놈들한테 붙잡혀 있음서도 자네만 생각나드란 마시. 그 말 들응게, 오정샙이 머리에 달라붙은 눈 녹듯이 내 맘이 녹아불더란 말여어, 호르르.”

그러니까, 임애기가 이 새벽에 하고 싶은 말인즉슨, 그날 밤 그 차디찬 오정섭이 손이 어젯밤 꿈속에서도 들어왔다는 것이로되, 눈을 너무 빨리 떠 아쉬운 판에 말로라도 아쉬움을 달래보려는 수작임을 알겠다.

“징그랍소.”

“그때는 징그로왔제. 그런디 시방은 차디찬 님에 손이 이리도 그리울까나아…… 간밤에 꿈속에 님에 자취 선연헌디이 날 새고 뵈는 것은 님에 무덤이로세애, 무덤가에 피는 꽃은 작년 명년 꽃인디 무정타 우리 님은 영영이별이로세…… 어이, 새들이 새복부터 초랭이방정을 떠는 것 봉개로 오늘은 겁나게 더울랑가비.”

아침부터 임애기 꿈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던가, 호르르 쪽쪽쪽, 찌르르, 꼭꼭꼭…… 임애기는 뒷짐진 손에 호미를 들고 새들 소리에 맞추어 건들건들하고 공님은 머리에 마늘종 바구니를 이고 산들산들거리면서 집으로 왔는데 트럭 한대가 집 앞에 서 있다. 누가 왔나, 오목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거미가 내려오더니 진짜 손님이 왔구나 싶어서.

“고모.”

친정 동네 용수막 사는 조카 영식이다.

“왔냐아?”

심상하게 맞이하기는 했지만, 맹세코 님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뒷꿈치에 깔려죽은 거미 때문에 반가워도 반갑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영식이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고모, 인자 집안에 암 것도 안키우요?”

“나는 키고 싶어도 느그 성들이 못 키게 안허냐.”

“짐승이 없응게, 집안이 휑하네.”

진짜 본론을 말 안하고 딴전을 피우는 것임을 눈치로 알겠다. 딸네 오면 주려고 꺾어놨던 햇고사리를 참기름에 무치고 혼자서는 먹지 않는 조기 한마리를 굽고 넣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멸치 두어마리 넣고 막된장을 지져서 밥상을 차려줬더니,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집이 어려워 상급학교를 못 다니고 일찌감치 공장직공 생활도 하고 고생을 많이 한 조카라 고모가 늘 마음 한구석에서 짠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은 맛나게 먹어놓고 오만상을 찡그리며 대뜸,

“고모, 거기 안 나가면 안될 게라우?”

뭘 말하는지 단박에 알겠다.

“누가 보냈냐, 느그 작은누이가 보냈냐?”

오지 말라고 했더니 막내딸년이 기어코 지 사촌동생한테 전화를 해서 고모 데모바람 좀 붙잡아달라고 기별을 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니고 제가 안 와볼 수가 없어서 왔는디요, 사실을 실토허자면, 시방 내가 순양석재를 다니고 있단 말이요오.”

“아이고, 참말로 지랄맞다이.”

“고모 남한테 우세살까비 일찍 왔네요. 웬만허먼……”

저를 봐서라도 돌공장 가동저지 투쟁을 멈춰달라는 것이다. 남들 볼까봐 조카가 후딱 떠난 직후, 마을회관 위 옥상에 매달린 스피커가 울린다.

“아아, 이장입니다. 오늘은 진평리하고 봉현리가 나갈 차롑니다. 점심밥은 진평리서 마련헌답니다. 덧붙여서 오늘은 케비씨 방송에서 촬영을 헌답니다. 모다들 깨끗한 의복을 착용하시고 아홉시 정각까지 회관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소리가 나니 공님은 마음이 훨씬 더 괴로워진다. 내 자식들이 말려서가 아니라 마누라가 도망가버린 뒤 셋이나 되는 아이를 혼자서 키우고 있는 조카를 생각하면 돌공장 문 닫으라는 소리를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러나, 또 제 부모 같은 사람들을 고소하고 고발하는 돌공장 사장의 처사를 봐서는 그대로 물러나는 게 분할 것 같다. 무엇보다 공님은 위원장 영희를 배신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조카야 핏줄이니 얼마든지 짠한 마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생판 남인 영희가 핏줄처럼 여겨지는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일까를 공님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영희 표정이 환하면 공님도 환해졌다. 영희가 한숨을 쉬면 공님이 억장이 무너졌다. 영희가 발갛게 익은 얼굴로,

“언니들 오빠들, 방송국에서 우리 싸움을 세상에 알려준다네요.”

