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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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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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3

꽃 같은 시절

 

 

당산나무가 운다

 

진평리 당산나무가 우웅우웅 운다. 내 허물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그래서 내 영혼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고 더 말개지고 더 조그마해질 때마다 나는 놀란다. 왜냐하면 지난봄까지만 해도 이승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람이나 달이나 해나 별이나 나무나 강물들이 하는 말보다 더 크게 들렸는데, 이제 이승사람들 말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사람 아닌 것들이 내는 소리들이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산나무가 언제부터 울었던 것일까. 사람들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 들려오기 시작한 당산나무 울음소리는 사뭇 애간장을 녹이는 듯하다.

당산나무 울음소리가 이곳 저승길까지 울려오는 것을 보니, 나무가 많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당산나무는 팽나무다. 예전에 마을은 지금보다 더 위쪽에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마을 위 팽나무가 원래 진평리의 당산나무다. 원래의 당산나무를 사람들은 웃당산나무라고도 하고 어미당산나무라고도 했다. 산을 내려와 심은 당산나무는 아랫당산나무, 혹은 새끼당산나무라고 했다. 새끼당산나무는 내가 진평리로 시집오기 이태 전에 심었다 했다. 어미당산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옛날 옛적에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이집 저집에서 놋그릇을 훔쳐 지고 가다가 하도 무거워 당산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서려는데 이상하게 당산나무 발치에 붙인 엉덩이가 떨어지질 않았다. 일어서려면 주저앉게 되고 또 일어서려면 주저앉게 되더니 날이 새고 결국 도둑이 붙잡혔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가 바로 어미당산나무다.

지금 어미당산나무와 새끼당산나무가 같이 울고 있다. 어미가 우웅우웅 우니 새끼는 끼잉끼잉 운다. 어미가 우니 새끼도 운다. 짐승들이 그렇듯이 나무도 그렇다. 세상 만물은 다 그렇다. 사람과 똑같이 아프고 사람과 똑같이 울고 사람과 똑같이 웃는다. 내가 아직 이승사람일 때는 긴가민가하다가 혼사람이 되고 나니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애처로워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저승 가는 길목에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이승을 떠나는 순간 이승 것들 중에서 냄새가 가장 먼저 멀어졌다. 우리집 꽃이 훤히 보이는데도 도무지 꽃냄새를 맡을 수 없고서야 나는 내가 혼사람이 된 것을 실감했다. 그 다음에는 소리다. 내가 아직 저승 초짜라 모르긴 몰라도 냄새, 소리, 다음에는 형상일 터인데, 아직은 사람들 소리는 안 들려도 형상은 보인다. 이제 자연의 소리가 안 들리고 나면 사람의 형상들도 멀어질 것이다. 냄새야 경황이 없어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말았지만 소리와 형상은 모두 멀어지기 전에 한소리라도 더 들어두고 싶고 한모습이라도 더 봐두고 싶다. 안타까이 안타까이 귀를 모두니, 우는 것은 당산나무뿐이 아니다. 어미당산나무 위에 있던 대나무 산죽나무 들이 피울음을 울고 있다.

내가 이승 나이로 마흔살쯤 됐을 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때 동네 남자들끼리 한 회의에서 어미당산나무를 베어내자는 결정이 났다. 당산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마을 공동 잠실(蠶室)을 짓자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전에 소득증대사업을 한답시고 마을 공동 산을 개간하여 뽕나무를 잔뜩 심어놨다. 나라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뽕나무를 심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뽕나무를 심는 조건으로 개간 허가를 내줬다고 했다. 뽕나무는 남자들이 심었지만 나중에 누에치기는 고스란히 여자들 몫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잠실을 지으면 나라에서 시멘트가 나온다고 했다. 남자들은 군에서 나오는 시멘트와 모래를 못 써서 환장이었다. 멀쩡한 돌담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공터에서 찍어낸 시멘트 브로꾸(블럭)담을 쌓았다. 자기들 딴에는 좋은 일 한답시고 혼자 사는 과부인 시앙골댁 오명순네 돌담을 와그르르 무너뜨리고 브로꾸담을 쌓아주고는 자기들끼리 좋은 일 한 기념으로 개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산에서 나무를 해서 이고 오다 자기 집 담이 돌담에서 브로꾸담으로 바뀐 것을 보고, 오명순이 나무를 조용히 내려놓고는 희희낙락 개추렴을 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갔다.

“내가라우, 이날 평상에 넘 못헐 일은 안허고 살았어라우. 그런디 이것이 먼 억하심정이다요, 금메에.”

오명순은 울음도 안 나오고 그저 자꾸 치가 떨렸던 것 같다. 으륵, 으르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자꾸 몸을 떨었다.

“앗따, 시앙골떠기가 오해를 허고 있그만이라우. 우리는 존 일 헌다고 했그만 치사는 못헐망정, 치를 떨어야 쓰겄는게라우?”

술이 들어간 양도출이 거들먹거리며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조난남이 득달같이 나타났다.

“엇따 우리 이쁘잖은 해징이떠기가 어디서 튀어나온단가?”

“개를 왜 자버, 개를 왜 자버어. 이 개같은 인종아아.”

남자들이 잡아먹은 개는 다름아닌 조난남이네 누렁이였던 것이다.

“브로꾸다무락(담)이 하도 이삐고 오져서 한잔 안허고 그냥 넘어가기가 영 아쉽드란 말이시. 인자 우리도 브로꾸다무락에 쓰레또(슬레이트) 지붕에 상수도 하수도 갖춘 선진문화인이 되는디 잔치를 안헐 수가 있겄든가, 어디?”

아이들 얼굴에 누렇게 부황이 난 것을 보기가 짠해서 개라도 잡아 먹일 요량을 하고 있던 조난남이 일장연설하는 양도출의 멱살을 움켜잡다가 자기도 힘이 모자라 맥없이 무너졌다. 오명순이, 조난남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서 숨을 못 쉴 지경으로 아이고오, 아이고오,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오장육부가 시리고 아려서 할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우선 애비들한테 혼날까봐 옆에 가지도 못하고 대밭거리 한쪽에서 비 맞은 뭐같이 입맛만 다시고 눈치만 보고 있던 양도출이 애기들, 우리집 애기들, 양분란이 애기들, 김채선이 애기들, 한연순이 애기들, 하여간 동네 애기들을 싹 다 불러모아 애비들 개추렴하는 곳으로 갔다. 가서 애기들한테 구탕 한그릇씩을 안기고는 이제 막 굳기 시작하는 브로꾸담을 부수기 시작했다. 집주인인 오명순이 마른 울음을 삼키느라 자꾸 흐르륵, 흐르륵, 딸꾹질 소리를 내면서 돌을 날라오면 그것을 나하고 조난남이 받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차곡차곡 돌을 쌓았다. 양도출이하고 김춘복이가 주동하여 ‘항차에 저년들을 주개불자’고 남자들을 선동하며 옥화네 주막으로 몰려갔다. 그제야 제 남편 눈치 보느라 이제나저제나 다무락 안에서 이리 쭝긋 저리 쭝긋 낭자머리 정수리만 보이던 여편네들이 하나둘씩 기어나와 합세하기 시작했다. 시엄씨 시압씨 들이 몰려와서, 동네에 망조가 들려고 암컷들이 ‘지랄양광을 떤다’고 욕을 퍼부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돌담을 쌓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오명순의 돌담이 우리는 좋았다. 먼 데서 돌아와 마을을 들어서면 맨 먼저 그 오래돼서 이끼 자욱한 돌담이 우리를 맞아주는 게 그렇게 푸근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낮은 돌담 너머로 오명순네 밥 짓는 연기가 푸실푸실 새어나오는 것이 좋았고 먹을 것을 넘겨받고 넘겨주는 것이 우리는 좋았다. 그 좋은 것을 부숴버리는 사나운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사나운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없어 무서웠다. 오명순은 서러워 울었다. 서러워 운다고 해서 눈물을 철철 흘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제나 그랬듯, 한숨을 쉬듯이, 육자배기 가락에 사설 한자락을 풀다보면 막힌 가슴이 좀 뚫리는 것이다.

 

시상은 과부집에 꽃 폈다고 숭을 보네 오월이라 능소화는 홀애비집에나 과부집에나 몽실몽실 핀다네 속도 업시 핀다네 시상은 과부가 장에 간다 숭을 보네 삼월이라 봄바람은 홀애비집에나 과부집에나 살랑살랑 분다네 속도 업시 분다네

 

오명순의 사설을 조난남이 받았다.

 

남원운봉 목기장시야 꽃을 두고도 그냥 가냐 나도야 이 재 넘어가서 해당화를 숭거놓고 피었는가 보러 갈란다 보성미력 옹구장시야 짓고 가소 짓고 가소 이름이나 짓고 가소 딴 디 가서 해찰 말고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봉산에 꽃 보드끼 나를 보러 이리 오소

 

달이 둥실 떠올랐다. 오명순네 다무락이 달처럼 둥실, 그 이쁜 자태를 드러냈다.

 

브로꾸다무락 쌓기가 여자들이 반대한 사업이라면, 마을 공동 구판장 건립은 남자들이 반대한 사업이었다. 농한기 노름을 없애고 구악을 일소한다고 마을 공동 구판장을 지어서 부녀회 회원들이 장사를 했는데, 그 바람에 옥화네 주막이 망했다. 옥화는 울면서 도시로 떠났고 후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진평리까지는 못 오고 읍내로 돌아와 산다고 했다. 생각하면 그 일이 나는 가장 마음에 걸리고 속상하다. 옥화집에서 속없는 남자들이 노름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옥화집에서 술을 못 팔게 했던 것은 잘못한 일이다. 옥화네 가게가 없어질 바로 그 무렵에 촌 동네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초가집이 없어지고 스레트 지붕이 생겨났다. 우리집도 그때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스레트 지붕을 올렸다. 스레트 지붕에 붉은칠도 입혔다. 나는 우리집 지붕 빛깔이 영 불안했다. 빛깔을 입혀도 꼭 붉은색을 입혔다고 잔소리를 했더니,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다음날 퍼런칠을 덧입혔다. 그러느라 또 돈이 들어갔다. 멀쩡한 지붕 걷어내고 빚 내서 스레트를 올리고 빚 내서 색을 입힌 것도 속상한데, 거기다 잘못 입힌 빛깔 탓에 돈이 더 들어간 것이 오장 상해서 툴툴거렸더니 김춘복이, 집구석을 확 불싸질러버리겠다고 발광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붕개량사업은 국가시책이여. 국민이 국가시책을 거역허먼 어찌 되는지는 말 안하겄네이. 잘 알아서 판단혀어.”

제법 이장이나 면서기 어투였다.

