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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선

 

강남의 꿈은 붕괴하는가

황석영 장편소설 『강남몽』

 
 
 

성장신화의 몰락과 비극적 꿈의 세계

백지연(白智延)│문학평론가

 

3029 황석영(黃晳暎)의 『강남몽』(창비 2010)은 한국 자본주의 도시공간의 상징인 강남의 개발 역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한국 소설에서 ‘강남’은 지역적 명칭을 넘어 자본주의 소비욕망의 풍속도를 상징하는 문화적 기호로서 폭넓게 다루어져왔다. 상품 소비의 가치를 전면화하는 칙릿소설이나 상류계층의 화려한 삶을 현시하는 씨나리오들 속에서 강남은 자연스러운 공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불패신화에서 출발하여 경제와 교육, 복지, 문화의 특권지대로 구축된 강남의 공간적 특성을 소설적으로 탐색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강남몽』이 소재로 삼는 ‘강남형성사’가 주목되는 맥락도 여기에 있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실제 기록을 문학적인 소재로 가공한 이 소설은 역사적 시공간을 식민지시대로까지 확장한다. 작가는 유흥업소 경영자, 건설회사 회장, 부동산 투자가와 조폭세력, 백화점 여직원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의 삶과 사연들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처럼 인물의 일대기로써 서사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은 『심청』(2003) 『바리데기』(2007) 『개밥바라기별』(2008) 등 근래 황석영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강남몽』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인물들의 일대기를 역사적 기록 속에 압축하는 건조하고 간결한 서술방식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놀라운 흡인력 역시 이러한 속도감있는 문체와 구성방식에서 기인한다.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허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전개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읽는이를 몰입시키는 서사적 힘을 보여준다.

역사적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질주가 보여주는 흡인력과 더불어 『강남몽』에서 주목할 점은 이념이나 명분에서 벗어나 실리를 챙기는 자본가들에 대한 묘사다. 그동안 도시를 배경으로 한 한국 소설에서는 이농민, 도시빈민, 비판적 소시민 같은 인물형이 주로 부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소설들에서 자본가가 부패와 타락을 행하는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면, 『강남몽』에서의 자본가의 모습들은 욕망의 추구 과정에서 입체적인 사실감을 확보한다. 기회주의적 속성과 거침없는 물신욕망을 내뿜으면서도 차근차근 부의 입지를 다져가는 이들의 모습은 종래의 선악구도에서 비켜선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현실적인 모습을 포착한다. 실제로 강남지역의 개발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자본가들이 개입했다는 사회학적 자료들을 환기할 때 이러한 캐릭터의 부각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에 등장하는 강남 개발의 주도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영리를 추구해온 인물들이지만, 그들 각자의 삶에서 보면 이윤의 추구와 증식 과정은 생존과 실리를 위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여정으로 포착되어 있다. 식민지시대 만주벌판에서 밀정 노릇을 하다가 미군 정보부 요원을 거쳐 건설회사 회장으로 변모해간 김진의 생애라든가, 부동산 거래로 쉽게 재산을 축적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스펙’을 갖추고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는 심남수의 생애는 도덕적 잣대로 단순화되지 않는 물질욕망의 현실성을 표현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생생하고 현실적인 자본가들의 모습은 연대기적 서술의 속도에 압도되어 충분한 자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된 서사전략을 감안하더라도 분단 이후 한국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독특한 형성과정을 소설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여지가 좀더 풍부하게 마련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강남몽』에서 인물들의 내면적 드라마를 압도하는 것은 자본주의 성장신화의 몰락을 예감하는 비극적 전망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발단과 결말에서 백화점 붕괴사고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생의 여정은 욕망의 정점에서 파국을 맞는다. 소설의 제목에 담겨 있는 ‘꿈’의 의미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이 도달하는 허망한 행로를 암시하는 중요한 비유이다. 이전의 황석영 소설에서 ‘꿈’은 종종 근대와 도시를 향한 열망과 좌절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비유로 사용되어왔지만, 『강남몽』에 등장하는 꿈의 상징은 철저한 전락과 허망한 결말을 부각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강력한 초월성을 지닌다.