기분이 좋으면 영희는 다 늙은 사람들을 언니, 오빠라고 부른다. 김공님이도, 오명순이도, 임애기도, 노분례도 신이 났다. 성이라고는 불려봤어도 언니라는 말은 영희한테 처음 들었다. 어쩐지 젊어진 기분에 군청시위 나갈 때면 옷도 이왕이면 밝고 예쁜 옷으로 입고 나갔다. 뻣뻣하기가 가죽 같은 얼굴에나마 ‘구루무’라도 바르고 나갔다. 그래야 영희가 좋아했다. 공장 앞에서 백날 천날 악을 써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데모장소를 군청으로 옮기자고 했을 때는 데모고 뭐고 슬그머니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공님은 왜 공장이 아닌 관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작은아들이 왜 공장 앞에서 군청 앞으로 갔느냐고 물었다.

“왜냐, 군청이 허가를 내주기 때문잉게.”

“아따, 우리 용수막떠기가 엄청 똑똑해져부렀네.”

“내가 언제까지나 고무차대기같이 살아야 쓰겄냐. 요번 일 아니었으먼 언제 나 같은 사람이 군수고 도지사고 국회의원이고 장관 앞에서 큰소리 한번을 쳐봤겄냐고오.”

“아이고, 그 높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까지나?”

“그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이먼, 그 높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맹글어졌겄냐, 다아 우리 손에서 맹글어졌제. 그렁게 그 사람들은 우리가 허라는대로 혀야 써어. 그래야 되는디 안 그렁게 악을 썼제애.”

그렇지만 군수는 뇌물을 먹고 감옥을 갔고, 도지사는 바쁘다고 뒷문으로 내뺐고, 해결해보자고 한 국회의원은 감감무소식이고, 장관은 아무 말도 않고 악수만 하고 가버렸다. 돌공장 덕분에 높은 사람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방송국에서 나온단다. 모두들 다른 날보다 더 좋은 옷으로 입고 이장이 모는 트럭을 타고 군청 앞으로 갔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저는 케이비에스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이수경 피디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려고 나왔습니다. 자아, 지금부터 촬영에 들어가겠으니, 모두 위원장 뒤로 서주세요.”

공님이 을자동댁 노분례 옆구리를 쿡 쳤다.

“어이 을자동떠기, 우리가 데레비에 나와불면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랑가?”

“데레비 나왔다고 자랑헐라느만.”

분례 자식들은 지 엄마 데모를 막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져 가로수 뒤에 서 있는데, 오토바이를 탄 한무리의 아이들이 멈춰선다.

“할머니, 저기서 뭐한대요?”

“찰영헌단다.”

“영화요?”

“우리들 데모허는 것 찍는디야.”

“그런데 왜 할머니는 안 찍어요?”

“……오투바이 타고 어디를 그리 가는 거여?”

“우리요? 외롭고 괴로워서 그냥 달려보는 거예요, 씨발. 별것도 아닌갑다, 가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군청 앞마당에서는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영희씨 되도록 말씀을 좀 크게 해주세요.”

“아아,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마을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퉁탕거리는 소리, 마을 안 농로까지 들어와 질주하는 덤프트럭 크락샤 소음과 먼지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순양석재라는 회사는 허가받지 않고 크락샤를 설치 가동하고 있습니다.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회사측은 폭력을 행사하고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겁을 주고 있습니다. 순양석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5개월 동안 무려 15억원이 넘는 골재를 불법 생산 판매했습니다. 그런데도 군청에서는 벌금 백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흔이 넘은 독거노인을 포함한 가난한 농민들은 업무방해죄라는 명목으로 백만원의 약식명령을 받는,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21세기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은 가까이 있군요. 힘없는 농민들은 아무리 당해도 그저 죽어지내란 말인지요. 계절이 몇번을 바뀌는 동안 우리 어르신들은…… 어르신들은……”

“이영희씨,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시지 마시고……”

그러나, 이미 이영희 뒤에 서 있던 노인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러시면 오늘 내로 촬영 못한다고 방송국 사람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이영희가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외롭고 괴로워서…… 너무……”

젊으나 늙으나, 외롭고 괴로운 사람 천지라서 그런지 공님은 자꾸만, 가로수 가지 사이를 나는 새들도 외로워 괴로워 외로워 괴로워 하고 우는 것만 같았다.