“그러고 니얼부터는 간편복을 착용허소. 면장이 면에 가서 받아온 하명잉게, 안 지키면 안되는 것인 줄 맹심허소. 다 몸뻬 입고 나왔는디 자네만 꼴같잖은 거듬치매 끌고 나가지 말고.”

‘지랄 오만 잡소리’라고 속으로 욕을 하는 참인데, 귀청이 떠나가라 이장집 감나무에 매달린 스피커가 울었다. 그전에는 징을 쳐서 마을 울력을 알렸는데, 이제 ‘자립마을 특별하사품’이 징을 대신해서 울었다.

“아아, 말씀드리겄습니다. 지난번 회의에서 결정이 난 대로 윗밭에 당산나무를 오늘 비기로 했습니다. 모다들 당산나무 비기 울력을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마을회의를 늘 남자들끼리만 하던 버릇이 있어서 여자들은 회의에서 뭔 말이 오갔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스피커 때문에 알게 되었다.

“오살을 허네.”

욕설을 휘날리며 조난남이 맨 먼저 어미당산나무가 있는 윗밭으로 달려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조난남이 따라 나도 달려갔더니, 한강쟁이댁, 그 옆집 밤실댁, 그 아랫집 살푸쟁이댁이 불불불 기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미당산나무를 베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우리 동네 여자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미당산나무가 없어지면 우리가 쌓은 돌탑도 무너질 것이고 이제 우리 설움 고해내고 우리 마음 기댈 데가 만고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랄 염병이 났는개비여.”

“돈 준단게 안 그러요.”

“그 돈은 공짜가디.”

“숭악혀, 숭악혀어.”

“죄로 간당게.”

“즈그들 죽고 우리 죽고여.”

우리는 단단히 나무를 그러안고 버티면서 남자들을 기다렸다. 그러고 있자니 속도 모르고 남자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엇따, 아줌니들이 나무허고 씨름허고 있그만.”

언제나 그랬듯이, 맨 먼저 양도출이가 나서서 조난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니년이 허는 지서리가 시방 삘갱이 지서린 중은 아냐, 모르냐, 어?”

머리채 휘어잡힌 게 어디 한두번인가. 머리채 휘어잡혔다고 항복을 할 조난남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시책이여, 이 무식헌 여편네야.”

김춘복이도 양도출이한테 질세라 나, 이오목이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우리는 죽기살기로 버텼다. 그리고 그순간, 우리와 나무를 하늘이 살렸다. 마른하늘에 번개치고 천둥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어디선가 번쩍 한다 싶었는데, 으르릉 꽝꽝, 천지가 진동했다. 이윽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뭔가가 두렵기는 두려웠던지 남자들이 툴툴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옥화집도 없어져서 내려가봤자 갈 곳 없는 남자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비실거렸다.

“죽이도 살리도 못헐 저 부앳가심들을 어찌야 쓰까나.”

내 속 알아주기는 남편보다 나은 당산나무 아래서 우리는 그날도 노래 불렀다. 비를 철철 맞아가며 노래 불렀다. 악을 쓰며 불렀다.

 

해징이떠기야 뭣할라고 일광단(낮에 짜는 베)을 지섰더냐(지었더냐) 해징이양반 마포중우 거시기가 털렁털렁 시앙골떠기가 재미보네 무수굴떠기야 뭣할라고 월광단을 지섰더냐 무수굴양반 비단중우 옥화가 꽤를 비끼네 맹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요때 춘삼월이면 꽃이 피어 화산되고 잎은 피어 만발된다 우리 일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를 못하리라……

 

이제금 당산나무가 우웅우웅 울어젖히는데 혼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그 우는 내막을 어찌 다 알겠는가. 당산나무며 대나무며 산죽나무가 피울음을 우는 이승에 대고 나무가 운다고, 나무가 울어서 내가 황천길을 못 간다고 악이라도 쓰고 싶은데, 말은 나오지 않고 그저 저승새 울음소리 같은 소리만 티끌처럼 허공에 흩날릴 뿐이다.

 

 

접수는 아무나 하나

 

간밤에 유독 한숨소리 같기도 하고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한 저승새 울음소리가 자꾸 났다. 저승새 울음소리에 마음이 뒤숭숭해, 깊은 잠을 못 자고 눈을 뜨니 동쪽 봉창에 희붐한 새벽빛이 비치고 있다. 오늘 영희가 서울 올라간다 했더니, 복주는 자기가 봐주마 하던 공남숙이 아침 일찍 건너왔다.

“인났는가?”

“예에.”

“앗따, 엊즈녁에는 저승새가 별촉시럽게도 울어쌌드만이.”

“그러게요.”

“애기는 안즉 잔가?”

“예에. 애 깨나기 전에 가야겠어요.”

“애기 압씨는?”

“공사장에서 지리산 도사를 만났대요. 잘하면 도인되겠더라고요.”

매형 따라 4대강 공사장으로 가려던 계획이 매형의 사고로 무산되고, 철수는 며칠 전 88고속도로 확장 공사가 있는 순창으로 떠나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어젯밤 전화가 왔다.

“어이, 영희씨, 여기가 거기서는 동북방향이 맞지?”

별스럽게 영희씨, 하는 것이 왠지 가소롭고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 하는 것도 수상쩍다.

“근데 왜?”

“인생이란 것이 애달캐달한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더라고. 다 운때가 따라줘야……”

“왜? 꿈에 동북방향으로 가라 해서 갔더니—”

“우리 이영희 위원장님, 똑똑해부러. 하여간 동북방향에서 지리산 도인을 만나부렀네. 운때가 맞은 거여. 하여 나는 나의 길을 갈랑게 자네는 나를 따라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마소.”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던져놓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탁 끊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화에 대고 ‘야지’를 놓는 것이 김철수 나름의 시위인 모양이었다. 철수의 논리는 그러니까,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왜 하느냐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 영희에게 순양석재와의 싸움은 점점 이기든 지든 결과와 상관 없는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복주를 보면서 그 생각을 더욱 굳혔다. 철수가 순창으로 떠나던 날, 복주한테 물었다.

“요새 너희 엄마는 뭣이 그렇게 바쁘다냐?”

복주가 침을 꼴깍 삼키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느은 시, 지판, 소성, 알인시 하지이. 아빤 그것도 몰라?”

“어이, 애 입에서 시방 뭔 소리가 나온단가? 통역 좀 해보소이.”

아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영희 가슴도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니까, 엄마는 시위, 재판, 소송, 일인시위를 한다는 것인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양석재 덤프트럭을 향해, 수양섯째 나쁜놈, 소리치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흔들리게 하는 아이 때문에라도 영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영희는 말했다. 물론 철수 들으라는 의도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도 싸우는 게 힘들어.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나는 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거야. 복주야, 엄마는 지금 순양석재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그, 뭐야, 어, 그니까, 그래 맞아, 내 속의 패배주의하고 싸우는 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 하면은,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여. 말하자면 긍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산다는 것이여. 주체적으로 산다는 거라고, 알겠지?”

말을 하면서도 제 말이 말이 되는 소린가, 솔직히 좀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어린아이 앞일망정 어렴풋한 제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고 보니 영희는 뿌옇던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놀랍게도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라고 외치지 않는가. 영희의 주체적인 삶 운운을 듣고 있던 철수는,

“모자공연단이구만 아주. 뭐? 주체? 어버이 수령님이냐? 주체사상이여? 쥐랄이 자빠져요, 아주우.”

제 분을 참지 못하고 애 앞인 것도 아랑곳없이 쌍소리만 남기고 결국 떠나버렸다.

“그렇게 또 가출을 하셨답니다.”

“뭣이, 잘허먼 요번에는 출가가 되겄그만, 큭큭. 그런디, 멀쩡했던 남자들도 꼭 이 동네만 들어오면 여자 하는 일에 자를 논다네. 이 동네 물이 그런가봐. 우리집 압씨도 나를 아주 뭣 보드끼 하잖아.”

갑자기 소리를 잔뜩 줄여서는,

“그래각고 지가 필요헐 때만 뽀짝거리고 일 끝나면 천리나 만리나 떨어져불어.”

영희를 위로하고자 한 말이 결과적으로 부부금슬 자랑이 된 것이 무안한 듯, 또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앗따, 아침놀이 버언헌 것이 오늘도 폭폭 찔랑개비.”

아이가 깨어나면 남숙이 알아서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것이다. 서둘러 챙길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방에 야물게 간수한 뒤에 집을 나서려는데, 어슴푸레한 여명 속에서 할머니들이 영희네 집으로 올라오고 있다.

“마음 편히 묵고 잘허고 오소이?”

“절대로 기죽지 말고, 한사코 대대혀야 써이?”

“비민히(어련히) 알아서 헐랍디여.”

“우리 위원장님이 얼매나 염렵헌 사람인디.”

마치 서울로 과거 보러 가는 사람 배웅하듯 한다. 각자가 들고 온 먹을거리들을 영희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 것을 억지로 말리고 영희는 아랫당산나무 아래서 기다리는 이장의 용달차를 향해 달려갔다. 여명 속에서 할머니들이 영희네 집 언덕 위에 서서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이장은 서울 가는 첫차에 대기 위해 새벽길을 과속으로 달렸다. 이장 박석택의 굳게 다문 입이 일견 비장해 보였다. 그는 터미널에 영희를 내려주고서, 느닷없이 악수를 청했다. 언뜻 드라마 같은 데서 본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의 이별장면이 떠올라서 슬몃 웃음이 나오려 했으나, 박이장의 표정이 하도 무거워 웃을 수는 없었다.

 

“아침은 먹었냐?”

할머니들이 넣어준 떡이며 과일이 잔뜩 든 가방을 종수에게 내밀어보였다.

“할머니들이 싸주셨어요.”

하는데, 또 순간적으로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얼른 호흡을 정리하고 가지고 온 서류를 꺼냈다.

“서명 인원은 정확하든?”

“예.”

새벽같이 터미널로 나온 환경컨썰턴트 김종수와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앉아 서로가 가져온 서류를 확인했다.

“아앙그으히잉, 이마으을기이, 짐지리이? 아, 눈물난다, 눈물나.”

김종수의 제안으로 감사원에 순양군청에 대한 감사 청구를 하기로 했다. 불법적인 쇄석기 설치, 등록 전 위법 가동, 허구적인 환경오염저감방안 및 부실한 사업계획서를 묵인하고 순양석재에 업종변경(추가) 승인을 내준 순양군청을 감사해달라는 취지였다. 공익감사 청구를 하려면 주민 800명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해서 영희가 받아온 서명지를 들여다보던 종수가, 할머니들이 썼다기보다 거의 그린 이름들을 보고 기막혀한다. 그 자필서명을 받기 위해 실제로 영희가 빈 종이에 할머니들의 이름을 크게 쓰면 할머니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그것을 보고 지렁이가 기어가며 만든 무늬 같은 글자를 그렸다. 할머니, 아줌마들에 비해 할아버지, 아저씨들의 필체는 간간이 한문도 들어가고 세련되어 금방 표가 났다. 서명지와 함께 영희는 종수에게 탄원서도 보여줬다.