백화점이 붕괴되기 직전까지 지칠 줄 모르고 추구되어온 이윤의 증식과정은 폭발의 굉음 속에서 공허한 먼지가 되고 만다. 일본군의 고용 밀정으로 출발하여 해방과 분단 전후의 복잡한 정국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근대개발정책의 수혜와 이익을 고스란히 누려온 김진의 생애를 보라. 그는 평생 이룩해온 모든 것들이 먼지와 연기 속에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국밥집 맏딸 출신으로 유흥업과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부유한 강남 사모님으로 변신한 박선녀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 김진이 건설한 바로 그 건물이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는다. 생계수단을 도모하며 시작된 이윤의 추구과정은 어느덧 자본과 욕망의 회로 속에서 정신없이 맴돌다가 덧없는 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성장신화의 참담한 붕괴는 경쟁체제와 속도주의가 내세운 욕망의 환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인물들은 신기루가 깨져나가는 순간에 임박해서야 자신이 잊고 있던 서정적인 내면의 순간과 잠시 가까워진다. 건물 붕괴 직전 김진은 이유없는 무력감에 시달리며 만주벌판을 헤매다니는 꿈을 꾼다. 심남수는 백화점 붕괴사고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꿈속에 간간이 등장하던 한 여자의 자살 장면을 떠올린다. 카지노에서 거액의 자금을 탕진하고 허탈해하는 홍양태, 구조를 기다리다 결국 깨어나지 못한 박선녀, 성공한 부동산 투자가에서 한순간 부도를 맞고 전락하는 박기섭, 이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소용돌이에서 부초처럼 떠도는 운명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도시의 욕망회로 안에서 정처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내면에 서린 꿈과 열망은 황석영 소설의 바탕에 늘 깔려 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길이 보일 때 가능했던 낭만적 열정과 공감의 상상력은 자본의 압도적인 마력이 휩싸고 있는 현재에 이르러 피하기 어려운 곤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소외계층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백화점 여직원 임정아 역시 이 비극적 환몽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빈민의 고단한 삶을 살아온 정아의 부모 판수와 점순은 강남 개발에 직접적으로 동원되고 삶의 터전을 착취당한 하위계층이다. 자본가들의 몰락에 반해 소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인물은 빈민가정의 딸인 정아지만, 그녀가 생존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희망을 꿈꾸기는 쉽지 않다. 실제 현실에서 붕괴된 백화점 자리에는 새로운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져 과거의 흔적들을 말끔하게 지워내고 있다. 소설의 밖에서 수많은 선녀들은 다시 땅을 보러 다니며 건물을 사고 팔 것이며, 살아남은 또다른 정아들은 여전히 박봉에 시달리면서 바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것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강남신화의 몰락과 붕괴는 그후에도 더욱 화려하고 끔찍하게 번성하는 자본의 현실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한층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스펙 쌓기의 과정과 물신욕망의 증대는 나날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더불어 강남신화가 부추기는 계층상승의 욕망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강남몽』이 환기하는 비극의 세계는 반복적 일상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다가온다. 근대적 압축성장이 야기한 비극을 붕괴와 전락의 신기루에 비유한 『강남몽』은 개발과 속도의 신화가 깨지는 그 순간의 날카로운 파열음을 들려준다. 성장신화의 몰락을 투시하는 비극적인 꿈의 세계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던 수많은 참사와 사고들을 고통스럽게 환기시킨다. 일상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망각의 화법에 정면 대응하려는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서사정신의 진지한 분투가 남기는 깊고 강한 역사적 울림을 느끼게 된다. 삶을 잠식하고 있는 속도주의와 경쟁구도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강남몽』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문학적 성찰의 계기를 주고 있다.