 

 

담배 생각

 

술이 좀 취하긴 했어도 늘 놓아두는 장소인 침대맡에 놓아둔 것이 틀림없는 썬글라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보이지 않았다. 침대를 다 까뒤집어봐도 나오지 않아 막 딸에게 물으러 가려는 찰나, 요새 부쩍 멋을 부리는 눈치인 중3짜리 큰딸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별스럽게 쏜살같이 내빼는 느낌이 들었다. 강신환이 누구인가. 배는 좀 나왔지만 명색이 그래도 범인 잡는 형사가 아닌가. 비호처럼 내달려 큰딸 등에 매달린 가방을 낚아챘다.

“아빠아, 학교 늦었단 말야아.”

그 또한 별스럽게 사색이 되는 것이 암만해도 이상해 가방검사를 안할 수가 없었다.

“명색이 3학년인데, 왜이리 가방이 가벼워?”

“아빠 제발, 저 좀 가게 해주세요.”

숫제 덜덜 떨기까지 한다. 가방 지퍼를 확 열어젖히고서 뒤적거리다가, 뭔가 냄새나는 게 손에 잡힌다. 담배다.

“야, 이년!”

딸은 그만 꺄악, 비명을 지르고는 가방도 안 가지고 내빼버렸다. 자기도 담배 끊은 지가 언젠데 딸이 담배를 피우다니, 이젠 신환이 덜덜 떨리는 순간이다. 아침부터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놓고 텔레비전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던 노모가 누가 온겨? 비긋이 문을 열어본다. 어머니는 요새 부쩍 귀가 어두워졌다. 보청기를 끼워줘도 시끄럽다고 자꾸 빼버리는 통에 신환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그만두기 일쑤다.

“엄마, 아람이가 담배 피우네.”

담배를 들어보이자,

“아이, 갸가 속이 안 존개비여, 칙간에서 댐배를 묵드라마다.”

강신환의 어머니 옥화는 열두살 봄에 곽란이 났다. 된장물을 한바가지 마시고는 토하고 나니 속이 메슥거렸다. 그때, 할머니가 풍년초를 말아서 건네주는 것을 피우고 나니, 신기하게도 메슥거리는 기가 사라졌다. 옥화는 그때 배운 담배를 팔십 평생 피우고 있다. 마누라 죽고 나서 방황하던 신환이 어느날, 이제부터는 정신 차리고 맑은 정신으로 새롭게 살겠다고 제 앞에서 담배를 툭 분질러가며, 저도 끊겠으니 엄마도 끊으라고 윽박질러도 너는 끊어라 나는 필란다, 하고서 꿋꿋이 피워오던 중이었다.

“하여간 엄마 손지딸 아니랄깨비 일찌거니도 배운다, 차암 내 원.”

“댐배도 음석이여. 너무 그래쌌지 마라.”

하고는 또 통통 담뱃대를 턴다. 옥화는 누가 개비담배를 사다줘도 꼭 종이를 뜯어내버리고 가루를 통 속에 쟁여넣어서 피웠다. 평생을 그래왔다.

“아이고 엄마 담배, 딸 담배 징그러서 내가 떠나불던가 해야지 원.”

“너무 그래쌌지 마라 개도 그래쌌네. 댐배가 서방보다 났드라고 에미가 내동 안 그랬냐. 아이, 시난아, 씨불렁씨불렁 그만허고 얼릉 나가봐라. 니 소리 따문에 연속극을 못 보겄다.”

귀는 좀 어두워도 총기는 누구보다 좋아서 할 수 있는 껏 참견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은 또박또박 조리있게 잘하는 옥화다.