 

 

탄원서

감사원장님

저희들의 억울한 사연을 감사원장님께 호소하려 합니다. 이곳은 원래 물 맑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평범한 농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점령군처럼 돌을 깨는 공장이 들어서서 힘 없고 빽 없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맑았던 물은 돌공장 먼지로 뒤덮이고, 돌 깨는 기계는 밤낮으로 쿵쾅거리며, 채석장에서 돌공장을 오가는 덤프트럭의 무자비한 질주로 인한 소음과 공포는 평화롭던 농촌마을들을 순식간에 고속도로 주변이나 공장지대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불법공장을 관리 감독해야 할 관청은 불법회사에 끌려다녀야 할 어떤 말 못할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평생을 농사짓고 조용히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성치 못한 아픈 다리를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군청 앞에 나와 앉아 있어도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이다지도 억울하고 이다지도 피눈물나게 외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공장이 업종변경 승인이 났어도 공장등록 허가가 나기 전에는 가동을 하면 안되는 법조항이 있지만 순양석재라는 공장은 법질서는 안중에도 없고, 그런 공장을 관리 감독하여야 할 주무관청인 군청 공무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팔짱만 끼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최고령인 93세 노인을 위시하여 대부분이 연로하신 주민들만이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이 해괴한 상황이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입니다.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라면 저희는 그런 정책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저희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돈도 아니고 보상도 아닙니다. 단지 예전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가지뿐입니다. 부디 감사원에 주어진 법적 권능을 발휘하시어 무엇이 진실인지를 낱낱이 밝혀주시기를 눈물로 탄원합니다.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이건 꼭 필요하진 않을 거야.”

종수에게 탄원서를 보여준 것이 괜히 무안해졌다. 밤을 새워 쓴 탄원서는 가방 한쪽에 구겨넣어두고 종수가 감사원 서식에 맞춰 감사 청구사항, 청구이유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서류를 받아들고 드디어 영희는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종수가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 헐레벌떡 달려온다.

“영희야, 아까 그 탄원서 말이다. 거기서 한 문장만 빼고 같이 제출해봐라. 감사원 사람들도 사람잉게……”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개를 내밀고 급하게,

“오빠, 뭔 문장 빼라고요?”

종수가 소리친다.

“비즈니스 프렌드리이!”

차가 출발했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눈을 지그시 감고 영희를 외면하며 중얼거린다.

“비지니스 프란드리 너무 좋아허지 마씨요. 그것이 서민들 죽이자는 저거잉게, 끄응.”

“아저씨, 나도 비즈니스 안 좋아허는 사람……”

아저씨는 벌써 눈을 꾹 감아버렸다. 비닐봉지 안에는 터미널 매점에서 파는 우유와 삼각김밥이 들어 있다. 스산한 상경길의 심사가 우유와 김밥으로 좀 누그러지는 듯했다.

쇄석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건축법의 적용을 받는 일종의 공작물이므로 사전환경성검토가 필요한데도 그 절차를 지키지 않았음을 종수가 지적해냈다. 이쪽에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여기고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그랬는지 순양석재는 사전환경성검토서 없이 업종추가 신청 서류를 군청에 냈다. 순양석재가 청구한 행정심판에서 서류를 받아주라는 판결이 나자 군청이 이를 승인을 내주라는 것으로 오독했는지 일부러 오독한 척했는지 결국 승인이 떨어지려는 찰나, 종수가 사전환경성검토서 건을 들고나온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영희는 종수가 환경전문가라 역시 다르다 했다. 그러나 웬걸, 그 지적을 하더라도 승인이 난 다음에 했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가슴을 쳤다. 종수의 지적은 결과적으로 공장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환경성검토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순양석재에 가르쳐준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종수는 말하자면 예리하긴 했으나 순진했던 것이다. 지금 주민들이 순양군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순양석재 업종추가 승인 취소소송’중에 그 건을 지적했더라면 서류미비로 승인 취소는 금방 될 사안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건으로 종수는 내내 주민들에게, 그리고 영희에게 미안해했다. 미안해하면서 노인들 손도 잡아주고 음료수도 사다주고 하는 것으로는 양에 안 찼는지, 감사원 감사를 제안한 거였다.

“감사원에서 감사만 이루어지면, 제대로 밝혀질 것이다.”

정말 종수 말대로 감사원 감사만 이루어지면 승인은 취소되고 순양석재는 문을 닫게 될 것인가. 더 나아가 증거는 잡지 못했지만 의심이 가는 공장측과 공무원 간의 비리 커넥션이 밝혀질 것인가. 순양석재는 순양군청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적당 기간 끌었다가 취하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이나 군청이나 모두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현재 소송중이므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다는 ‘똑같은 답변’을 늘 준비해두고 있었다. 군청에 소(訴)를 제기한 순양석재와 군청 간의 ‘말해서는 안될 비밀의 열쇠’는 결국 언론 인터뷰를 하던 공장 사장에 의해 은연중에 새버렸지만 말이다. 종수의 후배인 지방방송국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자, 순양석재 사장 김수철이 그랬던 것이다.

“나와 김성주 경제과장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어요. 나는 소 취하하고 군은 승인을 해주기로 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비밀인지를 알면서도 내뱉은 말을 주워담지 못해 김수철이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영희는 똑똑히 보았다. 취하하기 위해 소송을 걸고, 업체가 소송을 걸어주어 관청에 변명거리가 마련되는 식의 은밀한 거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눈에 거의 보이는 듯해도 증거를, 그 ‘은밀한 거래’의 진상을 밝힐 수 없어 그저 발만 구르고 가슴만 찧고 있던 참에, 종수가 감사 청구를 제안한 것만으로도 영희는 귀가 번쩍 뜨이고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서울 가면 만나라고 종수가 준 ‘감사원의 힘있는 사람’과 연결해줄 수 있는 사람의 연락처가 적인 쪽지를 펼쳐보았다. 전화를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전화는 차가 휴게소에 도착할 때 쯤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영희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또 있었다. 자기들에게 집을 공짜로 빌려준 집주인이다. 이왕에 올라간 길이니 정식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급해 힘있는 사람을 연결시켜줄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한번 했지만 안 받아 좀 쉬었다가 다시 한번 걸었으나 또 전화를 안 받았다. 서울 가는 내내 좀 불안했다. 김종수한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가 무안해할까봐 꾹 참았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안고 번호를 눌렀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뒤에야 연결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영탁씬가요? 저는 이영희라고 합니다. 김종수씨가 소개한.”

“네.”

“통화하기 곤란하신가요?”

“나중에, 하십시오.”

나중이라면 언제쯤을 말하는 것인가. 막연히 서 있기도 뭣해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 집주인에게는 오늘쯤 서울 올라가는 길에 인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미리 해뒀었다.

“안녕하세요, 진평리에서 온 애기엄맙니다.”

“아하, 얼릉 오십시오. 여그가 어디냐머언, 먼첨 지하철을 타십시오이. 거가 몇호선이 다니는가요? 아, 3호선인갑네요. 3호선을 타고는 거가 어디쯤인가? 종로3가나 될란가? 여하튼지간에 1호선을 갈아타고 신용산역에 내리십시오. 신용산역을 나와 왼쪽으로 오시다가 또한번 왼쪽으로 고바우를 틀어서 한 백여메다 정도 직진을 하시먼 진평리순댓국이라는 간판이 보일 것입니다이. 거급니다, 거그.”

얼굴도 한번 못 본데다가 공짜로 사는 세입자일 뿐인데, 마치 친척이라도 맞듯이 선선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내서 볼일이 좀 있어서요. 일 끝나고 가게 되면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영희는 ‘힘있는 사람 연결시켜줄 사람’도 집주인처럼 전화를 받으면 얼마나 마음이 가벼울까, 싶었다. 힘있는 사람을 연결해야 감사가 좀더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종수의 조언은 일단 접어두고 바로 감사원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서울시내 한복판 광화문 근처에 있었다.

“아줌마, 왜 그렇게 서 있어요?”

“예에, 감사 청구하려고요.”

수위가 웃었다.

“아줌마, 뭔 감사를 청구할라고요?”

“그것이 그러니까, 군청에 대한 감사……”

두리번거리다가 접수창구를 찾았다. 수위를 무시하고 바로 접수창구로 갔다.

“아줌마, 뒤에 사람 있는데 비키세요.”

“저도 여기 일 보러 왔는데요?”

“일 보러 왔어요? 그럼 화장실로 가셔야지. 화장실은 조오기……”

“그게 아니고요, 감사 청구 서류 제출하러 왔다고요.”

접수창구 직원이 영희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아줌마, 감사 청구 접수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그럼, 저는 안되는 법이라도……”

“이 아줌마가 그런데…… 뒤엣분한테 좀 비키시라구요.”

“못 비킵니다. 첫째는 제가 먼저 왔고, 둘째는 나도 엄연히 국민이고, 국민이면 감사청구할 자격이……”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아 예, 아줌마 말이 맞습니다, 맞고요. 접수는 아무나 하지요이. 내보쇼.”

서명용지와 감사 청구서와 함께 탄원서도 내볼까, 하다가 결국 탄원서는 뺐다. 일단 감사 청구서는 접수가 되었다. 그러고서 나오는데 좀전의 수위가 영희를 보더니 제 옆사람 옆구리를 찌르며,

“저 아줌마, 진짜 했는갑네.”

자기들끼리 웃는다.

‘진짜 하지 그럼 못할 것이 뭐람.’

영희는 새벽에 할머니들이 당부했던 바 그대로, 한사코 ‘대대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감사원을 나섰다.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종수에게 전화를 했다.

“접수했다구?”

“예.”

“오영탁이랑 통화했어?”

“나중에 전화하래요.”

“영희야, 오영탁씨를 꼭 만나야 해. 전직 의원 보좌관인데, 그 사람을 통해서 전직 의원의 후배인 감사관에게 선을 대야 한다고. 힘있는 사람 안 대면, 감사 청구 해도 함흥차사랜다, 야.”

아하, 접수창구 직원이 했던 그 말, 접수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던 그 말이, 접수는 아무나 한다는 그 말이, 그러니까, 접수를 해도 힘없는 사람의 접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었던가. 접수창구 직원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어 영희 머릿속이 띠잉,해진다. 머리는 어지럽고 햇빛은 지글거린다. 어디 그늘에라도 들어가 쉬고 싶다. 새로 조성했다는 광화문광장은 꽃밭과 분수대는 있어도 그늘은 없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영희는 자꾸 거미를 생각했다. 대롱대롱 줄을 타고 내려와 제 눈앞에서 춤을 추던 거미와 지붕골 속에서 뽀시락 장난을 치던 새와 고요하고 청아한 벌의 노랫소리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우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생각하다보니, 어지럼증이 좀 가시는 듯했다.