 

 

메트로폴리스 이면의 한국현대사

김백영(金白永)│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사회학

 

『강남몽』은 소설로 쓴 강남형성사이자 강남을 통해 본 한국 근현대사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시점과 종점으로 하여 강남 형성에 투여된 무수한 인물군상의 꿈과 에너지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이 소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내달려온 말쑥한 성공가도의 이면에 숨겨진 비공식적 역사의 장면들을 숨가쁘게 그려낸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지만, 우리 사회의 난제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마찰과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강의 기적’이 낳은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 ‘강남’의 출생 비화는 어떤 교훈을 던지는가?

강남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20세기 한국사에 대한 태도만큼이나 이중적이다. 그것은 식민통치와 군부독재라는 오욕과 상처,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라는 긍지와 보람이 한데 엉겨붙은 우리 근현대사의 경험처럼 흠모와 질시의 복잡한 양가감정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의 한강 건너편에 500여년간 버려져 있던 저습지에서 ‘부동산 불패신화’를 양산하는 중산층 집단주거지로, 나아가 파워엘리뜨의 산실로 탈바꿈한 강남은 한국식 투기자본주의의 금자탑이자 천민자본주의의 온상으로서 그 차별적 본색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문제적 시공간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근대화와 도시화는 ‘가치’와 ‘공간’이라는 두가지 차원에서 역설적 변화를 보여준다. ‘의리’를 저버리고 ‘기회’에 편승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며, 주변부로 치부되던 땅이 새로운 문명의 중심으로 상전벽해하는 공간의 대역전 현상을 낳는다. 왕조의 수도 한양이 식민지도시 경성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퇴락한 종로와 북촌을 비웃듯 들어선 ‘경성의 킨자(銀座)’ 혼마찌(本町)와 남촌이 그랬듯, 강남은 ‘한강의 기적’이 낳은 슈퍼베이비로, 밀집되고 노후한 강북의 맞은편에 거대한 스케일과 격자형 가로망으로 계획된 신시가지의 위용을 드러내며 등장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메카이자 거대 도시문명의 심장부로 새 삶을 시작한 강남! 하지만 ‘한국 최초의 종합도시개발계획’이라는 초창기 강남 개발의 거창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규모의 개발계획을 식민지 유산인 토지구획정리사업 방식을 통해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개발독재권력의 빈한한 현실이었고, 서슬 퍼런 군부정권의 엄포와는 달리 당시의 이 신천지는 온갖 탈법과 불법이 횡행하는 무법지대에 가까웠다.

『강남몽』에서 우리는 다종다기한 인물군상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역정과 마주한다. 화류계 마담에서 출발해 재벌 후처가 되어 강남 큰손의 반열에 드는 복부인 박선녀(1장), 만주의 일본군 밀정에서 해방후 미군 정보요원을 거쳐 강남의 대형 백화점 회장이 되는 김진(2장), 별볼일 없는 무직자에서 부동산 투기열풍에 편승해 일확천금하고 거물 부동산 사업가가 되는 심남수(3장), 그리고 지방 건달에서 출발해 강남의 전국구 폭력조직의 두목이 되는 홍양태와 강은촌(4장)의 일대기. 그 속에는 일제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해방공간의 좌우대립, 한국전쟁, 군사쿠데타와 개발독재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김구, 이승만, 여운형, 박정희를 비롯해 특무대장 김창룡, 조폭 조양은과 김태촌, 80년대 사채시장의 큰손 이철희와 장영자 등 역사적 실존인물들이 등장하여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20세기 한국사의 에피쏘드들을 재음미하게 만든다.