“엄마, 이 가시내 들어오면 디지게 뚜드러 패불랑게 말리지만 마씨요.”

어젯밤 먹었던 갈빗집에서 남은 것을 싸달라고 해서 가져온 갈비를 옥화가 먹기 좋게 구워서는 데우기만 해서 먹을 수 있게 은박지에 싸놓고 상추도 깨끗이 씻어서 물이 빠지도록 꽃바구니에 담아놓고 집을 나섰다. 얼핏 농협 창고 뒤에 딸 종아리가 보이는 듯 했다. 가방에 아무것도 든 것 없어도 가방은 들고 가야 해서 신환이 출근하기만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신환은 못 본 척하고, 일부러 더 크게, 내 이년을 그냥 들어오기만 해봐라, 어쩌고 하면서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경찰서로 가서 출근도장을 찍을 필요 없이 군청으로 바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오늘부터 유정면 쇄석기 반대대책위원회에서 1인시위를 하기로 했고, 멜론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멜론가격하락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순양석재의 불법가동에 맞서는 시위가 허가받지 않은 불법시위라 집회장소를 무단 사용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더니 집회형식을 바꾼 것이다. 공장 앞에서 할 때보다 숫자가 많이 줄긴 했으나 시위대는 전보다 훨씬 더 요령도 늘고 노련해진 것도 같았다. 일종의 단일대오를 이룬 느낌이랄까, 하여간 일사분란해진 것이 확실하다. ‘크락샤를 멈춰라’ ‘쇄석기를 허가하면 유정면은 고사(枯死)한다’는 팻말을 들고서 군청 앞 도로를 왔다갔다 하다가 ‘군민의 쉼터’로 모이는 것으로 오늘의 집회가 시작된 모양이다. 신환은 순양석재 시위대가 군청으로 이동한 후부터 자신의 지정석이 되어버린 군청 회의실 2층 창가의 가죽의자에 몸을 부렸다. 오늘은 썬글라스가 없어 시선 처리가 영 곤란하다.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감시 적발하기 위함’이랍시고 군청으로 출장을 나와 있기는 하지만, 조금도 위협적이지도 않고 짜증날 정도로 평화로운 시위현장을 하루종일 지켜보고 앉았는 것도 못해먹을 짓이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떠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노인들은 트럭에 시위현장에서 밥 해먹을 도구들을 싣고 다녔다. 라면을 끓이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날은 슬쩍 들여다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고추장 멸치볶음이 있었다. 주막집 주모인 어머니는 멸치볶음이라든가 콩자반 같은 반찬을 할 줄 몰랐다. 그런 것은 주막집이 아닌 여염집 반찬이었다. 어머니는 막걸리에 빤 가오리 회무침이라든가 염소 내장탕이라든가 개고기 수육 같은 것은 잘했다. 모두 주막집 안줏감들이다. 그래서 신환은 도시락을 쌀 수가 없었다. 가오리 회무침이나 염소 내장탕이나 개고기 수육을 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갛게 윤기나는 멸치볶음을 보자 노인들 틈에 끼어앉아 밥을 먹고 싶었다. 자신의 신분이 알려진 후부터는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러나 입장이 입장인지라, 밥 좀 달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혹시 주민들의 밥을 얻어먹었다가 상부에 알려지면 근무수칙 위반으로 불이익처분을 받을지도 몰라, 매번 입맛만 다시다가 맛없는 군청 앞 식당밥을 먹어온 지가 벌써 몇달째인지 모른다. 일단 오늘은 1인시위를 한다고 했으니 어떻게 하는지나 지켜보기로 했다. 강신환이 뒤에서 창밖을 주시하고 있던 장경사가, 오호 하면서 낮은 휘파람을 분다.

“왜 그래 인마?”

“오늘의 첫번째 타자 나오십니다.”