 

 

사람꽃

 

오늘도 만택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일당 앞에 다녀왔다. 지난겨울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시위하던 철거민 다섯 사람과 경찰 특공대 한 사람이 불에 타 숨진 바로 그 건물 말이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 된 지금까지 만택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일당 앞을 다녀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안해서다. 그날 그들만 망루에 올라가게 한 것이 미안하고, 험하게 목숨을 잃은 그들과 똑같은 철거민 처지인데 자기는 살아서 싸우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까지 해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하여간 모든 것이 미안해서다.

“아니, 아저씨는 참 취미도 총천연색이셔어? 거가 무슨 당신 아부지 영호(靈戶)여, 뭐여? 아침마동 가서 문안인사를 허네애.”

“딱히 할 일도 없고, 같은 철거민 처지에 맘이 안됐잖어어.”

“왜 할 일이 없어? 장사준비도 해야 하고, 앞으로 뭣을 해묵고 살아야 헐지 연구도 해야 허고, 헐 일이 태산이그만.”

“그까징 거 장사준비는 무슨.”

“오늘, 또 무슨 단체에서 싸우러 온대잖어어. 신문은 봐서 뭐혀?”

만택의 아내 귀옥이 만택의 코밑으로 신문을 들이민다.

“상갓집에 조문 온 폭이나 한가지인 사람들한테 밥장사를 해먹을라니 맘이 참 거시기허네.”

“그럼 어쪄? 기양, 손 놓고 가만있으먼 누가 밥을 줘, 떡을 줘. 이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헝게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한닢이라도 벌어각고 나가야제.”

“앗따, 박귀옥이 야물다!”

해놓고, 만택은 머릿고기를 삶으러 가게 뒤꼍으로 내뺐다. 귀옥이 원래는 지금처럼 사납지 않았다. 귀옥이 그악스럽게 굴 때마다 만택은 자기를 따라 서울로 도망쳐오던 40년 전 겨울의 귀옥이 그립다. 만택은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지게질과 쟁기질의 나날을 보내다가 스무살이 넘어갈 무렵 문득,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야겠다는 자각이 일었다. 그러나 좀처럼 계기가 마련되지 않아 속으로 고민만 하면서 그날도 지게다리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매달고서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던 중에 그 뉴스를 들었다.

“정부는 다음달부터 요식업계에서 파는 모든 음식에 이십오 프로 이상의 보리나 잡곡을 혼합 판매하도록 하였으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무미일(無米日)로 정하여 오전 열한시부터 오후 다섯시 사이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 금지하고 대신 분식이나 빵을 판매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순간, 4H 회원인 애인 귀옥이가 시골마을을 돌며 혼분식장려운동을 하러 다니면서 빵만들기 무료강습을 열었던 것이 생각났다. 귀옥이 말하길, 앞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서양사람들처럼 주식으로 밥이 아니라 빵을 먹고 살게 될 거라는 것이다. 만택은 지게를 벗어던지고 그 길로 귀옥에게 갔다. 다짜고짜 서양빵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밀가루 계란 우유라고 한다. 밀가루 우유 계란이라. 그중에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계란일 것 같았다. 며칠에 걸쳐 얼기설기 닭장을 짓고 닭값은 빵공장에 계란 팔아 갚기로 하고 종계장에서 알 잘 낳는다는 레공(레그혼) 3천마리를 분양받았다. 그러나 그해 유난히 길었던 장마철에 병이 돌아 닭들이 폐사하고 말았다.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종계장에 시달리고 사료집에 시달리다가 겨울 초입에 자살을 결심했다. 인생 초장부터 빚쟁이가 되어놓으니, 제 인생에 희망은 물건너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애인 얼굴이나 한번 보고 죽자 하고, 어둠을 틈타 읍내 시장통의 기름집 딸 귀옥에게 가서 눈물의 작별인사를 고했다.

“잘 있어라, 귀옥아, 옵하는 간다.”

“어디 가는디?”

간다는 그 말 한마디에 벌써 귀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옵하도 괴로운께 묻지를 마라.”

귀옥이 눈에 고였던 눈물이 강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런디, 옵하, 옵하 가는 길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을 테니, 한가지만 약조해주소.”

“뭣을?”

“나는 버려도 좋아. 이왕지사 버린 몸, 깨끗이 죽어불면 끝나. 허지만 항차 뒤에 태어날 애기는 뭔 죄가 있겄는가. 긍가, 안 긍가?”

혹 떼러 온 것은 아니지만 혹 붙인 꼴은 되고 말았다. 지금도 만택은 그때 그밤, 그날따라 진눈깨비가 지랄맞게도 흩날리던 그 겨울밤이 자신에게는 운명의 밤같이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 눈 내리던 겨울밤, 진눈깨비보다 더 차가운 한 여인의 눈물이 생사의 기로에 선 한 사나이의 운명을 갈랐던 게라고. 만택이 그렇다고 말하면 또 귀옥은, 자신에게도 그 밤이 제 발등 제가 찍은 운명의 밤이었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죽는 것은 이미 물건너갔고 빚도 빚이지만 처녀한테 애를 배게 했으니 이래저래 도피를 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문제는 도피자금이 없다는 것.

“이 옵하가 너헌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딱 한번만 하자.”

“뭔디?”

“우리 애기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너가 한번만 심을 써주면……”

“심은 애기 날 때 쓸라고 애끼는 중인디.”

“스을, 그 심이 아니라아.”

여차하면 애 밴 자기만 놔두고 만택이 혼자 줄행랑을 칠 것이 겁나서였는지, 귀옥은 순순히 저희집 기름 묻은 돈통에 손을 댔다. 그렇게 기름집에서 귀옥이 조달한 여비만으로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던 때가 1970년 섣달 스무날, 체감온도로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못지않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남들은 설 쇤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으로 돌아올 참인데, 아들은 밤봇짐 싸서 집을 나가니, 어머니 무수굴댁이 동구밖에 나와 눈물바람을 하며 배웅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만택의 가슴에 눈물이 절로 차오른다. 그러나 그때는 철이 없어 어머니의 눈물이 가슴아프기보다, 빚쟁이 닦달을 피할 수 있는 것만 좋았다. 무엇보다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귀옥이 있어 자기 신세가 서러운 줄도 몰랐다. 기찻간에서 화장실만 가려 해도 어린 새처럼 깜짝 놀라, 옵하 어디 가? 하고서 자기를 따라오던 그 귀염둥이가 이제,

“아니 불조시를 어치게 했가디, 귀때기는 안즉도 쌩거여어?”

돼지머리 귀를 썰다가 만택을 노려본다.

“아녀어, 아니랑게.”

만택이 어제는 결단코 남일당에 가지 않았노라고 손사래친다. 사실은 남일당 앞에서 천주교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는 것을 구경하고 오느라고 돼지머리 뒤집는 것을 깜빡 잊었다. 사고를 당한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인 레아호프집 주인은 그 앞에 있는 골목시장에 갔다가 몇번 본 적도 있었다. 만택의 가게도 지금 그 호프집처럼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전재산 1억을 털어넣었는데, 보상금은 3천만원이다. 장사해서 번 돈은 대학생인 두 아이들 학자금과 먹고사는 비용으로 다 나가버려서 저축도 없다. 달랑 3천만원 들고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는 만택도 마찬가지 신세다. 시골집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우리 나이도 있고 작은애 대학만 졸업하면 시골로 가세.”

“시골 가 살자는 사람이 낯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집을 빌려줘?”

만택이 하는 어떤 말, 어떤 행동도 귀옥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귀옥이 만택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던 꿈같은 시절은 40년 전 그 겨울 새벽, 용산역에 딱 떨어지면서부터 끝이 났다.

“앗따, 꽃이 이뿌다고 허는 통에 맘이 그냥 탁 약애져불드란 마시. 자네 같으면 안 그러겄는가? 박귀옥이도 한때는 꽃 좋아했잖어.”

‘꽃길을 걸으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시절’을 어떻게든 상기시켜 보려고 애써보지만, 그래서 원래는 꽃 사이로 불어오는 봄바람 같았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지만, 지금의 박귀옥은 벚꽃 핀 둑방길에서 치맛자락 휘날리며 수줍게 웃던 그 박귀옥이 아니다.

“뻘소리 말고, 시골로는 못 간게, 그 사람들은 내보내고, 시골집은 처분헙시다. 물어보고 말 것도 없이, 동생들한테도 그리 알라고 통고하고.”

“시골집이 도시집 같가디? 함부로 처분허고 말고 허게? 그 집은 어무니, 아부지 혼이 서린 집인디.”

귀옥이 더이상 대꾸를 안한다. 귀옥이 대꾸를 안하는 건 자기 말에 동의를 해서라고 만택은 믿어버린다. 부부가 한참 옥신각신, 설왕설래하는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손님인 것 같아서 얼른 자리부터 권했더니,

“진평리서 온 이영흽니다.”

지난여름에 온다고 하고는 못 오고 가을이 되어 왔다. 이영희가 시간이 없어 그냥 내려간다고 했을 때, 만택과 귀옥이 간에 작은 다툼이 일었었다.

“아무리 바쁘더래도, 온다고 했으면 와야지 그냥 가는 것은 사람의 인사법이 아니지이.”

“그것도 집이라고 자네 시방 집주인 유세하고 자픈가?”

“내 말은……”

“내 말이든 넘의 소든지 간에, 사람이 다 사정이 있는 것이고 사연이 있는 것인디 너무 몰풍스럽게 그러면 쓰가디? 내 말이 틀린가? 어이, 생각해보소. 그 양반이 맘이 없으먼 서울 와도 온다는 소리를 했겄는가? 그냥 살째기 왔다가 가불제. 그러고 온다고 했다가 못 오고 가는 그 심정이 또 얼매나 죄인 된 심정이었겄는가. 사람들이 너무 지 사정만 생각허고 넘의 사정은 생각을 안해줘. 그렁게 사람들이 암만 득실거려도 각자가 사는 것은 이리도 쓸쓸허니, 무인지경이나 한가지가 되어부렀어.”

사실은, 남일당 앞에서 마이크를 대주면 한마디하고 싶었던 것을, 염치가 없어 꾹 참고 아내 앞에서 써먹은 것이다.

“연설헐 것 더 남았소?”