소설로서 『강남몽』이 던지는 메씨지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말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타락한 유한계급 복부인의 탐욕, 부동산 거부의 사기와 협잡, 권력과 부에 빌붙어온 ‘개와 늑대’의 기생성과 맹종성은 호황을 구가하던 강남 최대 호화 백화점의 갑작스런 붕괴와 더불어 비참하게 몰락하거나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육중한 콘크리트 잔해더미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구조되는 인물은 오직 한사람, 백화점 지하매장의 점원 임정아다. 가리봉동 공단생활과 달동네 강제철거, 광주(廣州)대단지 소요사건 같은 세파에 시달린 그녀 가족의 이력과 그럼에도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꿋꿋한 인물상을 통해 작가는 ‘강남몽’의 허황된 꿈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존재, 야만적 정글이 된 강남에도 “여기 사람 있음”을 알리는 희망의 메씨지를 설파한다(5장). 하지만 삼풍백화점이 폐허가 된 바로 그 자리에 ‘강남’과 ‘강남몽’은 한층 더 거대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위력과 자태를 뽐내고 있음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일진대!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은 이러한 도덕적 교훈의 박약성과 역사에 대한 냉소로써 급변한 우리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모략과 술수, 폭력과 전횡을 생존의 원리로 삼아 식민지시기, 해방전후 혼란기, 전란기, 군부독재기를 견뎌내며 부와 성공을 거머쥔 비열한 인물군상은 더이상 도덕적 비난이나 사회적 단죄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소설은 담담한 어조로 이들의 행태를 ‘비정상적’ 환경에 내던져진 인간 존재들의 ‘정상적’ 적응방식의 발로로 묘사한다. 식민화와 망국의 경험, 그로 인해 광복과 건국 이후에도 상당기간 정부다운 정부가 부재했던 경험, 지난 세기 우리가 겪었던 ‘사회성’이 희박한 사회, ‘공공성’이 현저히 결여된 공권력 치하의 부조리한 상황을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다소 과장되고 단순화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불케 하는 무정부상태, 정글의 법칙이 관철되는 야수의 왕국으로 그려진 개발 초기 강남의 모습이 공감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의 과장과 단순화는 새로운 ‘기회의 땅’ 강남을 각양각색의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으로 그려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고안된 소설적 장치로 보인다. 소설은 우아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메트로폴리스 강남의 출생증명서 이면에 비루한 속물들의 전성시대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고발한다.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이들의 성공을 위한 비열한 변신과 배신의 역사와, “길 가는 데 땅이 있는” 약삭빠른 자들의 기회주의적 작태, 그리고 거기에 빌붙은 ‘개와 늑대’의 이전투구의 처절한 몸부림. 이처럼 저열한 자들과 ‘강남몽’을 공유했던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공범자인 우리에게 과연 구원은 가능한가?

결국 『강남몽』의 거울상을 통해 우리는 어느덧 문명인의 탈을 쓴 저속한 속물이 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초상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욕망의 씨뮬라크르가 되어버린 도시의 현실에서 더이상 순수하고 소박한 꿈은 없다. 거리에는 저마다 서로 다르다고 웅성거리는 수십만 수백만의 꿈들이 넘실거리지만, 자본주의적 욕망의 상품시장에서 그 모든 꿈들은 단지 싸늘한 화폐적 교환가치의 변종으로 현실화된다. 그리고 이상적인 시장 혹은 ‘사회’가 소멸된 도덕적 진공상태에서 “잘살아보고 싶은” 소박한 꿈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구별짓기의 허영심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존을 위해서는 ‘강남몽’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세속적 욕망을 접을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개인들의 반시대적인 존재론적 결단과는 무관하게, 많은 이들에게 ‘강남’은 꿈이자 현실로서 여전히 번성할 것이다. 지난 세기 삼풍백화점의 헛된 꿈이 덧없이 무너지고 덧씌워진 공간, 글로벌 무한경쟁의 정언명령이 삶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이 시점에서 ‘강남’은 우리에게 더 크고 무거운 난제를 던진다. 결국 강남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힘을 모아 ‘강남’을 새로운 ‘사회’로 만드는 꿈을.