테가 넓은 밀짚모자를 쓴 대책위원장 이영희가 ‘쇄석기 분쇄’라고 씌어진 앞치마를 입고 ‘유정면은 고사한다’는 팻말을 들고 군청 정문 앞으로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늘 이영희 동태를 주시하고 살아서인지, 신환은 어쩌다 이영희가 보이지 않으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지루하고 안달이 났다. 그런 날은 군청에서 나와 군청 뒷골목 중국집으로 가서 길다방 효리를 불러 빼갈을 마셨다. 강신환의 가슴에 뭔가 심상치 않은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서 효리라도 부르지 않으면 무슨 사고를 낼 것만 같았다. 가수 이효리하고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신환은 길다방 효리가 멀리 있는 이효리보다 더 예쁘다고 여기며 바람 부는 가슴에 술을 붓곤 했던 것이다. 사실 어젯밤에 과음을 했던 것도 어쩌면 요며칠 영희가 보이지 않았던 탓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신환은 생각했다. 이영희가 가끔 가서 침을 맞는 한의원에 알아보니 감사원장인지 국민권익위원장인지를 만나러 서울을 갔다고 했다. 이영희가 보이지 않으니 신환의 가슴 한가운데로 찬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는지, 신환은 한속이 들어 더운 술을 부어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김없이 효리가 달려왔다.

“효리야, 오빠가 죽을 지경이다.”

저를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인 게라고 여겼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효리가 부지런히 숯불 위의 갈비를 뒤적이는 것을 보고 은근히 기대를 했으나 역시나, 고기가 익자마자 냉큼냉큼 제 입으로만 가져간다.

“많이 먹어라. 오빠한테는 술잔이 빌 때마다 한점씩만 주고.”

“내가 왜 오빠를 좋아하는지 알어?”

“나 좋아하지 마라. 너가 상처받는다.”

어머니가 잘 보는 아침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의 대사가 왠지 멋있게 느껴져서 외워놓았더니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은 몰랐다. 신환은 자신이 읊은 대사에 어울리는 쓸쓸한 표정으로 고기는 먹지 않고 소주잔만 연신 비웠다.

“그래, 맞아, 바로 지금 그 표정이야. 남자의 그 쓸쓸한 표정이 여자 가슴을 찢어놓는 거라고.”

“너도 드라마를 많이 본 모양이구나.”

“아냐, 진짜루 그렇다니까. 오빠 좋아한다는 내 말 못 믿어?”

상처한 홀아비 강신환은 효리가 오빠가 좋다고 발광을 하는 것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효리라도 있어서 그나마 겨우 제 마음속 한기가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그러나 신환은 홀아비티 날까봐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목소리를 착 깔고 알쏭달쏭하게 말하는 것이다.

“니가 사람을 살리는구나.”

그 말은 그러나 사실이었다. 효리 덕분에 마음속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면, 분석보고서가 왜 날마다 이렇게 맹탕이냐고, 하다못해 이영희 예쁜 사진이라도 좀 많이 올리라고 이죽거리는 팀장의 살찐 턱이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날이 너무 좋아서인가. 썬글라스가 없어서 더 그럴 것이다. 신환은 이영희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장경사가 고성능 카메라로 이영희를 채증했다. 늘상 하는 업무에 포함되는 일이지만, 장경사가 카메라를 여러 각도에서 연신 눌러대자 은근히 역정이 난다.

“야, 1인시위하는 거 뭐 찍을게 있다고 발광을 하냐.”

“이영희 오늘따라 아름답네요. 산뜻한 녹색 앞치마에.”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래도 위원장이다.”

“야아, 지난번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딱 마주쳤는데, 이봐요 장형사님, 장형사님네가 무슨 순양석재 대변인인가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는데 와아, 자세히 보니까 생각보다 미인이데요?”

“그만 씨부리라고 했다아.”

“아줌마 치고 몸매도 뭐 저 정도면 괘찮은 거고요이. 길다방 효리보다 낫네.”

그런 경우를 두고 주먹이 운다,라고 했던가. 갑자기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으면 장경사 머리통이 무사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빠, 죄송해요.”

“집에 가서 보자.”

음산하게 전화를 탁 끊었다.

“왜 그래요? 이쁜 딸한테.”

“너, 우리 딸 땜에 무사한 줄 알어, 자식이 그냥 콱.”

“핫따, 우리 우리 형님이 순양석재 건으로 많이 예민해지셨네애. 메론 사람들 안 오면 천일식당으로 오씨요.”