눈을 치켜뜨고 자기를 노려보는 아내가 무서워 만택은 더 하고 싶은 연설을 그쯤에서 접고 입을 꾹 닫기는 닫았지만, 언제라도 정말 아내가 집주인 유세를 하려 들까 겁이 났다. 그래서 이영희한테서 온다고 연락이 왔을 때 반갑게 그러라고는 했지만, 은근히 긴장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연락도 없이 이영희가 불쑥 찾아왔다. 음식 훔쳐먹다 들킨 것처럼 놀랐지만 내색은 않고,

“아이고 집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 먼저 선수를 쳤다.

“살게 해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그런데, 그 일은 어찌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알고 계셨어요?”

“지난번에 동생이……”

하다가 아차, 하고 말았다. 슈퍼를 하다가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와서 문을 닫고 데모를 하러 다니는 동생 영택의 사정도 그렇고 아내도 자꾸 시골집을 팔자고 해싸서 형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전혀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다는 시늉이라도 할 셈으로, 돈 3천만원으로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집 시세는 어떤지 알아보고 오라고 영택에게 시켰다. 그랬더니 시골에 갔다온 영택이 지금 유정면에 돌공장이 들어와서 노인들이 반대데모를 하고 난리더라고 전했다.

“내가 알아보고 오라는 것은 알아본 거여?”

“성, 생각보다 복잡헙디다. 시골이 시골이 아녀어.”

“그러면 무엇이더냐?”

“시골도 요새는 돈이여어. 시골서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을라면 3천 갖고는 택도 없을 것 같습디다.”

동생에게는 어찌됐든 다녀오느라 애썼다고 공치사를 하긴 했지만, 만택은 귀향의 꿈을 접어야 하는 현실 앞에 스산해진 마음을 며칠간 술로 달랬다.

동생이 가보고 왔다는 말은 급하게 접어서 도로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고,

“집이 많이 불편허지요?”

“고쳐서 사니까, 살 만은 해요. 그리고 동네사람들하고도 정이 들었고요. 돌공장만 아니라면 정말 살기 좋을 것 같은데……”

“돌공장 땜시 아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은 들었습니다만.”

“지난번 서울 온 것도 사실은 그 문제 때문이었어요. 돌공장을 승인해준 군청을 감사해달라는 청구를 감사원에 내러 왔다가……”

이영희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부끄러움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오래된 이야기라고는 해도 고향을 떠나온 형식이 솔직히 야반도주나 다름없었고 그렇게 떠나온 뒤에도 사는 형편 핑계 대고 고향 쪽을 돌아보지 않은 것도 그렇고. 하여간 어쩐지 그렇다.

“그래서, 감사가 나왔든가요?”

“아니요, 아직. 그것도 다아, 힘있는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나요. 그래서 그날도 힘있는 사람을 연결해줄 사람을 만나려다가 끝내 못 만나고 시간이 없어 그냥 내려갔었네요. 죄송합니다.”

하나도 죄송할 것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점심때쯤 되니 사람들이 몰려왔다. 남일당 깡시인 일행이다. 그는 남일당에서 사고가 난 뒤부터 그곳에서 거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경찰들하고 싸울 때는 시인이라기보다 무슨 깡패같이 보이기도 해서 만택이 깡시인이란 이름을 붙여줬지만 인상은 선하다. 구경나간 김에 마음이 안돼서 슬쩍 수박 한통을 건네준 뒤로 진평리순댓국집에 이따금 문인들을 데리고 온다. 문인들이라고는 해도 깡패 같은 시인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입들이 영판 험하고, 주사들도 좀 있고 계산할 때 보면 이사람 저사람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들이 하나같이 꼬깃꼬깃, 그것도 꼭 끝에 몇천원은 부족하기가 십상인 것이 보기가 영 못 미더워서 한번씩 오면 밥과 반찬을 아끼지 않고 퍼줬더니, 고향에 계신 아버지 같다고 좋아라 했다.

“아부지, 저 왔습니다.”

“어, 깡시인 어서 오소.”

손님이 몰려와 이영희하고 오래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양해를 구하고서 부엌으로 갔다. 가스불에 순댓국을 올리면서 귀옥이 뭐라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미상불, 씨불씨불인 게라고 짐작이 간다. 다급하게 우선 쟁반에 반찬을 놔서 내가려고 일어서려는데 뒤에 부딪치는 사람이 필경 화가 잔뜩 난 아내려니 여겨져, 앗따 아무리 밉더라도 일헐 때는 좀 참세, 하고서 보니 부딪친 사람은 아내가 아니고 이영희였다. 아내는 주방 뒤 가마솥에서 국을 푸고 있다. 급한 상황이라 일단 상부터 내다주고 와서는 손님이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극구 말리는데도,

“바쁘시잖아요.”

제집 일처럼 스스럼이 없다. 주방 뒤, 가마솥에서 찜통에 국을 퍼 나오던 아내도 깜짝 놀란다.

“워미 워미, 이, 이름이 머시라고?”

뒤늦게 이름부터 찾는다.

“이영희씨이.”

아내의 이영희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반가워서 만택이 얼른 알려준다.

“그려, 맞어, 영희씨가 이러먼 우리 입장이 난처허지이.”

“왜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며 이영희가 묻는다.

“시골 내려가서는 알량헌 집 좀 빌려줬다고 일을 다 시키더라고 허먼 우리 입장이 어떻게 되겄어어.”

“말 안할게요, 아주머니.”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영희가 웃는다. 귀옥도 웃는다. 그제야 만택이 안심이 되었다. 사실 제 체면이란 게 있지 않은가. 얼떨결에 고향집을 내주긴 했지만, 이사 들어온 사람이 돌공장 일 터지면서 마을사람들한테 인심을 얻고 있다는 정보는 만택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인심을 얻고 사는 사람한테 집주인 유세를 하면 마을사람들한테 자기뿐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욕을 먹게 될 것이었다. 영희와 귀옥이 웃으니 이제 맘이 놓였다. 긴장이 풀어지니, 술도 한잔 하고 싶어졌다. 마침 깡시인이 술을 권한다.

“세상이 참말로 좆같지요, 아부지.”

“스을, 시인이 시어를 안 쓰고 욕을 쓰먼 안되제애.”

“죄송합니다, 아부지. 그런데 세상은 자꾸 시인이 욕을 하게 만드네요.”

깡시인 일행들은 오늘도 중구난방, 청중 무시, 중언부언, 쌍소리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만택은 말로만 듣던 작가, 시인이란 사람들을 실제로 접해본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깡시인이 문인들을 소개하자 깍듯이 선생님 호칭을 붙이고 경외의 눈길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작가, 시인들도 술 먹으면 주정꾼 되는 것은 보통사람들하고 다를 것 없는 것을 알고 선생님 소리는 싹 빼고 대신 김시인, 이작가 식으로 부르게끔은 되었다. 주방 쪽에서 귀옥이 까르르 웃는다. 아내의 낭랑한 웃음소리를 들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도 반가워,

“어이, 자네 혼자만 웃지 말고 나도 좀 끼세.”

“영희씨가 깡시인이 시인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시인이 왜 저렇게 깡패 같냐고 허네. 영희씨도 시를 영판 좋아헌당만.”

깡시인이 영희에게 무슨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세상의 모든 시를 다 좋아해요.”

영희가 생긋 웃었다.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잠시 망설이던 영희가,

“우리 아랫집에 시집온 베트남 며느리가 저에게 들려준 거예요.”

소개하고 시를 읊는다. 중구난방이던 작가, 시인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영희를 주시한다.

 

물소야 내가 너한테 할말 있다 나하고 논에 가서 경작하자 모를 심고 경작하는 것은 원래 농민의 일이다 여기 나 저기 물소 누구도 힘든 것은 생각지 않는다 언제라도 벼 한포기 있으면 그땐 물소 네가 먹을 풀이 있다는 것이다.

 

영희가 수줍게 웃고 설거지통으로 돌아서는데,

“하나만 더요.”

문인들이 조른다.

 

고향은 달콤한 망고 한송이

매일 아이는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딴다

고향은 학교 가는 길

그 길에는 노랑나비떼가 날아다닌다

고향은 파란 연

어렸을 때 논 위에서 연놀이

고향은 작은 배 강 위의 작은 배

강가에 작은 배의 물결

고향이 있으니 우리는 쓸쓸하지 않다.

 

영희의 낭송을 듣고 있던 문인들 눈가가 촉촉이 젖어든다.

“우리집에 참 이쁜 사람이 들어왔네이. 당신 사람 참 잘 들였그만.”

이영희 덕분에 아내에게 수십년 만에 칭찬을 다 듣는다. 깡시인이 소주잔을 높이 들어 외친다.

“우리는 쓸쓸하지 않다!”

귀옥이 만택의 옆구리를 찌른다.

“당신은 사람이 득실거려도 쓸쓸허담서?”

“그것이 그렁게, 고향이 있어서 우리는 쓸쓸허지 않다, 작것!”

드디어 제 입에서도 점잖치 못한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욕 잘하는 시인들을 상대해서인지 아니면 시인에게 시보다는 욕이 나오게 하는 세상 때문인지는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세상사 사람은 많아도 무인지경인 것만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었다. 만택이 소주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고향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 깡시인이 받았다. 외로움이 뭉치면 외롭지 않다! 건너편 주방에서 이영희가 해사하게 웃고 있다. 귀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워미 워미, 저 웃는 것 좀 보소! 꼭 꽃송이 한가지네이.”

괜히 뿌듯해서 만택이 물었다.

“뭔꽃?”

“사람꽃!”

 

 

그녀는 예뻤다

 

해정은 이영희한테 건네준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명의의 탄원서, 호소문, 진정서, 신청서, 질의서, 답변서, 의견서, 청구서, 신문기사, 각종 공문 들을 방바닥에 펼쳐놓았다. 처음에는 순전히 정말 그쪽을 한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래서 방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민이 되었고 연민은 분노가 되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는가. 유정면 사람들의 호소에 귀기울여주는 관청 하나, 힘있는 사람 하나가 이렇게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인가. 내가 그동안 이런 나라에서 살면서,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때로 애국가를 부르면서 가슴 뭉클해하기도 했더란 말인가. 방바닥에 펼쳐진 서류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가 막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하도 보고 싶다고 징징대는 통에 우는 아이 젖 주는 심정으로 서울로 올라가서 자신이 서울에 올라올 수 없는 이유가 되어버린 서류들을 석현에게 보여줬더니, 예전에 형미가 보인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새삼스럽게 뭘 분노씩이나. 대한민국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약한 자 앞에서 강하고,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그러니 이제 그만 순양에서 올라오라는 뜻일 것이다. 원래 3개월 예정으로 갔는데 가을 지나 다시 겨울이 되었다. 1년이 넘도록 순양에 머물게 될 줄은 사실 해정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해정은 순양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영희가 할머니들을 두고 떠나버리면 이후에 아무리 삶이 편안해진다 해도 마음의 고통을 지울 수는 없을 거라고 했듯이, 해정은 자신이 할머니들뿐 아니라 이영희를 지금 이대로 두고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훌훌 떠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그렇다고, 정말 원군이 필요하다고, 누구라도 좋으니 유정면 사람들, 그 힘없는 노인들에게 따스한 손 내밀어줄 단 한사람의 손길이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니 이 서류들을 잘 살펴보고 당신의 아내 서해정이 왜 아직 순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지를 헤아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건만, 남편이란 사람이 그것도 제대로 살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대충 일별하더니, 하고많은 반응 중에 해정이 가장 안 봤으면 싶었던 반응을 콕 집어 보인 것이다. 그 순간 첫번째 든 생각이, ‘차비가 아깝다’였다. 그 돈이면 할머니들한테 막걸리 몇통을 사드릴 수 있는가 말이다. 날 밝자마자 집을 나서는데, 그제야 급해진 석현이 서류들을 한번만 더 보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다시 보면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를 뿌리치고 해정은 순양행 버스를 타고 말았다.

비슷한 연배이고 같은 여자라서인지 이영희가 군청 앞에서 일인시위 하고 있는 걸 현장 방문한 이후로 이영희는 해정에게 이따금 연락을 해왔다. 처음 얼마간은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나갔지만 이젠 부르지 않아도 해정이 알아서 이영희를 찾아갔다. 군청 시위현장이든, 이영희 친구 김종숙이네 식당이든, 이영희 집이든, 순양읍내 시장통이든, 하여간 어디서든 이영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해정은 좋았다. 이영희의 어떤 부분에 끌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해정은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에서 치유받는 사람의 어느 하루에 관한 이야기’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었다. 잘 써지지도 않는 것, 잊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대신 이영희를 쓰고 싶었다. 그 말을 당사자한테 했더니, 이왕에 쓰려거든 자기 이야기는 쓸 것도 없고 순양석재와 싸우는 이야기나 써달라며 자료 삼으라고 이 서류들을 잔뜩 안겨주었다. 이 문서들을 들여다보는 것 역시 만만치 않게 머리 아픈 일이었다. 고소 고발 건만 해도 얽히고설켰다.

순양군청과 순양석재 간의 고발사건의 내역을 보자.

 

주민의 순양석재 고발

1. 건축법 위반: 대검찰청에 항고중

2. 불법산지 전용: 소음진동규제법 위반 및 골재채취법 위반과 병합해 벌금 각 500만원, 2차고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사회봉사 80시간

3. 불법가동 1차 고발: 기소유예, 2차고발: 벌금 100만원

 

순양석재의 주민 고소 고발

1. 주민 100여명을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로 고발: 80여명 기소유예, 20명에 검사 약식명령 20~100만원 벌금 부과, 정식 재판 청구 4명 기소

2. 주민 소송대표 5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주민대책위의 순양군청에 대한 소송

1. 업종 추가승인 취소: 1심 주민 패소, 2심 항소 진행중

2. 순양석재 가동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순양석재의 순양군청에 대한 소송

1. 공작물 축조신고 반려처분 취소: 소 취하

2.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 소 취하

3. 위법 공작물 자진철거 지시처분 취소: 소 취하

4. 업종추가신청서 반려처분 취소: 소 취하

5. 행정처분 효력정지: 각하

6. 손해배상 청구: 소 취하(이 부분에 ‘김성주 경제과장 김수철 사장 간 소 취하하고 승인하기로 약속’이라고 씌어 있다)

7. 복구준공검사 반려처분 취소: 원고 기각, 항소 없음.

 

특이한 것은 군청에 대한 순양석재의 소송 대부분이 수개월 간격으로 소 취하가 되어 있는 점이다. 소송을 남발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순양석재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불법영업을 지속해 막대한 이득을 남기고 있었다. 주민들은 돌공장에서 나오는 먼지와 소음으로 집이 집이 아니고 동네가 동네가 아니며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데도, 군청에서는 불법공장에 대한 형식적 고발과 한달이면 수억을 버는 업체에 몇백만원 벌금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었다. 해정은 하도 답답하여 ‘바쁜 기자님’인 형미한테만 전화를 걸었다.

“야, 형미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쁘시냐?”

“알면서.”

“야, 사정한다. 여기 좀 한번만 내려와주라.”

“멀쩡한 신랑 두고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는 거야, 그런 거야?”

먼저 건 전화지만 확 끊어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아니, 기분이 아니라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고.”

“그러게, 사방이……”

“기자양반한테야 조선팔도가 난리겄지만, 나한테는 시방 여가 난리다.”

“긍게, 한번 기어코, 언니, 근데 기어코를 그쪽에서는 뭐라 그러지? 옛날에 뭐가 있었는데?”

“글쎄, 기필코, 기, 기, 기연씨?…… 야, 내려올 거야, 말 거야아!”

“마감이나 쳐놓고, 봐서.”

“그때는 이미 늦으리. 끊자.”

형미와 소득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영희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했어요?”

“소식 들었어요? 순양군청에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가 뜬다네요!”

이영희는 언제나 그랬다. 기대를 걸었던 관청이, 기대를 걸었던 힘있는 사람이 ‘이번에도’ 우리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어도, 그녀는 결코 절망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대상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군청에 도지사가 오고, 지역 축제에 지역구 국회의원이 오고, 행사에 환경부 장관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에게 숨가쁘게 달려와, 여러부운, 혹은 언니 오빠들, 높으신 분이 온대요오, 그분에게 우리 사연을 전할 거예요오, 알았죠, 할 때의 이영희는 종달새처럼 명랑했다. 해정은 지금까지 그렇게 사랑스러운 여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영희가 종달새처럼 명랑하게 새소식을 전할 때, 해정의 가슴에서 눈물이 샘솟는 것 같은 경험도 처음이었다. 아팠다. 영희가 주민들 앞에서 해사하게 웃으면 해정의 가슴이 저리는 것만 같았다. 주민들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주민들이라고 해봐야 최고 젊은이가 64세, 최고령이 93세인 노인들이다. 그런데 아무리 젊은 사람 없는 시골이라 해도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젊은 사람이라고는 영희 혼자뿐인 것이 속상하고 궁금해서,

“왜 젊은 사람은 이영희 위원장 한사람뿐이에요?”

노인들에게 물었더니, 노인인데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눈동자가 반짝이는 김공님 할머니가 행여 남이 들을세라,

“젊은 사람들이 기양 돈으로 해결을 볼라고 해각고 우리가 복주어매를 위원장으로 올려분 거여.”

그런 사연이 있음을 알고 영희의 고군분투가 더욱더 눈에 밟혔다. 어떻게 이 싸움의 중심에 서게 됐느냐는 해정의 물음에 영희가 말했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웠어요. 길바닥에 말없이 앉아 있는데, 그 뜨거운 햇볕, 그 숨막히는 침묵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더라구요. 위에서는 불볕이 쏟아지고 아래서는 숨막히는 지열이 올라오는 아스팔트에 너무나 순박한 할머니들을 앉혀두고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뭐라고 뭐라고 야유를 퍼붓는데 이쪽 사람들은 어느 누구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터져나와버린 거예요. 그렇게 터져나온 그 순간이 결국 나를 지금 여기까지 오게 만든 시초가 됐죠.”

점심에 할머니들이 준 막걸리를 몇잔 마셔 약간 취기가 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희의 그 말을 들으면서 해정의 가슴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해정이 영희 손을 덥썩 붙잡았던 것이다.

“내가 영희씨와 함께할게요.”

이제 해정은 제가 약속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30대 후반인 해정이 대학에 다니던 시대가 운동권 끝물 시절이어서가 아니라, 그쪽으로는 통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낸 자신이 왜, 뭣 땜에, 그리고 어떻게 이영희의 싸움에 함께하겠다는 것인지는 해정 자신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출판사와 약속한 소설을 다 쓴다 하더라도 자신이 순양을 쉽게 떠나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결국 ‘우리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결과를 맞더라도, 할 수 있는 시도는 해봐야 할 것이었다. 영희가 말했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시도를 안하는 것보다 해보는 것이 인생 앞에 훨씬 더 떳떳할 것 같다고.

“이동신문고가 뭔데요?”

“말 그대로, 새로 임명된 권익위원장이 전국을 돌면서 현지에서 직접 민원을 듣고 해결해주는 거래요.”

“아이고, 그럼 우리한테 딱이네, 딱이여.”

몇달 살다보니 이제 이쪽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 이제야 해결이 되려나봐요.”

이영희 목소리가 밝았다. 해결이 되든 안되든 그것은 차후 일이고, 우선 영희의 목소리가 밝은 것만으로도 해정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일인시위 현장에서 만난 영희 얼굴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을 해정은 금방 알아보았다. 군청 민원실 안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일인시위중인 영희에게 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군청 직원들이 무슨 민원 낼 거냐고 자꾸 전화하네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사전심사 받고 싶지 않다고 했죠, 뭐. 그랬더니, 저쪽에서 뭐라 그러냐면, 알아야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정말일까요?”

“그러게요.”

해정이 공무원들을 믿어서 정말이냐고 물은 건 아니었다. 또한 영희가 공무원들을 믿고 있다고 여겨서 물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이면 좋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영희가 그런 마음의 표현에 대고, 그들을 믿으세요?라든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같은 사나운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도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순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 해정은 좋았다. 영희는 그러니까, 고운 사람이었다. 영희가 고운 사람인 줄 알기에 그녀의 고난이 해정은 가슴 아팠다. 그래서 정작 영희는 아무렇지 않아하는데, 공무원들이 영희한테 함부로 하는 듯한 기미가 느껴지면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치는 것만 같은지도 몰랐다.

이동신문고가 오는 날, 영희뿐 아니라 노인들도 술렁술렁한 것이 뭔가 기대하는 기색들이었다.

“맥없이 팔도유람 허는 것은 아니겄제애?”

“지 돈도 아니고 나랏돈으로 밥 사묵고 댕기는 사람이 헛짓거리 헐랍디여이?”

이동신문고라기에 아무나 들어가서 북을 두들기면 되는 건 줄 알았더니 주민대표가 접수증을 써야 한다고 했다. 영희가 대표로 접수증을 쓰면서 담당 조사관이라는 사람에게 물었다.

“접수하면 틀림없이 면담할 수 있지요?”

영희한테서 감사원 감사 청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해정도 들었던 바가 있다. 아마 접수를 해봤자 아직도 감감무소식인 감사원짝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물었을 것이다.

“위원장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아?”

하는 순간, 두 위원장이 동시에 조사관을 향해 왜요?라고 묻는 ‘사태’가 발생했다. 조사관이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물음에 가벼운 힐난을 하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군청공무원들과 수행원에 휩싸여 군청 현관 입구로 막 들어서던 참이었던 것이다.

“왜요?”