말해놓고 장영기가 단골로 밥을 대먹는 식당으로 쪼르르 도망가버렸다. 그러나 강신환은 이영희의 순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좀더 1인시위를 지켜보고 싶었다. ‘군민의 쉼터’에서는 시위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영희의 순서가 끝나자 영산리 사는 오명순으로 파악이 되는 노인이 뒤뚱뒤뚱 정문 앞으로 걸어나왔다. 신환이 태어나기 전, 그래서 아직 읍내로 나오기 전 진평리와 영산리 마을 입구에서 주막을 할 때, 맹순이성이 얼마나 인정있게 했는지 모른다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그 맹순이성이 저 오명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노란 블라우스와 하늘색 몸뻬바지를 입고 기다시피 걸어와서 이순신 장군처럼 우뚝 선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예에, 예 말이요, 우리는 언제나 해방이 될 게라우, 해방이 언제나 된다요, 해방 좀 시켜주씨요 한다는 아흔 노인.

맹순이성 신랑허고 느그 누나 압씨가 한날한시에 모집이 되焰더란다. 지대허고 온 사램덜한테 물었더란다. 우리 순옥이 압씨가 어디 가 있답디여. 나망군도에 가 있답디다. 나망군도가 어디다요. 남태평양 바다 가운디가 나망군도라요. 소식 한자가 안 와부렀더란다. 순옥이가 죽고 나도 죽을라고 했더니, 맹순이성이 살살 달개서 주막을 열었드란다. 이것이 느그 어매 주모인생의 시작이드란다.

어머니의 맹순이성일지도 모르는 오명순이 서도 앉은 거나 다름없는 키로 우뚝 서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지른다. 예에, 예 말이요, 해방이 언제나 된다요, 해방 좀 시켜주씨요. 군청 입구로 들어오던 승용차가 빵빵거린다. 오명순이 비키지 않자 승용차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이영희가 달려온다. 1인시위 장소가 정문 한가운데쯤에서 구석 쪽으로 약간 비켜난다.

“저런 개자식을 봤나.”

저절로 욕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뛰쳐나가 번들번들한 승용차 운전자를 패대기라도 치고 싶었다. 야 자식아, 너는 에미 애비도 없냐, 자식아, 니가 비켜가야지 시위하느라 고생하는 노인 보고 비키래? 너 아녀도 평생 서럽게 사신 분한테 자식이…… 정말로 신환은 텅빈 군청 2층 회의실에서 연극배우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서럽게 사신 분이라는 독백 때문에 코까지 시큰해졌다.

그 맹순이성이 저 오명순이라면, 오명순의 인생 또한 서럽기는 어머니 김옥화 못지않을 터였다. 신환은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천일식당으로 가지 않고 집에 가서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싶어졌다. 정말 마음만은 어머니의 맹순이성일지도 모르는 노인한테 잘해주고 싶었다. 점심 먹고 오면서는 하다못해 물이라도 한병 사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영희 앞에서 이제부터라도 험한 모습은 그만 보이고 싶었다. 신환이 출장근무지인 군청회의실을 나와 1인시위장 앞을 막 지나치려는데, 노인한테 비키라고 삿대질했던 승용차가 스르르 다가오더니 차창을 열고,

“할머니,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법대로 하셔야 합니다이? 여기, 이거나 드시고 호소하십씨요.”

박카스 한병을 건네려는데, 신환이 닫히려는 차창 안으로 손을 뻗었다.

승용차 운전자의 멱살을 쥐려는 참인데, 언제 왔는지 이영희가,

“고양이 쥐 생각하는 척 그만하시죠!” 소리쳤다.

신환이 움찔하는 사이 승용차 운전자가, 좆같은 새끼,라고 내뱉고 쌩 가버렸다.

순간, 곽란이 난 듯이 배알이 뒤틀리면서 끊었던 담배 생각이 격렬하게 솟구쳤다. 오늘 예정되어 있었던 멜론시위대가 둥둥둥 북을 울리며 군청 정문을 향해 행진해 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던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점심보다도 우선 신환은 담배가 급했다. 점심을 먹다 말고 오는 듯 장경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형님, 상황이 어쩌요?”

“어쩌긴 좆같지.”

역시 욕은 담배연기와 함께 뱉어내야 제맛인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