“왜요?”

두 위원장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권익위원회 위원장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권익위원회 위원장은 공무원과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이동신문고가 열리는 행사장 안으로 사라졌고 또다른 공무원들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감싸긴 감쌌는데 권익위원회 위원장이 들어간 방향이 아닌 반대편 출입구 방향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행사장 입구 쪽에서 영희를 기다리던 해정이 보니, 영희가 밖으로 떠밀리다시피 나가고 있었다. 해정의 머리 위로 피가 솟구치는 순간이 왔다.

“야이, 나쁜놈들아, 이영희 위원장한테 손끝만 대도 너희들 다 고발해버릴 거야!”

영희를 밖으로 내보냈던 공무원인지 경호원인지 알 수 없는 남녀들이 해정에게 달려왔다. 해정은 그 순간 길은 하나뿐임을 알았다. 행사장 안으로 뛰어들기. 해정이 이동신문고가 열리는 행사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권익원원장과 면담하려고 대기중인 사람들 가운데 순양석재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았다. 그때 또다시 피가, 뜨거운 피가 해정의 머리 위로 솟구쳤다. 해정이 판단하건대, 공무원들이 쇄석기 반대 주민들의 이동신문고 접근을 막아서 그럴 것이었다. 노인들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남자는 화단의 돌의자에, 여자는 군민의 쉼터에 자리잡고 마치 해바라기라도 하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 장소로 지정된 수위실 앞으로 가 30여분씩 서 있는 것이다. 해정은 먼저 군민의 쉼터 쪽으로 갔다.

“할머니들, 지금 군청 안에 누가 와 있는지 아세요?”

“알제애.”

“근데 왜 여기 이러고 계세요? 가서 악이라도 써야지.”

해정이 발을 동동 굴렀다. 해정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표정이 느긋한 것이 해정의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렁게애, 우리도 그러먼 좋겄지마는, 우리가 한꺼번에 행사장에 들어가불면 딴 사람들이 못 들어갈 것 아녀어? 복장 터질 일을 우리만 는 것이 아닐 것인디.”

 

군청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어쩌지 못해 들입다 악을 쓰고 났더니, 해정은 아팠다. 아파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끙끙 앓아 누워 있는데 정말 희한한 것은,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데 또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몸은 아픈데 마음 편안한 것이 이상해서 일부러,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남편도 기다리고 있고 할 일도 많은 내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래도 그 물음들이 편안한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편안한 마음이란 그러니까, 인간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뿌듯함인 것 같았다. 한때 운동권에 몸담은 적 있는 석현에게 들었던 ‘동지와 함께라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게 느껴지는 경지’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데모하다 잡혀서 경찰서에 끌려와 실컷 두들겨 맞고 유치장에 갇혔는데, 희미하게 비쳐드는 달빛 아래 동지들의 얼굴이 그렇게 예뻐보이더라는 말을 이제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평리서 해정이 사는 곳까지 영희가 찬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왔다. 해정이 몸이 아파 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싫어 글을 써야 한다는 말로 군청 앞에 가지 않았더니, 하루도 안돼 기어코 찾아온 것이다.

“아프지요?”

해정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희가 자전거에 싣고 온 죽냄비를 열었다. 식지 않게 하려고 꽁꽁 싸맨 냄비를 여니,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깨죽이에요. 우리 앞집 사는 언니가 솜씨가 좋아요.”

깨죽을 한입 떠먹다가 이영희를 바라보는데, 맛있다느니 고맙다는 말들보다도 더 좋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저도 첨엔 그랬어요.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맨날 악만 쓰고. 점심도 날마다 사먹을 수도 없고 노인들이 도시락 챙기기도 그래서 군민의 쉼터에서 해먹었는데 무슨 피크닉하는 줄 알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맛있겠다며 밥 좀 달라고 오죠. 그러면 특히 할머니들이 어서 오시라고 하고 밥을 퍼주죠. 그런데 노인들이 왜 군청 앞에서 밥을 해먹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밥만 먹고 가버려요. 나는 첨에 그것도 그렇게 화가 났어요. 근데, 이젠 제가 그래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오라고 하죠. 그래서 그 사람이 와서 맛있다고, 잘 먹고 간다고 하면 그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어요. 내가 할머니들한테 뭐라고 해도 그냥 할머니들이 웃기만 하는 것이 첨엔 답답했죠. 근데 자꾸 반복되다보니까, 제가 그분들을 닮아가요. 근데, 그분들처럼 하니까 맘이 참 좋더라고요. 그냥 좋아요.”

그냥 좋아요, 하는 이영희 말이 깨죽처럼 고소하게 해정의 마음에 스며든다. 초겨울 햇살만큼이나 맑은 이영희한테 뭐라고 말을 해주고는 싶은데, 그 말이 무얼까 한참 생각하다, 결국 해정은 영희가 떠난 뒤에야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이영희, 당신은 참 예쁜 사람이라고. 그 쉽고 간단한 말 한마디가 당사자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생각난 것이 아쉽고 원통해서 해정은 한참을 찬바람 속에서 서성였다.

 

 

모자를 벗지 마

 

공사장에서 만난 도인을 따라 지리산으로 갔던 철수가 돌아왔다. 돌아오던 날 밤, 철수가 우는 것을 영희는 처음 보았다. 대구탕집이 철거되어 쫓겨나올 때도 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던 철수가 지리산에서 후줄근히 돌아온 밤, 영희야, 조선천지에 우리 세 식구 의탁할 곳이 이렇게도 없냐,며 서럽게 울었다. 서럽게 우는 남편 등이 조그마한 어린애 같았다. 영희는 철수 등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다가 꼬옥 안아줬다. 철수가 영희 품에 안겨 울었다. 한참을 울다 조용해진 철수 귀에 대고 영희가 말했다.

“여보, 저 소리 들려?”

“무슨 소리?”

“귀를 바닥에 대고 가만히 있어봐.”

철수는 영희가 시키는 대로 귀를 방바닥에 바짝 갖다댔다.

“들리지?”

“응, 그래 들린다.”

“어때?”

“뚝 뚜그르르, 뚝 뚜그르르……”

“지렁이들이 겨울잠에 들려고 하면서 새근거리는 소리야.”

철수 귀에 들어가는 소리가 그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희는 왠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혹은, 잠자던 굼벵이가 잠깐 깨어나 하품하고 다시 잠드는 소리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둘이는 한참 바닥에 귀를 모두고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오랜만에 누운 채로 영희 얼굴을 마주보고 철수가 물었다.

“대책위원장 하니까 좋냐?”

주름이 잡히고,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철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할머니들이 좋아.”

“여기 안 떠날 거야?”

“할머니들이 좋아서.”

“요새 시는 안 쓰냐?”

“할머니들이 시야.”

내가 졌다, 하고서 철수가 웃고 말았다. 철수가 웃는데, 이번에는 영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철수가 손을 뻗어 영희 눈물을 닦아주며,

“할머니들이 그렇게 좋냐?”

“할머니들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번에는 철수가 영희를 꼬옥 안아줬다. 잠에서 깬 복주가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둘이만 뽀뽀하고잉.”

이불 속에서 세사람이 한덩어리가 되었다.

철수가 돌아오고 나서 한결 밝아진 영희 때문에 ‘언니 오빠’들도 덩달아 밝아졌다.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졌는데도 빠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 먹고 나서 오랜만에 할머니들하고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해정이 영희를 불렀다.

“이 기사 보셨어요?”

신문을 내밀어 보였다.

기사의 제목은 ‘순양석재 해법의 그날은 언제?’였다. 그런데 그 아래 소제목이 ‘막무가내 주민, 선량한 기업 발목 잡아’였다.

 

막무가내식 싸움으로 피해는 결국 주민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의 군청 앞 시위와 농성이 한파가 몰려오는 겨울까지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이 시위의 실질적 리더로 지목한 이모씨,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서모씨가 환경단체나 각종 매스컴과의 연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순양경찰과 뜻있는 인사들은 대책위의 막무가내 좌충우돌식 투쟁방식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업체에 대해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대책위는 이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를 하고 있고, 시위 선동자들이 나중 일은 생각지 않고 끝까지 대결구도로만 몰아가면 결국 피해는 순박한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라고 말하고, 주민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조속히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진 대책위가 고의로 그러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영희는 기사를 차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문장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문장도 조악할 뿐더러, 언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양식인 공정성이라곤 아예 없는, 기사의 탈을 쓴 업체 편들기에 불과한 글이었다. 언젠가부터 고질이 된 두통이 띠잉, 하고 몰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요? 뭐 말이 되는 기사여야 반박을 하지, 이거야 원. 더군다나 이런 신문을 누가 얼마나 보겠어요?”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봤잖아요. 이건 분명히 거짓이고 왜곡이며 모욕이잖아요.”

“……좋아요, 준비는 제가 하죠.”

해정이 약속했다. 집에 와서도 순양타임스의 ‘막무가내식 투쟁’ 기사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영희가 잠 못 드는 그 밤에, 저도 같이 잠 못드는 새가 있었다. 지난봄부터 부쩍 울어쌌던 저승새는 겨울이 닥쳐온 지금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울다가 새벽빛이 비칠 때 쯤 잦아들었다. 들리는 사람은 듣고 안 들리는 사람은 못 듣는다는 휘이익, 후루루, 휘이익, 후루루, 소리. 저승새 소리는 마치 혼을 부르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저승새를 혼새라고도 하는지 몰랐다. 밤에 우는 새소리를 들으니 잠은 안 오고 어렸을 때 고무줄놀이 하며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낮에 우는 새는 배고프다고 울고요 밤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울지요. 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숨이 넘어가도록, 새는 배고파서 울고 님이 그리워 운다고 악을 썼었다.

“여보, 밤에 우는 새는 정말로 님이 그리워 울까?”

“밤에 새소리 듣는 사람들이 님 없는 사람들이겄지.”

“낮에 우는 새는 배고파서 울까?”

“복주 깬다, 목소리 줄여.”

그러나, 복주는 깼다.

“엄마, 왜 안 자아?”

복주가 졸음에 겨운 눈에 걱정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묻는다. 잠결인데도,

“민원 너야 하니까 그래?”

시위, 소송, 재판, 일인시위 그리고 이제 아이 입에서 민원이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응, 또 민원 넣어야 해.”

“왜?”

“순양타임스라는 신문에서 대책위원회가 막무가내로 시위하고 있다고 왜곡기사를 썼어. 그래서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그냥 넘어간 것 때문에 후회할 것 같아. 그래서 민원 넣을 거야.”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냐?”

말은 복주한테 하는 식으로 했지만 받기는 철수가 받았다.

“말한 그대로야.”

신문을 보여줬다. 철수가 신문을 읽다 휙 구기며,

“고발해, 씨……”

입을 다문다.

철수와 복주가 나가고 난 아침나절에, 해정은 어디서 장만했는지 스쿠터를 타고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할 서류를 가지고 왔다.

 

반론보도문 신청 이유

신청인은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이며 피신청인은 순양타임스입니다. 피신청인의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이 문제가 있으며 사실과 다릅니다.

1. 대책위, ‘막무가내’라 했는데 그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2. ‘법적으로 문제 없는 업체에 대해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대책위’라고 했는데 순양석재는 허가도 없이 지금까지 1년 이상 불법가동을 해왔고 주민대책위뿐 아니라 순양군청에서도 수차례 고발한 바 있으며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3. ‘대책위는 자신들 발등에 불도 못 끄고 있는 상태’라 했는데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며 ‘업무방해’나 ‘일반 교통방해’가 성립하는지의 여부는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4. ‘파산 직전의 사업자가 파산의 원인을 제공한 대책위와 주민들을 상대로…’라 했는데 이는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표현입니다. 이 업체의 쇄석기 불법가동으로 인한 심한 소음과 분진 등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심각하게 유린되어 항의집회를 하게 되었으므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주민이 아니라 업체입니다.

5. 사진은 주민들 집회사진인데 대책위 주민의 발언은 한마디도 없으며 시종일관 경찰과 업체측 발언만 실었습니다.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는 이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생존권과 주거권을 지키고자 하는 정당한 행위를 매도당함으로써 또다른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를 구하는 조정을 신청합니다.

신청 취지

피신청인은 순양타임스 1면에 상자기사로 아래의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되, 제목은 조정대상기사의 부제목 활자크기로 하고 본문은 조정대상기사의 본문활자 크기로 한다.

 

“이제 우리 요구가 반영된 반론보도문만 쓰면 돼요.”

“고마워요, 해정씨. 사실은 어젯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준비한다고 했잖아요. 당장에 순양타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기자의 기사 밑에 댓글을 달았어요. 당신이 서모씨라고 지칭한 서해정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정정보도를 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겠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이 기자라는 작자가 대뜸 나한테 욕을 하네요. 모욕죄로 콱 고발해버릴라, 그냥. 이 싸움은 어쨌든 본싸움에서 파생된 파생싸움이라 그나마 내가 참는 거라는 걸 그 자식이 알란가 몰라.”

욕 때문에 마음이 좀 다친 모양이다. 초기에 순양석재 사람들한테 욕을 먹을 때마다 영희도 제 마음이 너덜너덜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찢겨진 느낌이 들면 짜증이 나서 저도 모르게 험한 소리가 나왔다. 복주가 넘어져 울면, 일어나 새끼야,라고 한다든가, 무슨 일이 잘 안되면 지랄맞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눈빛이 유달리 반짝이는 ‘언니’ 김공님이 그러던 것이었다.

“어이, 한사코 모란꽃맹이로 이삐고 존 것만 생각허소이. 내가 얏닐곱살때 울오무니가 애기를 낳다가 돌아가거등. 할머이가 방문을 탁 열고 나옴서, 아이, 느그 어매 죽어부렀다, 허등만. 죽는 것이 뭣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슬프제이. 막연허게 슬픈게 말레(마루)에 우두근히 앉아서 다무락 옆에 모란꽃 벙그러진 것만 가만히 보고 앉았어. 모란꽃이 하도 이뻐서 그것 보니라고 내가 어매 죽은 것을 깜빡 잊어묵엇어. 그러니, 그때 모란꽃같이 이삔 것이 한태기도 없었으먼 얼매나 더 설워이? 그렁게 자네도 맘이 힘들수록에 한사코 모란꽃맹이로 이삔 것만 생각허소이.”

그래서 해정의 다친 마음을 위해 영희는 어젯밤의 새 이야기를 꺼낸다.

“어젯밤에는 밤새도록 새가 울더라구요.”

“무슨 새요?”

차마 저승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음, 님 그리워 우는 새요. 낮에 우는 새는 배고파 울고 밤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잖아요. 밤이면 밤마다 우는 그 새도 님이 그리워 우는 걸까요?”

“우리 남편 샌가부네요. 낮에는 백수라 배고프고 밤이면 님이 없어 외롭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뿐이고. 그 새가 그래서 어제부로 울다 지쳐 내려왔답니다. 가만, 이제 그만 울어도 될 텐데, 왜 울었지?”

해정이 서울로 올 생각을 안하자 급기야 해정의 남편이 서울에서 짐을 싸서 내려왔다고 했다.

“직장은 어떡하구요?”

“영화일 하는 사람들이 일 없으면 백수죠, 뭐.”

어차피 남편까지 내려온 마당에 언제까지나 친구 친정집에서 살 수는 없어서 집을 구하려는데, 이왕이면 ‘순양석재 피해 인접부락’을 원한다는 것이다.

“저희는 어쩔 수 없어서 왔는데, 해정씨네는 자발적으로 오시네요?”

“왜,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도 있듯이, 최소한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자발성’이라고……”

말을 하다 말고 해정이 얼굴을 붉힌다.

“그래서 접수, 예, 그 아무나 하는 접수 말이죠, 그 접수를 시키면 된다고.”

영희는 해정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자꾸 밤에 우는 ‘님 그리워 우는 새’를 생각한다. 간절히, 간절히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같은 그 혼새소리를 해정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희씨 집 정말 좋네요. 나도 이런 집 구하고 싶어요. 저 작은 창호지창이 자다가 봉창 뚫는다는 그 봉창 맞죠? 너무 앙증맞다. 우리나라 사람들 창 넓은 집에 무슨 한 맺힌 사람들 같애. 난 아주 유리창이라면 질색인데. 저런 창은 얼마나 소박해요, 그죠?”

작은 봉창 하나에 감탄을 연발하는 귀여운 해정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해정씨, 선물 줄게 가만있어보세요.”

사르륵 사르륵, 사운 사운, 솨르르 솨르르, 소소소소소……

“무슨 소리죠?”

“뒷곁에 산죽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예요. 그 밑에서 참새들이 소소소소소……”

 

반론보도청구 신청서를 보낸 지 일주일 쯤 뒤, 언론중재위에서 ‘피신청인 답변서’라는 우편물을 보내왔다. 순양타임스의 반론문이다. ‘신청인의 주장에 대한 피신청인의 입장과 그 근거자료’라는 것인데, 순양타임스의 주장인즉, ‘신청인의 주장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다분히 신청인의 주관적인 입장만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런 뒤 얼마 지나서 열린 중재위원회에 출석하던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해정은 추워 보인다며 자기가 쓰고 나온 모자를 굳이 영희에게 씌워주었다. 위원회 사무실 입구에서 순양타임스 대표와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와 마주쳤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는 듯했다. 차 하나를 똑바로 세울 줄 모르냐는 둥, 걸음걸이가 왜 그렇게 비실거리느냐는 둥, 너 땜에 내가 별 구질구질한 데까지 다 오게 된다는 둥,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오는 동안 기자는 대표라는 사람한테 계속 시달렸던 것 같았다. 영희 일행과 마주치자 두 사람 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뚱한 표정으로 먼산바라기를 한다. 중재위에는 당사자 한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순양타임스 대표와 영희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양쪽에 두명씩의 중재위원들을 거느리고 가운데 앉아 있는 중재위원장이 바로 그 판사가 아닌가. 주민들이 군청을 상대로 낸 ‘순양석재 업종변경 승인취소 소송’에 기각판결을 내린 판사 말이다. 지금도 영희는 판사가 알아듣기 어려운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던 그 판결문의 마지막 대목을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혀온다.

 

(…)원고들에게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저감대책 수립, 행정처분, 공사중지 가처분, 민사상 손해배상 등의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꽝 꽝 꽝.

 

각자 이름과 소속을 확인하고 중재에 들어가기 전, 작은 소란이 일었다. 중재위원으로 앉아 있던 지방신문 논설위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쿵, 하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그 중재위원은 아직도 얼굴이 벌건 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술에 취해 있는 게 분명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그는 이내 자울자울 졸기 시작한다. 술 취한 중재위원 때문에 자신의 체면도 도매금으로 깎였다고 느낀 것일까. 그래서 뭔가 권위를 내세울 거리를 찾던 중, 영희의 모자가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영희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척하면서 대뜸 명령조로 말했다.

 

“모자를 벗으세요.”

“네?”

“사람이 예의가 없이 말이야, 실내, 실외도 구분 못해요? 실내에서, 더군다나 시시비비를 가리러 온 자리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그 무슨 건방진 태도요, 거.”

“중재위원장님, 여기는 제가 피해자로서 온 자립니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요? 이영희씨, 참 말귀 못 알아듣네. 모자를 벗으라면 벗을 일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기가 막혀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는 걸 꾹 참고 판사, 아니 중재위원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중재위원장도 영희를 노려보았다.

“모자 벗으라니까!”

“아니요. 저 모자 안 벗겠습니다. 아니, 못 벗습니다.”

술 취한 중재위원이 졸다가 눈을 번쩍 뜨고 갑자기 킬킬 웃었다. 졸리는 와중에서도 안 벗느니, 못 벗느니란 대목만 얼른 주워들은 모양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위원장님, 위원장님 말씀대로 여기는 순양타임스 기사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신청인인 제가 순양타임스에 반론보도를 요청한 사안에 대하여 순양석재, 아니 순양타임스가 이의를 제기해서—”

“신청인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대표 이영희가 피신청인 순양타임스에 제기한 반론보도청구 조정신청은 당사자간 합의 불능 등 조정에 적합하지 아니한 현저한 사유가 있으므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13항 규정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주문, 이 사건 조정은 불성립으로 한다.”

순양타임스 대표의 입이 쩍 벌어진다. 김공님의 당부대로 정말 이쁘고 좋은 것을 생각해내려 애써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잘 되지 않았다. 해정이 뛰어들어왔다.

“어떻게 됐어요?”

순양타임스 대표는 들어올 때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강아지 쓰다듬듯 기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들유들 사라졌다.

“해정씨, 저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을까? 이 세상에는 가만히 눈 감고 귀 열고 입 닫고 있어야만 나는 소리, 냄새, 몸짓들이 있다는 것을 알까? 모란꽃에 취해서 엄마 죽은 것도 잊어버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까? 알면 야단을 칠까, 눈물을 흘릴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지네.”

“밖이 추워요. 모자 절대로 벗지 마세요.”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바람은 더 거세게 불고 비는 싸락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우리 종숙이네 가서 소주나 한잔 할까요?”

종숙이네 가게로 가는 동안 영희 머리에 쓴 모자 위로 싸그락싸그락, 싸락눈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싸그락, 싸그락, 싸그락…… 싸락눈 내리는 하늘에 대고 영희가 외쳤다. 모자는 벗지 않겠다, 절대로!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